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언니》와 《한티재 하늘》의 작가 권정생 선생이 황폐화 일로에 있는 이 시대의 삶의 밑바닥에 일어나는 변화를 지켜보면서 깊은 슬픔과 분노와 연민의 마음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들.

목차

개정증보판에 부쳐…김종철
책머리에

유랑걸식 끝에 교회 문간방으로
우리들의 하느님
십자가 대신 똥짐을
휴거를 기다렸던 사람들
침묵하는 하느님 앞에서
인간의 삶과 부활의 힘
종교의 어머니
평화를 만드는 사람들
가정 파괴범
물 한 그릇의 양심
사람다운 사람으로
팥빙수 한 그릇과 쌀 한되
태기네 암소 눈물
제 오줌이 대중합니다
슬픈 양파농사
유기농 실천회에 다녀와서
녹색을 찾는 길
편지
세상은 죽기 아니면 살기인가
사랑의 매
쌀 한톨의 사랑
효부상을 안 받겠다던 할머니
영원히 부끄러울 전쟁
꽃을 꽃으로만 볼 수 있는 세상이
서태지와 아이들
쥐주둥이 찧는 날
새소리가 들리던 시골 오솔길의 아이들
아이들이 알몸으로 멱감던 시절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슬픔마저도
효선리 농부의 참된 농촌이야기
‘비참한 사람들’의 삶
세상살이의 고통과 자유
죽을 먹어도 함께 살자
분단 50년의 양심
새야 새야
제발 그만 죽이십시오
백성들의 평화
골프장 건설 반대 깃발이 내려지던 날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할 수 있다
아홉살 해방의 기억들


애국자가 없는 세상

동화
용구 삼촌
오두막 할머니
할매하고 손잡고

빌뱅이언덕 밑 오두막에 살면서―권정생 선생 행장…김용락
이 땅 ‘마지막 한 사람’이었던 분…이계삼
권정생 연보

추천의 말

동네 노인들이 알고 있던 것처럼 권정생 선생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병들고 비천한 모습으로 살다 가셨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렸고 명예와 문학권력 같은 것은 아예 꿈도 꾸지 않으셨다. 10여년 전 윤석중 선생이 직접 들고 내려온 문학상과 상금을 우편으로 다시 돌려보냈고, 몇해 전 문화방송에서 ‘느낌표’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책읽기 캠페인에 선정도서로 결정되었을 때도 그걸 거부한 바 있다. 그때 달마다 선정된 책은 많게는 몇백만 부씩 팔려나가는 선풍적인 바람이 불 때였는데 권 선생은 그런 결정 자체를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일로 여기셨다.
권정생 선생이 사시던 집은 다섯 평짜리 흙집이다. 그 집에서 쥐들과 함께 살았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난 뒤 찾아간 집 댓돌에는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나는 그 고무신을 보고 울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신발과 옷을 생각하며 부끄러웠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신을 사들이고 다시 구석에 쌓아두면서 더 큰 신장으로 바꿀 일을 생각하는 우리의 욕망, 우리는 앞으로도 내 욕망의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다니는 삶을 살 것임을 생각하며 민망했다.
―도종환(시인)

그는 탐욕과 죽음의 공포로 가득한 이 세상의 전복을 꿈꿨다. 이 세상의 한구석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전체에 대한 반역을 꿈꿨다. 욕망의 체계인 자본주의 한가운데에서 그는 무욕, 절제, 가난을 무기로 정면 대결했다. 사람들이《우리들의 하느님》을 어떻게 읽고 있는지 모르지만, 이 책에는 “함께 일해 함께 사는 세상이 사회주의라면 올바른 사회주의는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동문학가는 이 사회에서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잘못이다. 버림받고, 병들고 가난한 자가 세상과 잘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기만이다. 그는 매우 위험하고 불온한 사상가였고, 반역자였으며, 혁명이 사라진 시대의 혁명가였다. ‘위대한 부정의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왜 그의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닌 평화를 느끼게 할까. 그에게 소멸은 무엇이기에 슬프기보다 아름다워 보일까. 한 줌의 흙, 한 포기 풀과 같이 살았기 때문일까. 그는 “싸움이라는 삶이 끝났을 때라야 평화라는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지지배배 짖던 작은 새가 숲속으로 날아가듯 그는 그렇게 가버렸다. 가장 치열하게 싸운 전사에게만 돌아가는 휴식이다.
―이대근(〈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

