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업계의 몇몇 거물들은 뭔가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은 어딘가에 너무나도 교묘하고 용의주도하며 상호연결된, 빈틈없이 잘 조직된 권력이 있기에 그들을 규탄할 때에도 숨을 죽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 우드로 윌슨, 전(前) 미국 대통령
은행이 대출을 할 때마다 새로운 신용이 창조되고, 새로운 예금이 만들어지며, 전혀 새로운 돈이 만들어진다. ― 그레엄 F. 타워프, 캐나다은행 총재(1934―1954)
은행이 돈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너무나 간단해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정말 어렵다. ―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경제학자
한 나라의 통화를 발행하고 통제하는 게 내게 허락된다면, 나는 누가 법률을 만들든 개의치 않겠다. ―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 은행가
빚으로서의 돈
두개의 큰 신비 ― 사랑과 돈 ― 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이야기, 노래, 책, 영화, 텔레비전에서 끊임없이 탐구되어왔다. 그러나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해서는 사정이 다르다. 화폐이론을 취급한 블록버스터 영화가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 대부분이 다닌 학교에서조차 돈의 본질에 관한 언급이 없다.
우리들 대부분은 “돈은 어디서 생기는가?”라는 질문에 곧장 지폐를 인쇄하고 동전을 찍어내는 조폐창의 모습을 떠올린다. 우리들은 대개 돈은 정부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그건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까지만 그렇다.
우리가 보통 돈이라고 생각하는 금속화폐나 지폐는 실제로 조폐창이라고 하는 연방정부기관에 의해 생산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돈은 조폐창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은행이라고 하는 사기업에 의해 매일 막대한 규모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예금자가 맡긴 돈을 은행이 대출해준다고 믿는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실은, 은행은 자신이 번 돈이나 예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돈을 빌리는 사람의 상환 서약을 근거로 한 대출을 통해서 돈을 만들어낸다. 대출서류에 표시된 차금인(借金人)의 서명은 대출 원금에 이자를 덧붙인 금액을 나중에 은행에 갚거나, 아니면 집이나 자동차 혹은 담보물로 잡힌 자산을 내놓겠다는 서약이다. 이것은 돈을 빌리는 사람으로서 하지 않을 수 없는 매우 부담스러운 약속이다. 그런데 이 서명이 은행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은행은 차금인의 계좌에 금액을 써놓는 행위만으로 마술처럼 그 액수의 돈을 생산한다. 터무니없는 일처럼 들리는가? 하지만 이건 사실이다.
이 근대적 은행업의 기적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간단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금세공사(金細工師) 이야기
오랜 예전에 다양한 물건이 돈으로 사용되었다. 돈은 휴대가 간편해야 했고, 나중에 식량이나 의복, 집처럼 실질가치가 있는 물건과 교환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충분히 많은 사람이 가지고 있어야 했다. 조개껍질, 코코아열매, 아름다운 돌, 심지어 깃털도 돈으로 사용되었다. 금이나 은은 부드럽고 가공이 쉽기 때문에 특히 매력적이었다. 그리하여 이 귀금속들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생겨났다.
금세공사는 금속화폐를 주조함으로써 거래를 훨씬 편하게 만들었다. 이 금속화폐는 단위가 표준화되고, 그 무게와 순도가 보증되었다.
자신의 금을 지키기 위해 금세공사는 금고가 필요했다. 그러자 동료 시민들이 찾아와서는 자신들의 금화나 귀중품들을 보관할 수 있도록 금고의 공간을 대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윽고 금세공사는 금고의 모든 선반을 대여해주고 그로 인해 얼마간의 소득을 얻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갔고, 금세공사는 영민한 관찰을 하게 되었다. 즉, 금을 맡긴 사람들이 실제로 금을 되찾기 위해 오는 경우가 별로 없고, 한꺼번에 몰려오는 법도 없었다. 그것은 금세공사가 써준 보관증이 마치 금 자체인 양 장터에서 거래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종이돈은 무거운 금속화폐보다 훨씬 편리하였고, 거래 때마다 하나하나 힘들여 헤아릴 필요없이 그냥 금액을 써넣기만 하면 되었다.
다른 한편, 금세공사는 또다른 사업을 하였다. 자신의 금을 이자를 붙여서 대출하는 사업이었다. 편리한 보관증이 금 대신 통용되었으므로 금을 대출받는 사람은 실제 금보다도 증서의 형태로 된 대출금을 원하기 시작했다.
산업이 확대되어감에 따라 사람들은 금세공사로부터 더 많이 대출받고자 했다. 이렇게 되자 금세공사는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었다. 그는 금을 맡겨놓은 사람들이 실제로 금을 되찾아가는 일은 거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금에 추가하여 예금자들의 금을 담보로 해서 보관증을 쉽게 대출할 수 있으리라고 계산했다. 대출금이 상환되는 한, 예금자들은 아무것도 모를 것이며, 아무런 나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 장인(匠人)이라기보다는 은행가가 된 금세공사는 자신의 금만을 빌려줄 때보다 훨씬더 큰 이익을 챙기게 되었다.
