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가을의 풍요
언제부터인가 가을은 두려움의 계절로 되어버렸다. 농촌은 더욱 그렇다. 가을의 신명 나는 풍년가는 이미 박물관에 갇혀져버린 지 오래고, 봄과 여름의 고단함을 위로해주던 가을은 한국 농촌에서 사라져버렸다. “내년에도 농사짓자”는 외침이 가을의 절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절규의 한가운데에서 농민 백남기는 떠났지만, 살아남은 농민들은 ‘우리가 백남기’라며 그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보성에서 농사짓던 농민 백남기가 작년 11월 서울에 올라간 것은 끝 모르고 추락하는 쌀값으로 표상되는 농촌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백남기 농민이 317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이에 쌀값은 더 폭락했다.
정부의 쌀값 포기 정책은 살농(殺農) 그 자체이다. 1992년 대통령 후보로 나선 김영삼은 선거유세에서 쌀 시장 개방을 대통령직을 걸고서라도 막겠다고 발표했지만, 당선되자마자 이를 번복했다. 쌀 관세화를 유예했지만, 국내 쌀 소비량의 1%에서 출발하여 매년 0.25%씩 수입량을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쌀 관세화에 따른 부담은 덜 수 있었지만, 예견된 쌀 관세화를 대비한 정책은 지지부진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북에 대한 쌀 지원도 막혀버린 상황에서 쌀값 폭락은 불을 보듯 명확한 것이었다. 2010년 12월에 정부는 ‘쌀산업 발전 5개년 계획’ 초안을 발표하면서, 쌀의 수급제도 개선, 농가소득 안정, 유통체계 개선 등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쌀값의 변동에 영향을 받는 변동직불금을 소득안정형 직불금으로 전환하고, 자동시장격리제를 시행하고, 쌀 자조금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 등이었지만, 소득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수준의 직불금 제도는 실행하지 않고, 수확된 쌀의 일부가 시장에서 유통되지 않도록 하여 가격 수준을 유지시켜주는 시장격리 제도도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다.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는 17만원 하는 쌀값을 21만원으로 올리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2015년부터 쌀 관세화를 실행에 옮겼을 뿐 쌀값 폭락에 대비한 정책은 전무했다. 통일대박론을 주장했던 박근혜 정부하에서 쌀 대북지원 봉쇄는 그대로 유지한 채 의무수입 물량과 관세수입 물량이 더해지면서 오늘의 사태에 이르게 되었다.
상상을 초월한 쌀값 폭락
최근 몇년 사이 쌀값 폭락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3년 전인 2013년만 하더라도 17만 7,000여 원이었던 산지 쌀값(9월 기준, 정곡 80kg)은 작년에는 15만 9,000여 원으로 16만원대 아래로 내려앉았고, 결국 2016년에는 13만원대로 추락했다. 3년 사이에 쌀값이 25%나 낮아졌다. 이것도 농가 수취가격으로 따지면 9만 5,000원선에 불과하다는 것이 현장의 농민들의 이야기다. 정부는 18만 8,000원을 목표가격으로 해서 산지가격과의 차이를 85% 보전한다고 하고 있지만, 정부가 발표하는 가격과 실제로 농가가 수취하는 가격 사이에 4만원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실제로 보전되는 액수는 85%가 아닌 70% 정도에 불과하다.
추락하는 쌀값 때문에 농업생산액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40%에서 2005년 24%로, 2015년에는 16%로 주저앉았고, 농업총수입에서 쌀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 48%에서 2005년 27%, 2015년에는 19%로 낮아졌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쌀은 농가에 핵심 작물이다. 총농가 중에서 쌀농사를 짓는 농가는 전체 농가의 58%(2015년 기준)로, 1990년 56%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쌀값이 폭락하는 중에 쌀 생산 농가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마땅한 대체작물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쌀 대신 콩 재배를 장려했지만, 콩 가격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 보니 농민들의 선택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이 2015년에 발생하기도 했다.
