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방대한 실증적 자료를 근거로 지난 200년 동안 세습된 부의 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상회하여 불평등이 갈수록 극대화되어왔다는 사실을 밝혀내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그것이 봉건사회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치를 걸고 시민혁명을 통해 성립된 근대 국민국가 민주정부들이 세계의 표준이 된 시대에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이다. 요컨대 이른바 민주주의국가들이 민중을 대변하지도, 민중의 삶을 보호하지도 못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이율배반적인 결함을 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현대세계의 우리 대부분이 민주주의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오인하고 있는 선거대의제는, 민주적 정부가 아니라 과두정과 관료체제를 확립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저자 이보 모슬리는 《민중의 이름으로》에서 중세 유럽 의회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정치적) 대의제의 연원을 살피고, 19~20세기에 걸쳐서 유럽과 미국에서 ‘민중의 이름으로’ 출현한 대의정부가 오히려 민중의 이해와 정반대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구축해온 과정을 추적한 뒤, 공동체의 합리적이고 공정한 의사결정의 예술이 되어야 할 정치가 한갓 나라의 돈과 호의를 차지하기 위해 파벌로 나뉘어 싸우는 전쟁터가 되어 있는 현실을 냉철하게 점검한다. 그리고 경제·정치 영역을 아우르는 급진적 대안의 노선을 제시하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오늘날의 ‘민주주의’ 는 정말로 민주주의인가
제2장 ‘대의민주주의’ 라는 환상을 구축하기
제3장 영국에서의 대의정부
제4장 부채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나
제5장 세계로 수출된 대의정부
제6장 현대의 과두제─기업과 정부
제7장 민주주의와 좋은 정부
역자후기
참고문헌
색인
추천의 말
‘대의민주주의’는 근대의 신화이다
세계가치설문조사(WVS)에 따르면,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한국인이 뚜렷하게 늘어나고 있다. 1998년에는 그 수가 전체 인구의 대략 17퍼센트에 불과했으나 2020년 조사에서는 30퍼센트까지 증가했다. 아마도 일차적으로 그것은 IMF 외환위기에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를 경험하면서, 민주주의도 좋지만 우선 먹고사는 문제가 더 급하다는 인식이 일반 시민들 사이에 팽배해진 탓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정치)가 먹고사는 문제와 관계가 없다는 오해가 만연해 있다는 사실도 우려스럽지만, 공동체가 삶을 영위하는 원리로서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한 신념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현상이다.
더욱이 이것은 비단 한국사회에 국한된 사정도 아니다. 갈수록 악화하고 있는 생태적·사회적 위기 속에서 권위적 정권이나 포퓰리즘 정치가 지구촌 곳곳에서 득세하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민주주의는 시효를 다한 원리인 것일까? 실제로 민주주의국가를 표방하는 국민국가체제가 주류가 되어온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에서 불평등은 극대화되었고 정치권력은 소수 엘리트 집단의 손에 세습되고 있고, 인류의 미래를 송두리째 위험에 빠뜨리고도 그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성장과 소비주의 문화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라는 것은 공동체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통해서 좋은 사회를 가져오는 데 쓸모없는 도구가 아닌가?
확실히 현재의 지배적인 정치·경제 틀로 인류사회가 맞닥뜨린 전례 없는 실존적 위기를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그 탓을 민주주의로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망가뜨린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면을 쓴 과두체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른바 민주주의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선거대의제가 실제로 가져온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민주주의를 약속했지만 도리어 거대한 관료체제와, 초부유층에게 완전히 의존적이 되어버린 민중을 낳지 않았는가. 인구규모가 크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대세계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방편은 대의제밖에 없고, 그리고 선거대의제는 민주주의(좋은 정부)를 실현한다는 우리의 통념은 근대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책은 논증하고 있다.
부채가 세계를 지배할 때, 사회적·생태적 지속가능성은 위협을 받는다
이 책의 전반부가 대의제가 현대사회에 유일하게 가능한 민주주의라는 뿌리 깊은 신화를 걷어내기 위해서 그것의 부조리함과 기원을 밝혀내는 작업에 바쳐져 있다면, 중·후반부는 참다운 민주주의가 성립하기 위한 근본적 토대, 즉 민중이 주체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자립과 자치의 조건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 책이 민주주의를 논하고 있는 일반적 문헌과 다르게 독특한 지위를 갖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책 4장은 시민혁명에 성공하여 정치적 권력을 손에 넣게 된 중산계급이 근대적 은행제도를 구축하여(금융업자들에게 터무니없는 특권과 특혜를 보장함으로써) 바로 그들이 대표한다고 하는 민중의 자립적 생활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과두체제를 확립해온 과정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오늘날 이른바 민주정부(대의정부)들이 하나같이 경제성장에 목매면서 그것이 수반하는 생태적·사회적 대가가 아무리 크고 치명적인 것으로 밝혀져도 방향전환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우리의 경제생활이 부조리한 금융통화제도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두 세기 동안 선거대의제가 표준이 되어온 결과, 오늘날 전 세계는 과장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 금융위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권력은 (민중이 아니라) 각국 정부의 손에 있고, 통치자들은 스스로 이성적이며 진보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전쟁, 오염, 낭비, 환경파괴를 가져왔고, (국민에게) 설명책임이 없고 무책임한 소수 특권층에게 국가의 자산을 넘겨주는 일에 협력해왔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상은 내동댕이쳐졌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비밀리에 설계, 집행되는 시스템에 속박되어 있다. 농장, 주택, 사업체, 일자리, 재산, 생계, 인간의 삶이 거대한 기생충 같은 금권정치의 손아귀로 넘어간 상태”(235~236쪽)라는 것이 저자의 냉철한 현실진단이다. 이 책의 5장과 6장에는 19~20세기에 걸쳐 유럽과 미국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대의정부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지배적인 정체(政體)로 자리를 잡아가면서,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민주적 가치들까지도 훼손된 과정들이 명료하게 서술되어 있다.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그리고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21세기의 지금까지도 건재하고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사례들—스위스 코뮌과 칸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주민총회, 덴마크 크리스티아니아의 합의정치 외에도, 남아메리카 포르투알레그레의 참여예산제, 중국 지방정부의 배심원제(시민의회),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시민의회 등을 소개하면서 민중이 좋은 통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현재 인류사회 및 지구공동체가 맞닥뜨리고 있는 미증유의 위기는 복합적인 것이며, 단일 국민국가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선량한 시민들의 개별적인 각성과 실천이나 기존의 정치·경제 체제 아래에서 (부분적인) 개량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은 헛수고가 될 공산이 크다.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니 근대의 이상―자유와 평등에 더 다가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근본적인 변화를 목표로 삼고 급진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지점에 와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그 길로 첫발을 내딛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본문 중에서
“대의민주주의의 신화는 민중이 교육을 받지 못했던 시절에 안정된 중산계급 정부를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유용한 목적에 봉사했다. 그러나 과거에 어떤 장점을 갖고 있었든 이 신화는 이제 제거되어야 한다. 세계 어디로 눈을 돌려도, 우리는 대의제 정부를 갖고 있는 나라들이 최악의 무분별한 소비주의 충동이나 미디어, 사회공학에 의해 조종되면서, 경제성장과 진보의 이름으로 문화, 인격, 공동체, 자연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거대한 골이 생겨나고 있다. 한편 이 와중에 우리(민중)는 바로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있고, 더욱이 우리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것을 갖게 된다. 우리에게 결정권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신화이다.”(본문 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