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사회처럼 ‘선진국’이 되고자 하는 맹목적 열망에 들떠있는 사회가 있을까. 물론 선진적 사회에서 사는 것은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선진국이며, 선진적 사회인가. 그러나 지금 우리들의 지적, 정신적 풍토에서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토의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지 모른다.
한국의 국가경쟁력이 세계 11위로 평가되었다는 뉴스가 보도되고 있지만, 어디서 누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어떤 척도와 근거에서 국가경쟁력이라는 순위를 매겼는지, 그리고 소위 국가경쟁력이라는 것이 과연 성립 가능한 개념이기나 한지, 그리고 설령 그런 개념을 용납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사람들의 삶에 어떤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이런 것에 대한 의문이 당연히 있을 법도 하건만, 모두들 어느새 우리들도 선진국 국민이 된다는 데에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성가신 질문으로 사회적 고립을 자초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한국사회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의 하나는 근본적인 질문의 부재 혹은 회피에 있는지도 모르고, 여기에서 오늘의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생태적 위기가 비롯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거 정국에서 우리들의 개인적, 집단적 욕망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대의제 민주주의 제도 밑에서 정기적으로 시행되는 선거란 유권자들의 가장 상투적인 욕망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그러한 욕망의 의미와 성격에 대해서 근원적인 물음을 제기한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 한국의 선거판에서 경제성장의 계속적인 추구가 가져올 궁극적인 파국을 환기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가능성이 단 1%라도 있을 수 있을까. 대통령 선거든, 지방의회 의원 선거든, 모든 입후보자의 가장 전형적인 약속은 언제나 높은 경제성장과 소득의 증대이다. 이것은 독재체제와 민주체제를 불문하고 수십년에 걸쳐 뿌리깊이 굳어진 관행이 되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경제성장은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그런 경우 선진국이란, 간단히 말해서, 돈이 많고 힘이 센 나라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한국에서는 단순한 스포츠에 관련해서도 국익과 국운이 운위되기 일쑤다. 이른바 ‘붉은 악마’ 현상을 두고도 국운을 운위하고 민족의 웅비를 말하는 지식인들이 있었고, 거기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자신이 태어나, 자라고, 살아온 땅과 사람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애정이나 충성심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오늘날의 한국사회에 팽배해 있는 자기확대의 욕망을 떠나서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통일문제에 관련해서도 사정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언젠가 나는 한 일간신문 논설위원이 최근의 젊은 세대들 사이에 통일에 대한 의지가 약한 것을 개탄하면서,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역설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통일을 해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반쪽으로는 민족이 웅비할 수 없다. 지금 남쪽에서 분출하고 있는 민족 에너지가 분단 상태로는 계속해서 뻗어 나갈 수가 없는” 때문이라는 것이었다.(〈내일신문〉2005년 11월 30일자 “‘통일회의론’을 경계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대체 ‘웅비’라는 게 무엇을 뜻하며, 왜 우리가 ‘웅비’를 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웅비’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고, 또 당연히 ‘웅비’를 꿈꾸고 있다는 생각이 아무런 의심 없이 전제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한 전제가 가능한 것은 이 칼럼의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의 한국은 제어하기 어려운 ‘민족적 에너지’가 ‘분출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 칼럼의 필자뿐만 아니라 오늘날 많은 한국인들이 느끼는 공통한 체험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지금 한국사회에서 넘쳐흐르는 어떤 집단적 에너지라는 게 있다면, 그것은 “오랜 가난과 삶의 후진성에 치가 떨리는” 경험을 해온 사람들의 기억과 분리해서 설명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리하여, 지난 수십년간 고도의 경제성장과 산업화를 통해서 ‘가난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만간 선진국으로도 도약할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기만족적인 심리로 한국사회는 지금 한껏 자신감에 차있는―혹은 그 반대로 행여 선진국으로의 진입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차있는―사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껏 이룬 경제적 성취가 계속해서 증대되지는 못할망정 절대로 축소되어서는 안된다는 대명제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암묵 중에 당연지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루하루의 생계에 골몰해 있는 소위 서민들의 일상적인 의식에서만 발견되는 현상이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정신적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 지식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예술가나 문인들의 경우에도 많은 경우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그러한 사람들의 공개적인 발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의 하나는 예컨대 작가 이청준의 발언일 것이다. 