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사막화하는 도시에서의 삶을 벗어나 ‘고향’으로, ‘존재의 근원’으로 되돌아가서 거기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느 도시인의 여정이, 쉽고 명료한 언어로 꼼꼼하게, 또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그려져 있다.
목차
프롤로그_ 고향 만들기
제1부 지내리 시절
주경야독 꿈꾸며 땅 덥석 사고 보니 / 300평 밭농사가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 원두막 그늘에서 먹는 고등어조림 상추쌈 / 개 때문에 농사 포기할 마음까지 / “그 개 잡아서 보신탕을…” / 무밭에 자동차 헤드라이트 켜놓고 / 농사 2년차에 부딪힌 문제들 / 맹지에 집을 짓는다? / 그 맹지가 ‘알박이’인 줄도 모르고 / 전원생활 꿈꾸는 교수들
제2부 팔미리 시절
‘제대로 된 땅’의 조건 / 땅 보러 다니는 재미 / 다리도 없는 ‘개울 건너 땅’을 / “또 마음에 없는 땅을 사요?” / ‘농사교본’대로 파종했으나 / 너무 일찍 심어 망친 농사 /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 삼겹살 파티와 빈 페트병 / 진땀 흘린 고추 말리기 / 개울에 다리 놓기
제3부 월송리 시절
팔미리 땅 포기하고 다시 땅 보러 / 아늑하고 소쇄한 느낌이 드는 땅 / 땅도 인연이 있어야 / 아파트 팔아 땅값은 마련했으나 / 대출 받아 목조주택 짓기로 / “죽을 운수에 집 짓는다” / “측량부터 하고 나서 공사하슈” / 다락방의 ‘가중평균높이’ / ‘농촌 경관주택’으로 뽑히다 / ‘돌아온 백구’의 증손자 ‘길동이’ / 길동이의 호화주택 / 시골에선 창고 없이 못 살아 / 마당에 잔디 심고, 꽃밭도 만들고 / 환갑 나이에 묘목 심어 어느 세월에 / 소나무 위에 뜬 달 / 화학비료의 폐해 / 3주 걸려 만든 비닐하우스 / 정자는 집 가까이에 지어야 / 드디어 상수도가 들어오다 / “밭맬래? 애 볼래?” / 월송3리의 고양이 많은 집 / 서울서 온 고양이 ‘마오’ / 고양이 동종교배의 폐해 / 월송3리의 동갑 친구 / 중복날의 개서리 / 농산물 훔쳐가는 도둑들 / 마을사람들과 어울리기 / “우리 교수님이 최고라고…” / 월송3리 노인회의 결성 / “교수님이 노인회장직을…” / 분란으로 치달은 마을노인회 / “교수님, 어서 일어나서 춤춰유” / 꽃도 보고 나물도 캐고 / 동태찌개 끓여주는 카페 / “에헤 허이 다알고호” / 10년 지어도 여전히 서툰 농사 / ‘기계치’는 서러워 / “제초제 칠 바에야…” / 고추 100그루 심어 100근 수확 / 농사는 과학이고 문화인 것을
에필로그_ ‘풍경’의 세계에서 ‘지도’의 세계로
추천의 말
산업화, 도시화가 극심하게 진전되는 동안 우리는 예전에는 꿈도 못 꿀 만큼의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누리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 모두의 내면적 삶은 황폐화하고 우리의 인간관계는 극히 피상적인 것, 공허한 것이 되어버렸다. 때때로 “이게 아닌데”라는 심각한 회의가 들지만, 우리는 대체로 일개 무력한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다는 체념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들 중에는 불리한 상황을 무릅쓰고 점점 사막화하는 도시에서의 삶을 벗어나서 ‘고향’으로, 즉 ‘존재의 근원’으로 되돌아가서 다시 거기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 ‘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근본적 충동의 하나인 한, 실제로 실현하든 못하든 그것은 아마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우리들 모두의 공통된 갈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가 ‘고향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는 따져보면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한국사회에서는 여러모로 특권적인 입장을 누리고 사는 대학교수의 귀향 이야기라는 점에서 별로 보편성을 가진 이야기라고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나름으로 확고한 믿음과 결심, 정열 없이는 이것은 결코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주는 감동은 평생 서생으로 살아온 저자가 조금도 몸을 아끼지 않고, ‘고향 만들기’라는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를 일념으로 집요히 추구하는 자세, 그리고 그 과정을 극히 꼼꼼하게, 쉽고 명료한 언어로,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종철(《녹색평론》발행인)
소개의 말
이 책은 중년에 이른 한 대학 교수가 자신의 직장이 있는 강원도 춘천 인근 시골에 땅을 사고, 농사를 짓고, 집을 짓고,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귀농 체험담을 담은 또하나의 에세이집인가 보다, 하고 간단히 짐작하면 그것은 오해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근대화로 인하여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누리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내면은 더할 나위 없이 황폐해진 현대의 도시인이, ‘지도’상의 어떤 지점이 아니라 ‘풍경’이 있는 장소를 찾아서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고향’을 구성해내는 여정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도의 세계에서 풍경의 세계로
근년에 들어 우리나라 귀농·귀촌 인구가 상당하게 증가하고 있다. 2013년에는 3만 가구를 훨씬 상회하면서 전년에 비해 50% 이상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그 기세는 한풀 꺾인 듯하지만 증가추세는 뚜렷하다. 국내외의 경기침체로 도시의 살림살이가 간핍해지고 생활이 옥죄이는 영향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사람의 천박한 소비욕망만을 부추길 뿐인 도시의 삶에 염증을 느끼는 인구가 늘고 있는 탓이라고 봐야 한다. 요컨대 사람 사이의 관계나, 집과 나무와 개울과 땅, 즉 장소와의 관계를 상실한 삶, ‘뿌리 없는 삶’을 사람들이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른바 근대화에 역주행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고향은 어떤 장소이기보다, 오히려 어떤 “공간과 시간이라는 요소들이 자신의 근원과 불가분의 관계로 맺어진 심성의 기억”에 가깝다. 그래서 농촌이 물리적·정서적으로 파괴된 오늘의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다수에게, 그것은 실체가 없는 상상의 산물에 가깝게 되었다. 왜냐하면 전찻길과 아스팔트와 빌딩은 고향을 구성해주는 ‘풍경’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향에 대한 기억이 풍성한 사람은 삶의 근원에 대한 정감이 풍성한 사람들이다. 삶의 풍랑 속에서 그들이 좌절하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살이가 아무리 힘겹고 고달플지라도, 고향의 존재는 그들에게 언제나 따뜻한 위안의 원천이 되어준다.” 요컨대 고향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 본연의 충동에 가깝다.
