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기 진자부로 지음
녹색평론사, 2011년
반핵운동은 재미없는 운동?
반핵운동에 몸담은 지 이제 몇년 되지 않지만, 사람들로부터 “반핵운동은 재미없는 운동”이라는 평을 많이 들었다. 아마도 반핵운동 속에는 수려한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눈물어린 감수성을 키우는 맛도 없고, 생활 속에서 작으나마 실천이 될 만한 것을 찾기도 어려울 뿐더러, 오히려 자칫하면 일반인들에게는 난해하기 그지없는 과학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첨단과학자들과의 머리싸움까지도 감수해야 한다는 점 등이 ‘재미없음’으로 표현되었으리라. 환경운동 하면 연상되는 무언가 촉촉하고 말랑말랑한 소재가 아니라 수천명이 함께 밀어도 꿈쩍하지 않을 것같이 육중한 핵발전소라는 구조물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무색 · 무취 · 무미의 방사능이 내 몸을 언제 어떻게 파괴시켜버릴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위협을 감수해야 하고 실제로 드러나는 피해양상의 가공할 만한 끔찍함 앞에서도 의연해야 한다는 점까지 ⋯ 솔직히 반핵운동은 ‘재미’라는 단어보다는 ‘절박함과 처절함, 냉정함과 둔탁함’ 등의 단어에 더 어울리는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은 세계적인 반핵운동가 타까기 진자부로오의 유언적 저서답게 그런 반핵운동의 성격에 충실한 책이다. 흥미진진한 전개나 감성을 자극하는 호소보다는 자로 잰 듯 정확하고 논리적인 구성부터가 ‘반핵’에 특별히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손이 가지 않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렇다. 반핵의 논리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핵발전의 역사 및 원리를 시작으로 ‘찬핵’ 진영에서 핵발전소 옹호 논리로 내세우는 주장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비판하는 치밀한 구성은 과연 ‘반핵운동의 아버지’이자 일생의 40여년을 원자핵과 함께 동고동락하다시피 한 저자의 과학도로서의 치밀함을 엿보는 듯하다. 또한 그냥 서술해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원자로의 원리나 구성 같은 데서는 적절히 그림이나 도표 등을 사용하면서 최대한 초보자들도 알기 쉽게 설명하고자 노력했던 기색이 역력히 드러난다.
원자력에 대한 아홉가지 신화
저자가 추린 ‘원자력의 신화’는 총 아홉가지이다. 원자력은 무한하고, 석유위기를 극복할 수 있으며, 평화적으로 이용되고, 안전하면서 값싸고, 지역발전에 기여하며, 깨끗하고 재생가능하면서, 마지막으로 일본의 원자력 기술이 뛰어나다는 것이 바로 그 아홉가지 신화이다. 무한하다는 것과 재생가능하다는 것, 안전하다는 것과 기술이 우수하다는 것은 각각 서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약간씩 강조하는 지점이 다르다.
먼저 무한하다는 신화에서는 원자핵에 대한 연구가 핵무기 연구에서 핵발전소 연구로 변화되던, 비교적 초창기 시절에 가졌던 원자력에 대한 환상이 그야말로 ‘환상’이었음을 폭로하면서 핵발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의 매장량 역시 유한하기 때문에 원자력도 다른 기존의 화석연료와 똑같이 유한한 에너지임을 피력한다. 한편 재생가능하다는 신화에 대해서는 특별히 핵연료 재처리에 열중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강조하면서 핵연료 재처리는 친환경적 재생이 아니라 오히려 방사능을 증가시키고 재처리 공장 주변의 질병을 유발하는 공해의 증폭과정임을 폭로한다. 또한 안전성과 관련해서는 찬핵 과학자들의 사고 빈도에 대한 수치계산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조작된 혐의가 짙은 한편, 경험적으로도 핵발전소 사고는 그들의 수치에 비할 수 없게 자주 일어났다는 점 등을 근거로 하여 그들의 안전성 신화 역시 허구임을 증명해낸다. 그리고 일본 원자력 기술의 우수성은 부분적으로, 그것도 과거형으로서만 타당하다고 단언하면서 90년대 몬주 사고와 JCO 사고 등으로 인해 이미 그 환상은 산산이 부서질 대로 부서졌음을 주장하고 있다.
