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술에 대한 잘못된 국가정책과 그 폐해
우리나라 의료관계법은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가 아니면 누구도 의료행위, 즉 병을 고치기 위한 시술행위를 못하게 하고 있고, 그에 위반하면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의사에게 가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 수두룩하고, 또 가서 고칠 수 있는 병이라 하더라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뇌내혁명》이란 책을 써서 수백만부를 팔리게 한 일본의 저명한 의사 하루야마 시게오는 오늘날 병원에서 의사가 고칠 수 있는 질병은 전체 질병의 2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사실이 그렇다면 병원에서 고치지 못하는 수많은 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치료를 포기하고 죽음을 기다리거나 체념상태에서 병으로 고생해야 하는가? 아마도 그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질병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병을 고치거나 완화시켜 보려고 온갖 노력을 하기 마련이다. 살고자 하는 당연한 생존본능의 발로이다. 그 사람들이 어떤 노력을 하겠는가? 의사가 고치지 못하니 병원 밖에서 치료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민간요법을 수소문하거나 어디 그 병을 잘 고치는 용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달려가기 마련이다. 또는 스스로 이런저런 치료방법을 써볼 것이다. 이것은 비난할 수 없는 일이다.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져야 할 것이다. 이럴 수밖에 없다보니 민간에는 다양한 의료기술이 자생하고 번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 또한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국가가 아무리 법률로 금지하고 처벌한다 해도 없앨 수가 없는 것이다. 법률이 나의 병을 고쳐주고 내 생명을 살려주는 것이 아닌데 누가 법률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과 건강을 포기하겠는가? 현실은 이렇다. 그리고 그것은 거역할 수 없는 순리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취해야 할 마땅한 자세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자명해진다. 민간의료를 무조건 금지하고 핍박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그 유용성을 취하고 육성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면서 의학자들로 하여금 민간의료의 치료원리를 연구하고 그 이론적 체계를 정립하여 학문의 영역으로 포섭하게 함으로써 의학 전체의 발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게 하기는커녕 모든 민간의료에 대하여 엄청난 형벌로 위협을 하며 금지시키고 있다. 그 결과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은 무조건 잡혀가서 처벌받게 되어있다. 그것이 1962년 군사정권의 의료법 제정 이후 38년 동안 계속되어왔다. 병 고쳐주었다고 잡아가다니, 세상에 이런 법이 있을 수 있는가? 세계 어느 나라에 이런 법이 있는가?
이와 같이 잘못된 의료정책과 법제도 때문에 어떤 비극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지 살펴보자.
첫째, 치료효능이 뛰어난 민간의술에 의하여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들이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고생하거나 목숨을 잃어가고 있다.
법의 처벌이 워낙 엄정하게 되어있어 웬만한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치료능력이 있어도 치료를 주저하게 되다보니, 환자의 입장에서도 시술을 해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기가 어렵다. 또한 병을 잘 고친다고 소문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당당하게 치료기술을 선전하지도 못하게 되니 그런 좋은 치료방법이 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이 널리 알기도 어렵게 된다. 오히려 잘 고친다고 소문나면 환자들이 몰려오고 금방 고발당하여 붙잡혀가게 되니 소문나는 것이 겁나서 이사를 가버리거나 숨어버리기까지 한다. 결국 유용한 민간의술의 활용도를 크게 떨어뜨려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의 건강과 생명에 위해를 끼치고 있는 셈이다. 의사들이 포기한 병을 민간의료인들이 거뜬하게 고쳐내는 것을 보면, 저 치료기술을 법이 박해만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병고에 신음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살려낼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둘째, 탁월한 민족의술이 사장되어 사라져가고 있다.
뛰어난 치료능력을 가지고 있을수록 자주 처벌받게 되니 민간의료인들이 의욕을 잃고 위축된다. 의료보수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신체의 안전에 위협을 느끼는데다 돈벌이도 시원치 않으니 이런 의술을 배워서 계승하려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탁월한 의술이 그 사람의 당대로 끝나고 만다.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세계가 새로운 의료기술을 발전시키려고 혈안이 되어 경쟁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이미 있는 탁월한 의료기술마저 제도적으로 사장시키고 있다니! 그 의술이 보호 . 육성되고 널리 전파되어 인류를 구제하고 국위를 선양하며 국부를 늘리게 되는 것과 비교해보면 얼마나 큰 손실인가!
셋째, 의료비용이 매우 낭비되고 있다.
민간의료방법은 대체로 장비가 매우 간편하고 시설과 비용이 적게 드는 것이 장점이다. 예컨대 침구의 경우, 아무리 중병을 치료하더라도 침 몇개, 쑥 몇점만 있으면 족하다. 손으로 만지거나 간단한 기구로 자극하거나 단식 등의 자연적 방법을 쓰는 의술도 마찬가지이다. 시술방법이 간명하다 보니 병을 고쳐주어도 많은 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효율적인 치료방법을 놓아두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면 검사비, 촬영비, 입원비, 수술비 등 비교할 수 없는 많은 돈이 들어가고 치료기간도 길어진다. 소위 현대의학이라고 불리는 서양의학은 고가의 의료장비와 비싼 약품을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 본질적 특성이다. 여기에, 갈수록 첨단시설을 갖춘 병원건물을 필요로 하게 된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하더라도, 결국 누군가의 돈으로 그 비용이 충당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어느 신문에서 우리 국민이 1년간 지출하는 의료비 총액이 20조원 가량 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필자의 좁은 생각으로는 민간의료가 널리 활용되면 그 비용의 몇분의 1로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절약되는 비용을 다른 생산적인 경제활동이나 복지에 투자한다고 생각해보자. 국가와 국민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의료보험 수가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의료사태, 즉 수가인상을 요구하며 의사들이 집단휴진과 시위를 하는 문제나, 병원 운영비 염출을 위한 과다진료 등의 문제도 근원적으로는 비싼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 서양의학 중심의 의료체계를 취한 결과 생기는 것이므로, 민간의술을 1차 진료수단으로 공인하여 의료체계를 바로잡음으로써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넷째, 의술발전의 토대를 붕괴시켜 의료수준의 저하를 초래한다.