다년간 금세공사는 은밀히 모든 예금자의 금을 토대로 벌어들인 이자로부터 큰돈을 벌었다. 이제 그는 걸출한 은행가가 되어, 동료 시민들보다도 더 부유해졌고, 그것을 과시했다. 그러자 사람들 사이에 그가 예금자들의 돈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금자들은 몰려와서 금세공사가 자신의 재산에 대해 말끔히 해명을 하지 않으면 맡겨놓은 금을 모두 찾아가겠다고 위협했다.
예상과 달리 금세공사에게 이것은 재난이 아니었다. 그의 수법에 내재된 사기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이디어는 잘 기능했다. 예금자들은 잃은 게 아무것도 없었고, 금세공사의 금고에 있는 그들의 금은 안전했다.
금을 되찾아가는 대신에 예금자들은 금세공사가 벌어들이는 이자를 자기들에게도 나누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것이 은행업의 시작이었다.
은행가는 낮은 이자를 예금자에게 지불하고, 높은 이자를 붙여서 대출하였다. 그 차액이 은행의 경비와 이윤을 포괄했다. 이 시스템의 논리는 단순하였고, 그것은 신용에 대한 수요를 만족시키는 합리적인 방법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오늘날과 같은 은행 운영방식이 아니었다. 금세공사―은행가는 자기가 번 이자를 예금자들과 나누고 남은 소득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신용에 대한 수요는 유럽이 세계 전역으로 확장되어감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대출금은 금고 안에 들어있는 금의 양 때문에 제한되어 있었다. 거기서 그는 좀더 대담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자기말고 자신의 금고 안에 실제로 들어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는 금고에 있지도 않은 금에 대한 증서를 발행·대여할 수 있었다! 금 보관증 소지자들이 동시에 몰려들어 금을 찾으러 오지 않는 한, 누가 어떻게 알겠는가? 이 새로운 수법은 잘 기능했고, 은행가는 존재하지 않는 금에 대해 받은 이자로써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은행가가 무(無)에서 돈을 그냥 만들어낸다는 것은 너무도 믿을 수 없는 기막힌 아이디어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돈을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은행가는 한껏 활용했다.
이윽고 은행가의 막대한 대출금과 주제넘은 부유함에 사람들이 다시금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어떤 차금인(借金人)들은 예금 보관증서 대신에 진짜 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소문이 퍼졌다. 갑자기 몇몇 부유한 예금자들이 나타나서 자신들의 금의 반환을 요구했다. 게임은 끝났다!
예금증서를 소지한 많은 사람들이 홍수처럼 몰려들었다. 유감스럽게도, 은행가는 그가 발행한 증서대로 금은을 지급할 만큼 충분한 금은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뱅크런(지불불능상태)’이며, 은행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뱅크런’ 때문에 개별 은행들이 망하기도 하고, 당연히 은행가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손상이 끼쳐졌다.
무(無)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관행을 불법화하면 간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은행가들이 제공하고 있던 막대한 양의 신용(信用)은 유럽의 상업적 팽창에 필수적인 것이 되어있었다. 그리하여, 그 관행은 합법화되고, 다만 일정한 규제를 받게 되었다.
은행가들은 빌려줄 수 있는 허구적인 돈의 양에 제한을 가하는 규제조치를 받아들였다. 제한을 했지만 여전히 대출금은 금고에 있는 실제 금은 가치보다 훨씬 많았다. 흔히 그 비율은 9:1이었다. 정부는 불시점검이라는 방법으로 이 규칙의 준수 여부를 감독하였다.
또한 ‘뱅크런’ 상황에서는 중앙은행이 금을 긴급히 투입함으로써 지역은행을 지원하는 조치가 마련되었다. 수많은 은행이 동시에 ‘뱅크런’ 사태에 직면할 때에만 은행가들의 신용거품이 터지고, 시스템이 붕괴될 것이었다.
오늘의 통화시스템
결국 세월이 흘러서, 부분준비제도와 중앙은행의 지원을 받는 은행들의 통합네트워크가 세계의 지배적 통화시스템이 되었다. 동시에 부채 ― 화폐를 뒷받침하는 금은 점차적으로 제로[零]가 되었다. 그리하여 돈의 본질이 바뀌었다. 과거에는 지폐는 실제로 금은으로 교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폐나 전자달러는 또다른 지폐나 전자달러와만 교환될 수 있다. 과거에는, 오늘날 우리가 누군가의 개인수표를 거절할 수 있듯이 민간은행이 발행한 지폐를 거부하는 게 가능했다. 지금은, 민간은행이 만든 돈은 우리가 습관적으로 돈이라고 여기는 달러나 파운드 같은 정부발행 화폐와 합법적으로 동일한 가치를 갖는다.
