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묻는다면
다섯번째 낙동 순례를 시작한다. 지난 3월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강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뜨거운 여름 한철을 강가에서 보냈다. 조바심하는 마음으로 낙동강 순례 홈페이지(http://nakdongkang314.org)도 만들었고 몇번 작은 모임과 행사에 참여했지만, 끊임없이 나를 출발선상에 세우는 것 외에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때때로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강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만일 내가 본 것이 답이 될 수 있다면 눈이라도 빼서 보여주고 싶다.
무엇보다 어둠에 잠기기 직전 강가에 물드는 보라빛 낙조를 보여주고 싶다. 굽이굽이 산을 넘어 휘돌아 가는 물길, 물길을 거슬러 오는 바람, 저문 강에 떨어지는 달빛, 새벽 강가에 하얗게 오르는 물안개, 물가에 그림자를 놓는 수변의 숲들, 그곳에 깃들고 둥지를 트는 생명들, 흰 모래사장에 꼬리를 끌고 지나간 수달의 발자국, 허리 굽은 농부의 깊은 한숨, 그곳을 배회하는 외로운 맘까지 모두 보여주고 싶다.
녹색뉴딜, 경제발전, 일자리 창출, 자전거 도로, 생태공원 조성, 천년의 비젼 등 화려한 구호들을 귀가 아프게 듣건만 내 눈이 보는 것은 희망찬 그들의 구호와는 정반대의 것들― 무너지고 파괴되는 모습들뿐이다.
거대한 중장비들이 파열음을 내며 강바닥과 둔치를 파고 금빛 모래를 퍼 나르는 덤프트럭의 흙먼지 나는 행렬 끝에 서서 아우성치는 산하를 카메라에 담는다. 거미줄에 걸린 작은 물방울들을 담기 위해 열렸던 렌즈로 들이대기에는 너무나 섬뜩하고 슬픈 현장이다.
그래도 시집와서 60년 허리 굽혀 일하던 강마을을 떠나는 할매보다는 설움이 덜할 것이다. 할매는 집과 논과 밭을 모두 합해 8천만원의 보상을 받아 도심 변두리에 작은 아파트를 한채 구입했다고 하신다. 평생 살던 터전을 떠나면서도 할매는 오히려 내게 물으신다. “아래로 내려가면 전부 강물을 땡겨서 먹고사는데 물을 가둬놓으면 물이 더 나쁘지 싶은데, 안 그래요?” 정부에서 연일 홍보방송을 해도 할매도 나처럼 믿지 못하는 눈치다.
사람들은 그렇게 강변을 떠나가는데, 나는 낙동강가에 10년이나 비어있던 집을 얻었다. 지붕은 날아갔고, 서까래는 기울어졌고, 아궁이는 무너져 있다. 집주인은 집을 내주면서 너무 오래 비어있던 곳이라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했지만, 목수 딸이라고, 3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팔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하지만 막상 집을 만지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주변 지인들이 일손을 거들어 주었건만 방 하나를 정리하는 데도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해가 짧아지니 아무래도 처마 밑이 그립고, 따슨 방에 나날의 피로를 내려놓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나처럼 강가를 배회하는 걸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너진 공간을 조금씩 일으켜 세우고 있다.
경천대가 마주 보이는 이곳에서 낙동강 본류인 구담, 회룡포, 삼강, 경천대, 상주, 낙동, 서산, 구미가 한시간 거리이고, 낙동강 지천(支川)인 내성천, 금천, 영강, 병성천, 감천, 위천 역시 한시간 거리이다. 또한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질 상주보와 낙단보, 구담보, 구미보까지가 모두 버스로 한시간 거리 안에 있다. 나는 이곳에서 지금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변화가 올지 관찰하고 기록할 것이다.
