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부커상 수상작인 소설《작은 것들의 신》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인도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정치평론집이다. 작가의 임무는 이른바 국익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의 삶과 생명의 서식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근원적인 의미의 정치적 투쟁에 있다는 저자의 믿음이 드러나 있다.
목차
홍수 앞에서
작가와 세계화―‘전문가’들에게 맡겨두어야 할 것인가
왜 미국은 당장 전쟁을 중지해야 하는가
9월이여, 오라
노엄 촘스키의 외로움
메소포타미아, 바빌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인스턴트 제국 민주주의
새로운 미국의 세기
해설_댐을 부수는 사람…마들렌 번팅
역자 후기
추천의 말
《9월이여, 오라》는 로이의 궤적을 보여준다. 작가가 된 뒤 그는 줄곧 세계화라는 끔찍한 화두와 대결하고 있다. 인도의 댐 건설 현장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의 포연이 공통으로 대면하고 있는 것은 모든 ‘작은 것들’을 짓밟으며 작동되는 세계화다.
―〈한겨레21〉
본문 중에서
[역자 후기]
2003년 3월 20일 새벽 5시 30분. 미국은 바그다드 남동부에 대규모의 미사일 폭격을 감행하였다. 스마트폭탄, 소프트폭탄, 전자기 펄스탄, 토마호크, 지하벙커 파괴폭탄, 열압력폭탄, ‘데이지 커터’로 불리는 파쇄성폭탄, 이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일명 ‘모든 폭탄의 어머니’로 불리는 공중폭발 대형폭탄까지 동원된 대규모 공습이었다. 이름하여 ‘이라크 해방작전’. 총 동원병력 30만명에 작전 참가 군인만 12만5천명이었다. 2003년 4월, 미국측 통계에 따르면 2,320명의 이라크군이 전사하였고, 13,800명이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민간인 사상자 수는 전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지난 10년간의 경제제재 조치로 죽어간 어린이와 민간인 사망자 수도 아직 집계되지 않았다. 그리고 2004년 현재 미국의 이라크 점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미국의 침략과 점령에 항거하는 이라크인들에 대한 미군의 공격은 갈수록 광포한 것이 되어, 앞으로 얼마나 더 희생자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는 이 참혹한 전쟁에 분노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로이는 “미국의 자유를 수호하고 이라크를 해방시키려는” 모든 이들에게 ‘신의 가호’를 요청한 조지 부시에게 분노하였고,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 민중들에게도 파쇄성폭탄으로 민주주의를 건설해주겠다는 미국의 오만한 제국주의적 자세에 분노하였다. 그녀는 자유세계의 창녀로 전락한 ‘민주주의’에 분노하였고, 쇼 비즈니스로 전락하여 전쟁광고에 열을 내는 미국식 ‘자유언론’에 분노하였다. 또 그녀는 이 전쟁에 쇠파리처럼 날아든 벡텔, 할리버튼과 같은 다국적기업들에 분노하였고, 마침내 제국의 시녀로 전락한 유엔에 분노하였다.
그 어느 저널리스트의 글보다도 로이의 글은 정확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현재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녀의 시선은 언제나 약자들에게로 향해 있다. 이 지구상의 온갖 작은 것들,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것들, 어린이들, 민중들에게로 향해 있다. ‘이라크 해방작전’에서 죽어간 수많은 어린이들과 민간인들이 로이에게는 낯설지 않다. 그녀에게 이라크는 먼 나라가 아니다. 미국의 침략과 점령으로 죽어간 이라크 민중은 바로 수많은 댐 건설로 삶터를 잃고 헤매는 인도 민중들이었고, 나르마다 개발계획으로 수장(水葬)되는 수많은 작은 곤충들과 숲이었다.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의 케랄라 주에서 태어나 건축가, 프로덕션 디자이너, 영화작가로 활동하다가 첫 소설《작은 것들의 신(神)》을 통해 작가가 되었다. 인도 기층사회의 오랜 가부장적 전통에 희생되어온 사람들의 운명을 그린 이 작품으로 영어권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의 하나인 영국의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그녀는 일약 세계적인 스타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출판사의 주선으로 일년 가량 전세계를 여행하고 난 뒤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곧 그녀는 인도의 핵실험을 가열하게 비판한〈상상력의 종말〉과 나르마다 개발계획의 재앙에 대한 글〈더 큰 공공선〉을 발표하였고, 그 결과 인도의 주류사회로부터 쏟아지는 비난과 냉대에 직면하였다. 대규모 국책사업으로 추진된 나르마다 댐 건설계획은 세계은행, 서양의 다국적기업, 그리고 이들과 손잡은 인도 엘리트들이 만든 국제적 부패의 현장이었고, 반대로 나르마다 강에 의지해 자급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왔던 수많은 풀뿌리 민중들에게는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도시빈민으로 떠돌면서 “복종하는 법과 아무에게나 말 대답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하는 굴종의 현장이었다.
