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25일 오후〈경향신문〉의 주선으로 본지 김종철 발행인이 김우창 교수(고려대 명예교수)와 당면한 환경문제를 중심으로 두 시간 반에 걸쳐 대화를 가졌다. 이 대담에서 김우창 교수는 최근의 중국방문 경험을 돌아보며, 사회발전을 위해 흔히 추진되는 ‘거대 프로젝트’가 인간과 자연에 대하여 대규모의 성급한 실험을 강행하여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불러일으키기 쉽다는 점을 말하고, 현재 ‘한반도 대운하계획’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신중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져줄 것을 주문하였다. 중요한 것은 삶의 유기적으로 얽혀있는 전체맥락에 대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고려이며, 사람살이의 구체적인 필요에 대한 좀더 인간적이고 섬세한 배려이다. 이것을 간과할 때, 얻는 것은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일지 모르지만, 잃는 것은 우리들 자신과 다음 세대들의 생명과 생존의 근본적인 토대이다. 우리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이 이 지구상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으로 ‘좋은 삶’인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인지도 모른다.―이것이 이 대화의 결론이었다. 아래에 싣는 것은 이 대담기록의 전문인데, 요약본은〈경향신문〉2008년 1월 1일자에 게재되었다. 대담의 녹취, 정리는〈경향신문〉문화부의 손제민 기자가 맡았다. [편집자]
선거제도와 환경문제
김종철 〈경향신문〉이 새해에는 ‘생태-평화’라는 주제를 내걸고 우리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볼 계획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해 첫호의 지면을 위하여 제가 선생님과 함께 당면한 환경현안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보라는 게 신문사의 요청입니다.
김우창 먼저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김종철 선생이 우리나라 환경문제에 대해 제일 주도적으로 담론 활동을 해왔으니까 김 선생이 녹색당을 조직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김종철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만든 지 17년이 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예전부터 선생님께 배웠던 것을 써먹어왔을 뿐입니다. 오늘도 모처럼 선생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나왔습니다. 선거 직후니까 선거에 대해 한마디 하시면서 시작하는 게 어떨까요.
김우창 독일에선 녹색당이 정권에 참여까지 했는데, 우리도 녹색당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김종철 저는 녹색당이 한국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없을 것 같고, 그거 해서 문제가 풀리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김우창 완전히 풀리는 것은 크게 혼이 나야 풀리지요. 하지만 혼이 나기 전에 적당히 풀어놔야 하니까.
김종철 저더러 녹색당 하라는 말씀은 농으로 하는 얘기로 듣겠습니다.
김우창 심각하게 하는 얘기예요.
김종철 선거철마다 느끼는 거지만 특히 이번 선거를 보고는 선거제도를 계속 유지해서 인류사회가 직면한 절박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무척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거판에서는 전부 경제성장만을 얘기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는데, 이래서는 활로를 뚫을 수 없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김우창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제도가 최선의 정치체제는 아니지만 차선이라고들 하듯이, 달리 무슨 제도가 있겠어요. 나는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봐요. 우리나라를 계속적으로 키워온 꿈이 돈버는 꿈이거든요. 그리고 노무현 정부가 그런 욕망을 더욱 팽창?확대시켜준 측면이 있고, 거기에 대한 답변으로서 경제성장을 하고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약속에 표를 준 것이지요. 불가피한 사태 전개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종철 물론 의회민주주의 제도라는 게 문제가 있다고 해서 그것을 버리고 독재나 왕정으로 갈 수는 없지요.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적으로 지구온난화 문제 같은 것을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조만간 파국이 필연적으로 닥치게 되어 있는데, 여기에 대해 현재의 정치 시스템으로 대응한다는 것이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오늘날의 정치 지도자들이 개인적으로 어리석다든지, 특별히 악의를 갖고 있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경제성장 논리를 극복하지 않고는 이 상황을 타개해 나갈 수 없는 게 분명한데, 지금과 같은 정치 시스템 속에서는 경제성장을 거부할 수 없다는 데에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는 것 같아요. 성장에 대한 욕구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입니다. 그건 사람들이 국가라는 체제 속에 살고 있는 이상, 피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국가란 다른 국가의 존재를 경쟁적인 관계 속에서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람들은 국민으로 사는 한 끊임없이 힘을 길러야 한다는 강박적 의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 어려운 상황이지요.
김우창 그래서 녹색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녹색당이 있으면 새로운 문제의식을 정치 의제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김종철 민노당이 그동안 환경문제를 일부 흡수하긴 했지요.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민노당 수준이 아니라 본격적인 녹색당을 만들어서는 의회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무할 것 같습니다. 지방의회는 몇군데 가능할 수 있을지 몰라도….
김우창 지방은 더 안될 것 같은데요. 지역개발에 더 극성이니까.
김종철 그런 점은 있지만, 식품이나 보육문제 같은 비근한 생활문제를 해결한다든지 하는 점에서는 녹색당의 입장이 지역민들에게 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농업 관련 인구가 많다는 점에서도 유리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게 중앙정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전무해 보입니다.
김우창 오히려 중앙정부가 지역주민으로부터 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대중적인 열망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며 큰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지방에 가면 전부 지역발전, 신개발 도시 같은 구호가 넘쳐나거든요.
김종철 지방자치제 때문에 이득을 본 것은 결국 지방 토호들뿐입니다. 그리고 지방에서 설사 양심적인 사람이 단체장에 선출되고 의회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실제적으로 뭐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 지자체장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고, 재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열악한 재정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이 결국 지방 토호들과 결탁하여 골프장이나 짓는 것으로 귀결되어 버리거든요. 세심한 준비 없이 시작한 지방자치제 때문에 지방의 문화와 환경이 엉망이 되어 버렸어요.
