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문화사가이자 사회비평가인 모리스 버먼은, 로마제국의 말기에 있었던 일이 21세기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미국이라는 제국이 죽어가고 있으며 미국인들은 사실을 외면하고 향락에 매몰되어 있으며 이 진로를 역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언한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버먼의 주장의 핵심은 이것이다. 그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 청교도가 상륙했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국을 끌어온 힘은 물질주의, 사익의 추구, 끊임없이 부(富)를 축적하려는 집념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적 풍토가 이 나라의 제국주의적 확장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결국 제국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허슬링’이라는 키워드로 식민지시대, 미국독립혁명으로부터 남북전쟁, 9·11 그리고 2008년 경제붕괴에 이르기까지 미국 역사를 개관하며 제국 실패의 근원적 뿌리를 찾는다.

목차

머리말

제1장 풍요의 추구
제2장 월스트리트의 지배
제3장 진보의 환상
제4장 역사의 반성
제5장 과거의 미래

감사의 말
주석
인명 색인

추천의 말

모리스 버먼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사회·문화 비평가 중 한 사람이다. 날카로운 지능과 도덕성을 겸비한 버먼의 저작은 통찰력이 있고, 명료하고 산뜻하다. 《미국은 왜 실패했는가》는 죽어가고 있는 제국의 시체를 해부한다. 그의 분석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 현 단계의 진실은 실로 매우 비관적이다. 미국의 대중은 집단적 자기기만을 통해 유아(幼兒)들이 되어 있다. 이들이 살아가는 가공의 세계에서는 욕망이 현실의 장애를 받지 않는다. 이 모두를 놀랍도록 명료하게 보고, 쓰는 버먼이 멕시코로 이주한 것은 유감이다. 미국에 있는 우리는 외롭다.
― 크리스 헤지스(《진보계층의 죽음》, 《환상에 빠진 제국》의 저자)

 

모리스 버먼은 더이상 아침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 책은 이 땅 위에 저녁 먹구름이 끼고 있는 동안에도 늦잠을 자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 제임스 하워드 쿤슬러 (《장기비상시대》의 저자)

 

미국이라는 제국의 쇠퇴가 엄연한 사실로서 점차 분명해짐에 따라서, 그 원인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분석만큼 긴요한 게 없다. 한편 그런 작업은 미국에서 금기시되어 있고, 그래서 버먼의 명료하고 직설적이며 설득력 있는 저작은 더욱 반갑다. 이 책은 미국 역사의 모순들과 그것들이 변화된 세계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예민하게 포착하면서, 좋은 의미에서 독자를 도발한다. 읽고 생각해야 할 진정으로 중요한 책이다.
― 리처드 D. 볼프(매사추세츠대학교 애머스트 캠퍼스 명예교수, 경제학 전공)

저자 소개

모리스 버먼(Morris Berman)
문화사가·사회비평가. 1944년 미국 뉴욕 로체스터 출생. 코넬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유럽 및 북미 유수의 대학에서 가르쳤으며, 2006년에 멕시코로 이주했다.

주요 저서로 The Reenchantment of the World(1981), Coming to Our Senses(1989), The Twilight of American Culture(2000), Dark Ages America(2006) 등이 있다.

역자 소개

김태언(金泰彦)
1948년 경북 출생
서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인제대학교 명예교수
역서로 《검둥이 소년》, 《오래된 미래》, 《케스―매와 소년》, 《아담을 기다리며》, 《농부와 산과의사》,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 등이 있다.

김형수
1974년 서울 출생. 연세대학교 사학과 졸업. 일본 도호쿠(東北)대학 대학원 비교문화론 전공
공역서로 《삶을 위한 학교》가 있다.

소개의 말

2016년 미국 민주당 대선 예비선거에 출마한 버니 샌더스가 미국의 서민들, 젊은층의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현재 미국의 현실에 대해서 솔직하게 말하고, 당적에 상관없이 극소수 상위 경제권력 계층에 아첨하며 공익보다 사익을 우선해온 기성 정치인들과 확실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에서 중산층은 멸종위기종이다. 극단적인 부정의(不正義)와 빈부격차는 기괴할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 샌더스에 따르면, 미국 상위 1%가 나라 전체 부(富)의 38%를 소유하고, 하위 60%가 2.3%를 소유한다! 미국은 선진국 중에 공공의료보험이 없는 유일한 나라이다. 서민은 치과 치료비용이 없어서 펜치로 이를 뽑아내고, 중산층일지라도 중병에라도 걸리면 졸지에 노숙자 신세로 떨어질 수 있다. 진정 이것이 저 유명한 〈미국독립선언서〉를 통해 유럽(영국)의 독재와 부패를 비판하고 공민도덕의 이상(理想)을 세우겠다고 천명한 사람들의 나라란 말인가?

