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삼 지음
녹색평론사, 2012년
소문의 힘은 의외로 세다. 주변에서 배병삼 교수가 《녹색평론》에 연재하는 글이 좋더라는 말을 왕왕 들었다. 내 주변 사람들의 감식안은 까다로운 편이다. 웬만해서는 칭찬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이 입을 모아 긍정적인 평가를 하니, 자연 관심이 갈 수밖에. 마음 같아서는 냉큼 《녹색평론》을 떠들어 보고 싶었다. 하나, 읽어야 할 책이 많은 직업인지라 연재물을 볼 시간이 없어 기다렸다, 한데 묶어 책이 나올 때까지.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는 내가 그만큼 기다렸던 책이다. 《논어》 완역 해설본을 펴낸 바 있고, 《맹자》 완역 해설본을 준비하는 정치철학자가 공자와 맹자의 사상을 어떻게 조명하는지 궁금했다. 읽어보니, 소문대로 좋았다.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거니와, 고전을 오래된 미래로 보아 오늘 우리 삶이 빠진 질곡에서 벗어날 지혜를 얻고자 하는 지은이의 강렬한 의지도 느낄 수 있었다. 한마디로, 기승을 부린 무더위를 잊게 한 시원한 교양의 소낙비 같았다.
맹자사상의 핵심은 여민(與民)
책은 전체 3부로 이루어졌지만, ‘눈’은 1부다. 이 부분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나머지는 무리 없이 잘 읽어낼 수 있다. ‘유교, 오해풀기’라, 기실 지은이 처지에서 보자면, 진검승부를 걸고 있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선동에 숱한 교양인들이 동의했다. 밑동이 이미 잘려나갔건만,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그런데 오해라니, 과연 누가 동의하겠는가. 만약 오해를 풀지 못한다면 학자로서 내공이 없다는 평가를 감수해야 한다. 1부 제목을 보며 아연 긴장했던 이유다.
첫 문제제기부터 흥미로웠다. 위민(爲民)은 없다 했으니 말이다. 맹자 하면 위민사상이라 귀가 따갑게 들어오지 않았던가. 지은이 말대로 교과서부터 수험서에 이르기까지 위민에 대한 말로 범벅이 되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맹자》 그 어디에도 ‘위민’이라는 낱말은 나오지 않는단다. 그렇다면 《맹자》를 분석하고 해석한 끝에 그의 사상에 위민성이 있다고 말해야 한다. 지은이는 이 부분에서 분명히 말한다. “맹자가 자기 사상을 놓고 위민으로 규정하는 데 쌍수를 들고 반대할 지경”이라고. 정말 호기심에 불을 확 댕긴다. 개인적으로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 말했는지 여부를 놓고 벌인 논쟁에 버금가는 주제라 여겼다.
‘인민을 위한다’는 뜻의 위민이란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맹자사상의 저변에는 위민이 흐르고 있다는 식의 해석도 잘못되었다고 보여주는 구체적인 사례가 《맹자》에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양혜왕이 맹자에게 물었다. “나는 진심으로 백성을 다스립니다. 하내지방에 흉년이 들면 주민들을 하동 땅으로 옮기고 노약자들에겐 식량을 풀어 구제하지요. 하동 땅에 흉년이 들 경우에도 그렇게 합니다. 한데 다른 나라를 보면 저같이 마음을 쓰는 임금이 없습디다. 그런데 이웃나라 백성들은 줄어들지 않고, 그렇다고 내 나라의 백성이 늘어나지도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요?”(37쪽)
농업을 기반으로 한 고대국가에서 인구수는 곧바로 생산력과 군사력을 의미했다. 양혜왕의 고민도 이런 의미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인구가 늘어나야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지라 인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건만 좀처럼 안 늘어난다는 푸념이다. 양혜왕의 말을 지은이는 이렇게 해석한다.
