‘국민통합’과 ‘역사적 통찰’의 갈림길
고등학교용으로 저술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역사란 곧 과거의 기억과 그에 대한 평가인데, 사람들마다 처지가 달라 과거에 대한 생각은 다르기 마련이다. 근대국가들은 이런 사실을 간단히 무시했다. 정치적 목적 때문이었다. 그들은 ‘국민통합’을 빙자하여 모든 시민에게 하나의 일치된 기억을 강요하였다. 그들이 역사교과서를 만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사정 역시 다르지 않다. 건국 이래 한국의 역대 정부는 ‘민족사의 정통성’을 내세우며 각급 학교를 대상으로 표준화된 한국사 교육을 고집했다. 바른 한국사 교육으로 민족정신을 앙양하겠다던 역대 정부의 반복된 주장을 곰곰 생각해보면 그것은 일종의 세뇌행위, 즉 국가적 폭력이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쟁의 근본 성격도 그러하다. 정확히 말해, 이 교과서 논쟁은 우경화로 치닫는 권위주의적 국가의 폭력적 실체를 증명한다. 내가 교과서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까닭이 바로 그 점에 있다.
생태주의의 입장에서 나는, 한국사 교과서의 많은 문제점을 고발해왔다.1) ‘과잉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역사의 필연적 과제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는 위험천만이다. 이것이 나의 기본입장이다. 나는 역사교과서가 반강제적 국민통합의 수단이기보다 시민의 ‘역사적 통찰’을 돕는 교과목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역사는 개인의 경험적 한계치를 넘어, 인식의 지평을 전방위로 확장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역사교육은 시공을 초월한 생태적 다양성과 평화공존의 가치를 성찰하게 도와주는 교육활동이 될 때 존재의미가 있다.
내가 소망하는 ‘녹색’의 역사교과서는 지역공동체마다 그 형태와 내용을 달리하는 것이다. 전국 어디서나 공통으로 사용될 것을 전제로 삼고 있는 현행의 표준화된 역사교과서를 나는 반대한다. 현행 교과서로는 학생들이 탈근대의 가치와 생태적 다양성의 소중한 의미를 배울 수 없다. 소규모 공동체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들이 출현하지 않으면 안될 이유는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사학계는 생태주의 역사교과서 따위는 완전히 도외시하고 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가들은 근대국민국가의 충복일 따름이다. 그들이 공들여 썼다고 하는 한국사 교과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관점에서 보는 한반도의 역사’다. 검인정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정부가 정한 지침에 따른 표준화된 역사책들이다. 이를 통해 역사가들은 한국 국민 모두에게 공통된 역사적 기억을 강요하고, 이로써 국가공동체의 영속을 도모한다. 나는 이것을 학문적 권위주의에 토대한 일종의 지적 폭력이라 생각한다.
일찍이 발터 벤야민은, ‘결을 거슬러 역사를 솔질하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선언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국가권력이 그 충복들을 동원해서 제작한 표준화된 역사의 ‘결을 거스르지’ 않고서는, 역사의 진정한 의미를 통찰할 수 없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공동의 기억이라면 모를까. 이것을 국가가 앞장서 인위적으로 만드는 행위는 그 자체가 폭력이요, 범죄적 행위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비참하다. 한국사 교육은 기껏해야 ‘국민통합’ 또는 ‘민족통합’을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더구나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과거 한국사회를 어둠에 빠뜨린 부당한 폭압과 배제의 역사를 망각하고, 일제강점기부터 군사독재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군국주의와 권위주의적 행태의 본질을 사실상 외면했다. 그들은 독재세력이 추구한 ‘과잉산업화’의 역사를 찬양하면서 ‘국민통합’을 부르짖는다. 여기서 나는 조지 오웰의 유명한 명언을 떠올린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며, 그들은 과거를 통해 결국 미래까지 지배한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한국의 기득권층이 오웰의 경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과잉산업화’의 일등공신으로 믿고 있는 보수기득권층, 그들은 현실을 지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배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과거마저 전유하려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논쟁, 쟁점은 무엇인가
현행 고등학교용 한국사 교과서는 7종이다. 모두 검인정을 거친 것이다. 이들의 장점은 독재권력을 강력히 비판하고, 민주화운동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대기업의 성장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잘못을 따진 것도 다행스런 일이다. 비록 생태적 가치를 고양하는 데 이르지 못했지만, 현행 교과서들은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의 중요성을 일깨운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만하다.
