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치헌 지음
《인디언 마을공화국―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왜 국가를 만들지 않았을까》(휴머니스트, 2012년)
김일성, 박정희, 미국. 돌아보니, 우리세대의 성년식은 저 두 인물(엄밀하게는 두 국가)과 한 제국의 실체와 직면하는 과정이었다. 1960~70년대 초·중·고를 거치는 동안 저들의 존재와 기원(起源)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은 절대 금기였다. 저들은 국민의 무의식 밑바닥에 똬리를 틀었다. 저들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는 스스로 검열해야 했다. 저들에 관한 담론은 단 하나였다. 예외가 없었다. 예컨대 김일성은 인류 탄생 이래 최악의 인물이었다. 그의 항일투쟁은 완전 날조된 것이었다. 박정희는 김일성 못지않은 ‘신격’이었다. 이름조차 소리내어 읽을 수 없었다. 그의 ‘본명’은 6 혹은 8음절이었다. 박정희대통령(각하). 언제나 6, 8자로 쓰고 읽어야 했다.
미국(美國)이라고 표기하는 아메리카 유나이티드(US)는 우리와 피를 나눈 동맹국(혈맹)이자 영원한 우방이었다. 미국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적화통일되었을 것이고, 휴전 이후에도 미국의 원조가 없었다면 보릿고개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1970년대 후반, 결정적으로는 1980년 5월 광주를 통과하면서 저들의 ‘본색’이 노출되기 시작했다. 1979년 10월 27일 아침 다락방에서 각하의 유고 뉴스를 들으며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박정희가 죽었다’. 1980년대 북한바로알기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그리고 미국. 미군을 쫓아다니며 ‘헬로, 깁미 쪼꼬렛’을 외치던 소년에게 미국은 더이상 ‘아름다운 나라’가 아니었다. 음흉한 제국이었다. 한국전쟁 이래 전세계에서 미국과 무관한 전쟁은 거의 없었다.
197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에게 미국은 대중문화의 발원지, 성지였다. 팝송에서 통기타와 청바지, 생맥주, 파카만년필…. 무엇보다도 할리우드영화가 있었다. 우리세대를 키운 것은 8할이 할리우드영화였다. 생각난다. 1960년대 후반, 둘째 형의 손을 잡고 처음 들어갔던 서울 청량리 아카데미극장. 서부영화였다. 서부영화에 빠져들면서 나는 백인 총잡이 편이었다. 카우보이모자를 쓰고 입가에 시가를 문 주인공이 인디언을 명중시킬 때마다 객석에서 환호가 터졌던 것 같다. 청소년기에 나는 문명개화한 백인이었다. 인디언을 증오하는 미국인, 핵무기가 있어야 평화를 유지한다고 믿는 힘의 숭배자, 제국주의의 아들이었다. 1980년대 초반, 우리세대는 20대 초반까지 완벽하게 속았다. 국가의 ‘각인효과’는 대성공이었다. 우리세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맞춘 대상을 부모로 여기는 조류와 다름없었다. 우리는 박정희와 미국이라는 ‘대부’를 종종종 따라다닌 아주 순한 오리새끼였다. 오리새끼는 오래된 마을을 등지고 도시로, 도시로 달렸다.
한국인의 눈으로 본 북아메리카 ‘피의 역사’
《인디언 마을공화국》은 제목 못지않게 부제가 눈길을 끌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왜 국가를 만들지 않았을까’. 마을공동체가 인류의 마지막 비상구라고 믿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의 제목과 부제는 흡인력이 대단했다. 인디언이 국가를 건설했다면 마을공화국은 사라졌을 것이었다. 이 책에도 인용되어 있지만, 칼 폴라니는 19세기 후반 인도 대중들이 굶어 죽은 이유는 영국의 착취 때문이 아니고 인도의 마을공동체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오래된 마을(사회)이 국가보다 더 효과적인 사회적 자본이라는 것이다. 마을공동체의 기반이 없는 국가는 뿌리 없는 나무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는 지금 어떤 지경인가. 농민이 전체 인구의 7% 미만(350만 명)인 사회, 1인 가구가 400만을 돌파한 사회, 자살률과 이혼률이 세계 최고이고, 출산률이 세계 최저인 사회가 어떻게 국가를 지탱할 것인가. 아니,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가족과 공동체가 급격하게 파괴되는데도 속수무책인 국가를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다시 물어야 한다.