흉년 든 인민에 대한 구제를 두고 오로지 자기만의 베풂이라고 자랑하는 순간, 국가를 사유물로 여기고 있노라는 왕의 숨은 무의식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왕은 이런 구휼활동은 자신만이 행하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마음을 다하여 백성을 다스리고 있노라”고 강변한 것이다. 이것이 ‘위민정치’인 것이다. 국가는 군주의 사유물이라는 생각, 인민의 재난에 구휼하는 것은 특별한 사랑의 베풂이라는 시혜의식 등이 위민정치를 구성한다. (…) 양혜왕은 적나라하게 백성을 수탈하는 동시대 다른 군주들보다 더 간악한 자다. ‘인민을 위한다’는 겉치레로 본색을 위장하면서 숨어서 백성을 제 목적을 위한 도구로 삼으려 들었기 때문이다. 위민정치는 포악하게 인민을 지배하는 전제정치보다 더 사악한 형태라고 할만하다.(38~39쪽)
양혜왕의 말에 대해 맹자는 유명한 오십보 백보라는 말로 비판한다. 위민정치의 한계를 지적한 셈이다. 더욱이 양혜왕의 말을 잘 뜯어보면 인민들이 얼마나 현명한지 알 수 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국력 강화를 위해서만 펴는 정책에 인민은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인민은 “지혜롭고 자율적이며 성숙하다.” 더욱이 국가가 위기에 놓였을 적에 나라를 지킬 것인지 내버려둘 것인지를 결정하는 이는 인민이다. 어디 인민이 위민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맹자에게 인민은 당당히 “군주와 더불어 정치를 구성하는 동반자”이다.
맹자는 위민을 말하지도 않았거니와 위민 자체를 비판했다는 지은이의 분석은 충격이다. 그야말로 우리가 오해하고 있었고, 그 오해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은이는 위민정치를 일러 “국가가 군주의 사유물이라는 전제와, 또 그것을 인민에게 널리 베푸는 시혜의 실천이라는 조건을 충족할 때라야 가능한 표현”이라 했다. 그러나 맹자사상은 이와 대척점에 놓여있으니, 이를 개념화한다면 여민(與民)이다.
위민정치가 자기 목적을 위해서 군주가 인민을 도구로 삼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인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사물화한다면, 여민정치는 인민과 군주가 상호적으로 대응하면서 함께 더불어 정치를 구성해나간다. 위민정치에서는 인민이 군주의 시혜를 구걸하는 대상에 불과하였다면, 여민정치에서 인민의 지위는 군주와 대등하거나 또는 군주를 대체할 수 있는 권위의 근거가 된다. (…) 맹자에게 천하국가는 군주의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곧 공물)이며, 군주의 지위란 공동체의 경영을 위탁받은 관리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40쪽)
유교에 충효는 없다
이 책의 ‘없다’ 시리즈의 백미는 3장 ‘충효(忠孝)는 없다’일 터다. 유교나 공자사상의 핵심이 무엇이냐면 십중팔구 충효라 말할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과정을 통해 그리 알고 있다. 이 문제는 지은이한테 상당히 중요했던 듯싶다. 유교의 고갱이가 충효라 여기고 있기에 새로운 세대가 이 사상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라 여기고 있어서다. “오랫동안 묵어온 공자와 유교에 대한 분노와 반발심”의 진앙지로 보는 듯도 싶다. 그래서 지은이는 묻는다. 과연 그런가, 라고. 지은이는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의 말을 인용하면서 도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충효의 개념은 공자에게 없었다는 것이다.
“공자의 《논어》를 봉건적인 상하관계에서 작용하는 ‘멸사봉공’이라는 뜻의 충·효를 가르친 책이라고 읽는 것은, 오히려 도쿠가와(德川)시대 봉건제도 아래에서 살았던 일본사람들이 자기의 봉건사상을 바탕으로 이해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자유인 사마천과 사기의 세계》)(70쪽)
지은이는 충효가 짝을 이뤄 지금의 의미처럼 쓰인 원류를 한비자라 지목한다. 《한비자》 제20편 제목이 ‘충효(忠孝)’다. 특히 ‘충효’ 편의 첫머리에 효제충순(孝悌忠順)이 나오는데, 이것이 유교에서 말한 효제충신(孝悌忠信)과 닮아 같은 뜻이라 착각했다고 본다. 효제충신은 각각 효행과 공손, 충실함과 신뢰를 뜻한다. 그런데 한비자의 개념은 다르다.