김우창 지방에도 크게 의존할 수 없고 별다른 해결책이 없기 때문에 녹색당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녹색당이 나와서 개발의 속도를 줄이자고 설득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거죠. 녹색당이 활동하고 있는 유럽국가에서는 우리처럼 급하게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 경제성장에 얽매여야 한다는 생각은 확실히 덜해요. 물론 거기도 고용문제가 있기 때문에 성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잘 확립되어 있는 복지체제를 조금 완화해야 한다는 정도이지 우리와는 다릅니다.
김종철 독일의 경우 환경에 대한 정치적 배려가 우리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이 되고 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녹색당의 역할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는 문화적 풍토 탓이 아닌가 싶어요.
김우창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기보다 정치적인 의제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문화적 공간을 늘려야 하는 게 중요하지요. 이번에 15년 만에 중국에 다녀왔는데 확연히 달라져 있었어요. 15년 전에 갔을 때는 북경 공항이 시골 버스정류장 같았어요. 김 선생 같으면 그걸 그런 모습으로 남겨뒀어야 한다고 얘기할지도 모르겠지만, 중국의 정책결정자들 입장에서는 외국인들이 거쳐가는 곳인데 그렇게 남겨두는 것은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성장이나 개발에 대한 욕구는 전세계적으로 억제할 수 없는 것인데, 문제는 그걸 좀더 인간적으로 할 수 없느냐 하는 겁니다. 그 공간에 다른 종류의 관점을 투입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김종철 동아시아 지역이 비서구권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에 성공했다고 말들을 하는데, 실제로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중화 문화권의 전통적 질서 속에서 지내다가 서양으로부터의 충격 밑에서 식민지 내지 반식민지로 전락하였다가 가까스로 독립국가를 형성해왔기 때문에 서양에 대하여 극심한 열등감에 짓눌려 있었고, 그런 심리가 산업화를 촉진하는 동력이 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사람답게 대우받고 살고 싶다는 열망 때문에 힘을 키우고, 확대?팽창하려는 욕구가 컸으니까요. 소위 후진성에 의한 반동이랄 수 있겠지요.
김우창 세계적으로 후진적으로 밀린 데가 그런 욕구가 더 강하죠.
김종철 우리의 경우 그게 유교적 전통과도 관계가 있을까요?
김우창 유교적 전통에 힘입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얘기를 우리도 하고, 서양에서도 하지요. 뚜웨이밍(杜維明)도 그런 얘길 했고요. 하지만 산업화의 열망은 유교에 관계없이 어디에나 있는 것입니다. 이슬람 문화권에도 있고, 아프리카에도 있어요. 우리는 교육을 중시하는 전통의 힘에 의지해 빠른 산업화를 이루었지요. 이룩한 업적의 차이는 전통에 있지만, 그 열망은 어디에나 있는 겁니다.
김종철 다시 선거문제로 돌아와서, 의원내각제도 그 나름으로 문제가 있겠지만 대통령 직선제라는 것을 이대로 계속하면 우리나라가 전부 시멘트로 뒤덮여버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번에 많이 했습니다. 우리는 20년 전에 직선제를 회복시켜 몇차례 해봤지만, 번번이 선거 후에는 후유증이 너무 심각한 것 같아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당장에 표 때문에 매번 엄청난 개발공약을 내걸기 마련인데, 그게 결국 대대적인 환경파괴로 이어지는 공약이거든요. 새만금도 그랬고, 수도이전이니 균형발전이니 하는 것 때문에 결국 전국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것도 결국 선거 때의 공약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지요. 이번에도 이명박이라는 사람은 얼토당토않게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는데, 반드시 그 공약 때문은 아니겠지만, 어떻든 당선되었으니까 앞으로 그걸 추진하겠다고 할 텐데 큰 걱정입니다. 여론 때문에 설사 대운하는 포기한다 하더라도 그 비슷한 것은 얼마든지 하려고 할 텐데요.
김우창 그런 점에서 직선제에 대한 회의는 있을 수 있어요. 이명박 씨는 대운하나 그 비슷한 것을 계속 밀고나가면서 아마 신자유주의에 더 충실하겠지요. 사실 지방의 균형발전이란 새로 무엇을 짓는 것보다는 이미 있는 것을 활용하여 좀더 인간적인 것으로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직선제에 따르는 이런 문제가 내각책임제가 되면 고쳐질 수 있는 거냐.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김종철 하기는 일본에서는 대통령 선거를 하지 않는 내각제이지만,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수상 같은 정치 지도자가 1970년대에 일본열도개조론을 들고 나오면서 대대적인 토목사업이 전개되었지요.
김우창 내각제는 그게 반드시 좋은 해결책인지 더 연구해봐야 할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환경문제는 결국 문화적 해결책에 중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본의 경우 자민당이 계속적으로 집권하는 데는 건설사업이 계속적으로 뒷받침됐습니다. 정치자금과 토건사업과 관료가 연결되어 장기집권을 허용하는 식으로 작동했어요. 우리도 내각제로 바꾼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이 될지는 미지수예요. 우리나라에서 문화적인 변화가 시급히 필요하다는 것은 특히 지방의 경우에 더 그렇습니다. 지방에 가면 누구나 지역발전이란 걸 토건사업으로 생각합니다. 15~16년 전에 목포의 도시계획을 짤 때 참여한 적이 있는데, 목포 사람들은 대부분 개발을 원했습니다. 나는 대불공단에 사는 사람들이 땅을 내놓고 나가봐야 그 돈을 가지고 가서 다른 데서 잘살지 못할 거라고 얘기했어요. 당시 팀장이 작고한 이한빈 전 경제부총리였는데, 내게 “로맨틱한 얘기 좀 하지 마시오”라고 하더군요. 거기서 지역 텔레비전 방송하고도 인터뷰를 했는데, 별로 환영을 못 받았어요. 주민들도 황당한 소리 하지 말라는 분위기더군요. 그래서 문화적인 변화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동안 우리는 너무 급격한 변화 속에 살다가 보니까 자기 고장을 사랑한다는,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감수성이 없어졌어요. 어떻게 해서라도 잘살아 보자, 이런 욕망만 강화된 것이지요. 노무현 정권의 균형발전 정책 덕분에 땅값을 보상받아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아요. 여러 대에 걸쳐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인데도, 보상금을 준다니까 “나 죽어도 여기 못 내놔” 그런 사람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우리사회는 진보와 보수 개념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어서 뭐가 뭔지 알 수 없지만, 진짜 옛것을 지키려는 보수적인 사람도 필요해요. 그러나 그게 돈 앞에서 다 사라져가고 있어요.
