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자연주의자들의 경전으로 일컬어질 만큼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킨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대표적 저서.
자연농법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모른다는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일체의 인위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자연에 순응하는 무위의 사상을 농사법과 삶을 통해 실천해 보임으로써 저자는 ‘현대의 노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목차

서문

제1장 자연이란 무엇인가
이 보리를 보라 /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 고향으로 돌아오다 /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법을 목표로 하다 / 농업의 원류는 자연농법 / 자연농법은 왜 보급되지 않는 것일까 / 인간은 자연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2장 누구나 할 수 있는 즐거운 농법
쌀과 보리농사의 실제 / 자연농법의 4대 원칙 / 기로에 선 일본 벼농사 / 짚을 이용하는 농법 / 이상적인 벼농사 / 귤농사의 실제 / 과학기술의 의미와 가치

제3장 오염시대에 보내는 편지
식품공해 문제는 왜 해결되지 않는가 / 바다오염은 화학비료가 원인이다 / 과일은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있다 / 수고는 많고 성과는 적은 유통구조 / 자연식품 붐이 의미하는 것 / 자연이 만든 것의 맛 / 인간의 먹을거리란 무엇인가 / 원점을 망각한 일본의 농정 / 기업농업은 실패한다 / 누구를 위한 농업기술 연구인가 / 자연을 섬기기만 하면 된다 / 일본인은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 / 사라진 농부의 정월 휴일 / 공동체 속에서 싹트는 자연농법 / 자연농법과 유기농법 / 자연농법의 사명은 무엇인가

제4장 녹색 철학
알지만 아는 것이 아니다 / 바보는 누구인가 / 나는 유치원에 가기 위해서 태어났다 / 떠가는 구름, 흐르는 물과 과학의 환상 / 상대성이론이여, 똥이나 먹어라 / 전쟁도 평화도 없는 마을 / 짚 한오라기의 혁명 / ‘서울의 꿈’/ 갈대 줄기 속으로 하늘을 엿본다

제5장 현대인의 병든 식이
자연식이란 무엇인가 / 자연식의 방법 / 먹을거리의 본질 / 자연식에 대한 정리

제6장‘짚 한오라기’의 미국여행
캘리포니아는 왜 사막화되었는가 / 미국 농업은 미쳐 있다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확대를 지향하는 기계문명의 종말

후기
소원
옮긴이의 글

저자 소개

후쿠오카 마사노부(福岡正信, 1913-2008)

1913년 에히메(愛媛)현 이요(伊予)시 오오히라(大平) 출생
1933년 기후(岐阜)고등농업학교 농학부 졸업
1934년 요코하마(橫浜)세관 식물검사과 근무
1937년 일시 귀농
1939년 고치(高知)현 농업시험장 근무
1947년 귀농 이후 자연농법 외길을 추구
1988년 인도의 타고르국제대학학장 라지브 간디 전 수상으로부터 최고명예학위를 수여
동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리핀 막사이사이상(시민에 대한 공공봉사 부문) 수상
2008년 작고

주요 저서로 《무Ⅰ. 신의 혁명》, 《무Ⅱ. 무(無)의 철학》, 《무Ⅲ. 자연농법》, 《자연으로 돌아가다》, 《‘자연’을 살다》, 《DVD북 자연농법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세계》 등이 있다.

역자 소개

최성현

1956년 출생.
강원도 홍천에서 자급농으로서 살면서 번역·저술 활동을 통해 자연농법을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 《산에서 살다》, 《좁쌀 한 알》, 《시코쿠를 걷다》, 《오래 보아야 보이는 것들》, 《시골 엄마의 선물》, 역서로 《생명의 농업》, 《신비한 밭에 서서》, 《사과가 가르쳐준 것》 등이 있다.

소개의 말

“이 짚은 지극히 가볍고 작아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짚 한오라기로도 인간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자연농법의 효시,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대표적 저서인 이 《짚 한오라기의 혁명》은, 단순히 농법에 관한 숱하게 많은 주장이나 학설들 중의 또하나가 아니다. 이 책은 자연농·자연식·자연인이라는 철학을 역설하고 있는, 사상서이다. 자연농법은 자연의 의지와 하나가 되어 이 삼자를 추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늘나라’를 꿈꾸는 혁명이기 때문이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흔히 ‘현대의 노자’라고도 일컬어지는데, 그것은 평생을 외곬으로 무심(無心)·무위(無爲)를 지향하는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농학자로서 요코하마세관 식물검사과에서 근무하던 젊은 시절의 후쿠오카는, 어느 날 인간의 지식, 과학문명이 모두 허상임을 깨달았다. 그는 “인위의 일체는 무용하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농사법을 통해 검증코자 했다. 그리고 쌀·보리농사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되어있는 땅갈기, 퇴비, 제초제와 농약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훌륭한 수확을 내어 실증함으로써 세상에 자신의 사상을 증명해 보였다.