민간의료를 금지시키면 제도권 의료, 즉 양의사와 한의사만으로 전 국민의 질병에 대처하겠다는 것인데, 한의술은 본래 민간의료를 기반으로 한 것이므로 민간의술이 완전 금지되면 한의술은 그 발전의 토대를 상당부분 잃게 될 것이다. 양의술도 민간의술로부터 영향을 받는 면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민간의술의 광범위한 토양에서 생성된 좋은 의료기술들이 제도권 의술에 포섭되어 체계적으로 연구됨으로써 제도의술로 발전하는, 의료기술의 생성 . 전달 계통을 무시할 수 없는 이상, 민간의료의 전면금지는 제도권 의술의 발전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 침뜸의 약화현상이다. 1962년 의료법이 제정되면서 통일신라 시대부터 전승되어오던 침구사 제도가 없어졌다. (일제시대에 이미 침구사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을 제외하고.) 침구도 한의사에게 독점시키면 된다고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이전까지의 한의사 시험과목에는 침구가 들어있지 않았으므로, 1962년 이전에 한의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들은 침구를 할 줄 몰라도 상관없었고 침구 시술능력에 대한 검증도 받지 않았다. 1962년부터 한의사시험에 침구학이 추가되었으나 그 시험에 합격해도 실제로는 침구 시술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에 한의학대학이 설립되었으나 거기에는 침구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한의대 학생들 중 침구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침구사들이나 아무 면허도 없이 침을 잘 놓는 재야 침구인들에게서 침을 배웠다고 한다. 그들이 한의사가 되어 임상치료를 함에 있어서도 주로 한약으로 처방을 하고 침구를 별로 쓰지 않았다. 침구를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침구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이유이다. 침술로는 아무리 병을 잘 고쳐주어도 돈을 많이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침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한의사도 거의 없다고 한다. 자연히 한의사들은 그 양성과정에서부터 침구를 충분히 익히지 못하고 임상치료에서도 침구를 많이 쓰지 않다보니 침구의술은 점점 낙후되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나마 그 낙후를 조금이라도 막고 버텨온 사람이 기존의 침구사들과 재야의 무면허 침구인들이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 사이에 침구는 세계로 퍼져 전 인류의 의술이 되었다. 세계 각국은 침구의 간편하면서도 탁월한 치료효과에 감탄하여 이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수많은 침구전문대학의 설립 등을 통하여 침구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고 침구술의 장족의 발전을 이루고 있다. 오직 침구의 종주국이라는 한국만이 모든 생활영역이 점점 세분화되면서 전문화되어가는 시대추세에 역행하면서까지 침구를 잘 알지도 못하는 한의사들에게 침구시술권을 독점시켜놓은 채 민간침구를 가혹한 형벌로 핍박함으로써 침구의술의 전체적인 발전을 억압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의료기술의 외국 종속현상을 심화시킨다.
우리나라의 제도권 의술 중 한의학은 비록 공인은 되어있다 하나 실제로는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공립대학교 중 어디에도 한의학과가 설치된 학교가 없다는 것이 이것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거의 모든 국공립대학교가 서양의학을 가르치는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을 두고 있는 것과 비교해보면, 한의학이 양의학에 비해서 얼마나 천대받고 있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우리 국가가 중점적으로 보호 . 지원 . 육성하는 의술은 서양의학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 서양의학의 수준에 있어서 우리가 서양을 얼마나 따라잡고 있는가? 예컨대 우리 국민들은 미국 의료수준의 몇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는가? 앞으로라도 어느 땐가 우리가 의료수준의 격차를 좁히고 미국 같은 나라를 능가할 날이 오겠는가? 연구개발의 열의라도 서양보다 나으면 모르겠는데, 오히려 진단치료 분야보다도 연구개발 분야에서 비교가 안될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고 하니,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결국 우리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계속 서양의학을 배워오고 비싼 의료장비와 의약품 등을 끊임없이 수입하며 언제까지나 서양의술에 종속되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위 IMF사태가 터진 후 환율이 폭등하자 의료장비와 의약품을 조달하지 못한 병원들이 주사약이 동이 나고 심지어 가제 같은 기초의료품도 없어서 사용한 것을 다시 쓰는 등의 곤경에 처했던 경험은, 서양의학 위주의 의료체계가 지닌 문제상황의 일면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반대로, 우리가 우리의 문화방식대로 독창적인 의술을 사용하는 데 대하여 생각해보자. 우리의 문자와 언어로, 우리의 지리적 풍토와 역사적 . 문화적 환경에 적합한 의술을 활용하는 것은 서양사람들이 우리를 따라올 수가 없다. 즉, 우리가 서양의술을 넘어설 수 있는 길은 우리 고유의 의술을 통하는 길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술이 치료효과와 비용면에서 서양의술보다 탁월한 점이 많으므로 세계의 의술로 인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여섯째, 국부(國富)의 유출과 민족자존심의 훼손이 심하다.
의료기술의 외국 종속현상이 심화되면 될수록 외국에 가서 의료기술을 배워 익히고 기술과 장비를 수입하는 데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전가된다. 또한 그네들로부터 우리가 영원히 의료 후진국으로 푸대접받고 자존심을 굽혀야 하는 것도 어쩔 수 없게 된다. 국내에서는 소위 선진국에 유학을 가서 서양의학을 익혀 와야 유능한 의사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의료 사대주의 풍조가 만연하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민간의료 부문에서도, 국내에서는 법률적으로 인정을 받을 길이 없으니까 예컨대 중국에 가서 비싼 돈을 들여 ‘침구수평고시시험’을 쳐서 그 합격증을 받아온다든가 일본에 가서 동양의학 박사학위를 받아온다든가 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인정을 받아보고 싶은 욕구의 소산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풍조를 제도적으로 치유하지 않고 방치하면 우리는 의료면에서까지 자랑할 것이 없는 2등국민, 2등국가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다.