현역 변호사인 저자 여치헌 씨는 한때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인디언 아가씨와 한국 청년을 주인공으로 러브 스토리를 써내려가다가 인디언 부족의 역사를 톱기 시작했다고 한다. 저자는 ‘세계평화의 전도사로 자처하는 미국이 인디언을 살육하고 그들의 땅을 강탈한 사실을 어떻게 합리화했는가’, ‘인디언 부족들이 연합해서 미국정부에 대항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인디언은 국가를 만들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안 만든 것일까’. 저 두 개의 질문을 붙잡고 미국과 북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서 벌어진 ‘피의 역사’를 복원한 것이 《인디언 마을공화국》이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즉 인디언에 대한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 후반 디 브라운의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가 번역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30여 종의 인디언 관련 서적이 나와있다.*** 하지만 류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제외하면 모두 번역서다. 류시화의 저 책도 인디언 부족의 연설문을 번역하고, 거기에 주해를 붙인 형식이어서 완전한 국내 저작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여치헌 씨의 이번 책은 한국인의 시각에서 접근한 최초의 인디언 멸망사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미합중국의 탄생은 정확하게 인디언 부족의 죽음과 겹친다. 인디언 부족, 인디언의 땅이 사라지는 만큼 미합중국의 영토는 커졌다. 현재 미국에는 약 310개에 달하는 인디언 보호구역이 있으며, 인디언 인구는 250만 명에 달한다. 19세기 후반 미국정부는 ‘좋은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이라고 말한 정도로 인디언을 적대시했다. 제법 알려진 사실이지만, 순례시조라고 불리는 영국인들이 북미 케이프가드 해안에 도착하던 1620년 이래,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은 인디언의 환대가 없었다면 결코 이주에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초기 영국인은 인디언으로부터 옥수수 재배법에서 물고기 잡는 법, 집 짓는 기술은 물론 사회 조직 원리까지 배웠다.
17세기 이전 북미대륙에는 원주민 1,200만 명이 거주했다. 부족 수만 해도 600개가 넘었다. 인디언사회는 “비강제적인 정치권력을 가진 국가 없는 사회”였다. 이 책을 관류하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국가보다 오래된 사회”를 복원하지 않는 한 인류의 미래는 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가 보기에 국가는 폭력의 주체다. “전쟁을 제외한다면, 지금까지 국가가 주도한 가장 야만적인 폭정은 핵발전소의 건설이다. 이보다 근원적인 국가폭력이 유구한 마을공동체를 유린, 해체한 것이다.” 저자는 크로포트킨의 분노를 인용한다. “실제로는 촌락공동체가 자연적으로 사라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 국가는 예외 없이 촌락공동체를 파괴했다.”
어디 인디언 마을뿐이랴. 멀리 갈 것도 없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한반도에서 일어난 사태를 보라. 북이든 남이든 국가권력은 오래된 토착 공동체를 여지없이 훼손했다. 남과 북은 산업화의 기치를 내세워 강제적으로 이주 정책을 단행했다. ‘내국(內國) 디아스포라’가 양산되었다. 경부선과 호남선 철도와 고속도로는 마을공동체의 노동력을 도시와 공업단지를 흡수하는 ‘거대한 빨대’였다. 산업화는 공업화였고 도시화였다. 산업화는 농촌, 농민, 농업의 붕괴 위에서만 가능했다. 이농향도로 표현되는 내국 디아스포라는 문자 그대로 문명사적 단절이었다. 토착 문화를 궤멸시킨 것이 근대국가의 가장 큰 범죄라고 나는 생각한다.
