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 버먼 지음
녹색평론사, 2015년
미국 역사가요 사회비평가 모리스 버먼(72)의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는 제목 그대로 미국의 실패를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있다. 이 책과 더불어 미국문명에 관한 그의 3부작으로 거론되는 《미국문화의 황혼》(2000), 《미국 암흑시대》(2006)도 모두 인상적인 제목을 달고 있다. 제목만 봐도, 저자의 미국관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겠다.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태어나 코넬대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존스홉킨스대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캐나다, 유럽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고 2006년부터 멕시코에서 생활해온 버먼은 서구 문화·사상사 전공자다. 미국이라는 제국은 이미 실패했고, 몰락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고 거침없이 얘기하는 그의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 이 책에서 버먼은 미국이 몰락을 피해갈 방도는 이미 없으며, 오히려 몰락만이 대안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재생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얘기한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미합중국은 나날이 약해지고 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미국은 내리막길을 가고 있으며, 네일러가 옳게 말하고 있듯이, 도덕적으로도 파산상태이다. 종말의 시간에는 ‘중심’이 버텨내지 못할 것이고, 이탈은 무사히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커크패트릭 세일은 이렇게 쓰고 있다. “… 몇십 년 이내에, 어쩌면 더 일찍 무너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그 후에는 대안적 사회가 일어날 공간이 있을지 모른다.”(210쪽)
네일러는 듀크대 명예교수인 경제학자 토머스 네일러다. 그는 제국 미국이 지속 불가능한 체제라며, 버몬트주의 분리독립을 주장했다. 인용된 또 한 사람, 문명비평가 커크패트릭 세일은 제국의 붕괴가 몇십 년 안에 일어날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때 정말 미국이 여러 개로 쪼개지는 합중국 해체가 시작될까?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렵지만, 30~40년 뒤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버먼은 얘기한다.
저자는 1929년 대공황과 2008년 월스트리트발 세계금융위기 등을 제국 몰락에 대한 “거대한 경고”로 받아들이면서, 미국은 그 경고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대처하지도 못했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파탄은 저자 버먼이 얘기하는 위기의 뿌리가 아니다. 그것은 제국의 근원적 결함이 파생시킨 결과물이요 징후일 뿐이다. 말하자면 가지나 잎에 지나지 않는다. 버먼이 생각하는 위기의 근원은 이처럼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도사리고 있는 무엇이다. 우리는 그 정체를 예컨대 다음과 같은 기술에서 엿볼 수 있다.
마흔일곱 가지(정확한 수인지는 모르겠다) 종류의 면도날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진보일까? 친구들끼리 저녁식사를 하면서 그중 반수 이상이 저녁 내내 서로가 아니라 휴대전화에 대고 얘기하게 된 상황(그것도 대개는 식탁에 앉은 채로)이 진보란 말인가? 아니면 월마트에 쇼핑하러 온 사람들이 할인된 DVD플레이어를 손에 넣기 위해서, 문자 그대로 다른 사람을 짓밟고 넘어가고, 그러고는 의료진이 도착했을 때에는 의료진에게 길을 비켜주지 않는 상황이 진보인가? 만일 이런 것들이 진보라면, 우리가 얼마나 더 이것을 견딜 수 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허슬링을 절대 포기하지 않듯, 진보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포기는 애초에 선택지에 들어 있지 않다. 현대기술은 중독성이 몹시 강하고, 허슬링 정신구조와도 매우 잘 들어맞는다.(12쪽)
버먼은 세계 제일의 강대국 미국, 역사가 월터 맥두걸이 “(세계사에서) 지난 400년 동안 일어난 사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미합중국의 건설”이라고 한 그 미국이 이룩했다는 진보에 대해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여기서 그가 문제 삼고 있는 제국 몰락의 근원이 도덕적인 것, 정신적인 것, 또는 의식, 가치관과 관련된 것이라는 게 드러난다. 면도날의 선택지가 한 두 가지에서 마흔일곱 가지로 늘어난 것, 친구들끼리 만나 식사하면서 반수 이상이 서로 대화하지 않고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 그리고 고작 할인 신제품을 먼저 사기 위해 서로를 짓밟고, 긴급의료진이 와도 길을 내줄 줄 모르는 상황, 이 물질적 진보의 광적인 추구와 ‘허슬링’,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는 이것이 버먼이 얘기하는 미국제국 몰락의 근원이다.
