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여러가지 일로 많이 바쁘실 텐데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자리는《녹색평론》이름으로 여러분을 모셨기 때문에 제가 사회를 보는 형식으로 하겠습니다만, 제가 이 문제에 대해 공부를 그렇게 깊게 해본 적도 없고, 또 설령 공부를 한다한들 저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은 그동안 여러 전문가, 학자들이 발표한 자료나 문헌을 피상적으로 접해본 생활인의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관련해서 특별히 고려해야 할 어떤 심층적인 문제나 맥락이 있는지 제가 자세한 것은 모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저는 운을 떼는 역할을 하는 데 그치고, 세분 선생님께서 자유롭게 방담을 나누는 식으로 진행했으면 합니다.
《녹색평론》에서는 그동안 두차례에 걸쳐 소특집 형식으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도 그렇고, 저희들 생각에도 격식을 차린 문장으로만 이 문제를 다루어서는 아무래도 설득력이나 호소력에 한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 생각 끝에 세분을 모셨습니다. 말하자면 한미FTA를 둘러싼 여러 쟁점에 관해 생생한 육성을 좀 들려주십사 하는 것이 근본적인 취집니다. 그동안 여러 기회에 하셨던 말씀이 되풀이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글이라는 형식이나 공식적인 자리라는 한계 때문에 다 하지 못했던 얘기까지 좀 솔직하게 들려주시면 독자들이 이 문제를 좀더 자기 문제로서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회에 계신 강기갑 의원님도 요즘 여러모로 노고가 크시고, 이해영 교수님이나 우석훈 박사께서도 최근 한미FTA 문제를 우리사회에 공론화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고 계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요즘 특히 이해영 교수님이 여러 곳에서 하신 발언이나《낯선 식민지, 한미FTA》 혹은《한미FTA 국민보고서》같은 책을 통해서 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 절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교수님이 경제학을 하신 분인 줄 알았는데, 원래 정치철학을 전공하셨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우선 이 교수님부터 어떤 경위로 한미FTA 문제에 적극 관여하게 되셨는지, 개인적인 배경이나 사정에 관해 먼저 말씀을 해주시지요.
이해영 제가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던 1990년대 초에, 서구 학계에서는 신자유주의 문제가 가장 중심적인 사회적 혹은 학계의 쟁점이었습니다. 그것을 접하고 왔기 때문에 귀국해서 처음 신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사회가 IMF시대를 맞은 거죠. 그런데 IMF 직후, 한미 투자협정(BIT) 문제가 쟁점이 되었고, 그 당시 한미BIT의 구체적인 문제점들을 언급하기 시작하면서 신자유주의 문제를 구체화시키고 우리사회에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그러면서 저는 영화인들과 함께 작업을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 뒤로 약 7~8년 동안 ‘스크린쿼터 영화인대책위 정책위원장’ 일을 맡아오게 되었지요. 한미BIT가 영화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히면서 체결에 실패하지 않았습니까. 2003년을 기점으로요. 그런데 2003년이 지나면서 정부 내의 신자유주의 관료 집단들이, 그렇다면 BIT를 체결하지 않고 곧바로 한미FTA를 체결하자는 쪽으로 입장선회를 하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그동안 그다지 크게 공론화되어 있지는 않은데요. 그렇게 입장을 선회하는 과정에서, 당시 새로 부임한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가 첫 발언으로 자기 임기 중에 “한미FTA를 체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미FTA와 관련해서 힐 대사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한국정부측에서도 한미BIT를 접고 곧바로 한미FTA를 체결하자는 논의들이 2004년부터 있었던 거죠. BIT라는 것이 결국 FTA의 ‘투자조항’을 별도로 분리시킨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BIT에 매달리지 말고 곧바로 FTA로 가자는 거지요.
이런 얘기들이 2004년 하반기부터 나오고 일부 언론에도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한미FTA에 대한 대응논리를 세우고 여러 자료들을 정리하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통상절차법’을 제안했고, 여기 계신 우석훈 박사도 함께했습니다만 시민사회단체와 같이 통상절차법안을 한 1년 정도 걸려서 만들었죠. 그 당시에 민주노동당에서는 옵저버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에도 계속 참석했고, 마지막에 민주노동당 안(案)과 시민사회단체 안을 합쳐서, 올해 2월에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가 국회에 ‘통상절차법’을 발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제 개인적으로 지금 한미FTA 문제에 관여하게 된 것은, 1990년대 초부터 해왔던 ‘신자유주의 반대’의 연장이었고요. 좀 짧게 본다면 한미BIT, 즉 한미투자협정 체결 저지운동의 일환으로 이 한미FTA 문제에 관여하여 작업을 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석훈 저는 지난 2년 동안 경제학자로서 환경문제와 농업문제를 중심으로 경제적 해법을 찾는 작업을 나름대로 계속 해왔습니다. 사회적으로 농업을 어떻게 지지하고, 말하자면 생태적 변화를 통한 평화사회, 평화국가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왔는데요. 이런 고민과 연구의 연장에서 한미FTA 문제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한미FTA는 근본적으로, 일단 농업은 없다고 치고 시작하는 사회전환 계획이거든요. 그러니까 단순한 통상협상이 아니고 사회전환 프로그램인데, 농업은 일단 제외하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모든 통상협상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특수한 한미FTA는 이른바 포괄적인 FTA라고들 합니다만, 멕시코나 캐나다도 그렇게까지는 안했는데, 지금 미국과 맺으려는 한국형 FTA는 농업은 아예 끝난 것으로 치고 출발한다 이겁니다. 물론 FTA에 대해서는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지금처럼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를 우리사회에 알려야 한다는 것이 제 첫번째 생각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아직 제 연구가 끝나지 않은 것은, 그렇다면 한국경제의 대안이 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한미FTA에 관한 논의와 함께, 다른 한편으로 농업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지지하고 지켜내면서 경제의 나머지 부문들을 재편할 것이냐 하는 문제인데요. 그 대안적인 길을 찾아나가는 것을 제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종철 평소에도 우석훈 박사의 활약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궁금한 것은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과 달리, 농업문제에 특별히 깊은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있습니까? 흔치 않은 경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석훈 제가 처음 농업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만 하더라도 농민을 전체 인구의 10%라 그랬습니다. 불과 4~5년 전인데요. 그러던 것이 지금은 7%예요. 몇년 사이에 그만큼 줄어든 것입니다. 이 추세로 가면 3~4년 후면 4%쯤 될 겁니다. 그런데 경제학적으로 보면, 농민이라는 특수한 직업에 있던 사람들이 그만큼 줄어든다면, 농업에서 이탈한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거든요. 농업이 아닌 다른 부문, 즉 도시와 전체 산업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업이 없어지면 우리가 잘살게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은 시스템적으로는 도저히 말이 안되는 얘기입니다. 우리사회가 농업에 대한 철학을 다시 세우고 어떻게 농업을 지지할 것인가를 해결하는 것은, 환경문제, 사회문제, 교육문제 등 모든 사회문제와도 이어지는 공통의 문제라고 봅니다.
