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시기 보름 전 어머님이 치매검사를 받는데 6월 25일이라 답하더군요. 의사가, 할머니 그럼 지금이 몇 년도예요, 묻자 어머님은 내가 그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냐는 듯, “1950년 6월 25일” 또박또박 말씀하셨습니다. 제 청년기가 스무 살 때 겪은 광주학살 5·18 이전과 5·18 이후로 나뉘어졌듯, 제 장년의 출발은 4·16 이전과 4·16 이후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 서서 위로의 말을 할 자격이 없습니다. 두 달여 동안 술 안 마시고 잠든 낮과 밤이 없으니. 그 어떤 말도, 기도도, 글조차도 제게 스며들지 못했으니. 통곡할 힘조차 없을 때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침묵 아니면 눈물…. 참혹한 슬픔 앞에서 진정한 위로는 없습니다. 어린 자식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아픔을 이해한다고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이라도 공감한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감히 누가 누구를 치유할 것이며, 어떻게 4·16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으며, 진정으로 회복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은 무언가 꿈틀거려야 하므로 우리는 여기 이렇게 모여 있습니다. 자식 키우는 에미로서, 어린 생명들을 죽이는 데 일조한 어른으로서.
낮술에 취해 거리를 걷는데 얼핏 환한 것이 스쳐갔습니다. 되돌아와 보니 광장 귀퉁이에 기저귀 홀딱 벗겨진 아기가 누워있더군요. 아기 아랫도리 닦아주며 웃는 아비와 젊은 어미 사이 힘차게 하늘을 향해 발랑거리는 아기 다리와 배가 눈부시게 빛났습니다. 모두 다 그런 세월 지나왔을 겁니다. 몸을 뒤집고, 난생처음 말을 하고, 처음으로 아장아장 걷고, 처음으로 책가방을 메고….
뒤집혀진 의자. 엎어진 냉장고. 막힌 출구. 누워버린 벽. 절벽이 된 바닥. 쏟아지는 시푸른 물줄기. 허공 두드리다 멈춘 손가락. 입술 벌린 배낭. 둥둥 떠다니는 단어장과 초코파이. 달콤한 입속으로 들어가보지 못한 입술과 입술들. 얼마나 추웠니, 아가야, 이리 오렴. 젖은 기저귀 갈아줄게. 알처럼 동그랗고 하얀 배, 너희 예쁜 배는 내일을 낳지 못하겠구나.
삶이 거짓말처럼 참혹할 때 죽음이 더 삶답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위로하려 마십시오. 유일한 위로는 진실입니다. 권력 위에 앉아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들은 섣불리 치유하겠다, 돕겠다 말하지 마십시오. 얼굴도 표정도 없는 국가는 말과 문서로 명령할 뿐 슬픔은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키는 대로 일할 뿐 아픔을 느낄 수 없는 심장이 없는 거대한 기계들이여, 진실로 미안하다 하십시오. 차라리 실패했다 고백하십시오. 우리가 공동으로 만든 이 세계는 도처에서 죽음과 오류를 낳을 뿐 생명을 살리는 데 실패했습니다. 다 피어보지도 못하고 수장된 어린 꽃숭어리들, 이것은 명백히 학살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죽일 테면 죽여라. 그렇다면 죽어주마…. 죽는 줄도 모르고 스러져간 무고한 생명들 앞에서 희망과 회복을 말하지 마십시오.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 마음은 버스정류장과 어둔 골목을 배회합니다. 떡볶이집과 분식가게에서도 모퉁이마다 스며 나오는 아이 냄새.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줄기에서도, 천 갈래 만 갈래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엄마, 엄마 부르는 소리. 현관문 밖에서, 창밖에서 들리는 엄마, 엄마…. 사랑해요, 저를 용서하세요, 물에 찍힌 마지막 말. 말이 되지 못한 공기방울의 소리. 사랑한다, 아아, 아가야, 용서해다오. 온통 눈물뿐으로 출렁이는 저 바다처럼 우릴 용서하지 마라.
세상은 긍정과 망각을 가르치지만 우린 이 아픈 소리와 냄새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엄연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양 겨드랑이 사이에 아픔을 담고 숨 쉴 때마다 슬픔과 고난을 들이쉬겠습니다. 기다려, 너에게로 갈게…. 맹서뿐인 말이 끝난 곳, 오늘을 불러올 태양이 없는 저 너머, 잎도 꽃도 피우지 않는 304그루의 나무들이 선 채로 침묵하는 슬픔의 겨울정원을 견디겠습니다. 죽은 나무 뿌리 눈물로 적시며 기다리겠습니다. 죽은 나무와 나무 사이, 새잎이 틔어 나올 때까지 일하며 싸우며 밥 먹으며 눈물 흘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