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치 지난 60년대에 나는 교육과 학교문제에 관심을 갖고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여러 차례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나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언제부터 사람들은 욕구를 갖고 태어났는가? 예를 들어, 교육에 대한 욕구 말입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누군가의 가르침을 통해서 배워야 했는가? 도대체 세계 전역에 걸쳐 사람들이 최소한 15명 이상(그보다 적으면 한 학급이 될 수 없으니까) 40명 이하로(그보다 많으면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의 처지인데) 집단을 만들어, 연간 800시간 이상(그보다 적으면 충분히 얻을 수 없으니까) 1,100시간 이하로(그보다 많으면 감옥으로 간주되니까) 4년 동안 학교교육이라는 것을 받아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나는 알고 싶었습니다. 학교교육과 같은 괴이한 과정이 어떻게 하여 필수적인 것으로 되었을까요?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그것은 사람들을 인공적으로 조작하는 것과 같은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인공적인 물건들만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인공적인 사람들도 생산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커리큘럼의 내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학교교육이라는 과정 자체의 의식(儀式)을 통과함으로써 배움이라는 것은 학교교육의 결과로서 일어난다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움은 여러가지의 분리된 일로 나뉘어지고, 측량가능한 것이 되고, 시장에서 팔 수 있는 물건 가치를 제공해주는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지요. 한 사람의 학교교육비가 많이 들수록 그는 자기 인생에서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커리큘럼의 내용과 실제로 사람들이 자기자신이나 사회를 위해서 만족스럽게 행하는 것 사이에는 절대적으로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것이 확실한데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입니다. 적어도 서른 내지 마흔 개의 연구사례가 모두 그같은 점을 똑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과내용은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수행해 나가는지에 대해 전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좀더 중요한 것은 학교교육의 잠재적 기능, 다시 말하여 ‘숨은 교과과정’인 것입니다. 어느 정도 학교를 다녔으니 이제 교육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 정말 문제이지요.
내가 젊었을 적에 사람들은 그러한 욕구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배가 고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굶주림을 곧바로 ‘음식물에 대한 욕구’로 번역하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토틸라 옥수수빵에 굶주렸지, 결코 칼로리라고 하는 추상적인 것에 굶주린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욕구를 가지고 태어났고, 욕구는 권리일 수 있으며, 이러한 권리는 무엇인가를 당연히 차지할 자격이 있음을 뜻한다는 생각은 근대적 세계에서 발전된 것입니다. 학교교육은 그것이 평등한 기회를 만들어낸다고 하지만 실은 전체 사회를 여러 계급으로 나누는 일찍이 시도된 바 없는 독특한 방법이 되었습니다. 누구나 12년 또는 16년간의 학교교육 기간 중에 자기가 어떤 수준에서 탈락되었는지를 알고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 고등교육을 받았을 때는 거기에 어떤 가격표가 부착되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다수 사람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이야기입니다.
브라운 그러니까 그것은 빈곤의 근대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가난한 사람은 이제 물질적 재화를 많이 소유하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갖고 있었던 정신적 자신감을 갖고있지 못하니까요.
일리치 그리고 그런 사람은 이제 끊임없이 무엇인가에 대한 욕구를 느끼는 세계에 살고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때 우리는 컴퓨터 프로그램속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컴퓨터는 내가 처한 지점에서 지금 당장 무엇이 내게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알려줍니다. 사람들이 칼을 어떻게 사용하고, 커피메이커를 어떻게 이용하며, 또는 어떻게 문장을 이어갈지를 일일이 안내를 받으면서 끊임없이 감사하게 되는 그러한 세계를 우리는 만들어낸 것입니다.
갈수록 사람들은 인공의 세계에서 살고, 스스로 인공물이 되며, 그러면서 만족합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지금 우리 두 사람이 우정(友情)의 가능성, 즉 진정으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이토록 마음을 쓰고 있는 것이지요. 대개 물건이나 인공물, 테크놀로지를 논하는 사람들은 기술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 같은 문제에 관심이 큽니다. 현대기술은 필연적으로 사회를 양극화하였습니다. 현대기술은 환경을 오염시켰습니다. 현대기술은 아주 단순한 토착적 능력들을 못쓰게 만들었고 사람들로 하여금 물건에 의존하게 만들었습니다.
브라운 자동차 같은 물건 말이지요.