허슬링이란 “나한테 무슨 이득이 되나에만 관심을 가진”, 개인적 이익을 보려고 집요하게 달려드는 사람들, “내 것 챙기기만이 삶의 전부라고 배우며 자란 파편화된 개인들”(허슬러)의 행위요 추구하는 가치다. 허슬링에는 기술의 발전과 거기에 토대를 둔 무한 진보에 대한 종교적 숭배에 가까운 환상이 배경으로 깔려 있다.
버먼은 이 허슬링을 미국문명의 기초요 출발점으로 본다. 또한 그것이 미국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미국은 그것 때문에 발전했지만, 또 바로 그것 때문에 파멸한다고 얘기한다.
그가 보기에 허슬링에는 부자와 빈자,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없다. “미국인에게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단지 가진 돈의 차이이며, 빈자도 부자가 되려 하고,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미국인은 단 한 번도 다른 유형의 사회를 원한 적이 없다.” 그 점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다를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가난한 허슬러도 역시 허슬러이고, 그들의 사회적 비전(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도 역시 똑같다. 미국인들은 결코 빌 게이츠를 흡혈귀 기업가로 보지 않는다.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미국인들은 바로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며, 그런 기회를 제공하고 장려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이며 지향해야 할 바라고 믿는다. ‘허슬링 라이프’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영혼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일종의 암이다.(46쪽)
한국인들 중에 “우리와 별다를 게 없네”라거나, “세상이 다 그런 모양”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그만큼 미국화됐기 때문일 수 있다. 세상이 다 그런 건 아니다.
허슬링 라이프는 공공, 공공의 선, 공공의 이익, 공동체, 자연환경, 영성적 활동, 간소한 생활, ‘소박한 삶과 고매한 사고’, 공화주의, 슬로라이프와는 배치되거나 잘 어울릴 수 없다. 바꿔 말하면, ‘허슬링 라이프라는 암’을 퇴치하려면 공공, 공익, 공동체, 공화주의, 영성, 자연환경을 되살리고 강화하는 게 유효한 방법일 수 있다. 간단히 얘기하면, 허슬링이냐 탈허슬링이냐, 이것이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문제의 핵심이며, 그 답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허슬링이나 기술혁신(진보) 자체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갖는 이점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간 삶의 총체적 목적 또는 도덕적 생태학 속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맞아 들어가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의 과도한 추구나 그것 자체가 삶의 목적이 돼버린다면, 결국 삶에는 아무 목적도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단지 더 많은 것, 더 효율적인 것의 추구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고, 돼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미국은 바로 허슬링과 진보 자체가 삶의 목적이 돼버린 사회, 즉 “목표가 없는 목표 지향적 사회”가 돼버렸다. 그것이 미합중국을 미국과 세계의 부를 집중적으로 긁어모으는 제국으로 만들었지만 또 그것 때문에 그 성공이 곧 실패의 시작으로 전화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됐다.
버몬트주 독립 주창자 네일러가 제시하는 미국 몰락의 이유도 요약하면 허슬링이다.