제가 특별히 농업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가 다른 경제학자들에 비해 생태학 공부를 좀더 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생태경제학’이라는 영역을 여는 데 조금은 기여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 입장에서 보면, 농업이 지금까지 우리 전체 국토의 70에서 80% 정도를 감당하고 관리해왔다고 봅니다. 그런데 농업이 쇠퇴하여 이 국토관리의 주체가 다른 쪽으로 넘어가게 되면 ‘국토생태’란 개념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는 환경 얘기는 할 필요도 없고, 에너지 얘기도 성립이 안된다고 봅니다. 일단은 농업을 어떤 형태로든 지켜나가고 그 위에서 국토생태의 개념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유럽이나 미국 같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나름대로 국토생태의 개념을 갖고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게 없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위기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한 산업의 위기가 아닌 국토생태의 위기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바로 농업의 위기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강기갑 그런 점에서 늘 우 박사님을 보면 참 든든합니다.
김종철 강 의원님, 국회에서 지금 강 의원님 외에 농업문제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는 국회의원이 또 있습니까?
강기갑 아무도 없다고 하면 너무 거친 얘기가 되겠고, 또 내가 너무 교만한 사람이 될 것 같고요.(웃음) 관심은 다들 가지고 계시는데, 국회의 기능과 구조, 그리고 지금까지 해왔던 관행, 타성들 때문에 국회에서 농업문제를 근본적으로, 정책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고민의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김종철 아무래도 농민들의 ‘표’가 점점 줄어든다, ‘표’가 안된다는 문제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강기갑 제가 보기에 농촌 지역의 표가 적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고요…
김종철 농촌에는 가령 한나라당 깃발만 꽂아놓아도 당선된다, 하는 그런 관성도 작용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
강기갑 예, 그것은 유권자인 농민들에게도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농민들이 선거 때만 되면 온갖 연고 동원해서 적당히 밥 사주고 술 사주고 놀러 보내주고, 돈봉투가 옛말이라지만 요새도 돈봉투가 나돕니다. 이런 식으로 표를 싹 몰아갑니다. 실제로 농촌 지역에, 농민들 표 아니면 당선 안되는 선거구가 대단히 많습니다. 의성, 봉화, 특히 경남 쪽에는 70~80%가 농민 표가 지배적인 데가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지역출신 의원들조차 농업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느냐, 바로 선거 때, 농민들 표는 선거꾼들 세워서 적당히 바람 일으켜서 싹 까부르면 눈 감고도 다 쓸어올 수 있다, 하는 관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농촌?농민 지키고 살리는 의정활동 해봐야 농민이 안 알아준다는 거죠. 실제로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저보다 훨씬 수월하게 잘 할 수 있는 훌륭한 의원들이 대단히 많죠. 공부도 많이 하고 변호사 판사 출신 의원들도 있고 하잖아요. 저야 뭐 압니까. 의지 하나로 뛰는데. 그런데 대부분의 의원들이 농업을 지켜야겠다는 의지가 없어요.
김종철 지난번 한미FTA 1차 협상 때, 원정투쟁단과 함께 미국에 다녀오셨지요? 그때 느끼신 점이나 에피소드 이야기 좀 해 주시지요.
강기갑 우리 농민들 시위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둥 하는 얘기를 정부 쪽에서 많이 했는데요. 작년 말 홍콩투쟁 때에도 느낀 것이지만, 이번에 미국에서도 시위문화를 배워야 할 사람들은 노동자 농민들이 아니라 한국의 정부와 경찰들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야 백악관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처음 미국을 갔습니다만, 우리 시위대가 워싱턴 도심을 한바퀴 다 돌고 마지막 집회를 바로 백악관 앞에서 했습니다. 백악관 직원들이 나와서 우리 시위를 지켜보기도 하고 그래요. 미무역대표부(USTR) 건물, IMF 건물, 어디를 가나 시위대의 접근성이 거의 100% 보장이 됩디다. 한국에서야 우리가 시위를 하면서 청와대 가려면 어떻게든 못 가게 막고, 심지어 농림부까지 가려고 해도 막고 하니까 폭력이 일어나고 충돌이 일어나고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미국사회는 그렇게 폭력시위를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리고 미국 시민들은 대부분 한미FTA에 대해 별로 큰 관심이 없고, 또 모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미FTA는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다
김종철 그동안 세분께서 여러 자리에서 반복하여 지적해온 이야기이지만, 우선 FTA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원론적인 이야기부터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특히 한미FTA는, 이것은 도저히 ‘자유무역협정’이라고 할 수 없지 않느냐, 이건 철저하게 미국의 기업과 투자자들을 위한 협정이고, 미국 기업과 투자자들을 위한 철저한 ‘보호주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 자유무역협정이라는 말에 많이 속는 것 같아요. 그저껜가, 전에 노동부 장관 하던 김대환 씨가〈중앙일보〉에 칼럼을 연재하는 모양인데, 거기에서 한미FTA를 지지해야 한다고 쓴 것을 봤는데요. 그 양반이 노동부 장관으로 있을 때 여러가지 언행이 문제가 많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래도 일단은 비주류 경제학자로서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에 대해 어느 정도 비판적인 입장을 기본적으로는 가지고 있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이런 사람도 정부가 하는 말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경제학자로서 공부를 안하고 있다, 마땅히 해야 할 숙제를 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것은 하나의 예입니다만, 요즘〈교수신문〉등에서 보면, 소위 전문가들, 대학교수들한테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앙케이트 비슷한 게 있던데, 그걸 보니까 경제학 공부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하는 이야기가, 경제학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자유무역협정은 해야 되는 거다, 무역은 해야 되는 것이고 완전히 개방하는 것이 이상적(理想的)이다, 하고 이야기하더군요. 자유무역 자체는 선(善)이라는 거지요. 경제학자들이 이 정도면 일반시민들이야 어떻겠습니까.
이해영 예, 최근에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지요. 지금 한미FTA를 둘러싼 반대와 찬성 의견을 두고 ‘쇄국’ 대 ‘개방’으로 몰아가면서, 자유무역은 그 자체로서 선(善)이라는 담론들이 어떤 비판적 성찰도 없이 마구 유포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말씀하신 대로 김대환 전 장관도 마찬가집니다. 저하고는 반세계화 운동의 이론가이자 활동가인 필리핀의 월든 벨로 교수를 초청한 자리에서 신자유주의를 성토하는 토론을 같이 해본 적도 있는데요. 그분이 노동부 장관을 하면서 급변신을 하더니, 이젠 급기야 한미FTA를 옹호하는 논자로 등장한다는 것은 경악을 금치 못할 상황이라고 봅니다.