민족의술을 보호 . 육성해야 하는 당위성
민간의술을 탄압하고 서양의학으로 편중된 잘못된 의료정책을 택한 결과 위와 같은 폐해가 생기고 있는 것만으로도 민간의술을 보호 . 육성해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여기에 보태어, 민간의술과 한의술을 합한 민족의술을 기필코 중흥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하고도 절박한 몇가지 이유를 제시하겠다.
첫째, 민간의술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내어놓을 수 있는 가장 경쟁력 있는 기술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이다. 가령 인삼을 다른 나라에 가져다 심으면 약효가 훨씬 떨어져서 인삼 구실을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 가져다 심어도 그렇다. 인삼뿐 아니라, 우리 땅에 본래 자생해온 식물 . 동물들은 거의 모두 약효가 굉장히 뛰어나서 약용으로 쓰이지 않는 것이 거의 없다. 그리고 그 토종 동 . 식물들은 대개 외래종이나 개량종보다 체구가 작다. 작은 것들이 기운으로 단단히 뭉쳐 강한 약효를 발휘하는 것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속담은 이러한 특질을 잘 상징하고 있다.
그러면 왜 토종들만 약효가 뛰어날까? 이에 대하여 1992년에 별세하신 전설적인 신의(神醫) 인산 김일훈(金一勳) 선생님은 “한반도 상공에는 공간색소 중에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진 각종 약분자들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지구의 정기를 모아가지고 나오는 물인 감로수가 지구상에 한반도밖에 없다. 한반도는 지구의 뇌(腦)이다. 신약(神樂)의 땅이다”라고 하셨다. ‘음양감식조절법’을 널리 보급하고 계신 이상문(李祥文) 선생님의 다음 말씀은 더 구체적이다.
우주선 아폴로 16호가 달에 착륙하여 세사람의 탑승자가 지구를 내려다보니 유난히 서기(瑞氣)가 뻗치는 곳이 보이길래 사진을 찍어두었다. 후에 지구로 귀환하여 그곳을 알아봤는데, 바로 우리 한반도의 강화도 마니산 일대였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우리 한반도의 정기가 세계에서 가장 영롱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어서 매우 흥미롭다. 초능력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유리겔러가 어느 단체의 초빙으로 한국의 텔레비젼에서 실연을 보이게 되었다. 그가 비행기를 타고 한반도 상공을 통과할 때 말하기를 “굉장히 강한 기가 집결해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 한반도는 대우주의 핵이기 때문에 산수(山水)가 수려하여 양질의 기가 모이고, 춘하추동 4계절이 정확하여 하늘의 천기가 골고루 모인다. 따라서 한반도의 농산물은 어느 나라 농산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수한 품질과 맛을 보유하고 있다. ?? 아마 한반도의 농축수산물과 다른 나라의 농축수산물의 성분을 분석해본다면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미 이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도 있는데, 어느 발표에 의하면 대략 3백에서 천배까지 차이가 있다고 한다. ?? 한국의 농수산물, 축산물, 약초 등은 핵심적인 우주의 정기를 함축한 불로초요, 불사약이다. 다만 먹는 방법을 몰라서 그랬을 뿐 장차 한반도의 인종과 모든 소출은 대우주의 핵으로서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1)
다른 관점에서 보자. 우리나라는 국토의 8할이 산이다. 산은 기운이 뭉쳐진 곳으로, 그 모습은 뇌의 주름살과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땅의 두뇌라 할 수 있는, 기운이 강한 산이 8할을 차지하고 있다. 기후도 4계절의 변화가 정연하고 뚜렷하여, 사시사철의 6기(氣)가 때를 따라 완벽하게 운행하는 곳임을 보여주고 있다. 지리적 모양새나 기후를 보아서도 우리나라는 양기가 매우 강한 나라인 것이다. 양기는 하늘의 기운이므로 우리나라는 천기를 가장 많이 받는 나라이다. 우리나라 이름이 한국, 즉 ‘하늘나라’ 또는 ‘하느님 나라’라는 뜻을 가진 점, 우리 국가에 하느님이 보우하는 나라임을 강조하고 있는 점, 우리 민족의 중심사상에 하늘을 강조하는 말이 유난히 많은 점, 우리 민족의 건국과정에서 하느님인 환인이 아들 환웅을 내려보내 나라를 세웠다는 표현 등이 모두 우리나라가 천기, 즉 양기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임을 드러내고 있는데, 이러한 증거들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지구 중심으로 직선으로 파 내려가면 남미의 파라과이가 나온다. (지리책에는 파라과이와 붙은 우루과이가 나온다고 되어 있다.) 파라과이는 위치가 거꾸로 되어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땅 모습이 우리나라와 거의 닮았다. 단지 우리나라보다 통통하게 살이 찐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 파라과이에는 먼지가 하나도 없어서 공기가 아주 깨끗하다고 한다. 먼지가 생기면 땅이 이를 모두 흡수하여버리기 때문에 공기중에는 먼지가 없다는 것이다. 땅기운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파라과이 사람들은 맨발로 다닌다고 한다. 땅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발을 통하여 지기를 흡수하려는 본능적인 반응일 것이다. 땅의 기운은 음양이론에서 음기에 해당한다. 파라과이는 이 지구상에서 음기가 가장 강한 나라라는 것이다. 지구의 양기를 대표하는 우리나라와 음기를 대표하는 파라과이가 모습이 거의 같으면서(파라과이가 여성이므로 살이 더 쪘을 뿐이다) 지구의 정반대 방향에 대칭으로 위치하여 지구의 축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양강(陽强)한 정기로 뭉친 나라이므로 이 땅에서 산출되는 물산들이 약성이 강한 것이다.