저명한 문화사가이자 사회비평가인 모리스 버먼은, 로마제국의 말기에 벌어졌던 일이 똑같이 21세기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제국은 죽어가고 있으면 신민(臣民)들은 어린아이들로 변해서 사실을 외면하고 향락에 매몰되어 있다. 이 진로를 역전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버먼의 주장의 핵심은 이것이다. ‘공화주의’가 아니라 ‘허슬링(hustling)’, 즉 공공선은 아랑곳하지 않는 맹목적인 사익의 추구가, 그 옛날 아메리카 대륙에 청교도가 상륙했을 때부터 미국을 끌어온 힘이다. 미국독립혁명과 남북전쟁을 공화주의 정신의 승리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통념이지만, 실제로 미국을 견인한 것은 끊임없이 부(富)를 축적하려는 개인들의 집념이었음을 저자는 갖가지 문헌과 사례를 통해 설득력 있고 박진감 넘치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표면의 가벼운 부침(浮沈)은 있었지만 미국문화의 저변에는 항시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려는 사적 욕망이 흐르고 있었고, 그러한 본질이 이 나라의 제국주의적 확장을 가능하게 했지만, 동시에 결국 제국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요컨대 2008년 경제붕괴는 일탈이 아니다. 오히려 ‘허슬링 문화’, 끝없는 물질적 진보, 즉 아메리칸드림의 논리적 귀결이다. 미국은 무덤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비즈니스는 미국인들의 영혼 그 자체이다. 미국인은 자신이나 가족에게 생활의 안락을 조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인간적 행복의 원천으로서 비즈니스를 추구한다.”(프랜시스 그룬트, 작가)

버먼은 1장(풍요의 추구)에서 16세기부터 2010년까지의 미국의 역사를 개관한다. 일관된 흐름은 미국인들이 언제나 호전적인 경쟁자들이자 투기꾼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초기 청교도들은 공민도덕을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으로서 내세웠으며, 실제로 그런 전통이 존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식민지 초기부터 미국에서 ‘선(善)’, ‘공화국’이나 ‘공공복리’ 등의 공화주의와 관련된 핵심 용어들의 의미가 변화해가면서 ‘도덕’이 ‘이익추구’로 전도되기에 이르고, 결국 남북전쟁에 의해서 공화주의 정신은 완전히 사멸해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멈퍼드로부터 에리히 프롬, 라이트 밀스, 밴스 패커드,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등등 탐욕스러운 삶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비판자들이 미국에도 있었다. 특히 1970년대 중반에는 과시적 소비를 비판하며 ‘소박한 생활과 고매한 사고’가 대유행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 대항문화의 에너지는 정치적 힘을 갖지 못했고(즉 본질적 사회변화를 초래하지 못했다), 결국 레이건 시대로 들어오면서 완전히 상업주의의 주류문화에 흡수 합병되면서 억눌렸던 소비주의는 기괴스러운 수준으로 치솟는다.

“알 카에다보다 골드만삭스 같은 기업들이 미국에 더 위험한 존재이다.”(크리스 헤지스, 저널리스트)

레이건 시대에 들어와 미국의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긍정적인 사고와 결합한 개인의 노력이 성공의 열쇠라는, 신자유주의에 딱 맞는 철학을 유행시키면서 ‘허슬링’을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킨다. 이제 미국인들은 자본의 축적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게 된다. 이렇게 발동이 걸린 신자유주의 국가는 짐작할 수 있듯이 조지 W. 부시 재임기에 최고조(최저점)에 이르러 미국 공공부문은 사실상 와해된다. 오마바 정부도 마찬가지다. 2008년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바로 그 위기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장본인들(골드만삭스가 대표하는 월스트리트)을 대통령 경제자문으로 임명하고, 위기를 타파한답시고 거대한 공적 자금을 그들에게 쥐어준 것은 미국 국민만 외면하고 있는 일이고 세계는 익히 알고 있는 바다.

극도로 탐욕스럽고 경쟁적인 사회, 믿을 건 자신밖에 없다는 철학에 기반(?)한 사회에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인의 24%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폭력을 사용해도 된다고 생각한다!(78쪽) 전세계 총 수감자의 25%가 미국의 감옥에 갇혀 있고, 전세계 우울증 치료제의 3분의 2를 미국인들이 소비하고 있다. 2008년 1년간 항우울제 처방전이 1억 6,400만 건 발행되었고, 매년 미국인 1,400만 명이 주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NIMH). ‘허슬링 라이프’의 당연한 정서적 반응은 미친 세상이다.