권정생, 그는 생전에 동화와 소설, 시와 수필 등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써서 발표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존경해왔고 앞으로 그를 그리워하게 될 사람들에게 그의 이러한 문필업적들은 오래도록 위로와 용기를, 또 가르침과 깨달음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글은, 어느 것이나 절실한 울림을 뿜어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 비할 바 없는 삶, 거의 성자(聖者)의 후광에 둘러싸인 듯한 그의 흉내 낼 수 없는 삶에 비하면 빙산(氷山)의 드러난 부분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제 그가 이 세속의 삶을 마감하였고, 오늘 우리는 그를 보내기 위하여 여기 모였습니다. 그의 이름 권정생, 이제 그 이름은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슬픔과 두려움을 간직한 사람들에게, 지상의 평화와 통일을 간구하는 사람들에게, 강자들의 폭력과 파괴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아니 사람들뿐 아니라 벌레와 새와 쥐와 개구리, 세상의 모든 약자들에게 진실한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존재를 가리키는 영원한 기호로 되었습니다.
―염무웅 선생(문학평론가)의 조사(弔辭) 중에서

저자 소개

권정생(權正生, 1937-2007)
1937년 일본 도쿄 혼마치에서 출생. 1946년 귀국. 생활고로 가족이 흩어져 지냈고, 어려서부터 나무장수와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가게 점원 등으로 힘겹게 생활. 1955년 결핵을 앓기 시작하여 이후 평생 병고를 겪게 됨. 1967년 경상북도 안동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그 마을의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1969년 동화 〈강아지 똥〉으로 월간 《기독교교육》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로서의 삶을 시작.
저서로 동화 《강아지 똥》, 《사과나무밭 달님》, 《하느님의 눈물》, 《몽실언니》, 《점득이네》, 《밥데기 죽데기》,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한티재하늘》,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무명저고리와 엄마》,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 《깜둥바가지 아줌마》 등과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 수필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 등이 있다.

본문 중에서

[‘개정증보판에 부쳐’ 중에서]
권정생 선생이 돌아가신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러나, 지금 1주기를 맞으면서 나는 선생님이 더이상 우리들 곁에 계시지 않는 것이 새삼 말할 수 없이 허전하다. 물론 선생님이 많은 글을 남겨놓았다는 게 우리들에게 위안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더는 저 조탑리의 작고 어두운 골방으로부터 나오는 유례없이 부드럽고 간곡한, 그러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무서운 목소리를 듣는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이제 우리에게 선생님은 어쩔 수 없이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는 유감스러운 것이다.
이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녹색평론》편집실에서 우리들이 생각해낸 것이 이 책, 즉 선생님의 산문집《우리들의 하느님》의 개정증보판이다.
이번에 개정증보판을 내면서 우리는 선생님의 글 가운데서 책으로 묶여지지 않은 산문을 더 찾아보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다만《우리들의 하느님》이 나온 후에《녹색평론》에 발표되었던 선생님의 글 몇편과 작년《녹색평론》의 권정생 추모특집에 실렸던 두 편의 글을 추가하여 증보판을 찍기로 하였다.
권정생은 뛰어난 아동문학가임에 틀림없지만, 단순히 아동문학가라고 해서는 그 본질을 드러낼 수 없는 문인이자, 사상가이다.
그는 권력 있는 자들과 그들의 세계에 대하여 거의 본능적인 위화감(違和感)을 느끼고 있었고, 그런 감정을 별로 숨기지 않았다. 그 대신 이 세상의 약자들―사람과 사람 아닌 것을 포함한―에 대한 그의 본능적인 연민 혹은 사랑은 측량할 수 없이 깊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 자신의 철저한 밑바닥 체험과 평생에 걸친 병고(病苦)와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다. 혹은 그의 기독교 신앙과도 관계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권정생은 이른바 교인다운 티를 조금도 내지 않았다. 그는 여하한 권력욕망도, 권력의 그림자와도 인연이 없는 철저히 소박한, 꾸밈없는 촌사람이었다. 그는 ‘산상수훈(山上垂訓)’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믿은 기독교인이었다. 그가 자본주의 근대문명과 근원적으로 화합할 수 없는 ‘비근대인’으로서의 일관된 삶을 살아간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오늘날 이 나라의 독서계에서 권정생은 계속해서 읽히고,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권정생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가 과연 얼마나 상투적인 수준을 벗어나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아마도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에 대한 성숙한 이해와 연구는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