하늘은 우주이고 진리이다. 그러므로 하늘기운을 많이 받은 우리나라에는 우주적 진리를 깨친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 본래 상고시대에는 우리나라에 완전한 진리가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면서 지구를 한바퀴 돌아서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는 때가 지금 이 시대라고 한다. 물론 그동안 인구가 많아지고 사람들의 욕망이 점점 커지면서 인간이 완전한 진리로부터 스스로 떨어짐으로써 진리가 무엇인지조차 애매해져버렸지만, 그것이 원점으로 되돌아오면서 다시 진리가 스스로를 밝히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한다. 역학에서 우리나라를 간방(艮方)이라고 하여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이라고 하는 것도 이러한 사실에 부합한다. 상고시대부터 전해져오다가 최치원 선생에 의하여 문자화되었다는〈천부경〉81자가 우주의 존재원리를 밝혀놓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간명하고 가장 완전한 경전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본래 하늘의 나라, 진리의 나라, 빛의 나라이었고, 사람들은 우주진리와 하나되어 살았으며, 그것을 육신을 가진 인간의 현실생활에서 지켜나간 수련법이 소위 선도(仙道, 神仙道)였다고 한다. 선도는 고대의 말로는 밝달법, 즉 밝음을 닦는 법이었다고 한다. 이 선도를 통해서 우리 선조들은 우주진리와 하나된 삶을 살아왔고, 따라서 인체의 운행원리와 질병이 생기는 원인 및 치료방법을 환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중국 상고사에 나오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중의 한분인 황제(黃帝)에게 전해져《황제내경》이라는 책으로 저술되었고, 그 책이 동양의학의 원전으로 꼽히고 있다. 고서(古書)에는 몸이 허약하여 고생하던 황제가 동쪽으로 청구(靑丘)에 이르러 자부선인(紫府仙人)을 만나 선도를 배웠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청구는 우리 조상들이 살던 땅이고, 황제 역시 우리 민족의 후손이라고 하므로《황제내경》은 중국의 책이 아닌 우리 민족의 책이고, 동양의학은 우리 민족이 깨우친 진리에 바탕하여 정립된 것이다. 우리는 본래 이러한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도인이 많고 심신수련법이 발달해 있으며 질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민간의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 치료방법들은 서양의술에 비하면 완전한 의술 쪽에 훨씬 가깝다. 서양의술은 기본적으로 인체 각 부분을 따로따로 보고 증상 자체를 병으로 보며 그 증상을 없애는 것을 치료라고 인식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서 병의 원인을 찾는 데 비하여, 우리 민족의술은 인체를 각 부분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체로 보고 증상 자체는 병이 아니라 병이 생겼음을 알려주는 신호로 보며 그 증상이 생긴 근본원인을 찾아서 이를 제거하는 것을 치료로 삼는다. 즉, 병의 원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비롯됨을 알고 보이지 않는 것을 다스리고자 한다. 기 . 기운 . 경락 . 경혈 등이 그렇고, 기를 움직이는 근원이 마음의 작용임을 깨달아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의 본질을 깨우치는 수행법을 발전시킨 것이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술은 치료방법이 보다 근원적이고 부작용이 적으며, 단순히 질병의 치료에 그치지 않고 질병과 그 치료의 체험을 통하여 존재의 실상에 대한 보다 깊은 인식으로 이끄는 힘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의술은 우주와 존재의 원리에 대한 통찰에 바탕한 것이어서 그 치료방법이 단순하고 간편하면서도 매우 탁월하여 제도권 의사들이 고치지 못하는 숱한 병들을 잘 고쳐낸다. 예컨대, 현대의학의 제1과제로 되어있는 암의 경우, 병원에서 3개월 또는 6개월밖에 못 산다고 선고받고 절망에 빠져있던 사람들이 민간의술에 의하여 완치되어 삶을 되찾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만이 가진 특이한 지리적 . 풍토적 특성과 높은 진리관 및 특수한 심신수련방법 등으로 인하여 개발된 민간의술의 탁월한 치료능력은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우월한 것이다. 가령 필자가 직접 체험해본 침뜸의 경우, 그것으로써 못 고치는 병이 거의 없는데, 일본에는 40여개의 침구대학이 있어 연 수천명의 침구사를 배출하고 있으면서도, 침구전문가 양성제도가 55년간 단절되어온 우리나라의 침구기술을 부러워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이 탁월한 민족의술을 보호 . 지원 . 육성하여 세계로 내어놓으면 세계를 능히 제패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만의 뛰어나 장점을 망각한 채 소위 선진국이라는 외국의 의료체계를 그대로 모방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이런 무진장한 의료기술의 보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 나라의 위정자들과 지도자들은 이를 잘 모른다. 그러면서 맹목적으로 서양의술을 우대하고 민족의술을 멸시하고 있다. 아마도 이대로 두면 그들은 서양인들이 우리 민족의술의 탁월함에 매료되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우리 민족의술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즉 서양인의 눈을 통해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어리석음을 또다시 되풀이할 것이다. 그들의 어리석음을 빨리 일깨워주어야 한다.
