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보급률 세계 1위
김종철 일요일에 쉬셔야 할 텐데 오시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오늘은 스마트폰 사용이 갖는 문제점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해서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녹색평론》에서 그동안 교육문제에 관해 연속적으로 좌담을 해왔는데, 그 좌담에서 잠깐씩 스마트폰에 대한 언급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깊이 있게 이야기하는 데까지는 못 갔습니다만, 이게 꽤 심각한 문제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저도 이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가끔은 자료를 들여다봅니다만, 학교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니 생각보다 사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을 의식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한번 제대로 다뤄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우연히 EBS 방송에서 스마트폰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이 토론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꼭 모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며칠 후에는 김찬호 선생님이 〈경향신문〉에 쓰신 글을 읽었습니다. 지금 학교 교육에서 유행이 되어 있는 PPT 등 전자스크린을 통한 강의가 얼마나 교육적인 역효과를 내고 있는가를 지적하신 글인데, 제가 반색을 하며 읽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김찬호 선생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놓치고 지내는 일상사의 문제를 잘 짚어내시기 때문에 제가 늘 배우고 있습니다만, 이 좌담에서도 퍽 중요한 말씀을 해주실 분이기에 오늘 특별히 모셨습니다.
자, 그러면 시작해볼까요? 우선 김민선, 박점희 선생님 두 분이 지금 하고 계시는 일을 언제부터 어떤 동기로 시작하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실은 저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됐습니다만, ‘아이건강국민연대’는 어떻게 설립되었는지요?
김민선 2007년에 여러 단체들의 네트워크 형태로 만들어진 단체예요. 참학(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이나 전교조, 체육교사협회 또 조금 직접적으로 어린이 건강에 관계된 분, 몸살림운동 하는 분, 정신과 의사선생님, 이런 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린이, 청소년 건강에 여러 요인들이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까. 그런 걱정을 하는 분들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길러내기 위해 뭔가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모였어요. 40여 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김종철 김 선생님은 원래는 뭐 하셨어요?
김민선 프로그래머예요.(웃음) 전공은 생물학인데 프로그래머를 하다가 피시통신을 통해 아이들이 음란물에 쉽게 노출되고 있는데, 내 아이만 단속해서 될 일이 아니구나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시민단체에서 관련된 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꼼짝 안하고 컴퓨터에 몰입해 있으면 이게 전반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건강국민연대’는 화학물질이나 햇볕운동 등, 여러 안건을 다루고 있는데, 제가 사업국장을 하다 보니까 게임중독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어요. 그래서 ‘셧다운제’(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인터넷게임 일부 접속을 원천 차단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운동을 저희가 주도적으로 했습니다. 덕분에 많이 알려져서 욕도 많이 먹고 협박 전화도 옵니다.
김종철 오늘 중요한 이야기 많이 듣겠네요. 그럼 박 선생님은 무슨 동기로….
박점희 ‘좋은학교바른교육학부모회’는 2008년에 비슷한 교육관을 갖고 있는 분들이 모여서 학부모 주도의 단체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현재 온라인으로 전국적으로 연결되어 상당한 수의 회원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깨미동(깨끗한 미디어를 만드는 교사 운동)이라는 단체와 같이 공부를 하면서 인터넷중독이나 스마트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김종철 원래 교직에 계셨습니까? 전공은 뭘 하셨어요?
박점희 아니요. 원래 전공은 국문학이에요. 평생교육학을 공부했고요. 스마트폰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한 3~4년 되었어요. 저는 아이들이 신문이나 텔레비전, 컴퓨터 기기 등 미디어를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는데, 거기에 스마트폰까지 접목하여 교육하고 있어요.
김종철 두 분이 대개 비슷한 시기에 시작하신 것 같은데, 김찬호 선생님 보시기에는 이런 유사한 관심사를 갖고 활동하는 단체들이 그 시기에 생긴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까?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 언제쯤입니까?
김찬호 2010년 무렵에 대중화되기 시작했어요. 아주 빠른 속도로요. 2012년에 70% 가까이 보급되면서, 세계 1위에 올라섰습니다.
김민선 1990년대에는 2G폰이었죠. 그때도 성인물이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었어요. 그래서 제가 있던 단체는 아이들이 자기 명의로 전화를 개통하게 하고, 청소년 명의로 된 전화에는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도록 하는 운동을 했어요. 스마트폰으로 옮겨 오면서 이런 노력이 무의미해졌어요. 아이들이 빠져드는 정도도 이전의 2G폰과는 비교가 안됩니다. 저희는 특히 영유아들이 스마트폰에 노출되는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어요. 보통은 청소년들 걱정을 많이 하지만, 0.86세, 즉 8개월부터 스마트폰에 노출되고 있다고 합니다.
박점희 갓난아기들이 물고 빨고를 스마트폰으로 시작해요. 애들 손에 이게 그냥 쥐어져 있어요. 사실 그게 가장 쉽게 애를 보는 방법이에요. 스마트폰을 쥐어주면 애들이 울음을 그치거든요.
김민선 스마트폰은 굉장히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아이나 어른이나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 일부러 그렇게 만든다고 해요. 그런데 아기들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은 살려고 움직이는 거예요. 애들은 움직여야 하는 건데 어른들이 못 움직이게 하려고 스마트폰을 주는 거예요.
김종철 참 어이가 없네요.
김찬호 전에 어느 전철역에서, 멀리서 보니까 어떤 유모차에 탄 아이가 깔깔 웃어요. 그 앞에 엄마가 쪼그리고 앉아 아이를 보고 있구요. 아, 저 엄마 대단하다, 어떻게 꼬마를 저렇게 웃길 수 있을까. 신기해서 가까이 가 봤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스마트폰만 손에 쥐고 아이에게 보여주고 있더라구요. 아이와 엄마는 눈을 전혀 마주치지 않고요. 이런 장면이 점점 눈에 많이 띄어요. 꽃이 만발한 봄날, 서울 은평구의 작은 천 옆을 지나는 버스를 타고 간 일이 있는데, 앞에 앉아 있는 어느 엄마가 아이를 무릎에 앉혀놓고 유리창에 스마트폰을 얹어놓은 것을 봤어요. 아이는 창밖 풍경 대신 영상에만 시선이 꽂혀 있더군요. 요즘은 그와 비슷한 모습들을 점점 흔하게 만날 수 있지 않아요? 엄마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아이가 성가시게 구니까 스마트폰을 쥐어주고, 심지어 모처럼 가족들끼리 여행하면서도 저마다 자기의 미디어에 빠져 있고요.
욕망을 자극하는 기기
김민선 스마트폰은 욕망을 강렬하게 자극하죠. 그에 비해 창밖 경치는 재미가 없죠. 지금 우리는 재미있는 건 선(善)이고 재미없는 건 악(惡), 즉 의미가 없는 일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죠.
박점희 어린아이가 책을 보다가 사물이 작게 그려져 있으면 손가락을 책에 대고 ‘줌인’을 한대요. 그래서 그림이 커지지 않으면 짜증을 낸대요. 요즘 영화나 게임 등의 영향으로 가상과 현실을 구분 못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졌어요.
김찬호 우스갯소리로, 요즘 아기들은 태어나자마자 엄마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엄지와 검지로 화면을 확대하는 시늉을 한다고 하죠.(웃음)
김민선 흔히 규제를 해야 된다고 얘기하면 청소년 인권을 운위하는데, 스마트폰에 갇혀 있느라 청소년들이 다른 활동, 다른 기회를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않아요. 스마트폰 때문에 가령 수면권 등 건강하게 살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인식이 없어요.