일리치 자동차는 우리의 발의 사용가치를 제거해버렸습니다. 자동차는 사람이 세계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원래 라틴어에서 자동차(automobile)는 “자신의 발을 사용하여 어딘가로 간다”는 뜻인데도 말입니다. “스스로의 발로 어디로 간다”는 것은 자동차 때문에 엄두도 못내는 일이 되었습니다. 최근에 누군가에게 내가 안데스산맥을 걸어서 내려왔다고 얘기했더니 그가 “당신 거짓말쟁이군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16세기, 17세기에는 스페인 사람 누구나가 그렇게 걸었습니다. 누군가가 단순히 그냥 걸을 수 있다는 것 ― 이것을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조깅은 할 수 있지만 걸어서는 아무데도 못가는 겁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몰고다니는 바람에 세계는 우리에게 접근 불가능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물건과 인공물은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좀더 깊이, 우리의 감각이 기능하는 방식을 변화시킵니다. 전통적으로 응시(凝視)한다는 것은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는 행위의 일종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옛 그리스 사람들은 바라보는 행위를 내가 당신의 얼굴을 어루만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우리 둘 사이에 관계를 맺기 위하여 나의 영혼의 팔다리를 밖으로 뻗는 방식의 하나로 이해하였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그들은 비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갈릴레오 이후 눈은 단지 빛이 외부로부터 무엇인가를 그속으로 가져다주는 수용기(受容器)라는 생각이 발전하였고, 그리하여 내가 당신을 바라보고 있을 적에도 당신과 나는 분리되어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눈을 일종의 카메라렌즈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실제로 자기의 눈을 기계의 일부인 것처럼 여기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인터페이스’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나에게 “나는 당신과 인터페이스를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죄송하지만 제발 딴 데로 가보십시오. 화장실이든 어디든, 거울한테로 가보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또, 누구라도 “나는 당신과 커뮤니케이션을 갖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당신은 말을 할 수 없습니까? 당신은 얘기를 나눌 수 없습니까? 나와 당신 사이에는 깊은 타자성(他者性)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합니까?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 나도 프로그램화된다는 것은 나로서는 참을 수 없습니다.”
미첨 이반이 지적한 것처럼 우리는 근원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람끼리 얼굴을 맞대고 살기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스크린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텔레비젼 스크린이건, 컴퓨터 영상이건, 지금 여기 바로 내 앞에 있는 조그만 디지털 시계의 자판이건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은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하고 갈 때 앞유리창이 일종의 스크린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스크린에 비치는 세계는 납작하게 단순화된 모습이지요.
일리치 나는 펜실베이니아 주립 도서관에서 자동차 앞유리창에 관계된 기술자들이 텍사스에서 가진 모임에 관한 보고서를 보았습니다. 작년에 나온 이 책은 세권으로 되어 있는데 거기에 들어있는 약 870개의 보고내용은 자동차의 앞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광경을 어떻게 하면 운전자가 아직 다다르지 않은 장소에 이미 와 있는 것처럼 느끼도록 기술적으로 고안하느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운전자는 저너머, 아직 그가 가닿지 않은 곳을 바라봅니다. 마치 그것은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여기에 지금 있는 대신에 우리가 다음 주에는 어디에 있을지, 다음 시간에는 어디에 있을지를 자꾸만 알고 싶어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서로 얼굴을 맞댄다는 것은 갈수록 점점더 어려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서 조작되고 프로그램화된 것입니다.
아주 최근까지만 해도 우리가 아는 모든 문화는 위계질서 ―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 에 의해 규정되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그속에서 살아야 하고, 고통을 이겨나가는 법을 배워야 하는 테두리였습니다. 사람의 생존을 규정짓는 (위계적) 조건은 열대의 조건일 수도 있고, 차가운 기후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또, 그것은 노예제도나 혹은 끔찍한 어떤 것을 수반한 고도로 복잡한 그리스의 도시국가일 수도 있고 12세기의 수도원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문화’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말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딴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의’ 고통을 이겨내는 기술에 관해서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딴 곳’의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인간조건을 감내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모든 것이 이제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일년 동안이나 서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랫만에 만날 때, 우리는 서로에게 고개를 숙여 절을 하였습니다. 고개숙여 절을 한다는 바로 이러한 아이디어 ― 사람은 스크린 앞에서 고개숙여 절하지는 않습니다. 끊임없이 스크린 위에서 비인격체를 보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고개숙여 절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굉장히 어렵게 되었지요. 어떤 소년이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네, 그렇지만 오늘 저녁 저는 케네디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 그리고 또 ET를 보았답니다.” 정말이지 나는 이렇게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싶은 사람, 당신을 올려다보고자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뿌리깊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세계는 균형감각을 잃어버렸습니다. 즉, 우리의 우정이 ‘제리 브라운 더하기 이반 일리치 및 그 둘 사이의 어떤 상호작용’이 아니라는 감각 말입니다. 우리 둘은 두개의 스크린도, 두개의 프로그램도, 두개의 기계도 아닙니다. 우리 둘 사이의 우정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어떤 것입니다. 이러한 감각이야말로 내가 지키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그러한 것을 지키는 일을 정치속에서, 공적생활에서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과의 친분을 두텁게 함으로써, 즉 우리가 스파게티와 포도주를 함께 들면서 우정을 나눌 때 뿐입니다.