그는 연전에 어느 일간신문에 기고한 글〈어떤 나라를 물려줄 것인가〉에서, 지난 수십년간 고심참담 끝에 이룩한 한국의 ‘국부(國富)’가 현 정권의 소위 개혁정책의 실패로 인하여 “더이상 나눌 것이 없는 상태로 이어지는” 불행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고 있었다.(〈조선일보〉2005년 11월 2일자) 그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명심해야 할 것은 지금의 우리 경제력이 어제 오늘 이 세대가 이룬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일찍부터 값싼 섬유제품과 신발류 등속으로 출혈 수출을 시작한 소기업부터 북태평양 얼음바다로 원양어선 타고 나간 우리 어업인들과, 사막의 모랫바람을 몇해씩 견디고 돌아온 중동 건설근로자들과, 심지어 용병 소리까지 감수해야 했던 월남 참전용사들의 피와 땀이 기틀을 마련해준 덕이다. 오늘 지구촌 곳곳의 시장을 누비게 된 전자제품, 자동차, 조선해운업의 발전도 이역만리 독일에서 파견 광원들과 간호사와 이 나라 대통령이 함께 애국가를 부르며 눈물 속에 다짐했다는 서러운 결의와 종잣돈이 주춧돌을 놓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위에서 열거된 지난 세대의 일들 가운데, 그 경제력의 신장 과정에서 자행된 인권유린도, 농민 공동체의 해체도, 도시 변두리의 판자촌과 창녀촌도, 전태일의 죽음도,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자연 훼손도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균형감각의 결핍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비슷한 사정은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경우에도 발견할 수 있다.《문학과사회》2005년 겨울호에 발표된 글〈안개 속의 길―친일문제에 관한 소견〉에서 그는 “좋든 궂든 1970년대 이후 30년간은 비록 한반도의 반토막 지역에서나마 주민들이 중국 대륙의 핵심부보다 덜 열악한 생활을 영위하였던 역사상 거의 유일한 시기였다”고 규정하면서, “그러한 시기에 물질적 토대를 구축한 유공자를 그 기반에 의존해서 호의호식하는 사람들이 전면 비방하는 것의 타당성과 정당성은 다시 후대의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아마도 여기서 ‘유공자’라는 것은 박정희를 일컫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까, 평론가 유종호의 이 발언에는 친일문제 처리를 비롯한 과거사 청산 작업이 잘못하면 은혜를 원수로 갚는 파렴치한 행위가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관점은 다른 곳에서도 비교적 솔직하게 개진되고 있다. 2004년 12월 20일자〈중앙일보〉에 게재된 한완상과의 송년대담에서도 유종호는, 오늘날 한국의 소위 진보세력이 ‘냉전수구세력’이라고 폄하하고 있는 그 “사람들은 나라를 지키고 가난을 몰아낸 공적이 있”다는 소신을 피력하였다.
나는 물론 이러한 발언에 내포되어 있는 것과 같은 우파적 소신에 공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입장을 배격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정치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내게 몹시 흥미로운 것은 적어도 40년 넘게 오로지 문학활동에 생애를 바쳐온, 사실상 오늘날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두 원로 문인의 사회적 발언이 드러내는 관심의 흡사함이다. 나로서는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마저 너무도 닮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즉, 평론가 유종호가 “철저하게 실용주의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가난해지는 일이 있어선 안됩니다. 저는 빈곤에 대해 전쟁과 비슷한 정도의 공포감을 갖고 있습니다. 지도자들은 명분보다 실용주의 노선으로 무장해 한국을 불황에서 건져야 합니다”라고 말할 때와 비슷한 어조로, 작가 이청준은 “오랜 가난과 삶의 후진성에” 치가 떨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특히 이러한 문인들의 발언에 주목하는 것은 이들이 단순한 세속적인 삶에 부대끼거나 매달려서 속물적 삶을 강요당해온 사람들이 아니라, 적어도 이 사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정신적 가치를 오랜 세월 일관되게 추구해온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경제성장과 산업화의 성취를 한국인의 삶과 문화의 성숙을 위한 필수적인 전제로 이해하고 있는 그들의 시각은 실은 예외적인 것이라기보다 아마도 오늘날 한국의 대부분의 지식인들에게 공통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것은 심히 서글픈 현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문학이나 예술의 입장에서라면 지금 경제 제일주의와 권력욕망을 중심으로 미쳐 돌아가면서 온갖 인간적 가치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적 현실의 근본적인 모순과 어둠을 응시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배태하고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는 논리의 원점이 이른바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이라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에 있다고 한다면, 문학이나 예술이 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그러한 합의가 과연 타당한 근거 위에 기초하고 있는 것인지, 혹시 그것이 상투적인 사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근본적인 각도에서 철저하게 물어보는 일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함으로써 소비주의 문화와 사회적 격차와 인간성의 마멸을 끝없이 구조적으로 확대재생산하는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파괴적인 시대”(웬델 베리) 상황에서 아직도 인간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증언해야 하는 게 문학과 예술의 소임(所任)이 아닌가.