김찬호 아이들은 어른보다 상상력과 감수성이 훨씬 풍부합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풍선을 보면서 깔깔대며 웃는 것처럼, 어른들에게는 별것 아닌 일에 아이들은 강렬하게 반응하잖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디지털 영상은 엄청난 흡입력을 갖습니다. 생각과 감정 그리고 몸까지 완전히 빨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아날로그 세계에서의 인간관계에 점점 서툴러집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교수에 따르면, 요즘 아이들이 선천적인 자폐도 늘고 있지만 후천적으로 자폐적 성향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한 공간에서 노는 아이들을 관찰해보면,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옆에서 다른 애들끼리 싸우면서 코피가 터지고 해도 전혀 신경을 안 쓴대요. 함께 놀긴 하는데 완전히 파편화된 채로 놀고 있다는 거죠. 자기 일이 아니면 관심을 보이지 않고 관여도 하지 않는 사회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김종철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군요. 그런데 이야기 순서상 먼저 이런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스마트폰이 계속 생산되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그게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김민선 길 찾아주는 일 등등, 비서를 여러 명 갖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죠. 카메라 기능도 있고요. 스마트폰만 있으면 수십 년 연락이 끊어졌던 어린 시절 친구도 찾고, 먼 곳에 있는 지인과 쉽게 연락할 수도 있죠. 그래서 빠져드는 거죠. 그리고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스마트폰이 5,000만 대 보급돼 있다고 하죠.
박점희 우리나라 전체 인구 기준으로 스마트폰이 1인 1대라는 통계가 있어요. 저도 미디어교육할 때 스마트폰을 활용해요. 대개 스마트폰을 갖고 있고, 인터넷 연결이 돼 있으니 각자 필요한 정보를 찾아 발표하도록 할 수 있죠. 예전 같으면 교실에 컴퓨터가 자리마다 있어야 가능했던 일이죠. 제 친구가 지금 암 말기라 병원에 있는데, 목소리가 안 나와요. 그렇지만 카톡(카카오톡)으로 친구들하고 얘기를 해요. 이런 게 좋은 점이죠.
김민선 기계를 한 2년 정도 쓰면 고장도 나고, ‘공짜’폰이라고 쉽게 바꾸죠. 사람들은 매달 6만원, 8만원씩 내는 걸 사용료라고 생각하고 기기값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터넷도 ‘무제한’에다가 ‘공짜’라고 얘기하지만, 한 달 35,000원이 적은 돈인가요? 인터넷에서 얻는 게 그만한 가치가 있나요? 그런데 이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김종철 지금 스마트폰 덕분에 먹고사는 인구가 참 많죠. 길거리 다녀봐도 몇 집 건너 스마트폰 가게잖아요.
스마트폰에 기반을 둔 막대한 산업
김찬호 일단 기기 판매와 관련된 경제규모가 엄청나겠지요.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고, 스마트폰을 기반으로 해서 돌아가는 산업이 어마어마합니다. 각종 애플리케이션이 끊임없이 쏟아지는데, 그것을 매개로 해서 온라인 상거래가 점점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간편해지는 것이 대단히 많습니다. 특히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예전에 전철에서 청각장애인이 화상통화 모드로 폰을 켜놓고 수화를 주고받는 것을 본 일이 있어요. 옆에 앉은 승객에게 잠시 스마트폰을 들고 있어달라고 하고 두 손으로 열심히 이야기를 하는데, 참 아름답게 보였어요. 시각장애인의 경우엔 오로지 터치스크린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폰이 있더라구요. 스마트폰이 주는 혜택은 끝이 없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어디에서든 인류의 거대한 지식창고에 접속할 수 있게 되었죠.
김종철 원래 새로운 현대기술이 등장해서 확산될 때는 꼭 사회적 약자들, 핸디캡 가진 사람들에게 큰 혜택을 줄 수 있다는 논리로 시작합니다. 사실 거기에는 쉽게 항거할 수 없는 논리적 타당성이 있고 합리성도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기술이 갖고 있는 부작용은 인간이 절제를 발휘해서 분별 있게 사용하면 된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김민선 SNS, 카카오톡처럼 대개 감성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주로 쉽게 중독이 됩니다. 반면에 예를 들어, 길을 찾고, 정보를 찾는 등 이성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비교적 절제가 된다고 해요.
김종철 인간은 이성보다 감성에 기울기가 훨씬 쉽죠. 저는 스마트폰은 없지만, 자주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는데, 이것도 습관이 되어 꼭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 그치지 않고 자꾸 계속해서 파고들게 되는 경우가 흔해요. 정보나 지식을 구하는 것도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하는데, 그게 잘 안돼요. 한 20년 전에 제가 무모하게도 파리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을 정기구독해서 봤는데, 그때는 빨리 도착해도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그러면 신문이 아니라 ‘구문’이 돼버리죠. 그런데도 해외의 미디어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그런 어리석은 짓을 했었죠. 그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은 온라인으로 세계의 온갖 미디어에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으니, 그 편리함이란 말할 수가 없죠. 그러나 이게 반드시 좋은 일인가, 요즘은 갈수록 의문이 생겨요.
김민선 우리가 머릿속에 기억을 안하게 됩니다. 언제든 접속하기만 하면 정보가 있으니까요. 머리를 점점 더 쓰지 않아요. 기계는 갈수록 ‘스마트’해지고 사람들은 안 ‘스마트’해지는 거죠. 몸도 둔해지고.
박점희 예전에는 인터넷을 하려면 컴퓨터를 켜고 접속하고, 번거롭고 시간도 걸렸지만 지금은 스마트폰 검색창을 열기만 하면 되니 수시 접근이 가능해졌죠.
김찬호 그렇게 정보가 폭주하는 만큼 어떤 사실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기가 쉽죠. 웹‘서핑’이라는 말처럼, 표면만 더듬고 다니니까요.
김민선 자꾸 궁금해져요. 중요한 정보가 뜨고 있는 건 아닐까? 누가 내 글에 ‘좋아요’를 눌렀을까? 저는 강의할 때 스마트폰 다 끄라고 해요. 그게 켜져 있으면 계속 정신이 거기 가 있거든요.
김종철 이야기 들을수록 점입가경인데, 자, 그럼 조금 더 좁혀서 성장기 아동의 교육에 관련해서 이야기를 해봅시다. 어른들이야 그렇다 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기 아이들과 청소년들입니다. 몇몇 교사들에게 물어보니, 학교에서는 일단 스마트폰 사용을 통제한다면서요?
박점희 모든 학교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대체로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규정을 만들어 교칙에 의거해서 압수하는 경우도 있어요. 선생님이 무조건 걷어 보관하는 경우도 있고, 자율적으로 보관하는 경우도 있고, 학생인권을 존중해서 본인이 지참하게 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인권’
김종철 인권이라는 건, 무슨 이야기죠?
김민선 정보이용권, 행복추구권, 자율권.
김종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금지시키지 않습니까? 그냥 강제로 빼앗아서는 안되잖아요. 논리적으로 설득을 해야죠. 학부모와 학생들을 모아서 설명회를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김민선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도, 부모님들도 저항을 합니다. 휴대폰 두 개 가진 아이도 있어요. 학교에 제출할 것 하나, 자기가 가지고 있을 것 하나. 선생님이 압수하면 그날로 부모님이 다시 사주고요.
박점희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못 걷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이게 고액의 물건이다 보니 분실할 경우 문제가 크거든요. 굳이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은 거죠.
김민선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사용 못하게 하는 법적 규정이 없어요. 학업에 방해가 된다거나 아이들 성장에 방해가 된다거나 하는 문제가 우리사회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요. 우리사회에서는 IT(정보통신기술)라고 하면 무조건 선한 것, 좋은 것이라고 인식돼 있죠.
김종철 우리나라는 무조건적으로 첨단적인 기술을 숭배하는 분위기가 있죠.
