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가난뱅이의 역습》(이루, 2009년)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가난뱅이 난장쇼》(이순, 2010년)
한 달에 세금 떼고 92만 원 받는 청년인턴입니다!” 명동성당 앞에 돗자리를 펴놓고 번개집회를 열었다. 대학원 졸업 후 일자리를 찾다 ‘청년인턴’을 하고 있던 친구의 목소리가 명동에 울려 퍼졌다. 발언을 마친 직후 웅성웅성 모인 사람들 뒤편에서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날아들었다. 불쌍하다는 의미일 게다. 순간 정적이 흘렀고, 100만 원‘도’ 못 버는 친구는 동전을 집어 들어 날아온 방향으로 다시 던졌다. 자유발언은 계속됐다. “등록금 빚이 3,000만 원이 넘어요. 혼자 다 갚아야 하는데…” “저희 교수님은 자기 스스로 신발 끈 하나도 못 묶습니다!” 난데없는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너희가 노력하지 않고 놀아서 힘든 거다, 나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도서관에 있어봤냐….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친구들과 함께 《가난뱅이의 역습》을 읽고 마쓰모토 하지메가 친구들과 대학시절부터 벌이고 있는 기상천외한 집회를 해보고 싶어 거리로 나섰다. 거리 한가운데서 찌개 끓이기, 생선 굽기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친구의 고향 집에서 보내준 단감을 사복경찰들에게 쥐여주며 비싼 등록금 성토대회를 열고, 강정 해군기지 사태를 묻는 주먹밥 집회, 밀양 송전탑과 핵발전소에 관한 설문조사 등 소소한 거리점거를 시작했다. 민주노총이나 큰 단체가 주도하는 대규모 집회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누구는 집에서 차지게 밥 한솥 해오고, 누구는 냉장고에 남아도는 반찬을 주섬주섬 챙겨 오고, 안 읽는 책이나 유행 지난 옷을 트렁크에 담아 와서 펼치면 집회는 시작된다.
이런 행동을 하는 가난뱅이들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당신들 정치행위 한 거 아니오? 어떤 후보를 지지하는 거요? 마쓰모토 하지메의 말을 빌려 대답해보자. “어이, 여긴 자기가 하고 있는 일, 말하고 싶은 것, 너무 하찮아서 잡지나 신문에서는 다루지 않는 걸 세상을 향해 쏟아내는 곳이야!” 이념이나 어떠한 주의(主義)로 설명되지 않는 행동을 아직까지 많은 이들이 낯설어한다. 더 잘 놀 수 있고 다양한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행동에, 사람들은 정치적 이념을 묻고 사회과학 이론으로 해석하겠다고 나선다. 《가난뱅이의 역습》과 《가난뱅이 난장쇼》는 이론으로 해석 불가능하다. 그럼 포스트모더니즘인가요 하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렵게 설명하지 말자. 이들은 숨 막히는 돈 중심의 경제와 사람이 가려진 사회 바로 앞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는 젊은이들일 뿐이다.
1945년 원자폭탄 투하로 대도시가 파괴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반세기 만에 고도성장을 이룬 일본은 두터운 중산층을 가진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대부분의 국민은 착실하고 알뜰한 일꾼들이었고 사회는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그런 미국과 1,2위를 다투는 경제대국 일본에서 가난뱅이 운운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이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을지 모른다. 부자 나라에서 웬 빈곤층? 그러나 OECD 가입국이든 GDP가 높은 나라든 부자와 빈자의 존재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일해도 가난한 워킹푸어, 집을 가지고 있어도 쪼들리는 하우스푸어 같은 단어가 속출하는 현상에서도 그것은 나타난다. 대부분의 나라가 양극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하루 12시간 이상 일해도 최저 수준의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 일하고 싶어도 안정된 직장 찾기가 별 따기인 사회, 그래서 젊은이들과 어르신들이 파견사원,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에 내몰려 착취에 신음하고 있다. 정부는 복지국가를 외치지만 가진 자들의 주머니 털기는 쉽지 않고 물가는 점점 치솟고 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 없이 즐겁게 살자고 외치는 가난뱅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돈과 직장이 없어도 주눅 들지 않는다. 자신을 가난뱅이라고 스스로 명명한다. 그래서 단지 못사는 사람이라거나 저소득층, 맑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트 같은 범주에 넣기도 애매하다. 이들은 햄버거 하나로 두끼 해결하기, 집주인 헷갈리게 해 방세 덜 내기 등과 같은 궁상맞은 방법들을 나누고 낄낄댄다. 그렇지만 그저 그런 장난도 자주 치면 사건이 된다. 거저 나온 가게를 인수해 재활용가게 사장이 되어, 일 없이 빌빌거리는 친구들에게 체인점을 운영하게끔 하거나, 가게 근처에 식당, 게스트하우스, 옷가게 등을 차려 겁 없이 상권을 활보한다. 궁상스러움을 거리에 나가 알리고,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한바탕 신나게 논다. 심지어 독일, 중국에 있는 가난뱅이연합과 국경을 초월해 연대하기도 한다. 이렇게 가난뱅이들은 살아간다. 아주 잘 산다. 잘 논다. 그래서 돈 없이도 즐겁게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돈이면 모든 것이 다 되는 사회에 역습으로 와 닿는다.