한비자의 충순(忠順)이란 군주에 대한 신하의 절대적 복종을 강요하는 규범이다. 즉 유교의 충이 자기성찰을 뜻하는 반면, 한비자의 충은 군주에 대한 충성이다. 그리고 ‘순’은 분명 군주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뜻할 따름이다. 즉 오늘 우리에게 낯익은 군주(또는 국가)에 대한 충성(〓충순)의 복종 규범과 부모에 대한 복종으로 인식되는 ‘효제’가 실은 법가의 규범인 것이다. 이 둘을 엮어 ‘효제―충순’이라는 형태로 계열화한 표현, 즉 ‘부모에 대한 효도〓나라에 대한 충성’이라는 등식이 한비자를 기원으로 삼고 있음은 유념해야 한다.(71쪽)
지은이는 공자가 ‘충’이라는 말과 짝을 이루어 쓴 개념어는 ‘서(恕)’임을 드러내면서, 이때의 ‘충’은 오늘날 말하는 일방적 복종의 의미가 아니라, ‘인(仁)’을 이루는 방법이었음을 밝힌다. 역지사지의 뜻인 ‘서’와 짝을 이루는 ‘충’은 진정성이나 성실성을 뜻하는 바니,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오해의 덫에 걸려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지은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비자》에서 비롯된 충효 개념이 복종의 뜻으로 우리에게 강하게 새겨진 데는 일본의 영향도 크다 보기 때문이다. 지은이에 따르면, 일본의 가족은 혈연공동체이기보다 직업공동체 성격이 짙다. 만약 아들이 없다면 양자를 들여 사윗감으로 삼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가업을 물려받는다는 사실이다. 양자가 가업을 잘 이어 번창하면 이를 일러 ‘충’이라 하는데, 이는 곧 양아버지에 대한 ‘효’가 된다. 지은이의 말대로 “일본의 ‘이에’ 구조 속에서는 충성이 곧 효도가 된다! 이곳이 우리가 유교적 덕목으로 오해해온 멸사봉공·대의멸친·상명하복 등의 ‘일본식’ 가치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유교의 꿈
지은이가 오해와 편견의 더께를 걷어내고, 유교의 속살을 보여주려 한 이유를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4장 ‘삼강과 오륜은 다르다’이다. 충효처럼 삼강오륜(三綱五倫)도 하나의 개념으로 배워왔는데, 실상은 아니란다. 군신·부자·부부의 관계를 주종적인 관계로 파악한 삼강의 설계자는 한나라의 동중서였으니, 이는 “군주독재의 정치논리를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족 속으로 침투시키려는 이데올로기”였을 뿐이다. 이에 반해 다섯 가지 인간관계의 덕목은 맹자가 말했다. 오륜이 삼강보다 앞선 개념이라니! 더욱이 오륜은 “쌍방적이고 상호적인 관계”를 표 나게 드러내고 있다. 그야말로 삼강과 오륜은 다르다.
지은이의 분석을 받아들이면 머릿속에 도표가 그려진다. 한쪽에는 오해와 편견, 위민, 충효, 삼강이 들어가고, 다른 쪽은 진정한 의미, 여민, 충서, 오륜으로 채워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앞의 것은 다분히 “인민들에게 목숨과 삶을 바치기를 강요하는 독재 이데올로기로 전환”할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요, 뒤의 것은 “부모와 자식에 대한 사랑과 ‘차마 남의 아픔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마음, 또 여기서 발화된 타인과 아픔을 함께 해소하려는 손 내밈을 마을과 국가에 미치고, 나아가 온 세상에까지 넘실대도록” 하는 유교의 꿈을 이루는 요소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정도의 깨달음에 이르렀다면, 1부의 프롤로그를 다시 읽어보아야 한다. 유교의 핵심이 관계성임을 힘주어 말한 지은이는 ‘인’에 대해 다음처럼 말했다.
공자사상의 핵심어 인(仁)이란 곧 ‘함께·더불어하기’다. ‘함께·더불어하기’의 원동력은 ‘그대가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으로의 전환에서 비롯된다. ‘내가 있기에 네가 있다’라는 자기애에 가득 찬 일상을 완전히 뒤집어 ‘그대가 있음으로 내가 존재한다’로 전환하는 순간, 평화의 길이 툭 열린다. 공자는 이 전환의 극적인 순간을 “단 하루라도 극기복례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이 문득 인(仁)으로 바뀔 거야. 그 변화는 나로부터인 게지, 상대방으로부터가 아님이랴!”라고 표현한 것이다.(25쪽)
이 뜻을 되새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굳이 《논어》와 《맹자》를 ‘오래된 미래’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관계성의 회복을 통해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는 유교의 간절함이 없다면, 오해와 편견을 굳이 깰 필요가 무에 있겠는가. 이 정신을 양극화가 극심하게 나타나는 오늘의 시민이 공유하기를 바라는, 한 정치학자의 진정성이 없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원시반본(原始返本)이라 했다. 돌아가 다시 배우자. 그때 《우리에게 유교란 무엇인가》가 훌륭한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