그러면, 이제 물어야 할 것은? 만일 정부와 은행, 양쪽이 모두 돈을 창조한다면 얼마나 많은 돈이 존재하는가?
과거에는 돈의 총량은 실제로 존재하는 금속의 총량에 한정돼 있었다. 예를 들어, 새로운 금화나 은화가 창조되려면 지하에서 새로운 금이나 은을 발견해서 캐내야 했다. 오늘날에는, 돈은 문자 그대로 부채의 형태로 창출된다. 새로운 돈은 누군가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결과, 만들어질 수 있는 돈의 총량에는 단 하나의 제약만이 있다. 즉, 부채의 총액이 돈의 총량이 된다.
정부는 새로운 돈의 창조에 준비예금제도로 알려진 룰을 강제함으로써 법적 한도를 설정한다. 기본적으로 예금준비율은 임의적인 것이며, 나라마다, 시기마다 달라진다. 과거에는, 은행은 금고에 있는 실제의 금 1달러 가치에 대해서 10달러의 돈을 만들어내는 게 일반적이었다. 오늘날 예금준비율은 금 보유량에 관계없으며, 새로이 신용창조된 돈은 은행이 기왕에 보유하고 있는 자산 ― 부채―돈 ― 에 따라 비율이 정해진다. 오늘날 은행이 갖고 있는 자산은 정부가 발행한 현금과 은행이 중앙은행에 예치해둔 돈에다가 은행이 갖고 있는 계좌예금의 총액이다.
이것을 간단히 설명해보자. 새로운 은행이 문을 열었다. 아직 예금자가 없다. 그러나 은행이 자본금 중에서 1111.12달러의 현금을 중앙은행에 예치해놓는다. 은행의 예금준비율은 9:1이다.
제1단계 : 문이 열리고, 새로운 은행이 첫 대출 고객을 맞는다. 고객은 중고차 매입을 위해 1만달러가 필요하다. 새 은행은 9:1의 준비율로 중앙은행에 예치해둔 게 있다. 이것은 ‘하이파워드머니(high―powered money)’라는 것인데, 이것을 근거로 차금인이 서약을 하면 그 예치금의 9배가 되는 1만달러의 돈을 만들어내는 게 합법적으로 인정되어 있다. 이 1만달러는 어디서 가져온 게 아니다. 이 새로운 돈은 단지 돈을 빌리는 사람의 계좌에 기재되었을 뿐이다. 그러면 그는 중고차를 사기 위해 그 대출금을 근거로 수표에 서명을 하는 것이다.
제2단계 : 중고차 판매상은 이 1만달러를 자신의 은행계좌에 예금한다. 중앙은행에 예치된 ‘하이파워드머니’와는 달리 이 새로이 창조된 돈은 준비율에 의거해서 증식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대신에 그것은 그 준비율에 따라 나누어진다. 9:1의 비율로 새로운 대출금 9,000달러가 1만달러 예금을 토대로 창조될 수 있다.
제3단계 : 만일 이 9,000달러가 그 뒤 제3자에 의해 같은 은행에 예금되건, 다른 은행에 예금되건, 그것은 세번째 신용창조의 합법적인 기초가 된다. 이번에는 신용창조가 가능한 금액은 8,100달러이다. 마치 그 안쪽에 계속해서 좀더 작은 인형이 나타나는 저 러시아인형들처럼, 각각의 새로운 예금이 점점 감소하면서 다음 새로운 대출금을 만들어내는 잠재적 토대가 되는 것이다. 만일 대출금으로 창조된 돈이 은행에 예금되지 않는다면 그 과정은 멈춘다. 그것은 돈의 창조 메커니즘에서 예견되지 않은 부분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단계에서 새로운 돈은 은행에 예금될 가능성이 높고, 준비율에 의거한 대출과정이 계속 되풀이되어 거의 10만달러까지 새로운 돈이 창조될 수 있다. 이 새로운 돈은 모두 대출금(부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와 같은 과정이 처음에 중앙은행에 1111.12달러를 예치해두는 것으로써 합법적으로 인가된 것이다. 1111.12달러는 전혀 건드려지지 않고 중앙은행에 그대로 남아있다!