하기는 오늘날 문학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지적, 문화적, 정신적 활동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과 도전이기를 멈춘 지는 오래되었다. 최근 한국문단에는 일본인 지식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를 둘러싸고 분분한 의론(議論)들이 개진되고 있지만, 여기에서도 우리가 보는 것은 참된 의미의 비판적 정신의 빈곤이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현실인식이라기보다 한 개인의 편견이나 잘못된 사태파악에 근거한 한갓 단순한 주장일 수도 있다. 더욱이 그가 ‘근대문학의 종언’을 확실히 실감한 것은 한국에서였다고 말했기 때문에 그의 논리의 신빙성이 한국의 어떤 논평가들 사이에서 의심을 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왜냐하면 지금 한국에서처럼 문학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는 데도 사실 드물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입각한다면, ‘근대문학의 종언’은 궤변에 불과한 말이라고 생각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피상적인 사실인식에서 오류가 있는지 모르지만,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고자 한 것은 문학시장의 활황(活況) 여부가 아니라, 전통적으로 ‘저항의 언어’로서 문학이 행사해왔던 근원적인 체제 비판 기능의 약화 내지 쇠퇴현상이라는 좀더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가령 “근대문학의 종언은 공산주의 운동의 몰락과 함께 시작되었다”라든지, “일본에서 근대문학은 입신출세주의와의 투쟁 속에서 성장해왔다”라고 하는 그의 직접적인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또한 그가 인도의 작가 아룬다티 로이를 정통적인 의미의 문학행위를 계승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람으로 꼽고 있는 것을 볼 때에도 확실히 드러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아룬다티 로이는《작은 것들의 神》이라는 처녀작으로 일약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작가이지만, 인도국가의 소위 엘리트들의 기대에 반하여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것을 그만두고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의 탐욕성과 파괴성,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대한 야만적 침략, 인도국가에 의한 핵개발이나 경제개발 논리에 내재되어 있는 근본적인 반민중성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급진적인 정치적 논평을 두려움 없이 발표해왔던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가라타니 고진이 왜 아룬다티 로이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를 들어서 ‘근대문학의 종언’을 말하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그가 말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단순히 문학다운 문학이 끝나가고 있다는 얘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탁류 속에서 “또다른 세계는 불가능하다”라는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 대항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 체제에 길들여져 상업적 성공을 추구하거나 체념이나 좌절 속에 빠져 있거나 혹은 갖가지 지적 곡예를 ‘혁명적 행동’으로 착각하고 있는 오늘날 세계적으로 만연한 지식세계의 사상적, 정신적 침체상황을 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언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단지 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문학을 주목하는 것은 종래에 그나마도 문학이 체제 비판 기능을 가장 충실히 해왔다는 일반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적어도 한국의 경우, 문학이라고 해서 과연 ‘근대적’ 체제에 대한 철저한 비판의 전통을 형성해왔다고 판단할 근거가 충분한지 의심스럽다. 물론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만해 한용운이 일찍이《님의 침묵》에서,
아아 왼갖 倫理, 道德, 法律은 칼과 黃金을 祭祀지내는 烟氣인 줄을 알었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人間歷史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서릴 때에 당신을 보았읍니다. (〈당신을 보았습니다〉)