(미국의) 두 개 주요 정당 모두가 “미합중국에서의 삶이 더 크고, 더 빠르고, 더 복잡하고, 더 상업적이고, 더 하이테크이고, 더 에너지를 많이 쓰고, 더 초국적이고, 더 군사적이고, 더 통제되기를 바란다”고 (네일러는) 지적한다. 그리고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둘 다 “맥도날드, 월마트, 폭스뉴스, 기름 잡아먹는 허머트럭, 구글, 빌 게이츠 그리고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의 부호 400명에게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우리 아이들을 희생시키고자 하는 제국적 전쟁기계를 옹호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들은 “어플루엔자(affluenza, 부자병), 과학기술 편중주의, E-마니아, 과대망상증, 자동화주의, 세계화, 제국주의”에 헌신한다. 한마디로 이 제국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네일러는 미국은 도덕적 중심이 없다고 말한다. 미국은 영혼을 잃어버렸다.(209쪽)
이런 미국을 극단으로 추구한 사람이, 정치인으로는 미국에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시대를 연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다. 버먼은 그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공공과 공화주의, 전통적 가치, 영성을 추구했던 지미 카터 민주당 대통령을 꼽는다. 레이거노믹스가 1980년대 이후 30여 년간 미국사회를 지배했기 때문에 지미 카터는 무능하고 비현실적인 인물로 평가 절하됐지만, 버먼은 카터가 추구한 것을 허슬링 이후의 대안적 삶의 하나로서 높이 평가한다. “카터는 내적인 풍요와 외적인 검약을 요청했고, 레이건은 미국인들과 매우 잘 공명하는 조합인 외적인 풍요와 내적인 공허를 주장했다. 레이건 공식의 가장 큰 매력은 외적 풍요가 내적인 공허를 보상해주리라는 것이었다. 자기성찰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참으로 많은 면에서 레이건은 (미국 행정부의) 이후 30년, 아니 그 이상의 시기 동안 본보기로서 군림했다. … 그 사이의 유일한 민주당 출신 대통령(빌 클린턴)조차도 복지시스템을 없애고 미국 병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성장에 매달린 사실상의 공화당이었다.”(60쪽) 꼭 같은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을 경제자문으로 임명했고, 공적 자금을 대기업 구제에 쏟아부은 버락 오바마도 다를 게 없다고 버먼은 얘기한다.
미국과 같지야 않겠지만, 이 또한 1980년대 이후 한국사회·한국정치를 생각하는 데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카터는 베트남 반전운동과 패전이라는 시대상황이 있었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매우 예외적인(주류 입장에선 이단적인) 존재였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당선을 외환위기(IMF 사태)와 국가부도 상태, 87년체제 성립을 빼고 생각하기 어렵듯이.
버먼은 미국 신자유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유명 대변인으로는 한국에서도 추종자가 적지 않은 배우요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를 꼽았다. 그는 생각이 현실을 결정하며 따라서 긍정적인 사고와 결합한 개인의 노력이 성공의 열쇠라며, 사회경제적 문제를 묵살하고 개인의 심리에 모든 책임을 지운 레이거노믹스 철학의 구현자였다. 그에게 자유는 “세련된 소비주의, 허슬링, 사이비 종교색이 가미된 자기선전”이었다.
허슬링문명의 계보
왜 미국인들은 허슬링 라이프에 집착하면서, 세계사 400년래 최대 사건을 실패로 마감하려 하는 것인가? 문화·사상사가요 문화비평가인 버먼은 방대한 독서와 연구 축적을 토대로 허슬링의 사상·문화적 계보를 더듬어가며 그 이유를 파헤치고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이 허슬링 라이프 추구 실태 진단이나 그 부작용들에 대한 개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건 바로 그 덕분이다.
버먼에 따르면, 청교도들이 아메리카로 이주하던 초기에는 미국사회가 “전체의 대의를 위해 사익을 희생하는 것”을 ‘공화주의의 본질’로 이해했고, 그것을 자신들의 혁명의 이상적 목표로 생각하는 전통이 살아 있었다. 그것이 1776년 미국독립전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1760년 무렵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18세기 후반 영국은 자신의 경력 관리에 몰두하면서 공익을 망각한 삶의 방식(지금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는)이 만연했다. 그것을 〈인간 오성론〉 등을 쓴 존 로크의 ‘자유주의’가 사상적으로 뒷받침했다. 그것은 사익 추구가 결과적으로 공익에 기여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유’는 곧 ‘기업의 자유’로 전락한다.
미국에서도 1790년대에 그 영향으로 공화주의보다는 자유주의가 선(善)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다. 1800년 제퍼슨이 대통령에 당선될 즈음에는 “한없는 야망을 가진 사람들만이 도덕적일 수 있고”, 형제애나 공동체가 아닌 개인주의와 사익추구 경쟁이 자본주의사회의 선이 되는 “탐욕의 민주주의” 시대로 미국사회가 바뀌었다고 버먼은 분석한다.