그런데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출현하게 된 동기는 바로 그러한 장점에 대한 기득권층의 불만에서 비롯되었다. 통상 우파 또는 뉴라이트로도 불리는 그들은 현행 교과서들이 ‘좌편향’이라고 비판한다. 대기업을 헐뜯음으로써 청소년들에게서 기업가정신을 키우지 못할 우려가 있고, 민주화운동을 무분별하게 치켜세움으로써 그 가운데 내재한 친북한적 태도를 은연중 찬양했다는 식이다. 안병직(서울대 명예교수)은 과잉산업화를 통해 다져진 한국 기득권층의 역사인식을 다음과 같이 대변한다. “대한민국의 건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세웠고 산업화는 중산층을 창출하고 국가의 번영을 가져와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에는 이런 부분이 제대로 서술되지 못했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서조차 안 교수는 불만을 표시한다. 민주화운동이 과대평가되었고, 이승만 정권 때 제정된 최초 헌법의 가치가 과소평가되었으며, 박정희 정권이 선도한 경제개발계획이 제대로 설명되지 못했다는 불만이다. 요컨대 기득권층 일각에서는 교학사식 서술로도 아직 만족할 수 없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래도 기득권층의 상당수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흡족해 한다. “저들(좌파)이 농단해오던 역사 및 정신문화 영역을 바로잡으려는 역사학자들이 ‘한국현대사학회’를 결성하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바로잡기 위해 교학사 교과서를 편찬하였다”는 평가가 대표적이다(바른역사국민연합 창립선언문). 2013년 9월 27일 발족한 ‘바른역사국민연합’은 교학사 교과서를 지키기 위한 기득권층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입증한다. 이 단체의 성격을 검토한 한 역사학자는, “교학사 교과서는 뉴라이트를 넘어서 올드라이트적 성격이 강하다”(도면회 대전대 교수)고 평가하였다. 나는 그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뉴라이트의 지도자인 이영훈(서울대 교수)의 학설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배태한 ‘현대사학회’의 임원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교학사의 새 교과서는 단연코 뉴라이트의 작품이다. 문제의 이 교과서가 등장한 것을 계기로, 기득권층은 기성 교과서의 좌편향성이 극복될 전기가 마련되었다고 평가한다. 이제야말로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의 역사가 바른 평가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권희영(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이 집필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2013년 5월에 실시된 1차 검정 때부터 사회적 관심사였다. 당시 이 책은 조건부로 검정을 통과했지만 그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이 책에서 발견된 사실 및 인식의 오류를 문제삼았다. 여러 시민단체들도 장차 이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별렀다.
그러나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지키려는 기득권층의 움직임은 각별했다. 7명의 전직 교육부장관과 역사학계의 원로 학자들이 연명으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역사가 바로 서야 민족정신이 바로 서고 국민이 하나 될 수 있다는 식의 진부한 주장을 내세우며, 기득권층은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지지를 천명하였다.
진보진영 또는 좌파로 불리는 역사가들은 교학사 교과서의 친일 및 독재 미화를 공격의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문제의 교과서는 일제의 각종 수탈과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해서도 미온적이다 못해, 일본제국주의를 두둔하는 것 같은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일본의 〈산케이신문〉(2013. 9. 22.)조차 칼럼을 통해, “교학사의 새 교과서가 … 한국의 공식 사관이 가장 혐오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채택했다”고 평가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는 식으로 요약되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일본 극우파들의 역사관과 일치한다. 논쟁 거리가 된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악명 높은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긍정 일변도로 서술했다. 역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보수층은 진보진영의 비판에 격렬하게 저항한다. 해방 직후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이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고 민주화까지 이룬 것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이라는 반박이다. 설사 왕조시대라 해도 한 시대의 치적을 군주 한 사람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하물며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역사적 변화를 독재자의 공로로 간주한다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의문이다.
교과서를 둘러싼 좌우 진영의 대립을 지켜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불편하다. 많은 시민들은 이 기회에 좌우 통합의 교과서를 만들라고 주문한다. 서로 공통되는 부분도 없지 않을 테니, 양측이 합의하라는 것이다. 만일 합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이견을 모두 명기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역사학자들이 소통과 타협의 문화를 만드는 데 앞장선다면 장차 남북의 대립을 극복하고, 계층 및 지역 간의 대립구도 역시 해결의 전망이 설 수 있다는 주장이다.
