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과 나
오늘 아침에 눈이 내렸다. 사람들은 눈이 왔다고 전자 누리집에 따뜻한 글을 올린다. 어떤 이들은 자동차가 골목길을 잘 달릴 수 없어 걱정한다. 또 오늘 하루 막일을 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한다. 나는 동네에서 책방을 하고 있어 책을 사는 사람들이 덜 오리라 생각하고…. 나는 눈이 오거나 비가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찬 겨울에 눈이 오지 않고 비가 내린다면, 뜨거운 여름에 비가 오지 않고 눈이 내린다면 어쩌나. 사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반도는 어느새 봄, 가을은 짧고 여름, 겨울이 길어졌다. 한겨울에 비가 오기도 한다. 다행히 여름에 눈이 온 적은 없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여름에 폭설이 오기도 한다.
나는 오늘 몸살기운이 있다. 몸에서 열이 나고 기침도 간간이 난다. 몸살은 ‘몸을 살린다’에서 나온 말이라고도 한다. 사람도 몸이 아프면 열이 나듯이 지구도 아프면 열이 난다. 지구가 뜨거워졌다. 사람은 몸이 아프면 쉬거나 약을 먹으면 낫는다. 낫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몸살도 자주 나서 괴롭긴 하지만. 그런데 지구가 열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구를 쉬게 하거나 지구에게 약을 먹여야 할까. 지구가 쉰다는 것은 뭘까? 지구에게 약을 준다는 것은? 지구에게 어떤 약을 주어야 하나? 지구는 사람처럼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내 몸이야 내 뜻대로 할 수 있으니 아프면 쉰다. 물론 일을 해야지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은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한다. 그래도 쓰러질 정도로 몸이 아프면 누구나 일을 못한다. 나라가 그런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은 소리 없이 유명을 달리한다. 지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름에 비가 오지 않으면 인공강수기를 써서 비를 내리고 겨울에 눈이 오지 않으면 인공눈을 만들어 내려야 하나? 그런 것들은 근본 치료가 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자연은 더 큰 보복을 한다. 자연은 원래 있는 그대로 되돌리려고 더욱 몸살을 앓는다. 여름에 많은 눈이 내리고 겨울에 물난리가 나는 곳이 더 늘어날 뿐이다. 답은 하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어야 한다. 자연이 제 힘으로 순환하도록 사람들이 못살게 굴지 않는 것―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오늘 격월간 잡지 《녹색평론》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 모였다. 여기 온 사람들은 지구를 살리는 답을 더욱 잘 알고 있으리라. 안다면 왜 하지 못하는 것일까. 오늘 이 자리에 온 사람들 가운데 몇이나 개인 컵을 가지고 왔을까? 나도 갖고 있지 않다. 귀찮으니까 일회용 종이컵을 쓴다. 언제부턴가 장례식장에는 모든 그릇이 일회용이다. 그 자리에서 왜 일회용을 쓰냐고 말을 꺼내는 사람도 드물다. 지구를 살리겠다는 생각에 앞서, 내가 편하면 그만이다.
나는 동네에서 책방을 꾸린 지 25년이 되었다. 책은 점점 안 팔리고 살림은 바닥을 치고 있다. 은행 현금서비스를 받아야 출판사에 대금을 줄 수 있는 처지다. 오늘 녹색평론사에서 이 자리를 만든 것은, 점점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겠다는 뜻도 있지만 녹색평론사에서 내는 책들이 안 팔리는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으리라.
지난해 가을쯤 바깥일을 하고 오다가 라디오방송을 들었다. 책이 안 팔리고 많이 안 찍고 전자책을 만들고 있어 종이 사용량이 줄어들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다. 책을 만드는 종이는 5% 넘게 줄었지만 택배로 물건을 싸는 종이가 훨씬 늘어나서 우리나라 전체 종이 사용량은 10% 가까이 늘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택배는 종이가 아니라 비닐로 싼다고 말할 수 있다. 지구에게 묻고 싶다. 나무를 없애는 종이가 해로운지, 비닐이 더 해로운지. 동네 책방에서 책을 사면 택배로 쓰이는 종이와 비닐은 필요 없다. 이것이 동네 책방을 꾸리는 사람들이 갖는 이기적인 푸념일까. 동네 책방이 살아야 녹색평론사에서 내는 책들도 산다.
은종복(서울 독자, 책방 ‘풀무질’ 일꾼)
————————————————————————–
《녹색평론》은 나에게
저는 충남 홍성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농부입니다. 12년 전,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어 자급하고 조금 남는 것은 팔아 돈을 마련하고, 여유가 생기면 주변도 좀 돌아봐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농촌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어느 순간 저는 농사를 지어 얼마를 벌면 좋을까를 매일 생각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맞게 되었고, 방사능비가 내리는데 땅을 어떻게 살리나, 유기농 농사를 지어서 무엇하나, 사람들에게 내 농산물이 건강한 농산물이라고 어떻게 말하나 망연자실하고 있었을 때, 그 전에는 제목으로만 알고 있던 《녹색평론》을 만나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녹색평론》은 제게 방향을 찾아주는 책입니다. 커다란 지구적 위기 앞에서 그래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하고, 의미 있는 한 걸음을 걷게 하는 소중한 교과서입니다. 《녹색평론》은 제게 시야를 넓혀주는 책입니다. 나에서 우리, 그리고 지구를 보게 하는, 좁은 마음을 넓게 키워주는 스승 같은 책입니다.
《녹색평론》은 그 어떤 문학서적보다 아름다운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가끔 《녹색평론》을 읽다가 눈물이 나곤 합니다.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 책이 한숨과 눈물로 쓰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픈 마음으로 쓴 책, 그 아픔이 내 소망과 만나는 시간, 《녹색평론》을 읽는 시간은 그래서 치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녹색평론》은 혼자 읽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읽을 때 더욱 그 뜻을 깊이 알게 됩니다. 이유는 우리 모두의 문제를 담아 놓은 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위기 가운데서도 전 지구에 기후변화라는 절망적인 그림자가 깊이 드리운 때입니다. 그렇지만 《녹색평론》을 읽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의 몫의 일은 무엇인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며 살고 싶습니다. 이 책을 만들고 이어온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영희(충남 홍성 독자)
* 위의 두 글은 2018년 11월 24일, 서울YWCA 대강당에서 열린 '녹색평론과 함께하는 시간'에서 발표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