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호이나키라는 유별나게 치열한, 흉내내기 힘든 못 말릴 한 인간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가 아버지를 떠올리는 대목 때문이었다. 곰곰 생각해보니,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대단찮은 글을 쓰는 일보다는 벌판을 헤집고 노는 일을 확실히 더 좋아했고, 그런데도 불행하게도 본성에 어울리지 않게 오십이 넘도록 여전히 책더미 속에서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내가 만난 어떤 책도 일찍 돌아가신 내 아버지의 삶을 이 책만큼 골똘하게 다시 생각하도록 유도한 책은 없었다. 하층 부랑자라는 존재의 역사동력의 가치를 주장했던 또 한 사람의 위대한 노상(路上)의 철학자, 에릭 호퍼에게서도 몸으로 산다는 일의 의미에 대해선 공감했지만, 나는 내 아버지를 떠올리지는 못했다.
내게 아버지에 대한 이해는 언젠가는 독파해서 육화시켜야 할 비밀스러운 고전처럼 미뤄둔 내밀한 나만의 숙제였다. 20세기 초에 태어나 환갑을 조금 넘긴 뒤 풍으로 돌아가신 내 무학의 아버지가 보여주고 가신, 내세울 것 없는 일개 민초의 삶이 그러나 그의 자식인 내게는 해결해야 할 굵고 잘 마른 통나무라면, 그 통나무에서 형체를 뽑아내기 위해 나는 어디부터 칼을 대야 할지 모르고 미뤄둔 대상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아무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까닭은 그런 종류의 가족사적인 숙제는 작심하고 노력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종류의 개인적인 숙제라고 해도 결코 그 일은 한없이 미뤄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호이나키의 아버지는 그의 조상이 그러했듯이 농부였다. 공황기에 우편배달부 일을 하긴 했지만, 그는 평생 화폐경제 시스템 ‘바깥’에서 살기 위해 노력했다. 지식인들이 만든 ‘아동기(兒童期)’라는 근대적 현상에 감염되지 않은 야생의 개인이었다. ‘아동기’란 개념은 17세기 유럽의 중산계급의 유지와 상승을 겨냥한 사회적 구축물로서 계층적 범례를 위해 창안되었다. 그것은 “고유의 남성, 혹은 고유의 행동양식에 따라 행동하는 사회가 파괴되는 것과 일치했다.”(227쪽) 그 이데올로기는 아이들을 어른의 세계와 분리시켰다. 중간 내지 상층 소득 가정이 적극적으로 그 개념을 받아들인 바, 어린 사람들은 “값비싼 골칫거리, 허약한 보물, 노예, 그리고 초고급 애완동물의 혼합물”이 되어버린다. 시적(詩的)이라고도 일컬어지지만 그만큼이나 투철하고 가혹하리만큼 엄격한 자기응시로 점철된 이 책에서 특히 이 대목은 내게 이 책의 전편에 깔려 있는, ‘좋은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시스템의 비판이라는 주제를 상징적으로 예시하고 있었다. 이른바 근대적 의미의 아동기 조작이 한 인간이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기회를 박탈하고, 불구적 방종과 허약한 상품 소비자의 끝없는 양산 프로젝트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그랬다. 근대 혹은 근대인이 자연을 대하는 불경스러운 태도 역시 그와 같은 허약한 아동기를 마련한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었다.
호이나키의 아버지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조상이 그러했듯이 자식들이 그런 면역결핍증에 걸리지 않도록 키웠다. 그는 텃밭에서 가족이 먹을 것을 얻었고, 크림으로 손수 버터를 만들었고, 버려진 목재로 나무덫을 만들어 토끼를 잡아 낡은 황마 속에 산 채로 집어넣은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곤 재빨리 토끼의 목을 베어 죽인 뒤 껍질을 벗기고, 창자를 꺼내기 위해 두개의 못 위에 토끼 몸통을 걸었다. 그는 화폐경제에서 벗어난 삶, 자신의 세계가 상품으로 쉽게 환원되는 데에 결단코 동의하지 않는 조용한 저항의 삶을 꾸렸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명사의 세계가 아니라 동사의 세계였다”고 회상한다.
드러내기 쑥스럽지만 내 아버지도 그랬다. 아버지는 가족이 살 집을 손수 지었고, 그 집에서 아홉 형제를 낳아 길렀다. 훗날 돼지를 키웠는데, 깊은 밤 호롱불을 켜고 새끼를 받았고, 돼지가 자라면 가족과 이웃들이 함께 나누기 위해 손수 잡으셨다. 마을의 길일이면 마당 한 귀퉁이에서 잘 벼린 식칼에 찔린 돼지의 목에서 콸콸 터져나오는 선지피를 양동이에 담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아버지는 백정이 아니었지만 능숙하게 고기의 각을 뜨셨고, 그 고기로 어머니는 큰 솥에다 국을 끓이셨다. 한때는 소도 키웠고 염소도 쳤다. 부모님은 주변의 노는 땅은 모두 밭으로 만드셨다. 사변 때 국군이 어떤 소녀를 능욕하는 현장에서 그 패악스러운 짓을 만류하다가 아버지는 국군의 개머리판으로 죽을 만큼 맞고 석달을 앓아누우셨다고 한다. 여러 마리의 개를 고아 먹는 것으로 응혈을 풀고 살아나신 뒤, 아버지에게 더이상 국가는 한 개인이 윤리적인 태도로 의연한 삶을 영위하는 것을 돕는 존재가 아니라 거칠게 짓누르는 거대한 폭력으로 이해되지 않으셨겠나, 나는 훗날 짐작한다. 국군의 트럭은 또한 내가 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살아 있었던 어린 소녀를 치어 죽였다. 죽은 딸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국가가 키운 군대나 국가가 자주 일으키곤 하는 전쟁은 무엇이었을까.