내 생각은 다르다. 설사 양측이 대화에 나선다 해도 견해 차이가 쉽사리 해결될 전망이 없어 보인다. 가령 뉴라이트의 이승만 평가는 극단적으로 우호적이다. “그는 한국 독립운동사상 보기 드물게 지성적인 정치가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형안을 갖추었고, 해방 후 혼란상태의 남한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였다는 식이다(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내정자, 《이승만 대통령 재평가》, 연세대출판부, 2006년). 이것은 좌파로 불리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인식과 천양지차다. “그는 사(私)적인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독립운동을 했고, 출세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이승만은, “미국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을 발전시켰다고 말했다”(동영상 〈백년전쟁〉(2012)에서)고 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한국사 교과서 논쟁에서는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대화가 실종되다시피 하였다. 양측은 극한적인 언어폭력과 집단행동을 일삼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서로 합리적인 대화를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최소한의 근거조차 발견하기 어렵다.
역사교과서의 문제점들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진보와 보수 양쪽 모두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 경중을 따져보면 보수, 즉 기득권층의 책임이 훨씬 크다.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기본적인 관점부터가 문제투성이다. 약소민족은 강대국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식민지시대를 서술한 것만 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자학적이고 패배주의에 젖은 발상이다. 게다가 이 책은 한국사회의 역사적 성취를 이승만과 박정희를 비롯한 일부 권력자의 지도력으로 돌렸다. 전근대적 영웅사관을 방불케 하는 유치한 인식 수준이다.
제1심에 참가한 역사학자들로부터도 들은 이야기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오류투성이다. 2013년 9월 10일,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역사학연구소 등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 무려 298건의 역사적 사실관계 오류와 편파적 해석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사실관계 오류만도 124건이라 한다. 이이화(역사학자)의 지적에 따르면, 사실 왜곡의 수준이 더욱 가관이다. 고구려의 뿌리인 부여를 한반도로 오인했고, 일본인이 말하는 ‘국어’, 즉 일본어를 조선어라고 간주했을 정도다. 김육훈(역사교육연구소장) 역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정밀하게 진단하였다. 사실 오류도 많지만 출처도 분명하지 않은 자료를 마구 동원했다고 하였다. 또한 학생들의 지적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어려운 개념을 함부로 동원했고, 필자들의 견해를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많은 학자들이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정면에서 비판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지수걸(공주대 교수)의 분석평가였다. 그의 논점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문제의 교과서는 현행 한국사 교육과정과 어긋난다는 점이다. 정부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은 ‘한국사의 정체성’을 ‘민족사’라고 규정하였으나, 문제의 교과서는 대한민국만을 강조함으로써 민족사의 성격을 저버렸다는 것이다.
둘째, 현행 교육과정은 한국사의 ‘성취’뿐만 아니라, 그 ‘한계’에 대해서도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이해’를 강조한다(《사회과 교육과정》, 69쪽). 그러나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성취에 초점을 둔 데다, 그마저도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치중하였다는 비판이다. 또한 도무지 문제도 될 이유가 없는 독재체제에 대한 비판을, 문제의 교과서는 대한민국 또는 헌법에 대한 정면 도전 또는 부정으로 매도하였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이이화와 전우용 등도 교학사의 교과서가 헌법을 무시했다고 말한다. 특히 전우용은 헌법에 명시된 3·1정신과 4·19정신, 그리고 정의와 인도 및 민주의 이념을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셋째,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는 ‘필연론’을 무기 삼아 역사를 함부로 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이 식민지로 전락한 것도 필연으로 보아, ‘협력주의’니 ‘융합주의’와 같은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정체불명의 ‘총체적 친일론’도 꺼냈다. 뿐더러 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해서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억지 변명을 늘어놓았다.
