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완간된 새로운 세계문학전집(河出書房新社)에 일본 작가로서 유일하게 포함된 이시무레 미치코의 대표적 작품.
일본 미나마타병 사건사에 대한 문학적 기록.
일본 문학평론가 와타나베 교지는 미나마타병이란 무엇이었던가를 이 정도의 진폭과 심층으로 묘파한 작품은 이것 말고는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이 작품은 단순한 반공해소설도, 사회고발문학도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생명과 자연에 본질적으로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근대’의 틀을 넘어서, 과연 근대란 무엇이고 좋은 삶은 무엇인가를 근원적으로 물으며, 진실로 인간다운 세상에 대한 절절한 희구를 담고 있다.
《고해정토(苦海淨土)》는 각각 완결적인 독립된 3부작으로 집필되었는데, 그중에서도 2부에 해당하는 《신들의 마을》은 압권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들의 마을》은 하늘과 바다와 땅과 연결된 풍성한 삶을 살았던 민중의 정신세계와 생활세계를, 민중의 언어로 깊이 있게 표현한 위대한 문학작품이다.
목차
제1장 갈잎 배
제2장 신들의 마을
제3장 사람 사는 한세상 길기도 하여
제4장 꽃상여
제5장 인간의 유대
제6장 열매 맺는 아이
후기 손바닥이 등 뒤에서 살며시 다가와
작품 해설
역자 후기
추천의 말
좋은 문학은 결국 삶에 대한 근본적인 긍정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아무리 지독한 악마의 정신이 지배하고 있더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인간정신이 있고, 아무리 할퀴고 짓밟아도 끝끝내 소멸될 수 없는 근원적인 기운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게 하는 게 좋은 문학과 예술의 몫입니다.
— 김종철(평론가, 《녹색평론》발행인)
소개의 말
《신들의 마을》은 일본에서 최근 완간된 새로운 세계문학전집(河出書房新社)에 일본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포함된 이시무레 미치코(石牟礼道子)의 대표적 작품이다. 이시무레 미치코가 각각 완결적인 독립된 3부작으로 집필한 《고해정토(苦海淨土)》는 1950년대 중반 규슈(九州) 남쪽 해안지방에서 발생한 전후(戰後) 일본의 ―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전까지 ― 최대 산업공해로 인한 재앙, 즉 미나마타병에 관련된 인간적·사회적 비극을 다룬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고해정토》 제1부가 미나마타병 피해자들에 대한 순수한 비가(悲歌)였다면, 제2부에 해당하는 《신들의 마을》은 “1969년 환자가족 29세대의 소송 제기로부터 이듬해까지 사회로부터 가장 주목을 받았던 시기”를 다루고 있다. 와타나베 교지는 작품해설에서 “미나마타병 문제의 일상과 비일상, 사회적 반향에서 민속적 저변까지 모든 것을 끌어안은 거대한 교향악이라고 해도 좋다. 미나마타병이란 무엇이었는가를 이 정도의 진폭과 심층에서 묘파한 작품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있을 수 없다”고 극찬하고 있다.
짓소공장에서 흘려보낸 유독물질이 시라누이바다의 생태계에 어떤 이변을 일으켰던가. 저자는 미나마타병에 대해 다음처럼 전한다.
“미나마타병의 원인물질은 메틸수은화합물이다. 신일본질소 미나마타공장의 아세트알데히드 초산 공장설비 안에서 생성된 메틸수은화합물이 처리되지 않은 채 미나마타만(灣)으로 방류됨으로써, 만의 내부가 오염되었고 만 안쪽을 오염시킨 메틸수은화합물은 어패류의 체내에 축적되었다. 미나마타병이란 이 어패류를 지속적으로 섭취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한 중추신경계의 중독성 질환이었다.”(23쪽)
“파도 소리조차 내지 않는 든바다 바닥의 고뇌를 지금도 사람들은 느끼지 못한다. 때때로 꼬리나 지느러미, 눈이 없는 물고기가 조용히 떠오르고 있건만. (…) 이 바다에 버려지고 있던 것은 염화수은만은 아니었고, 메틸수은화합물만도 아니었다. 셀레늄이며 탈륨이며 망간 역시 치사량 넘게 인간과 고양이의 장기 속에서 발견되고 있었다.”(52쪽)
하늘의 푸르름을 감싸 안고 빛을 발하고 있는 시라누이바다에는 이렇게 미나마타공장에서 흘려보낸 폐수가 흘러들었고, 인간 몸 안에 들어온 짓소공장의 독은 끔찍한 병을 일으켰다. “기요코가 죽기 전에는 비쩍 말라서 허리가 이리저리 휘어져버리고 다리도 끈을 엮어놓은 것처럼 비틀려 있었다우. 시집도 안 간 처녀아이 허리가.” 꽃다운 딸을 먼저 보낸 도키노 아주머니의 슬픈 사연이 처연하다. 오랜 도취의 계절, 너무나 아름다운 미나마타의 봄. 그리하여 죽은 자들의 봄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는다.