둘째, 의료서비스의 국제개방 시대에 대비하여 독창적인 의료역량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민족의술을 천대하고 억눌러 질식시키고 있는 동안, 서양 각국은 소위 대체의학이라는 이름으로, 서양의학의 한계를 타개할 새로운 치료방법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리하여 그들이 찾은 대체의학은 대부분 동양의학이었다. 그중에서도 침뜸이 대표적인 것이다. 그들은 침뜸의 탁월한 유용성에 반하여 이를 적극 연구 . 육성 . 보급하고 있다. 미국에는 수십개의 침구전문대학이 있고 대부분의 주에서 침구능력만으로 한의사 자격을 주고 침구시술을 허용하고 있다. 중국 . 일본 . 북한 등의 동양 여러 나라는 원래 있던 침구사 양성제도를 발전시켜 다양한 침구전문대학을 두고 수많은 침구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우리의 침구 등 민간의술 수준은 답보 내지 퇴보하는 반면, 다른 나라들은 급속히 발전하여 조만간 우리를 능가하게 될 것이 뻔하다. 재화와 용역의 국제적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들이 하나둘 제거되어온 현대사의 경험에 비추어 의료서비스 분야도 머잖아 전면 개방될 것으로 예측한다면, 그때 우리나라는 외국의 침구사들을 비롯한 대체의술가들에 의하여 점령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핍박하여 죽이면서 의료기술 변천의 세계적 조류에도 눈감음으로써, 명색이 침뜸의 종주국이라는 나라가 외국 침구사들의 의료시장으로 변하여 ‘침뜸 식민지’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빨리 깨어나 민족의술을 중흥시킴으로써 이러한 비극을 예방하고 세계적인 조류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셋째, 미래의 괴질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의료기술은 우리 민족의술뿐이다.
최근 들어 기후와 환경의 급속한 변화는 우리 모두가 나날이 경험하는 현상이다. 풍토의 급속한 변화는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와 많은 생물이 멸종되고 새로운 생명체가 생겨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 와중에서 덩달아 질병도 새로운 것이 많이 등장하리라는 것도 쉽게 예상된다. 그런데, 추세에 비추어 보건대는, 미래에 생길 변화는 어느 시기에 가면 대처할 수 있는 점진적인 정도를 넘어서 급속도로 전개되리라고 예상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벌써 1999년 10월 5일자〈한국경제신문〉은 “세균의 대반격 인류위협”이라는 제목하에 신 . 구 전염병이 지구촌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현상을 분석 보도하고 있다. 인산 김일훈 선생님은 공해독과 화공약품독이 쌓여 일어날 괴질에 대하여 경고하면서, 2천년대에 가게 되면 사람이 길바닥에서 가다가도 죽고 오다가도 죽게 된다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모든 예언들은 21세기의 서두쯤에서 새로운 질병이 지구를 휩쓸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갈 것이라고 한결같이 말하고 있다. 예컨대,《격암유록》은 하늘이 내려준 이름 없는 괴질로 아침에 살아있던 사람이 저녁에는 죽어있으니 열집에 한집이나 살아날까 걱정하고 있다. 수운 최제우와 강증산은 3년간에 걸쳐 대괴질이 한반도에서 시작하여 세계를 휩쓸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때를 당하면 과연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의술이 있을까? 있다면 어떤 의술일까?
신체에 나타난 증상을 병이라고 보고 증상 그 자체를 직접 제거하는 것을 치료로 삼는 방법, 가령 감기가 들어 열이 날 경우 해열제를 투여하고 암 종양을 발견한 경우 수술로 종양 자체를 잘라버리는 서양의학 식의 철저한 대증요법적 수준의 의술은 갑작스러운 괴질을 당하면 속수무책,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러한 치료방법은 병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그 나름대로라도 찾아내는 데 수년 내지 수십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뿐더러, 소수의 의사와 병 . 의원으로 이루어진 서양식 의료수단으로는 엄청나게 발생할 환자들을 감당할 수도 없게 된다.)
증상 자체는 병이 아니라 병이 났음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보고 증상을 일으킨 근본원인을 찾아서 이를 제거함으로써 증상을 사라지게 하는 동양의학적 치료방법 중에서도 한의학처럼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 역시 갑작스러운 괴질의 원인과 대응약물을 찾아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별 실효가 없을 것이다. 결국 괴질 자체의 원인과 처치방법을 찾아내는 식의 의술은 모두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괴질 자체에서가 아니라 이를 상대하는 인체에서 찾아야 한다. 즉, 인체의 자연치유력(면역력)을 강화시켜 어떤 괴질이 침입하더라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의술만이 유효하게 된다는 것이다.2) 그러한 의술로서 대표적인 것이 침뜸이다. 기를 강화시키는 각종 수련방법도 이에 해당하겠으나 갑자기 기수련이 되는 것이 아니므로 평소에 이를 행한 사람만 효과를 볼 것이다. 마음을 정화시킴으로써 바로 병을 낫게 하는 방법도 있는데, 그 효과를 물리적으로만 보면, 일체의 주인인 마음에 묻은 때가 벗겨지면서 지극히 평온한 상태에 이르면 마음 본래의 힘을 회복하여 병이 저절로 없어지므로 원리상으로 타당하다. 문제는 마음이 갑작스러운 괴질에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빨리 정화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종래 전해져 내려온 마음수련 방법들에 의하면 이는 불가능하지만, 필자는 최근에 사단법인 ‘마음수련교육회’라는 단체가 가야산에서 펴고 있는 마음수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불과 1주일 이내에, 빠르면 2, 3일 만에도 참가자들의 마음이 매우 빠르게 정화되고 그에 따라 고질병들이 갑자기 낫는 것을 보았고 직접 체험한 바도 있다. 물론 그 수련은 마음을 깨쳐 진리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지 질병치료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지만, 부수적으로 치료효과가 탁월하므로 그 수련방법이 널리 보급되면 장래 닥칠 괴질에 대한 대처방법으로서도 유용할 것으로 본다.
