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이제 종식되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끔찍한 사고였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깊은 상흔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기록될 사건으로 후쿠시마는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기는 많은 한국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무리도 아니다. 당사자인 일본인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분위기이니 말이다. 저명한 반핵 저술가 히로세 다카시(??隆)는 최신작 《제2의 후쿠시마, 일본멸망》의 첫머리에서 현재 일본인 다수가 “원자력 재해는 끝났다”는 ‘불가사의한 오해’를 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 ‘오해’의 큰 원인은 물론 일본정부와 원전당국, 주류 미디어의 무책임한 태도에 있다. 그들은 후쿠시마의 사고 원자로들이 ‘냉온정지’ 상태에 들어갔고, 앞으로 시간은 걸리겠지만 안전하게 수습될 것이라고 계속 공언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원자력 전문가 아놀드 군더슨의 말을 빌리면, 이와 같은 공언은 매우 수준 낮은 ‘농담’에 불과하다.
군더슨을 비롯한 관련 전문가들에 의하면, 지금 인류사회가 직면한 최대의 긴박한 위험은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 수조(水曹)에 저장된 사용후핵연료 문제이다. 이미 지진에 의해 구조물 일부가 훼손된 이 수조가 만일의 경우 붕괴되거나 냉각기능을 상실할 때, 일본과 동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북반구 전체는 ‘아마겟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설상가상으로, 지진학자들은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 조만간 직하(直下)형 강진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경고하고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지만, 이것이 현실이 될 것이라는 예상 앞에서 우리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작년 3월 11일 후쿠시마 사태가 발생했을 때, 우리는 이 사고로 1년 동안은 방사능이 대기와 바다와 땅을 오염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그 생각은 매우 어리석었음이 분명해졌다. 후쿠시마 사태는 앞으로 수십 년 혹은 백 년이 지나도 종식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냉온정지’ 상태가 요행히 지속된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나오는 방사능 유출로 생태계 오염은 기약 없이 계속될 것이고, 그 결과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웃과 더불어 건강하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터전은 언젠가는 영영 파괴되어버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무엇인가? 결국은 돈 때문이다. 독일의 반핵활동가들이 만든 〈후쿠시마 거짓말〉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ZDF)를 보면,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들을 설계·건설했던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사 소속 기술자의 기막힌 증언이 나온다. 그는 여러 해 동안 후쿠시마 원전 상태의 점검에 종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놀랍게도 원자로 내부의 ‘증기(蒸氣) 건조기’가 거꾸로 부착돼 있는 것을 비롯해서, 허다한 균열과 결함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문제는 이런 안전상의 위험을 지적할 때마다 회사 측이 침묵을 강요하고, 보고서 내용의 수정·조작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더 기막힌 것은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정부와 관련 기관에 이 내용들을 알렸으나 일관되게 묵살돼왔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안전대책의 강화에는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인 것이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한국이든 기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언제나 일반시민들을 향해서는 ‘절대 안전’을 장담하면서 배후에서는 철저한―동시에 말할 수 없이 어리석은―이윤논리가 모든 것을 제압하는 관행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방사능오염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원전의 단계적 폐쇄를 시작하는 것과 동시에 이 뿌리를 잘라내는 게 급선무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