라고 했을 때, 이것은 단순히 식민지라는 특수한 한 시대의 절망적인 어둠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용운의 시가 언급하는 것은 좀더 근원적으로, “民籍이 없는 者는 人權이 없다”는 단죄와 더불어 국가권력과 자본의 필요에 따라서 언제든지 개인의 기본적인 권리가 쉽사리 박탈당할 수 있는 상황, 즉 근대국가 체제 하의 보편적인 인간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갈수록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는 추세 속에서 불법 이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나, 관타나모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소위 테러 용의자들의 상황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나아가서 우리는 경제개발이나 산업 및 군사시설 때문에 자신의 삶터에서 쫓겨난 무수한 사람들의 운명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근대국가가 성립된 이래 풀뿌리 민중의 생존은 어디서든 본질적으로 난민(難民)의 상황으로 점철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 선포된 이래 세계의 어느 곳에서든 어떤 나라 사람이든 미국의 안전에 위협적인 존재라는 혐의만으로 체포되고, 재판 없이 구금될 수 있게 된 지금과 같이 노골적인 제국주의적 억압의 상황에서는 한용운의 시는 그의 시대를 뛰어넘어 더욱 절실한 보편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근대’의 본질에 대한 한용운의 이러한 근원적 인식이 식민지, 해방, 전쟁, 냉전시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시기를 통해서 나중의 한국문학이나 사상적 노력들 속에서 지속적으로 계승되어왔다고 말하기는 역시 어려운 것 같다. 아니, 오히려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좀더 다급하고 중요했던 것은 ‘근대’ 자체의 의미를 묻는 것이 아니라, 하루빨리 근대를 성취해야 한다는 욕구였는지 모른다. 물론 근년에 와서 ‘근대적응과 근대극복’의 동시적 수행이라는 명제를 내걸고 활동해온 지식인 그룹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명제가 단순히 그럴듯한 슬로건의 수준을 넘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그다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한국의 근현대 사상의 흐름에서 대세를 형성해온 것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서구적 근대의 제도와 가치와 관행을 하루빨리 도입, 정착시켜야 한다는 생각이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아무리 박정희 시대의 정치적인 억압과 인권유린 사태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일지라도 그 시대가 이루어놓은 경제적 업적과 이를 통한 근대화의 성취에 대해서는―그것이 본질적으로 지속불가능한 것이라 하더라도―감히 그 가치를 근본적으로 의심해보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 사태는 벼랑 끝에 다다랐다. 우리가 아무리 원한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계속되어온 것과 같은 방향의 경제발전, 근대화의 성숙과 완성을 향한 걸음은 이제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는 시점에 봉착하였다. 지금 지구온난화라는 위협적인 현상 하나만 가지고 보더라도 이것은 인류사회의 미래에 대하여 심히 불길한 재앙을 예고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예고된 재앙에 대한 대책을 지금과 같은 ‘근대적’ 제도와 관행에 의지해서는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닫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생태적 위기상황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속시원한 처방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오늘날 세계의 권력엘리트들이 병의 원인을 가지고 병을 치유하려고 하는 가망없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상력의 빈곤은 일차적으로는 타성적인 사고 때문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권력을 끊임없이 확대하려거나 또는 적어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망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욕망에 기초한 게임의 법칙들을 전면적으로 변경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돈과 기술과 ‘생태적 효율성’으로도 위기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조금도 열리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간단히 말해서, 근대세계는 그것이 순환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세계 속에서 직선적인 진보를 추구하고자 하는 체제인 한, 처음부터 지속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파국으로 치닫는 위기에 대한 대응이 이 체제에 대한 땜질식 처방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초식동물인 소들에게 육골분이라는 이름으로 육식을 강요할 때, 그것을 먹은 소들이 좀더 빨리 자라고, 더 많은 젖을 내놓을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결국 광우병이라는 전례없는 괴질의 발생으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광우병을 회피하려면 소들을 이윤추구를 위하여 무자비하게 다루어도 좋은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로서 존중하고 그에 부합하는 방식의 목축으로 