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홍 지음,《농부시인의 행복론》(녹색평론사, 2010년)
울음이 있는 시인
경남의 창원과 마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면서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서정홍 선배를 만나 알게 됐고 스무해 가까운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시를 쓴다거나 책을 낸다거나 아니면 운동을 한다거나 하는 일에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다른 데서 받은 도움과 영향이 더 많았습니다.
제게 서정홍 선배는 언제나 ‘시원한 물줄기’였습니다. 저는 그 물로 목마름을 가시게도 했고 깨끗함을 더하기도 했습니다. 괴롭고 어려울 때 서정홍 선배를 만나 얘기를 주고받으면 괴로움과 어려움이 덜해지고, 즐겁고 기쁠 때 만나 얘기를 나누면 즐거움과 기쁨이 곱이 됐습니다.
선배는 제가 하고 싶은 모든 얘기를 다 들어줬고 선배도 무슨 얘기든 그것이 선배 속에 있으면 끄집어내 보여줬습니다. 그렇게 만남을 하고 나면 저는 선배가 제 머리를 쪼개어 시원하고 차가운 물로 깨끗하게 행궈내주는 것 같은 그런 보람과 느낌을 누리곤 했습니다.
이렇듯 선배는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선배는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선배는 이렇게 제게 남아있었습니다. 노동자였을 때도 그랬고, 농민운동을 할 때도 그랬고, 시골에 가 농사를 지을 때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뿐이었습니다.
제게는 선배의 생활이 없었습니다. 선배의 생활은 제가 생각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선배를 만나거나 생각할 때도 그랬습니다. 시를 비롯해 선배가 쓴 글들을 읽으면서도 선배의 삶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선배의 아름다운 마음씨, 고운 숨결, 선한 눈길,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는 생각들에 감탄만 해댔을 따름입니다.
선배한테서, 집안이 가난해 국민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공장에 들어갔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도시에 살았던 세월 동안 내내 전세살이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선배는 누구나 그러하듯이 실상이었지만, 제게 남아있는 선배는 허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서정홍 선배가 펴낸 책을 읽고 하는 말들을 들으면서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서정홍 선배를 칭찬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을 기발하게 할 수 있나, 어쩌면 이렇게 자연과 사람을 아낄 수 있나, 어쩌면 이렇게 사람을 미움 없이 볼 수가 있나, 어쩌면 이렇게 자식과 아내를 사랑스럽게 여길 수 있나….
그이들과 저는 닮아있었습니다. 선배에게서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만 자기 입맛대로 느끼고 핥고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뒤집는 이야기를 제가 사랑하는 친구에게서 들었습니다. 선배의 시 〈아내에게 미안하다〉를 두고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멀건 대낮에
여성회관 알뜰회관 교육회관으로
취미교실 다니는 여성들을 보면
아내에게 미안하다생활꽃꽂이 꽃장식 동양화 인체화
서예 사진교실 풍물장고 생활기공
교실마다 가득 찬 여성들을 보면
아내에게 미안하다혼인한 지 십칠년
철없는 자식들 키우느라
어수룩한 남편 뒷바라지 하느라
취미교실 문 옆에도 못 가보고
뒤돌아볼 새도 없이 십칠년하루일 마치고
별빛 달빛을 머리에 이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아내에게 미안하다
“아줌마들이 이 시를 읽으면서 서정홍 시인 아내를 부러워만 하더라고. 그런 한편으로는 자기 남편이랑 비교해갖고 자기 남편은 욕하고 서정홍 시인은 대단하게 여기고….”
여기까지는 어쩌면 예전에도 들어본 이야기였습니다. 적어도 창원에서는, 무슨무슨 도서관 책 읽는 모임에서 서정홍 선배 시집을 읽을거리로 삼는 일이 드물지는 않거든요.
이어지는 말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그 삶이 빤히 보이잖아. 서정홍 시인과 그 아내가 어떻게 사는지가 말이야.”
어쩌면 아무 느낌이 없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제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반성을 했습니다.
제가 어쩌면 서정홍 선배에게서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비루하게 삶을 살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서정홍이 하는 얘기는 다 알아듣고 인정하잖아.”
그러면서, 물론 선배가 스스로 골라잡았기에 아무 아쉬움 없는 일생이겠지만, 그 삶에 들러붙을 수밖에 없는 괴로움과 서글픔과 힘듦과 고달픔과 외로움과 쓸쓸함과 아픔 따위는 아예 돌아보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부터는 선배를 마주하는 자세가 조금은 달라졌습니다. 깊어졌다고나 할까요, 이를테면 선배라고 해서 늘 웃음만 있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울음이 있기도 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 어리석게도, 만나 사귄 지 스무해 가까이 되도록 그런 생각을 못했습니다.