경제학적으로 자유무역을 선하다고 볼 수 있는가, 그분들에겐 죄송하지만 이것은 무지의 소치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봅니다. ‘무역’이라는 것은 경제과정의 한 부분인데, 그것 자체가 선하고 악한 문제가 될 수는 없지요. 그리고 우리나라 대외무역 의존도가 70% 이상이고, 우리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에 한미FTA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데요. 이 말도 따져보면 굉장히 큰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무역의존도라는 것은 대외개방도라고도 표현합니다. 그것이 우리나라가 70%라는 얘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미국은 도대체 대외의존도, 즉 개방의 정도가 얼마나 되나 하는 겁니다. 미국은 20%밖에 안됩니다. 일본은 22% 정도 되고요. 이것만 보더라도 정부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말을 무책임하게 유포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여실히 드러나는 셈이죠. 우리가 미국보다 세배 이상, 일본보다도 세배 넘게 더 개방한 나라인 셈이죠.
그런데 무역의존도가 70%나 된다는 사실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까 강 의원님께서 미국 시민들이 한미FTA에 거의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아주 당연한 이야깁니다. 왜냐하면 무역의존도가 20%밖에 안된다는 것은 나머지 80%는 내수경제라는 이야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세계시장, WTO체제로부터 받는 충격이 우리하고 비교가 안된다는 이야기죠. 우리가 70%만큼 충격을 받는다면 미국은 20% 정도밖에 충격을 안 받는다는 얘기나 마찬가집니다.
이런 조건에서, 한국경제는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내수를 튼튼히 하고 확충할 것인가, 하는 것이 경제운영의 기본방향이 되어야 할 텐데, 지금과 같은 식으로 FTA를 추진하겠다는 것은 무조건 개방하겠다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무조건 개방’으로 간다면 무역의존도는 더 올라갈 겁니다. 그러면 내수 비중은 더 줄어들 것이고. 한국경제가 더욱더 세계시장에서 구조적으로 취약해지는 그런 문제점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길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유무역’이라는 것은 정치경제학적인 측면에서 엄격히 말하면, ‘강자의 보호주의’입니다. 힘이 있으니까, 자유무역을 해서 똑같은 조건에서 시장경쟁을 하자는 이야깁니다. 이것을 두고 정운찬 교수가 얼마 전에 재미있는 표현을 했는데요. 자유무역을 좋다고 하는 사람들은 경제학 교과서를 맨 앞부분만 보고 뒷부분은 전혀 안 본 사람들이라고 했더군요. 자유무역이 가지고 있는 절반의 보호주의, 그것을 보지 않고, 이것을 물신화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어불성설이고 경험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우석훈 WTO가 다자협상틀이라면 FTA는 양자간의 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WTO도 자유무역이고 FTA도 자유무역을 지향하는데요. 가령 우리가 1963년도에 독일하고 맺었던 투자협정 같은 것은 양자간의 협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왜 하필 한미FTA가 특히 문제가 되느냐. 세계은행(IBRD) 2005년 연례보고서를 보면, FTA를 미국형과 EU형으로 크게 나누는데, “미국과의 FTA가 가장 잔인한, 참혹한 FTA”라고 쓰고 있어요. 이것은 제 표현이 아니고 세계은행의 말입니다. 두 유형의 FTA에 무슨 차이가 있냐 하면, 가령 우리가 칠레와 FTA를 맺었을 때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힘을 가하거나 그럴 수 없거든요. 균형이 맞아야 협상이 되니까요. 그런데 미국이 하는 FTA 협정은 스탠다드 어프로치, 표준적 접근이라고 하는데, 이 스탠다드(표준)는 어디까지나 미국 입장에서의 스탠다드이거든요. 자기들이 국내법을 만들어서 미국 표준법을 만드는 거지요. 그렇게 만든 표준형을 제시해놓고 상대 국가에게 조금 수정을 하거나 말거나 하라는 식이지요. 세계 표준이 아니라 미국 표준이니까 비대칭적인 관계가 생기게 되고, 힘이 약한 나라가 당하게 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고요.
다른 FTA와 미국형이 다른 것이 또 있습니다. 협상을 통해 일반관세를 내리거나 없애는 것은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미국형 FTA의 특징은 소위 비관세 무역장벽을 굉장히 많이 없애려고 합니다. 가령 공립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포스터를 그리게 하면서 “국산품을 애용합시다”라는 주제로 아이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면, 이런 것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비관세 무역장벽이 됩니다. 한국정부에서 교육부에 지침을 내려 초등학생들한테 국산품을 쓰라는 이데올로기 교육을 시키는 거니까, 이것은 관세는 아니지만 비관세 무역장벽이다, 즉시 없애라, 하고 요구하게 되는 거지요. 혹은 미국 쇠고기가 어쩌면 안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어느 공무원이 공공연히 했다 그러면, 이런 것도 비관세 무역장벽이 됩니다. 가령 농업을 살려야 한다, 지역 특산품을 애용하자, 이런 것도 마찬가집니다. 그냥 습관이나 관행, 또는 국민들의 문화나 의식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 것들조차 미국 입장에서는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규정하고 바꾸라, 없애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되는 겁니다.
양허안이란 게 있는데, 거기에 ‘관세’ 부분은 요만큼 들어간다면, ‘비관세 무역장벽’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하는 부분은 엄청나게 많이 차지합니다. 가령 투자자-정부 제소권 같은 것도, 기업 혹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느끼기에 부당하게 차별당한 것이 있어 보이면 소송해서 없앨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장치인 셈이지요.
이런 비관세 무역장벽을 없애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는 것이 바로 미국형 FTA의 특징입니다. 가령 한국정부가 한전을 갖고 있는 것도 차별이고 비관세 장벽이다, 내놔라, 할 수 있는 거지요. 이렇게 우리가 보기에 부당한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EU형 FTA에도 비관세 장벽에 대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미국형처럼 포괄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형 FTA를 ‘포괄적 FTA’라고 하는 겁니다.
이해영 방금 말씀하신 세계은행 2005년 자료를 제가 밤새 번역해서 자주 인용했는데요. 한국 협상팀하고 논쟁하면서 “봐라, FTA에는 미국형, EU형, 개발도상국형이 있다” 했더니, 그 쪽에서 하는 말이 “아니, 그런 게 있어요?” 합디다.(웃음) “이런 자료는 처음 보는데요” 그러기에 “이거 세계은행 2005년 연례보고서입니다” 했지요.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공부가 안된 상태에서 한미FTA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요새는 어디서 공부를 했는지, 자기들끼리 무슨 학습이라도 했는지, “그것은 EU의 시스템과 구조를 잘 몰라서 그런다”고 저한테 그럽니다. 처음에는 “그런 게 있습니까” 했던 사람들이 말이지요. 이제는 “EU는 구조가 미국하고 달라서 그렇다”는 대응논리를 내세우는 겁니다. 아마도 그때는 이렇게 대응하는 게 좋겠다는 식의 조언을 누군가 했을 수도 있지요.