필자는 가장 행하기 쉽고 대중적인 방법으로 쑥뜸을 최고의 치료방법으로 내세우고 싶다. 일찍이 인산 선생님은 쑥뜸으로만 암 . 에이즈 등 어떤 병도 고칠 수 있다고 하면서 뜸만 계속 뜨면 산삼 . 죽염 . 홍화씨 등 3대 명약도 필요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분이 말하는 쑥뜸은 단전에 5분 이상 타는 뜸장을 놓는 것을 말하므로 보통사람이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괴질이 닥쳐 사람들이 마구 나자빠질 때는 그것이라도 뜨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김남수 선생님께서 개발하신 ‘무극보양뜸’처럼 쌀알 크기의 뜸쑥을 신체의 중요 경혈점에 놓고 뜨는 방법이 보편적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해 보이는데, 필자가 직접 수개월간 체험해보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하여 해보게 하였더니 치료와 건강증진 효과가 그만이다. 뜸은 또 침과 달리, 전문가가 일일이 놓아줄 필요없이 한번 자리만 잡아주면 본인 스스로 또는 가족끼리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어서 간편하기가 이를 데 없다. 침뜸을 널리 보급해서 집집마다 가정주치의 겸 건강법으로 활용하게 하면 미래의 질병에 대한 훌륭한 대비책이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의 건국역사에 마늘과 쑥이 등장하는 것은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 여겨진다.
결국 미래의 괴질로부터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의술은 우리 민간의술뿐이라는 결론이다. 우리는 이런 탁월한 의술을 널리 세계에 보급시켜 미래의 병겁으로부터 인류를 살려야 한다. 우리에게 이런 의술이 주어진 것도 그로써 인류를 구하라는 하늘의 명령이 아니겠는가? 그러고보니, 침구가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오늘의 현상은 하늘이 가까운 장래의 병겁으로부터 인류를 구하려는 섭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과학적 검증의 문제
민간의술을 전면 금지하는 현행법이 타당하다고 옹호하는 논자들의 주장 중 대표적인 것이 민간의료방법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필자가 1994년 ‘의료법 위헌심판 제청’을 하였을 때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그 ‘과학적 검증’에 대하여 매우 고식적이고 위선적인 느낌을 받는다. 과연 무엇이 과학이며 무엇을 과학적인 것이라고 하는가? 과학적인 것은 다 옳고 선하고 유용한 것인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으면 다 쓸데없고 악한 것인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의술은 절대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일까?
첫째, 과학적 검증 요구에 대하여 우선 다음과 같은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이 든다.
의술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이지 그 치료 경로의 과학적 검증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검증은 과학자(의학자)들의 몫일 뿐이다.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에게는 당장의 고통을 치유하는 것이 급한 것이지, 어떤 치료방법이 어떤 과학적 과정을 거쳐 어떤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를 잘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치 목마른 사람에게는 물 한잔을 마시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이유로 갈증을 해소하는지를 이론적으로 알게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러므로 치료행위의 당부(當否)는 그 결과 병이 나았느냐 아니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치료방법으로 병이 나았다면 그 자체로서 과학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치료방법이 자연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면 병이 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치료방법을 썼으나 병이 차도가 없었다면 그 치료방법은 과학적인 것이 못되는 것이다.
질병치료는 당장 화급한 일인 반면, 과학적 검증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모든 치료행위에 일일이 과학적 검증을 요구하고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행위는 금지한다면 인류는 질병 앞에 살아남을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소위 과학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전에는 질병치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디 그런가? 병의 치료는 현실이고, 과학적 검증은 이론일 뿐이다. 필자가 1992년 무면허 침술행위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사안에 대하여 기각결정을 했을 때,〈부산일보〉는 1면의 ‘중앙동’이란 칼럼에서 다음과 같은 보도를 하였다.
일설에 따르면 유럽인으로서 말라리아에 걸렸다가 최초로 치유된 사람은 1638년의 스페인 페루총독 부인이라고 한다. 전신에 오한이 나며 부인의 목숨이 경각을 다투게 되자 총독은 왕실 시의에게 매달렸다. 시의는 온갖 수단을 쓰다 못해 현지 인디언들의 민간요법인 안데스산맥의 어떤 나무껍질로 만든 약을 복용시켰다. 총독부인은 기적처럼 쾌유했고, 이 나무는 부인의 이름을 따 기나나무로 불려 유럽사교계에 은밀히 퍼졌다. 그러나 개신교도를 비롯한 의사들은 미개한 민간요법이라며 극구 배척했다. 그리하여 1820년께에야 프랑스인 의사 두명에 의해 기나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키니네가 제조되기 시작했다. 당시 유럽 의료인들의 독선이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인명을 앗아간 열병 말라리아의 퇴치를 그만큼 늦춘 셈이다.
그러면서 위 칼럼은, “서양문물이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특히 홀대를 받아온 분야가 한의학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최근 한의학에 대한 재인식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동의요체(東醫要諦)진전》,《한국의 민간요법》,《침뜸기초학》,《동의보감》등의 한의학서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가 하면 교수출신 한 철학자는 뒤늦게 한의학과에 도전, ‘한의학으로 노벨상을 타자’며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김용옥 전(前) 교수가 한의학에 경도하게 된 것은 68년 중증이었던 관절염이 침술로 완쾌되면서부터라고 한다. 부산지법은 무면허 침술의료행위를 한 피의자를 ‘비전(秘傳)의 전통의술은 의과대학의 제도화된 교육체계를 통해서만 습득 . 계승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무조건 의료시술을 못하게 하는 것은 잘못’이란 사유를 들어 영장을 기각했다. 한의학 접근에 활기를 일으키는 신선한 법해석이라고 해야겠다”고 적었다.
존재는 이론에 앞선다. 질병은 존재의 한 현상이다. 질병의 치료도 존재의 한 현상이다. 이론은 그 다음의 것이다.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말라고 할 수 있는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가? 모든 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후에 존재하게 되었는가? 일단 나타난 현상 자체에 대하여는 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것이 옳은 자세가 아닌가? 오히려, 실재하는 현상을 부정하려면 그 부정을 위한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기존의 지식체계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타난 현상을 섣불리 부정하거나 억압하려고 하는 권위주의적 대응자세야말로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이지 아니한가?