농민이 빠진 대책들
이런 상황을 빌미로 일각에서는 농업진흥지역의 농지를 쉽게 전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대책 아닌 대책을 내놓고 있다. 곡물자급률이 24%에도 미치지 못하는 형편에 할 이야기는 분명 아님에도 불구하고 농지축소안, 농업축소안을 들고 나오고 있다. 쌀 개방을 결정한 김영삼 정부나 이후의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도 농업을 살리기 위한 정책이라며 대책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니다. 쌀시장을 개방했던 김영삼 정부는 ‘돌아오는 농어촌’을 구호로 내걸고 42조 원을 농업에 쏟아부었다고 하지만, 농업·농촌을 살리기는커녕, 농민들을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김대중 정부도 농정목표를 주곡의 안정적 공급과 농업의 공익적 기능 확충으로 설정하고, 농민의 소득을 타 산업 종사자와 대등한 수준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45조 원을 투자하는 정책을 수립하였지만, 식량자급률은 계속 추락했고 농가의 소득도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04년에는 쌀 관세화를 10년간 더 유예하면서 의무수입 물량은 계속 늘리기로 결정한 노무현 정부가 당시에 향후 10년(2004~2013) 동안 119조 원을 투입하는 ‘농업·농촌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규모화 중심, 설비 중심의 정책 위주로 되어, 풀어 놓은 돈이 농민의 주머니보다는 토건업체와 설비업체 등의 배를 채워줬다.
정부 예산의 많은 부분은 대규모 시설 자금으로 투입되어 거꾸로 농민들 간의 경쟁을 심화시키고, 농촌 내부의 결속력을 와해시키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보조금에 목을 매는 이른바 ‘다방농민’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농촌 내부에서 나오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러면서 농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대자본의 농업 진출 길을 열어주는 불쏘시개 역할이나 하고, 먹거리의 안전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농업의 융복합화’에 뒤이어 나오는 ‘식물공장’이 그렇고, ‘스마트팜’이 그렇고, 유전자조작(GM)벼 상용화 시도에 이어서 국민의 알권리보다는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정책이 그렇다. 지금 GMO 표시 대상이 아닌 식품에 ‘non―GMO’라고 표시하면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나마 GMO를 상용으로 재배하고 있지 않은 이 나라 농업의 강점마저도 없어질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GM농산물이나 제초제를 사용한 농산물이더라도 인증을 받을 수 있는 GAP(농산물우수관리)인증 농산물이 마치 친환경농산물보다 생태적인 것처럼, 보다 안전한 것처럼 종편(종합편성채널)의 광고에 등장하고 있다.
유기농업의 위기
그나마 쌀 개방 등과 맞물려서 진행되었던 정부의 친환경농업 육성정책은 위기의 한국 농업에 대한 대안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1994년에 유기농업생산자 단체와 소비자단체가 ‘환경보전형 농업 생산·소비단체협의회’를 구성한 이후, 1998년 친환경농업육성법이 시행되면서 친환경농업이 양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살충제와 제초제, 화학비료로부터 우리의 생태계를 지키고, 먹거리를 지키고자 오랜 기간 동안 노력해온 유기농 실천 농가들에 더해서 많은 관행 농가들이 친환경농업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꾸준히 전개되어온 친환경농업정책은 나름 성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친환경농업 육성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유기농 투입재인 토양개량제와 작물보호제 등 외부에서 조달되는 유기농자재에 의존하는 시스템이 고착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제3자에 의한 인증 자체에 치중하다 보니 정부의 〈목록공시〉에 등록된 고가의 자재를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더욱이 정부는 친환경농업 육성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산업적 농업’에 적용되는 생산력주의와 경쟁력주의에 입각하여 양적 지표의 성장에만 몰두했고, 정부의 친환경농업 관련 예산도 친환경 농자재 지원에 집중되었다. 농업생산의 물적 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유기적 시스템’의 구축이라는 과정에 대한 고민보다는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결과만이 중시되는 전혀 유기적이지 못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정부의 정책이 인증에 중심을 두고, 농자재지원에 예산이 집중되다 보니 부지불식간에 유기농업이, ‘유기농자재를 활용한 농업’으로 정착되어버렸다. 