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어느 날, 베트남 사이공(현 호찌민시) 시내의 어떤 ‘바’에서 벌어진 한 편의 촌극. 한국군 병사 한 사람이 베트남인 호스티스의 어깨를 끌어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저쪽 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던 한 미군 병사가 다가와서는 느닷없이 한국군 병사를 끌어내어 홀 가운데로 넘어뜨렸다. 영문을 모르고 당한 한국인 병사는 왜 이러냐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위에 있던 미군 여럿이 우르르 몰려와 한국인 병사를 두들겨 패고는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이미 술이 꽤 취했지만, 정신은 잃지 않았던지 한국인 병사는 다시 들어와서는 큰소리의 영어로 이렇게 울부짖는 것이었다. “우리가 여기 오고 싶어서 온 줄 아느냐. 베트남을 도와주려고 목숨 걸고 싸우러 온 우리한테 이게 무슨 짓이냐?”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그 술집의 베트남인 호스티스들과 손님들이 보여준 반응이었다. 그들은 모두 미군이 아니라 한국인 병사에게 싸늘한 냉소를 보내거나 심지어 노골적으로 욕설을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베트남전쟁 중 일본 교도통신사 사이공 특파원으로 활동했던 가메야마 아사히(龜山旭) 기자가 쓴 ‘베트남의 한국병사’(〈週刊アンポ〉, 1970년 1월 26일자)라는 글에 나오는 일화이다. 당시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은 전투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도로를 건설하고,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대민지원사업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극적인 것은, 한국군 병사들은 베트남 인민들이 자신들을 실제로 어떻게 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아마도 자신들이 환영받고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에 대한 의심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의로운 전쟁을 돕기 위해서 희생을 무릅쓰고 참가한 군대였으니까….
해방 이후 70년, 우리는 온갖 비극과 재난, 불운을 겪으며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왔다. 이 비틀거림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에서 이 ‘베트남의 한국병사’ 이야기만큼 상징적인 이야기가 있을까?
우리에게 해방은 기본적으로 식민지라는 치욕스러운 상황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의미였다. 그러므로 해방이 한반도 주민들에게 부여한 무엇보다 중요한 역사적 과제는 식민주의의 철저한 청산이었음이 분명하다. 식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노예화를 강요하는 폭력적 시스템이다. 한반도 주민들이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면서, 이것을 ‘해방’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제부터는 노예생활과 결별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완전히 정당한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해방된’ 인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주적인 국민국가의 건설이었다. 국민국가라는 것은, 적어도 이념적으로는, 대등한 정치적·사회적 권리를 갖는 인간, 즉 시민들끼리의 계약에 의해 성립되는 정치체제이다. 그리고 노예적 삶의 청산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실현하는 데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 정치체제가 인민들 전체의 주체적인 참여에 의해서 운영되는 정치, 즉 민주주의의 조속한 실현에 겨냥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다 알다시피, 일제의 패망을 가져온 태평양전쟁의 종결이 곧 냉전시대의 개막으로 연결되는 상황에서 한반도는 분단을 강요당하고, 그 결과 한반도에서의 민주정치의 실현은 실제로 지난한 일이 돼버렸다. 게다가 곧이어 터진 6·25 전란은 전체 인민의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는 국가 건설이라는 역사적 과제를 뿌리로부터 좌절시켜버렸다. 무수한 인명손상과 전면적인 국토파괴, 엄청난 재산손실을 기록하고 끝난 참혹한 전란의 결과, 한반도의 남쪽은 군사주권을 사실상 방기한 매판적 독재체제의 확립, 친일파의 재등장과 친미파의 득세, 정치적·사회적 불의가 일상화된 사회로 굳어지고, 북쪽은 1인 지배의 고립되고 폐쇄적인 전체주의 사회로 고착되고 말았다. 이것은 지금까지 본질적으로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한반도 상황의 기본골격이다.
이 기본골격 속에서 지금 우리가 사는 남한 땅에서 박정희 독재정권은 농업, 농촌, 농민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며 국가 주도 공업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그 뒤를 이어 역대 군사 및 민간 정권들도 이 노선의 연장선에서 수출 위주 경제성장의 추구에 매진해왔다. 그 결과, 지금 남한은 어쨌든 외형상으로는 큰 ‘경제국가’, 산업국가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경제적인 성공’을 거두어 미증유의 소비생활을 즐기게 되었다고 자만에 빠진 순간, 한국사회는 지금 이 모든 ‘성공’이 허구라는 것, 한갓 사상누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무엇보다 지금 국가기능은 완전히 마비상태이다. 작년 4월의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위난상황에서 자신의 국민을 버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극적으로 드러낸 기막힌 사건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었다는 게 지금 또다시 메르스 사태에서 극명히 입증되고 있다. 근대국가는 원래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체제정비의 필요성에 그 기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해방 70년’이 경과한 지금에도, 이 국가는 가장 기초적인 국가로서의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우수한 의료시스템을 갖고 있으니 염려 말라고 하던 정부의 말과는 달리 벌써 메르스라는 괴질로 적잖은 인명이 희생을 당했다. 거기다가 시민들의 일상적 생활공간은 극도로 위축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계는 한층 더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이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병리현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것은 훨씬 더 뿌리 깊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위기의 표피적 발현에 불과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위기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지속가능성’의 위기이다. 물론 이것은 한국사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의 근대적 국가시스템, 그리고 이와 맞물려 있는 자본주의 산업시스템은 출발부터 지속가능성이라는 근본문제, 즉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는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시스템이라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이 근본적 한계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시야 바깥에 있었으나 이제는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관련하여 갈수록 뚜렷이 그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나 화석연료 문제 등과 근원적으로 얽혀 있으면서도 생활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훨씬 더 다급한 문제들이 허다히 널려 있는 게 오늘의 상황이다. 예를 들어, 전례 없이 증대되는 사회적 격차, 심화되는 경제적 불평등, 복지국가시스템의 쇠퇴, 그리고 무엇보다 갈수록 악화하는 노동자 인권과 고용의 위기 등등. 그러나 이러한 가시적인 것보다 더 심각한 실존적 위기상황을 조성하는 것은, 열악한 물질적 여건 속에서도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주고 상호의존적 생존·생활을 가능케 했던 전통적 관계망들이 도시에서든 농촌에서든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도생이라는 윤리 아닌 윤리, 철저한 에고이즘이 번성하고, 내면적 공허감과 니힐리즘, 정치적 무관심 혹은 냉소주의가 유행병처럼 퍼져나가는 것은 필연적인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동안은 어떤 식으로든 그 심각성이 잠복된 채 은폐될 수 있었다. 아니, 지난 수십 년간 이 사회를 압도적으로 지배해온 것은, 거의 모든 인간적 고통과 사회적 문제들이 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이 논리는 별 저항 없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져왔고, 지금도 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 전체의 침체와 더불어 성장이 현저히 둔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위 경제전문가, 기업, 정치가, 주류 언론과 지식인들은 아직도 이 상황이 잠정적, 일시적 침체국면일 것으로 생각하고, 어떻게든 또다시 성장 지표를 높여 ‘좋은 시절’로 돌아가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시대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이미 효력을 상실한 해묵은 전략과 방책, 그리고 낡은 세계관에 의지해서 말이다.