“미합중국에서의 기술에 대한 헌신은, 소비주의를 부추기고, 사회경제체제를 원활히 하고, 계층 간 갈등을 덮어놓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깊다. 이 믿음의 시스템이 없다면, 미국인들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103쪽)

신자유주의 체제가 위기들(예를 들면, 9·11이나 2008년 위기)을 모면·무마해오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기술혁신’이다. 기술적으로 새로운 것은 허슬링 라이프에 필수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끝없이 기어오를 사다리가 있다는 것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끝없이 확장하는 기술주의적 변경(邊境)은 한때 확장했던 지리적 변경이 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계층 간의 적대감을 무마해오고 있다. 미국에서 기술은 일종의 종교이다. 즉 기술은 무한한 진보, 유토피아와 구원과 연결되어 미국사회에 결여되어 있는 사회적 접착제로서 기능한다. 돈 버는 것보다는 더 고귀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하는 유아화(幼兒化)된 미국 대중에게 제공되는 마취제 주사약이다.

영국의 철학자·사회비평가인 존 그레이에 따르면 바로 그 깊은 종교적 뿌리 때문에 2008년 붕괴로 자유시장경제를 통한 무한한 발전은 거짓임이 밝혀진 뒤에도 그 추종자들이 흉포한 행위를 계속하고 대중은 묵과하고 있는 현상이 지속된다.(103쪽)
랠프 네이더는 미국에서는 진보세력이 자신들의 뜻을 이룰 도구를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실제적인 힘,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 없이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90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단 한 번 허슬링 라이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삶을 추구했던, 정치적 대항세력이 미국 역사에 존재했다. 미국 남부이다.

“어느 곳에서도 산업혁명이 … 농업에 대가를 지불하도록 강요하지 않고서 성취된 일은 없다.”(라이몬도 루라기, 이탈리아 역사학자)

남부의 비전은 사회적으로 결속된 개인주의로서, 가족과 공동체와 시민으로서의 책임(공민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현대의 부르주아 개인주의 이데올로기와는 아주 다른 것이다. 즉 흔히 알고 있듯이 단순히 (도덕적 차원에서의) 노예제가 남북전쟁의 원인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것은 경제적인 문제, 근대화의 문제, 지역적 갈등 등 복합적인 이유가 얽혀 있는 문제이지만, 요점은 남부가 미국에서 유일하게 있었던 실력(정치적)을 보유한 대항문화, 반(反)자본주의 전통이었던 것이 가장 중요한 사안이었다는 이야기이다.
“(남부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좋은 삶을 허슬링으로 규정하는 데 있어서 유일하게 실력으로 반대한 세력이었다. … 다른 대항문화들은 ‘말’에 그쳤다면 남부의 전통은 ‘행동’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172쪽) 따라서 북부(링컨)의 비전, 끝없는 물질적 진보, 즉 아메리칸드림을 추구하는 관점에서는 남부는 사라져야만 했던 것이다.
북부가 남부에게 행했던 일은 미국이 ‘뒤떨어진’(즉, 전통적인) 사회에게 했고, 하고 있는 일과 똑같다. “너희한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안다(그것은 허슬링 라이프이다). 너희가 거기에 동참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가 강제로 너희를 우리 모습으로 재편성하겠다.” 이런 논리로 미국은 북아메리카 토착민을 거의 전멸하고, 멕시코의 절반을 빼앗고, 일본의 거대한 인구를 말 그대로 증발시켰고, 베트남을 폭격하였다. 그것은 땅을 초토화하고, 영혼을 초토화하는 정책이다. 패배자들을 ‘미국화(化)’하여 정체감을 없애는 것이 그 핵심이다.

“아주 조그만 비난에도 미국은 불쾌해지고 진실에 가볍게 찔리기만 해도 사나워진다. 모든 것을 칭찬해야 한다. 미국식 표현방식에서부터 가장 탄탄한 미덕에 이르기까지 전부 찬양해야 한다. … 이런 이유로 대다수는 영원한 자기숭배 상태에서 살아간다.”(알렉시스 드 토크빌)

재화와 돈, 권력, 기술 그리고 ‘진보’의 열광적 추구가 결국 배를 들이받아 산산조각 내고 있는 고래를 만들어냈다. 바로 미국의 외교정책이 9·11을 유발했다. 바로 미국의 경제정책이 2008년 붕괴를 초래했다. 미국의 생활방식 전체가 변증법적으로 바로 그 생활방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인들은 이 모든 것에 눈멀어 있다. 왜냐하면 미국은 400년 동안 허슬링과 ‘진보’의 종교를 구축해오면서 타자성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 ‘문화적 안개’는 너무나 짙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세뇌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알아차리고 사회의 진로를 바꿀 가능성은 없다고 버먼은 단언한다. 미국의 죽음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미국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파산에 가까이 이르렀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후(死後)의 미국이다. 그때에는(결코 그 전에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존재했던 대안적 전통, 멈퍼드 등과 남부(노예제는 없는)의 세계관이 현실적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라고 낙인찍혀가면서 ‘공공성’을 회복하자고 호소하는 버니 샌더스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은 ‘정치혁명’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한 사회가 무엇을 좋은 삶이라고 결정하는가가 정치의 핵심 아닌가? 모리스 버먼을 포함해서 미국에는 정말로 진지하고 용기 있는 비평가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 미국인들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세계인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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