김찬호 부정적 영향이 명확하게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당장 확인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위기의식이 없죠. 또하나는 모두 다 함께 빠져 있기 때문에 둔감해져요.
김민선 아까 영유아 얘기를 했는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줍니다. 애들을 거기다 묶어놓는 거예요. 밥 먹을 때, 머리 자를 때, 돌잡이 사진 찍을 때 아이가 움직이지 못하게 화상을 틀어주는 거예요.
김종철 옛날 같으면 엄마가 애기한테 이야기를 해주고 할 텐데….
박점희 지금은 아이들이 정서적 교감을 하지 못하고, 폰 안의 세계만 배우고 따라 해요.
김종철 실제로 영향이 지금 나타나고 있지 않나요? 언어 표현능력 같은 게….
김민선 아이들이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요. 말을 배운다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필요한 거잖아요. 엄마 입을 쳐다보면서 배우잖아요. 그러지 않으니까 이제 언어 표현능력이 떨어지고 있어요. 말을 못하면 생각을 발전시킬 수 없죠. 수동적으로 정보를 제공받기만 하고 스스로 창조하는 능력이 퇴화하게 되는 거죠.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로 인해 뇌의 회백질이 쪼그라든다는 연구도 있어요.
김종철 저도 그런 논문 읽었어요. 큰일이네요.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은 어떻습니까?
너무도 조용해진 강의실
김찬호 대학생들 보면 엄청나게 조용해지고 있어요. 한 해가 다르게요. 스마트폰 영향이 크죠. 우선 두드러진 것은 학생들의 목소리가 너무 작다는 점입니다. 강의실에서 뭘 물어보면, 대답을 알아듣기가 어려워요. 5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인데도 말이에요. 좀 크게 소리를 내봐라, 그래도 못해요. 수업시간 이외에도 학생들 목소리를 듣기가 어려워요. 5년쯤 전까지만 해도 수업을 시작하려면 너무 시끄러워 짜증이 났거든요. 말문을 열어도 학생들이 계속 떠드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예요. 휴식시간에도 너무 조용해요. 모두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거죠. 목소리가 작아졌다는 것은 걱정스러운 현상이라고 봅니다. 사람의 기력은 목소리를 통해 드러나는데, 젊은이들에게 패기가 사라졌다는 징후가 아닐까요. 왜 그렇게 되었는가 생각해보면 이제 크게 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어요. 특히 공공의 장(場)에서 자기 소리를 크게 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 것입니다. 어릴 때 동네에서 뛰어다니며 고함을 질러보지 못했어요. 학교에서 질문해본 적도 거의 없지요. 어쩌다가 발표를 할 때 목소리를 내보는 정도인데, 그것은 짜여진 형식 속에서 하는 것이라서, 안에서 우러나오는 살아있는 음성을 담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목소리로 몸을 통한 소통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크게 말하는 것이 늘 두려운 것이 아닐까 싶어요.
박점희 요즘 학생들이 혼자 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요. 의사소통할 필요가 없어졌죠. 혼자만의 시각으로, 자기만의 입맛대로 세상을 봅니다. 우리가 어떤 프로그램을 본다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의 앞뒤를 생각하며 보잖아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문맥에는 관심이 없고 단편적으로 보고 싶은 부분만 ‘끊어보기’를 해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고민하거나 생각하거나, 저게 무슨 얘기야, 하고 다른 사람과 논의를 하지도 않아요.
김민선 하나의 완결된 생각이 아니라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기분 전달로 소통을 한다고 생각해요. 주고받는 것도 단어 위주로. 문장이 두서너 개로 늘어나면 이해하기 어려워져요. 뉴스도 안 봐요. 뉴스 제목만 보죠.
김종철 제가 아는 교수가 그러더라고요. 요즘 학생들이 10페이지 정도의 글도 못 본다고 그래요.
김민선 긴 글 읽는 게 고통스럽죠. 앞의 얘기를 기억해야 되고 맥락을 쫓아가야 되잖아요. 자투리 정보에만 익숙하니 자꾸 그쪽으로 가고 싶죠.
김찬호 몇달 전에 《현재의 충격》이라는 책이 나왔어요. 제목이 흥미롭죠. 앨빈 토플러의 명저 《미래의 충격》을 패러디한 것인데, 디지털 환경에서 시간의 흐름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한 채 파편화된 현재만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카톡할 때나 웹서핑할 때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면, 연달아 쏟아지는 신호에 반사작용을 할 뿐입니다. 오로지 그 순간순간에만 몰입한다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는 지혜의 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의식이 명료하게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서 밀려드는 정보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진정한 몰입과 다릅니다. 어떤 의식의 질서를 흐름으로 이어가지 못하고 단편적인 정보들에 끌려다니는 거죠.
박점희 과거를 기억하면서 현재에 빠져드는 건 좋은 거예요. 현재에 충실하다는 얘기니까. 문제는 과거도 미래도 없는 현재라는 거죠.
김찬호 그 책에서도 핵심적으로 짚어내는 것이 바로 내러티브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서사의 붕괴’를 심각하게 보고 있어요.
김종철 1차원적인 단세포적 사고만 가능한 인간이 양산되고 있다는 얘기인데….
김찬호 앞서 목소리가 작아진 현상과도 연결되는 것인데, 이제는 사람들이 통화도 안해요. 휴대폰이 처음 나왔을 때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통화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였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되었습니다. 공공장소에서는 물론 혼자 있을 때도 통화를 점점 하지 않게 되니까요.
박점희 심지어 바로 옆에 있는 친구와도 카톡을 해요.(웃음)
김민선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이모티콘’이 없잖아, 그래요. 눈웃음 짓는 모양, 표정을 나타내는 아이콘들이 아니면 의사 전달을 못하는 것이죠.
김종철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도 필요하지 않고 혼자서 지내는데, 카톡의 대상은 어디서 구합니까?
박점희 카톡이나 카스(카카오스토리), 페이스북 등에 대화할 대상은 널렸죠. ‘친구’ 신청을 하고, ‘수락’만 하면 누구하고든 할 수 있죠.
사회적 관계 맺기 능력의 감퇴
김민선 무작위 채팅이라는 것도 있어요. 누가 들어올지 몰라요. 그런데 그런 관계는 실제 사회관계를 맺는 능력을 떨어뜨립니다. 실제로 말을 주고받거나 사람 눈을 보면서 하는 일을 못해요. 전철 안에서 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느냐 하면,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 눈을 쳐다보기 어려워서라는 거예요. 어색함을 못 참아요.
김찬호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가 ‘정서 리스크’라는 개념을 내놓았습니다. 오프라인에서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말이나 태도에 어떤 식으로든 곧바로 대응해야 하지요. 때로는 상대가 전혀 예상치 않은 감정을 드러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해집니다. 이메일이나 카톡을 할 때는 그런 경우 잠시 생각을 했다가 조금 후에 답을 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오프라인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그 자리에서 반응해야 합니다. 관계를 맺고 소통을 한다는 건, 상대방의 예측 불가능한 정서를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그런 리스크를 점점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박점희 기다리지도 못하죠. 내가 뭘 물어봤는데 즉답이 없어요. 그럼 그 사람에게 뭔가 사연이 있을 텐데, 그렇게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요.
김찬호 카톡을 하면 내가 메시지를 보낸 사람들의 인원이 숫자로 나타나고, 그들이 메시지를 확인하면 그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어요. 그룹으로 할 땐 숫자만 줄어들 뿐 누가 안 읽었는지는 몰라요. 그런데 둘이 할 때는 상대가 한 명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1’ 자가 나타나는데, ‘1’은 사라졌는데 한참이 지나도 답이 안 오면 ‘씹혔다’고 합니다. 그러한 정황을 가리켜 ‘1씹’이라고 하더군요.