각처로부터 비판이 쏟아지자 문제의 교과서를 공동 집필한 필진들도 동요하였다. 2013년 9월 27일 필진 가운데 현직 교사 3명이 집필자 명단에서 자신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교학사의 역사교과서가 중도 폐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관계당국이 이 교과서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교과서의 채택 시기까지 변경해가며 교학사의 새 교과서에 특혜를 베풀고 있다. “원래는 10월 11일까지 채택해야 하는데, 교학사 교과서가 워낙 오류가 많아서 한 달을 늦춰주겠다니 이건 그쪽에 대한 특혜가 아닌가.”(도면회 대전대 교수) 수준 미달의 교학사 교과서를 당국이 검정에 통과시켜놓고는, 별 문제도 없는 정상적인 교과서들까지도 문제가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는 불평도 나오고 있다(한철호 동국대 교수).
생태주의의 입장에서, 교학사를 비롯한 현행 한국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나는 세 가지로 간단히 언급하고 싶다. 첫째, 민족주의 또는 국가주의의 성향이다. 문제의 책자뿐만 아니라 뉴라이트 전반이 다 해당되는 문제이다. 심지어는 그들을 비판하는 진보진영 역사학자들의 교과서들도 역시 빠져나갈 수 없는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문제점이다. 한국사회가 자국사의 교육 목표를 ‘국민통합’ 또는 ‘민족통합’에 둘 경우, 이러한 문제점은 해결하기 어렵다. “역사가 바로 서야 국가·사회의 미래가 보장된다. 역사가 바로 서야 분열과 대립, 갈등과 반목이 치유될 수 있다”(바른역사국민연합 창립선언문)는 주장은, 기실 우파만의 견해가 아니라는 데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지수걸을 비롯한 좌파 역사가들은 문제의 교학사 교과서가 민족주의의 흐름에서 벗어났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피상적인 인식일 뿐이다. 문제의 교과서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방식이나 위안부 문제 등을 다소 애매한 시각에서 다뤘다고는 하지만 민족주의를 포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파의 새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영광을 그리는 데 그쳤다고 주장하는 좌파들의 비판은 과장된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 사학계 전반이 민족주의에 중독되어 있다.
둘째, 한국사 교과서의 또다른 문제점은 과도한 자기미화다. 우파는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토대로 건국되어, 지난 60여 년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고 높은 수준의 교육과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대한 현대사’라고 일컫는 데서 기득권층의 속셈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좌파의 자기미화도 도를 넘었다. 그들은 이른바 한민족의 과거를 미화하여 평화를 숭상하는 이상적인 공동체가 역사적으로 실재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이 역시 믿기 어려운 사실 왜곡이다.
끝으로, 좌우 양측은 과잉산업화를 당연시하는 공통점을 가지면서도 각자의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다. 우파는 좌파를 ‘종북 좌파’라고 몰아붙이지만 근거가 없는 억지다. 그들은 좌파가 쓴 기존의 역사교과서를 ‘급조된 민중사관’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좌파의 역사서술이 과연 민중 중심의 역사서술이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들 좌파의 역사서술 역시 도시중심, 산업중심, 남성중심이다. 그럼에도 우파는 좌파를 궁지에 빠뜨리기 위해 억지 주장을 늘어놓는 것이다. 좌파가 ‘대한민국’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로 낙인찍고 김일성 전체주의를 정통성 있는 체제로 미화시켰다는 우파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다.
‘역사전쟁’을 넘어 ‘문화전쟁’으로
우파는 지금 역사 논쟁의 폭을 확대하는 데 몰두한다. 무슨 까닭일까? 우파들의 타격 목표가 되다시피 한 주진오(상명대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 북’에서 말했다. “역사교과서가 나올 때마다 되풀이되었던 시비 가운데 이번 싸움이 가장 치열한 것 같다. 당연히 그 이유는 단지 교학사 교과서 때문이 아니라 이 정권이 작정하고 역사전쟁을 벌이려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대체로 미온적이었던 민주당이 이번에는 대단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2013. 9. 29.) 주진오는 현재 전개되고 있는 좌우파의 대립을 우파들이 기획한 ‘역사전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민주당의 유기홍 의원 등은 2013년 9월 2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검정의 취소를 외치는 동시에,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 임명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유 위원장은 이미 과거에 일제의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뉴라이트 진영의 대안 교과서를 감수한 전력이 있고, 논쟁의 한가운데 있는 ‘현대사학회’의 고문이기도 하다. 그런 인사를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 기용하였기 때문에 학계 일각에서는, 결국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들이 모두 폐기되고 국정교과서 체제로 되돌아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의 목소리가 들린다(도면회 및 한철호). 한국사회 전반에 권위주의적 사고가 날로 강화되고 있기 형편이라, 이런 추측까지 나오게 되었다.