흔들리기 때문에 아름답다
서정홍 선배는 여태 많은 글을 썼지만 제대로 된 산문집은 이번 《농부시인의 행복론》이 처음인 줄로 압니다. 앞서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노릇은 해야지요》를 내기는 했습니다만, 그것은 그야말로 ‘아버지노릇’에 한정된 얘기여서 선배의 생각을 통째로 훑어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농부시인의 행복론》에는 서정홍 선배의 생각이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거기에는 세월이 안겨준 고운 결이나 무늬도 있지만 아직은 그런 결이나 무늬가 되지 못하고 상처로 남아있는 구석도 없지는 않습니다.
이런 대목에 이르면 저는 눈물이 납니다.
2005년부터 도시에서 맺은 이런저런 ‘인연의 끈’을 하나둘 정리하고, 거의 빈손으로 여기 황매산 기슭 산골마을로 들어오기까지 참 말못할 어려운 사연도 많았습니다. 도시에서 아내와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큰 죄라도 짓는 것처럼 부지런히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20년 넘도록 맞벌이하여 모은 돈이 고작 2,000만원 남짓 되었습니다. 돈벌이 안되는 일만 골라서 하며 살아온 탓도 있지만, 돈을 만지는 것이 싫었으니 어찌 돈이 가까이 붙을 수 있겠습니까. (237쪽)
여기서 말하는 그 ‘참 말못할 어려운 사연’이라는 것이, 물론 누구한테나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정홍 선배라고 해서 사연이 남들보다 더 별나고 더 대단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저렇게 몇마디 말로 뭉뚱그려지기 전에는, 하늘과 땅을 죄 덮어버릴 정도로 크고 많다는 사실을 참 이제야 느낍니다.
“하루라도 일하지 않으면 죄라도 짓는 것처럼 부지런히 살아”온 그 정상(情狀)이, 〈아내에게 미안하다〉라는 시에도 그 표현이 있지만, ‘별빛 달빛을 머리에 이고 파김치가 되어’ 지냈을 뿐 아니라, 때로는 팔다리까지 꺾이고 부러지는 간난신고와 풍찬노숙이었음을 이제야 참 헤아립니다.
제아무리 “돈을 만지는 것이 싫었”어도 “20년 넘도록 맞벌이하여 모은 돈이 고작 2,000만원 남짓”밖에 되지 않을 때 느꼈을 그 허망함이랄까 참담함이 얼마나 크고 깊었겠는지 이제야 조금 짐작이 됩니다. 어지간한 인생으로 선배 나이 정도 되면 그보다 열배가 더 있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 말씀입니다.
1999년부터 2000년 사이에는 덕유산 자락에서 젊은이들과 함께 집을 짓고, 함께 밥을 먹고 농사일을 하면서 배운 게 참 많습니다. 용기 하나만으로 세상을 살기에는 부닥치는 벽이 너무 두껍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고, 정홍이란 인간이 얼마나 속이 좁은 놈인지도 그때 알았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한테 알게 모르게 많은 상처를 주고 실수와 잘못을 저질렀으니까요. 내 모습을 내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참으로 보잘것없고 비겁하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으니 불행 가운데 다행이지요. 수십년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을 그때 다 배우고 깨달았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아픔과 외로움도 많았습니다. (236쪽)
이런 대목에서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눈바람 몰아치는 한겨울 길가 양지바른 구석에 추위도 아랑곳 않고 들풀이 하나 파릇파릇 솟아올라 있습니다. 대부분 그냥 지나치지만 어떤 눈 밝은 사람들이 알아보고 “이야! 이리 추운데도 시들지 않았네” 놀라워합니다. 그렇지만, 정작 차가운 땅에 뿌리를 내린 그 들풀은 죽을 맛입니다. 오늘 낮 파랗다가도 밤새 기온이 떨어지면 얼어붙는 바람에 이튿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얼마 안 가 햇살에 그냥 녹아내리기 일쑤입니다. 다만 그 들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잎을 솟구칠 따름입니다. 서정홍 선배가 들풀이라는 생각을 이제는 한번씩 합니다.