더욱이 이 교묘한 시스템 밑에서는 은행의 장부는 그 은행의 대출금보다도 예금액 쪽이 10퍼센트 이상 많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 이것은 은행이 대출을 하기 위해서 예금을 확보해야 하는 현실적인 유인(誘引)이 되고, 또한 은행대출금이 예금으로부터 나온다는 일반적인, 그러나 잘못된 인상을 조성한다. 그런데 모든 다음 차례의 대출금이 동일한 은행에 예금되지 않는 한, 어느 한 은행이 단독으로 예금의 90배까지 돈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은행시스템은 닫혀진 회로이다. 따라서 한 은행에서 만들어진 대출금은 또다른 은행의 예금이 되어 순환한다. 이론적으로 볼 때, 교환이 균등히 이루어진다면 궁극적인 효과는 마치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은행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과 정확히 같아질 것이다. 즉, 최초에 중앙은행에 예치한 1111.12달러라는 돈에 의거하여 은행은 은행 자신이 실제로 갖고 있지 않은 1만달러분의 이자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은행은 자신이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빌려준다는 사실이 기묘하게 생각된다면, 이것은 어떠한가. 최근 몇십년 동안 은행들의 집요한 로비활동의 결과로 각국의 중앙은행에 예치금을 두어야 한다는 규칙은 몇몇 나라에서 거의 사라져버렸고, 실제 준비율은 9:1보다 훨씬더 높아졌다. 계좌 유형에 따라 20:1 혹은 30:1이 흔한 경우가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출수수료를 이용함으로써 은행들은 이제 준비율이라는 제약을 완전히 우회하는 길을 발견하였다.
결국 규칙은 복잡하지만 상식적인 현실은 실제로 매우 간단하다. 은행은 우리가 돈을 빌릴 수 있는 만큼 그 한도까지 돈을 만들어낼 수 있다.
누구라도 잠재의식적으로 은행이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당신이 당신의 저금을 인출하고자 할 때, 은행은 그 돈을 누군가에게 빌려줬기 때문에 당신이 인출을 할 수 없다고 당신에게 말하지 않는다. ― 마크 맨스필드, 경제학자·저술가
끊임없이 조폐창에서 찍어내는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만든 돈은 총통화량의 5퍼센트 이하를 차지할 뿐이다. 오늘날 존재하는 돈의 95퍼센트 이상은 누군가가 은행에 부채를 짐으로써 만들어진다. 게다가 이 은행 돈은 새로운 대출이 이루어지고 오래된 대출금이 상환됨에 따라 매일 막대한 양이 만들어지고, 없어진다.
나는 보통시민이 은행에 의해 돈이 만들어진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 나라의 신용을 통제하는 사람들이 정부의 정책을 관장하며, 자신들의 손아귀에 국민의 운명을 쥐고 있다. ― 레지날드 매케나, 전(前) 영국 미들랜드은행 이사장
은행은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서 이러한 통화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다. 첫째, 정부는 우리들이 국가통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률을 통과시킨다. 둘째, 정부는 민간은행의 대출금이 이 정부통화로 지불될 수 있도록 허가한다. 셋째, 법원이 채무이행을 강제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화폐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시민들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면서 통화시스템의 원활한 기능과 신뢰성을 보호하기 위해 여러가지 법규를 통과시킨다.
진실은 간단하다. 즉, 우리가 대출금이나 모기지(저당) 서류에 서명을 할 때, 만일 우리가 빚을 못 갚으면 재산을 포기하겠다는 우리의 서약이 이 거래에 있어서 실질적 가치를 가진 유일한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서약을 지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저 대출계약 혹은 저당권은 이제 소지 가능하고, 교환 가능하며, 판매 가능한 종잇조각이 된다. 그것은 차용증서이다.
그것은 가치를 표상하며, 따라서 일종의 돈이다. 이 돈은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이라고 하는 것이 형태를 바꾼 것이다. 오늘날 자연적인 세계에서 누구에게 무엇인가를 빌려준다고 할 때, 반드시 빌려줄 무엇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망치를 원할 때 내가 당신에게 내가 갖고 있지도 않은 망치를 준다는 약속만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돈이라는 인공적 세계에서는 은행이 자신이 갖고 있지도 않은 돈을 빌려준다고 약속하는 것만으로 그것은 돈으로 통용되고, 우리는 그것을 돈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들의 국가적 통화는 이제 은행의 대출금 거래에 조종되고 있다. 은행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고 있지 않은 돈을 준다는 약속을 할 뿐이다. ― 어빙 피셔, 경제학자·저술가
돈을 빌리는 사람이 서약서에 서명을 하면 은행은 그의 부채를 컴퓨터에 간단히 입력함으로써 거래의 균형을 맞춘다. 차금인(借金人)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그의 계좌에서 ‘대출금’이 되며, 이 은행부채―돈은 정부에 의해 법정통화와 교환이 가능하도록 보증되었으므로 누구든지 그것을 돈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되풀이하지만, 기본적인 사실은 너무나 단순하다. 돈을 빌리는 사람의 서명이 들어있는 서류가 없으면 은행가는 빌려줄 게 아무것도 없다.
정부, 기업, 소기업, 가정에 이르기까지 누구나가 저토록 천문학적인 부채를 지고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여러분은 일찍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어떻게 빌려줄 수 있는 돈이 저렇게 많은지 여러분은 일찍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이제 여러분이 알게 됐듯이, 그 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은행은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냥 부채를 발행함으로써 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부채는 잠재적으로 무한정한 것이기 때문에, 돈의 공급도 무한정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를 둘러싼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풍부한 자원, 기술혁신,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대부분은 정부, 회사, 개인을 막론하고 은행가들에게 무거운 빚을 지고 있다!