김육훈(역사교육연구소장)은 교학사의 새 교과서를 편들고 나선 정치세력이 하나의 ‘역사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학교 현장을 이념투쟁의 장으로 만든다고 비판했다. 이번의 교과서 논란은 그 본질이 문제의 교과서에 혜택을 주려는 권력기관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다. 그 말대로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문제는 그 핵심이 국가권력에 의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에 있는 것도 같다. 권오현(경상대 교수) 역시 한일 양국의 사례를 분석한 논문에서, 두 나라 모두 우파 성향의 정치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국가권력이 개입하는 적이 많았다며, “정부는 역사교과서 논쟁 문제에 대해 공정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역사서술에 대한 부당한 개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바른 지적이다. 교학사 교과서의 필자 이명희(공주대 교수)는 단순한 ‘역사전쟁’을 넘어 ‘문화전쟁(문화투쟁)’으로 나가자고 외친다. 한국의 문화계에 대한 그의 진단은 이러하다. “좌파 진영이 교육·언론·예술·출판·학계의 60~90%를 장악하고 있다. 현 국면이 유지되면 10년 내 한국사회가 구조적으로 전복될 수도 있다.” 이명희는 한국의 진보진영을 곧 종북 세력으로 취급하고, 그 타도를 부르짖는 것이다.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이명희와 생각을 공유하는 기득권층이 다수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들(좌파)은 1990년대 역사해석, 문학·영화·엔터테인먼트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그리고 이들은 인문학―사회과학―언론노조―방송과 신문―인터넷 포털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문화 진지’를 구축했다. 이들이 만든 ‘문화 진지’는 ‘주류 문화’가 없던 대한민국의 ‘문화권력’으로 성장했다. 우리는 지금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공격하는 ‘어둠의 세력’과 마주하고 있다.”(박성현, 〈뉴데일리〉 주필) 이런 발언의 장본인 박성현은 ‘바른역사국민연합’의 주도적 인물로서 교학사 교과서를 수호키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우리가 할 일은 ‘공화’로 대변되는 주류 문화를 창조해, ‘어둠의 세력’이 만들어낸 ‘문화권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여기서 확연히 드러난 바처럼, 기득권층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진보진영의 공세를 빌미로, 전선을 확장하여 그 개념조차 불분명한 공화(共和)의 가치로 무장한 보수 측을 이끌고 진보진영을 상대로 한 ‘역사·사상·문화전쟁’을 벌이겠다는 다짐이다.
2013년 9월 27일 오전 서울특별시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바른역사국민연합’의 창립기념식은 그런 점에서 일종의 출정식이었다. 540개도 넘는 중도·보수 성향의 시민사회단체가 총 연합하고, 그 가운데 원로 역사학자들을 비롯해 학계, 법조계, 언론계 및 종교계 인사들과 원로 정치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섬뜩하다. 그들의 창립대회에는 참석자 수가 300명을 넘었다. 그 자리에서 권희영은 교학사 교과서의 집필자를 대표하여, “우리가 만든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매도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 그동안 외롭게 싸웠지만 이제 든든하다. 여러분들이 오늘 이렇게 모였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힘이 된다”고 감사의 뜻을 밝혔다.
기득권층의 결집에 고무된 주류 매체들은 교육 현장을 이념투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그들은 수만 명의 교사가 회원으로 가입한 합법조직체 전교조까지도 ‘종북’이라고 매도하며, 교학사의 새 교과서 말고는 모두 종북 좌파의 교과서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한국사회에 진정한 의미로 좌파와 우파를 구별하는 이념상의 편차가 존재하기는 하는가. 생태주의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좌파와 우파는 일란성 쌍생아로 보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좌우파는 모두 민족과 국가의 영광과 배타적인 이익을 내세운다. 그들 모두는 경제성장의 신화에 매달려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과잉산업화에서 국가와 사회의 보랏빛 미래를 찾는다. 그들 사이를 가르는 편차가 있다면, 친일과 독재를 바라보는 시각에 약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정도다.