이처럼 정부의 정책이 친환경농업 생산농가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친환경 농자재 지원 중심의 친환경농업정책이 되어버렸다. 투입되는 농자재가 화학비료에서 유기질 비료로 바뀌었을 뿐이고, 친환경 살충제라는 이름의 외부 농자재가 농약의 자리를 대신했을 뿐이다. 그리고 정책의 중심이었던 ‘인증’이라는 것도 어떤 농자재를 사용해서 재배했느냐에 중심이 두어졌을 뿐, 과정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유기농업 등의 가치에 대한 공유가 부족했기에 그 방식은 과거의 녹색혁명을 강제하던 1970년대식 새마을운동과 별반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이를 반영해서인지 최근에는 친환경 영농을 실천하고 있는 농가의 수도 급감하고 있다(인증 기준). 물론 저농약인증 폐지가 영향을 미치기는 했지만, 2009년 20만에 호에 달하던 농가(저농약 농가: 12만 6,000여 농가)가 2015년에는 6만 7000여 농가(저농약 농가: 7,600농가)로 급감했다. 유기·무농약 농가가 2009년 7만 3,000여 호에서 6만여 호로 크게 감소하여 친환경농업의 절대적인 퇴보가 진행되었다. 유기만 보면 2012년 약 1만 7,000호로 정점을 기록한 지 3년 만에 3의 1에 가까운 5,000호 이상이 유기를 포기했고, 같은 기간 동안 무농약 농가도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저농약의 경우에는 무농약으로 상향 전환되지 못하고 관행으로 가버렸다. 이 사이에 친환경농업직불 지원액은 345억원에서 169억원으로 반 토막이 났고, 지원 농가의 수는 3분의 1로 축소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의 쌀값 폭락은 일반 농가뿐만 아니라 무농약 또는 유기 재배하는 쌀 농가에게도 직격탄이 되어버렸다. 유기농업을 실천하면 수확량의 감소와 농업노동의 증가나 경영비의 증가를 감내해야 하지만,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것은 그래도 생태를 유지 ·발전시키면서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인데, 전반적인 쌀값 폭락의 영향으로 유기재배 쌀의 소비도 감소되면서, 무농약재배 쌀을 일반 쌀로 판매하는 상황까지 나오고 있다. 땅을 실려내기 위해서 노력해온 결과치고는 참으로 암담한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정책이 농자재 지원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관계시장’의 창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
도농상생의 ‘관계’시장 창출
관행농과 유기농을 불문하고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농가의 어려움이 그 어느 때보다 큰 상황에서 무언가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면목이 없지만, 그래도 그 어려움이 더 클 수밖에 없는 중소 가족농에게 무언가 힘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진지한 고민을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하고 있다는 것은 그나마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위안이 아닌가 싶다. 서울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믿을 수 있는 밥상을 제공하기 위한 친환경무상급식을 가장 앞장서서 실천한 광역지자체이지만, 최근에는 중소 가족농에게도 식재료의 공급으로 인한 실질적인 혜택이 전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먹거리 관리에 있어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어린이집이나 지역아동센터, 복지시설 등에 공적인 조달체계를 통해서 안전한 식재료를 공급하겠다는 일련의 마스터플랜을 만들고 있다. 그동안 서울시는 지역상생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직거래장터 등을 운영해왔지만, 이를 넘어서서 상시적인 관계시장을 만들기 위한 고민을 정책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다소 생소한 용어라고 할 수 있는 ‘먹거리 기본권’(먹거리 정의)의 실현을, 도농상생의 먹거리체계 구축을 통해서 달성하려는 것이다.
도농상생에 방점이 찍어지는 이유는 안전한 먹거리의 안정적인 조달이라는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조달의 과정을 통해서 관행 유통체계가 낳은 폐해의 더 큰 피해자인 중소 가족농에게 직접적인 혜택이 전달될 수 있는 방안의 마련을 깊게 고민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시민들이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안전한 먹거리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면서, 서울시민의 먹거리를 책임질 중소 가족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창출에도 기여하기 위한 먹거리체계를 만들자는 것이 근본 취지이다.
