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탁 지음
녹색평론사, 2016년
최용탁 작가가 최근 펴낸 산문집 《아들아, 넌 어떻게 살래?》에 대한 서평을 부탁받았을 땐 참으로 난감했다. 비록 농사를 짓고 있긴 하지만 전문 작가이기도 한 그의 작품에 대해 문학적으로 어떤 식견도 없는 사람이 평을 한다는 것이 전혀 가당치 않은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일은 내가 농부가 아니었더라면 감히 바랄 수도 없을 만큼 분에 넘치는 일일 뿐 아니라 작가에게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하여 나는 그의 글을 빌려 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녹색평론》 최근호의 뒤표지에 소개된 그의 책은, 제목부터 나에게 매우 현실적이고 예민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우리집 아이들이 둘 다 올해 대학교 졸업반임에도 할 일이 아직 정해져 있지 않은 탓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두 아이 중 한 녀석 정도는 농사를 지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부녀가 들판에서 함께 농사일을 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멋진 풍경이 될 것이라 상상하면서 속으로 신나기도 했다. 그런데 큰 녀석은 성격이 차분하고 정적이어서 농사일에 맞을 듯하지만 어려서부터 몸이 워낙 약한 탓에 농사꾼으로서의 삶을 기대조차 하지 않았는데, 최근 집에 내려왔을 때에 학교를 마치면 농사를 짓고 싶다는 바람을 조심스레 얘기했다. 반면에 성격이 활달하고 새로운 일에 머뭇거림이 별로 없는 둘째는 어찌어찌해서 농업 관련 대학에 들어갔지만 졸업하고 농사를 지을 생각은 전혀 없다는 눈치다. 자식농사가 조금씩 뒤틀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책의 제목이 던지는 그 질문은 자식 키우는 부모 눈에는 “아이들에게 어떤 일을 권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다가온다. 물론 아이들의 장래는 저희들 스스로 결정할 일이지만 다 자란 아이들이 제 갈 길을 아직 정하지 못할 때 넌지시 똥겨주는 일 또한 부모의 역할일 터이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떤 일에서건 인간다운 삶을 누릴 가능성이 갈수록 희미해지는 세상에서 농사일은 그나마 권해볼 만한 일이라고 느끼지만, 아이들이 보는 눈은 또 다를 것이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나 스스로도 그 나이 때에 농사일을 그렇게 받아들였을 터이니. 가까이 지내는 농사꾼들 중에도 자식 하나쯤 농사꾼으로 만들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보건대, 막내가 농사를 함께 짓기로 했다는 작가의 이야기는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 윗세대의 부모와 자식이 함께 농사를 짓는 모습은 흔한 일이지만 우리 세대에서 그런 모습은 참으로 보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들아, 넌 어떻게 살래?》는 모두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는 2년여 동안 《녹색평론》에 연재되었던 것으로 구성되어 독자들에게도 꽤 낯익은 글들이다. 2부는 〈한국농정신문〉과 〈한국일보〉 등 언론매체에 발표한 칼럼을 모은 것인데, 정치적인 문제를 비롯해서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지면의 제약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편안하게 펼치지 못한 듯한 느낌을 준다. 3부는 〈한국농정신문〉의 의뢰를 받아 동학농민혁명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스케치하듯 쓴 글이다. 호남 일대에 남은 당시의 흔적들을 쫓아가며 혁명이 전개되어간 과정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쓴 것인데, 혁명 과정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라 하기도 어렵고, 르포 또는 역사기행이라 보기에도 애매해서 좀 아쉬운 느낌이 있다. 그래도 지난하게 지속되고 있는 농민운동이 갑오농민전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교과서에서 아득하게만 다가오는 역사적 사실이 실은 지척에 있는 조상들의 살아 있는 숨결임을 새삼스레 깨우쳐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1부의 글들이 농사꾼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고, 또 작가로서의 풍부하고 섬세한 감성이 잘 드러나 있어 농사꾼인 나에게는 가장 재미나게 읽혔다.