강기갑 WTO니 FTA니, 세계화의 논리라는 것이, 겉으로 내거는 대의명분이야 그럴듯합니다. 각 나라의 자본이나 자원, 인력, 기술과 금융, 이 모든 것을 국가와 국가 간에 원활하게 이동시키고 이를 이용해서 각 기업과 산업이 ‘경쟁’을 통해 인류발전과 산업발전에 이바지하도록 한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런 논리와 명분은 우리가 어릴 때 읽은 ‘양의 탈을 쓴 이리’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자본주의의 최대모순인 빈익빈 부익부, 부의 양극화의 골은 계속해서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 세계화의 중심에 서있는 미국이 세계 자본의 20%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힘으로써 세계를 휘두르면서 여러 나라들에 IMF사태와 같은 상황을 돌아가면서 유발시키고, 그 과정에서 파산하는 기업들, 국민경제에서 알짜배기 같은 기업들을 자기들이 챙기고 있습니다. 또 그 와중에 단기성 투기자본들이 한탕씩 해먹고 빠져버리고. 이런 상황을 미국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태들을 보면서, 지금 모두가 선(善)이라고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경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경쟁으로는 우리가 결코 살 수 없다고 봅니다. 경쟁이 아니라 ‘상생’으로 우리 인류가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요, 미국과의 FTA라는 것은 그런 경쟁 관계도 아니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침략’ 관계다! 무차별적이고 예외가 없는, 공격적인 FTA가 바로 미국식 자유무역협정입니다. 국민 생활에 관계된 어느 하나도 예외가 없다는 것, 이것은 침략에 다름 아닙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산업의 각 분야마다 차이가 있는데, 이것을 모조리 무시하자는 것입니다.
요새 아주 비대칭적이고 부당한 상대를 예로 들 때, 초등학생과 최홍만 선수 예를 많이 드는데요,(웃음) 한미FTA가 정말 꼭 그런 식입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홍만이 누군지도 모르다가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이 예를 들면 농민들이 바로 알아듣습니다. 다들 맞다고 합니다. 이런 정도의 관계면 이것은 사실 ‘경쟁’도 아닌 거죠. 만약 달리기라면 힘들더라도 1등을 따라가면 되는데, 이건 격투기란 말이에요. 소리 없는 전쟁이란 말이에요. 갈비뼈가 부러지고 다리뼈가 부러지고, 아니면 뇌진탕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되면 두번 다시는 선수생활 못할 정도로 박살이 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게임’을 하자고 나서는 거잖아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선진화하고 살 길을 찾아야 한다고 하니, 노무현 대통령이나 반기문, 김현종 같은 사람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미FTA로 인한 예상 피해
김종철 기가 막힌 이야기군요. 그러면 이제, 만약 한미FTA가 지금과 같은 내용과 일정대로 체결된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가 있을지 좀 살펴보도록 하지요. 물론 자세히 다룰 수야 없겠습니다만.
이해영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60%라고 합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정부는 서비스산업이 미래 성장엔진이다, 라는 논리를 내세우는데요.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대미 경쟁력은 미국의 절반도 안된다는 것이 정부측 이야깁니다. 그러면 경쟁력이 절반도 안되는 조건에서 어떻게 개방을 하면 경쟁력이 강화되느냐 하고 물으면 정부측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습니다. 주장은 있는데, 어떻게 해서 그것이 가능하냐 하는 데서 정부는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론’을 국민들한테 설득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상품 쪽은 양허안이고 서비스 투자 쪽은 유보안인데, 유보안을 내면서 정부에서 90개 이상 업종에 대해서 유보를 시키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김종훈 수석대표가 “우리 협상단이 매우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서비스산업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한국 표준산업 분류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업종수가 건설업을 포함해서 1,000개쯤 되거든요. 그렇다면 1,000개 중에 90개 정도를 유보시키겠다는 이야기는 900개 이상을 개방한다는 이야기거든요. 엄청난 얘기지요. ‘네거티브 리스트’ 방식, 즉 예외로 유보해두지 않은 업종은 개방한다는 원칙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를 봤거든요.
서비스 업종 1,000개 중 900개 이상을 개방한다는, 이렇게 정신나간 이야기를 하는데도 여기에 대해서 아직 반응이 거세게 나오지 않고 있어요. 우석훈 박사가 이번에 낸 책《한미FTA 폭주를 멈춰라》에서 동네 미장원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아주 재미있고 적확한 예라고 생각했습니다. 미장원업은 틀림없이 개방될 900개 안에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미장원까지 정부가 나서서 유보를 해야겠다고 생각할 리가 없거든요. 이처럼 우리 서민들의 생존과 실생활에 직접 관련되는 대부분의 업종이 개방된다는 이야기죠. 이건 그야말로 소비생활 내지 경제생활에 거대한 지각변동 내지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감당할 거냐. 어떻게 해서 이 900개 업종이 미국과 1 대 1로 경쟁할 수 있을 만큼 경쟁력을 강화할 거냐.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대미 경쟁력이 1/2이란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 두 사람이 100을 생산한다면 미국은 한 사람이 100을 생산한다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면 우리도 미국처럼 한 사람이 100을 생산하게끔 만들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미국하고 경쟁력, 즉 생산력이 같아지는 거예요. 그럼 두 사람이 100을 만들다가 한 사람이 100을 만들면 나머지 한 사람은 어떻게 되느냐. 구조조정입니다. 간단해요. 생산성 올리는 방법은 한 명은 잘라내고 한 명은 쥐어짜서 미국하고 똑같이 생산하게 만들면 되는 겁니다. 간단한 논립니다.
지금 추진하는 것과 같은 한미FTA가 체결된다면, 서비스산업 900개에 포함되는, 국민 경제생활에 직결되는 이 모든 분야에서 대규모의 구조조정은 어차피 불가피하다, 혹은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석훈 박사는 이번 책에서 “4인 가족 기준 연봉 6천만원 미만이라면 올해 안에 짐싸서 이민 가는 게 낫다”고 아주 진지하게 권하고 있는데요.(웃음) 저는 맞다고 봅니다.
우석훈 서비스업에 대해서 제가 꼭 덧붙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한국경제의 60%가 서비스업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여기에 건설업이 들어가 있습니다. 건설업이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20%잖아요. 건설업을 빼면 실제로 서비스산업은 40%밖에 안되는 겁니다. 그런데 건설업이 다른 나라들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8~13% 정도예요. 우리나라 건설업이 그만큼 전체 경제에서 지나칠 정도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인데요.
서비스업이 굉장히 중요하게 보이는 이유는 이처럼 건설업을 서비스산업에 넣고 계산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건설업을 제조업으로 넣었는데, 그때는 또 우리나라는 2차산업이 크다 그랬지요.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이걸 3차산업에 넣고 이제 우리나라는 3차산업이 크다 그러거든요. 실제 대부분의 제조업과 서비스업에는 아무 일도 안 벌어졌는데 말이에요.