국가와 전쟁에 대한 ‘남다른 안목’
저자는 “대부분의 국가는 자신이 통치하고자 하는 사회보다 젊다”는 제임스 스코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근대국가와 토착 사회를 재정의한다. 국가보다 사회가 커야 하며, 그래서 국가보다 먼저 마을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토박이 주민이 대를 이어 살아온 사회에 권력을 부여하지 않는 한, 국민을 위한다는 국가의 어떤 시도도 결국엔 공염불로 끝나고 말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더 나은 국가(그런 것이 있다면)란 오래된 사회를 존중하고, 오래된 사회로부터 배우는 국가다. 타자에 대한 배려와 존중, 공적 가치에 바탕한 한계치 설정,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적 세계관(다코타족은 ‘다 함께 연결된 사람들’이란 뜻이다)에서 비롯되는 절제의 미덕. 이 모든 가치와 태도가 오래된 사회 ―‘장소에 뿌리박은(土着) 사회’에서 우러난다. 이것이 바로 인디언 부족연합의 비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디언사회가 부족 연합이나 국가 건설을 외면한 이유는 명백하다. 사회 규모가 커지면 반드시 권력자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족 추장도 권력을 갖지 않았다. 인디언은 강제적 정치권력이 필요하지 않은 적정한 사회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인디언의 전쟁에 대한 생각은 각별했다. 근대국가의 전쟁과는 판이했다. 인디언이 부족 간 전쟁을 벌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인디언 부족 중에는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전쟁 중 사망하면, 그가 지녔던 영혼이 빠져나가 부족 전체 영혼의 부피가 줄어든다고 생각했다. 영혼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전투를 벌였고, 생포한 적은 양자로 삼았다. 두 번째는 ‘더 큰 폭력을 피하기 위한 제의(祭儀)’로서의 전쟁이다. 제의로서의 전쟁에는 “화해를 목표로 싸움을 벌인다는 역설”이 내재되어 있었다. 땅이나 자원을 놓고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집단이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사회를 지키기 위해, 다시 말해 부족 간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사회가 커지는 걸 막기 위해 적이 필요하다 보니, 전쟁을 하더라도 상대 부족을 전멸시키지 않았다. 적이라는 존재를 주위에 계속 두면서 항구적인 전쟁상태를 유지했다. 뒤집어 말하면, 주위 부족을 적으로 남겨둔 까닭에 사회가 커지지 않았고, 사회 규모가 작다 보니 정치권력이 사회로부터 분리되지 않았다. (…) 전쟁을 통해서라도 부족 간의 차이를 유지하려 했다는 건, 지금의 우리 언어로 말하자면 국가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나 다름없다.(97~98쪽)
땅을 사유화하지 않는 인디언사회의 전통이 없었다면 전쟁의 성격과 양상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땅을 배타적으로 소유했다면 인디언사회는 벌써 부족연합을 구성했거나 국가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땅과 같은 공유자산이 존재하는 한 그 사회는 산업사회로 전환되지 않는다고 본다. 산업사회는 개인의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근대국가의 다른 말이다. 땅을 소유하지 않는 인디언의 전통은 그들의 정령 신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인디언이 국가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않은 또다른 이유는, 내 개인적 견해이지만, 문자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인디언은 문자를 사용하지 않았다. 문자문화는 구술문화와 대칭 관계를 이룬다. 문자문화가 수직적, 권력 지향적이라면 구술문화는 수평적, 공동체 지향적이다. 문자문화가 남성(낮)이라면 구술문화는 여성(밤)이다. 한마디로 문자가 보급되면서 권력이 강고해졌다. 문자가 없었다면 국가와 제국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가와 제국은 문자 언어를 기반으로 한 교육제도와 미디어시스템을 통해 표준화, 획일화, 위계화, 중앙 집중화를 실현했다.
17세기 이후 북미대륙으로 건너간 유럽 백인은 ‘땅에 미친 사람’이었다. 자기 땅을 갖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간 그들에게 인디언이 점유하고 있던 땅은 그야말로 ‘엘도라도’였다.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과 긴장 관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국가를 건설했다. 미국은 땅에 대한 유럽 백인의 무지막지한 탐욕을 기반으로 세워진 신생 독립국이었다. 17세기 후반 북미대륙 북동부 13개 주 연합으로 출발한 미국은 19세기 초반, 무서운 기세로 서진(西進)한다. 1803년 영국으로부터 중부지역을 매입한 미국은 서진에 서진을 거듭해 1846~1853년 태평양 연안까지 도달했다. 미국의 서진 과정은 인디언을 죽이거나 내쫓는 약탈과 정복, 만행의 연속이었다. 땅에 대한 초기 미국인들의 탐욕이 잘 드러난 사건이 소위 ‘토지 선점 경주’였다.
토지 선점 경주(Land Rush)는 미국정부가 주도한 ‘선착순 땅따먹기 놀이’였다. 그중 하나가 이번 책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1889년 4월 22일 오클라호마에서 미할당지 200만 에이커를 할당하기 위해 ‘경주’가 벌어졌다.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아니면 두 발로 뛰어가 깃발을 꽂거나 말뚝을 박으면 1인당 160에이커를 가질 수 있었다. 워낙 엉성한 방법이다 보니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토지 선점 경주는 부정 출발, 불법 침입, 가로채기, 식량난과 바가지 요금 등 욕망의 도가니였다. ‘목숨을 건 선착순 땅따먹기 놀이’가 벌어진 지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백인 정착촌이 형성되었고, 몇달 뒤 도시가 생겨났다.