“사람과 사람은 조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오래갈 수 있습니다.” 이런 데서는 어떻습니까? 서정홍 선배가 이런 깨달음에 이르기 전에, 이를테면 지금 세상 사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이, ‘너무’ 가깝게 지냈거나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이 그렇지 않게 표변했을 때 당했을 쓰라림이 밑바닥에 깔려있는 듯한 서늘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사람 마음이 가끔 흔들리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흔들리는 그 사이로 깊은 정이 든다는 걸 농사짓고 살다보면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255쪽)
아무리 뜻이 깊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혼자 있으면 그 뜻이 허물어지기 쉽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서로 기대지 않고는 살 수 없을 만큼 자주 흔들리니까요. (240쪽)
제가 잘은 모르고 어쩌면 쓸데없는 감정이입이랄 수도 있습니다만, 그런 말씀 아랑곳 않고 제 편한 대로 얘기하자면, 선배가 제아무리 조금더 불편하고 조금더 가난하게 살기로 스스로 작정했다 할지라도, 순간순간 느낄 수밖에 없는 그 마음의 흔들림이 이런 데에 자취를 고스란히 남기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서정홍 선배 같은 사람은 흔들리지도 않고 남에게 기대지도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외로움 따위도 없는 그런 사람인 줄로만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깨달았는데, 흔들리니까 사람이고 기댈 수 있으니까 사람인 것입니다. 바로 그래서, 사람이 때로는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나를 바로 세우는 일’
서정홍 선배는 얼핏 보면 세상을 향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지만 가만 들여다보면 자기를 향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자기를 향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 다음, 그 말과 생각과 행동에 스스로가 아무 거리낌이 없을 때 세상을 향해서도 그리합니다. 저는 그것을 이런 대목에서 느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를 바로 세우는 일’이란 ‘어떤 줏대를 가지는 일’이 아니고, 원래는 내가 아니었지만 어느덧 내가 돼버린 ‘욕심이나 집착 따위를 털어내고 없애는 일’이리라 저는 짐작합니다.
아는 사람 한사람 없는 작은 산골마을에 들어와서 농사지으며 스스로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남을 들여다보기 전에 나를 먼저 들여다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입니다. 농사를 짓든, 집을 짓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무엇보다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 먼저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도시에서 월급이란 놈을 받아먹고 살 때에는, 그놈에게 꼬리를 붙잡혀 나를 세우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밤새 나를 세워놓으면, 해가 뜨자마자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런데 남의 논밭 빌려 농사짓고 살면서부터 나를 세우는 일이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루하루 무엇을 할 것인가를 내가 스스로 생각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월급이란 놈을 받아먹고 살 때에는 남이 시키는 대로 하루를 살았습니다. 내 몸과 마음을 월급이란 놈이 늘 감시하고 짓누르고 있었으니까요. (202~203쪽)
그래서 선배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들 모인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뒤에서 선생님들끼리 무슨 얘기를 하더라도, 아무 거침없이 이렇게 툭툭 던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치, 바람을 그물이 가둘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남을 가르치기 전에 나를 가르쳐야 합니다. 도시에서 온갖 편리함을 다 누리면서 입으로만 아이들 앞에서 환경을 살리자고, 우리 농산물을 먹자고, 농촌을 살리자고 해 봐야 그 말을 마음에 담을 아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들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선생님들한테 좋은 말을 듣고는 돌아서서 속으로 이런 말을 할 것입니다.
“선생님은 좋은 옷을 입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환경을 살리자 하고, 선생님은 농부가 되지 않으면서 만날 우리한테만 농부가 가장 소중하다며 떠들어대니 누굴 믿고 사나.”(189쪽)
이런 바탕에는 진정 근본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어짐(연결)과 돌아감(순환)입니다. 모든 것이 이어지고 돌아간다면 어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이어지고 돌아간다면 어느 하나만 삐끗해도 전부가 다칩니다. 이것을 선배는 꿰뚫어 봤을 뿐 아니라 몸으로 체득한 것 같습니다.
사람은 흙에서 태어나서 흙에서 나온 것을 먹고살다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니 사람이 곧 흙이며 흙이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가 태어난 흙을 떠나 딱딱한 아스팔트와 시멘트 숲속에서 살고 있으니 어찌 맑은 마음을 지닐 수 있겠습니까. 틈이 나면, 아니 억지로라도 틈을 내어 흙을 밟아보시기 바랍니다. (47쪽)
흙을 하찮게 여기면 이런 깨달음을 자기 것으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선배를 보면 흙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어떤 빼어난 철학적 태도에서나 오묘한 사색에서 오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객관 사실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에서 나옵니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덮고 있는 흙, 이 흙 1센티미터가 쌓이는 데 넉넉잡아 400년이 걸리고, 콩알 반쪽밖에 안되는 흙알갱이 속에도 눈에 안 보이는 미생물이 무려 2억마리나 살고, 흙 한줌 속에 살고 있는 생명이 지구에 사는 사람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답니다. 2,000~3,000년이 걸려야 바윗돌에서 겨우 10센티미터 남짓 만들어진다는 귀한 흙입니다. 자연이 만들어낸 최고 걸작이라 한다지요. (45쪽)
그래서 선배는 이렇게 권합니다.
때론 세상걱정 잠시 내려놓고 흙 위에 편안하게 누워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깨달음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아, 흙이 바로 나였구나! 아니, 내가 흙이었구나! 왜 그걸 모르고 살았단 말인가! (47쪽)
물론 선배가 펴낸 《농부시인의 행복론》에는 이 밖에도 훨씬 가치롭고 재미있고 감동스러운 얘기들이 잔뜩 들어있습니다. 저는 그런 좋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대목은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앞다퉈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