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이후처럼 공포가 만연해 있을 때 사랑이 흘러넘치는 세계를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두려움에 싸일 때 위축된다. 우리의 호흡은 얕아지고, 가늘어진다. 즉각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걱정이 모든 다른 것을 비켜나게 만든다. 테러의 위협 속에서 우리의 사고는 좁아지고, 단기적으로 된다.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들,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사람들과 위협에 대해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들로 나누어진다. 그밖의 다른 모든 사람들은 우리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되고, 존재 자체가 없는 사람들로 비쳐진다. 우리의 관심은 온통 즉각적인 위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데 집중된다. 우리는 “싸움에는 싸움으로”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고, 그리하여 우리의 머리는 온통 파충류 뇌가 지배하게 된다. 우리가 만약 성공적으로 도피하지 못했을 경우 우리는 싸워야 한다. 죽이기 아니면 죽임을 당하는 것뿐이다. 다른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이것이 공포의 심적 구조이다. 이것이 두려움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9월 11일의 끔찍하고 비극적인 공격 이후 우리나라에 광범위하게 퍼진 의식상태이다.
테러공격에 대한〈타임〉지의 특집에서 결론적인 글은 “분노와 복수를 위하여”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글의 필자,〈타임〉지의 정규 기고가 랜스 모로우는 “증오”와 “가차없는 야만적 응징”을 요구했다. 그는 격노와 보복의 미덕을 말하는 데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폭스 뉴스〉의 빌 오레일리는 “미국은 아프간의 기반시설 ― 비행장, 발전소, 수도시설, 도로 ― 을 폭격하여 전부 잿더미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민간인들에 대해서는 “만약 그들이 이 범죄적인 정부에 저항하여 봉기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마땅히 굶주려 죽는 수밖에 없다”고 오레일리는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뿐만 아니라 이라크와 리비아에 대해서도 대규모 공격을 가하라고 요구하면서 “그들은 모래를 먹어야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런가 하면,〈뉴욕타임스〉의 전 편집자 A.M. 로젠달은 우리가 이란, 시리아, 수단을 포함한 6개국에 최후통첩을 보내고, 그들이 72시간 내에 우리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대규모 폭격을 가해야 한다고 말했다.〈뉴욕포스트〉의 논설 필자 스티브 던리비도 예외적이 아니다. “이러한 벌레들을 보호하고 있는 도시나 국가들은 죄다 농구장으로 몰아넣어 폭탄을 퍼부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내셔널 리뷰〉지의 편집자도〈워싱턴포스트〉에 쓴 글에서 이들과 의견을 같이 했다. 그는 결론에서 “다마스커스나 테헤란 또는 어디든 우리가 이들을 납작하게 만들어버리는 게 해결의 일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전쟁의 북소리가 미국인들의 심리 전체를 통해 울려퍼지는 것과 함께, 여론조사의 결과는 80%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상군을 사용해야 한다는 데뿐만 아니라 중동의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도 군사행동을 해야 한다는 데 지지를 보내고 있다.
나는 복수를 해야 한다는 강력한 욕망에 대해서 낯설지 않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나 대부분의 미국인들처럼, 나도 최근 몇주 동안 그런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9월 11일의 일을 생각하면서, 적어도 순간적으로나마 분노로 피가 끓지 않고, 그래서 이들 대량살인자들과 그들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눈에는 눈으로의 복수를 요구하지 않은 사람이 우리들 가운데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심장이 분노로 끓고, 우리의 눈이 복수를 위해 사방을 훑고 있을 때, 우리가 간디의 예언적 발언, “눈에는 눈으로는 세상을 눈멀게 할 뿐이다”라는 말의 뒤에 있는 진리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중요하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매우 길고, 느리고, 깊은 호흡을 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균형과 명증하게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화가 나서 하는 행동과 지혜롭고, 효과적인 반응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가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의 네트워크를 뿌리뽑고자 할 때, 우리는 폭력의 악순환을 가속화하지 않도록, 무고한 사람들의 죽음을 초래하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우리의 세계에 이미 퍼져있는 분노와 증오가 더욱 깊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바늘을 찾기 위해 건초더미를 모두 태워버린다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특히 바늘을 찾는 도중에 건초는 물론이고, 곳간과 온 세상에 불을 지를 위험이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 테러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정의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 테러리즘이 뿌리를 내리지 못할 세계, 즉 증오가 테러의 유혹을 낳는 일이 없는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직면한 과제이다. 