내 아버지 역시 호이나키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국가가 발행한 화폐 없이도 살 수 있는 자립적 삶을 그 의미에 대한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데 낭비하지 않고, 다만 몸을 던져 찾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다에서 정어리나 양미리가 나면 남대천에서 그것들을 서커스 천막에서 쓰는 것보다 큰 막대기에 걸어 말리셨다. 호이나키는 이반 일리치를 만나러 일리노이주에서 버스로 멕시코시티로 갔지만, 내 아버지는 동해안에서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짐자전거로 대관령을 넘으셨다. 대관령에서는 더러 호랑이가 출몰하던 20세기 초반의 이야기다. 책에서는 그 대목이 “내 부모님은 근대성에 대한 동경도, 욕구도 갖고 있지 않으셨던 것 같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그의 부모처럼 내 부모 역시 억지로 생산되어 주입된 문화가 아니라 그 이전 “여러 세기를 걸친 경험으로부터 얻은 문화적, 도덕적 자세”로 한 생을 채우고, 대지 위에서 한 가장으로서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치르신 뒤 병원이 아닌 집에서 아무 말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셨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려낸 조르바도, 마르케스가 들려준《백년 동안의 고독》에 나오는 마콘도 마을의 이야기도, 내 아버지가 살았던 20세기 초․중반의 60여년 이야기와 그리 다르지 않아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던 까닭이 거기 있었다. 그들의 삶은 책상 위에서 전개되는 논리로 풀 수 있는 삶이 아니었다. 앞서 인용했듯이 ‘동사의 삶’이었다.
호이나키는 종신교수와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그의 특권적 위치를 버린 뒤, 세계의 다양한 하위문화를 겪을 기회를 가진다. 거기 보태진 그의 독서경험을 근거로 그는 고급문화의 소비보다 엄청나게 귀중한 어떤 것을 하위계층, 더 정확하게는 육체노동을 하는 이들로부터 배웠다고 술회한다. 웬델 베리는 육체노동의 경험을 “덕 있는 삶, 독립적 인격, 자신감의 원천”이라고 표현했다. 호이나키나 이반 일리치, 웬델 베리나 에릭 호퍼, 더 멀리로는 소로우 같은 이들은 지금 내 나라가 노골적으로 업신여기고 그토록 경시하는 다른 세계, 다른 체험, 땅에 두 발을 딛고 몸을 써서 살아내는 삶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는 드러내 내색을 하진 않지만, 머리로 사는 사람들 숲에서 몸을 움직이며 사는 삶이 더러 낙오된 삶으로 폄하되거나 먹물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그 세계의 아름다움이 쉽게 평가절하될 때, 연기가 나지 않는 뜨거운 분노를 느꼈던 기억이 적지 않다.
과묵했던 호이나키의 아버지가 보여주신 관용의 정신은 또 어떠했던가. 웅변으로 합리화하지 않고, 췌사로 변명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삶이 바라는 것을 조용히 확신했던 근대 이전의 그 아버지들은 당신들의 존재 자체로서도 충분히 위엄 있고 엄격했지만, 잔소리를 하는 이들은 아니었다. 지금은 세상을 많이 떠났지만, 아홉 형제 중 일곱번째로 태어난 나는 내 아버지로부터 과도한 칭찬이나 기억날 만한 잔소리나 판에 박힌 충고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철없고 막무가내이며 제멋대로인 막내아들을 아버지는 다만 조용히 지켜보셨다. 그리고 그윽한 눈길을 건넸는데, 그것은 “네가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네 인생을 네 방식으로 헤쳐나갈 것이다”라는 믿음의 눈길이었다. 중학 때 마을의 폭력사건에 휘말려 중인환시 가운데 수갑을 찬 채 경찰에 끌려가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대문이 아니라 늘 담을 타넘고 집으로 돌아와도, 일찍부터 술 담배를 했고, 학교에서 자주 처벌을 받아도, 갈 곳과 돌아올 시간을 알리지 않고 집을 나간 뒤 여러 날이 흐른 뒤에 슬그머니 돌아와도,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호이나키의 아버지 또한 호이나키에게 그랬다는 대목에서 나는 남몰래 눈시울이 붉어졌다. 만나보지 못한 호이나키의 아버지 때문이 아니라 지금 이 세상에 안 계시는 내 아버지 때문이었다. 소로우가 “1천 평방마일 내에 우리의 손이 통과할 수 없는 척추뼈를 등에 갖고 있는 사내가 있다면!”이라고 탄식했던 바로 그 전근대의 오염되지 않은 땅의 사내들, 말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삶에서 배울 수 있었던 귀중한 것들의 가치를 어렴풋이 느끼긴 했으나 조금이라도 그 시늉을 내기는커녕 쓸데없는 일들에 허송세월을 하다가 어느덧 오십이 넘어버렸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은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른 나이에 시골에 파묻히게 된 축복은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전면적인 낙오자, 혹은 자발적으로 주변적 인물을 자처하고, 그럼으로써 획득한 건강한 고립을 통해서만 이미 살벌하게 파국을 향해 돌진하는 이 물신의 시스템에 봉사하지 않고 ‘거룩한 바보들’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갈 수 있다고 확신한 호이나키, 그가 책의 끝자락에서 들려준 범접하기 힘든 아나키스트 애먼 헤나시라는 인물의 궤적 또한 내 남은 생애 내내 나를 때없이 고문할 것이다. 내 한심스럽도록 무력한 삶을 새롭게 돌아보게 하고, 내 육친의 삶에 대한 개안을 촉구하고 확인시킨 이 책을 나는 이 책을 만난 다른 이들처럼 아마 오래도록 거듭 펼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