지금까지 도농복합시에서 지역 먹거리체계의 구축을 위한 작업이 완주나 전주, 원주 등지에서 지자체나 시민사회단체가 중심이 되어 전개되어왔지만, 서울과 같은 거대 소비지에서 시민들이 단순한 포식자(eater)가 아니라 공동생산자(co―producer)라는 인식을 갖고 우선 공적 영역에서라도 먼저 중소 가족농이 중심이 된 생산자 조직들과 직접적인 관계망을 통해서 먹거리가 전달되어지는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외국의 경우 도시 내에서의 공공급식 조달체계에 대한 고민들은 많이 있어왔지만 고민은 거기에 멈췄었다. 공공급식에서 사용되는 식재료를 공급할 산지의 생산자 조직과의 연계를, 더구나 중소 가족농을 중심에 놓고, 산지의 기초자체단체나 광역지자체들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실현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도농상생의 실현을 먹거리를 매개로 달성하고, 그 속에서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는, 암담한 농업과 먹거리 현실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관계시장 창출의 원천
서울시의 시도는 무엇보다 산지에서 중소 가족농의 조직화를 바탕으로 지역먹거리체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그간의 노력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고, 또한 그러한 노력들의 결과물이 이러한 시도의 원천으로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역농산물을 학교급식 식재료로 사용하기 위한 과정에서 기존의 유통조직과의 싸움도 있었고, 위탁 급식의 안전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직영 급식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들이 있었기에 서울시의 꿈도 가능했다. 소량이라고 해서 남아도는 농산물의 판로를 확보하지 못했던 농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출하할 수 있는 농민장터나 로컬푸드 직매장이 활성화되면서 개별적으로 분산되어 있던 농민들이 서로 협동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기에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을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별로 큰돈이 되는 것도 아닌 꾸러미사업이지만, 이를 통해서 농민의 마음을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이 사업을 통해서 농촌 마을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언니네텃밭’과 같은 운동이 현재의 관계시장의 희망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완주, 김포에서 시작해서 전국으로 확산된 로컬푸드 직매장을 통한 농가의 조직화도 이를 가능하게 했다.
2012년 3개에 불과했던 로컬푸드 직매장은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126개에 이른다. 로컬푸드 직매장에 참여하고 있는 농가 수도 2012년 1,745가구에서 지난 6월 현재 1만 8,694가구로 11배나 늘어났다. 로컬푸드 직매장의 총매출액은 2012년 62억 원에서 지난해는 1,659억 원으로 불과 3년 만에 27배가 증가했다. 물론 이런 양적인 성장이 생산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 ‘얼굴을 볼 수 있는 관계’를 만듦으로써 그간 거대자본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멀리 벌어진‘농’과 ‘식’ 사이의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사회적·심리적 거리를 줄이자는 로컬푸드운동의 가치를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농협 ‘하나로마트’ 한편에 초라한 매대 하나 설치해놓고 로컬푸드 직매장이라고 하는 곳도 있고, 중소 가족농의 조직화에는 전혀 관심 없이 기존의 계통출하 물량을 돌려놓고서는 로컬푸드 직매장이라고 하는 곳도 있지만, 최근의 통계자료를 보면 로컬푸드운동의 활성화가 중소 가족농의 참여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10년에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한 비율은 20%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2015년에는 22.9%에 이르고, 특히 전체 농가의 69%에 이르는 1.0ha 미만 규모의 농가에서 그 참여 비율이 크게 증가하였다. 또한 연간 판매 금액이 500만원 이하인 농가(전체 농가의 53.8%, 판매 없음 제외)의 직접판매 비율은 같은 기간 동안 56.7%에서 69.5%로 크게 늘었다. 관계시장의 창출로 인해서 중소 가족농의 판로가 다양해졌고, 이는 생산 농민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농업직불제가 필요한 이유
로컬푸드의 활성화를 통해서 농가의 농산물 판로를 다양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내년에도 농사짓자”는 농민들의 외침을 끝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농가경제의 안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정부가 말하는 ‘억대 농부’는 언감생심이고,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내년에도 농사짓자”는 절박함이다. 신문에 나오는 억대 농부도 농산물 판매 수입이 그렇다는 것이지 농업소득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농가가 처분할 수 있는 소득은 기껏해야 수천만 원에 불과하다. 빛 좋은 개살구가 대부분이다.