다른 가치를 지향한다
《가난뱅이의 역습》과 《가난뱅이 난장쇼》에 소개된 친구들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청년들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골 때린’다. 한국에서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마을공동체와 같은 방안들이 정부 주도로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다. 이 바람에 취업자보다는 창업자에게 눈이 쏠리고, 지역공동체가 생기기도 전에 마을기업이 들어선다. 이런 현상에 따라붙는 건 사회적·대안적이라는 꼬리표다. 언론은 사회 약자들을 돌보는 단체나 취약계층이 만드는 상품을 판매하는 기업에 카메라를 비춘다. ‘사회적’이라는 콘셉트로 기업을 준비하는 청년들도 많고, 이들을 위한 창업지원금, 소셜대회도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가난뱅이들은 이런 선량함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친구들은 남이 아닌 자신을 위해 산다. 그들은 “우등반을 향하느라 평생 시시껄렁한 일을 해야 하는 노예가 되는 기술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공짜로 살아갈 수 있는 기술을 몸에 익히는 데 도움을 줄 거야”라고 외치며, 거리에서 록 음악을 크게 틀기도 하고 선거유세를 방해하기도 한다. 이들은 쉬지 않고 페달을 밟지 않으면 쓰러져버릴 자전거 같은 인생을 뻥 차버릴 것을 선언한다. 메이데이에 참여해 외치는 구호도 뒤통수를 때린다. “열심히 일하지 않을 테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착한 일터, 착한 기업을 만든다며 다들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을 때, 이들은 되도록 적게 일할 거라고 외친다. 원래부터 일해야 하는 거라면 내가 사는 세상을 유지할 만큼 벌고, 적게 일해서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 거란다. 그리고 한방 날린다. “매일매일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아름답고 숭고하다는 엉터리 가치관을 박살내겠다!”
그렇다고 마냥 백수를 지향하는 건 아니다. 《가난뱅이의 역습》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는 성실한 일꾼이다. 2년 전 그와 친구들이 난장을 벌이고 있는 코엔지(高円寺)와 그의 재활용가게를 찾아갔다가, 의외로 얌전하고 착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는 일주일에 5일 이상, 하루 13시간씩 가게를 지키면서 재활용산업에 종사하는 가게 주인이다. 심지어 시급 900~1,000엔을 받는 아르바이트생도 고용하고 있었다(가끔 돈 없는 여행자들이 가게에서 일하고 여행자금을 벌기도 한다). 가게 주변에는 놀 궁리를 하며 엉덩이를 들썩이는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재미난 광고전단들이 계산대 옆에 가득했다.
일을 하고 있지만 사회는 그들에게 니트족이니 프리터와 같은 용어를 갖다 붙인다.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은 직장을 구하지도 않고 교육을 받거나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사람을 지칭하고, 프리터는 ‘free’와 ‘arbeiter’가 합쳐진 단어로 정규적인 직장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나 파트타임 일을 하는 이들을 뜻한다. 지속적인 경제불황으로 의지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 맞서기 힘든 사람들을 패배자로 낙인찍고 문제아로 만들어버리는 뉘앙스가 강한 표현이다. 일을 해도 정규 일자리가 아닌 이상 가족, 사회, 국가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80년대 이전에는 이러한 삶의 형태가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긍정적인 어감도 갖고 있었지만, 거듭된 경제위기 속에선 생계가 위태로운 부정적 뉘앙스로 다가올 뿐이다.
이제 가난뱅이들은 곳곳에서 탈(脫)빈곤을 외친다. 더이상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즐겁지도 않은 일을 야근까지 하면서 해야 되는지 물으며, 스스로 행동에 나섰다. 마쓰모토 하지메들은 이미 동력을 잃어버린 코엔지 기타나카(北中) 거리의 상점가에서 우연히 비어있는 가게를 얻어 재활용가게를 열었다. 가전제품을 수리해서 새것처럼 만들어 저렴한 가격에 팔고, 문을 닫은 사무실에서 헐값에 가구를 얻어 오기도 한다. 시끄럽게 떠들면서 술을 마시고 싶은 친구들끼리 모여 허름한 가게를 개조해, 돌아가며 주인이 되는 식당을 만들기도 하고, 먼지가 잔뜩 껴 아무도 들어올 것 같지 않은 공간을 말끔히 청소해, 멀리서 온 사람들에게 숙소로 제공하고, 자기들끼리 아마추어 대학을 열기도 한다. 심지어 동네 반상회에 불쑥 찾아가 어르신들에게 귀빈 대접을 받으며 반장이 되기도 한다.
