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 제국을 해체시킨 인물인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사람들의 아득한 기억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러시아와 세계를 위해서, 민주주의, 에콜로지, 그리고 영성에 대한 꿈을 품고 있는 사람이다.
당신에게 중요한 가치는 어떤 것입니까?
가치에 관해 질문해주셔서 기쁩니다. 20세기는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세기에 속합니다. 숱한 유혈, 지배와 파괴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20세기는 가장 역설적인 세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한편으로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을 낳은 비약적인 지식의 발전을 이루어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바로 이러한 기술의 진보로 말미암은 핵무기 같은 것으로 우리의 생존 자체가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가 붕괴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은 우리가 영원의 가치들로부터 점점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나는 우리에게 어떠한 새로운 가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잊어버린 보편적 가치들을 회복하려는 노력입니다.
청년시절에, 나는 공산주의의 이상에 정말 깊이 빠졌습니다. 한 젊은이가 정의와 평등 같은 것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고, 바로 이러한 것이 공산주의의 목표였으니까요. 그러나 실제로, 끔찍한 공산주의 실험을 통해서 인간의 존엄성이 억압되었습니다. 그 특수한 모델을 사회에 강제적으로 도입하기 위해서 폭력이 사용되었습니다. 공산주의라는 명목으로 우리는 기본적인 인간적 가치들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내가 러시아의 권좌에 올랐을 때, 나는 그러한 가치들, 즉 ‘개방’과 자유를 복구하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모델이 결국 거부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어느날 갑자기 알게 된 것은 아닙니다. 결론을 내리는 데에는 내 생애 전체가 걸렸습니다. 그러나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내가 깨달았을 때, 그리고 나에게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나는 변혁을 시도했습니다. 나의 철학은 상식에 기초한 철학입니다. 상식은 균형과 절제에 대한 감각을 가리킵니다. 예컨대, 자유가 도덕과 결합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방임입니다. 자유라기보다는 이기주의입니다.
생명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설사 진보적이라고 주장되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생명 파괴를 가져온다면, 그러한 방법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나는 21세기는 사람들이 테크놀로지의 노예가 아니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세기가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러시아에서 경제적 자유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을 지지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이 이데올로기적 공백상태를 이용하여, 서구화를 강요하려는 생각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나는 경제적 자유주의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못지않게 취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적 번영은 사회적 결속과 생태적 지속가능성과 함께 가야 합니다. 사회가 파괴되고, 환경이 오염될 때, 돈이 많다는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연대, 사회 지향적 경제,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와 같은 가치는 동등하게 중요합니다. 우리의 장래는 생태적, 사회적, 자유주의적 가치의 융합을 찾아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나는 ‘영원의 가치들’이라고 부릅니다.
나는 자연의 내재적 가치를 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자연 없이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보존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연을 존경하지 않으면, 종국에는 우리자신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지구상에는 인류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또다시 도래할 것입니다. 인간이 자기자신과 우주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하여 좀더 잘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많은 위험에 대하여 안전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욕망을 좀더 절제하고, 우리가 단지 그 일부에 지나지 않는 자연세계를 좀더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가망 없게 되고, 결국 우리자신의 생존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가 새로운 종류의 문예부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새 르네상스는 인간이 좀더 자연스럽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자연을 존경하면서 동시에 자존(自尊)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러한 존경심을 갖기 위해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에 되돌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가장 중요한 가치들을 포기하지 않는 방법들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치들을 실제로 구현하도록 모색해야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모든 종류의 폭력을 포기해야 합니다. 둘째로, 극단주의에 호소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러시아의 정치가들은, 다른 나라 정치가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시장 경제가 보편적 가치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유시장이 도입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우리가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꺼이 다른 원리들을 통합시키면서 착실하게 길을 밟아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의 존엄성과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자유시장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자유시장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환경적 비용이 고려되지 않을 때, 신뢰는 증발해버릴 것입니다. 오늘날 민중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치가들을 신용하지 않으며, 정치가들이 자신들을 권력 획득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민중이 변화를 바랄 때, 그들의 ‘지도자’에게서 영감을 얻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렇습니다. 영감이 없이는 모든 개혁을 위한 시도는 실패할 것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그저 공기 중의 먼지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좀더 나은 삶을 위한 변화에 참여하고 싶어합니다. 오늘날, 러시아의 권력층은 애초에 그들의 지지자였던 민중과 소통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 결과로 민중은 영감을 잃고, 그저 살아남기 위한 수준의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선량한 황제나 당 총서기에 의존하고자 하는 해묵은 심리가 다시 조성됩니다. 그러나, 여러 민족과 종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 나라에서는 사회 전체 구성원이 참여할 때에만 목적이 달성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개인적 삶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가령, 부모님에게서 무엇을 배우셨는지요?