아무튼 건설업을 빼고 얘기하면, 사실 우리나라는 서비스업으로 먹고사는 나라가 아니라 여전히 농수산업과 공업(제조업)이 더 중요한 나라입니다.
강기갑 지금 우리사회가 양극화로 인한 갈등과 정신적 피해, 소외감, 이런 것들이 심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미FTA가 체결된다면 그 영향이 아주 위력적이기 때문에 양극화가 엄청나게 더 심화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나라가 2003년부터 수출실적이 해마다 13.5%, 16.7%, 26.9% 계속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중소기업의 영업이익률 같은 것은 마이너스로 가고 있습니다. 내수도 오히려 마이너스대로 계속 떨어지지 않습니까. 아까 이해영 교수께서도 지적하셨지만, 대외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내수 기여도 등은 계속 줄어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한미FTA가 체결된다면 대외의존도, 무역의존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소수 재벌이나 독점자본의 이익은 다소 늘어난다 하더라도, 다수 시민들, 서민들의 가계는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고, 결국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수출과 내수의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도 심화될 것이고, 또 산업간에도 전자나 IT산업 같은 첨단산업과 전통적인 산업들 사이의 양극화도 날로 깊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농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정부측 주장을 들으면 너무 한심해서, 듣다가 책상을 내리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정부는 한미FTA로 인한 우리 농업의 생산 저하가 5%밖에 안된다고 해요. 하지만 실제로는 농업생산 피해액이 최대 8조 8천억에 이를 것입니다. 현재 농업생산 36조 중에서 8조 8천억이면 24%를 넘는 비율인데요. 우리 농민들이 지게에 짐을 가볍게 지고 팔팔하게 걸어갈 때라면 원래 짐의 24%를 더 얹어도 무리 없이 갈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지금 농민들이 일어나지도 못해서 발발발 떨고 있는데, 짐을 덜어주기는커녕 거기다가 바윗덩어리를 하나 더 얹어보세요. 그대로 쫙 뻗어버리지요. 이미 800~900만에 이른 비정규직이 더욱 늘어날 테고, 350만 농민들은 다시는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무너져내릴 것입니다. 서민들의 가계는 어느 정도 악화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빈사상태로 갈 것이고, 농업은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석훈 경제학 원론에서는, 시장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할 때 ‘사회통합성’을 이야기합니다. 서로 분업을 해서 살 때, 모두에게 시장은 필요한 거니까, 이것이 사회를 통합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시장이 좋은 것이다, 라고 하는데요. 한미FTA에서 경제학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 중 첫번째가 단순히 돈을 얼마나 많이 벌 거냐 덜 벌 거냐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이 사회통합성을 얼마나 좋게 할 거냐, 아니면 악화시킬 거냐 하는 거라고 봅니다. 농민, 특히 소농과 자영업자들, 월급이 얼마 안되는 사람들, 무주택자들한테는 한미FTA가 사회통합성을 엄청나게 떨어뜨리는 영향을 미칠 겁니다. 실제로 이 정도가 되면 이 사회에서 사람들이 굳이 같이 살 필요가 없는 거 아니에요?
누가 이익을 보나
김종철 한미FTA가 한국의 기업들에게는 과연 이익이 될까요?
이해영 삼성, 현대, LG, SK 같은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분명히 어느 정도 이익을 볼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그런데 좀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 같은 경우에 미국 현지 생산을 이미 하고 있고 앞으로도 현지 생산량을 더 늘리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의 대미수출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그런데 미국에서 생산한 현대차는 미국차냐 한국차냐 하는 복잡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나라 수출 품목 가운데 중요한 것이 IT 아닙니까. 그런데 한국경제를 주도한다는 IT산업은 다른 제조업하고 비교해볼 때 고용유발 효과나 생산유발 효과가 가장 낮아요. 이것은 IT산업의 특성입니다. 그러니까 IT가 주도하는 경제로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요.
그 다음에 섬유·의류 같은 걸 보더라도, 섬유?의류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한미FTA 되면 우리는 이익을 본다, 그런데 왜 자꾸 반대하냐”고 합니다. 자신들에게는 좋은 거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찬성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요. 그런데 미국에는 ‘얀포워드’ 규정이라는 게 있습니다. 원사(原絲)의 국적을 따져 섬유의 국적을 규정하는 원칙인데요. 그 기준에 따라 관세를 줄이거나 없애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폴리에스테르 제품들은 거의 다 중국에서 가져오는 원사를 쓰는데 그런 섬유나 의류는 ‘메이드 인 코리아’로 인정을 못 받습니다. 한미FTA가 체결되어도 관세를 인하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나일론 같은 고급 소재는 대부분 국내에서 만든다고 해요. 물론 이런 경우는 ‘메이드 인 코리아’가 되는 거죠. 이런 경우 한미FTA를 하게 되면 원산지 증명을 받을 수 있고, 그럴 경우 최고 40%까지 되어있는 관세가 줄어들기 때문에 상당한 가격변동이 생기는 거죠. 그런 것은 혜택이라고 해도 될 겁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한미FTA를 통해 관세가 철폐되거나 하더라도 무역을 통해 직접적으로 이익을 얻을 것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실제로 기업들은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기업들이 얻는 이익은 다른 데 있어요. 한미FTA 결과, 국내 경쟁이 격화되고 각종 규제가 철폐됨으로써, 구조조정을 통한 비용절감 효과가 오히려 더 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실제로 노동자들 잘라내고 인건비 줄여서 남는 이익이 관세 줄여서 무역으로 얻는 이익보다 더 크다는 거죠.
김종철 그러니까, 결국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노동자 농민들을 비롯해서 대다수가 피해를 보게 되는군요. 그런 점에서 생각해볼 때, 양극화란 말도 맞지 않는 것 같아요.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서민들의 무산자화(無産者化)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해영 일리가 있습니다. 양극화라고 하면, 마치 50 대 50으로 나누어지는 것처럼 보이니까요.(웃음)
우석훈 중남미 국가들에서는 ‘사회 해체’라는 말을 쓰는데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멕시코시티 같은 데 가보면 서민들의 삶이 전반적으로 그냥 무너지는데, 이것은 양극화도 아니다, 사회의 총체적 해체라고 봐야 한다는 거지요.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까지 큰 변화가 있을지, 아니면 우리가 혹시라도 모르는 어떤 제어장치랄까 안전장치 같은 것이 가동될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사회 해체의 위험성은 매우 크다고 봅니다.