사람들은 멈춰 서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실제로 세계의 진정한 부를 모두 생산하고 있는 사람들이 단지 부를 표상할 뿐인 돈을 빌려주기만 하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게다가, 그 돈이란 게 ‘부채’라는 사실, 그리하여 부채가 없으면 돈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 그것은 더 경악할 일이다.
우리의 통화시스템은, 부채가 없을 때 어떠한 돈도 없는 그러한 시스템이다. ― 마리너 S. 에클스, 전(前)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만일 이러한 얘기가 당신에게 새로운 뉴스라면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빚을 청산하면 경제상태가 개선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그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대출받은 돈을 다 갚았을 때 우리에게는 쓸 돈이 더 많아지듯이, 모든 사람이 빚에서 벗어나면 일반적으로 쓸 돈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이다. 그렇게 되면 전혀 돈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돈이 존재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은행신용이 창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완전히 그러한 메커니즘에 의존해있다.
대출금이 없으면, 돈도 없다. ― 이것이 대공황 때 일어났던 사태이다. 대출금이 고갈됨에 따라 화폐공급도 극적으로 위축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상업적 은행들에 의존해있다. 누군가가 돈을 빌리지 않으면, 현금이든 신용이든 돈이 순환하지 않는다. 은행들이 풍부한 돈을 만들어내면 우리는 번영을 누리고,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굶주린다. 우리가 상황 전체에 대한 그림을 파악할 때 우리의 절망적인 처지가 갖는 비극적 어리석음은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 로버트 H. 헴필,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신용국장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은행은 오직 원금만을 만들어낸다. 은행은 사람들이 지불해야 할 이자는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자는 어디에서 마련될 수 있는가?
신용차금인(借金人)이 이자를 지불하기 위해 돈을 획득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일반경제의 흐름 속이다. 그러나 거기에 공급된 화폐의 거의 모두는 바로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돈이다. 즉, 원금에다가 이자를 붙여서 갚기로 되어있는 은행신용으로 만들어진 돈이다.
따라서 도처에서 같은 상황에 놓여있는 차금인(借金人)들이 오직 원금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총통화량에서 저마다 이자가 붙은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한 돈을 획득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원금에 이자를 붙여 빚을 상환한다는 것은 명백히 불가능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자에 해당하는 돈은 원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대한 문제는 모기지(저당)나 정부부채와 같은 장기 대출금의 경우에 이자의 총액은 원금을 훨씬 상회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자 지불을 위해 충분한 돈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담보물 상실(foreclosure) 비율이 매우 높아지고 경제는 기능부전에 빠진다.
사회의 원활한 기능 유지를 위해서 담보물 상실 비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를 위해 더욱더 많은 새로운 돈(=빚)이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이렇게 하면 부채의 총액은 더 커진다. 그러면 더 많은 이자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이 되며, 그 결과, 갈수록 가속화하는 나선형적인 부채 증가가 불가피하게 된다.
돈이 새로운 빚의 형태로 만들어질 때와 그것을 갚을 때 사이의 ‘시간간격’ 때문에 전체적인 화폐부족에 의한 시스템 자체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은행가의 만족을 모르는 신용창조라는 괴물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괴물을 먹이기 위한 돈을 만들어낼 필요는 갈수록 긴박해진다.
오늘날 금리가 저렇게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어째서 우리가 신청하지도 않은 신용카드가 우편으로 자꾸 부쳐져 오는가? 미국정부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출을 빨리 집행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렇게 하면 전체 화폐시스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가?
이성적인 사람은 물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영구히 계속될 수 있는가? 붕괴는 필연적인 게 아닌가?
우리의 부분준비제 은행시스템에 관련하여 한가지 깨달아야 할 것은 아이들의 의자찾기놀이에서처럼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패배자는 아직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앤드류 고즈, 화폐사가(史家)
돈은 생산과 거래를 촉진한다
화폐공급이 증가함에 따라 실제 세계에서의 생산과 거래량이 같은 규모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돈은 갈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경제가 연 3퍼센트 성장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은 일정한 비율로 경제가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금년의 3퍼센트는 작년의 실제 총 재화와 서비스를 기준으로 다시 3퍼센트 성장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3퍼센트 성장이라는 말에서 자연히 머릿속에 그려지는 직선이 아니라, 실제로 그것은 점점더 가파르게 치솟는 기하급수적 곡선을 그린다.
문제는 실체경제의 영구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실제 세계의 자원과 에너지 사용이 영구적으로 가속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시스템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매년 갈수록 많은 자연자원이 쓰레기로 변해야 하고, 이 상황이 영구히 계속돼야 하는 것이다.
