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미 제국 붕괴의 신호탄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이미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시기를 예단하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반드시 터지고야 만다고 지적해왔다. 우리사회에도 번역 소개된 빌 보너, 에디슨 위긴 공저의《세계사를 바꿀 달러의 위기》(2006년), 엘마 알트파터의《자본주의의 종말》(2007년) 등이 그런 주장이 담긴 책들이다.
미국의 저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그럼에도 미국의 소비지출은 무려 10조 달러 이상이나 된다. 1945년에 견주어 거의 70배 수준이다.
이렇게 풍요로운 대량소비 덕분에 미국의 가계부채는 2007년 말 현재 13.8조 달러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문제의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76퍼센트나 된다. 이같은 가계부채 규모는 미국 경상 국내총생산(GDP)의 99.9퍼센트에 해당한다. 그리고 개인가처분소득의 150퍼센트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1980년에는 가계부채가 개인가처분소득의 절반 수준이었는데, 레이건 이후 지난 이십몇년간 이렇게 늘어났다.
가계부채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은 최대의 채권국이었다. 그러나 6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세계 최대의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미국의 부채는 2007년 3분기 현재 연방부채까지 합해 약 45조 달러이다. 이는 미국의 자산가치 50조 달러와 맞먹는다.
미연방의 국가부채는 2007년 12월 기준으로 1분당 100만 달러(약 9억 2500만원), 하루 14억 달러(약 1조 2950억원) 꼴로 불어나고 있다. 2001년 1월 조지 W.부시 대통령이 취임할 당시 5조 7000억 달러였던 미국의 국가부채는 2007년 처음 9조 달러를 돌파해 2008년 10월 현재 10조 달러를 넘어섰다. 연방정부가 지난해 이자를 갚는 데 쓴 돈만 해도 4300억 달러나 된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뉴욕에 있다는 미국 국가부채시계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위에는 국가부채 액수를, 밑에는 이를 전체 가구수로 나눈 가구당 평균부채 액수를 표시하고 있는 전광판이다. 1989년 미국의 국가부채가 2조 7천억 달러일 때 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미국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타임스퀘어 벨라스코 극장 맞은편 빌딩 외벽에 설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8년 9월 30일, 이 시계가 미국 국가부채 액수를 1달러로 표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미국이 갑자기 어디서 떼돈이 쏟아져 들어와서 빚을 갚아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미국 국가부채 액수가 10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애초에 13개 숫자만 표시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는 전광판 숫자의 칸이 그만 모자랐기 때문이다. 시계는 15자리로 고쳐졌고,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의 국가채무는 오히려 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 의회를 통과한 구제금융 7천억 달러와 추가로 구상중인 액수까지 합하면 벌써 12조 달러를 넘는다.
생산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한다는 것은, 더구나 소득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한다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그런 이상한 일을 미국은 태연히 몇십년에 걸쳐 지속해오고 있다. 이미 미국은 무일푼의 신세이고 파산 상태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미국이라는 제국이 여전히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미국인들이 여전히 풍요의 소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달러가 기축통화로 기능하는 이른바 ‘팍스 달러리움’ 체제 때문이다.
1971년 이전에는 달러는 정확히 일정량의 금과 바꿀 수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달러를 더 발행하려면 그만큼의 금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1971년 달러의 금태환 폐지 이후 달러는 그냥 마구잡이로 찍어낼 수 있는 지폐가 되었고, 실제로 1971년 이후 연방정부가 달러를 마구 찍어내자마자 미국의 소비지출은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세상에 종이를 찍어 물건을 살 수 있는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났는데, 지폐를 찍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달러 세뇨리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마술의 힘 덕택이다.
전세계 각국의 항구에서, 특히 중국, 일본, 한국의 항구에서 날마다 물건을 가득 실은 배가 미국으로 떠난다. 아시아인들은 상품을 미국인들에게 팔고 그 대금으로 달러 지폐를 받는다. 그리고 그 달러 지폐로 다시 미국 재무부의 장기채권을 산다. 미국은 달러를 찍기만 하면 된다.
미국인들은 아시아인들이 열심히 노동해서 저축해놓은 돈으로 호사스런 소비생활을 즐기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미 재무부 채권의 절반은 외국인들, 특히 아시아 3국에 있다. 1952년에는 외국인들의 재무부 채권 보유 비율이 5퍼센트 미만이었다.