김종철 우리나라 보수파는 오히려 오래된 삶터를 파괴하는 데 적극적인 사람들이지요.
김우창 보수라고 하는 그 사람들은 사실은 ‘진보’주의자들입니다. 그런 ‘진보’주의자들은 환경문제에 대해 입장이 없어요. 그 사람들에게는 양반집을 보존하거나 그런 것은 중요한지 모르지만, 향토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요.
김종철 문화적 풍토가 중요하고, 지역민의 의식이 중요한 것은 틀림없지만, 이번에 태안 기름유출 사고에서 보듯이 지역에서 아무리 알뜰하게 살아보려고 하더라도 대형사고가 한번 터지면 지역사회는 그날로 망해버립니다. 그러니까 역시 국가적 차원의 정치를 무시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이번에 원유유출 사고는 피해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원자탄이 터진 거나 다름없어요. 완전히 삶이 파괴되어 버렸으니까요. 앞으로 수십년이 걸려도 복원될지 말지 모르는데, 그때까지 주민들이 기다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들은 정부 보상금을 얻어 이주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 좁은 나라에서 이주할 데가 어디 있습니까. 어떻게 해서 보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사람의 삶이 정든 터전에서 뿌리가 뽑혀버렸는데 그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어요. 수십수백년 동안 마을 속에서 형성되어온 인간관계도 다 파괴되는 것이고, 유형무형의 손실이 엄청난 겁니다. 사실 그런 인간적 손실은 보상 계획에 반영될 리도 없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한데, 지금은 사람들이 남들의 삶터는 물론이고 자신의 삶터에 대해서도 깊은 인식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그리고 설사 인식이 있더라도 저런 사고가 터지면 모든 게 허사가 돼요. 사실 이번 태안 사태는 극단적인 경우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전체가 다 망가져 있어요. 실제로 온전한 공동체가 남아 있는 데가 지금은 어디에도 없어요. 나라 전체가 난민촌이에요.
김우창 우리나라는 특히 좁으니까 갈 데도 없지만, 그것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간단한 처방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합니다. 중국도 삼협댐 건설하면서 수십수백만명을 이주시켰어요. 이주한 사람들은 새 터전에서 문화적?정신적인 것은 차치하고 경제적 의미에서만이라도 살 만한 땅에 간 것도 아니죠. 이주할 땅이 있어서 가더라도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하자면, 그러면 경제발전이나 성장이라는 것은 그만두거나 서서히 해야 한다는 식으로 답변이 있을 수 있지만 정치를 하는 사람들로서는 세계 여러 나라와 비교하여 자기 나라가 경제발전, 성장을 하지 말자고 얘기하기가 어렵게 돼 있거든요. 세계적으로 볼 때 유럽, 특히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비교적 대응을 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유럽을 배워야 한다고 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그것도 또 어려운 일입니다. 며칠 전〈뉴욕타임스〉에 중국의 한 강변에 있는 철강회사에 대한 얘기가 나왔어요. 거기 오염이 얼마나 심하냐 하면 빨래를 해도 말리는 도중에 검게 돼버린다고 해요. 철강회사는 모택동 때 지어졌지만 특히 발전한 것은 비교적 최근으로 80~90년대입니다. 그 발전의 기초는 독일 루르지방 철강회사를 전부 뜯어서 옮겨온 것입니다. 신문기사는 루르지방은 맑은 공기를 향유하고 있는데, 이 산업을 가져온 중국은 굉장히 오염에 시달리고 있다는 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루르지방은 중국에 그것을 팔아넘기고 돈을 받았지만 실업자가 많이 생겼어요. 정보기술이나 생명공학 등 새로운 산업으로 다시 회복중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실업자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면 중국은 독일로부터 그걸 사지 말았어야 했는가. 그렇게 얘기할 수는 없거든요. 성장?발전을 해야 한다는 압력이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문화적인 해결은 지역적인 해결뿐 아니라 세계적인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환경오염 산업이 어디로 갈 거냐는 세계적인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기술에 의해 오염을 방지하는 세계적인 기금을 걷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선진국에서 많이 걷어야지요. 후진국에서는 그걸 감당할 수 없으니까. 유럽인들은 중국인들이 오염방지 안한다고 매번 비난하지만, 중국인들은 비난 받더라도 철강산업 같은 오염산업을 안할 수 없어요. 중국 강철이 기초가 돼 유럽인들은 생활에 편리한 것들을 쓸 수 있어요. 오염산업에 대한 대응을 위한 연합이 세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향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역문화를 지킬 수 있도록 세계적 연대도 강화되어야 합니다.
환경문제, 국제적 연대 없이는 해결 안된다
김종철 환경문제는 특히 국제적 연대 없이는 해결이 안되는 문제입니다. 자원문제든 오염문제든 모든 나라가 전부 얽혀 있거든요. 예를 들어, 독일이나 유럽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아시아 사람들보다 환경에 대한 의식수준이 높다고 할 때 그것은 자기들의 산업이 지식산업이나 서비스산업 위주로 가고 있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수십년 전까지만 해도 자기들도 심각한 공해를 일으키는 산업을 토대로 먹고살았지만 차차로 그런 공장을 산업후진국으로 이전시켜버리고 자기들은 깨끗한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된 거지요.