김민선 또 단문, 단어들로 된 대화이다 보니 제대로 전달이 안되는 경우도 많아요. 말하는 사람의 뉘앙스나 의도와 상관없이 해석되는 거죠.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도 전후 맥락 없이 그냥 내가 즉자적으로 받아들이는 대로 이해를 해서 많은 오해가 생기고….
박점희 지금처럼 이렇게 마주 보면서 이야기를 하면 소통이 되죠. 웃기도 하고 공감하기도 하면서요. 그런데 거기선 이모티콘 하나 안 달면 화난 게 됩니다. 직접 말하면 금방 끝날 일도 카톡으로 하다 보니 3시간, 5시간씩 걸리고…. 제가 어머니들을 모시고 편지쓰기를 해봤는데, 이제는 어른들도 문자메시지 쓰는 습관 때문에 제대로 된 문장 쓰는 것을 힘들어해요.
김종철 저한테도 요즘, 젊은이들이 연락할 때는 전화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대개 이메일이나 휴대전화 문자로 와요. 전화로 직접 상대방과 얘기하는 것을 겁을 내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 글씨 쓸 기회는 있나요? 종이에 글 씁니까?
김찬호 초·중등학교 선생님들이 시험 답안지를 채점하기가 힘들대요. 글씨를 못 알아봐서요. 아이를 불러다가 글씨를 어떻게 이렇게 쓰냐고 다그치면, 왜 그 글씨를 못 알아보느냐고 반문한대요. 그러면 옆에 있는 친구에게 그 글씨를 읽어보라고 하면, 못 읽는다고 합니다. 자기들끼리도 알아보지 못하는 글씨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글씨를 쓸 일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겠지요.
박점희 글씨를 잘 못 쓸뿐더러, 요즘 아이들은 늘 폰 안의 깨알 같은 글자 크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글씨를 알아보기도 힘들게 작게 써요. 문장구조를 갖춰서 못 쓰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요.
김종철 학교에서 연필, 종이 안 씁니까?
박점희 수업에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있어요. 다양한 자료들이 충실하게 제공되는 ‘아이스크림’이라고 하는 프로그램인데, 초등학교 교사들 중에 안 쓰는 분이 별로 없어요. 선생님들은 단원이 넘어갈 때 ‘클릭’만 하면 됩니다. 그런 선생님들을 우스갯소리로 ‘클릭 교사’라고 합니다.
김찬호 더 무서운 건 그 아이스크림이라는 프로그램이 교사한테 무료로 제공되지만, 그에 맞춰서 학생용 프로그램을 만들어 상품화한다는 것이지요.
박점희 지금은 이름이 바뀌었지만, 그걸 학부모들에게 비싼 값에 홍보하면서 올해 초에 팔았어요. 많은 학부모들이 가입한 걸로 알고 있어요.
김민선 아이들이 자기가 글씨를 못 쓰는 건 물론이고, 교사가 글씨를 쓰는 모습을 구경할 일도 별로 없죠.
김종철 나는 단순히 요즘 젊은이나 청소년들의 글씨가 지나치게 졸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군요. 근데 왜 학교에서 그걸 방치하고 있어요?
박점희 방치가 아니라 권장하고 있어요. 이런 도구를 활용을 잘해야 훌륭한 선생님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김찬호 이제는 아예 국가가 나서서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를 보급하려고 하고 있잖아요.
김민선 ‘스마트 교육’이라고 해서 세종시의 경우에는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를 나눠 주고 있어요. 선생님도, 아이들도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죠.
김종철 그런 식으로 맞춤 프로그램에 따라 가르치면, 당국이 보기에 교사들이 교실에서 일탈적인 발언을 하지도 않을 것이고….
김찬호 그렇죠. 학교와 아이들을 대기업에 충실한 고객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구요.
김민선 기계를 팔아먹고 프로그램 팔아먹으려고…. 교육이 아니라 ‘클릭 전달’인 거죠.
김종철 참으로 심각한 문젠데…. 그런데 그런 교육방식을 통해서 학습효과는 향상되고 있습니까?
스마트 기기의 학습효과
김민선 학습효과가 없다는 게 점점 밝혀지고 있습니다. 또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나오니까 아이들이 머릿속에 지식을 기억하지 않아요.
김찬호 필기를 하지 않아요. 칠판에 적은 것이 아니라 그냥 말로 한 거는 필기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강의를 들으면서 자기에게 필요한 사항들을 챙겨서 노트에 담아둬야 공부가 되는 것인데, 그런 습관이 들지 않은 것이지요.
박점희 교수님 말씀은 한 귀로 들어와서 다른 귀로 나가고, 교수님이 보여주시는 PPT만 사진으로 찍어서 갖는 거죠.
김민선 인터넷 찾아서 자기한테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돈 주고 사고요. 요즘은 학생들이 졸업작품도 세운상가에 맡겨서 만든다고 합니다.
김찬호 초등학교 교사들의 이야기로는, 아이들이 손놀림에 정교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해요. 글씨뿐 아니라 손으로 뭔가 만지작거리는 걸 점점 더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디지털의 ‘디지트(digit)’가 손가락이라는 뜻이잖아요. 숫자를 손가락으로 세면서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손가락 문명의 극치인 디지털 시대가 되어서, 역설적으로 디지트, 즉 손가락이 점점 더 무뎌지는 거죠. 우리가 원래 손재주가 좋은 민족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유럽 아이들보다 한국 아이들이 서툴다고 합니다. 컴퓨터 키보드나 마우스만 만지고, 이제는 스마트폰 자판만 만지다 보니 어쩌다 물건을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야 할 때 능력이 부치고 그러다 보니 재미도 없어지고….
김종철 손가락 움직임은 두뇌에도 영향을 미치고 심장에도 영향을 미치는 거 아닙니까. 그 이야기 좀 해보죠. 신체적·정서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들에 대해서 얘기 좀 해보죠.
김민선 우선 전자기기니까 기본적으로 전자파가 나옵니다. 전자파는 WHO가 제2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것입니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를 일으키고, 뇌암을 일으킵니다. 단국대 하미나 교수님이 아이들의 혈중 납 농도, 휴대전화 전자파와 ADHD 유발률의 상관관계에 대해 연구한 결과가 있어요. 7배나 더 높게 나옵니다. TV 같은 건 그래도 어느 정도 거리가 있지만 스마트폰은 머리 근처, 코앞에 두고서 하니까 전자파의 영향도 큽니다. 어린이의 머리뼈는 성인보다 얇기 때문에 영향도 훨씬 더 크죠.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동안 뇌 촬영을 했더니 뇌가 점점 줄어드는 영상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신체가 발달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어떤 요인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안전하다고 검증된 것만이 시장에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된 게 우리사회는 거꾸로 나쁘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시장에서 수거할 수 있어요. 식품첨가물, 식용색소 적색2호 같은 것들도 다 먹고 나서 위험이 증명된 뒤에야 빼기로 했죠. 아이들이 이미 받은 피해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인데도.
박점희 나쁘다는 것 알지만, 이 정도야 뭐 어때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우리도 다 먹고 자랐는데, 그런 식이에요. 교육을 받지 않아서 모르는 측면이 큽니다.
김민선 유럽에는 전자파 기준이 있어서 10세 미만에게는 스마트폰 전자기기가 금지되어 있어요.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요. 일본도 초등학생들은 스마트폰을 쓰지 않아요. 아니, 아예 휴대폰을 쓰지 않아요.