미국의 신용은 더이상 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달러화의 가치를 보장하는 것은 그냥 미국에 대한 신용과 미국 국채에 대한 신용밖에 없다. 아시아 3국이 미 국무부 채권을 회수하겠다고 나서는 순간 미국은 파산을 피할 수 없다.
로마제국은 식민지에서 10퍼센트 정도의 세금을 거두어 제국을 운영했다. 미국은 세금 대신 빚으로 제국을 운영한다. 로마는 이집트에서는 밀을, 발칸 지역에서는 검투사들을, 갈리아 지역에서는 병사들을 데려왔다. 로마의 돈은 방대한 식민지에서 거둔 보물과 세금이었다. 그리고 세금을 거둘 수 없게 되자 로마는 망하고 말았다. 미국은 밀을 자급자족한다. 그러나 밀을 운송하는 트럭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들여온 것이다. 음식을 만드는 프라이팬은 중국에서, 가전제품은 대만에서, 옷은 말레이시아에서, 자동차는 일본에서 수입한다. 과학자들은 인도에서, 클래식 연주자들은 한국에서 오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끔 만드는 돈은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들어온다. 물론 달러를 무제한 찍어서 말이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더이상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 제국의 붕괴는 필연이다. 1989년 소비에트연방 제국이 스스로 무너졌듯 미연방 제국도 스스로 붕괴할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사전 예고방송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번지고 있는 것은 그만큼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말해준다. 미국은 전세계 에너지의 4분의 1을 소비하고 있고,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상품과 서비스의 15퍼센트를 수입한다. 미국은 최대의 채무국이자 최강의 군사대국이다. 그리고 덧붙여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현재 농사를 짓는 사람은 200만명 남짓으로 줄었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은 200만명이 넘는다. 그중 일부는 고문도 당한다.
물론 이번 미국의 금융위기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전히 달러는 기축통화이고 달러를 대신하는 새로운 기축통화나 지역간 통화는 아직 모색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미 제국은 더이상 이전처럼 세계의 맹주가 아니다. 미국은 이제 기독교 공동체를 강하게 지향하던 건국 초기의 연방국가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는 더더욱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처럼 전세계에 ‘메이드 인 아메리카’를 세계로 수출하던 세계의 공장도 아니다. 그저 시시때때로 침략을 일삼는 늙은 제국일 따름이다.
부채를 갚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환율을 조작하는 방법도 있고 아예 갚지 않는 방법도 있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부는 서방에 대한 부채를 갚을 의무가 없다고 선언했다. 1840년대 공황기에 미시건,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등 미국의 일부 주들도 부채의 지불 의무를 완전히 부인해버렸다.
그 가운데 가장 유력한 방법이 전쟁이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모두 금융공황과 연관되어 있다. 지금의 금융공황도 그 탈출구가 전쟁일 수도 있음을 역사는 강력하게 상기시켜 준다.
어쩌다 미국이 이렇게 변했을까. 왜 ‘세계의 공장’이 ‘세계의 거품’으로 변하고 만 것일까.
답은 단순하다. 지금 전세계 외환거래에서 실물경제 거래로 교환되는 2퍼센트를 제외하고 나머지 98퍼센트는 투기자본의 이동인데, 2조 달러가 넘는 투기자본이란 사실상 노동자들과 제3세계 인민들의 피와 땀을 착취한 돈들이다. 이제 그런 금융자본들은 실물경제와는 전혀 별개로 먹잇감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에일리언들로 변신해버렸다. 미국이 월가의 금융자본주의를 선택한 순간, 그리고 연방국가가 강한 국가주의, 군사력주의를 선택한 순간, 미국의 유권자들이 민주주의를 팽개치고 일하지 않고도 호화판 소비를 즐기는 미국식 강도질 경제를 선택한 순간, 이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의 길은 피할 수 없는 길이 되어버렸다.