길을 잃었을 때는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살피는 게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70년 전 ‘해방’ 당시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제가 무엇이었던가를 다시 반추할 필요가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볼 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역사의 격랑 속에서 ‘식민주의’의 청산이라는 대의(大義)가 거의 잊혀져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분단이라는 기본적 제약 때문에 남북 어디서든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논리를 빈번히 들어왔다. 물론 이것은 기본적으로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분단 그 자체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제약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핵심적인 것은, 주어진 한계 내에서 과연 이 사회 속의 양심적인 정신들이 얼마나 지혜롭게 용기 있는 싸움을 해왔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 점에서 ‘베트남의 한국병사’에 관한 저 에피소드는 심히 뼈아픈 이야기이다. 식민지 백성으로 산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느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게 뼈저리게 경험한 한국인이 다른 아시아 민족의 반식민주의 투쟁을 저지하려는 제국주의 세력의 용병 노릇을 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오히려 그 민족을 돕는다고 생각했다는 것-이것은 한국현대사의 결정적인 자기망각, 자기배반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대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과거지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베트남 파병문제에 관련해서 오늘날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반응은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라는 거친 항변, 혹은 “그게 역사적인 과오였다고 할지라도 베트남 파병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했던 만큼 골치 아픈 이야기는 묻어두자”라는 매우 실용주의적 입장이다. 물론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과오 없는 역사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말을 꺼내지 않는 게 슬기로운 경우도 있다. 하지만 베트남 파병문제와 같은 것을 잊어버리자고 하는 것은, 이 나라를 윤리적 황무지로 만들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만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대의, 윤리, 도덕도 내팽개쳐도 좋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는 이제 우리가 한 걸음도 더 나아갈 데가 없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경제’를 위해서도 성장지상주의와는 결별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얼른 보면, 오늘날 한국인들이 영위하고 있는 나날의 생활은 예전보다 확실히 화려해지고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겉모습일 뿐이라는 것은 누구나 내심 다 알고 있다. 우리의 내면은 지금 불안과 공포에 차 있고, 조금이라도 인간적 존엄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삶이 갈수록 비루하고 천박해지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언론, 교육, 학문, 문학과 예술이라고 해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며 이제 인문적 교양인, 소위 지적 엘리트들도 대부분 상업주의에 굴복하거나 상업주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복무하고 있다.
이른바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표절문제로 요 며칠 온 나라가 들썩거리고 있지만, 이것도 결국은 상업주의에 의해 급속히 침윤되어가는 이 나라의 정신적·문화적 풍토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해당 작가도 작가지만, 충격적인 것은 한때 이 나라의 양심적인 지식인, 작가, 시인들의 집결처이자 근거지였던 유력 출판사가 이 표절논란에 휩싸여 지금 온갖 불명예스러운 치욕을 겪고 있는 정경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의 책(상품) 없이는 현상유지조차 어려워지는 출판현실이 결국 발목을 잡고 만 것이다. 자본주의 근대 시스템에 적응한다는 것, 게다가 거기서 ‘성공’하려 한다는 것, 그것은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자본주의문명은 어차피 종언을 향하여 가고 있다. 경제성장이 끝나면 (원하든 원치 않든 탈성장시대로 가지 않으면 인류는 미래가 없음이 확실하다) 자본주의는 더이상 갈 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종 단계의 자본주의시스템이 더 잔인하고 혹독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당분간 더욱 야만적인 시간 속을 비틀거리며 걸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신을 제대로 차리면 활로가 열릴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 실제로 지난 70년간 우리에게는 짧은 순간이지만 (시인 신동엽의 말을 빌리면) 몇 차례나 ‘하늘’이 열렸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문제는, 이 하늘을 어떻게 다시 열고, 그것을 지속적인 것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해답은 뜬구름 잡는 고답적 이론에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길을 잃고 헤매는 우리에게 필요한 나침반은 우리가 지나온 길을 찬찬히 뜯어 살펴보는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런 희망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