하지만 이런 허슬링의 뿌리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17세기 초에 ‘신세계’로 유럽의 정착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선전물들에 이미 그 단초가 드러난다. 선전물들은 “신세계를, 사회적 신분상승과 부를 획득하기 위한 이례적인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 식민지시대 내내 광고했다. 20세기 초 한반도로 자국민을 대거 이주시키던 시기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조선·만주 정착민 모집 선전광고가 그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유럽 전통의 공동체적 이상보다 근면한 노동과 개인적 성공을 우선하는 이주민들 수가 늘었다. 1700년 무렵엔 이미 중세의 공동체주의가 로크의 개인주의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리하여 “시간은 금”이 됐고, 독립선언서에도 박아 넣은 “행복의 추구”는 실은 “재산, 특히 토지의 확보”였으며, 독립전쟁은 허슬링 기회를 비약적으로 확대했다.
1835년에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프랑스 역사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정착민들은 오로지 한 재산 만든다는 한 가지 목표에만 집중하여, 완전히 개인주의적인 삶을 만들어냈다. … 그들은 인간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단지 부유해지고 삶의 온갖 편리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그때 이미 “비즈니스는 생활의 안락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모든 인간적 행복의 원천”으로 간주됐으며, “비즈니스는 미국인들의 영혼 그 자체”가 됐다.
그들의 이 극단적 사익추구를 용이하게 하고 또 내부 충돌을 완화시켜준 것이 지리적 확장이었다. 이른바 서부 뉴프런티어로의 확장은 멕시코 영토의 절반을 빼앗는 제국주의 침략으로 확대됐고, 이는 더 많은 허슬링 기회를 만들어냈다. 1890년 무렵 더는 확장할 서부 변경이 없어지자 미국인들은 외부의 스페인 점령지를 빼앗고(미서전쟁), 철도·운하·전신 등의 기술(테크놀로지) 혁신으로 그 한계를 돌파하려는 ‘기술적 변경’을 창출했다. 그런 외부로의 영토 확장과 기술적 변경 확장을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존재는 모조리 악으로 치부됐다. 거기에는 사기, 거짓, 뇌물(부패) 등 온갖 수단이 동원되고 정당화됐다. 미국이 북미 전체를 지배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이른바 ‘명백한 사명(Manifest Destiny)’이 해외로 확장되면서 본격적인 제국주의국가 미국이 등장한다.
버먼이 보기에 미국은, 공화주의가 자유주의에 눌리고 미국인 다수의 뇌리에 공익보다 사익 추구가 선으로 전도된 순간 이미 지금의 실패가 예정돼 있었다. 최소 시간에 최대 수익을 올리는 삶의 방식을 통한 폭발적인 산업성장으로 미국은 단기간 안에 경쟁국들을 압도했으나 거기엔 의미도, 행복도 없었다.
정신없이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면서 무의미와 공허를 양산하는 파괴적인 삶의 추구를 거부하고 반대한 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랄프 왈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 허먼 멜빌, 에드거 앨런 포, 헨리 애덤스 등이 이 “신성한 중심도, 영혼도 없는 사회”를 거부하고 고발했으나, 좌우·빈부·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주류를 형성한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그들은 한 줌의 비주류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심미적·개인주의적 성격은 큰 변화를 만들지 못했다. 영국의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가 촉발한 미술공예운동도 미국에선 그 사회주의적 의미는 누락된 채 도덕적·미적 특징들만 강조되면서 사회변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폴 굿맨, 루이스 멈퍼드, E. F. 슈마허 등의 날카로운 기술문명 비판도 흐름을 바꿀 순 없었다. 에리히 프롬, C. 라이트 밀스, 밴스 패커드,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데이비드 리스먼, 레이첼 카슨, 허버트 마르쿠제 등 대안적 지성들도 많은 베스트셀러들을 냈으나, “미국인들은 그들의 책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그러고는 나가서 자동차를 한 대 더 사거나 가전제품을 잔뜩 사들였다.”
그들의 작업은 무의미하진 않았으나 “기득권층에 대한 산만한 저항이었을 뿐” 운동이 아니었고, 음악이나 옷차림 같은 것을 강조하고 의식의 변화가 결정적 요소라는 생각을 지닌 중산층이나 부유층 출신자들이 주축을 형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이 개인 차원의 변화에 관심을 둔 대안적 라이프스타일 추구는 유행했지만 쉽게 주류 산업에 포섭됐고,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전이됐다.