기하급수적 성장이 유한한 세계에서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광인이거나 경제학자일 것이다. ― 케네스 보울딩, 경제학자
이 두렵기 짝이 없는 상황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돈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새로워져야 한다. 이제는 좀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정부에 대하여 4개의 단순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세계 전역에서 정부는 민간은행으로부터 이자가 붙은 돈을 빌리고 있다. 정부부채는 총부채의 주요부분을 이루고 있고, 그 부채를 갚는 데에 우리들의 세금이 막대하게 사용된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은행이 어떻게 돈을 만들어내는가를 알았고, 정부가 이것을 허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째 질문. 어째서 정부는 자신이 필요한 돈을 이자 없이 만들어낼 수 있는데도 민간은행으로부터 이자 붙은 돈을 빌리고 있는가?
두번째 질문. 왜 돈을 빚의 형태로 만들어내야 하는가? 항구적으로 순환하며, 이자가 붙은 돈을 끊임없이 빌리고, 다시 빌리고 할 필요가 없는 돈을 어째서 만들지 못하는가?
세번째 질문. 계속해서 가속적인 성장을 하지 않으면 기능할 수 없는 화폐시스템으로써 어떻게 지속가능한 경제를 건설하겠는가? 계속적인 기하급수적 성장과 지속가능성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마지막 질문. 총체적으로 영구적인 성장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통화시스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속가능한 경제의 창조를 위해서 무엇을 바꿀 필요가 있는가?
이자놀이
한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이자놀이(usury)라고 하였고, 그것은 엄한 처벌 ― 심지어 사형 ― 을 받았다. 모든 주요 종교는 이자놀이를 금지하였다. 이자놀이를 반대하는 대부분의 논리는 도덕적인 것이었다. 돈의 유일한 정당한 목적은 실제의 재화와 서비스의 교환을 원활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소유하고 있는 돈으로 돈을 증식한다는 것은 어떤 형태이든 기생적인 행위 혹은 도둑질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상업의 발달에 의한 신용거래의 필요가 증가함에 따라, 도덕적 논리는 약화되고, 대금업(貸金業)은 위험과 기회손실을 수반하는 행위이므로 대금에 따른 이익을 취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가 우세해졌다.
오늘날 옛사람들의 생각은 기이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돈에서 돈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당연히 추구해야 할 이상으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미래를 모색하는 노력에 있어서 이자는 도덕적이면서 동시에 실제적인 문제이다. 에너지원이라는 자본을 약탈하지 않고, 오직 현재의 소득만으로 살기 때문에 여러 세기를 지탱할 수 있는 사회와 경제를 상상해보자. 같은 기간 동안에 자라는 나무 이상으로는 벌목을 하지 않고, 모든 에너지는 재생가능한 에너지이다. 이 사회에서는 재생불가능한 자원은 모두 재사용 내지 재순환시킨다. 인구도 정상(定常)상태를 유지한다. 그러한 사회는 영구적인 가속 성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화폐시스템으로써는 기능할 수 없다. 안정된 경제는 적어도 붕괴되지 않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화폐공급을 필요로 한다.
자, 한번 상상을 해보자. 몇몇 사람이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주는 일을 체계적으로 하기 시작한다면, 화폐공급에서 그들의 비중은 커질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계속적으로, 상환되는 모든 돈에 이자를 붙여 다시 대출을 한다면 그 필연적인 결과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게 금이건 법정화폐이건 부채―돈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대금업자는 결국 모든 돈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당잡힌 담보물에 대한 차압이 이루어지면 그들은 실물재산까지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 핵심적인 문제는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주는 일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고르게 분배된다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은행이익에 대하여 중과세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은행은 무엇 때문에 사업을 하려고 하겠는가?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은행업이 사회에 대한 비영리적 서비스사업으로 운영되어, 자신의 이자수입을 보편적 시민배당금으로 분배하거나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거나 하는 시스템으로 변해야 할 것이다.
화폐제도의 변혁
시스템의 근본적 성격이 문제의 원인이 된다면 땜질 처방으로는 문제해결을 할 수가 없다. 그 시스템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많은 화폐제도 개혁가들은 금본위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은 오랜 세월 동안 신뢰를 받아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금을 이용한 많은 속임수를 간과하고 있다. 금을 깎아내거나 순도를 저하시키거나 매점 행위를 하는 등등, 이러한 것은 고대 로마에서 흔한 관행이었고, 결국 로마 멸망에 기여하였다.
어떤 이들은 금보다 양이 풍부하고, 따라서 매점이 어렵다는 이유로 은을 추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귀금속을 다시 불러들여야 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쇼핑을 위해서 무거운 금속화폐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뿐만 아니라, 금이 또다시 화폐의 유일한 합법적 토대가 된다면, 금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갑자기 한푼도 없게 된다!