금융업이란 거칠게 말하면 일을 하지 않고 돈을 버는 악질의 고리대금업이다. 금융자본주의란 자본주의의 가장 악취나는 진화이며, 이윤이라면 지옥에라도 뛰어드는 자본의 속성상 필연의 자연선택이기도 하다. 금융자본주의란 기생충 자본주의로서 자본주의의 핏빛 황혼기이며 자본주의가 종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인민의 경제, 자립과 자치를 근본으로 삼는 호혜와 평등의 지속가능한 순환경제에서는, 금융이란 이슬람에서 시행되고 있는 무이자 은행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앨런 그린스펀은 금태환 폐지를 완강하게 반대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의장이 되면서 자신의 신념을 백팔십도로 바꾸었다. 그는 가장 강력한 지폐옹호론자가 되었고, 과거 연방적자 반대와 증세를 주장하던 입장과는 정반대로, 연방적자를 걱정하는 대신 증세를 반대하게 되었다.
그린스펀은 아이젠하워 이후 가장 낮은 금리를 유지함으로써 미국인들에게 “더 많이 대출받아 더 많이 소비하라”고 부추겼다. 집값이 올라 엄청난 거품이 생긴 상태에서 대출을 늘리는 것을 ‘재산가치의 추출’이란 알쏭달쏭한 말로 현혹시켰던 그린스펀 같은 자들, 일자리가 줄어들면 생산성 향상의 증거라고 말하는 밀턴 프리드먼 류의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야말로 미 제국을 붕괴시키는 일등 공신들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추종자들과 복사판들이 한국에는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리-만 브라더스’는 말할 것도 없고 여야 정치권에서부터 행정부, 언론, 학계를 막론하고 아직도 시장경제와 금융자본주의를 맹신하는 이른바 주류 경제학자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사실상 미국을 모국으로 여기는 매판 식민 지식인들의 천지에 다름 아니다. 한국경제의 앞날이 눈에 보이듯 훤하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 최대의 풍요와 최고의 위험사회, 대한민국
전세계 자본주의는 아마도 이번 금융공황을 통해 또다시 새롭게 재편되고, 새롭게 다시 생산력을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석유를 비롯한 천연자원이 정점에 도달하지 않았고 착취할 자원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그리고 성장에 중독된 ‘경제인’들은 마지막 한 방울의 석유와 천연자원까지 다 퍼다 쓰면서까지 현재의 소비생활을 유지 또는 확대하려고 하는 산업사회인들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모든 나라가 뉴딜정책을 복제한 새로운 성장정책을 다시 들고나오고 있다. 뉴딜정책도 그랬지만 오늘날의 경기부양 정책도 모두 에너지와 천연자원의 착취를 경제성장의 제물로 삼는, 희생과 미래세대 저금통장 강탈의 경제정책이다. 그동안 기후변화니 탄소경제니 녹색경제니 하던 명목상의 전시용 구호도 이제는 사라지고,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시커먼 경제성장 정책들이 난무한다. 그나마 재생에너지 산업을 ‘신성장 동력’이란 이름 아래 주목하고 있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다양한 경제성장 정책 중에서도 하필이면 참으로 기이한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는 중이다. 건설사 사장 출신답게 서민들 호주머니 돈을 털어 전국을 개발의 삽질로 파헤치고, 주택을 더 많이 짓고, 대출을 더 많이 늘려 집을 사도록 해서 집값과 땅값을 더 올리자는 정책은 거품을 더 많이 키워 기어이 ‘선진국’인 미국의 길을 똑같이 반복해서 망하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아니면 불가능한 발상이다. 이명박은 확실히 더 강한 근대 산업화의 폭탄을 가슴에 두른, 확신에 찬 자살테러범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들리는 것은 언제 터질지 모르며 째깍거리는 거품 붕괴의 시한폭탄 시계소리이다. 한국경제 구조 자체가 허물어지는 도처의 포크레인 굉음 소리이다.