되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오늘날 인류사회가 닥친 온갖 사회적, 인간적, 생태적 위기는 결국 광우병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들의 생활방식을 ‘재생 순환의 법칙’에 들어맞게 재구축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재구축의 노력은 광우병의 경우처럼 기술적으로 자연적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교만한 자세가 아니라, 개인이든 집단이든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근원적 한계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데서만 성공을 기약할 수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근원적 한계에 비추어서 우리는 정말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었던 고정관념들을 철저히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가난으로부터의 해방’에 관해서 말할 때, 우리가 좀더 냉철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은 현금이나 부동산 혹은 금융자본의 소유라는 면에서는 지금 우리가 부유해졌는지 모르지만, 인간으로서 우리에게 좀더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 우리 자신의 인간성과 인간관계라는 면에서는 지금 우리가 엄청난 황폐화와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찍이 이란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과 외교관을 지낸 경력을 가진 마지드 라흐네마는 원래 개발도상국가로서 이란이 살 길은 경제개발에 의한 근대화를 신속히 성취하는 길밖에 없다고 믿고, 오랫동안 그런 방향에서의 정책을 지지했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란의 현실과 해외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자신이 종래에 가지고 있던 ‘빈곤’에 대한 개념이 근본적으로 오류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 의하면, ‘가난하다’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절대적 빈곤’이 있는가 하면 ‘공생공락의 가난’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현대세계에서 보다 큰 중요성을 갖는 것은 후자, 즉 ‘공생공락의 가난’이다. 이것은 물질적으로 넉넉하지는 않지만 (실은 물질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에 가능한) 상호부조와 협동적 관계 위에서 풀뿌리 민중이 삶을 영위해온 오래된 삶의 방식을 뜻한다. 그런데 이 생활방식이 식민지 시대를 거쳐 개발의 시대에 이르러 세계 도처에서 무자비하게 파괴되어왔다는 데에 우리 시대의 근본적 비극이 있는 것이다. 라흐네마에 의하면, 오늘날 정말 중요한 것은 윤리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인류사회에 결코 보편적인 것이 될 수 없는 ‘선진국형’의 소비문화의 확산이 아니라, ‘공생공락의 가난’을 보호하려는 노력이다.
실제로, 우리가 이러한 ‘공생공락의 가난’을 진지하게 음미할 필요가 있는 것은 지금 산업사회의 종말을 예고하는 신호들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석유문제는 아마도 가장 긴박한 문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는 사실상 석유를 기반으로 한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석유분석가들의 예측이 맞아떨어진다면, 이 석유문명은 조만간 석유생산 정점―이미 정점을 통과했다는 분석도 있지만―에 도달함과 함께 결국은 빠른 속도로 종말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만일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거의 전적으로 값싼 석유에 의존하여 수출중심 경제성장 체제를 유지, 확대해온 한국경제는 회복불능의 궤멸적인 타격을 입을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한국사회와 경제를 주도하는 세력들은 ‘공생공락의 가난’을 비웃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근본토대인 농민과 그들의 공동체의 가차없는 퇴출을 촉진함으로써 오히려 경제적 활로를 찾으려 하고 있다. 하기는 수십년 동안 지속된 대외의존적 성장논리의 관성 때문에 ‘경쟁력 없는’ 농업을 방기(放棄)하지 않고는 어쩌면 지금 당장의 국가경제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게 한국경제의 현실인지도 모른다. 한국경제의 기초가 이토록 허망한 것이라면, 우리들 모두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되돌아볼 때, 지금 이 시대의 위기는 근대 이후 인류사회가 끊임없이 부닥쳐왔던 고난과 시련의 마지막 단계일지도 모른다. 근대란 한마디로 파괴와 낭비의 문명을 전지구적으로 확대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폭력의 연속일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와 자연세계는 끝없는 유린, 박탈, 살상의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교육받고 성공한 사람들의 입장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공동체의 견지에서 볼 때, 근대란 언제 어디서나 홀로코스트였다.