우리의 지도자들은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서 다국적 연대를 형성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미국 군대가 영공과 비행장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국제연대가 되어서는 안된다. 테러리즘을 패퇴시키기 위한 어떠한 연대도 그것이 평화롭고 정의롭고 번영하는 세계를 함께 세우기 위한 나라들끼리의 연대가 아니면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우리의 연대는 9월 11일의 공격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패배시키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국제적 협력의 세계, 즉 인간가족 중 어느 일부도 버림받거나 변두리로 밀려나는 일이 없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대략 6,000명의 사람들이 9월 11일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우리나라는 이 끔찍한 범죄의 야만성에 치를 떨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날 죽은 유일한 사람들이 아니다. 9월 11일에 35,000명의 아이들이 세계 전역에서 굶어서 죽었다. 그 비슷한 수효의 아이들이 9월 12일에도, 13일에도, 그 후에도 매일 죽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 우리는 우리가 수확한 곡물의 80%를 가축들의 먹이로 사용하고 있다. 이미 콜레스테롤 수준이 지나치게 높은 사람들이 값싼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안전을 지키고, 테러리즘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9월 11일의 공격만이 참을 수 없는 야만성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세계 전역에서 10억명의 사람들이 하루에 1달러로 목숨을 부지하고, 10억 이상의 인구가 안전한 마실물을 얻지 못하고, 3억명 이상에게 제대로 된 하수시설이 제공되고 있지 않는 현실도 참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러한 비참한 빈곤상황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며, 그 자체로 개탄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전역에 걸쳐 발달한 전자통신으로 인해 부유하고 강한 서구세계와 나머지 세계 사이의 갈수록 커져가는 불평등한 관계가 모든 사람들에게 가시적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과 함께, 이러한 불평등의 지속은 보다 나은 생활에 대한 아무런 전망이 없는 사람들을 자극하여 예전에 들어보지 못한 수준의 절망과 분노의 감정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몇몇 절망감에 사로잡힌 소수의 인간이 자살을 결행하며 인류사에서 군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국가에 대타격을 가할 수 있는 시대에, 테러리즘의 격퇴에 헌신하려는 국제연대는 또한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과 빼앗긴 사람들에게 정의와 번영을 가져다주는 데도 헌신하는 연대가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테러리즘을 진실로 종식시키고자 한다면, 우리의 목표는 세계의 오염과 두려움과 빈곤을 줄여나가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진실로 우리의 목표가 된다면,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우리의 행동과 자원을 바친다면, 세계의 빈 라덴에 대한 지지는 증발해버릴 것이다.
그런 목표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 라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건 진실이 아니다. 테러에 대해 군사적으로 응징하기 위해서 우리가 당장 치러야 할 비용은 1,000억달러가 쉽게 될 것이다.(이것은 우리의 엄청난 연간 국방비 3,420억달러를 제외하고 드는 비용이다.) 우리가 이 비용의 극히 작은 일부라도 인간의 고통을 줄이는 프로그램에 쓴다면 얼마나 큰 일을 하겠는가.
1998년에 유엔개발계획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위하여 깨끗한 물과 하수시설을 제공해주는 데 90억달러의 비용이 추가적으로 들 것이라고 추산했다. 세계 전역의 모든 여성의 출산건강을 위한 서비스에는 120억달러의 추가비용이 들 것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먹을 것뿐만 아니라 기초적 건강관리를 제공하는 데는 130억달러의 돈이 더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60억달러가 더 있으면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수치는 큰 수치이다. 하지만 모두 합쳐서 그것들은 400억달러인데, 이것은 2001년 10월에 미국정부가 새로운 F-35 기종 폭격기를 위해 록히드사에 지불하기로 합의한 2,000억달러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우리의 정부는 국제연대를 조직하고, 9월 11일의 공격을 감행한 사람들을 패퇴시키기 위해 수천억달러를 쓰는 것을 망설임 없이 결정했다. 우리가 그와 마찬가지로 굶주림을 제거하고, 깨끗한 물을 제공하고, 감염병을 퇴치하고, 적절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문맹을 퇴치하고, 노숙자를 없애기 위해 국제적 연대를 조직한다면 어떻겠는가. 오늘날 인류의 대부분에게 기본적인 욕구충족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는 한 국가안전이라는 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아닌가. 텔레비젼과 기타 전자통신에 의해서 투명하게 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이웃나라와 번영을 나누지 않는 나라는 어떠한 나라라도 원한과 증오를 낳을 수 있을 뿐이다.