또다른 화폐개혁 제창자들은 탐욕과 부정직함이 주된 문제이며, 따라서 금은으로 되돌아가는 것보다 정직하고 공평한 화폐제도를 만드는 더 나은 길이 있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사실, 창의적인 정신들은 돈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대안적 방법을 제안해왔다. 많은 민간 교환시스템들은 은행처럼 부채로서의 돈을 만들어내지만, 그것은 투명하게, 그리고 이자를 부과함이 없이 행해진다. 그 한 예는 노동시간을 서약하는 것으로써 부채가 표현되는 교환시스템이다. 모든 일은 동등하게 달러가치로 표시되어, 노동에 들인 시간이 재화의 달러가격과 일치하게 되어있다. 이런 종류의 화폐시스템은 회계방식을 설계할 수 있고, 자발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참가자들만 발견할 수 있다면 누구든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지역교환 화폐시스템은 현재로서는 아직 널리 쓰이고 있지 않지만 어떤 공동체이건 훌륭한 긴급 구제 대책으로 사용될 수 있다.
화폐제도 개혁은 선거제도 개혁처럼 중대한 문제이며, 변혁에의 의지와 상투적인 틀을 벗어나 사고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화폐제도 개혁은, 선거제도 개혁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 시스템을 통해서 이익을 취하고 있는 막강한 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최대한 힘을 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돈이란 단지 하나의 아이디어라는 것을 알았고, 우리가 만들어내는 무엇이든 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 매우 단순한 대안적 화폐개념이 있다. 이 모델은 과거에 영국과 미국에서 실제로 잘 기능하고 있었지만, 금세공사―은행가들과 부분준비제도 때문에 파괴된 시스템에 토대를 둔 것이다.
항구적이고, 이자 없는 돈에 기초한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돈은 정부에 의해 만들어지고 사용되어야 한다. 바람직스럽기는, 그 돈은 도로, 철도, 교량, 항만, 공설시장 등 경제를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내구성을 가진 하부구조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 돈은 부채로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돈의 사용처 ― 그게 무엇이든 ― 그 자체가 가진 가치로서 창조될 것이다.
이 새로운 돈이 필요에 따른 거래량 증가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인플레를 발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정부지출이 인플레를 유발한다면, 두가지 조치가 가능하다. 인플레는 사실상 돈에 세금을 부과한 것과 같은 것이다. 돈의 가치가 20퍼센트 하락하건, 정부가 우리들한테서 우리의 돈 20퍼센트를 가져가건, 우리의 구매력에 미치는 효과는 동일하다. 이렇게 볼 때, 세금이 아닌 인플레는 한도만 지켜진다면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아니면, 정부는 세금을 받아 그 돈을 사용하지 않고 화폐공급량을 줄여 화폐가치를 복원함으로써 인플레에 대항할 수 있다.
임금과 물가의 하락 현상인 디플레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정부는 그냥 더 많은 돈을 유통시키기만 하면 될 것이다.
부채의 형태로 돈을 만들어내는 민간은행과 경쟁하지 않는다면, 정부는 국가의 화폐공급을 좀더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사태가 잘못되면 누가 잘못했는지 책임소재가 분명해질 것이다. 화폐가치를 보존하는 정부의 능력에는 부침이 있을 것이다. 정부는 지금처럼 일차적으로 세금을 가지고 국가를 운영하겠지만, 그러나 세금은 민간은행에 이자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훨씬더 많이 확보되고, 그 혜택은 멀리까지 미칠 것이다.
연방정부가 자신이 필요한 돈을 그냥 스스로 만들기만 하면 국가부채란 있을 수 없다. 정부부채에 대해 은행에 이자를 지불함으로써 우리가 집단적으로 영구히 은행의 노예가 되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것이다.
화폐는 새로운 형태의 노예제이다. 화폐가 오래된 노예제와 다른 점은 그것이 비인격적이라는 사실, 즉 주인과 노예 사이에 아무런 인간적 관계가 없다는 사실에 있을 뿐이다. ― 톨스토이
보이지 않는 힘
자신이 자유롭다고 잘못 믿고 있는 사람보다도 더 노예는 없다. ― 괴테
우리가 민주주의와 자유라고 믿어온 것은, 실제로는, 교묘한 그리고 보이지 않는 형태의 경제적 독재체제이다. 우리의 사회 전체가 통화공급 때문에 은행에 전적으로 의존해있는 한, 은행가들은 누가 돈을 가지거나, 가지지 말아야 할 것을 정하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현대의 은행제도는 무(無)에서 돈을 제조해낸다. 이 과정은 일찍이 발명된 그 어떤 것보다도 놀라운 천재적인 기술이다. 은행업은 부정직한 마음속에서 구상되었고, 죄악 속에서 태어났다. 은행가들은 지구를 소유하고 있다. 그들에게서 지구를 빼앗고, 그 대신 돈을 만들어내는 힘을 그대로 맡겨놓는다면, 잠깐 사이에 그들은 지구를 도로 차지할 만큼 충분한 돈을 만들어낼 것이다. … 그들에게서 돈을 만들어내는 권력을 박탈해야 한다. 그러면 훨씬더 살기 좋고 행복한 세계가 될 것이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노예로 살기를 원한다면 은행가들이 계속해서 돈을 만들어내고, 신용을 통제하도록 내버려두라. ― 조시아 스탬프 경(卿), 잉글랜드은행 총재(1928―1941)(당대 영국에서 제2의 갑부로 알려졌었다)
식민지인들이 조지 3세와 국제은행가들의 손아귀를 벗어나 자신들의 돈을 발행할 항구적인 힘을 가질 수 없게 된 것이 아메리카혁명전쟁의 주된 이유였다. ― 벤자민 프랭클린
1776년의 혁명 이래 미합중국의 역사는 주로 유럽 국제은행가들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서사시적 투쟁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 투쟁은 1913년에 패배로 종결되었다. 그해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연방준비제도법에 서명을 함으로써 국제 은행카르텔이 미국의 통화를 지배하도록 허용하였던 것이다.