교육과 종교를 이용한 ‘동화 정책’
인디언을 보호구역 안에 ‘보호’하는 정책은 미국정부의 궁여지책, 미봉책이었다. 태평양 연안까지 진출한 미국은 이제 영토 내의 인디언 땅을 ‘사유화’해야 했다. 1850년대 이후 미국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강제 이주 정책을 전개했다. “인디언 부족의 땅을 뺏은 다음 인근의 쓸모없는 땅에다 인디언을 몰아넣는 방식이 대세”였다. 이것이 인디언 보호구역이었다. 1869년 남북전쟁의 영웅 그랜트가 대통령 자리에 앉으면서 소위 ‘평화정책’이 추진되었는데, 보호구역의 ‘보호’가 다른 의미였던 것처럼, 그랜트의 ‘평화’도 다른 의도를 감추고 있었다. 교육과 기독교를 통해 인디언을 백인 주류 사회에 편입시키려 한 것이다. 이 시기를 전후해 대륙에 퍼져있던 인디언 100여 개 부족이 북미대륙 중앙부의 인디언 준주(準州)로 강제 이주된다.
인디언 동화정책은 인디언을 산업사회의 개인, 산업사회의 소비자로 거듭나게 하려는 기획이었다. 인디언에 대한 교육은 인디언 청소년을 공동체로부터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에 집어넣고 이름을 백인식으로 바꾸는 것(창씨개명!)으로부터 시작됐다. 인디언의 이름에는 인디언의 세계관, 인간관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그들에게 이름은 곧 존재 이유였고, 자기 삶의 길이었다. 살아가면서 이름을 새로 짓기도 했다. ‘그 젊은이는 너무나 용감해서 그의 말(馬)만 보여주어도 적이 겁을 집어먹는다’는 이름을 가진 인디언 청년이 리처드 스미스와 같은 백인 이름을 가져야 했다. 인디언 청소년에게 백인 기숙학교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때로 완강하게 저항하기도 했다. 남학생들은 기숙사를 뛰쳐나가기도 했다.
인디언 청소년이 납득할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시험이었다. 인디언 청소년들은 문제지를 받아들고는 답을 찾기 위해 서로 상의했다. 깜짝 놀란 미국인 교사가 커닝을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면 인디언 학생들은 이렇게 답했다. “어려운 문제를 왜 서로 도와가면서 해결하지 않는 것인가요?” 나는 이 대목(178쪽)을 읽다가 뒤통수가 뜨끔해졌다. 우리는 얼마나 순한 오리새끼였던가. 우리는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 앞에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인디언 청소년과 같은 당연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자기 이름을 바꾼 적이 있던 우리 부모세대가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면서 경쟁과 폭력으로 수렴되는 근대성을 육화해왔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우리의 ‘모태신앙’은 근대성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숙학교의 인디언 학생들은 곧 ‘의식화’되고 만다. 인디언 청소년들은 땅따먹기 놀이를 시합으로 만든 미식축구에 매료되면서 경쟁논리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기숙학교가 인디언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만은 아니다. 각지에서 모여든 서로 다른 부족 출신의 학생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인디언사회의 현실에 눈뜨기 시작한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인디언을 백인화하려는 기숙학교가 인디언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도록 만든 것이다. ‘범인디언주의’는 이렇게 해서 촉발되었다. 기숙학교가 인디언의 연합을 도모하는 도화선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백인의 교육정책은 인디언사회가 유지·전승해오던 “생명의 근원적 통일성”에 대한 감수성(영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인디언의 정신사적 맥락이 끊어진 것이다. 관계적 주체가 경제적 주체로 전환되고 말았다. “부족사회라는 속(俗)에서 성(聖)”이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종교 차원에서 미국이 수행한 동화정책은 “성(聖)에서 속(俗)을 제거”하는 기획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인디언은 일상생활이 곧 종교였다. 성과 속을 분리할 수 없었다. 인디언의 세계관은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한마디로 요약된다. 인디언이 보기에, 세상에는 만물을 연결시켜주는 정령이 있으며, 정령이 매개하는 관계는 성스러운 것이다. 해와 달, 바람과 비, 짐승과 벌레, 심지어 돌까지도 사람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인디언사회가 땅을 소유하지 않는 근원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땅으로 대표되는 생태 환경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에게서 빌려온 것이라는 놀라운 인식도 다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정령과 만나는 ‘비젼 탐구’ ‘땀 움막’, ‘유위피’라는 치료 의식, ‘태양춤’과 같은 의식은 물론이고 사냥도 종교의식이었다. 약초를 캐거나 옥수수를 심고 거둘 때, 집을 지을 때도 종교가 깊숙이 개입했다. 인디언은 저마다 시인이자 수행자였다.