가장 절박한 것은, 우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하고 있는 엄청난 인도주의적 문제에 신속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나라는 수십년에 걸친 분쟁을 견뎌왔다. 그 결과, 우리의 폭격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식량원조에 의존하고 있던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거기에 있다. 지금 그들은 임박한 아사(餓死)에 직면해 있다. 유엔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것은 일찍이 보지 못한 가장 심각히 구호를 요하는 긴급상황이다.
미국정부는 C-17 수송기가 아프간 민간인들에게 하루 20,000꾸러미의 식품을 떨어뜨려주고 있다는 것을 크게 선전해왔다. 그러나 옥스팜과 같은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중인 세계 기아구호 기구들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실패작이라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원조기구의 하나인 ‘국경 없는 의사들’의 의장은 이슬라마바드에서 가진 회견에서, 이 프로그램은 ‘홍보전략’일 뿐이라고 개탄했다. 공중으로부터의 식품 꾸러미의 낙하는 엄청난 돈의 낭비라고 그는 말했다. 하룻동안 어른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식품을 담고 있는 그 꾸러미들은 광범위하게 땅 위로 흩어져 실제로 사람들의 손으로 들어간다는 아무런 보장이 없다. 많은 경우 꾸러미들은 지뢰지역 가운데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 양은 700 내지 800만명이 아사의 위험에 처해 있는 나라에서 터무니없이 미미한 것이다. 거기에 사용된 돈(미국정부 측에 따르면 2,500만달러)은 이미 활동중인 정규 원조체계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면 훨씬더 나을 것이다.
여기에 끔찍한 아이러니가 있다. 미국은 오랫동안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주요 식량원조국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미국이 바로 도로를 파괴하고, 그럼으로써 실질적인 원조식품이 전달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실질적인 긴급구호 식량을 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극적인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아프간 사람들을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대중들의 마음속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냉정한 존재로서 미국의 이미지가 강화될 것이다.
미국 사람들 절대 다수가 인류의 복지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데 비해서 미국정부의 외교정책은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교만하고 이기적인 것으로 비쳐져왔다. 그렇게 비쳐질 만한 원인을 우리가 흔히 제공해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거의 유일하게 지뢰금지 협약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국가가 된 미국에 대해서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는 어렵다. 미국은 또 화학무기를 제거하기 위한 세계적 협정에 순응하기를 거부한 오직 4개의 국가(리비아, 시리아, 이라크와 함께)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미국은 아이들을 병사로 이용하는 것을 금하려는 유엔의 노력을 거의 단독으로 방해해왔다. 지난 10년간 200만명의 아이들이 군사적 충돌 상황에서 죽음을 당하였는데도 말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많은 찬양할 만한 일을 해왔다. 우리는 때로 국제사회에서 명예롭게 행동해왔고, 자유의 횃불이 되어왔다. 그러나 세계는 우리의 다른 측면도 또한 보아왔다. 미국이 ‘아동의 권리에 관한 유엔협약’을 비준하기를 거부한 2개국(소말리아와 함께) 중의 하나가 된 데 대해서, 그리고 인류에 대한 크나큰 범죄행위인 민족학살과 강간, 성노예와 같은 전쟁범죄에 대해 조사하고, 기소하려는 유엔의 노력에 반대한 3개국(리비아, 이라크와 함께) 중의 하나라는 점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국민의 의지와 미국정부의 외교정책 사이에 엄청난 단절이 있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정직하고, 품위있고, 자비롭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정책이 우리의 자비심과 우리의 인간성을 얼마나 배반해왔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미국 시민은 드물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세계의 주도적인 무기상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미국인이 얼마나 되는가? 또는, 지난 15년간 세계 무기거래에서 미국의 몫이 16%에서 70%로 증가해왔다는 것을 아는 미국인은? 9월 11일 이전에도 우리가 미국이 잠재적인 적국으로 보고 있는 국가들(쿠바, 이란, 이라크, 북한, 시리아)이 쓴 군사비의 합계보다 18배나 더 많은 돈을 군사비에 쓰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미국 사람들이 알고 있는가?
부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단기적으로 미국의 이익과 권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다자간 협약과 국제적 협정을 거부하였다. 처음부터 그의 행정부는 지구온난화, 핵무기 감축, 인구통제, 무기거래, 화학 및 생물무기 등에 관한 협정으로부터 단절을 선언함으로써 세계공동체의 노여움을 샀다.