처음부터 로이는 작가의 임무란 ‘국익’이 아니라, 풀뿌리 민중의 삶을 옹호하는 데 있다고 생각하였다. 첫 소설《작은 것들의 신》에도 드러나듯이, 그녀는 인도 남부 케랄라 주의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일상적으로 친근하게 대면했던 곤충들, 무성한 수목들, 그리고 정겹고 가난한 이웃들을 사랑했다. 이 모든 ‘작고 연약한 것들’에 대한 기억과 사랑이야말로 오늘날 로이가 반세계화 운동의 뚜렷한 기수가 된 근원적인 토대였다. 로이는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과 동시에, ‘자유무역’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있는 ‘세계화’를 원천적으로 거부한다. 그녀는 전쟁과 세계화 경제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에서 신비와 행복과 우정이 사라지는 것에 분노하고, 개발과 발전의 이름으로 무수한 생명들이 짓밟히고,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못한다. 그래서 그녀는 자연에 의지해 살아온 대다수 가난한 민중들이 다국적기업과 미디어와 제3세계 권력엘리트와 전문가들에 의해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에 온힘으로 저항해왔다. 이렇게 해서, 로이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인기 작가의 길을 버리고, 풀뿌리 민중과 그들의 삶터를 지키려는 반세계화 운동의 가시밭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작가란 어디까지나 진실을 알려고 노력해야 하는 존재이고, 진실을 알고 난 뒤에는 진실에 대하여 발언하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모두 정치적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적에 나는 부산의 한 변두리 바닷가에서 자랐다. 봄이 오면 학교 뒤 동산에 올라 할미꽃이 핀 낮은 무덤가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고, 한여름 저녁이면 평상에 누워 부채바람 아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지냈다. 계절이 바뀌어 화단가 채송화 씨앗 주머니가 봉긋이 올라오면 깨알 같은 주머니를 터트리며 놀았고, 민들레가 질 때면 솜털이 보송보송한 홀씨들을 불고 다니며 놀았다. 왜 그때라고 생활이 녹록했겠는가. 변두리 인생이라 동네 아저씨들 술 먹고 싸움할 일도, 동네 여자들 방정맞은 밤마실에 소문날 일도 많았다. 어려운 현실은 그 시절에도 드리워져 있었고, 너나 할 것 없이 세상 사는 고통과 가난의 연속이었다. 지나간 시절이라고 다 정겹겠는가. 그러나, 아룬다티 로이의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동안 내게는 이상스럽게도 자꾸 그 시절이 떠오르곤 했다.
그때 저녁 늦도록 친구들과 불렀던 노랫소리도, 골목길의 웃음소리도 이젠 사라지고 없다. 이제는 봄날 무덤가에 불던 스산한 바람도, 할미꽃도, 딱정벌레도 없다. 으스스한 전설도, 골목길 아이들 숨바꼭질 소리도, 땅강아지도 ‘개발’을 통해서 우리 주변에서 사라졌다. 이제 막 세상에 눈뜨기 시작하던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느꼈던 신비와 두려움, 그리고 정겨움도 사라졌다. 처마 밑에 비긋는 소리도, 여름밤 빛나던 먼 별빛도 사라졌다. 작고,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면서, 우리 삶에서 모든 신비롭고, 놀랍고, 정다운 것들도 함께 사라졌다. 이렇듯 우리사회에서도 근대화, 개발,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그리고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한 것은 예외 없이 ‘작고 연약한 것들’이었다. 그러한 상황의 연장선에서, 지금 또다시 우리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 파병 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보았다.
열화우라늄탄이나 파쇄성폭탄의 상대가 작은 곤충들, 앙상한 나무, 메마른 강, 맨발의 어린아이들, 그리고 굶주린, 순박한 이라크인들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이제 막 부모 곁을 떠나 ‘국익’을 위해 파병된 우리의 젊은이들이 그 상대가 될 수 있을까. 아룬다티 로이는 뜨거운 마음으로, 놀랄 만큼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언어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제 우리도 진실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004년 6월
박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