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전환 없이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저자가 ‘석유중독’의 한국사회에 던지는 호소.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통일운동 등 우리사회 민중운동들의 기존의 논리를 비판하고, 뼈를 깎는 성찰을 통한 생태적 전환을 요구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는 것.
목차
책머리에
제1부
민주화 20년, 사막화 20년
민주화운동은 정말 환멸로 끝나고 말 것인가
진보는 없다-민주화운동에서 사회전환운동으로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통일운동인가-통일운동의 시각 전환을 위하여
민중운동은 우리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식량재앙, 에너지 위기, 한국의 농민운동
제2부
한국 노동운동 이념에 대한 단상
전태일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인가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공동체를 위하여-진보는 환상이다
위기에 빠진 노동, 위기불감증에 빠진 공동체
한국 노동운동, 종말인가 재생인가
제3부
왜 자립경제인가-박현채를 다시 읽으며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 살까-석유정점을 둘러싼 ‘늑대 이야기’ 열 가지
햇빛농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에너지 전환의 싹을 자르는 산업자원부
똥은 에너지다
왜 ‘유기농’이고, 왜 ‘직거래’인가
우리에게 미래가 있을까
소개의 말
민주화 20년? 사막화 20년!
한국의 압축 산업화는 분명히 한국사회를 ‘풍요’의 사회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그 풍요의 대가는 공동체의 파괴와 공동체정신의 해체였다. 이제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우애와 환대’의 공동체는 한국사회 어디에도 없다. 오로지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과 투쟁만이 존재한다. 우리는 엄연히 자본이라는 제왕(帝王)이 군림하고 있는 ‘사이비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민주화 20년’조차 한국사회를 철저히 원자화된 개인들,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개인들을 양산해내고 사회 자체를 파편화로 내몬 ‘사막화 20년’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풍요’의 원천, 석유가 고갈되고 있다
한국사회가 누리는 ‘풍요’는 물론 값싼 석유와 자연자원 덕택이다. 우리는 지금 무자비하게 석유와 자연자원을 착취하고 있으며 무자비하게 미래세대의 저금통장을 까먹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풍요 속의 빈곤’, ‘풍요 속의 불행’이라는 역설은 또한 우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자본주의 체제의 우리 안에 갇혀 자본주의와 석유문명에 중독되어 있는지 깨닫게 한다. 우리는 지금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길들여진 일벌레들일 뿐이다.
이런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물질문명과 풍요는 전혀 지속불가능하다. ‘석유정점(피크오일)’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석유정점은 석유가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지구상의 모든 천연자원이 점차 고갈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일깨워 주는 경종(警鐘)이다. 수억년 동안 잠자고 있던 화석연료를 지상으로 꺼내 불태움으로써 마구 풀려난 이산화탄소와 그로 말미암은 기후변화는 파국을 예고하는 경고의 사이렌 소리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 경종과 사이렌 소리를 듣지 않는다. 귀가 먹고 눈이 먼 중독자들이, 아무런 삶의 의미도 없이, 그 어떤 삶의 지향도 없이, 그저 미친 듯이 자동차 가속페달을 밟아대고 있을 뿐이다. 기계처럼 밤낮없이 땅을 파헤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들의 입과 코로 들어올 독성 화학물질을 마구 뿌려대고 있을 뿐이다.
조만간 닥칠 석유정점은 자본주의 산업문명 붕괴의 전주곡이다. 석유정점과 함께 끔찍한 식량위기가 닥치는 것은 거의 필연이다. 그야말로 ‘잔치’는 끝나가고 있다.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잔치가 끝나면 우리는 무엇을 먹고 살 수 있을까.
‘잔치’는 끝나가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헌신했던 저자 박승옥은 이제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만이 우리가 생존을 지속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농업-식량 및 에너지의 자립·자치를 위한 풀뿌리 운동에 시민들이, 아래로부터 나설 것을 이 책에서 호소한다. 또한 그 길만이 민주화운동이 처한 ‘환멸’의 상황을 극복하고 지금의 ‘사이비 민주주의’, ‘허구의 민주주의’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한국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위해서는 노동운동과 농민운동, 통일운동 등 기존의 ‘민중운동’들이 뼈를 깎는 성찰과 반성을 거치지 않으면 안된다. 석유문명에 토대를 둔 민중운동 진영의 사고와 행태들, 그리고 ‘경제성장’과 ‘발전’의 논리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민중운동의 기존 논리로는 결코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비전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잔치’는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 대선에 나선 주자들 중 그 누구에게서도, 지금까지 한국사회가 누려온 이 ‘풍요’의 원천인 석유의 고갈과 자연환경의 파국적 훼손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나 고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모두가 오로지 ‘경제’만을 외치면서도, 그 경제의 근간이 뿌리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데에 대해서는 하나같이 외면하고 있다. 이것은 완전한 ‘무지’가 아니면, 철저한 ‘기만’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이 같은 ‘미친 사회’를 바꾸는 일에 우리는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 손자와 손녀를 위해서, 아니 우리들 다음 세대인 아들 딸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지금 ‘생태적 전환’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지속불가능한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사회로 ‘전환’하는 일은 아마도 ‘혁명’보다도 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부터 이런 전환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저자의 호소는, 그래서 절규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