멘토가 아닌 친구 만들기
루쉰은 “청년들이 금간판을 내걸고 있는 지도자를 찾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차라리 벗을 찾아 단결하며, 이것이 바로 생존의 길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나으리라. 그대에게는 넘치는 활력이 있다. 밀림을 만나면 밀림을 개척하고, 광야를 만나면 광야를 개간하고,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 우물을 파라. 이미 가시덤불로 막혀있는 낡은 길을 찾아 무얼 할 것이며, 너절한 스승을 찾아 무엇할 것인가?”라고 했다. 일본 가난뱅이들의 거침없는 행보에서 훈수 두는 멘토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 역시 누군가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친구의 손은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지금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다르다. 단편적으로, 아버지 세대는 결혼을 하면 가족들과 살던 집에 살림을 차리거나 단칸방에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더부살이를 해도, 단칸방일지라도 좀더 벌고 모아 더 큰 집, 내 소유의 집을 가질 희망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결혼할 때 월세면 평생 월세 신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내 집을 가지는 건 부모님께서 마련해주지 않고선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버렸다. ‘경제성장’을 했고, ‘선진국’이 되었건만 지금 세대 앞에 놓여있는 암울한 현실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젊은 세대는 옆에 있는 친구의 손을 잡는 법을 잊었다. 옆 짝꿍은 싸워 이겨야 하는 경쟁자가 되었고, 졸업 후 친구가 나보다 잘나가면 순식간에 자존감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한국의 젊은이들은 윗세대가 청춘들을 위로하는 멘트에 열광한다. 만나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 만나기 힘들고 자신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다. 이것은 정작 가까이 있는 사람과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걸 의미한다. 홀로 멘토의 강연에 감동한 후, 다시 쓸쓸히 집으로 돌아갈 뿐이다.
지금 청년들을 비롯해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멘토가 아니라 친구다. 내 옆에 있는 친구의 고민이 뭔지, 같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들을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멘토의 격려를 받아도, 같이 나누고 무언가 작당해볼 벗이 없다면 멘토들의 반짝이는 아이디어, 비젼은 단어에 그칠 뿐이다. 책의 저자는 마쓰모토 하지메 개인이지만 소개된 활동들은 그의 것만이 아니다. 맛없고 비싼 학생식당에 저항하며 그 앞에서 같이 카레를 만드는 친구가 없었다면, 고등어를 구해오는 친구가 없었다면, 가게 입소문을 내주고 같이 거리를 점거할 친구가 없었다면 ‘가난뱅이의 역습’은 없었을 테다.
《가난뱅이의 역습》에 나오는 삶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직접 따라한 아이디어들도 있지만 한편으로 주춤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재미난 데모를 하고 우르르 길거리를 점령하고 불평을 세상에 쏟아내는 것만으로는 뭔가 아쉽다. 함께 모인 친구들이 꾸준히 데모도 하면서 하나둘씩 아이의 부모가 되고 공동육아를 하고 생협을 만들고 마을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그런 모습을 그리는 건 좀 무리일까. 나 또한 정답만 말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길들여져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앞으로 나아가는 건 각자의 선택에 맡기고, 우선 가난뱅이 ‘잉여’들의 연대가 필요하지 않을까. 마쓰모토 하지메와 친구들이 벌인 사건 이면에는 무수한 시간과 밥, 술이 있었을 터. 계속 가난뱅이로 살지만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 벗과 벗들이 데려오는 친구 덕분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넉넉한 가난뱅이로 사는 것보다 월급쟁이로 사는 게 더 쉬울 수도 있다. 사람을 사귀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니까. 벗은 풍요로운 가난뱅이로 살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된다. 저자도 누누이 강조하지 않는가, “가난뱅이가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지역의 연대나 인맥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우정을 쌓는다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민폐’를 끼치는 것이다. 서로의 삶에 개입해서 잔소리도 해야 한다. 모임 몇 차례 한다고 없던 친밀함이 불쑥 생기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번 모여 밥을 지어 먹고 수다를 떠는 시간이 아깝지 않아야 하고, 페인트칠이나 도배, 청소를 하며 더러운 것을 손에 묻혀야 무언가 함께 할 친구를 만들게 된다. 이런 시간이 아깝다면 역습이든 난장이든 어렵다. ‘가난뱅이의 역습’은 밥을 나눠 먹는 인정, 함께 책을 읽는 여유,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는 응원에서 나온다. 가난뱅이 젊은이들이여, 다 그만두고 우선 밥부터 같이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