김우창 누가 누구를 나무랄 자격이 없는 거지요.
김종철 환경론자들 가운데도 이런 논리를 펴는 이들이 있어요. 환경보호를 위해서라도 경제성장 속도를 높여서 빨리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고요. 소득수준이 높은 선진국은 환경도 좋다는 거죠.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 전체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겁니다. 선진국이 되어 아무리 탈공업화하여, 지식산업 위주로 간다 하더라도 그들이 지식산업을 하고,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계의 어느 곳에서 반드시 대량으로 값싸게 물건을 만들어내는 굴뚝산업이 있어야 하는 거죠. 오늘날 유럽이나 선진국 사람들이 비교적 양호한 환경에서 안락한 생활수준을 즐기고 살 수 있는 것은 중국이나 인도와 같은 환경규제가 느슨하고 초저임금을 받고도 일할 수 있는 풍부한 노동력이 있는 산업후진국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선진국이니 후진국이니 하는 것은 결국 동전의 양면이죠. 세계의 한 부분인 자기들만 좋아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닌 거죠.
김우창 지금까지 개발이 안된 사회에서 개발하려는 욕구가 강한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공해산업을 후진국으로 넘기는 것도 선진국의 현실이지요. 둘 다 현실인데 현실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데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세계적 연대 속에 환경오염에 대한 대책을 위한 기금을 만든다든지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철강산업은 환경오염이 심한 산업인데, 최신 기술을 이용하면 오염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습니다. 오염을 줄이는 데 필요한 기술과 자금을 국제적으로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종철 그런 일을 위해서 국제 NGO들의 역할도 기대해야겠지만, 경제정의의 입장에서 오염산업이 지역사회와 환경에 끼치는 손상을 제대로 비용으로 계산하여 제품가격에 반영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렇게 되면 선진국 사람들이 지금처럼 풍요로운 소비생활을 하는 것은 어려워지겠지만 말입니다.
김우창 그것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강제적으로 부과할 수 있는 힘이 어디 있느냐고 할 때 지금은 안될 것 같아요. 그러면 다시 문화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되돌아가는데, NGO에 기대하고, 보통사람의 선의에도 기대하고, 교토의정서라든지 하는 그런 국제적 협약에도 기대해야겠지요. 그런 정도로 국제적인 정치체제 안에도 반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유럽연합(EU)에는 상당히 오래 걸리긴 했지만 환경적 측면에 대한 고려가 정치체제 안에 들어가 있어요.
김종철 공정무역 운동도 한가지 방법이 되겠지요.
김우창 공정무역은 보통사람의 선의에 호소하는 방법인데, 경제적인 이해타산에 의해 운영하는 사람들이 거기에 대단히 밝아요. 이익도 생기는 운동이기 때문에 지속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종류의 운동도 조직하고, 그게 정치체제 안에도 반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김종철 그런 점에서도 아무래도 현재의 정치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김우창 흔히 대통령을 뽑을 때 사람들이 인물이 아니라, 정책에 기초해서 투표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거기에 대해서 약간 유보적입니다. 대체로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하거나 발전시키겠다는 게 소위 정책이고, 아무것도 안하겠다는 것은 정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정책을 얘기하는 것 자체가 개발논리에 연결되는 발상이지요. 그런데 가령 집안에서 부모가 정책을 가지고 뭔가 하자고 하면 자식들이 괴로워지겠죠. 부모는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지, 정책으로 뭔가를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가정과 국가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좀 낭만적으로 생각하면 대통령은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돌봐주는 사람입니다. 빠진 게 있으면 좀 보태주고, 너는 좀 천천히 가라고 하는 그런 식으로 말이죠. 집안에서 부모가 자식들의 일을 도와주듯 하는 게 대통령의 일이어야 합니다. 정책을 내세우고 거기에 기초해서 일하라면 결국 개발로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김종철 저는 지금과 같은 선거제도 가지고는 결국 인류사회가 파멸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런 선거제도 하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대중들이 듣기에 달콤한 공약들을 남발하고, 그 결과로 매우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기 쉬워요. 거기다가 정치하는 사람들이 내다보는 시간이란 기껏해야 4~5년일 뿐이지, 장기적인 미래가 아니거든요. 아무리 지구온난화가 가공할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문제를 유권자들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가는 아마 선거에서 떨어지기 쉬울 겁니다. 국회의원이든 대통령이든 정치하는 사람들은 단기간에 뭔가 가시적인 성과를 올려서 다음 선거에서 다시 뽑히거나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욕심으로 끊임없이 쓸데없는 짓이나 계속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 있어요.
김우창 선거를 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뭘 하겠다고 밀고나가려고 하지 않나요. 옛날 임금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은 오늘날에는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김종철 인류사회가 어쩌다가 잘못된 정치제도를 택하는 바람에 결국은 망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이런 정치제도 속에서는 언제까지나 “성장, 성장” 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김우창 아까 정치를 가족에 비유하면서 정책 들고 나오는 아버지 때문에 괴로워진다고 했는데, 사실 아이들 성장하는 것을 볼 때 한없이 크는 아이가 상상이 안되지요. 일정하게 성장하고 끝나야 정상이지요. 성숙한 사회는 성장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어요.
김종철 자본주의가 성장을 멈추면 그날로 생명이 끝나겠지요.
김우창 맑스주의도 결국 성장해서 더 편하게 살게 해준다는 건데요. 사회주의나 자본주의가 다 성장 자체를 기대하는 데에는 차이가 없어요.