김종철 유럽이나 일본도 사람 사는 사회인데 왜 이 스마트폰이라는 무한히 매력적인 물건에 푹 빠지는 사람들이 없겠어요. 그런데도 그런 사회에서는 법적인 규제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이 모양인지 통탄스럽군요. 그런데 우리나라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것은 제 생각에는 의외로 쉬울 것 같아요. 왜냐하면 무슨 윤리적·도덕적 문제가 있다고 말해 봐야 들은 척도 하지 않을 사람들이지만, 자기 아이들이 스마트폰 때문에 지능이 떨어지고 좋은 대학 못 간다고 하면, 굉장히 충격을 받을 것이니까요. 좀 야비한 방법이지만 그렇게라도 설득해서 스마트폰을 버리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박점희 문제는 반격하는 앱(애플리케이션)들이 나온다는 거죠. 아이의 머리를 좋게 한다고 선전하는 프로그램들이 나오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전자기기의 폐해에 공감하기 어려운 거죠.
김민선 그러나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편하고 싶어서 아이에게 스마트폰 주는 부모들이 많아요. 제가 지금 전자파 얘기 했지만, 그 못지않게 스마트폰 때문에 아이들이 신체활동을 하지 않는 게 큰 문제입니다. 앉아서 공부하고, 게임하다가 머리맡에 두고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스마트폰부터 들여다보고.
박점희 대학교만 조용한 게 아니라 초등학교 애들도 조용해요. 특히 요즘 9시 등교제 실시하면서 블록타임제, 즉 1, 2교시를 연달아 하고 쉬고, 3, 4교시를 이어서 하고 쉬는 식으로 바뀌면서 쉬는 시간이 없어졌어요. 또 있어도 짧아서 밖에 나가 놀 수가 없어요. 제가 2005년도에 일본의 몇몇 학교를 시찰했는데, 거긴 쉬는 시간이 되면 애들이 무조건 다 운동장으로 나와요. 5분, 10분이고 몸을 움직이다 들어갑니다.
김민선 놀이 신체활동을 하지 않으면 두뇌나 정서의 발달에도 굉장히 큰 피해가 생겨요. 그런데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을 싫어하는 선생님들도 있어요. 사고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학교마다 운동장 반을 차지하는 체육관이 있어서, 체육도 보통 실내에서 합니다. 실내운동은 호흡기에도 나쁘고, 먼지나 플라스틱, 프탈레이트 같은 것도 많이 들이마시게 됩니다. 이렇게 실내에서 앉아만 있다가 방과 후에는 곧장 학원버스를 타고 학원에 가서 웅크리고 있다가 집에 와서는 스마트폰 하다가 머리맡에 두고 자는 게 우리 아이들의 생활입니다. 자기 아이는 나가는 걸 싫어한다고 말하는 부도도 있는데, 실제로 아이들은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부모랑 친밀하게 접촉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어른들이 스마트폰 틀어주고 꼼짝 못하게 하는 거죠. 어른들이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거예요.
김종철 일본 얘기가 나왔는데, 거기도 맞벌이 부부가 대세가 되어 있고 핵가족 중심이라서 아이 키우기 힘든 상황이지요. 복지시스템도 그리 잘돼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하고 큰 차이가 있어요. 지난번에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일본사람들이 크게 놀란 것 중의 하나가 뭐냐면 한국의 학교에는 왜 수영장이 없느냐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자기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일본에는 거의 모든 학교에 수영장이 다 있거든요. 왜 이런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지, 김찬호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찬호 글쎄요. 일본은 오랫동안 자연재해의 위협 속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안전에 대해서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조사하고 대비합니다. 예를 들어, 고층아파트가 사람의 건강에 얼마나 나쁜가에 대한 연구 보고서가 오래전에 나왔습니다. 가령 아이들의 발달이 늦고 산모도 유산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지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이렇게 높은 빌딩들을 주거지로 선호하지 않잖아요. 이런 공간 거주가 지니는 위험성에 관한 연구나 자료가 은폐되고 있습니다. 거대자본의 작용도 있겠지요.
김종철 기본적으로 우리는 기업 논리가 지나치게 앞선 나라이기 때문에….
박점희 안전불감증도 크게 작용하고 있지요.
김민선 스마트폰 중독에 대해 이야기하러 어디를 갔더니 어떤 교수님이 절 조용히 불러서 물어봐요. 이런 강의 많이 다니십니까, 삼성전자 망하게 되면 우리나라 당신이 먹여 살릴 겁니까.
김종철 우리 아이들 다 버려놔도 삼성전자를 잘되게 해야 한다는 논리, 거 참 기막히네요. 사실 이게 굉장히 큰 장벽이에요. 지금 학자, 지식인, 전문가, 언론들이 죄다 대기업의 하수인들로 전락해 있으니까요. 이 골치 아픈 문제 나중에 더 이야기하고, 아까 하던 건강피해 문제 더 얘기해보죠. 오늘 오전에 제가 어떤 논문을 봤는데, 스마트폰 때문에 멜라토닌 분비에도 이상이 있다던데요.
김민선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건 백색광인 데다가 자극적인 영상이죠. 뇌를 계속 자극하고 멜라토닌 분비를 차단합니다. 햇빛에 나가지 않아서 이미 멜라토닌이 부족한데, 계속 쐬는 백색광이 뇌를 깨워서 수면부족을 유발합니다. 거기다 머리맡에 스마트폰을 두고 자면 계속 전자파 영향을 받으면서 깊은 잠을 자기 어렵죠. 수면이 부족하면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죠. 뇌가 쉴 수가 없으니까.
김찬호 어느 정도 거리까지 영향을 받는 것인가요?
활동하지 않는 아이들
김민선 전자파의 영향은 거리에 반비례하기 때문에 조금만 떨어져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지만 보통 다 머리맡에 두고 자죠. 셧다운제 운동할 때도 얘기했지만, 언제 사용하느냐 하는 점이 굉장히 중요해요. 밤 시간에 노출이 되면 잔상이 뇌 안에서 계속 돌기 때문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어요. 햇볕에서 활동하지 않기 때문에 비타민 D가 부족해서 면역력도 약해지죠. 햇빛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악순환이에요. 나가서 운동을 하지 않으니까 또 면역력이 약해지고요. 제가 강연 다니면서 뇌 사진을 보여주고, 전두엽에 이런 손상이 옵니다, 이 손상은 전두엽 활성을 떨어뜨리고 도파민 활성을 떨어뜨려서 스마트폰중독, 게임중독은 물론이고 니코틴, 알코올, 마약중독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중독은 다 똑같습니다, 아이에게 담배를 주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다들 말도 안된다고 반응합니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면 바로 “한 시간은 괜찮겠죠?” 이렇게 물어보셔요.(웃음) 요즘 애들이 돈만 안다고 하죠. 서울대 학생들한테 부모가 언제 죽었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63세라고 답했대요. 은퇴해서 퇴직금 남겨주고 곧바로 죽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 부모가 아이들한테 해준 게 없어요. 무슨 말이냐 하면, 돈으로만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고, 아빠와 정서적으로 교감한 경험을 지금 우리 아이들이 갖고 있지 않아요.
김찬호 서강대 교수가 베이비부머 자녀들, 대학생들한테 물어봤어요. 아버지한테 원하는 게 뭐냐 하니까 “돈밖에 없다”는 대답이 40% 이상 나왔습니다. 돈 다음에 뭐 있는 거 빼고, 오로지 돈 하나만 원한다는 학생이 40%가 넘는다는 사실입니다.
김종철 웃을 일이 아니군요.
박점희 부모들이 풍요로운 환경에 대한 일종의 로망을 갖고 있어요. 학원이든 스마트폰이든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내 아이에게 최고를 해주고 싶은 거예요. 거금을 들여서라도. 최소 생활비용을 뺀 나머지는 자녀에게 ‘올인’을 합니다.