지금 우리는 서구 근대의 산물인 자유민주주의, 인권, 복지, 과학기술, 의료, 교육이 주는 ‘혜택’을 떠나서 인간다운 삶을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이러한 제도와 문물은 우리가 ‘공생공락의 가난’, 즉 상부상조의 호혜적 관계망을 잃어버린 대가로 얻은 것일 뿐이다. 그리고, 좀더 엄밀히 볼 때, 이러한 ‘문명적’인 제도와 문물은 ‘혜택’이긴커녕 우리의 인간다운 자율성과 자유와 행복을 근본에서부터 가로막는 주된 장애라고 할 수 있다. 근대적 세계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삶의 지혜와 기술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근대적 재화와 서비스는 모두 ‘희소성’을 본질로 하는 자원을 기초로 해서 생산, 유통되는 상품으로서, 대부분 점점더 갈수록 전문가의 개입이 없이는 소비하거나 접근할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보급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직업적 법률가의 도움 없이 자신을 변호할 수 없고, 교사의 도움 없이 배울 수 없으며, 의사의 조언 없이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돌볼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의 지혜와 능력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와 보험제도가 발달할수록, 교육이 널리 보급되고, 학력이 높아질수록, 병원이 많아지고, 의료기술이 첨단화할수록 자신과 이웃을 돌보고, 스스로 배우고, 사람을 사귀고, 고통을 견디고, 질병과 노화를 통해 삶의 궁극적 의미를 깨닫는 ‘삶의 기술’은 날이 갈수록 퇴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품의 형태로 혹은 전문가의 개입을 통해서 주어지는 이러한 ‘혜택’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희소’ 자원을 기초로 한 것인 한, 우리는 부단히 돈을 벌기 위해서 혹은 자격을 얻기 위해서 타인들과 끊임없이 경쟁하거나 피나는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도스토예프스키가 일찍이 간파했듯이, 근대적 삶이란 불가피하게 “나의 행복을 위해서 타인의 불행을 전제로 하는” 삶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대적 삶에서 실업, 빈부격차, 성차별, 사회적 불평등, 농민문화의 몰락은 이 체제의 불가결한 요소로 기능한다. 그것은 마치 현대 도시의 화려한 외관을 장식하는 고층빌딩의 이면에 누추한 슬럼가가 반드시 공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고층빌딩이 전형적인 근대 건축인 것과 마찬가지로 슬럼도 역시 철저히 근대적인 산물인 것이다.
서구문명으로부터의 충격에 노출되기 시작한 19세기 중엽 이래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을 지배해온 것은 대체로 적자생존의 냉엄한 법칙에 따라 강자는 살고 약자는 죽는다는 우승열패(優勝劣敗)의 논리였다. 메이지 시대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을 대표하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유명한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은 어떻게 해서든 일본이 ‘야만적’인 혹은 ‘미개한’ 아시아를 벗어나서 ‘문명’적인 서구화에 도달하지 않으면 일본의 독립을 유지할 수 없다는 긴박한 위기감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일본의 성공을 위하여 조선을 침략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정한론(征韓論)으로 그대로 연결되는, 근본적으로 제국주의적 논리이기도 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국주의적 측면이 결코 이 사상의 비본질적이거나 우연적인 요소가 아니라, 서구적 근대를 향해 가고자 열망한 후쿠자와의 진보사상, 문명관과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승(優勝)은 열패(劣敗)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근대적 국가의 성립에는 식민지 혹은 식민지적 사회관계의 존재가 필연적으로 수반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드러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의식했든 안했든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도 대체로 이와 같은 제국주의적 문명관, 적자생존의 논리를 좁게는 자신의 처세의 원리로, 넓게는 민족의 생존의 방책으로 받아들였고, 이 전통은 아마도 지금까지도 근본적으로 흔들림 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국익이니 국부(國富)니 하는 말들이 별반 저항 없이 시도 때도 없이 통용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부강한’ 선진국으로 가고자 하는 이러한 욕망으로 지금 이 사회가 끓어 넘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번 왜 우리가 ‘선진국’이 되어야 하는가? 선진국이 된다는 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지금 여기’가 아니라, 어떤 다른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옳은 생각일까?
일본의 작가 아쿠타카와(芥川龍之介)의 작품에〈거미줄〉이라는 것이 있다. 어떤 사내가 지옥 속에 빠져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석가모니 부처가 그걸 잡고 극락으로 올라오라고 거미줄을 내려주었다. 그런데 이 거미줄을 타고 올라가던 사내는 자기 다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동료들을 떼어놓으려고 심하게 요동을 쳤고, 그 바람에 거미줄이 툭 끊어져 지옥의 심연으로 도로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었다…이 간단한 이야기의 다분히 교훈적인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지옥과 극락이라는 이분법에 기초해 있는 이 이야기의 기본구도이다. 다시 말해서, 지옥은 극락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고, 극락은 지옥이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 이런 구도 속에 처해 있는 한, 인간은 늘 보다 더 안락한 극락으로 가고자 하는 신경증적인 강박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고, 자유와 행복의 삶은 늘 먼 미래의 가능성으로만 주어질 뿐이다.