사실 이같은 근대 산업화 이데올로기는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 우리는 조선이 망하고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된 20세기 초부터, 아니 근대 서구문명이 충격과 함께 우리 앞에 나타난 19세기 말부터 1백년 이상을 오직 근대 산업화만을 지고지선의 목표로 설정하고 일로매진해왔다. 식민지 해방투쟁을 하던 민족독립운동 세력들도 사회주의자이건 자본주의자이건 부국강병의 경제성장과 개발이란 너무나 당연히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그리고 그 정점에 박정희 개발독재 체제가 있다. 이명박은 짝퉁 박정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한국은 압축 경제개발과 성장에 성공했다. 국내총생산(GDP)은 1953년 13억 달러에서 2007년 9,699억 달러로 약 746배 증가하였다. 세계 십몇위의 수준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산업사회로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변모했고, 대형 할인점이나 백화점을 가보면 길게 늘어선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상품들로 눈이 어지러울 정도이다. 우리는 지금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이래 역사상 최고 수준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얼마나 분에 넘치는 풍요의 삶을 누리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하나의 사례가 있다. 우리가 날마다 쓰는 전기에너지 1kWh는 3백 미터가 넘는 에펠탑 꼭대기에서 맨손으로 땅바닥에 있는 소형승용차를 들어올리는 힘과 같다. 슈퍼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에너지를 단돈 50원 정도에, 껌값보다도 더 싸게 쓰고 있다. 우리는 한 달에 이삼백명의 슈퍼맨을 몇만원에 사서 노예로 부리며 살고 있는 초호화판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차상위 계층(2008년 기준 최저생계비 120퍼센트 이하 가구, 3인 가구 약 125만원 이하, 4인 가구 약 152만원 이하)의 소득은 4인 가족 기준으로 북한이나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의 2~3년치 연봉에 해당한다. 당연히 빈곤에 허덕이는 우리나라 차상위 계층의 의식주 일상생활 수준은 북한이나 동남아 노동자들에 견주면 거의 귀족의 생활수준이다. 그리고 동서양의 역대 어느 제왕과 견주어도 결코 뒤처지지 않을 만큼 호사스럽다고 할 수 있다. 정조대왕도 화성 행차할 때 냉방장치 달린 가마를 타지는 못했다. 네로황제도 겨울에 광란의 연회를 베풀면서 칠레산 포도주를 내놓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런 풍요의 내용을 조금만 따지고 들어가면 과연 한국을 자유인들이 더불어 함께 모여 사는 ‘사회’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지 의심이 갈 지경이다. 사회가 아니라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노예들의 집단수용소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풍요 대신 우리가 얻은 것은 불안정과 미래의 파괴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만 9백만을 육박한다. 빈곤의 악순환과 대물림 함정에 빠져 있는 빈곤층만 해도 보건복지부 발표로 716만명(2005년 발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38만명, 기초생활보장 비수급 빈곤층 372만명, 잠재적 빈곤층 206만명)이나 된다.
농업공동체는 산업화와 함께 해체되어 버리고 말았다. 농가인구는 1949년 1,441만 6천명(총인구의 71.4퍼센트)에서 지금은 327만 4천명(총인구의 6.8퍼센트)으로 급격히 줄었다. 그것도 3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이다. 오늘날 마을공동체는 멸종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경이의 성장을 거듭한 한국경제 또한 조금만 상식의 눈으로 차분히 들여다보아도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경제는 거의 모든 원자재와 에너지를 수입해서 노동력을 투입, 상품을 만들고 다시 해외시장에 내다파는 철저한 수출지향의 경제구조이다. 당연히 대외의존도가 70퍼센트를 넘어서고 이 수치는 일본의 거의 3배 수준이다. 우리는 에너지의 97퍼센트를 수입한다. 천연자원 자급률도 철, 동, 아연, 니켈 등 금속광의 경우 자급률 0.72퍼센트(2005년)로 거의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한다. 동, 텅스텐, 망간, 알루미늄, 마그네사이트, 인광 등 국내 자급률 0퍼센트인 것도 25개 광종에 이른다. 한국은 그동안 값싼 에너지와 원자재를 기반으로 고속의 압축 경제성장을 거듭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값싼 에너지와 원자재의 시대는 갔다. 석유정점(피크오일)은 모든 천연자원이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상징의 표현이다.
값싼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 상품의 제3세계 수출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제3세계 노동자들의 피와 땀을 착취하고 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한국의 풍요란 제3세계의 자원과 노동자들의 피를 빠는 흡혈귀 경제구조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경제성장은 전국토를 독성 화학물질로 뒤덮고 자연생태계를 극단으로 파괴하고야 말았다.