소비자의 식탁에 올라올 자신의 농산물을 생각하고, 자신이 경작하는 살아 있는 땅을 생각할 때 떳떳한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농민들이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시장이라는 속박에 억눌려서 편하게 농사짓지 못하는 농민들이 굴레에서 벗어나 편하게 농사지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가을의 들녘을 희망으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곡물자급률이 24%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농민들이 다양한 곡물 농사를 짓도록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해답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제시한 농정 공약 제1호인 직불금의 확대를 통해서 가능하다. 곡물자급률 27%(2012년 기준)인 일본만 하더라도 농업예산에서 직접지불 비중이 절반이 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13%는 우회적인 살농정책이다.
현재의 보조금 제도는 농민을 우선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은 농촌 지자체들의 ‘억대 농부 만들기’ 프로젝트에서도 확인된다. 농민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자부담을 떠안는 것을 전제로 보조사업비가 나온다. 농민 스스로가 지을 때면 400만원 정도에 지을 수 있는 3평짜리 저온저장고는 정부지원사업이 되면서 700만원짜리 공사가 되고, 농민의 자부담은 350만원이 된다. 농민의 입장에서 50만원을 절약할 수 있지만, 거꾸로 계산해서 정부가 350만원을 부담하고 농민이 50만원만 부담하면 가능한 시스템은 아니다. 전체 농업예산에서 농민에게 지원하는 예산은 약 38%인데, 이 중 농민에게 직접 지급되는 것은 13%에도 미치지 못하고, 이것의 배 이상이 사업예산으로 되어 있다.
농민에게 직접 지불되는 보조금이라고 해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 규모가 큰 6개의 직불금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150만 명의 직불금 수령자 중 상위 9.6%의 농가는 호당 평균 350만원의 직불금을 수령한 반면, 하위 75.8%의 농가는 호당 평균 28만원을 받아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이다. 직불금 액수가 재배 면적에 비례해 지급되다 보니 농가소득의 안정적 확보를 통한 농업의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농업 관련 예산의 50% 정도라도 농가에 지불한다면 산술적으로는 연간 800만원 이상을 농가에 지불할 수 있다. 농업 관련 예산의 25%만이라도 직접 지불한다면 400만원이 가능하다. 그리고 농민들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서 이를 사용토록 한다면 농가소득의 안정은 물론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맑스는 “소농이 지배적인 국가에서 농산물 가격이 낮은 것은 빈곤의 결과”라면서, 이 빈곤으로 인해서 농업의 합리적인 발전은 어렵게 된다고 했다. 빈곤하기 때문에 생계비가 적게 들고, 낮은 생계비 수준 때문에 낮은 농산물 가격에도 생산이 가능하다는 역설적인 상황, 즉 농민들의 자기착취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것이, 1990년대 초반부터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도입한 직접지불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가격지지 정책보다 직접지불제를 택하게 된 배경에는, 안정적인 소득의 확보를 통해서 농업의 가치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크게 작용했다. 농업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바탕이 될 때 농민도 책임감을 갖고 농업의 생태적 가치, 사회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는 농사를 지을 수가 있는 것이다. 최근 유럽에서 경작 규모에 따른 직접지불제를 농가에 대한 직접지불제로 전환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직접지불제는 농가에 대한 기본소득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의 어른들은 겨울채비를 하실 때, 첫째가 쌀이었고, 둘째가 김장이었고, 셋째가 연탄(장작)이었다. 그 옛날 쌀을 준비했던 어른들의 마음은 쌀값 폭락에도 쌀농사를 짓는 지금의 농민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쌀값 폭락을 예견하면서도 쌀농사라도 짓지 않으면 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는 농민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정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