이 책에 생생하게 그려진, 아직도 현재진행 중인 미나마타의 슬픈 현실은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5년 여름 한국정부는 공장이나 산업단지를 쉽게 짓도록 하겠다면서 환경영향평가 기준과 절차를 여러모로 완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예를 들어, 환경부는 3만 제곱미터 미만의 공장과 창고를 지을 경우에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간을 그동안은 30일 안에 완료하도록 했던 것을 20일로 줄이겠다고 한다. 면적이 작은 공장일지라도 중금속이나 유해 화학물질을 취급한다면 환경에 끼칠 악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다. 또한 환경부는 공장 설립이 금지된 농업용 저수지 상류 500미터 안쪽에서도 부분적으로 공장 설립을 허용하여 농업용수와 농작물까지 중금속에 오염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진상규명을 향한 움직임과 ‘짓소’의 조직적 방해
미나마타병이 발생하자 구마모토대학 의학부에서는 진상규명 활동을 시작한다. 그러자 ‘짓소’는 극도로 악질적으로 각종 방해를 펼치고 진상을 은폐한다. 1959년 12월에는 ‘짓소’가 행정기관과 짜고 일방적 화해계약을 이끌어낸 범죄적 박해행위도 있었다.
“1959년 후생성이 임명한 미나마타병 보상처리위원회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짓소’가 판을 짜고, 후생성이 가담한 것에 불과한 기관이었다. 미나마타병 보상처리위원회는 환자들을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고 퇴로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소액의 보상을 강요했다.”(234쪽)
사람들은 이런 정도의 사건을 변방 어느 바닷가의 하찮은 소문 정도로 묻어버리려 했다. ‘짓소’가 망할까봐 걱정하는 지역사회 속에서 긴 세월을 미나마타병 환자들은 견뎌내야 했다. 짓소회사와 시 당국, 어협은 다양한 술수를 써가며 사람들을 교묘하게 조종했다. 그럼에도 미나마타병 사건 발생으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나, 완전히 멸절되어버리는가 싶던 환자와 가족 29세대는, 1969년 구마모토지방법원에 가해자 ‘짓소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제기한다. 1970년 재판은 시작되었지만 법정에서 ‘짓소’ 최고 책임자들의 얼굴도 볼 수 없었다. 미나마타병 환자들은 ‘짓소’ 오사카 본사 주주총회에서는 사장을 만날 수 있을까. 주주총회에 순례를 하러 가자는 요시미츠 스승의 제안으로 영가연습이 시작되고, 마침내 1970년 11월 주주총회를 향해 환자들의 순례단이 출발한다. 출발에 즈음하여 순례단은 오사카 시민들에게 유인물을 준비했다.
“교토·오사카의 도회지에서 멀리 떨어진 벽지 미나마타, 일본열도에서 바라보자면 남쪽 끝 한구석에 팽개쳐진, 깊고 깊은 우물 바닥 같은 촌에서 죽은 자들은 물론, 산 자들은 산 채로, 혼백이 떠돌기를 어언 20년. 1970년, 몸에 짊어진 질병도 그렇지만, 그 원인이 ‘짓소’에 의해 은폐되고 있는 동안에 업병이라고 멸시당하고, 전염병이라고 쫓기고 갇히면서 같은 지역사회 속에서 마을 우물물도 긷지 못하고 먹을 것도 살 수 없는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 인륜의 도리를 찾아, 각자의 등에 죽은 자의 영혼을 모시고 정한 옷으로 갈아입고 가슴에는 위패를 끌어안고 온전치 못한 몸을 끌고 올라갑니다.(270쪽)
시민 공동체의 인간성 회복과 자기 구원
미나마타병이 공식 발견된 지 50여 년, 아직도 시라누이바다 밑바닥에는 달랠 길 없는 마음이 가라앉아 있다. 저자는 “미나마타병 환자를 둔 집에서는 환자의 병이 위중하면 위중할수록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되찾아가며 살고 있었다”(56쪽)고 말하며, 기층 민중의 세계, 이름 없는 민초들의 ‘정신의 비경’을 유려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분명히 거꾸로 된 세상이다. 20세기의 종언에 들씌어 있었던 세월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 사람들은 ‘또하나의 이 세상’의 유민(遺民)이었다. 극단의 수난을 겪는 이분들이 손을 뻗어 구원해주고 계신 것은 이쪽일지도 모른다.”(3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