김찬호 우리나라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해서, 타인의 시선에 매우 민감하잖아요. 자기 삶의 기준이 남들의 평가에 달려 있지요.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면 안심하고, 남들이 하는데 나는 안하고 있으면 불안해하고…. 카톡도 그런 것 같아요. 스마트폰이 다른 나라보다 더 필수품이 된 계기는 카톡이 결정적이거든요. 문자메시지는 한 달 용량이 정해져 있어요. 요금이 나가니깐 자연스럽게 절제하게 되는데 카톡은 무제한이다 보니 한없이 대화를 주고받지요. 그리고 많은 일들이 카톡을 전제로 해서 돌아가요. 대학에서도 조별 활동이나 연구과제를 수행할 때 카톡으로 정보를 소통해요. 그리고 인간관계에서도 카톡이 필수입니다. 그룹채팅방에 가입이 되어야 하니까요. 집단의 압력이 굉장히 심하니까 거부하기가 어려워요. 그렇다고 뭔가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마음을 열지는 못해도 어딘가에 꼭 소속돼 있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작동하지요. 마치 한국인들이 너도나도 아파트라는 고밀도 주거지에 몰려들어 살지만, 악착같이 이웃관계를 거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디지털 소통에 너무 익숙해지면 인성 자체가 변합니다. 아까 나온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면 특히 아이들에게 조심을 시켜야지요. 제가 아는 분이 프랑스인들과 함께 일하는데, 어느 날 사무실에 프랑스인 직원이 아이를 데려왔답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칭얼대더래요. 그래서 제 지인이 스마트폰을 꺼내서 특이한 소리들을 연거푸 들려주었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거기에 집중하면서 얌전해지더래요. 그런데 그 아버지가 굉장히 고마워할 줄 알았는데 정색하면서 그러더랍니다. 우리 아이 망치지 말라(Don’t spoil my child!)고. 아주 엄격하게요.
김종철 그 사람들은 그런 기본 교양이 되어 있네요.
김민선 제가 어느 독일 기자에게 우리 아이들이 밤에 게임을 하느라고 잠을 못 잔다고 걱정했더니, 게임 이전에 어떻게 아이가 밤 8시, 9시가 지나도록 깨어있는 걸 그냥 놔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너, 엄마 맞니, 그래요. 공부를 해도 안되는 시간인데 게임을 허용하고 있느냐고. 사회적 분위기가 이렇게 다릅니다.
김종철 IT강국이라고 그러잖아요. 완전히 나라 망해가고 있는데도 정보기술대국이라고 자랑하고 앉았으니…. 요즘 자폐아들이 많은데 그것도 스마트폰과 어느 정도 관계 있죠?
김민선 자폐증의 요인으로는 우선 화학물질이 큽니다. 중금속은 몸에 한번 들어오면 배출하기 어려워요. 엄마도 산 생명체라서 자기가 살려고 임신을 했을 때 아기에게 탯줄을 통해서 중금속을 주어버립니다. 배출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죠. 성인이 갖고 있던 중금속, 이를테면 납을 아기한테 주면 그 영향은 어마어마하게 나타나겠죠. 4분기, 8분기 신경관이 생기는 시기에 납이 들어가서 자폐의 요인이 된다고 합니다. 플라스틱 또 향을 내는 화학물질 프탈레이트 등도 자폐의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데, 딸기향 치약 아이들한테 주죠? 납, 엄마들 립스틱 속에 들어있는데, 서슴없이 아기들한테 뽀뽀하지요? 그런데 체내 화학물질 농도가 높으면 이 중금속이 전자파를 쐬면 확 받아들여요. 위험성이 이중으로 높아집니다. 제가 아는 어떤 교사가 있는데, 이분은 25년간 담배를 끊고 계신 분이에요. 그런데도 언제든 담배를 피울 자세가 돼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중독은 치료하기가 극히 어렵습니다. 언제든 또다른 중독으로 옮겨 갈 수도 있고.
박점희 흔히 부모님들이 게임 같은 것만 걱정하시는데, 음악도 듣고, 온갖 활동을 스마트폰으로 하고, 이게 없으면 못 견딘다면 바로 그게 중독입니다.
김민선 중독이라는 인식이 없죠. 대개 자기는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죠. 잠깐 정보가 필요해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요.
‘길을 잃어본 적이 없는 세대’
김찬호 얼핏 긍정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으면서도 꼭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올레길’ 앱이 나왔거든요. 모처럼 홀가분하게 산보를 하는데 디지털 기기의 방향지시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낯선 곳을 여행하려면 길을 헤매도 보고 그래야 하는데 말이죠.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지금의 젊은이들을 가리켜 ‘길을 잃어본 적 없는 세대’라고 합니다. 사실 이제 젊은 세대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된 듯해요. 살다 보면 길도 잃어보고, 의외의 것도 발견하고,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도 보고, 이런 게 삶이고 그것을 여행에서 경험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제는 낯선 곳에 가도 방황할 기회를 갖지 못하니, 실제 인생에서 그런 상황을 만나면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인생에는 내비게이션이 없으니까요.
김종철 철저히 리스크 프리(risk free) 인생이네.
김민선 실패를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회복탄력성도 없어졌죠. 인간의 뇌에서 장소를 기억하는 게 해마세포입니다. 어떻게 어디로 가고, 어느 장소 옆에 뭐가 있는지를 기억하는 메커니즘인데, 지금 현재 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를 향해 있는지도 모른 채, 오른쪽으로 가라면 오른쪽으로 가고, 왼쪽으로 가라면 왼쪽으로 가고 그러다 보니 그 능력 자체가 없어진다는 거예요.
김찬호 영국에서 직업별로 뇌를 조사해봤더니 택시기사들이 해마가 가장 크다고 나왔어요. 복잡한 도로와 작은 골목까지 기억하고 그때그때마다 가장 빠른 길을 찾다 보니까 발달한 것이지요.
김민선 장소를 기억하는 것이 기억력과 관련이 있대요. 여행을 가도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가기 때문에 여행지를 기억하지 못해요. 자기가 지금 편안하게 있는 곳으로부터 이별을 해서 새로운 모험을 하거나 새로운 길을 찾고 이럴 때 뇌가 비약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기회가 없어요.
김찬호 아기가 태어나도 품에 안아보기 전에 먼저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린다고 하잖아요. 저도 버스정류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차 도착시간을 확인하다가 그만 버스를 놓친 적이 있어요. 일단 어떤 버스가 지금 들어오고 있는지 직접 확인을 했어야 하는데, 앱부터 찾는 습관 때문에 그렇게 된 거지요.(웃음) 요즘 사람들은 풍경 좋은 곳에 놀러가서도 사진 찍느라고 구경을 못하고 나중에 집에 와서 사진을 보고 감동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를 많이 볼수록 행복도가 떨어진다고 해요. 거기에 올라 있는 사진들은 한결같이 행복한 모습이잖아요. 그에 비해서 자신은 왠지 초라해 보이는 것이죠. 어차피 모두 자신의 일상에서 그럴듯한 부분들만 추려서 진열하는 것인데 말이에요.
박점희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는 좀 성격이 다른데요. 페이스북은 나를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복을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면, 카카오스토리는 외로운 사람들이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그런 통계가 있어요. 주변 사람한테 나를 보일 수 없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거죠. 우울하다고 글을 올리면 수많은 위로하는 댓글이 달립니다.
김종철 심약한 사람은 그것으로도 위로를 받겠네요.
박점희 그렇죠. 하지만 교감이 없는 말들이죠. 공중에 떠 있는 말들이고, 실질적으로 아무 도움이 안되는 위로죠. 진정한 소통이라고 할 수 없죠. 한편 이런 것도 있어요. 밤늦게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는 것은 무례하다는 통념이 있지만 카톡은 그런 게 없어요. 새벽 몇 시가 되었든 내가 생각나면 바로 올립니다.
김민선 부하직원들이 미칠 지경이죠. 상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업무지시를 하니까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일을 한다고 합니다. 카톡은 읽었다는 게 표시가 되니까 메시지를 읽었는데 일을 수행하지 않으면 태만하다고 찍히는 거죠. 이젠 근무시간도 없고, 근무장소도 없어졌어요.