흙으로 돌아가기
특히 죽음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의 변화는 사람에게 있어서 고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시사해주는바, 대단히 흥미롭다. 저자는 도시에서 살 때 사후에 자손들이 화장을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공원묘지 같은 곳에 매장될 것이고, 필경 손자 대까지나 자손들이 성묘를 올 것이라고 짐작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농촌에 터를 잡고 살게 되면서, 사람이 한평생 살아온 장소에서 일가, 이웃 친지들의 배웅을 받으며 땅으로 돌아가는 장례행사를 경험하면서, “참 괜찮은 일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땅에 뿌리박은 삶, ‘흙’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삶에 갈급한 현대 도시인 모두의 이야기이다.
“… 그토록 혼쭐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의 생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땀 흘려 일하고 나서 맛보는 꿀맛 같은 상추쌈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볼품없고 빈약하긴 했지만, 뿌듯한 느낌을 주는 수확의 기쁨 때문이었을까? 그 모든 것이 다 작용했을 테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흙을 만지는 촉감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보드라우면서도 까슬까슬하고, 메마른 듯하면서도 촉촉한 그 느낌! 그 촉감을 즐기면서 나는 킁킁 코를 벌름거려 흙의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다.”
교수 노릇 잘하고 있던 50대 중반, 더이상 메마른 도시의 삶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 없다는,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 ‘고향 만들기’의 본격적 여정이, 그러나 평생 서생으로 살아온 지은이에게 결코 수월한 과정일 수는 없었다. 땅을 구하고,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이웃과 어울리고 하는 하나하나의 과정에서, 좌충우돌 우여곡절을 겪으며 몸으로 지식과 지혜를 배워나간다. 맹지와 관련된 제반 지식, 건축허가, 교량설치, 땅 경계 다툼, 주택시공업체 선정, 수도 들이기, 농사용 기계에 관한 일화들에서는 업체나 상품명을 밝혀주어서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도 하는데, 작물 파종, 정식 시기, 화학비료 또는 퇴비에 관한 경험, 정자나 창고의 배치, 야생동물 문제, 농산물 도둑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이웃과 더불어 부대끼며 사는 이야기에는 생활의 지혜가 묻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몸으로 체득한 삶의 지혜이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 유용하기도 하고, 감동을 준다.
“‘농부의 마음은 콩 세 알을 심는 마음’이라는 말이 있다. 한 알은 벌레를 위해, 또 한 알은 새나 동물을 위해, 마지막 한 알은 이웃과 나누기 위해 심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 했다가는 헛농사를 감수해야 한다.
… 나는 그냥 밭을 만들어서 씨를 뿌리면 작물이라는 것은 저절로 자라기 마련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데 10년이 걸렸다. 농사는 과학이었다. 적어도 자신이 재배하는 작물의 재배환경(온도, 일조, 수분, 토양적응성 등), 재배방법(밭의 준비, 정식과 정식 후 관리, 거름 주기 등), 수확 및 저장, 병충해 방제 등 다양한 측면에서 과학적인 관리가 되지 않는다면, 수확은 적고 고생만 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책은 짤막한, 각각 완결된 구조의 일화를 엮은 편제로 되어 있다. 그리고 일어난 사실 그대로이되 지은이의 글재주로 말미암아 콩트집 못지않게 재미있게 읽힌다. 귀농·귀촌을 계획하고 있고 실제적인 정보를 얻고 싶은 분이라면, 혹은 ‘고향’을 갈구하는 분이라면, “지도의 세계에서 벗어나 풍경의 세계”에 정착하기를 막연하게나마 꿈꾸고 있는 분이라면 꼭 일독을 권한다.
“서울에서부터 월송리까지의 나의 인생 역정도 일종의 ‘고향 만들기’, 즉 ‘고향을 찾아 나선 오리엔테이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언제까지 월송리에 살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이 정감 어린 풍경을 나는 가능한 한 오래오래 향유하고 싶다. … 아무리 노쇠해져 있더라도 걸을 수가 있고 팔다리를 움직일 수만 있으면, 텃밭농사는 계속하고 싶다. 또 그렇게 해야 정겨운 풍경을 계속 찾게 될 것이고, 정다운 이웃사람들과도 계속 만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 낯선 얼굴들이 눈에 띄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옛날에 월송3리에 살다가 이사 나간 사람들이었다. 나도 그들처럼 할 작정이다. 관혼상제에 참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월 대보름날, 마을 풀 깎는 날, 마을 결산 총회 하는 날, 산신제 지내는 날 등등 마을행사에도 빠짐없이 참석할 작정이다. 왜냐하면 월송3리는 내가 천신만고 끝에 구성해낸 나의 ‘고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