첫째로, 나는 부모님에게서 상식을 배웠습니다. 사실, 이러한 상식은 전형적으로 시골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연, 우주, 세계, 그리고 진정한 삶에 대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 땅에 애정을 갖고, 또한 그 땅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종종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봅니다. 그것은 단지 비를 몰고 오는 구름을 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별들을 바라봅니다. 땅과 교섭하면서 사는 사람들은 별들과 상호작용을 합니다. 이러한 자연과의 교섭 때문에 그들은 매우 상식을 존중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또한 소박함과 겸손을 배웠습니다. 시골 공동체에는 관용과 연대를 끌어내는 힘든 노동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을 나는 내 가족과 마을에서 보고 자랐습니다. 이 깨우침은 나의 전 생애에 걸쳐서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는 내 뿌리를 잊어버린 적이 없습니다. 때때로 그 뿌리가 농민이거나, 글자를 거의 읽을 줄 모르는 가계 출신 사람들은 자신의 배경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그러나, 나는 부끄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나의 농촌적 뿌리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한번은, 핀란드 대통령 부인이 나에게 어려운 시기들을 어떻게 견뎌냈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대답했습니다. “내 부모님 덕분입니다. 그 분들은 농부였고, 나에게 참으로 견고한 토대를 마련해주셨고, 굴하지 않는 정신과 끈기, 그리고 지혜를 주셨습니다.”
나는 또 내 아내도 고맙게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단지 아내일 뿐 아니라 진정한 친구입니다. 그녀는 나와 동고동락을 같이 했습니다. 그녀는 내게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당신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나는 우주를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우주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태양을 보십시오. 태양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자연이 나의 신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자연은 신성합니다. 나무들은 나의 신전이고, 숲은 나의 대성당입니다.
만약 당신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면,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삶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나는 매우 호기심이 많고, 삶은 흥미롭습니다.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으로 왔다가, 또 떠납니다. 그러나, 나는 이 과정이 아무런 흔적없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내가 곧 죽는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나는 야단법석을 떨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전과 다름없이 자연스럽게 살아갈 것입니다. 나는 남아있는 시간을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사용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모든 남은 나날들을 자연과 교감하고, 접촉하는 데 사용할 것입니다.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향마을에 갔던 일이 기억납니다. 밀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밀밭을 보았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치 교향곡 같고, 협주곡 같았습니다. 그리고, 밤중에는, 하늘의 그 모든 별들을 보았습니다. 그때 나는 내가 자연에 의해 떠받쳐져, 자연 속으로 용해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여생은 자연과 이런 종류의 교감을 하도록 남겨놓겠습니다. 나는 어떠한 메시지로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사랑’이란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랑은 자연의 신비입니다. 나는 그것이 비밀로 남아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사랑에 대한 많은 해석이 존재해 왔습니다. 내 생각에 우선, 사랑은 남자와 여자를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사랑은 또한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만듭니다. 이런 것은 너무나 깊은 신비로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려고 하는 순간, 사랑은 끝입니다. 우리가 사랑의 비밀을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랑은 죽어버립니다. (김정현 옮김)
네덜란드의 환경저널리스트 프레드 매처(Fred Matser)와 나눈 이 대화의 출전은 Resurgence 184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