김종철 결국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국제적 협력을 통해서 할 수밖에 없는데,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경쟁과 긴장의 관계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경제성장을 멈추고 환경과 평화를 위한 국제협력 체제를 만든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지 막막합니다. 최근에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란 일본 평론가가《세계공화국으로》라는 책을 내놓았기에 읽어보았습니다만, 정말로 세계공화국이 성립하기만 한다면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지금 유엔이 실질적으로 아무 기능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령 모든 국가가 군대를 포기하고 국가방위를 전부 유엔과 같은 초국가적 기구에 맡기자고 하는 가라타니의 제안이 과연 실현가능한 제안인지 의문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지극히 몽상적인 생각일 뿐이지요.
김우창 성장과 환경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결이나 문화적 해결은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 어쨌든 어느 한 가지 접근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풀어나갈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서 부분적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지요.
무엇을 위한 대운하인가
김종철 지금과 같은 경제성장이 아무리 파괴적이고 어리석은 것이라 해도 그것을 일시에 멈추면 대재앙이 되겠지요. 그러니까 경제의 관행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면서 환경과 조화를 맞추도록 방책을 강구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경제논리와 환경논리는 늘 충돌하기 마련이고, 결론은 언제나 환경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명박 씨가 당선되자마자 정부조직 개편설이 들리는데 환경부 없애자는 얘기부터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다른 각도에서 환경부를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환경부가 있기 때문에 정부의 다른 부처가 환경에 대해 신경을 안 쓴다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환경부가 있으니까 골치 아픈 환경문제는 거기서 다 알아서 하겠지 하고는 대통령이든 다른 부처의 장관이든 노상 하는 일이 결국은 환경을 망가뜨리는 일들이거든요. 실제로 환경부에 최소한의 환경을 지킬 권한도 안 주면서 말이죠. 저는 환경문제에는 따로 전문가가 있을 필요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전문가가 따로 없고, 정부 부처 중에 인권부가 따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과 꼭같은 이유로 환경은 기본적으로 모든 정치인, 공무원, 기업가, 언론인, 학자, 교사, 시민들이 갖추고 있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시민적 교양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환경부가 따로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나 물론 새로 들어설 정부가 그런 생각으로 환경부 존폐여부를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운하는 물론이고 얼마 전에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통과된 연안특별법 같은 것은 가까스로 남아있는 그린벨트도 다 없애고, 환경영향평가도 생략하고 이제는 난개발을 아주 합법적으로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거기에 환경부가 딴소리를 하니까 그것도 귀찮다는 거지요.
김우창 환경부도 있어야 하고 환경단체도 있어야지요. 환경단체에서 정권 잡아서 성장 그만두자고 하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김종철 이명박 캠프는 선거기간 중 대운하가 환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물자 운반하는 데 배를 이용하면 이산화탄소 덜 내놓는다는 논리로요. 요새 선거 후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저녁 9시 뉴스에서 대운하에 관해 보도하는 방송 앵커나 기자들의 어조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어요. 선거 전에 비해서 어조가 상당히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선거 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운하에 대해 국민의 상당수가 찬성한다지요. 참 사람들의 심리가 돌아가는 게 무서워요. 하기는 깨고 부수면 당분간은 흥청망청할 수 있겠지요.
김우창 노무현 정부를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이유의 하나는 토건산업을 많이 하려 한 것입니다. 한미FTA를 추진한 것도 문제가 크지만 그것은 좀더 장기적이고 추상적인 문제예요. 하지만 토건 프로젝트는 매우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문제입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통해서 돈을 벌겠다는 이런 프로젝트는 사람의 심성을 바꾸어놓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김종철 남한 땅에는 이제 토목공사를 더 계속할 공간도 없어요.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어디를 가나 거미줄처럼 도로가 뚫려 있고, 방방곡곡에 골프장 공사중입니다. 지어봐야 돈도 안된다는데도 계속 골프장을 짓습니다. 이런 토목공사를 벌이는 동안에 크게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 대통령 당선자는 평생 토목공사가 체질화된 사람인데, 결국 온 국토가 만신창이가 될 것 같습니다.
김우창 우리가 그에게 정말 위대한 지도자가 되도록 권유하고 설득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자기 고집 하나로만 밀고나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말이에요. 운하 문제도 환경적 차원뿐 아니라 여러 차원에서 다시 한번 진지하게 검토해보자는 거죠. 설사 내 속마음은 절대 반대라 하더라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식으로 제안했으면 좋겠어요. 국민생활 100년 대계 차원에서 환경, 경제 등의 차원에서 열린 마음으로 원점에서 다 같이 검토해보자는 거죠. 검토한 결과 모든 면에서 좋다고 합의가 된다면 추진할 수도 있겠지요.