이 우화(寓話)에서의 지옥과 극락을 우리는 야만과 문명, 혹은 후진국과 선진국으로 바꾸어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럴 때, 문명과 야만, 선진국과 후진국이란 실체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며, 다만 서구적 근대로 인해 형성된 개념이며 허구일 뿐이라는 사실이 좀더 분명해진다.
실제로, 따져보면, 오늘날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사회는 자연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수탈에 근거한 테크놀로지와 시스템에 의하여 유지, 관리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그 사회의 풍요와 안락은 진실로 인간다운 자유와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풍요와 안락의 삶은 인간간의 유대를 상실하고, ‘대지(大地)와의 접촉’이 단절된 깊이 소외된 삶이다. 그런 반면에, 이른바 후진국이라고 하는 사회는 물질적인 자본과 기술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운 삶에 보다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 ‘사회적 자본’―가족, 친구, 이웃, 공동체―을 풍부히 소유하고 있고, 식민지적 착취에 따른 손상과 파괴에도 불구하고, 자연세계와의 교감이 아직도 살아있는 토착적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후진국에서의 대부분의 민중의 삶은 호혜적 관계를 원리로 하는 ‘공생공락의 가난’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문제는 후진국의 ‘빈곤’이 아니라, 선진국의 ‘풍요’임이 분명하다. 기후변화가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가공할 현실로서 나타나고 있는 시대에 낭비와 파괴가 시스템 속에 구조화되어 있는 ‘선진국형’ 생활방식을 전지구적으로 확대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자살행위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체 인류가 결코 고르게 나눌 수 없는 그러한 생활방식을 특정 지역, 특정 사회가 독점적으로 고수한다는 것은 비윤리적인 행위임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오랫동안 후진국 지식인들 대다수가 서구의 모범을 따라 근대화, 산업화에 매진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데 반해 간디는 이미 20세기의 초두에 서구문명에 내재한 근원적인 폭력성과 파괴성을 꿰뚫어보고, 이 문명이 확대된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언젠가 저주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리하여, 예를 들어, 동시대의 저명한 시인 타고르가 동서양 문명의 이상적인 융합이라는 방식 속에 인도와 아시아와 세계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간디는 서구적 근대문명은 어디까지나 극복의 대상이지 적응이나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는 관점을 철저히 견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간디의 관점에서 볼 때, 서구 근대문명은 무엇보다도 배타적인 자기중심주의에 토대를 둔, 영성(靈性)이 결여된 문명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참다운 의미의 ‘문명’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미국의 인디언 지식인으로 현재 뉴욕주립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존 모호크는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과 지배 밑에서 토착민이 취할 수 있는 자세를 ‘착한 신민(臣民)’ ‘나쁜 신민’ ‘비신민(非臣民)’의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한 바 있다. 다시 말해서, 억압의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안락을 추구하는 ‘착한 신민’은 말할 것도 없지만, 이 억압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나쁜 신민’ 역시 힘의 논리에 대한 숭상에서 해방되어 있지 않는 한, 지배자의 것과 같은 게임의 법칙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근본적으로 노예의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존 모호크의 생각처럼, 참다운 해방의 길은 억압적 구조와 논리 그 자체를 넘어가는 자주적인 비협력의 자세를 통해서만 구축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마도 그 전형은 영국산 직물에 대한 보이콧이라는 형식으로 인도 민중의 자주적, 협동적 삶의 바탕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여하한 권력추구도 철저히 배제했던 간디의 방식일 것이다.
간디의 방식은 서구 근대문명에 대한 순응도, 단순한 반대도 아니었다. 그것은 배타적인 탐욕과 약자에 대한 착취 없이는 한 순간도 존속할 수 없는 근대적 삶의 방식을 뛰어넘어 오랜 세월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온 사람들의 공생의 지혜로 돌아가려는 철저히 비타협적인 자세였다. 간디의 궁극적 메시지는 내가 진실로 자유롭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남들의 자유와 행복을 인정해야 하고, 그것은 결국 우리 각자가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선택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한 절제와 소박함 속에서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덕목, 즉 ‘어울려 삶’의 토대가 형성된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