김찬호 스마트폰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닐 것 같아요. 이대로 가면, 인생의 최후 시간에 무엇을 하겠어요? 누워서 꼼짝 못하고 죽음만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고 합시다. 어느 정도 의식이 있다면 아마 카톡만 하고 있지 않을까요. 심지어 죽는 순간에도 동영상으로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사람도 나올 것 같아요.
김종철 그런 걸 포함해서 왜 남한테 그런 걸 보여주고 싶을까요.
박점희 보여주고 싶다기보다 여기에 너무 적응이 된 거죠.
김찬호 한국인들이 왜 스마트폰에 유난히 집착을 하는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싶은 동기가 매우 강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거나 보람 있는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너무 적잖아요. 청소년기에는 공부에만 매달리다가 어른이 되면 오로지 돈 버는 기계로 살아가기에 각자 자신의 인간적인 매력을 가꾸지 못해요. 그런 반면에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은 더 커지구요. 그래서 자아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이 만연하지요.
김종철 그러게요. 이 사회가 온통 나르시시즘이에요.
김찬호 앞으로 새로운 형벌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감옥에 가두는 대신 스마트폰을 일정한 기간 동안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감옥살이보다 더 답답하지 않겠어요?
김종철 마약 중단하면 금단현상 일어나듯이 그런 반응 보이겠죠.
김찬호 이제는 정말 별의별 앱이 다 나오고 있어요. 내가 마주치기 싫은 사람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대요. 그래서 만일 근처에 그 사람 있으면 피할 수 있어요. 물론 그 사람도 위치기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이야기지만. 그러니까 만일 배우자의 사생활이 의심스러울 때 추적하려면 상대방의 스마트폰에 앱 설치해두면 됩니다.(웃음)
김민선 ‘아이폰’은 사진을 찍으면 전세계 지도에 자신이 있었던 곳이 점으로 뜬다고 해요.
김종철 스스로 자기감시 도구를 들고 다니는군요.
디지털 장의사라는 직업의 출현
김찬호 새로운 직업도 나왔어요. 디지털 장의사라고 아세요? 내가 웹상에 그동안 띄워놓은 것들, 지우고 싶어도 다 못 지우거든요. 기술적으로 어려워요. 그걸 대행해주는 전문업체가 생겼어요. 예를 들어, 헤어진 애인이랑 찍은 사진이 돌아다닌다, 그런 거 모두 찾아다니며 삭제해줍니다. 또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블로그나 이메일 다 정리해야 하는데 그럴 겨를이 없지요. 가족도 힘들어요. 근데 그걸 미리 계약해놓으면 쉽게 처리할 수 있어요. 지금 전세계에 더이상 주인이 없는 계정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어떤 학생의 이야기가, 자기 엄마가 돌아가신 지 몇 년이 되었는데 엄마 블로그에 계속 사람들이 들어와서 글 남기고 있더래요. 사이버 세계에서 영생을 하는 셈이죠.(웃음)
박점희 요즘 청소년들은 사이가 나빠지면 그 친구의 사진을 어딘가에 올리고 그 친구 정보를 써놓는대요. 그럼 그게 돌아서 나는 정보를 공개한 적이 없는데도 나한테 자꾸 성가시거나 불쾌한 것들이 오게 되는 거죠. 요즘 아이들이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가장 안 좋게 벌주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김종철 이런 식으로 가서 인류사회가 유지되겠어요? 괴물들의 사회가 될 것 같은데요. 하기는 뭐,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도 사라지고, 가치관이나 감수성 자체가 달라지고 있으니까 우리 기준으로 말하는 게 어리석겠지만….
김찬호 비교를 해볼 필요가 있는데, 제가 여러 차례 강의하러 가본 고등학교 중에 전교생이 아예 휴대폰을 갖고 있지 않은 학교가 있었어요. 대개 기숙형 학교들이 그래요. 대안학교는 아니구요. 천안과 인천에 있는 학교들이었는데, 그 학교 학생들은 표정과 눈빛이 다르더라구요. 그리고 낯선 어른들을 대하는 태도도 매우 성숙해 있구요.
박점희 어느 초등학교에 갔더니 텔레비전을 아예 종이로 가려놓고 사용하지 않더라구요. 그렇게 교육받은 아이들이 훨씬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해요.
김종철 대학생들이 카톡 같은 것 말고, 예를 들어 신문은 봅니까?
김찬호 안 보죠. 제가 물어봤는데, 신문 보는 학생들이 1% 될까 말까예요. 대부분은 전혀 안 봐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요새는 심지어 이메일도 잘 안해요. 이메일을 보내도 체크를 안하더라구요. 웬만하면 카톡으로 다 끝내는 거죠. 이메일만 해도 긴 문장을 쓸 때가 있는데, 이젠 점점 단문으로 처리하는 추세입니다.
김종철 그럼 이제 주로 카톡하고 게임만 합니까?
박점희 TV, 음악, 드라마, 단순 인터넷서핑, 게임을 하죠.
김찬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면 관계 맺기에서도 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소통이라는 게 단순히 말의 교환이 아니라 상대방이 처한 사정과 말을 하는 맥락을 입체적으로 살피면서 그 메시지의 속뜻을 알아차려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자신의 감정도 찬찬히 들여다보아야 하구요.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상대방을 함부로 단정을 해버리고 매우 단세포적으로 반응하고 하면서 소통이 어려워집니다.
김종철 교사들한테 물어보니까 남학생들은 주로 게임을 하고 여학생들은 카톡 채팅한다던데요?
김민선 네. 예전에 게임중독은 남학생들이 훨씬 더 많았었는데 스마트폰중독은 여학생들이 훨씬 더 많아요. 게임도 카톡이랑 연결이 돼서 빠져나올 수 없게 돼 있습니다.
김종철 장사꾼들이 정말 머리가 좋네요.(웃음) 만일, 만일이 아니고, 그냥 사태가 이대로 간다면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 전부 치매가 되겠어요. 국민 총 치매화….
김찬호 수명도 계속 늘어나지는 않을 거예요. 오히려 이대로 가면 줄어들 가능성도 높아요. 지금 노인들은 어릴 때 많이 움직였잖아요. 성인병도 안 걸렸구요. 지금 아이들은 몸이 엉망이라서 지금 노인들만큼 수명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김종철 그래요. 제가 요즘 허리가 안 좋아서 집 근처 병원에 물리치료 받으러 다니는데, 그 앞에 고등학교가 하나 있어요. 동네도 한적한 곳인데 여기 무슨 손님이 있나 하니까 손님 많대요. 고등학생들이 주요 고객이라는 거예요. 목 디스크, 허리 이상으로 고생하는 고등학생이 수두룩하다는 겁니다. 사춘기 때는 대개는 아픈 걸 몰라야 하는 때가 아니에요? 이 사회가 정말로 말이 안되는 사회로 가고 있어요.
박점희 척추측만증, 허리 디스크는 공부를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목 디스크는 스마트폰 때문에 오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예요.
김민선 사실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 20대예요. 고등학교까지는 어느 정도 제약이 있지 않습니까. 대학생이 되면 급식도 안 먹으니까 섭생도 형편없어지고 아무도 제재를 가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스마트폰에 계속 매달려 있게 됩니다. 도대체 같이 밥을 안 먹는대요.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공부하고, 혼잣말하고.
김종철 참, 대학생들 정말 문제 많네요. 지난번에 김찬호 선생님 신문에 쓰신 PPT 강의, 대학교수들 대부분 그것 사용하죠?
김찬호 네. 이것도 우리나라는 너무 의존을 많이 해요. 발표는 무조건 다 이걸로 해요.
