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동이를 긷기 위해 수킬로미터를 오가야 했던 소녀 왕가리 마타이는 성장한 후 그린벨트운동을 시작했다. 자신과 같은 어린 시절을 겪은 케냐 여성들과 함께 토종 묘목을 기르고, 그것을 심었다. 숲을 조성하면 지하수가 풍부해지고, 식수를 쉽게 얻어 생활이 개선될 뿐 아니라 소녀들은 물 긷는 시간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갖은 정치적 박해에도 불구하고 케냐 여성들은 나무 4,500만 그루를 심었고, 그들의 그린벨트운동은 우리나라에까지 접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태 보전과 환경 유지를 위한 그린벨트는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그린벨트를 보호하기 위한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이하 개발제한구역특별법)은 강제성과 처벌이 매우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가? 그렇지 못하다.
이 법조차 개발자들의 욕망과 뇌물과 행정 왜곡보다 강력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산황산의 골프장 개발이 그 예다.
5년마다 경기도가 실시하는 〈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 수요조사〉는 개발제한구역 특별법 제12조 1항 가목과 그 시행령을 기반으로 한다. 심각하게 훼손된 그린벨트에 ‘녹지 보전이 가능한 사업’을 입안토록 하는 조사다.
2011년 산황산 골프장 입안 당시 최성 고양시장은 입지 타당성과 민원 발생 가능성을 조작하여 경기도에 제출했고 골프장 개발을 결정했다. 결정 과정에서 행정 위반, 공무원 뇌물 수수, 사업자 부도와 법인 말소로 인한 사업 제척, 심각한 마을주민 피해, 골프장 부지로부터 200m 이내 인접한 곳에 고양정수장이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 것을 인지하고도 후임 이재준 시장 역시 골프장 개발을 취소하지 않았다.
급기야 2025년 6월 17일에는 현직인 이동환 고양시장이 토지주 편법 확보, 국토교통부의 산황산 골프장 공공성 불인정, 재정 확보 허위 자료 제출에도 불구하고 골프장 실시계획인가를 승인했다.
법과 주민 피해가 엄존해도 재량권을 이탈하는 행정 관리자의 결정을 막기 어려운 것이다.
“아, 이렇게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행동이 있을까”
지상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산황산 자락에는 수령 690년인 느티나무가 서 있다. 가을마다 마을주민들과 고양환경운동연합이 고천제를 지내는 곳이다.
2025년 11월 8일 오전 10시에는 고천제에 앞서 새로운 생태실천을 준비했다. 오랫동안 에코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행동한 여성환경연대와 산황산을 지켜온 고양환경운동연합이 주관한 생태민주주의 선언 〈벨 데모크라시(Bell Democracy) ‘울림’〉이다.
‘울림’이 진행될 산에는 색이 고운 조각보들이 걸렸다. 산황산에 살고 있는 생명공동체를 상징하는 조각보들이었다. 참나무와 밤나무 잎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노랑과 갈색 빛깔들 사이 어디에서 고라니, 너구리, 두더지, 솔부엉이, 박새, 어치 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그들 속에 사람이 천지간의 한 생명으로 섞여드는 날이었다.
안내 테이블에서 나누어 준 흰 주머니에는 작은 종과 한 생물의 말을 적은 카드가 담겼다. 주머니를 열고 내가 누구를 대신해 말할지 확인하거나 예쁜 종을 흔들어보는 참여자들 표정에 호기심이 어렸다.
산황산은 낮지만 의외로 숲이 깊은 산이다. 나무가 무성한 만큼 낙엽이 푹신하게 쌓인 길로 광목을 길게 펼쳐 들고 올라 산길에 선 시각은 10시 30분.
여성환경연대 이안소영 대표의 선언과 종소리로 ‘울림’이 시작되었다.
양지꽃 햇빛 한 줌이면 충분하다. 나는 희망의 최소 단위다.
새매 나는 하늘에 곡선을 그린다. 균형을 잃은 세상에서도 나는 중심을 안다!