더구나 한국의 경제성장은 미국의 주도면밀한 기획 아래 추진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미 1950년대 말부터 남한의 경제개발계획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미국이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농업과 에너지였다. 1961년 11월 미국을 방문한 박정희에게 미 국무장관 로스토우는 한국이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오직 두 가지, 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일과 전력을 안정되게 공급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오늘날 한국은 식량과 에너지를 거의 대부분 미국에 의존하는 경제체제로 변질되어 버렸다. 여기에 미국을 그야말로 모국으로 인식하는 ‘누런 피부 흰 가면’의 친미 매판 계급 또한 확실하게 한국의 지배세력으로 이식되어 있다.
한국의 풍요란 결국 사막사회, 흡혈귀사회, 노예사회의 겉포장일 뿐이며 무장강도의 지속불가능한 풍요임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위험요소가 식량위기이다. 식량자급률 20퍼센트대인 한국은 국제 곡물시장에 나비가 펄럭거려 한번 출렁이기만 해도 속수무책으로 식량부족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미 세계 식량공급은 수요 급증에도 해마다 늘어나지를 않고 정체되어 있다. 기상이변으로 곡물생산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곧바로 식량폭동이 일어나고야 마는 식량위기의 구조화는 지난 봄에 전세계 50여개 국가의 식량폭동으로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그런데도 쌀을 제외하면 자급률 5퍼센트 정도인 우리의 현실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여전히 음식쓰레기들은 산더미처럼 양산되고 있다. 북한의 식량자급률이 무려 70퍼센트대인데도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갔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우리는 외면하고 있다. 미국은 식량자급률이 100퍼센트를 넘는 세계 최대의 식량수출국이다. 미 제국은 붕괴돼도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무런 대비책 하나 없는 한국에게 식량위기란 곧 아사이며 전쟁이다.
게다가 이제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사람이 스스로 자초한, 돌이킬 수 없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에너지-식량위기와 함께 기후변화의 쓰나미가 동시에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지금 아무런 준비도 없이 끔찍한 식량위기와 에너지위기, 거품붕괴를 눈앞에서 멀쩡히 바라다보고 있는 중이다.
왜 다시 ‘박현채’를 꺼내 읽는가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경제의 붕괴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경제학자 박현채(朴玄埰, 1934-1995)는 일관되게 한국 자본주의의 대외의존과 자본주의 자체의 운동 논리를 지적하며 ‘국가자본주의의 위기와 구조적 파산’을 예견했다. 그는 끊임없이 한국경제의 위기와 파국론을 주장하며 한국경제 구조를 ‘자립경제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사자후를 토하며 역설했던 것이다.
“1962년 이후에는…외국자본을 끌어들여 수출입국이라는 이름 아래 불균형 성장이론을 모델로 외형적인 경제성장을 해왔다…설비나 원자재가 외국자본과 더불어 같이 들어옴으로써 우리의 경우는 값싼 노동력밖에는 없게 된다…외국시장에 크게 의존하게 된다. GNP의 90퍼센트 이상이 무역에서 생성되어지고 수입물량이 27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끊임없이 외자를 수입하지 않고서는 자기 재생산을 이룩할 수 없는 상황은 바로 그간의 성장과정이 지극히 대외의존적인 것…이와 같은 재생산구조는…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이미 무너질 수밖에 없는 내재적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한국경제의 현단계 위기와 제양상〉, 목포대신문 1985년 11월 29일,《박현채전집》3권, 546~547쪽) 이런 내용의 글은 박현채의 글쓰기 전체를 관통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이었다.