핵연료 재처리라든가 이미 일본 자국에서 몸으로 체험한 주요사고들로부터 얻어진 교훈 몇가지 정도를 제외하면, 이 아홉가지 신화에 대한 꼼꼼한 비판은 핵발전소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가히 교과서적 반핵 논리라 할 만하다. 언급한 네가지 말고도 석유위기를 해소해줄 수 있다, 지역경제 부흥에 도움이 된다, 경제적이고 깨끗하다 등 나머지 신화들에 대한 비판을 보면 어찌 찬핵 집단들은 국경을 막론하고 그렇게 천편일률적이면서도 빤한 논리로 대중을 현혹시키고자 하는지, 그 속성의 동질성에 감탄할 지경이다. 특히 지역경제 부흥이라는, 어찌 보면 핵발전소와 직접적으로 상관없는 간접효과에 대한 강조는 우리나라에서도 지역주민들의 반대운동을 무마시키기 위해 똑같이 유포되고 있는 주요한 찬핵 논리 중의 하나인바, 언제나 어이없는 심경으로 대면하는 이쪽 나라 찬핵진영을 대하는 듯하여 친근함마저 솟아오르려 한다.
판도라의 상자를 닫아라!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저들이 내세웠던 원자력의 신화는 저자의 치밀한 논리에 의해 그 어느것도 재반론의 여지를 두지 않고 조각조각 부서져 흩어져버린다. 경제적이지도 않고 도저히 평화롭다고는 인정할 수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역사적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파멸로 몰고갔으며, 앞으로도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후세대들에게 커다란 짐을 안기는 죄악과도 같은 원자력. 이는 흡사 판도라의 상자에 비견할 수 있겠다. 단순한 호기심만으로 상자를 열었고 그 대가로 온갖 재앙이 세상에 난무하게 된 판도라의 상자.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는 뒤늦게나마 닫혔고 덕분에 희망만은 남아서 인간에게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원자력이라는 상자는 호기심을 가지고 열었으되 인간의 오만과 고집 속에 아직 닫힐 줄을 모르는 채, 어딘가 바다 한구석에서 끊임없이 소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옛날 이야기 속의 맷돌처럼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재앙을 만들어내고 있다.
누가, 언제 이 상자의 뚜껑을 닫을 것인가. 희망마저 빠져나와 풍진 세상을 정처없이 떠돌게 되기 전에 상자는 닫혀야 한다.
치밀한 논리 속에 교차하는 열정
사람들의 말처럼 반핵운동은 참 재미없고 딱딱한 운동인지 모른다. 그리고 혹시 우리가 뒤따라 핵발전소를 짓게 만들었던 서구 유럽을 좇아, 조만간에는 굳이 반대운동을 하지 않아도 더이상 핵발전소를 짓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기술력에 대한 오만한 자존심을 꺾었던 90년대 자국내의 치명적인 핵발전소 사고 이후로도 일본은 근본적인 반성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남한땅에는 전체 20기(基)도 모자라 한 지역에 10기를 채우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 추가건설을 하고자 기를 쓰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보적인 환경정책으로 환경운동가들의 선망의 대상인 독일을 비롯하여 전세계에 친우들을 두고 있었던 저자 타까기 진자부로오 박사에게도, 이미 세계적인 추세는 당연한 순리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명한 이치로 판단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의 조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 또한 그 반열에 함께하게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한 그가, 찬핵 사업체의 연구자로서 안정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40년의 연구생활 중 3분의 2를 시민과학자로서 반핵운동에 헌신했던 것은, 판도라의 상자는 저절로 닫히는 것이 아니라 과오를 깨달은 자의 자기반성과 그 과오를 돌이키기 위한 실천적인 행동에 의해서만 닫힐 수 있다는 각성 때문이 아니었을지.
당신이 만일 이《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을 접하고서, 암과 투병하던 마지막 병상에서 혼신을 다해 작성한 이 저서의 냉정하리만치 치밀한 논리들 사이사이에, 차오는 숨을 고르면서도 자신을 대신해 살아갈 자들에게 그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던 저자의 뜨거운 열정을 읽어낸다면 이 책의 읽기는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