이해영 양극화라는 말에 문제가 있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지금 얘기하고 있는 한미FTA와도 관계없이 우리사회의 양극화는 이미 심각한 문제입니다. DJ 정권 이후 지금까지 신자유주의 10년이 경과하는 동안, 특히 최근 뚜렷이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통계적으로 사회 평균소득의 50% 미만을 극빈층으로 잡지 않습니까. 그런데 최근 가장 두드러진 현상이 뭐냐 하면 중간 하층, 즉 중간층도 상중하가 있다면 그중 하층이 주저앉으면서 극빈층으로 편입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중간 최상층 일부가 상층으로 올라가는 그런 경향을 볼 수 있는데요. 그런데 중간 하층이 주로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에요. 극빈층 바로 위에 있는 도시 자영업자들, 즉 이미 구조조정을 당해 구멍가게 운영하다가 이마트 같은 대형할인매장 들어오면서 파산한 사람들, 동네에서 치킨집 열고 변두리에서 당구장, 미장원, 만화가게, 비디오 대여점 같은 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상당수가 무너져서 극빈층으로 편입되고 있는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런 서비스 업종들도 한미FTA로 대부분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면 더 빠르고 더 큰 규모로 중간 하층은 주저앉을 거라고 봅니다. 이미 나타나고 있는 이런 경향성이 한미FTA로 인해 더욱 가속화, 심화될 거라는 얘기지요.
우석훈 유사한 형태가 멕시코에도 있지만, 캐나다에서도 비슷하게 움직이는 것 같아요. 멕시코가 좀 규모가 크고, 캐나다가 상대적으로 좀 작은 편인데요. 그런데 도시 자영업자들과 농민들이 붕괴하는 것은 나프타 국가들이 다 겪는 현실인데, 그럼 미국은 좋아졌느냐. 미국도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미국형 FTA는 서민들은 어디에서도 이득을 보는 게 없는 이상한 협정입니다.
이해영 예를 들어 미국 농업 같은 경우도, 중소농이 붕괴되고 부농과 농기업들은 정부의 보조금이나 각종 특혜로 중소농을 잡아먹으면서 더 커졌습니다. 카길 같은 메이저 곡물회사가 대표적이지요. 다시 말해, 상대방 국가가 피해를 입으면 미국 농민들의 몫이 더 커져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미국에서도 오히려 양극화는 더 심해졌습니다. FTA 수혜 계층과 피해 계층이 뚜렷이 양극화되고,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있는 초국적 곡물기업 같은 것만 엄청나게 돈을 법니다. 요컨대 FTA나 WTO체제의 최대 수혜자는 초국적 금융자본, 초국적 기업들입니다. 곡물이든 에너지든 제조업이든. 이런 기업들은 분명히 FTA를 통한 추가적인 초과이윤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강기갑 지난번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서부항만노조 위원장을 만났는데요. 그 쪽은 조직적으로 한미FTA 반대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 얘기가 나프타 체결 후에 처음에는 멕시코와 교역이 활발하게 일어났는데, 10년이 지나고 멕시코 산업이 몰락해버리니까 교역이 없는 거예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에는 결국 자기들도 이게 죽는 길이라는 겁니다.
미국 하원의원 데니스 쿠치니치(민주당, 오하이오주)도 만났는데, 다수 민중들의 삶을 어렵게 하는 이런 FTA는 우리 민중들이 일어나서 막아야 된다고 기자회견장에서 일장연설을 합디다. 또 미국의 소농, 가족농들도 우리하고 같이 연대해서 투쟁을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소농, 가족농들은 특히 농업은 생명산업으로 상생관계에 기반해야 하는데, 미국의 상업농 체제는 결국 농업의 기반을 근본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이런 식으로 갈수록 부농, 기업농 중심의 정책을 펴는 것은 소농들을 전부 소외시키고 말살하기 때문에 자기들도 한미FTA를 반대한다고 하더군요.
우석훈 한미FTA 문제가 어려운 게 뭐냐 하면, 누가 돈을 버는지 손을 들어보라 하면, 돈을 누가 버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만약 어느 기업이 그 덕분에 돈을 번다 하면, 그 기업이나 제품에 세금을 붙이면 되잖아요. 수출할 때마다 이익의 일부를 조금씩 떼서 피해를 입는 농민이나 도시 자영업자들을 지원하면 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누가 이익을 보는지 정부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는 거거든요. 도대체 돈을 버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 사람이나 기업을 찾아야 세금으로든 어떻게든 받을 수가 있는데, 그게 안 보이니까 소위 국내 협상이 지금 안되고 있는 겁니다.
이해영 지난 2000년에 국제적으로 굉장한 논란을 일으켰던 세계은행 보고서가 있습니다. 뭐냐 하면, 지난 90년대 빈곤의 세계화, 즉 세계화가 될수록 양극화가 심화되고 빈곤한 사람들이 더욱 빈곤해진다는 명제에 반박하기 위해 세계은행의 경제학자들이 조사 연구한 결과를 발표한 것인데요. 그 내용은 한마디로 경제의 세계화가 진척되면 될수록, 다시 말해 경제를 개방하면 할수록 가난한 사람들의 형편이 더욱 좋아진다, 하는 거였습니다. 국제적으로 격렬한 논쟁이 붙었던 사안인데요.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반발이 대단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로 양극화를 해소하겠다 했을 때, 그리고 ‘좌파 신자유주의’니 ‘친미 자주’니 하는 말을 했을 때, 농담도 좀 심하다 싶었는데요. 그 뒤에 자료들을 좀 추적하다 보니 바로 그 세계은행의 2000년 보고서를 누군가 재탕해 가지고 대통령에게 보고한 모양이에요. 거기에 바탕을 두고, 한미FTA 타결하고 개방하면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이 말도 안되는 논리를 개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기갑 한국의 기업이 설령 FTA로 돈을 번다고 하더라도 지금 우리 주식시장에서 10대 재벌 주식의 거의 절반을 외국자본들이 다 쥐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절반이 빠져나가 버리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전체 노동자들의 80%를 고용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노 대통령이 그런 현실을 좀 제대로 봐야 할 텐데요.
이해영 작년에 말입니다. 삼성이 7조의 순이익을 남겼거든요. 삼성의 한해 인건비가 4조 8천억인가 된답니다. 그런데 순이익 7조 중 4조를 가지고 뭘 했냐면, 삼성이 자사주 매입을 했어요. 삼성이 주식시장에서 삼성 주를 사는 거예요. 그러고는 매입한 자사주 4조원어치를 불태워버린 거죠. 거의 매년 그렇게 합니다. 1조, 2조씩. 그러니까 작년 규모가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냐면 일단 경영권 방어라는 문제도 있겠고, 동시에 주식 수를 줄이는 거죠. 그래야 주가가 오르니까. 배당금을 타내는 주주 입장에서는 삼성이 고용을 하건 말건, 재투자를 하건 말건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우선은 배당금이 문제입니다. 그러고 다음에 기업이 잘되면 물론 좋겠지만. 이렇게 접근하는 게 ‘주주가치 극대화’ 아닙니까.