여기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젊은이들은 아마도 내가 미국 사람들이 ‘우울증’이라고 부르는 것을 경험하고 있던 무렵에 태어난 사람들일 것입니다. 나는 그 우울증 때문에 아무 일도 하지 못했고, 무기력속에 빠져 있었지요. 그런데 그러한 무기력감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올바르게 사는 것이 너무나 엄청나게 어렵다는 생각에서 생겨났던 것이지요. 나는 한동안 캄캄한 어둠, 나태의 시간을 보냈고, 내 책《공생공락을 위한 도구》를 계속해서 쓰고 싶은 의욕이 없었습니다.
나는 아까 우리가 말한 기술문명의 껍데기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바로 그 무렵에 태어났지요. 내가 이 젊은이들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60년대의 사람들에게 내가 말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1968년에 내가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 것은 현대적 의료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보다는 더 많은 병든 사람들을 만들어낸다는 것, 따라서 그것이 필연적으로 초래할 끔찍한 사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방금 우리가 말한 교육문제 ― 학교교육이 사람들을 어떻게 마비시키는가를 알리고자 하였고, 시간을 가속적으로 소모시키는 현대적 교통체계로 인하여 대다수 사람들이 더욱더 많은 시간을 교통체증속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을 얘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내 주된 관심사는 테크놀로지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인간관계를 황폐화시켰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거리로 뛰쳐나가 우리들보다 혜택을 덜 받고 사는 사람들을 직접 돕는 것이 우리의 과업은 아닙니다. 물론 누군가가 이런 일을 마땅히 해야 하고, 나는 거기에 협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진정한 과업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스크린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브라운 당신은 전에 좀더 큰 사회적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좀더 직접적인 우정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커뮤니케이션을 행하지만 사람은 얘기한다라고 하는 당신의 말이 몹시 인상적입니다. 내 생각으로는 그것은 ‘관계’라는 말에도 똑같이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도구와 도구 사이에, 또는 여러 도구들 사이에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우정이란 것은 두 사람 사이 또는 여러 인간들 사이에서만 있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비근한 삶에 대하여 갖는 이해는 현대의 기술공학적 용어에 의해 크게 침해되었습니다.
당신이 최근에 쓴 책《텍스트의 포도밭》각주 53에 보면 12세기의 수도사였던 성(聖) 빅토르의 휴(Hugh of St. Victor)의 편지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거기서 그는 사랑은 끝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로놀프에게, 죄인 휴로부터. 사랑은 끝이 없다네. 내가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금방 그게 진실임을 알았었네. 그런데, 친애하는 형제여,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걸 나는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이제는 정말 잘 알게 되었다네. 나는 이방인이었고, 나는 그대를 낯선 땅에서 만났었지. 그러나 내가 거기서 친구들을 발견한 이상 그 땅은 정말 낯선 곳이라고는 할 수 없었네. 내가 먼저 친구를 만들었는지, 혹은 내가 친구가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네만, 나는 거기서 사랑을 발견하였고 나는 그걸 사랑했으며 나는 그 사랑에 싫증난 적이 없었다네. 왜냐하면 그것은 내게 너무나 감미로왔고, 내 가슴을 가득 채웠으며, 나는 내 가슴이 그토록 조금밖에 담을 수 없는 것이 슬펐다네. 나는 거기 있는 것 전부를 취하지 못했으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취했었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공간을 가득 채웠지만 내가 발견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었다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 소중한 선물의 무게에 짓눌릴 정도가 되었지만, 그러나 결코 짐스러움을 느끼지는 않았다네. 왜냐하면 내 온 가슴이 나를 지탱해준 까닭에. 그리고 이제 긴 여행끝에 나는 내 가슴이 여전히 따뜻해짐을 느끼고, 그 선물이 조금도 상실되지 않았음을 느낀다네. 사랑에는 끝이 없는 탓이라네.
