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운 풍요로움이란 무엇인가? 인류의 생존 가능성마저 불투명하게 된 가공할 생태적 재난과 그로 인한 필연적인 세계경제 붕괴라는 전망 앞에서 ‘경제성장’의 허구와 신화를 벗긴다. 이대로 가면 빙산에 부딪힐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엔진을 멈출 줄 모르는 오늘날의 ‘타이타닉 현실주의’에서 벗어나 진정한 현실주의를 궁리한다.

목차

머리말
21세기의 상식을 위해서 / 그런데, 어째서 이 제목이? / 이 책은 어떠한 독자를 상정하고 있는가

제1장 타이타닉 현실주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경고 / 아무도 엔진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 현실주의를 위하여

제2장 ‘비상식적’인 헌법?
교전권을 방기해도 자위권은 남는가? / 교전권은 군대의 ‘인권’ / 국가는 ‘정당한 폭력’을 행사한다 / 폭력이 폭력이 되지 않는 마법 / 국가에 폭력행사 권리를 부여한 결과 / 국가는 국민을 지켜온 게 아니다 / 제9조는 현실적인 제안이었다 / 제9조가 만든 ‘평화상식’ / 전쟁은 반드시 되돌아온다 / 개인의 정당방위로 군사행동은 불가능하다 / 후방지원은 전쟁이다 / 교전권은 부활하였다 / ‘신(新)9조’에 따를 것인가, 따르지 않을 것인가

제3장 자연이 남아있다면 더 발전할 수 있는가
발전 이데올로기가 태어난 순간 / ‘발전’은 고쳐 만들어진 말 / ‘미개발’은 ‘야만인’의 다른 말 / 그리고 착취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 역사에서 사라진 ‘강제노동’ / ‘발전’이라는 말의 불가사의한 힘 / 슬럼은 근대건축이다 / “모두가 언젠가 발전한다”라고 하는 약속 /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다 / 빈곤은 재생산된다 / 경제발전으로 빈곤은 해소되지 않는다

제4장 제로성장을 환영한다
“파이가 커지면 조각도 커진다”고 하는 거짓 / 풍요의 질을 바꾸다 / ‘대항발전’이란 무엇인가? / ‘대항발전’은 진짜 행복을 추구한다 / 일과 소비, 두가지 중독 / 무엇이 진보인가? / “자전거보다 차가 새롭다”는 환상 / 24시간 일해야만 하나 / 우리는 전환기 바로 앞에 서 있다

제5장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는 아니다
가장 민주주의적인 선거는 제비뽑기 / 언제 선거제가 민주주의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는가 / 군대가 있는 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 여가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성립되지 않는다 / 누구도 이처럼 노동하지 않았다 / 경제를 민주화해야 / 우리는 힘이 있다 / 살아남기로서의 활동

제6장 현실은 바뀐다
늦지 않을까? / ‘상식’은 반드시 바뀐다 / 방사능이 있는 유토피아

후기
부록
아메리카의 ‘자유’와 확장주의
영어회화의 이데올로기

역자 후기

저자 소개

C. 더글러스 러미스 (C. Douglas Lummis)
193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분교 졸업. 정치사상 전공. 1960년에 미해병대에 입대하여 오키나와에서 근무. 1961년에 제대 후, 버클리로 되돌아가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다시 70년대 초 일본으로 와서 활동을 시작함. 1980년에 도쿄에 있는 쓰다(津田塾) 대학 교수가 되어 2000년 3월 정년퇴임. 현재는 오키나와에 거주하면서 집필과 강연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래디컬 데모크라시》(코넬대학 출판부, 1996년, 영문판), 《래디컬한 일본국 헌법》, 《헌법과 전쟁》, 《이데올로기로서의 영어회화》 등이 있다.