김종철 이명박 측에서는 선거 동안에 소위 747공약을 내세웠지요. 연간 7%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불, 7위의 경제강국을 만들겠다는 건데요.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마음이 움직여 표를 준 측면이 있어요. 그러면 새 정부는 최소한 경제가 잘 풀린다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할 텐데, 그러나 지금과 같은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을 구조화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 자체를 검토하지 않고, 어떻게 서민경제를 안정시킬 수 있을까요. 결국 깨고 부수는 토건사업이나 다른 형태의 경기부양책을 써서 일시적인 거품효과를 노리는 것밖에 무슨 방법이 있겠어요. 애초에 경제성장 목표치를 높게 내건다는 것 자체가 삶의 장기적인 지속성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다는 징표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김우창 경제성장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원래 많이 유보적이었지만 요즘은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이제 좀 방법을 달리한 경제성장을 해보자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내가 김 선생을 도우면 김 선생이 나를 도와주고, 도움을 서로 주고받으면 결국 GDP가 올라가지 않겠어요. 경제성장을 하되 상대방의 삶을 서로 돕는 식으로 하자는 거죠. 내가 집에서 밥을 안 먹고, 시내 나가서 사먹으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겠지요. 인간의 삶에서 교환관계가 활발해지면 성장에도 도움을 주고, 인간관계도 좋아지지 않겠어요. 이왕 성장해야 한다면, 소프트웨어나 서비스로 하자는 겁니다. 사치나 퇴폐적인 게 아니라, 인간적인 삶을 향상하는 쪽으로 경제성장을 하면 되지 않을까요. 공정무역 같은 것도 현지조사를 해야 하니, 돈을 들여 갔다오고 보고서를 써야 하고, 그러다 보면 경제성장에 플러스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다 인간적인 발전을 통해서도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김종철 하기는 우리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고 있는 이상, 성장을 전혀 안할 수는 없겠지요. 어떻든 일자리가 계속 나와야 하고, 먹고살 수단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나 지금 대중이나 정치인들이 생각하는 성장은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런 상부상조의 교환을 통한 경제의 안정성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해외관광을 자유롭게 하고, 골프장 자주 드나들고, 물건 많이 사들이고, 첨단제품 많이 소유하고, 과거보다 더 크고 편리한 집에서 살겠다는 것이지요. 요컨대 에너지를 펑펑 쓰는 생활을 하자는 것이지요. 지난 50년간 1인당 주거공간이 4배나 커졌다는 통계를 어디서 본 적이 있습니다. 땅덩어리가 고무줄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성장을 해나간다는 게 도대체 지속가능할까요?
김우창 새 대통령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좀 방법을 세련되게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물질적인 성장만이 아니라 질적인 성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시골의 초등학교에 강당을 짓는 데 건물 규모를 크게 하기보다는 음향효과가 더 좋은 것이 되도록 돈을 쓴다든지, 직장을 못 구하고 있는 음악가들이 그런 학교에 가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돕는다든지, 그런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경제문제를 한달음에 해결하려는 게 토건적 해결방법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작고 가능한 것으로 채워나가자는 것입니다. 나나 김 선생이 충분히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경제학자들이 그런 쪽으로 더 연구했으면 좋겠어요.
김종철 경제학자들이 ‘희소성’의 논리에 매달려 경쟁력이니 효율성이니 하는 상투적인 계산에 열중해 있는 이상, 그러한 근본적인 성찰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우창 이명박 씨의 운하건설이라는 발상이 청계천말고도 독일 운하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 문제가 불거지기 전인 2년 전에 독일의〈디자이트〉편집인인 테오 좀머와 운하에 대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함부르크에서 라인강 따라가는 이 운하가 왜 효과적이냐 하면, 그것이 도나우강과 연결되어 동유럽과 러시아에 이르는 큰 교통로이기 때문에 독일에 이익을 가져오고, 유럽에도 이익을 가져온다는 겁니다. 독일 동쪽으로 상품이 이동함으로써 이득을 갖게 된 거죠. 그러나 운하가 우리에게도 그런 효과를 가져다줄 것인가, 그건 아닌 듯해요. 독일의 실정도 좀더 깊이 파악했으면 좋겠어요. 생태학자 콘라드 로렌츠만 하더라도 운하의 콘크리트 제방에 대해 비판을 많이 하고, 철폐운동도 많이 했어요. 물이란 자연스럽게 흘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강은 안 보이는 듯하지만 근처의 농사나 인간의 삶과 관계를 맺으면서 흘러가는 것이지요. 운하를 건설한다면 그 경제적 가치가 보통사람으로서도 아, 그렇겠다고 할 정도로 분명해져야 합니다. 중국에서도 모택동이 시작한 삼협댐 같은 것에 대해서 그동안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최근에도 어떤 중국인이 비판적으로 쓴 리뷰가 하나 나왔어요. 댐 때문에 그 근처의 농토가 완전히 황폐화했다는 것이죠. 그런 후속 연구를 많이 해야 합니다. 이번에 북경에 가보니까, 원래 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청계천 비슷하게 복원해 놓은 게 있었어요. 주변의 지하수 등을 끌어다 물을 흘려보낸다고 해요. 올림픽을 대비한 것인데, 올림픽이 끝난 다음에는 주변이 황폐화하고 큰 곤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요. 경제발전은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떠나서 중요한 국가의제가 되어왔는데,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잘 검토해봐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인데, 물자 이동을 위해 그런 운하를 꼭 건설해야 하는 것인지 좀 깊이 검토를 했으면 좋겠어요.
김종철 아무리 얘기해도 그 사람들이 말을 안 들으니 문제지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좀더 이성적으로 관련된 이슈를 다각적으로 철저하게 고려하고, 민주적 토의를 거친 다음에 하든지 말든지 결정해야 할 텐데, 덮어놓고 힘이 있다고 무작정 밀고나가려고 하니까 문제지요.
김우창 그렇게 하면 데모하는 수밖에 없지요. 그러니까 녹색당이 필요한 것이지요.