일리치 참으로 아름다운 대목이지요. 오늘날에는 한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 그와 같은 편지를 쓴다면 곧바로 호모라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가 여자에게 그런 편지를 쓴다면 사람들은 이건 굉장한 성관계라고 말하겠지요. 위대한 랍비의 전통이나 기독교의 수도원의 전통에서는,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 플라톤과 같은 그리스 사람들이나 키케로는 이미 우정에 관하여 알고 있습니다. 즉, 내가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은 그대의 눈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퓨필라’라고 불렀습니다. 그대의 눈속의 검은 눈동자, 그것은 내가 그대의 눈속에서 보는 나의 ‘꼭두각시’라는 것이지요. (영어의 pupil〔눈동자〕은 puppet〔꼭두각시 인형〕와 함께 같은 어원 pupilla에서 파생하였다 ― 역자)
눈동자, 인형, 사람, 눈 ― 그것은 단순히 나의 거울이 아닙니다. 나라는 존재가 당신에게 선물이 되게 하는 것은 당신인 것입니다. 당신은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합니다. 나의 개체성, 나의 에고가 아닙니다. 이것은 여기서 상대방에게 응답하는 사람, 그 응답을 받아 다시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세인트 휴가 설명하는 것이고, 랍비의 전통에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지 못하면 나는 온전한 인간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나 로마, 그리고 또다른 오래된 전통에서 우정은 언제나 덕성(德性)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점으로 간주되었지요. 여기서 덕성이란 “좋은 일을 행하는 습관적인 성향”이란 뜻인데, 이것은 그리스 사람들이 폴리타에아(politaea), 즉 공동체의 삶이라고 일컬은 것에 의해 함양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물론 문제가 많은 공동체 생활, 정치적 삶이었습니다. 거기에는 노예제도의 뒷받침이 있었고, 여성들은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플라톤이나 키케로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것입니다. 그들은 훌륭한 공동체의 정치적 삶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가장 찬란한 꽃핌(開花)이 우정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오늘날의 정치적 생활로부터 우정이 꽃피어나거나 출현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기술공학의 세계에 그리스적인 의미의 정치적 삶이 존재하려면 그것은 먼저 우정에서 시작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은 절제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조심스러우며, 아취(雅趣)있는 우정을 가꾸는 것입니다.
나와 그대 사이의 우정, 그리고 제3의 존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지요. 간단히 말하여 한때 우리의 서구전통에서 우정이 정치의 최고단계의 꽃이었던 한, 오늘날 공동체적 삶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점에서 벗을 사귀기를 원하는 사람 각자가 가꾸는 우정의 결과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보통 우리 각자가 우리의 우정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말할 때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회는 이렇게 맺어지는 우정들의 정치적 결과만큼만 좋아질 수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정이 꽃피어나는 데 필요한 정치적 맥락으로서 민주주의의 의의를 부각시키는 것이지요.
브라운 좋은 사회는 덕성을 창조하고, 덕성은 우정의 기초라고 하면서 우리는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이제 순서가 뒤바뀌었군요. 이제 우리는 우정을 창조해야 하고, 우정이라는 맥락에서 덕행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그 공동체로부터 사회로, 또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정치로 나아가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미첨 어떤 점에서 그것이 바로 제리 브라운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지요. 당신은 오클랜드에 있는 당신의 그룹〈우리들, We the People〉을 가지고 하나의 맥락을 창조하였습니다. 거기서 처음에 다른 사람들과 당신 사이의 우정이 시작되었고, 그리고는 그 공동체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인간관계가 생겨났지요. 그리고 그로부터 어떤 형태의 정치가 커나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우리들〉을 방문하였을 때 경험한 것은 무엇보다도 당신과 또 거기 함께있는 사람들이 베풀어준 환대였습니다.
일리치 바로 그 말입니다. 환대(歡待)라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의미에서의 공동체 삶, 즉 좋은 사회에 수반하는 조건인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그것은 공동체적 삶, 즉 올바른 의미의 정치의 출발점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환대가 있기 위해서는 내가 당신을 맞아들일 수 있는 문지방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젼과 인터넷과 신문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아이디어가 안과 밖 사이의 벽을 붕괴시켜버렸고, 그와 더불어 누군가를 문지방 너머로 안내할 수 있는 가능성을 허물어뜨리고 만 것입니다. 환대가 존재하려면 사람들이 그 둘레에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피곤해지면 거기서 잠도 잘 수 있어야 합니다. 유명인사라든지 학력이 높은 고상한 사람이라든지 그러한 관념이 개입되는 곳에서는 환대는 깊이 훼손당합니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의 희망이 달려있는 한가지 단어를 골라야 한다면 그것은 환대라는 말이 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문지방과 테이블과 참을성, 그리고 귀기울여 듣는 습관을 회복하면서 환대의 관습을 부활하여, 거기로부터 덕성과 우정의 묘판을 만들어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체의 재생(再生)을 향하여 빛을 발산하게 될 희망 말입니다.