역자 소개

김종철 (金鍾哲)
격월간《녹색평론》발행 · 편집인

최성현
1956년 출생.
강원도 홍천에서 자급농으로서 살면서 번역·저술 활동을 통해 자연농법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산에서 살다》, 《좁쌀 한 알》, 《시코쿠를 걷다》, 《오래 보아야 보이는 것들》, 《시골 엄마의 선물》, 역서로 《생명의 농업》, 《신비한 밭에 서서》, 《사과가 가르쳐준 것》 등이 있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은 현재 일본에서 활동 중인 미국인 정치학자이자 평화운동가, C. 더글러스 러미스의 저서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책의 일부 내용은,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실린 두 편의 에세이와 함께 이미 《녹색평론》의 지면을 통해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소개된 바 있다. 아직 충분히 많은 글이 소개된 것은 아니지만 더글러스 러미스는 이제 국내에서도 그리 낯선 이름은 아니다. 실제 그동안 《녹색평론》에 그의 글이 소개될 때마다 오랜 평화운동 및 정치사상가로서의 경험과 사색에서 우러나온 러미스 교수의 비범한 통찰은, 그의 명석한 언어와 함께 적지 않은 예민한 독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경제성장, 민주주의, 평화, 지속가능한 문명, 미국의 패권주의 등등 이 책의 저자가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테마는, 실제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역사적 대전환기에 접어들었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이는 21세기 초두(初頭)의 상황에서, 인류사회 전체의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특히 지난 수십 년간 고도경제성장을 경험해온 사회들에서는 다른 어떠한 것보다도 절박한 관심사가 되어야 마땅한 것임이 틀림없다. 일본이나 일본의 경험을 답습해온 한국과 같이, 그러한 고도경제성장을 전형적으로 밟아온 사회는 전대미문의 생산, 소비의 증대를 통해 엄청난 물량적 풍요와 낭비에 근거한 소비주의 문화를 만들어오는 과정에서, 인간다운 삶의 기반이 끝없이 훼손당하고, 앞으로의 지속적인 생존가능성이 불투명하게 되는 가공할 만한 생태적 재난에 봉착하였기 때문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모든 근본적인 어리석음의 근간에는 ‘경제성장’에 대한 우리의 검토되지 않은 맹목적인 신앙이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통해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고용문제를 해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문명된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가정(假定)을 의심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통해서 경제적 수치로 환산될 수 있는 물질생활의 측면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인간적 풍요로움의 성립조건이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갈수록 심화되는 사회적 양극화 속에서 풀뿌리 민중이 자신의 삶을 선택,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점점더 약화되고, 오늘날 산업노동자의 생활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부자유스러운 ‘노예’의 삶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낡은 논리, 낡은 가치관에 의지하여, 이 절박한 문제들에 접근하는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체제비판적인 지식인들도 이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진보, 보수라는 정치적 입장에 관계없이 ‘경제성장’은 아직도 대다수 지식인들에게는 사회진화의 자명한 전제이다. 그들은 ‘경제성장’의 허구와 신화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을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러미스 교수는 그들의 이러한 태도야말로 ‘타이타닉 현실주의’라고, 참으로 적절하게 규정하고 있다. 생존의 자연적 기반이 사라져가고 있는 마당에, 무엇보다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어떻게 이 현실을 무시하고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이 책의 문제의식은 진정으로 책임 있는 지식인이라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전쟁의 암운이 드리워지려 하고 있다. 이 책은 비록 두해 전에 구술 기록된 것이지만, 작년 9월 11일의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 공격, 그리고 지금 이라크 공격 직전의 세계적 위기 상황에 관련해서도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바가 많다. 평화의 문제는 정치, 군사, 외교의 문제이기 이전에, 무엇보다 현대세계가 개발과 경제성장이라는 논리의 포로가 되어온 사실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난’이라든가 ‘부유함’이라든가 하는 개념이, 기본적으로 경제적인 개념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개념이라고 하는 러미스 교수의 견해는, 따져볼수록, 탁견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정치적 판단과 선택에 의하여 결정하여 마땅한 것을,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라고 오인·착각함으로써, 우리의 개인적·집단적 삶에 본래 내재되어온 참다운 ‘풍요로움’의 가능성을 파괴해왔던 것이다. 이제 늦게라도 이러한 새로운 깨달음에 우리가 얼마나 겸손하게 응답하느냐에 우리와 다음 세대의 운명이 달려 있음이 분명하다. 러미스 교수는 우리에게 더이상 ‘유토피아’를 실현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이미 세계는 오염될 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방사능으로 오염된 유토피아’일망정 희망을 품고 거기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는 노력 이외에 지금 우리에게는 다른 윤리적 행동의 가능성은 없는 게 아닌가.
2002년 11월
김종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