현재 우리나라 은행의 경우에도 은행주식의 63%가 외국인 소유거든요. IMF 이후 10년 동안 분명히 은행의 수익성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수익이 누구한테 가냐는 거죠. 결국 63%는 외국인 투자자한테 갑니다. 그중 절반이 미국인들입니다. 지금 주가 총액의 40%로 잡는데, 그 외국인 주식 중 절반이 미국인 거예요. 미국 투자회사 거죠. 그렇기 때문에 ‘투자’가 갈수록 더 중요해지는 겁니다. 한미FTA에서도 외국인 투자가 들어오고 한다 하더라도, 투자조항에 들어있는 각종 독소조항들을 이용해서, 론스타의 사례가 보여준 것처럼 어떻게 하든 빨리 벌어서 나가려고 합니다. 그들이 왜 여기 와서 공장을 세우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번거로운 짓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설사 한다고 하더라도 알짜배기 몇개, 그것도 인수합병(M&A) 형식으로 들어와서는 가치가 오르면 이익을 챙겨서 얼른 튀는 거지요.
한미FTA와 서민들의 가계부
김종철 그런데 얼마 전에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어떤 조사를 보니까 한미FTA를 조급히 체결하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하면서도, 일단 이 협정이 타결되었을 경우 주로 소비자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 다수가 일자리를 잃거나 극빈층으로 떨어질 판에 무슨 소비자의 이익 운운하는 한가로운 소리를 하는지,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해영 정부측 주장이 그렇습니다. 그래도 한미FTA를 하면 소비자들은 이익을 본다,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다, 그래서 다른 논리는 다 양보해도 소비자한테 이익이 된다는 논리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반적인 가계지출 명세를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우석훈 박사가 쓴 책《한미FTA 폭주를 멈춰라》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한미FTA 반대론을 펼 때에는 주로 거시경제로 접근했는데요. 그러다 보니 미시적인 분야가 빠져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 우 박사의 책은 이 문제에 대한 좀더 미시적인 접근을 할 수 있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저는 봅니다.
아무튼 정부가 주장하는 ‘소비자 이익론’에 대해 살펴보려면 먼저 일반적인 가계지출 명세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식품비, 그러니까 쌀, 고기, 반찬, 그런 데 돈이 듭니다. 그 다음에 전기, 수도, 가스, 교통비 같은 지출항목이 있고요. 그 다음에 의료비, 교육비가 있을 거고, 문화·여가비…대충 이 정도로 구성될 것 같은데요.
그렇게 본다면 그중에서 특히 식품비 같은 경우에는 명백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26%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그것도 계속 떨어지고 있고, 쌀을 빼버리면 또 5%밖에 자급이 안됩니다. 이건 정말 이미 심각한 상황인데요. 그런데 한미FTA가 체결되면 쌀, 고기, 반찬 가격이 어떻게 될 거냐 하는 문제. 그 다음에 전기, 수도, 가스비가 오를 거냐 어떻게 될 거냐, 하는 문제. 그 다음에 교통비가 오를 거냐, 교통비 중에는 특히 기름값, 버스, 전철 요금, 이런 게 있겠지요.
먼저, 무엇보다 의료비, 교육비가 우리한테 가장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서민들 가계에서 가장 많이 깨지는 게 바로 의료비와 교육비 쪽인데요. 지난번 1차 협상 때에는 미국이 한국의 교육시장에는 관심이 없다고 얘기를 했다가, 2차 때 오자마자 SAT(Scholastic Aptitude Test,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유사한 미국의 표준화된 시험)를 끄집어내지 않았습니까. 거짓말한 셈이죠. 그 다음에, 지금 정부 쪽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이 학교와 병원을 영리법인으로 바꾸는 것, 그것을 위해 지금 끊임없이 잔머리를 굴리고 있지 않습니까. 병원은 이미 전국적으로 영리법인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지요.
치과의사 한분이 그러는데, 아이들 충치 한개 치료에 2만원이 든답니다. 아이들이 충치가 보통 한 10개까지 생기는데, 그러면 치료비가 20만원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 가운데 건강보험에서 커버해주는 게 15만원, 그래서 본인 부담금이 5만원이라는 거죠. 하지만, 경제자유구역에서 치료했을 때에는 보험수가가 그 8배래요. 충치 한개 치료에 16만원이라는 거죠. 그래서 만약 충치가 10개 생기면 160만원이 든다는 겁니다. 정부가 이야기하는 질 높은 의료서비스라는 게 사실은 이런 겁니다. 경제자유구역 내의 외국인 병원에 한해서 영리병원으로 이미 바꿨고, 앞으로는 전국적으로 이것을 다 적용하겠다는 이야긴데, 이렇게 5만원 대 160만원의 차이가 보여주는 것처럼,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으려면 환자의 본인 부담이 엄청나게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외국인 치과의사가 직접 와서 치료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외국인이 한국에 병원을 설립하든지, 아니면 있는 병원을 인수합병해서 운영하게 되는 것인데요. 즉 의사는 바로 그 의사인데, 병원 이름만 바뀌는 셈이지요.
가령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 NYP(New York Presbyterian) 병원이 들어오는데, 병상이 600개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병실이 모두 초호화판 1인 병실이라고 하는군요. 말하자면 이런 식으로 ‘질’은 분명히 좋아지는 거고, 그런 점에서 소비자한테 ‘엄청난 이익’이 되는 거겠지요. 단, 돈이 충분히 있는 소비자에게 말입니다.
보건의료단체 계산으로는 한미FTA 협상과정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것들을 다 들어줄 경우, 10년 동안 8조 가량의 추가 약제비 부담이 소비자한테 돌아갈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약값은 미국이 요구하는 A7 수준에서 맞출 경우에 200% 이상 인상됩니다. 지금 우리가 약을 싸게 먹는 거잖아요. 그중에는 복사약도 많고요. 약효는 물론 오리지널 약이나 복사약이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한미FTA가 체결되면 200% 인상된 값으로 약을 사 먹어야 합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소비자한테 이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교육비도 마찬가집니다. 지금 대학경쟁력 강화라고 해서, 외국대학 분교를 유치하려고 난리인데요. 만에 하나 한국에 들어오는 분교는 영어하고 교양만 가르쳐요. 다 들어오는 게 아니고. 그래서 전공은 본국에 와서 배워라, 하는 겁니다. 가만히 따져보면 그렇게 하면 유학이 줄어들겠습니까? 안 줄어듭니다. 교양하고 영어만 배워서는 우리사회에서 못 써먹습니다. 본교 졸업장이 있어야 ‘학벌사회’에서 내세울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 외국대학 분교 설립이 해외유학을 감소시키는 요인이 전혀 안됩니다. 오히려 해외 유명 대학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하는 공급라인 이 되는 거죠.
그리고, 우리나라 GDP 규모가 미국의 절반밖에 안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의 현재 입학금이 400~500만원씩입니다. 의대 같은 데는 1,000만원, 또 로스쿨의 한 학기 적정 수업료를 1,200만원으로 잡는데요. GDP가 우리나라의 두배인 미국과 비교를 해보면, 결국 우리나라 대학들의 등록금이 미국 수준만큼 가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미국 대학들의 등록금이 비싼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입니다.
