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녹색평론》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시기는 도서관 정기간행물실을 다니기 시작한 2006~2007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역사학에 관심을 쏟고 있었기에 대충 훑어만 보았을 뿐, 《역사비평》이나 《창작과비평》 같은 잡지를 더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대학 졸업 후에는 도서관을 찾을 때마다 《녹색평론》을 더 열심히 읽고 있다. 이러한 취향의 변화는, 대학 졸업 후 변변한 직장은커녕 대학원 진학조차 쉽지 않은 내 자신의 상황, 다시 말해 학교라는 제도적 공간을 벗어나 우리 사회를 직접 경험하기 시작한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개인으로나 사회 전체로나 정보만 넘쳐날 뿐 통찰과 대안이 부재한 이 시대에《녹색평론》이야말로 대안을 제시하고 논하는 유일한 매체라고 생각하는 탓이다.
내가 《녹색평론》을 열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녹색평론》 125호(2012년 7-8월)에 실린 〈성장시대의 종언〉이라는 글을 읽은 직후였다. 이 글은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원리를 조목조목 짚으면서 이제 과거와 같은 방식의 경제성장은 현실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더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여태까지 어느 매체에서도 볼 수 없던 내용이었다. 이 무렵 박정희 고도성장 신화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던 한국사회에서, 그리고 역사학도로서 자본주의란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던 내게 이 글은 새로운 지적 시야를 터주는 것만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녹색평론》을 열독하기 시작했다. 늘 가벼운 주머니 사정 탓에 단 한 번도 정기구독 신청은 엄두를 내보지 못했지만, 이후 녹색평론사에서 과월호를 할인 판매한다기에 20권을 얼른 주문해 틈틈이 읽기도 했다. 기본소득, 무위당 선생의 사상, 대안으로서의 민주주의, 시민의회, 라틴아메리카의 실험, 현대 은행과 화폐의 실체, 탈성장과 소농의 중요성, 경쟁과 석유경제의 허위성 등등 종전의 교육이나 매체에선 접할 수 없었던, 살아 있는 문제의식과 대안이 거기에 있었다. 종래 ‘정상’이라 여겨온 것들이 더이상 ‘정상’이 될 수 없음을 통렬히 깨닫게 된 셈이다. 이후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발언Ⅰ》과 《발언Ⅱ》, 《100% 돈이 세상을 살린다》, 《원자력의 거짓말》 은 책을 구해 읽으며 좀더 깊이 공부할 계기로 삼기도 했다.
나는 《녹색평론》 독자로서 두 가지 소망을 말하고 싶다. 우선, 이 사회의 정책입안자, 경제학자들이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녹색평론》을 읽고 사유할 기회를 갖기 바란다. 이들 대부분은 외국의, 구체적으로는 영어로 쓰인 이론이나 정책을 근사하게 여기는 식민지적 사고에 젖어 있을뿐더러 사주와 광고주의 이익을 대변하기 바쁜 주류 언론에 의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대다수 언론들은, ‘불편한’ 또는 ‘불온한’ 진실들을 외면하고 단편적인 이슈 터뜨리기에만 급급할 뿐, 근원적 대안을 제시할 능력은 전무하다고 생각된다. 실상 ‘사회적 공해’와 다름없는 그러한 언론 기사들을 정책 입안에 활용해보았자 또다시 대다수 민중을 배반하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말 것이 틀림없다. 땜질식 처방이 아닌, 현실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요청되는 진정한 대안 정책을 개발해내려면 《녹색평론》의 문제의식과 대안, 이론, 사례들을 충분히 학습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녹색평론》에서 자급자족의 자립적 소농으로 살아가고자 귀농을 마음먹은 도시 청년층을 위해 그에 필요한 방법, 사례 등을 충분히 다루어주었으면 한다. 글쓴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도시에서 자라 도시의 소비생활에 깊이 길든 청년들로선, 귀농에 대한 생각이 있다고 하더라도 선뜻 실천에 옮기기가 쉽지 않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귀농귀촌종합센터가 있기는 하지만, ‘창업농’이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 그곳에서 가르치는 농업은 자립적 소농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청년층이 자립적 소농생활을 택할 때 필요한 것과 감당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있는 것 같다. 《녹색평론》이 그 나침반 역할을 해줄 수는 없을까? 무한경쟁과 능력주의, 종속적 소비생활의 원리를 깊이 내면화한 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청년들을 위해 《녹색평론》이 수행해야 할 기능이 자못 막대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