소위 현대의학, 의사들이 하는 의술은 모두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인가? 그렇다면 왜 병을 고치지 못하는가? 과학적으로 검증된 의술이면 병을 고쳐야 하지 않는가? 병을 고치지 못하면서 무엇이 검증되었다고 주장하는가? 과학적 검증을 거친 의술이 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그 과학적 검증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는가?
의사에게 가도 고치지 못하는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환자에게 물어보자. “당신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방법은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아직 과학적으로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치료효과를 본 민간요법이 있는데 이를 사용해 보겠는가?” 환자가 전자보다는 후자를 선택할 개연성이 많다고 보는 것이 우리의 경험적 내지 상식이 아닐까? 그리고 이 경우 그 선택권은 누구에게 주어져야 하는가? 국가인가? 의사인가? 환자 자신인가? 당연히 환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져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왜 우리 국가는 환자에게 전자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가?
과학적 검증은 과학자(의학자)들의 책임이다. 어떤 새로운 치료방법이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 과학자(의학자)들은 이를 빨리 검증하여 사회에 제공함으로써 널리 활용되게 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데 그러한 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도 않으면서 그 치료방법을 못 쓰게만 하고 있으면 어떻게 하는가? 그 사이에 환자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둘째, ‘방법론’의 면에서, 과학적 검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검증의 방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하는가?
지난 300여년간 내려온 서양식 환원주의적 미분(微分)기술에 의한 검증을 말하는가? 즉, 철학적 바탕에 있어서 정신과 물질, 주관과 객관을 전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보는 이원론적 사고에 기초를 두고, 세계를 물질론적 . 기계론적 관점으로 바라본 결과 어떤 물체를 구성요소들로 환원하여 하나하나 나누어보면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입각하여 정립되어온, 미분적 관찰과 실험 및 실험 결과의 정량화를 검증의 방법적 도구로 사용하는, 그런 방식에 의한 검증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양자역학 등의 새로운 이론의 등장에 의하여, 또 경험적으로도 이미 자연의 실상과 맞지 않는 잘못된 이론임이 스스로 증명되어 한계점에 다다른 낡은 검증방법을 고집하는 셈이 될 것이다.
인체에 관하여 본다면, 우리가 미분적 과학기술에 의하여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장기의 기능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지식만으로는 인체의 전체적 기능을 이해할 수 없다. 각 장기 상호간의 작용관계와 마음의 작용에 대하여까지 통찰해야 비로소 생체에 대한 전체적이고 올바른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은 이제는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미분기술이 개발한 치료방법, 예컨대 병균이 침투하여 생긴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항생제를 투입하면 그 결과 병균을 죽이는 데는 성공하나 그로 인해 위장장애가 생겨나고, 항생제의 장기복용으로 위장기능이 약화된다. 그러면 이제는 항생제에 소화제나 제산제까지 얹어 먹게 하는 것, 또는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방사선 치료를 하다가 결국 환자의 저항력이 감소되어 암세포도 죽고 환자도 같이 죽는 것 등은 모두 물질론적 사고방식에 기초를 두고 발전된 결과 자연의 실상에 맞지 않는 미분기술이 부딪친 한계들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소위 선진국이라는 서유럽이나 북미의 나라들은 엄청난 고가의 의료장비를 갖추고 의사들이 제1급의 의학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장담하는 데 비해 환자에게 실제로 제공할 수 있는 결과는 너무나 형편없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고 한다. 만약에 민간의술에 대하여 과학적 검증을 요구하는 견해들이 이런 환원주의적 미분과학을 전제로 그러한 과학적 검증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매우 잘못된 관점이라는 것이다.
또한, ‘경험적 검증’은 배제되는 것인가? 민간의술은 대부분 충분한 경험적 검증을 거친 것들이다. 예컨대, 침구술은 5-6천년 동안 전승되어오면서 널리 치료술로 사용되어온 것이다. 여기에 무슨 검증이 또 필요한가? 다른 민간의술도 대부분 오랫동안 전승되어오며 치료효능이 확인된 것이거나, 새로 개발된 것이라도 실제로 임상효과가 뛰어나서 퍼지게 된 것이다. 효과가 확인되지 않는 의술은 아예 널리 퍼지지도 못한다. 민간의료계에서는 일반 사람들에 의한 경험적 검증 자체가 그 의술의 유용성 여부와 존재 필요성 여부를 자체 확인하는 유력한 장치로 스스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물정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을 어찌 가볍게 여기랴!
셋째, ‘인식주체’의 면에서, 민간의료 반대론자들이 만약에 ‘과학적 검증’이라는 말을 서양식의 ‘오감(五感)과 이성에 의한 확인’과 같은 취지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 민족의학을 평가하는 도구로서는 매우 부적절한 것을 사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자고로 동양과 서양은 우주와 인간을 인식하는 방법과 자세에서 근본적으로 상이한 길을 걸어왔다. 서양은 오관(五官)의 감각에 의하여 수집한 자료를 이성이 종합하여 인식하는 것을 진리로 파악하는 방법을 사용하여왔고, 동양은 오관의 감각과 이성의 통합작용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초월하여 그 오관과 이성을 통하여 작용하는 ‘근본주체’를 통찰하여 진리를 파악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그러므로 동양의 우주관, 인식론에서는 오관과 이성은 도구에 불과할 뿐, 그것이 받아들인 자료들은 진리가 아니다. 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오관으로 받아들인 모든 감각이 공(空)하다고 본 불교《반야심경》에 나오는 오온개공(五蘊皆空)의 사상과, 그 오온을 취합 정리하면서 생긴 의식(잠재의식, 무의식 포함)이 모두 공(空)하다고 본 사상이다. 표현만 달리하였을 뿐, 우리 조상들의 진리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동양사상에서는 인간과 우주 삼라만상을 움직이는 궁극적인 실체는 순수의식(말로 적절히 표현할 길이 없으므로 일단 이렇게 표현한다) 하나로 귀일하고 삼라만상은 그 순수의식에서 벌어져나온 다양한 작용으로 파악되기 때문에 우주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요, 인간은 그 우주를 몸 안에 담은 신성한 존재로서 그 자체가 우주(또는 소우주)로 파악된다. 이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인간을 가리켜 이신화인(以神化人, 신이 스스로 인간으로 화했다)된 존재라고 하고 인간이 신 자체라는 신인불이(神人不二)가 커다른 흐름으로 이어져왔으니, “사람이 곧 하늘이다(人耐天)” “사람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 하라(事人如天)”든가 인신사상(人神思想), 신인합일사상(神人合一思想) 등은 모두 그러한 진리관의 표현이다. 따라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을 불가분의 일체로 파악하고 질병의 원인도 전체적인 것에서 찾으며 그 치료방법도 종합적 . 전체적으로 보았다.
