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와 함께 요즘 뜨고 있는 기술인 인공지능에 대해 온갖 장밋빛 미래가 그려지고 있다. 인공지능 때문에 직업을 잃게 되지 않을까 우려도 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내지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회자된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녹색평론》 2020년 1―2월호 ‘인공지능에 대한 근본 질문들’ 특집을 읽다가 “이 인공지능은 자신도 모르게 ‘인종차별’을 했다”(27쪽)라는 문구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기존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의 원리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이 충격적이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기술은 가치중립적일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잘못 쓰는 사람이 문제라는…. 정신을 차리고 이 사실을 인정하고 보니 “지금 사회적 약자는 어쩔 수 없이 인공지능시대에도 약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29쪽)는 암울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원하지 않는다면 인간 없는 미래, 인간이 더는 필요 없어진 세계는 오지 않을 것이다”(45쪽)라는 말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나라는 “인공지능에 돈을 대고 있고” 이 미래가 “정해진 미래”인 것처럼 말하고(45쪽) 있는 자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산업용 로봇을 제일 많이 쓰는 나라다. 2017년 기준 제조업 종업원 1만 명당 산업용 로봇 수를 보면 한국은 710대로, 일본의 2배 이상(우리나라에서 사용되는 산업용 로봇의 대부분은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미국의 3.5배, 중국의 7배, 세계 평균의 8배 정도나 된다(국제로봇협회(IFR) 자료). 한편 우리나라의 노동권리지수(ITUC Global Rights Index)는 최하인 5등급으로서 노동권 보장이 없는 나라에 해당한다. 재벌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산업자본이 인공지능기술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어떤 일을 벌이고 있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탄핵된 전 정부의 대통령 권한대행이 신년사에서 인공지능기술 등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고, ‘촛불정부’를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국정과제로 꼽으며 한국의 ‘4차 산업혁명’ 검색량은 현재까지도 전 세계의 검색량을 훨씬 웃돈다(52쪽). 지난달에는 인공지능 국가전략까지 발표되었다. 이 정부가 앞서 추진한 수소경제사회보다는 훨씬 실현 가능성이 높기에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은 “고용 불평등, 알고리즘 차별 같은 구체적인 가치에 대한 논의”(58쪽)부터 시작해야 하겠다. 그런데 인공지능이 야기할 고용 불평등을 논의하는 이 기회에 노동권 보장이라는 좀더 근본적인 문제부터 따져볼 수는 없을까? 인공지능에 내재된 차별을 논의하는 자리에서는 이 사회에 만연한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에 대한 고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노동권 내지는 인권에 대해 좀더 감수성이 높은 사회가 된다면, 예들 들어 인공지능을 통해 얻은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여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사용한다든지 하는 대책도 충분히 논의해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