박현채가 한국 자본주의의 붕괴를 주장한 근거는 두 가지였다. 위에서 든 비정상의 대외의존과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자체의 논리였다.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적 재생산 과정에 내재하는 제모순…생산의 사회적 성격과 생산물 소유의 사적 형태 간의 모순… ①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 ②자본가적 경제의 무정부성, ③무제한의 생산력 증대와 노동자계급의 소비수요의 좁은 한계와의 모순, ④경제의 제종부문간의 불균형적 발전” 등으로 시시때때로 공황을 맞이하고 마침내는 파국에 도달하고 만다고 주장한다. 물론 박현채의 한국 자본주의 위기와 붕괴 이론의 기본 골조는 맑스의 자본주의 분석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박현채의 한국경제 붕괴론에 대해 1980년대 이후 수많은 경제학자들과 민주화운동가들은 비판을 넘어 조소를 보내기까지 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경제는 오히려 더 발전과 성장을 거듭해, 망하기는커녕 이제는 오히려 당당히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지 않았느냐는 것이 이들의 반론이었다. 특히 1990년대 초반 구소련과 동구권의 붕괴 이후에는 지난날의 사회주의 신봉자에서 자본주의 신봉자로 말을 갈아탄 사람들 사이에서 ‘잘못된 운동이론’이 거론될 때마다, 그 대표로서 박현채가 빠짐없이 등장하곤 했다. 이른바 뉴라이트로 전향한 안병직 류의 ‘전직 사회주의자’들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사실 자본주의는 그만큼 엄청난 생명력을 지닌 괴물이다. 맑스도 레닌도 마오쩌뚱도, 자본주의의 위기와 붕괴를 주장했던 수많은 사회주의자들의 예견도 배반하고, 거꾸로 현실사회주의를 무너뜨리고야 말 정도로 자본주의의 활동력은 가공할 만하다.
그런데 이들 사회주의자들도 그 참 모습은 에너지와 천연자원의 문제는 거의 도외시한, 문맹의 성장주의자들이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쌍생아였고, 에일리언처럼 지구자원을 착취하기는 마찬가지였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복지국가 모델 또한 제3세계의 피와 땀을 착취한 흡혈의 복지일 뿐만 아니라 역시 자본주의와 똑같이 에너지와 천연자원을 착취하는, 좀더 사람답게 보이기 위해 화장한 에일리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최근 들어 일각에서 “한국사회는 사회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마치 거창한 결단을 내린 듯한 주장을 하는 것은 쓰나미를 앞에 두고 철지난 구제품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어이없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자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분쇄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전역으로 시장을 확산시킬 수 있는 근본 동력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값싼 에너지와 원자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본주의를 먹여살리던 먹이가 고갈되면 당연히 자본주의는 머지않아 붕괴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위기와 붕괴론은 오류가 아니라 엄연한 현실로 눈앞에 다가와 있다.
더구나 금융자본주의는, 세계화된 금융자본주의는 우리가 지금 그 실태를 목격하고 있는 바 그대로 더 빨리, 더 많이, 더 냉혹하게, 더 깔끔하게 노동자들과 자연을 착취하는 포식자이다. 맑스의 오류는 생산력을 억누르는 질곡의 자본주의 생산관계란 없다는 사실을,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무제한의 생산력 증대에는 자본주의를 따라올 수 있는 다른 생산관계가 없다. 사회주의 생산관계는 어림도 없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의 생산력이 난숙한 시점이란 지구상에서 에너지와 천연자원이 최후의 한 방울까지 고갈될 때이다. 그리고 당연히 자본주의 생산력의 정점에서 자본주의의 붕괴와 함께 인류문명 자체, 사회 자체가 붕괴된다.
문제는 이처럼 한국경제의 붕괴와 함께 닥치게 되는 끔찍한 식량위기와 그나마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한국사회’의 완전한 붕괴이다. 사회가 복원되기 위해서는 자립과 자치의 공동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런 자립과 자치의 공동체 정신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사회가 무력할 때, 튼튼하게 존립해 있지 않을 때, 곧바로 파시즘으로 치닫는다는 것은 역사의 경험이 웅변해주고 있다.
박현채의 목숨을 건 외침이 다시 절실히 요청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는 맑스와 달리 지금 이 시점에서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는 대안으로 끊임없이, 일관되게, ‘자립경제’와 ‘자립의 공동체’를 주창했다. 그는 ‘민족경제’의 완성된 형태를 ‘자립경제’로 명확히 설정하고 있었다. 그에게 경제란 ‘경세제민’이었으며, 협업이었고, 평등과 분배였고, 민중의 삶의 개선이었다.
그는 ‘일국사회주의’나 ‘폐쇄경제’를 주장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민중들의 협업과 농업협동조합을 통한 식량자립 및 그것을 중심으로 한 ‘자립경제-민중경제’만이 민중들의 삶을 개선하는 지름길이자 민주주의의 확실한 기초라는 신념이 있었다. 여느 사회주의자들과 다른 이런 농업과 협동조합에 대한 끊임없는 모색이야말로 산업사회로의 변화 속에서도 경세제민의 근본을 잃지 않았던 민중경제학자 박현채의 남다른 모습이었다.