카터가 미국 주류 흐름을 바꿔보려고 시도했던 몇몇 조처들을 레이건은 당선 즉시 폐지해버렸다. 이명박 집권 뒤의 조처들을 생각해보라. 거기서마저 우리는 작은 미국, 미국 아류를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한 슈마허의 적정기술(지역적·분산적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 수공예 지향의 기술) 지원 기구도 폐지됐다.
도덕적 중심이 없는 미국사회에서 그 빈 자리를 채운 것은 기술이었다. 1913년 이동식 조립라인을 개발한 헨리 포드와 분업으로 노동효율을 극대화하는 ‘과학적 관리 원칙’을 창안해낸 프레더릭 테일러 이후, 유토피아와 구원으로 이어지는 무한 진보를 가능케 할 것으로 간주된 기술은, 토크빌도 일찍이 얘기했듯이 “미국의 종교”가 됐다. 역사가 칼 베커는, 기술을 통한 진보, 세상의 악을 이성과 응용과학의 힘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독교 내세론의 현대적 변용이라고 봤다. 기술은 소비주의를 부추겨 사회경제체제 가동률을 높이고, 계층 간 갈등을 덮었다. 무한성장 신화는 미국적 생활방식의 중심을 차지했다. 이는 엄청난 자원소모와 환경·생태 파괴, 지구온난화로 이어진다.
버먼은 카터가 미국 주류 언론과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고 폄훼당한 이유도 그가 그런 기술중독에서 깨어나 방향을 수정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아메리칸드림의 파괴성
버먼은 미국 역사에서 이런 식의 삶의 방식, 이런 흐름에 본격적으로 제동을 걸려고 한 정치적 반대자는 미국 남부가 유일했다고 본다. 그 사건은 바로 남북전쟁(1861~1865)이다. 노예문제가 부각됐지만 그게 전쟁의 기본적 동기는 아니었다. 버먼은 그 전쟁을 문명 간의 충돌로 보는 데 동의한다. 산업적 자본주의경제와 농업적 노예경제, 각각 거기에 기반한 북부와 남부의 상이한 세계관들 간의 싸움. 북부는 남부가 보기에 정신없는 움직임과 이기심과 탐욕으로 특징지어지는 사회-즉 ‘허슬링 사회’였고, 남부는 북부가 보기에 게으르고 타락하고 산업이 없는 ‘죽은 사회’였다.
북부 산업주의자들은 남부를 강제로 통합해 자신들의 체제와 세계관 속으로 포섭하는 것이 ‘명백한 사명’이었고, 그 제국주의적 정복전쟁은 곧 세계로 확장된다.
“(자신들이 있는) ‘안’쪽에는 문명이 있고, 그 ‘바깥’에는 야만이 있다. 야만은 개종시키고 굴복시키거나 (더 일반적으로는) 몰살시켜야 한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정신세계의 전형이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그렇게 해서 멸종당했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난 뒤 폭발적으로 팽창한 미국의 그런 허슬링적·제국주의적 세계관과 근대 조선이 맞닥뜨린 건 불행의 시작이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조선 개입은 그들에겐 ‘명백한 사명’이었을지 모르나, 식민지배와 분단, 전쟁, 대량학살로 이어진 그 결과는 조선인들에겐 비참했다.
“링컨 자신은 노예제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주된 동기는 사회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었다. 그의 비전은 한계가 없는 경제적 기회와 사회유동성-‘자유노동’ 또는 나중에 ‘아메리칸드림’으로 알려지게 될 그것이었다.”(144쪽)
바로 허슬링으로 가는 길이다.
“북부 자본주의에 대해 유일하게 이념적 일관성과 물질적 결과를 결합하여-말과 행동 모두로-반대한 것은 (미국 역사상) 노예제를 보유한 남부의 반대밖에 없었다.”(172쪽)
역사가 유진 제노비즈는 남부의 패배, 노예제의 패배로 끝난 미국 남북전쟁이, 결과적으로 “세계에 전례 없는 불행과 대량학살”을 초래한 미국 제국주의에 문을 열어준 아이러니를 지적했다.