물론 이것도 차이는 차이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 때문에 상대를 완전히 백안시하고 발본색원하려 든다면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나는 15년 동안 유럽에서 살았다. 저들 나라에도 좌파와 우파가 엄연히 대립하고 있지만, 그들이 서로의 이념 차이 때문에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역사전쟁’ 또는 ‘문화전쟁’을 벌이는 모양은 듣도 보도 못했다. 좌우가 어차피 한 사회에서 공존할 수밖에 없고, 정치권력은 매번 선거 결과에 따라 그들 사이를 오가기 마련이다. 사정이 이렇듯 빤한데 교과서를 둘러 싼 ‘역사전쟁’은 무엇 때문에 필요할 것인가. 더구나 자본주의적 세계관을 공유하는 그들 사이에 ‘문화전쟁’이란 아예 가당치도 않다.
그런데 지금 한국사회에는 이상한 난기류가 흐른다. 나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책임이 미성숙한 우파에게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않고 권력의 독점을 위해 마녀사냥을 기획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건국’과 ‘산업화’를 한 축으로 삼아서, 민주화운동의 지지세력을 몽땅 ‘종북 좌파’로 매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우경화다. 권위주의적인 반민주사회로의 퇴행이다. 이미 경제성장의 신화를 잃어버린 기득권층은 시민들의 입과 손발을 꽁꽁 묶은 채 전쟁공포를 확산하며 계급적 이익을 노골적으로 추구할 우려가 있다. 이런 변화는 신자유체제하의 미국과 후쿠시마 사태 이후의 일본에서도 목격한 사실이다.
생태주의의 해법
우파는 교학사의 새 교과서 논쟁을 빌미로 문화계 전반에서 벌이기 시작한 ‘문화전쟁’을 중지해야 한다. 좌우 양측은 건전한 이성의 힘을 재발견해야 마땅하다. 상대방을 ‘종북’ 또는 ‘친일 독재’로 규정하는 구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학교 현장을 잘 아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기득권층이 함부로 상정하는 ‘종북’ 성향의 위험한 교사들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물론 걸핏하면 진보진영이 공격해대는 것과 같은 식의 ‘보수 꼴통’ 교사도 쉬 발견할 수 없다. 대개의 교사들은 다소 진보적이거나 다소 보수적일 뿐이다. 이것은 우리사회 전반의 참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한 한국사회에는 북한에 대해 무비판적인 시민이 없다.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전면 부정하는 시민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에 비해 친일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훨씬 크다. 그렇다 해도, 이완용이나 송병준 같은 매국노를 드러내놓고 찬양하는 시민은 아직껏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우리 시민들의 가치관은 서로 총질을 해대야 직성이 풀릴 만큼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따라서 우파들은 ‘문화전쟁’이란 흉기를 내려놓고 이성이 지배하는 토론의 장으로 복귀해야 한다.
아울러 시민사회는 정치세력의 주구로 변질된 무책임한 언론에 대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특히 고등학교용 한국사 교과서 문제를 한껏 부풀려 마치 한국사회에 ‘문화전쟁’이 필연적인 것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벌린 언론은 규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바람은 당장에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지배권력이 원하는 것은 결국 권위적인 시절로의 회귀라서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생태주의의 입장에서 금번의 교과서 논쟁을 계기로 ‘녹색’ 교과서의 탄생을 더욱 간절히 염원하게 되었다.
이 순간에도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밀양 송전선 문제도 그렇고, 제주 강정 문제도 결국은 잘못된 역사인식의 결과다. 경제개발 또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결코 필요악도 아니고, 가능한 것도 아니다. ‘과잉산업화’는 인류의 본질적인 재앙이다. 많은 역사교과서는 심지어 전쟁까지도 불가피한 것으로 가르치는 경향이 있지만, 전쟁은 국가권력 또는 거대자본의 이익을 위한 도구일 따름이다.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가치는 대다수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는커녕 파멸로 이끄는 ‘악마의 맷돌’이다. 이처럼 중차대한 사실을 속속들이 깨닫게 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나와야 한다. 그것이 하필 국가권력이 편협하게 재단한 한국사 교과서이어야 할 까닭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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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컨대 나의 글, 〈녹색 역사교과서를 이야기하자〉(《녹색평론》, 제122호(2012년 1―2월호), 48~58쪽)를 참조하라. 이 글에서 나는 ‘근대’의 함정에 빠진 역사교과서의 문제점들을 차례로 지적하였다. 나아가 그 대안으로서 ‘녹색’으로의 전환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