자연이란 무엇인가? 자연농법이란 무엇인가?

자연에 순응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보잘것없는 지식(지혜)에 기대 인위적인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연’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후쿠오카는 ‘방임’과 ‘자연’을 구별한다. 가령 한번 가지치기를 한 나무는 다음해에도 계속해서 가지치기를 하지 않으면 말라 죽어버린다. 이것은 방임이다. 이미 나무(자연)에 교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지혜로 뭔가 잘못된 일을 해놓고서, 그 결과로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열심히 고치는 것 ― 이것이 현대의 과학농법인 것이다. 게다가 더 나쁜 것은, 과학농법은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궁리해낸 기술도 부분적·한시적일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도리어 더 많은 문제를 배태하는 것이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인간의 자기파괴적 행위의 결과가 극한에 치닫고 있으므로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그리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하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책이 쓰여진 지 한세대가 지난 지금, 인류가 선택할 수 있었던 ‘다른 길’을 방기한 데 대한 우리의 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농부의 삶, 인간의 삶

자연농법은 진실로 엄격한 농법이다. 농부는 자연의 힘을 완전하게 믿고, 그 흐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자연은 시시각각 변화하며 서로 다른 조건(환경)을 조성함으로써 서로서로 미묘하게 영향을 미치면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어제 저곳에서 최상의 조건이었던 것이 오늘 여기서는 최악의 조건일 수 있다.
따라서 농부의 일이란 자연을 섬기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하지만, 그러나 충실하게 섬기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농업은 신(神)의 시종으로서 신에 봉사하는 역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직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본질을 망각한 사람들이 근대농업이라든가 기업농업이라면서 신의 측근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잊어버리고 이익을 앞세우는 현실을 슬퍼한다. 농부의 기쁨은 다만 오늘 하루의 일에 전념해서 씨를 뿌리고, 자연의 활동에 따라서 작물을 애호하면서 작물과 함께 생활해가는 그 자리에 있다. 그것을 음미하는 것이 농부의 생활방식이고, 그것이 진정한 농부의 모습이다.
실은 이것은 보편적 인간 삶에 대한 지침이다. 자연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신의 뜻, 자연의 의지에 따라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복종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완성, 자연인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자연은 인간의 지혜로 온전히 밝힐 수도, 만들어낼 수도 없다. 자연농법은 영원한 미완성의 길, 구도(求道)의 길이다.
‘전세계 자연주의자들의 경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 고전(古典)이, 처음 출판된 지 30년 세월을 훌쩍 넘어 지금에야 한국의 독자들에게 두루 소개되는 것은 한편 안타깝지만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본문 중에서

“생명이란 우주 삼라만상, 곧 대자연 그 자체의 합작품이다. 그 의미와 의지를 모른 채 자연과 대립자가 된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여 생명의 양식인 먹을거리를 기르며 살아가고자 했다. 그때부터 인간은 어머니 대지에 반역하여 그것을 파괴하는 사탄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화전(火田)에서 시작한 농업 발달, 인간의 욕망에 봉사하는 농업의 변천 및 문명 발달의 역사가 그대로 자연파괴의 역사가 되어왔다.”(3쪽)

“일반적으로 자연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공감합니다. 다만 무엇이 자연인지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을 부자연스럽게 만드는 최초의 출발점이 무엇인지, 그것을 확실히 모르고 있습니다. (…) 결국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로 뭔가 잘못된 일을 한 것입니다. (…) 자연상태의 흙이란 그냥 두어도 절로 비옥해지기 때문에 비료 따위는 넣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 자연상태를 인간이 파괴하여 땅힘을 없애버린 채, 거기를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에 비료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과일나무와 벼를 연약하게 만들어놓고, ‘농약을 썼더니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 데 지나지 않습니다.”(26~27쪽)

“농약 뿌리기는 병충학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른바 인간의 진선미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 요컨대 철학자와 종교인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까지 참가하는 검토회를 열어서, 농약을 뿌려도 괜찮은 것인지 아니면 뿌려서는 안되는 것인지, 비료를 뿌리면 어떻게 되는지 등등을 논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 단 한번만이라도 이 논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지만 경이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다면, 인간의 지혜라든가 사고방식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40~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