김종철 대운하는 유럽의 지리풍토에서는 맞는 것인지 모르지요. 유럽은 연중 비가 내리지만, 우리나라는 1년에 한차례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집니다. 그런 것에 대비해 수량을 고르게 하기 위해서 수중보니 뭐니 하는 것을 만든다고 합니다만, 결국 그게 댐이거든요. 무수히 많은 댐을 만든다는 건데, 그러면 강은 다 파괴되는 거죠.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남한에 있는 강을 전부 연결해서 한반도 대운하를 만든다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강이 없어져요. 우리 다음 세대는 강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김우창 우리나라가 금수강산이라고 하는 것을 나는 전에는 별로 믿지 않았어요. 자기 자랑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금수강산이라는 말도 우리 민족이 제일이다 하는 식의 말이 아닌가 해서 믿지 않았는데, 그러나 이런저런 나라를 다녀보고는 우리나라의 산이나 강이 얼마나 고마운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산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죠. 그런 것은 보이지 않는 큰 자산입니다. 산과 강을 허물어버린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가끔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토목공사 벌이기 좋아하는 우리나라에서 돈을 들여 산을 지으라고 했으면 틀림없이 산을 만들려고 아우성을 쳤을 거라고요. 이번에도 허허벌판인 북경에서 버스로 오가면서 서울은 산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김종철 저는 어떤 때는 산이 많아 갑갑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그나마 산이 있어서 이렇게 무분별한 개발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숨을 쉴 여지가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해요. 그런데 산과 강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시적?종교적 감수성을 키워주는 원천이 아닌가 합니다. 유유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는 것은 옛날부터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우주의 시간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명상하는 데 불가결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이 사라지면 이 나라에서는 시도 예술도 철학도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오랜 세월 동안 시인들이 끊임없이 산과 강에 관해서 이야기해왔다는 것은 사람의 삶에서 그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건강한 생활을 하자면 물질적 조건도 갖춰야 하지만, 이런 차원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시적 체험도 반드시 필요할 텐데요. 대운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것을 건설하지 않으면 정말로 달리 살 길이 없다면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 선거 기간 중에 이명박 캠프쪽 사람들의 말도 자꾸 바뀌었어요. 처음에는 물류 때문이라고 했다가 그 다음에는 관광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서 대운하를 건설해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100명이 10년간 연구했다지만, 실은 준비도 안돼 있다는 뜻이고, 이게 꼭 필요한 사업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지요.
김우창 연구팀에 김종철 선생을 포함해서 시인이나 문인들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경제정책이나 건설관계 전문가들에게만 그 문제를 맡겨둬선 안될 것 같습니다.
자유무역의 이데올로기와 농업문제
김종철 저는 환경영향평가를 할 때에도 평가위원 가운데 반드시 시인들이 들어가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문제를 단지 경제적 효율성이나 수치상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삶과의 조화라는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적 혹은 미학적 판단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환경문제를 생각할 때에도 제일 중요한 것은 농업을 살리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은 사람의 생활방식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순환적인 패턴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환경문제는 근본적 해결책을 찾을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 정부도 그렇고, 지식인들도 농업문제에 너무들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김우창 농업을 살리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는가가 문제입니다. 경제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농업이 돼야 하는데 말이지요.
김종철 지금 상황에서 제일 큰 문제는 자유무역 논리인 것 같아요. 자유무역의 이름으로 미국을 위시한 대규모 농업국의 잉여농산물이 헐값으로 국제농산물 시장에 쏟아지기 때문에 세계 전역의 소규모 농민들의 삶이 초토화되고, 각국의 농업기반이 붕괴되고 있거든요. 저희가 한미FTA를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사실 미국은 무역 상대국가에 가장 강력하게 자유방임 경제시스템과 농산물 시장개방을 요구하는 나라지만, 정작 미국정부는 자기 농민들에게 막대한 보조금을 주고 있잖아요. 물론 미국에서도 지금은 다 기계?화학적 농업을 하고 있으니까 소농은 거의 다 소멸하고, 대농들뿐입니다. 그런데 이 대농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다 보니까 최근에도 미국의회에서 농업보조금을 사실상 증액했다고 합니다. 미국신문을 보니까 평균적으로 한 농가에 연간 100만 내지 200만불이나 정부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래 땅값이 싼 데다가 이런 막대한 보조금까지 받는 미국농업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농민들이 어떻게 경쟁을 할 수 있겠어요. 불가능한 일이지요. 뿐만 아니라, 그렇게 되니까 점점 제3세계의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의 빈민으로 전락하여 온갖 사회문제, 고용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큰 재앙이지만, 더 불길한 것은 이런 식으로 폐농인구가 늘면서 세계 전역에서 농경지가 급속히 사막화하는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미국 자신도 2차대전 이후 줄곧 기계?화학농사를 해오는 바람에 토양침식이나 토지열화(劣化) 현상이 심각해지고, 지하수도 고갈되고, 염해현상도 생기면서 이미 농경지의 3분의 1 이상이 사막화되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러다 보면 결국 앞으로 머지않아 세계의 농업이 괴멸적인 붕괴를 할 가능성도 크다고 봐야지요. 작년 금년 동안 국제곡물시장에서 밀과 옥수수 가격이 2~4배나 올랐는데,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다가는 지금도 식량자급률이 터무니없이 낮은 한국사회가 어떤 엄청난 재앙에 직면할지 몹시 불안합니다. 하여튼 농사를 살리는 일이 급선무라고 저는 늘 생각합니다만, 한국정부가 이런 임박한 세계적 농업위기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대비책도 없이 덜렁 한미FTA를 체결해놓고는, 자국의 농업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호정책을 실시하면서 바깥을 향해서는 농산물 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라고 요구하는 미국의 이중성에 끌려다니는 게 과연 옳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김우창 당장 현실적으로 그게 우리에게 적합한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어요. 미국이 그렇게 보호하기 때문에 우리 농업이 경쟁력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도 보호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럴 수 없는 문제지요. 미국도 보호하고, 우리도 보호한다면 우리나라의 물가는 상당히 올라가게 되겠지요. 유럽에서도 농업에 지원을 많이 하는데, 유럽이 자기 농업에 지원을 많이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가 경제발전을 못한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그래서 진보주의자들은 유럽 국가들이 농업에 보조금을 주지 않으면 아프리카가 경제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김종철 경제논리로만 보면, 지금 우리가 농업을 보호해서 국내시장에서 국산 농산물만 유통시킨다면 물가가 올라가겠지요. 그러면 임금도 더 올라가야 하고, 결과적으로 한국산 제품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져 지금과 같은 경제수준을 유지할 수 없게 되겠지요.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지금처럼 가서는 필연적으로 파멸이 올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예요.