어찌 재앙이라 아니할 수 있을까
천성산을 통해 나는 자신이 서 있는 땅의 역사와 문화를 자신이 신고 다니는 신발만큼도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국토가 맡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 한번도 천성산을 밟아보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아무런 애정도 관심도 없는 자들의 기술적인 잣대에 의하여 천성산은 무너지고 파헤쳐졌다. 천성산은 내게 우리의 국토가 처해있는 아픔과 우리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기류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천성산’과 ‘4대강’은 그 이름을 달리하고 있지만, 이 사업의 실행 주체는 전혀 변하지 않은 하나의 연관 속에 있다. 17분 빨리 달리기 위하여 7조 이상을 퍼부은 고속철도 2단계 사업은 개통도 하기 전에 예상 수요의 1/3도 수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체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아니러니컬하게도 의혹과 부실투성이의 고속철도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고속철도시설공단 정종환 사장은 이제 국토부장관으로 4대강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파괴와 파행의 책임을 정부와 개발에 찬성하는 사람들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지난 주말, 설악산의 단풍객이 5만이 넘었고, 해운대 광안리 불꽃놀이 인파가 70만을 넘었으며, 올 시즌 야구관람객은 600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오색 단풍의 풍광, 바닷가의 현란한 불꽃놀이, 운동장의 함성과 열기에 이의를 달 수는 없다. 하지만 억만년 이어져 내려온 자연의 물길이 위험에 처해있고, 그 재앙에 대한 경고가 하루도 빠짐없이 이야기되고 있어도, 태어나 자라게 해준 국토가 겪는 아픔의 현장으로 향하는 발길은 너무나 드물다. 단풍놀이를 즐기는 사람의 1/100, 불꽃놀이를 즐기는 인파의 1/1,000, 야구장에서 만나는 사람의 1/10,000이라도 강으로 걸음을 한다면 정부가 이렇게 무모하게 국토를 파헤치는 사업을 감히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환경문제를 당사자와 시민단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현실은, 오늘날 우리 국민들의 의식과 비참한 국토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4대강 개발은 ‘국토의 과잉 관리이며, 과잉 관리는 자연을 친절하게 살해하는 방법’이라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한 분은 외국인 기자였다. 그는 “한국의 최고의 인프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이 준 것”이라고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본 일이 있는 사람은 우리 국토가 얼마나 아름답고 비옥하며 풍요로운 곳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백두산을 영봉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을 등뼈로 13개의 정맥이 굽이굽이 줄달음하고, 그 정맥들이 품어 흘려 보내는 물줄기가 굽이굽이 요동치며, 11개의 큰 흐름으로 한반도 전역을 생명의 기운으로 채워놓는다. 눈에 보이는 것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흐름들이 위협을 받고 있으니, 어찌 재앙이라 아니 할 수 있을까.
청초호 매립단지로써 4대강을 보다
지난 9월, 네번째 낙동 순례는 속초에서 시작했다. 속초의 눈이라 불렸던 청초호 매립단지가 지금 어떻게 변해있는지 문득 궁금했기 때문이다. 호수의 40퍼센트가 매립된 뒤, 청초호의 예전 아름다운 풍광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해안호라는 느낌보다는 도심의 인공호같이 보였다. 설악산의 장대한 산줄기는 즐비한 고층아파트의 화폭에 가려졌고, 울산바위의 웅장함은 철재탑에 가려져 있었다.
청초호 매립단지에서 보듯이, 정부가 진행하는 개발사업은 자연 자체의 효율과 그 풍요로움에 의지하기보다는, 파괴적이고 물질적인 힘을 지향하며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 그들은 정작 잃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으며, 오직 끝없이 달려갈 뿐이다.
나는 기록할 것이다
이제 남은 고민은 과연 이 역주행을 멈출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사업을 통해 이윤을 얻고자 하는 기업과, 권력과 금력으로 이 사업을 정당화하고 있는 정부가 한몸으로 결속된 상황 속에서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며, 질문을 던짐으로써 더 자주 길을 잃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질문함을 그치지 않는다면, 이해하지 않기를 멈추지 않는다면, 앞으로 우리는 강에 대하여 더 많이 알아가게 될 것이며, 강의 소리를 더 잘 듣게 될 것이다. 어쩌면 현 정부는 4대강 개발사업을 통하여 그동안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방식에 대하여 조금 과격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무지를 내보임으로써 우리들의 무지를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옛사람들은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곳에서 시작하고 천하의 큰 일은 반드시 세밀한 데서 비롯된다(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고 하였다. 지금 나는 한마리의 자벌레처럼 강가를 걷고 있을 뿐이다. 비록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나는 이 사업이 공론화되고 재검토될 때까지 걷고 절망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직접 지켜본 파괴의 현장들을 기록하고 정리하여 우리의 국토가 어떤 힘에 의하여, 어떤 논리에 의하여 어떻게 파괴되고 변화되고 있는지, 침묵의 방조자인 동시대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리하여 조만간 올 뒷사람들에게 이 사업을 다시 평가받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