농사와 ‘좋은 삶’
글 중에는 같은 농사꾼으로서 그와 내가 동병상련을 앓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반가운 대목이 있다. 30대 초반에 귀농하면서 별생각 없이 시작한 과수원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바로 내가 선택한 농사가 과수원이었다는 것이 지금 내게는 비애가 되었다. 과수원을 하면서 나는 스스로를 더이상 깨끗하다고 느낄 수 없게 되었다”라는 말로 과수원 농사의 고통과 비애를 토로하고 있다. 농사와 전혀 관계없이 살다가 소위 ‘좋은 삶’을 찾아 귀농하려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꿈꾸는 삶에 걸맞은 방식의 농사를 선택했겠지만, 농촌 출신으로서 귀농하려는 상황에서 부모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면 그 품과 그 땅에 깃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농사를 계속하면서 과수농사의 바람직하지 못한 면들이 그를 고통스럽게 한다. 고통의 근원적인 이유는 과수농사가 워낙에 상업적인 특성을 벗어나기 힘든 농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일이라는 게 주식으로 삼을 수 없는 물건인지라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고, 그것으로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한정된 땅에 밀식재배가 뒤따른다. 당연한 귀결로 농약과 화학비료는 물론 제초제도 써야 할 것이다. 그는 이것이 토양과 나무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고 학대하는 방식임을 알고 있음에도 이미 익숙해져버린 방식이기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버텨내야 하는 현실이 안겨주는 무게, 어느덧 오십 줄을 넘겨버린 나이 등으로 이 일에서 선뜻 자신을 해방시키지 못하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15년 전에 귀농하면서 곧바로 양계를 시작해서 아직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계는 내가 어려운 농촌 현실에 뛰어들어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고 그나마 빚지지 않고 농촌에 정착하는 데 효자 노릇을 단단히 했지만 결코 만족스러운 일이 아닌지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케이지양계와 같은 밀식 사육은 아니어서 작물의 농약에 해당하는 항생제는 쓰지 않지만, 1,000수도 채 되지 않는 알량한 규모에도 사료값에 영향을 미치는 환율과 석유 가격, 국제 곡물 가격에 신경 써야 하는 것이 같잖아 보인다. 사료의 주된 원료인 옥수수는 뻔히 유전자조작된 것이라 소비자에게 계란을 건넬 때 마음 한구석이 켕긴다. 또 오전 오후로 어김없이 알을 줍고 밥을 챙겨주어야 하는 일이 지겹기도 하거니와 논밭 농사일을 토막 내어, 일하는 즐거움을 빼앗는다. 게다가 밤늦게까지 계란을 배달하는 일이 나와 가족의 몸을 학대하는 지경이 되었다.
생계유지를 목적으로 농사를 선택한 것이 아닌, ‘좋은 삶’을 좇아 농사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이라면 자급에 필요한 최소한의 규모로 농사를 지으면서 남은 시간에는 품격과 고결함에 걸맞은 일을 하고 지내는 것이 공통된 꿈이고 이상이다. 작가 또한 다섯 식구가 살아가는 데는 1,000평의 농지에 1년에 300시간의 노동으로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그러한 삶으로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귀농한 선배로서 후배들이 따라갈 수 있는 모범적인 삶의 전환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귀농이란 한순간의 결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물리적 변화라기보다는 보다 온전한 삶을 향해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결코 완성된 형태로 끝나지 않을 ‘과정’이다.
우리 삶을 끌어가는 힘
그런데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농부들이 꿈꾸고 있는 그러한 이상적인 삶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우선 그러한 변화가 현실화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이다. 소망한 대로 그렇게 작은 영농규모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 삶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소비생활에 대한 혁명적인 각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상업적인 농사를 면치 못하게 하는 큰 요소는 국가가 주도하고 공급하는 공교육 서비스와 ‘현대적인’ 의료체계이다. 특히나 자가용 승용차를 굴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상업적 농업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공염불이다. 농촌지역에서 갈수록 인구가 줄고 자동차가 널리 보급되면서 대중교통은 배차 시간이 더욱 늘어나고, 밤에는 일찍 끊어지기 때문에 여기에 내 몸을 맞출 수 있을지 나는 자신이 없다.