나는 가장 불행한 사람의 하나다. 나는 부지중에 내 나라를 망쳤다. 한 위대한 산업국가가 자신의 신용시스템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우리의 신용제도는 집중화되어 있다. 그리하여 국가의 성장과 우리의 모든 활동은 몇몇 소수인의 손에 장악돼 있다. 우리는 문명세계에서 가장 악질적으로 지배되고, 가장 완전히 통제되는 정부의 하나가 되었다. 이제 더이상 자유로운 의견에 의한 정부도, 다수의 의견과 투표에 의한 정부도 아니라, 소그룹의 지배자의 의견과 강박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가 되었다. ―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1913―1921)
이 시스템은 깊이 뿌리박혔다. 이 문제에 대해 학교도 언론도 침묵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여러해 전에, 캐나다의 부총리가 비공식적으로 고등교육을 받은 전문가들과 일반시민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고, 그 결과 그들 가운데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음을 발견하였다. 실제로, 은행의 일선 실무자까지 포함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잠시라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아메리카의 모든 혼란, 분규, 고통은 헌법이나 연방제의 결함, 혹은 명예심이나 덕성의 결여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화폐와 신용의 본질에 대한 무지에 기인하고 있다. ― 존 애덤스, 미국헌법 기초자
부채로서의 돈이라는 근대 화폐제도는 지금부터 300년 전쯤, 영국 국왕의 허가를 받아 2:1의 준비율로 금에 대한 수령증을 빌려주면서 잉글랜드은행이 창설되었을 때 탄생했다. 그 조그마한 비율이 악몽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제 이 시스템은 온 세계를 지배하면서 무(無)에서 사실상 무한정한 돈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결과,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절대로 청산할 수 없는, 끊임없이 커가고 있는 빚의 노예가 되었다.
이것은 단지 우연히 일어난 사태인가? 아니면 음모에 의한 것인가? 분명한 것은, 엄청나게 큰 문제가 여기에 걸려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통화량을 통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모든 산업과 상업의 절대적인 주인이 된다. … 이 전체 시스템이 꼭대기의 소수 권력자에 의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손쉽게 통제되고 있음을 깨달을 때, 여러분은 인플레와 불황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알게 될 것이다. ― 제임스 A. 가필드, 암살된 미국 대통령
정부가 지출해야 할 돈과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충족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통화와 신용을 정부 자신이 만들고, 발행하고, 유통시켜야 한다. 이 원칙의 채택에 의해 납세자들은 막대한 액수의 이자를 지불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돈을 만들고 발행하는 특권은 정부의 최고 특권일 뿐만 아니라, 정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창조적 기회이다. ―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된 미국 대통령
통화와 신용(크레디트)의 발행권리가 정부에 돌려지고, 그것이 정부의 가장 뚜렷하고 신성한 책임으로서 인정되기 전에는, 의회주권이나 민주주의에 관한 온갖 논의는 공허한 잡담에 불과하다. … 국가가 자신의 신용제도를 통제할 권리를 잃는다면 누가 법률을 만드는가는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 대금업자들이 득세하면 어떤 나라든 파멸한다. ― 월리엄 라이언 매켄지, 캐나다은행 국유화를 단행한 캐나다 총리
우리는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타임〉 및 기타 위대한 간행물들에 감사한다. 그 간행물들의 책임자들은 거의 40년 동안 우리의 회합에 참석하였고, 신중하게 행동하겠다는 약속을 존중해왔다. 우리들이 저 기간 동안에 대중에게 노출되었더라면 세계를 위한 우리의 계획을 발전시키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계는 세계정부를 향한 행진을 하는 데 보다 세련되고, 잘 준비가 되어있다. 초국가적인 지적(知的) 엘리트와 국제은행가의 주권은 과거 세기에 행해졌던 국가적 자기결정 방식보다 더 바람직스러운 것이 확실하다. ― 데이비드 록펠러, 1991년 삼극위원회에서의 연설
보호가 필요한 것은 오직 소소한 비밀들이다. 엄청난 비밀은 대중이 믿지 않기 때문에 굳이 감출 필요가 없다. ― 마셜 맥루헌, 미디어 ‘구루’
(김종철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