남북전쟁의 승리는 그 뒤 “비미국적인 모든 것과 맞서는 성전의 수사학”에 종사하게 된다. 미국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엇이든 이단으로 간주되었다. 서구의 승리(아메리칸 인디언 학살), 북부가 보기에 후진적이고 야만스럽다고 본 미국 남부의 파괴, 냉전, 베트남인 300만 명 학살, 그리고 이라크·아프간 침공, ‘테러와의 전쟁’. 여기에 한국전쟁의 수백만 희생자들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을 비롯한 이 ‘타자’들은 제국 미국의 주류에게 온전한 인간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근대주의적 진보의 장애물이었을 뿐이다. 버먼은 “전쟁은 미합중국의 역사와 미국의 정체성의 중심에 있다”고 본다. “이른바 적들에 대한 우리의 접근은-그때도, 그 전에도, 그 후에도-항상 땅의 초토화와 영혼의 초토화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군사작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이다. 적은 항상 인간 이하인 것들의 무리이고, 따라서 괴멸되어야 한다.”(월터 힉슨, 177쪽에서 재인용)
이 책보다 6년 앞서 나온 《미국 암흑시대》 집필을 끝내고 2006년, 저자 모리스 버먼은 미국을 떠난다. “나는 뱃속에서부터 항상 낯선 땅에 있는 이방인처럼 느껴왔다. 경쟁, 공격성, 인간적 유대에 대한 관심의 부재, 물건과 좋은 삶의 혼동, 정신적 삶에 대한 깊은 반감-이것이 (미국) 주류사회의 에토스였고 나는 결코 어울릴 수 없었다. 나는 ‘다른 미국’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나라에 머물러서 싸웠지만, 그 믿음은 신기루인 것으로 드러났다. 남부를 제외하면 정말로 다른 미국은 존재했던 적이 결코 없었다. 그리고 그 남부조차도, 알다시피 끔찍한 어두운 면을 가지고 있었다.”(184~185쪽)
‘끔찍한 어두운 면’이란 노예제도를 가리킨다. 허슬링과 관련해 남부가 북부가 갖지 못한 미덕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은 상당부분 바로 이 노예제도 덕이었다. “당신을 위해 대부분의 일을 해주는 400만 명의 노예들이 있다면, 여유 있고 허슬링하지 않는 사회를 갖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162쪽) 따라서 저자가 이미 지난 일이긴 하지만 미국 남부의 과거 속에 허슬링의 대안적 요소 발견 가능성을 두고 있는 것은 좀 위험해 보인다. 저자는 같은 맥락에서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도 떠올리는데, 한때 은광산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일했다는 노예노동에 토대를 둔 아테네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것처럼, 노예제에도 불구하고 미국 남부에서도 그런 긍정적 요소를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한 사회의 가장 좋은 특성들이 실제로 그 사회의 가장 나쁜 특성들로부터 자라나오듯이 말이다. 비록 “정치적으로 올바르진 않지만.”
하지만 저자도 지적했듯이, 고대사회에서는 노예제가 불가피한 시대적 한계 속에 놓여 있었다면, 1860년대 미국 남부의 노예제 고수는, 당시에는 후진국으로 분류되던 러시아(1723)마저도 이미 노예제를 폐지하고, 스페인(1811), 멕시코(1829), 영국(1833), 프랑스(1848), 아르헨티나(1853) 등 주요국들이 모두 노예제를 폐지한 시대의 일이었다. 수십, 수백 명의 노예들을 부렸던 남부 대농장의 백인 지주들의 전통가치 고수와 슬로라이프보다는 차라리 백인들이 멸종시킨 목가적 원주민들(아메리칸 인디언)의 삶이 대안적 가치로서 더 시사하는 바가 많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버먼은 건국 초기 공화주의가 허슬링 라이프에 대항한 사실을 아주 부정하진 않지만 그것은 미약했다고 하면서, 실은 “미국은 태어날 때부터 (허슬링에 사로잡힌) 장님이었다”고 본다. 그는 미국을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나오는 포경선 피쿼드호에 비유한다. “에이햅 선장의 편집광적 추적, 거대한 흰고래의 피쿼드 파괴, 그리고 배와 선원들 모두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 모든 것은, 미래를 포함하여 미국 역사의 경로를 으스스한 무의식적인 은유로 묘사한 것이다.”(187쪽) 재화와 돈, 권력, 기술 그리고 ‘진보’의 열광적 추구, 즉 허슬링 라이프가, 미국이라는 배를 들이받아 산산조각 내고 있는 거대한 괴물 고래를 만들어냈다는 얘기다. 버먼은 멜빌이 《모비딕》에서 이런 미국사회 변화의 메타서사를 정확하게 포착했다며 그를 미국 최고의 작가라 평가한다.