너구리 새끼들을 데리고 걸으면 절벽 아래 골프장이 있다. 이 숲까지 골프장이 되면 우린 어디로 갈까. 이 도시의 가장자리에 우리의 집을 남겨다오!
달팽이 나는 느림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나는 시간의 반대편에서 산다. 나는 연약함의 용기를 안다.
두꺼비 들판에 알을 낳고 산으로 간다. 느림 속 굳건함으로 나만의 속도를 지킨다. 나는 땅의 주인이며 엄격한 보폭이다!
각시붓꽃 나는 언어가 되기 전의 시, 보랏빛 눈매로 피어난 문장이다.
진정을 다해 54종 생명들의 목소리가 되었던 ‘울림’은 ‘칩코행동’(벌목에 맞서 나무를 끌어안는 비폭력 저항방식―편집자 주)으로 이어졌다. 나 역시 대기, 토양, 생명체들이 서로 생명조건을 나누고 조절해가는 ‘돌봄공동체 지구’의 일원일 뿐이라고 나무에게 고백하는 시간이었다.
과도하게 착취당하는 어머니 대지에게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는 시간이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산황산 지키기에 참여했고, 시의원이 된 후로도 6년간 변함없이 연대해온 김해련 의원은 ‘울림’과 ‘칩코행동’에 대한 단상을 SNS(소셜미디어)에 썼다.
산황산의 나무, 새, 꽃, 청솔모 등 자연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는 벨 데모크라시 행동(아, 이렇게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운동이 있을까요), 나무를 안아주는 칩코행동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솔부엉이 소리를 대신 전했는데요, 이 간절함이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어린 두 자녀와 함께 참여한 신정현 님은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산길에서 나무를 안으며 아이들과 나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산을 없애고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이 있대.
그럼 나무들은 어디로 가?
그는 대답 대신 아이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며 언젠가 아이들이 다시 이 산에 올라 이 나무를 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산이 누군가에게는 ‘개발의 땅’일지 모르지만, 이곳에 머문 우리에게는 숨 쉬는 생명의 집이었습니다. 새로이(아들)가 들춘 돌멩이 아래서 곤충이 꿈틀거리고, 빛나라(딸)의 웃음이 바람에 실려 나무들 사이로 흘러갔습니다.”
‘울림’을 처음부터 함께 의논했던 나희덕 시인(여성환경연대 공동대표)은 “오늘 우리가 한 행동들이 바로 시(詩)라고 생각됩니다”라는 인사말을 했다.
인류가 잃은 생명력을 회복하기 위한 여성들의 연대
산업화 이후 인류는 현대문명의 막대한 산물들을 얻었고, 대지를 어머니라 불렀던 기억을 잃었다. 우리에게 착취당한 어머니 대지가 회복탄력성을 잃어도 도시를 확장하고 산림, 갯벌, 습지 개발로 생태 네트워크를 파괴하는 사회가 고통스럽다.
산길행동 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들은 ‘자연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여성들의 연대’를 대표해 선언문을 낭독했다.
2025년 11월 8일 오전 10시, 산황동 417번지에 우리는 모였다.
청량한 산소를 내쉬는 나무들 사이에서
생명의 종을 울리기 위해.
경종이며, 다시 시작하자는 초대의 울림이다.우리는 나무와 새, 흙과 비와 바람의 이름으로
이 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부른다.
민주주의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
지상의 모든 존재에게 참여할 권리가 있음을 알린다.
생존 네트워크의 형제자매인 숲 생명들.
우리는 그들의 권리를 대신해
종을 들었다.
오늘의 종소리는
한 그루 나무, 한 마리 새, 한 송이 꽃, 한 조각 차돌의 소리다.개발이라는 미명, 경제라는 사탕발림으로 생태민주주의의 목에
도끼를 대는 자들이여, 함께 살아가자.
‘벨 데모크라시’는
폭력이 아닌 울림으로,
침묵이 아닌 공명으로,
학살 방조가 아닌 생명 껴안기로,
파괴가 아닌 회복으로 세상을 움직일 것이다.―벨 데모크라시 선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