김종철 시민단체들에서도 대유행이에요. 어딜 가든 심포지엄이든 세미나든 조그만 회의든 다 PPT예요. 사실 이런 전자스크린으로 강의 들으면 돌아서자마자 그 내용 다 기억에서 사라지잖아요.
김찬호 맞아요. 다 구경하고 있는 거지, 소통이 아니거든요.
김종철 그리고 김찬호 선생님 잘 지적하셨던데, PPT를 가지고 강의를 하면 딱 정해진 스케줄대로만 가지, 중간에 곁가지를 친다든가 처음에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발견이라든지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잖아요. 자연스러운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가다가 만나는 의외의 놀라운 경험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고요. 인생이라는 것은 원래 의외의 놀라움, 경탄 그런 것이어야 하는데 말이죠.
김민선 요즘은 검색만 하지 사색을 하지 않아요.
사색 상실의 시대
김종철 그러게요. 사색 상실의 시대죠. 생각이라면 그저 계산적 사고만 있죠. 자, 이제 우리 결론을 냅시다. 하면 할수록 너무나 서글픈 이야기인데, 이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선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있을까요?
김민선 아무튼 스마트폰에 아이들이 최대한 늦게 접하도록 해야 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책을 읽고, 신체활동을 하는 경험을 먼저 맛보게 하는 게 중요해요. 지금 연령이 낮아져서 이제 예비부모 교육을 고3 아이들한테 하고 있는데, 화학물질 같은 것만이 아니라 스마트 기기의 부작용에 대한 교육도 해야 합니다.
박점희 예전에 신용카드 광고를 보면 초창기에는 카드를 이런 데 쓰고, 저런 데도 쓸 수 있다, 이런 식이었어요. 그런데 신용카드가 보편화되면서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해보니 그렇게 안되는 거예요. 그래서 카드 해지가 많았대요. 그 때문에 나중에는 쓰긴 쓰되 ‘잘’ 써야 한다는 식으로 광고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사람들 인식이 바뀌었어요. 지금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예요. 편리한 도구이긴 하지만 현명하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공익광고가 이제는 나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선 안 쓰고도 살 수 있어요. 있는데도 사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잘 쓰는 방법이 뭘까 이런 고민을 자꾸 하는데, 안 쓸 수도 있어요. 그래도 쓰려면 어떻게 하나. 그래서 감성적인 도구와 이성적인 도구에 대해 얘기를 드리는 거예요. 이성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약 포장지를 보면 효능과 함께 부작용에 대해 밝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알려줘야 합니다. 7세 미만이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면 이런 위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지를 해달라는 거예요. 지금처럼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똑똑한 사람들만 알고 피할 게 아니라 사회가 안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박점희 스마트폰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다 좋을 수만은 없다는 것을 알려줘야죠.
김민선 ‘편리’는 곧 ‘좋은 것’이 아니니까요.
김종철 그런 활동하는 단체들은 얼마나 됩니까? 그런 단체들이 좀 많아지고 사회적인 목소리 좀 높이고. 이게 널리 시급히 알려져야 되잖아요. 무엇보다 언론이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계몽활동을 해줘야 되는데 뒤에 광고주와 기업들이 있기 때문에….
김찬호 오피니언 리더들, 지식인들이 이걸 확실히 공론화하고 못을 박아야 되거든요. 원칙이 딱 세워지지 않으면 대충대충 넘어갈 것 같아요.
김종철 하다못해 10세 이하는 못 한다고 담배 유해성을 알리는 것과 같은 경고문이라도 넣어야죠.
김찬호 프랑스에는 그런 레스토랑이 있대요. 손님들이 휴대폰을 다 내놓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자부심을 나타내는 것인데요.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워낙 품격이 있기 때문에, 서로가 매우 고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이런 하찮은 물건에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이런 상징이라고 하더라구요. 공익광고 형식으로 시도해봄직하죠. 청소년들에게 도덕적인 훈계나 당위성으로 메시지를 던지는 것보다는, 심미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멋있다 멋없다는 판단기준이죠. 넌 아직도 촌스럽게 스마트폰에 질질 끌려다니냐? 디지털에 목매지 않고 삶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가꿔가는 모습을 매력적인 이미지로 연출하면 어떨까요.
박점희 실제로 지금 고등학생들도 외고나 과학고 등 특목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 비해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비율이 훨씬 낮아요. 지금 고3폰이라는 것도 나오잖아요. 그것도 강남에서 제일 많이 판매된다고 합니다. 교육열이 높은 지역에서 판매율이 높다고 해요.
김민선 흡연율도 강남은 낮아요.(웃음)
김종철 우선 학교 교사들만이라도 좀 단단히 계몽을 받을 필요가 있겠어요. 그리고 교사들이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계속 설득을 하고요. 아까 ‘아이스크림’이라는 것, 얘기 들으니 굉장히 안이한 자세로 가르치는 교사들이 많다는 얘긴데요. 교사들의 자질이 문제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여간 김 선생님, 박 선생님 같은 시민운동가들이 좀더 열심히 해주셔야 되겠습니다. 결국은 꾸준히 시민들 사이에 인식을 확대해나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습니다. 우리 몇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겠지만, 문제가 심각하다는 강의를 한 번 두 번 연속해서 들으면 조금씩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같은 말도 계속 되풀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대로는 망국의 길로 간다
김민선 그렇죠. ‘셧다운제’라는 법률을 제정할 때에도 절대적인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사람들, 예컨대 게임업자들 때문에 굉장히 저항이 컸지만, 어쨌든 일단 만들고 나니까 온 국민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됐거든요. 인터넷게임 중독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이 유해환경에 노출될 우려도 높고, 게임 아이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도 높아진다, 아이들이 사회 낙오자, 범죄자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 이 제도가 필요하다고 읍소를 했어요. “삼성전자가 우리를 먹여 살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닙니다. 스마트폰을 이대로 규제 없이 놔두다가는 우리가 치러야 할 사회경제적 비용이 엄청나게 된다는 얘기를 해야 합니다. 스마트 기기 사용에 대한 규제 법률에 대한 필요성도 얘기해야죠. 선진국, 유럽의 선례도 있으니까요.
박점희 청소년기는 자아가 형성돼가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고,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걸 심각하고 시급하게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스마트폰에 대해서 우리사회 전체가 새롭게 생각할 기회가 생겨나야 될 것 같아요. 지금까지 너무 안이하게 지내왔습니다.
김찬호 금년에 크게 히트 친 상품 가운데 하나가 ‘셀카봉’이래요. 그것 가지고 사진 촬영하면 재밌긴 하죠. 우리는 자기에 대한 관심,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까에 늘 민감합니다. 돋보이려는 욕망이 높아지면서 현재의 모습에 불만을 품고 늘 남과 비교합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을 넓혀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스마트폰보다 몸을 뒹굴면서 노는 것이나 부모와 함께 어울리는 것을 더 좋아하듯이, 어른들도 마음으로 이어지는 소통을 경험한다면 스마트폰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을 거예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만남이 이뤄질 수 있는 작은 관계들입니다. 내가 남들에게 평가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안전한 공간입니다. 거기에서 자기를 멋지게 표현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자아를 고양시킬 수 있지요. 그런 관계들을 다양한 자리에서 빚어갈 수 있다면, 스마트폰은 삶의 풍요를 배가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을 듯합니다.
김종철 《녹색평론》이 초기에는 테크놀로지 문제에 대해서 예민하게 접근을 했었는데 그동안 다급한 일들에 쫓겨 경황없이 지내다 보니 너무 소홀했다는 것을 오늘 많이 깨달았습니다. 스마트폰을 비롯해서 디지털 문화, 정보기술의 문제를 그냥 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라 방치해둬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정말로 중요한 말씀들을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