브라운 나는 당신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에 관해 쓴 것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욕구니 권리니 그리고 그러한 것을 돌보아야 할 제도의 필요성에 관해 논의가 무성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제도화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그리고 방금 우리가 얘기해온 우정과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조금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공동체라고 부르고 싶은 것의 기초는 제도가 아니라 좀더 자연스럽고 직접적인 ‘함께있음’에 있는 게 아닐까요?
일리치 사람을 환대한다는 것 ― 다시 말하여, 우리 오두막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온 그 누군가를 기꺼이 받아들여서 우리집 문지방의 이쪽으로, 여기 이 침상으로 안내하는 것은 인류학자들이 확인한 여러 특성들 가운데서 가장 보편적인 것 중의 하나로 보입니다. 아마 가장 보편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환대의 관습은 어디에서든 헬레네인들과 야만인들을 구분짓습니다. 그러니까 환대는 일차적으로 바깥쪽과 안쪽이 있다고 믿었던 그리스 . 로마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전체에 대하여 통용된 게 아니지요. 그러다가 가장 혁명적인 사람, 나자렛의 예수가 온 겁니다. 그는 비범하게 큰 것에 관해 얘기하고, 또 그것의 본보기를 보여줌으로써 기본적인 무엇인가를 깨트렸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누가 내 이웃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는 강도를 만나 흠씬 두들겨 맞은 유태인과 팔레스타인 사람(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합니다만, 실제로 그는 팔레스타인 사람입니다)에 관한 얘기를 들려줍니다. 처음에 두 사람의 유태인이 옆을 지나가면서도 쓰러진 그 유태인을 본척 만척 합니다. 그러다가 팔레스타인 사람이 지나가다가 그 유태인을 보았습니다. 그는 그 유태인을 품에 안고, 자신의 형제로 대합니다. 작은 내부집단 사이에만 한정되어 있던 환대를 가능한 한 넓은 범위의 인간 집단으로 확대하여 우리의 손님이 누구인지 우리 각자가 스스로 결정하라고 하는 이러한 ‘관습의 파괴’야말로 기독교의 핵심적인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서기 300년 무렵에 마침내 기독교회가 공인되었습니다. 주교들은 마치 행정장관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이 새로운 주교들이 맨처음 한 일이 ‘환대의 집’을 세운 것이었지요. 다시 말하여, 예수가 우리들에게 개인적 소명으로서 주었던 것을 제도화한 것입니다. 그들은 피난민을 위해, 이방인들을 위해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1600년 전 그 당시의 많은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들이 즉각 이렇게 소리쳤다는 사실입니다. “당신네들이 그렇게 한다면, 당신네들이 자선(慈善)을 제도화한다면, 당신네들이 자선이나 환대의 관습을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적인 사업으로 전환한다면,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누렸던 명성을 더이상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대문을 두드릴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언제나 여분의 이불과 묵은 빵조각과 양초를 준비해두고 살아온 것으로 유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서기 400년 내지 500년 이후 교회는 국가의 주요 수단이 되었고, 국가는 교회를 먹여 살림으로써 교회로 하여금 궁핍속에 있는 사람들의 작은 일부를 제도적으로 돌보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평범한 기독교 가정은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기다려, 그에게 문을 열어주는 불편하기 짝이 없는 임무를 면제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자선의 제도화이고 서비스라는 관념, 서비스 경제라는 관념의 역사적 근원입니다. 이제 나는 그러한 시스템이 개혁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러한 개혁을 위한 노력은 당신이나 내가 존경하는 용기있는 사람들의 몫이 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적어도 서비스 시스템이 수반하고 있는 악(惡)을 가능한 한 작은 것으로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팔레스타인 사람이 보여준 예가 무엇을 뜻하는지 느끼도록 우리가 깨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해야만 합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내 가슴속에 품을 것인지, 누구를 위해 나를 버릴 것인지, 누구와 얼굴을 맞대고 들여다 볼 것인지 결정해야만 합니다.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듯한 눈길로 내가 사랑스럽게 더듬는 그 얼굴, 그로 말미암아 나 자신의 존재는 하나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이 글은 1974년에서 1982년까지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내고 지금은〈우리들, We the People〉이라는 공동체를 이끌고 있는 제리 브라운(Jerry Brown)이 1996년 3월에 자신이 맡고 있는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에 이반 일리치를 초대하여 나눈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 대담에 참석한 또 한사람 칼 미첨(Carl Mitcham)은 펜 주립대학의 교수이다. 이 글의 출전은 Whole Earth, 1997년 여름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