동양적 진리가 우주를 하나로 통찰한 것은 서양식의 관념론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독특한 심신수련 방법을 통하여 고도로 높은 수준에 올라가 진리 그 자체를 확연히 깨쳐서 알아낸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몸을 인식함에 있어서도 지혜의 눈으로 꿰뚫어본 것이지 서양식의 해부학에 의하여 안 것이 아니다. 심신수련을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자신의 내장을 훤히 들여다보는 경우가 있는데, 말하자면 민족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이나 경혈 . 심포 . 기 등도 이러한 혜안에 의하여 통찰되어진 것이지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고차원의 인식에 바탕한 민족의학을, 겨우 오감과 육식(六識)에 의존하는 서양과학이 평가하겠다는 것은 실로 진리를 전혀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의 짓이다.
금세기까지 세계의 과학기술계를 지배해온 서양의 물질론적 . 기계론적 이원론에 바탕을 둔 사고체계에 기초한 과학기술로는 생태계 파괴, 환경오염, 자원고갈 등과 같은 지구적인 위기에 더하여 기술의 비인간화, 사회에서의 인간소외, 인성파괴 등과 같은 인류적인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절감하면서, 과학은 이제 기존 서양과학의 분석적 . 미분적 방법보다는 총체적으로 전체를 보고 직관에 의한 통찰을 중요시하는 방법으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으며, 우주와 삼라만상을 하나의 통일된 생명체로 파악하는 인식론의 전환 위에서 새로운 과학기술을 개발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소위 과학자들 스스로가 말하는 ‘신과학 운동’인데, 그 인식론의 방향이 동양사상 내지 우리의 민족사상과 같은 방향이어서 사필귀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서양과학 자체의 변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분야에서 서양과학식 검증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면 눈먼 송아지가 방울소리만 듣고 따라가는 격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할 것이다. 인간은 신령한 존재이고 병은 대부분 마음에서부터 생긴다. 서양과학이 신령과 마음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가? 아니라면, 질병의 치료방법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어야 이를 인정하겠다는 건방진 고집을 버려야 할 것이다.
의도(醫道)는 모든 사람의 것
어느 분의 말씀을 빌려보자. “의도(醫道)란 병으로부터 몸을 구원하는 길일진대 어찌 전문가만이 가야 할 길이랴! 누군가 말했듯이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자신뿐이니, 의도는 병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구원하고자 하는 이들 모두의 길이라.” 이 당연한 이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민간의술은 오늘도 국가권력의 구둣발 아래 짓밟혀 신음하고 있다. 왜 그런가? 누구를 위하여 그런가?
이런 불합리한 현실을 비호하고 있는 주요세력이 바로 민간의술을 과학적 검증이 결여된 것으로 보는 관점을 가진 이들이다. 그러나 그 과학적 검증 주장이야말로 불과 200여년밖에 안된 소위 현대과학(서양과학)의 틀속에 수천년간 내려온 민간의술을 억지로 집어넣고 판단하려는 어리석은 수작에 불과하다. 과학은 고정적인가? 현재의 과학기술은 완전한 것인가? 또다시 수정될 가능성은 없는가? 만약 그렇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하나의 미신일 뿐이다. 과학적 사고야말로 실재하는 일체의 현상에 대한 열린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적 검증을 핑계로 민간의술을 핍박하고 있는 세력의 진정한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직도 이 나라 의료제도를 지배하고 있는 사대주의의 낡은 정신과 제국주의의 썩은 망령이다. 그들은 이 나라가 가진 천부적 자질과 능력과 소명을 전혀 알지 못한다. 역사의 흐름에 어둡고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지도 통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미 한계에 부딪쳐 자구책을 찾아 몸부림치고 있는 서양의술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고 있다. (인산 선생은 서양의료인들을 ‘돼지새끼’라고 한 바 있는데, 이는 선생님이 보시기에 그네들이 우주와 인체와 질병의 원리를 너무 모르니 하도 답답해서 하신 비유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깨우치면서 제도를 개혁하여, 엉터리 의술과 병고에 시달리는 민중을 구하고 인류의 앞날에 닥칠 병겁에 대비해야 한다. 제국주의로부터 국토가 해방된 지는 수십년이 지났으나 정신의 해방은 아직도 요원하다. 그러므로 이 운동은 계몽운동인 동시에 독립운동이다.
1) 이상문 저,《세계를 이끌어갈 한국-한국인》(평단문화사, 1997년)에서 인용.
2) “질병이 몇억 종류가 있다 할지라도 태양과 같은 생명력만 회복하면 깨끗이 사라진다. 질병과 고통, 불행이라는 꿈속의 대소사는 꿈을 깨면 사라지는데, 꿈을 깨우는 아침의 태양은 천지가 본래 부여해주신 자연치유력이다. 자연치유력은 어떠한 질병이라도 본래 지녔던 생명의 힘을 회복하게 해준다. 자연치유력은 만병을 퇴치하는 완벽한 조물주의 선물인고로 이것을 잘 활용만 하면 치병은 물론이요, 불로장생까지도 당연한 것이다.” (이상문, 앞책, 27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