박현채의 지적처럼 자립경제와 공동체만이 지금의 불평등하고 지속불가능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것이야말로 다가올 위기와 환란, 혼돈과 아비규환을 방지하는 유일한 탈출구이다. 공동체의 재건, 소농을 중심으로 한 농업공동체의 재건이야말로 에너지-식량위기를 대비하는 가장 유력한 대안이다. 식량주권 없는 식량안보란 허구이다. 에너지주권 없는 에너지안보란 허상이다. 식량과 에너지를 자립하지 못하는 사회는 어느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상누각의 사회일 뿐이다.
문제는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자립과 자치의 토대를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8년의 ‘촛불’은 우리사회에 공동체의 재형성이라는 희망을 준 일대 사건이었다. 온라인상의 코뮤니티는 사막사회의 폐허 위에서도 푸릇푸릇한 공동체의 숲이 자라날 수 있음을 웅변해주는 놀라운 본보기였다. 사람은 원자화된 노예개미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우애와 협동의 무리동물이라는 것을, 고립이 아니라 자립을 선택한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희망의 촛불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중심의 사회에서 농경중심의 사회로 빠르게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그것도 생태순환의 소농을 중심으로 한 지역공동체 형성을 뼈대로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하는 지역자립과 자치의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당장 “원시시대로 돌아가자는 낭만과 망상 아니냐”는 곱지 않은 비아냥이 터져나온다. 그러나 에너지법칙을 상기하지 않아도, 상식의 눈으로도 더이상 지금과 같은 산업사회는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생태순환의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동운동만 해도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그같은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노동자들은 스스로의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협동조합, 공제조합, 우애조합, 상조회 등의 조직들이 그것이다. 농업공동체가 해체된 뒤에 나타난 산업사회의 새로운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노동조합조차 오늘날에는 더이상 공동체가 아니다. 대기업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조직된 민주노총은 이미 그 공동체성을 빠르게 잃어가고, 미국식의 장사치 노동조합, 거래 노동조합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노동조합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이미 공동체 정신을 포기한 눈먼 이익단체에 지나지 않는다.
오늘날 비정규직의 해법을 놓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주장도 있고, 그건 비현실의 주장이니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과 같은 제도개선을 해야 한다는 접근도 있으며, 사민주의나 복지국가론에서처럼 사회적 일자리를 대폭 늘림으로써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물론 경제성장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라는 기존의 스테레오타입 주장도 여전하다. 그러나 과연 이런 방법이 비정규직 문제의 근본 해결책인지는 의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자의 양산은 필연이며, 이런 노동예비군의 존재야말로 저임금구조를 유지하는 핵심 골격이다. 우리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는 산업사회 자체를 바꾸어야만, 사회체제의 근본에서부터 전환을 모색해야지만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민(소농)으로의 ‘존재이전’만이 근본의 해결책이다. 생각해보라.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만명이 소농으로, 농촌으로 간다면 아마도 우리사회의 근본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식량자급률을 높임으로써 다가오는 끔찍한 식량위기에 대한 대비책이 될 것이다. 여기에 노동력 부족을 야기함으로써 한국의 노동시장 구조 자체를 바꿀 수 있게 된다. 말하자면 에너지-식량의 지역자립 체제 구축의 전제는 새로운 형태의 브나로드 운동이 일어나야 가능해진다. 지금은 수많은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밖에 되지 않는다. 청년들 속에서 값싼 노예의 삶을 선택하기보다 자유인의 삶을 선택하는, 소농으로의 존재이전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국사회의 재기획과 생태적 전환을 위해서는 새로운 계몽운동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은 지난날처럼 소수 선각자의 지도에 따라 이루어지는 형태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지는 ‘피동의 계몽’은 이제 더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촛불’에서 이미 드러났듯 수평의 대등한 주체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광장에 모여 민주주의의 수많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능동의 계몽’이야말로 스스로 자유인으로서 미래의 자신의 삶을 명확히 선택하게 만들 것이다.
문제는 다시 새로운 공동체운동과 브나로드 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