교육과 함께 종교를 통해 미국정부가 인디언에게 주입하고 했던 것은 ‘소유적 개인주의’(산업사회의 개인/소비자)였다. 하지만 백인의 기독교와 인디언 부족신앙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기독교가 직선이라면 인디언 신앙은 원이었고, 기독교가 시간(유동성)이라면 인디언은 장소(토착성)였다. 인디언에게 장소는 곧 땅을 중심으로 한 자연환경이었다. 저자는 “부족신앙 대신에 기독교를 믿게 해야만 인디언이 땅을 사고파는 상품으로 여길 것이라는 판단이 미국정부가 부족신앙에 개입한 근본 이유였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용의주도한 탄압은 결국 인디언으로부터 부족신앙을 앗아갔다. 그 빈자리를 재빠르게 차지한 것이 “물신(物神)과 접목한 개인주의”였다. 미국은 교육과 종교에 이어 토지와 시민권 제도를 통해 인디언을 산업사회의 개인으로 편입시켰다. 하지만 현재 500개의 인디언 부족(네이션)은 여전히 기로에 서있다. 저자는 인디언사회의 고민을 다음과 같이 압축한다. “인디언은 어디와 연결되고 무엇과 관계 맺어야 할까?”
《인디언 마을공화국》은 인디언사회의 비극적 역사를 진단하고 있지만, 책 속의 인디언은 수시로 한국의 경제적·사회적 약자와 오버랩된다. 미국은 한국정부나 거대(초국적)기업과 겹쳐진다. 그래서 인디언사회가 당면한 과제는 곧장 우리에게 향한다. 우리에게 국가는 무엇인가. 또 우리에게 남아있는 사회는 무엇이고, 새로 건설해야 할 사회는 또 어떤 모습인가. 이 질문이 이 책의 결론이자, 우리가 함께 감당해야 할 과제이다.
어떻게 하면 자본의 논리에 포박당한 국가를 ‘국가보다 오래된 사회’에 뿌리내리게 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를 추종하는 지금의 사회구조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이 일에는 산업사회의 작동원리에 포섭되지 않은 토착민이 나서야 한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맹위를 떨치면서 세계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토착민은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토착민을 지켜줄 인디언 전사(戰士)를 양성하는 일이 시급하다. 산업사회에 대적할 병력으로 우선은 100만 명을 길러내자.(292쪽)
저자는 “산업사회의 생활양식을 익히면서도 그 기술을 토착의 인디언을 위해 사용하는 것 역시 인디언의 길”이라면서 “안락한 생활 속에 자신의 삶을 좀먹도록 방치하지 않는, 항상 깨어있는 불안한 양심”(타르코프스키)에서 희망을 찾는다. 저자가 강조한 것처럼, 국가보다 오래된 사회 ― 지속 가능한 공생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장소성(placeness)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토착민은 없다. 더구나 도시에서 토착민은 ‘죽은 인디언’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도시 안에서 토착민을 탄생시켜야 한다. 도시 곳곳에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농산어촌에서 미래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시에서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일 또한 절실한 문제다. 전세계 인구가 70억을 넘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한다. 도시 인구 증가가 세계 인구 증가 추세를 앞질렀다. 그런데 누가 도시에 사는가, 앞으로 누가 도시에 남을 것인가. 현재 수준으로 도시가 거대해진다면, 도시는 머지않아 슬럼이 될 것이다. 가진 자들은 다 전원으로 빠져나갈 것이고, 거대 도시는 21세기의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전락할 것이다. 그래서 도시를 다시 보아야 한다. 도시를 마을로 만들어야 한다. 도시 곳곳에서 소규모 공동체가 살아나야 한다. 거기가 바로 관계가 형성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장소다.
새로운 도시 토착민은 “덜 벌고, 덜 쓰고, 많이 만들고, 많이 만나는”(줄리엣 쇼어) 새로운 인간―‘오래된 인디언’이다. 지난 4·11 총선에서 녹색당을 찍은 10만3,000명의 시민이 국가 내부에서, 도시 속에서 ‘오래된 사회’를 창출할 새로운 인간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녹색당을 찍은 시민만큼은 국가나 강대국, 초국적기업, 시장 패권주의, 개발·성장 중심주의를 졸졸졸 따라가는 오리새끼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이 있다. 류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외에도 에드워드 커티스의 사진집 《북아메리카 인디언》(눈빛), 존 스타인벡의 문명비판 에세이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김영사), 사슴부족의 최후를 그린 팔리 모왓의 《잊혀진 미래》(달팽이), 고독한 남미 인디언을 추적한 몬테 릴의 《아마존 최후의 부족》(아카이브). 특히 권하고 싶은 책이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글항아리)인데, 파머의 책에 긍정적으로 등장하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인디언 마을공화국》에서는 천하의 땅투기꾼으로 나온다. 대표적 인물이 제퍼슨이다. 제퍼슨은 토지매입 전문 변호사 출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