그 다음에 전기 가스 수도 요금, 지금 안 그래도 오르고 있거든요. 특히 예를 들어 한국전력, 지금 분할 매각하려다가 안 팔려서 주식 상장한다는 거 아닙니까. 외국인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끔 말이지요. 옛날에는 팔아치우려고 했는데 안되니까 차라리 주식 상장해서 지분을 매입해라 하는 겁니다. 그럼 외국인 투자자가 살 경우에, 그래서 한전의 외국인 지분이 늘어날 경우에, 그 사람들이 전기요금을 낮추거나 그대로 두겠습니까? 공공요금도 아닌데. 제가 보기엔 안 그럴 것 같습니다.
수도도 마찬가지예요. ‘물산업 육성방안’이란 것을 정부가 만들어서, 지자체들마다 민간 컨소시엄에 위탁경영을 맡기든지 하고 있거든요. 컨소시엄 만들어서 같이 경쟁하자, 이 얘기거든요. 그게 바로 공공부문 민영화고 시장화죠. 가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쪼개서 팔든지, 안 팔리면 주식 상장하든지. KT&G를 보세요. 외국인 지분이 80%인가 그렇습니다. 미국의 대표적 ‘기업 사냥꾼’인 칼 아이칸이라는 사람이 지금 최고 주주 아닙니까. 이미 KT&G는 외국인에게 넘어갔다고 봐야 돼요.
이런 식으로 갈 경우에 도대체 문화와 여가, 오락의 여지가 있을까요? 물론 한미FTA 체결 후 외국의 좋은 공연들이 더 많이 들어온다거나 하는 ‘혜택’은 있을 겁니다. 지금 서민들의 문화생활, 여가생활과 관련해서 대표적인 게 영화인데요. 작년에 한국영화를 헐리우드에 230만 달러어치 수출했어요. 그런데 미국영화 수입을 5,300만 달러어치 했습니다. 그런데 외국영화 수입할 때에는 로얄티 문제가 있고 해서, 수입가격과 상영한 다음 실질적으로 미국에 건너간 돈 액수가 다릅니다. 로얄티가 50% 들어가 있기 때문에 구조가 좀 복잡한데요. 아무튼 실질적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돈은 1억 달러입니다. 작년 한해만. 우리가 230만 달러 수출하는 사이에 말이지요. 거기다 이제 스크린쿼터 축소되었으니 문제는 더욱 심각합니다. 한국영화가 주저앉으면 영화 관람비는 당연히 올라갑니다. 왜냐하면 미국이 시장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만에 하나 소송이 벌어져서 법률 서비스를 받을 때―법률 서비스 시장을 개방 하나 안하나 하더니 지금은 유보했다고 그러는데요. 어쨌든 변호사 수임료는 계속 올라가고 있거든요. 만약 미국 변호사들이 들어와서 한국의 법무법인들을 인수합병해 버리면, 제가 보기에 변호사 수임료는 당장이라도 미국 수준으로 올라갈 거라고 봅니다.
서민 가계의 지출항목을 놓고 따져보더라도, 도대체 소비자가 이익을 볼 게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령 한미FTA 덕분에 미국산 크래커라든지 땅콩버터 같은 것은 좀 싸게 먹을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그리고 콘푸레이크, 미국산 오렌지도…(웃음)
김종철 의료비가 올라가면, 건강보험 제도도 결국 언젠가는 무너지겠지요.
이해영 문제는 정부가 말하는 경쟁의 도입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경제자유구역 내 병원이라도 우리 건강보험증을 받겠죠. 그러다 미국계 사보험을 동시에 접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국민건강보험과 민간사보험이 이렇게 서로 경쟁(!)하게 된다는 거죠. 살아남기 위해서 대형병원이 서비스를 고급화하고, 부유층 의료서비스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판촉을 강화하게 될 겁니다. 예를 들어 지금 신라호텔에 들어오는 부티크 개념의 의료시설들을 연상하시면 될 겁니다. 또 사보험의 보장범위가 확대되고 이에 맞추어 국민건강보험 역시 그 추세로 가겠지만, 의료비 인상압박 때문에 고급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의료서비스의 양극화가 초래될 것입니다. 건강보험은 ‘질 낮은’ 대중서비스로, 미국계 사보험은 고급서비스로 말이죠. 이런 방식으로 의료시스템이 무너져 가는 것이죠. 복지?의료서비스에 관한 한 미국은 2류 국가입니다. 공공서비스의 민영화, 즉 사유화가 미국의 전략 아닙니까. 결과적으로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셈이죠.
강기갑 우리나라 의료보험 가입자 중 20%의 고소득 가입자가 50%의 보험료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민간보험이 도입되고 양질의 고액 의료시설이 들어오면 고소득자들이 빠져나가면서 나머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늘어나고, 결국은 국민건강보험은 무너질 수밖에 없지요.
김종철 제가 들고 있는 이 책, 미국에서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논픽션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책인데요. 미국의 의료현실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 책을 읽어보니까 정말 충격적이더군요. 미국에서는 고령자와 극빈자를 제외하고는 의료보험이 모두 민간보험인데, 이 보험료가 우리 돈으로 환산해서 보통 한달에 50~100만원이나 된다고 해요. 그러니 지금 4,000만명이 넘는 미국 시민들이 비싼 보험료를 내지 못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요. 그래서 어떤 일이 있느냐 하면, 예를 들어 치아나 잇몸이 상해서 치과를 가려고 해도 너무 비싸니까 가지 못하고, 통증을 참다 참다가 집에서 뻰치를 가지고 자기 이빨을 빼는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소위 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이라는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어요. 미국이 그런 나라라는 걸 한국 사람들이 좀 정확히 알 필요가 있어요. 맹장염 수술 같은 것도 수술비가 우리 돈으로 1,000만원이 든다고 하는 나라입니다. 돈 없는 사람에게는 미국은 지옥인 것 같아요.
강기갑 진보정치연구소 장상환 교수가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안식년에 미국 가 계시다가 이를 하나 해 넣었는데 900만원인가가 들었다고 합니다. 차라리 비행기 타고 와서 한국에서 하는 게 낫겠더라고.(웃음)
이해영 그리고 미국의 보험회사는 항상 병원하고 같이 세트로 움직이잖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미국의 AIG 생명보험이 들어와서 우리나라에서 건강보험 서비스를 시작하면 병원을 인수합병하든지 해서, 자기 병원을 가질 겁니다. 전국적으로 AIG 병원이 생기는 거죠. 아니면 프랜차이즈 계약을 하든지. 어쨌든 AIG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그 병원에 가면, 질 높은 고급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겠지요. 분명히 차별화된.
시장과 국가, 민주주의
(하략)
이 좌담은 지난 8월 18일《녹색평론》자료실에서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