이것은 당파의 문제가 아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 모두 흔히 다른 나라들을 무시하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해왔다. 세계 전역에서 석유와 기타 자연자원에 대한 미국의 접근을 확보해놓기 위해서, 그리고 값싼 노동력을 계속하여 확보하기 위해서, 미국정부는 빈번히 자기 국민들로부터 증오의 대상이 되어있는 비민주적이고 억압적인 정권들을 지원해왔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진실이다. 우리는 자기자신의 국민들에게 광범위한 테러를 가하는 정부들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계속해왔다. 인권과 자결을 지지하는 대신에, 우리는 우리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값싼 석유가 제공되고, 그들의 시장에 대한 접근이 가능한 한, 독재정권들에게 수천억달러에 달하는 무기를 팔았다.
이제 우리는 갑자기 우리가 세계의 도움을 필사적으로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희망의 신호가 있다. 런던의 한 신문이 최근에 논평하였듯이, “콜린 파월은, 미국정부 인사로서는 놀랍고 드문 겸손을 드러내면서, 이제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서 미국이 세계의 다른 문화들에 대해 좀더 민감해져야 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이 모든 것 속에서 우리의 국가적 목적은 하나의 맥월드(맥도날드로 단일화된 세계)를 건설하는 것보다 더 큰 것이며, 우리가 세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의 행복과 깊은 상호의존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미국은 기억할 것인가? 미국이 우리의 진정한 국가적 목적을 성취하고, 영속적인 국가 안전을 이룩할 날이 올 것인가?
우리가 석유에 대한 우리의 중독상태를 깨트리고, 수소와 풍력과 태양 에너지와 기타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안전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에 토대를 둔 경제를 발전시킬 때 비로소 그러한 방향으로의 길이 열릴 수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문명의 위대함을 우리의 군사력과 대규모 손상과 응징을 가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최상의 것을 드러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과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물려줄 삶의 질에 의해서 평가할 때 진정한 국가적 안전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핵무기에 쓴 5조억달러의 돈과 추위 속에서 떨고 있는 집없는 아이들, 갈 곳 없이 버림받은 여성들, 극빈의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들과의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보게 될 때, 우리가 수십년간 매일 군사비에 써온 10억달러와 아무런 희망이 없는 굶주린 사람들, 예방가능한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자신의 딸을 성노예로 팔아야 하는 가족들과의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보게 될 때, 우리는 테러리즘을 패퇴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열정적으로 전쟁에 바쳐온 그러한 정도의 헌신성으로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데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원을 바칠 때 테러리즘이 발붙일 데가 없는 세계의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몸에 좋고, 지구에 좋은 식품을 생산하고 먹기 시작할 때, 또 우리가 지구의 어디서든지 굶주리는 인간의 존재를 더이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 우리가 올바른 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알 게 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힘이 정복이나 굴복이 아니라 양육과 친교를 위한 능력이 될 때, 또 우리가 추구하는 성공이 그것이 생명에 대한 존경에 토대를 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나눌 수 있는 것일 때, 우리는 인간정신을 떠받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공공정책과 개인적 생활 스타일을 개인적 이익을 위해서뿐 아니라 전체 지구공동체라는 보다 큰 이익을 위해서 설계할 때 우리는 보다 안전하고 친절한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종교적이고 영성적인 삶은 우리를 좀더 인간적이고, 좀더 겸허한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며, 우리에게 모든 존재를 존경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좀더 큰 능력을 줄 것이다.
두려움이 지배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뒤로 물러서서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보고자 기다린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앞으로 나서서 확실한 입장을 취한다. 우리들 중 보다 많은 사람들이 번영하고,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의 창조를 위한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면 할수록 세계의 빈 라덴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여지는 그만큼 더 줄어들 것이며,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이 세계에 넘쳐흐를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질 것이다. 그러면 9월 11일의 공격에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게 될 것이다.
9월 11일의 공격은 쓰라린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며, 수십년 또는 수세기에 걸쳐 진행되어온 과정의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와 이해 ― 그것만이 우리를 진실로 안전하게 만들어줄 것인데 ― 에 이르기 위해서는 여러 세대에 걸친 보살피고 기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내부의 선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에 값할 만한 열매를 심고, 가꾸고, 거두는 데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금 우리의 삶을 바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야말로, 세계는 우리의 지혜와 우리의 협동, 그리고 모든 인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우리의 깨달음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원문은 저자가 설립한 환경운동 조직 EarthSave International의 웹사이트를 통해 2001년 11월 2일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