예정된 파국, 역설적 희망
미국인들은 유럽을 떨치고 나온 청교도들로부터 물려받은 문화적 신화 때문에,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면서 자신을 세뇌하고 길들여 타자의 진정한 타자성도 인식하지 못하는 새로운 전체주의를 형성했다. 그래서 버먼은 “300만 명의 베트남 농민들을 학살하고 수만 명을 고문하면서, 미국 군대가 저지르고 있는 일보다 반전 시위대들이 하는 일에 미국 대중이 더 속상해하는 현실”이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버먼의 지적대로 “진짜 야만인은 우리”라는 사실을 미국인 몇 사람이나 알까? 청교도 유산, ‘안의 문명’과 ‘바깥의 야만’이라는 이분법, ‘나와 다른 건 적’이라는 미국인 정체성의 핵심을 제대로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미국 인구 중 “20만 명도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버먼의 생각이다. 한반도에서 30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분단과 전쟁,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 식민지배에까지 중대한 책임이 있는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구원자로 착각하고 있는 듯한 모습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아울러 버먼처럼 이런 질문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이웃 나라를 식민지배·착취하고, 아시아인 수천만을 살육하고 수십·수백만의 젊은이들을 군인과 ‘위안부’ 등으로 강제동원해 희생시키고도 여전히 자신들을 자신들이 저지른 전쟁의 피해자로 인식하며 일본 바깥을 오히려 ‘야만’으로 간주하는 일본 우파 주류의 반동적 정체성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일본 인구 중 몇 사람이나 될까? 북을 세상에서 가장 증오스런 철천지원수가 아니라 열강들이 지배한 근대세계에서 함께 철저히 유린당한 자신들의 가련한 동족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열증을 앓고 있는 한민족 정체성의 핵심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은 한국인들 중 몇 사람이나 될까?
버먼은 파국이 예정돼 있는 이 미국적 허슬링 라이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두 가지를 든다. 하나는 개인적 해결책, 또하나는 사회적 또는 지정학적 해결책이다.
개인적 해결책은 미국을 떠나는 것이다. 저자 자신처럼. 후자는 주류문화에 저항하고 무언가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하는 ‘은둔적 선택’이다. 이것도 꽤 효과가 있지만, 이는 결국 “가라앉는 타이타닉호 갑판 좌석을 재배열하는 것과 마찬가지”여서 한계가 있다.
버먼은 이런 노력들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해결 가능성은 결국 피할 수 없는 현 체제의 붕괴, 미국이라는 배의 침몰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는 노엄 촘스키나 마이클 무어 같은 비평가들이 “미국인들의 눈은 털로 덮여 있지만 그것이 제거되기만 하면 사회주의적 또는 진보적 또는 진정한 민주주의적 미래로 나아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덮고 있는 그 털이 바로 눈이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미국인들에게) 선택권은 없으며 역사는 정해진 길로 갈 것이라고 본다. 그것은 피쿼드와 에이햅 선장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진정한 역사적 사명일 수도 있다고 버먼은 얘기한다. “나는 T. S. 엘리엇의 ‘거대한, 인간 외적인 힘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어쩌면 선택권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국은 하도록 되어 있는 것을 했고, 예정된 바를 실행했으며, 나머지는 역사일 뿐인지도 모른다.”(212쪽) 《모비딕》 마지막에서 에이햅 선장은 일등항해사 스타벅에게 자신을 몰고 가는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말한다(212~213쪽에서 재인용).
이것, 이름 없고 불가해한, 초자연적인 이것은 무엇인가? … 정말이지, 여보게, 우리는 저기 있는 윈치처럼 이 세상에서 계속해서 돌아가게 되어 있고, ‘운명’이 그 손잡이라네.
에이햅은 영원히 에이햅이네, 이 사람아. 이 모든 일이 변경할 수 없게 정해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