또다른 하나는 농사일에 들이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은 삶’에 보다 가까운 것인지도 의문이다. 나처럼 술 담배 말고는 맘을 쏟을 만한 취미나 일거리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농사일은 그 자체로 여러 욕구를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창조적 활동이다. 몸을 혹사시키는 고역이 아닌 이상 농사일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러한 즐거움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인지 그 이유를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마지막 의문은 농사꾼은 스스로의 힘으로 식량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제공해야 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토지의 관리를 위탁받은(위탁한 존재가 자연이건 공동체건, 혹은 신이건 상관없이) 존재로서 농사꾼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지탱해줄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아는 한에서 농사꾼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간디가 말한바 “신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주는 존재라면 농부는 신의 손”이라는 말이다. 농사꾼으로서 이러한 책무를 부정한다면 농사꾼에 대한 간디의 상찬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농사꾼은 고된 노동과 생산물의 피탈, 거기에 더해 전쟁이 나면 소모품 노릇으로 한순간도 편한 날을 누리지 못했던 비극적인 운명을 짊어진 존재가 아니었던가. 농사일 틈틈이 뜻하지 않게 만나는 아름다움과 기쁨으로, 다른 생명을 보듬고 산다는 뿌듯함으로, 그 숱한 고통과 비애를 잊고 지우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게 농사꾼이 아닌가 싶다.
세상일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쉽사리 그 일에 개입하지 못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자못 냉소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것은 대체로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키운 신념과 원칙이 매우 명확하고 단단하다는 데서 오는 것일 게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늘 약하고 작고 힘없는 존재들을 향해 있다. 겨울철 난방용 연료로 연탄을 배달하는 사람에게 상품성이 없는 사과 몇 알을 건넸다가 연탄 한 장에 10원을 올려 받았다는 고백을 듣게 된 이야기나, 노쇠해서 경제적 가치가 더이상 없다고 판단해 방치해버린 복숭아나무에서 이듬해 봄에 만개한 복숭아꽃을 보고서 느끼는 미안함 같은 감정들이 오히려 우리 삶을 받쳐주고 끌어가는 참된 힘이라 알려준다.
책을 읽으며 누렸던 커다란 즐거움 중의 하나는 글에 쓰인 어휘나 표현들이 부드럽고 따뜻하다는 것이었다. 모름지기 남에게 보일 목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요즘 사람들 이목에 오르내리는 말 중에서 품위와 격조,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감을 발견하기가 너무 어렵다. 정치가들이 앞장서서 내놓는 공적인 언어들은 날카롭게 각이 지고 거칠어서 그것을 견디는 당사자는 물론 제삼자까지 상처를 받기 십상이다. 세상에 내놓을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슴속에 자리 잡고 있는 각을 깎고 따뜻하게 쓰다듬어 그것이 타인을 겨누는 창끝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에 관심을 두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미덕을 발휘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한 노력에 시적인 표현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일찍이 시인을 꿈꾸다 소설을 쓰게 된 작가의 이력 덕으로 그의 글 틈새에서 시적인 표현과 운율을 발견하는 것 또한 즐거움이었다.
더불어 그의 글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아름다운 우리말과 속담들을 만나게 된 것도 반가웠다. 내가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이 워낙 모자란 탓에 그의 글을 통해 ‘겨끔내기’나 ‘가녘’, ‘몽우리’, ‘생게망게하다’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이나, ‘장마에 외 붇듯’, ‘콩 튀듯 팥 튀듯’,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와 같은 속담을 새로 배우게 된 것도 결코 적지 않은 행운이다. 이러한 우리말 어휘나 속담들은 대부분 과거의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해서 생겨난 것인데, 농촌에 사는 내가 이러한 것들을 오랜만에 뜬금없이 접하게 된 것이 우리 농업의 쇠퇴를 넘어 몰락을 반증하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 또한 겹친다.
이렇게 예쁜 우리말들을 만나면 나는 어김없이 몇년 전에 겪었던 당혹스러움을 떠올리게 된다. 인터넷을 뒤적이는 중에 ‘멘붕’이라는 말을 만난 것이다. 글의 맥락으로 보아 그 뜻을 대강 짐작은 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만들어진 말인지 궁금하던 차에 ‘멘탈 붕괴’라는 원어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 순간 나 자신이 모욕당한 것 같은 경험을 했다. 영어에 한자말을 갖다 붙인 괴물 같은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상어가 되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다. 시세에 밀려 쇠퇴 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말의 운명이 안쓰럽기 짝이 없고, 우리말을 소중히 생각하며 작품 속에서나마 그것을 살려보려는 몇 안되는 작가들의 노력 또한 안쓰럽고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