김우창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보다는 중국과의 관계지요.
김종철 지금 중국산 농산물이 우리 식탁을 대부분 점령하고 있고,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국산 농산물이 앞으로 갈수록 한국농업에 위협이 되겠지만, 실은 중국도 언제까지나 안심하고 농산물을 수출할 수 있는 여건은 아닙니다. 지금도 자기들 내부에서도 굉장히 문제가 많고 논쟁이 많아요. 실제로 중국은 지금 농산물을 수출도 하지만, 식량을 자급하는 것이 아니라 갈수록 해외에서 대량의 식량을 수입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되고 있거든요. 경제발전으로 식생활이 서구화하면서 육류나 유제품 소비가 굉장히 늘어난 탓도 있지만, 많은 농경지가 산업용이나 기타 용도로 전환되면서 예전보다 농사지을 땅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탓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중국의 농업도 자급문제든 지속성의 문제든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 분명합니다. 현실이 이렇지만, 지금 전세계가 자유무역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매달려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그냥 관성대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을 우리만의 독자적인 힘으로 뚫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계속 간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김우창 정치는 인간의 인간적 생활에 대한 의식을 정식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현실과의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가 늘 정치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사실 농업문제도 정치가뿐만 아니라 경제학자,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서 숙의를 하고, 정치적인 해결을 모색해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근본에 있는 것은 결국 문화적 능력입니다. 농업문제도 앞으로는 결국 유기농으로 가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인데, 유기농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것도 결국 문화적 성숙의 문제예요. 물론 요즘 점점 인기를 얻고 있는 유기농산물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인 것은 사실이죠. 수입이 적은 사람들은 공해식품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사회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면서 한편으로는 유기농 식품이 왜 필요하고 좋은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넓혀지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요. 이번에 중국에 갔을 때도 호텔에 있는 비누를 보니 유기제품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인쇄만 그렇게 한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중국에서도 유기농 제품이 좋은 거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지요. 정치 지도자들도 이제는 양적 성장이나 크고 거창한 것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좀더 문화적으로 성숙한 관점에서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농업문제나 한미FTA 같은 문제를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정치하는 사람들도 국민들이 모두 유기적인 삶을 사는 게 좋은 삶이라는 인식을 갖고 정치를 해야 합니다.
김종철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사심이 앞서지 말아야 하는데, 현실은 오히려 거꾸로라는 게 문제입니다. 자기들은 좋은 것 먹고 사니까 답답할 것이 없지요. 지금은 식품오염 문제도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 중국에서 새로 나온 식품관계 책이 있는데 그 책의 요약본을 읽어봤어요. 그 책은 나오자마자 중국에서 판매가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책을 쓴 저자도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해요. 무슨 책이냐 하면 중국의 식품오염 문제를 몇년에 걸쳐서 발로 뛰면서 철저히 취재하여 쓴 일종의 탐사저널리즘 형태의 저서인데, 중국의 농산물 생산현장에서부터 식품가공과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현장을 조사한 뒤에 쓴 책입니다. 그 책 첫머리에 “지금 중국인들이 자신들이 먹는 식품의 진상을 알면 중국에서 당장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어요. 정말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중국의 식품위생이 엉망이라는 겁니다. 온갖 맹독성 살충제, 항생제, 독성물질이 마구잡이로 식품에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돈을 위해서는 남의 생명 같은 것은 거들떠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중국이나 한국이나 모두들 돈에 환장한 사회인데, 기업이든 개인이든 무슨 짓인들 안하겠어요. 미국도 마찬가진 것 같아요. 따져보면 광우병도 축산업계의 경쟁력 논리 때문에 발생한 겁니다. 소한테 먹여서는 안되는 동물성 사료를 먹여온 것도 그렇지만, 말할 수 없이 비위생적인 환경에 가축을 가두어놓고 온갖 학대를 하면서 키우는 것도 결국은 경제성이라는 논리 때문이거든요. 타이슨푸드라는 미국의 메이저 식품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 한 마리를 도축해서 플라스틱 상자에 넣어 포장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12초라고 해요. 눈이 핑핑 돌아갈 만큼 단시간에 해치워야 하는데, 생산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이렇게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하니까 그 작업장에서 오래 근무하는 노동자는 없고 대부분 불법으로 체류하는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한국에서 뭐라고 해도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 뼛조각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런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돈이 드니까, 미국정부가 우리한테 뼈가 들어있건 말건 미국산 쇠고기를 그냥 다 받아들이라고 우격다짐을 하고 있고요.
김우창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환경독재를 하든지, 아니면 사람 마음을 개조하든지 둘 중 하나인데, 환경독재를 생각해보는 것도 불가피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러나 독재권력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은 안되겠고 결국 심성 개조를 해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김종철 정치하는 사람이나 나라의 장래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공공심이 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우창 독일의 보수정당인 기민당이 정강정책을 수립하는데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어요. 기독교적 보수성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원칙적인 입장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은 과학적 연구의 자유, 경쟁능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보수주의 정당이 보수적인 유권자들에게 호소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정강으로 채택할 수 있는 것은 성숙한 문화 풍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종철 저도 생명공학에 관한 기민당의 입장을 표명한 어떤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생명조작기술이라는 것이 통제를 받지 않고 제멋대로 발전해 간다면 인간 공동체의 가장 근원적인 윤리적 토대가 허물어질지 모른다고 했더군요. 그걸 읽으면서 우리하고는 비교가 안되는 문화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황우석과 같은 사람의 연구가 처음부터 비윤리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돈이 된다는 이유로 열광하였던 사회입니다. 논문 사기가 문제되기 이전에 줄기세포 연구 자체의 비윤리성이나 위험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완전히 무시당했지요. 물론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기술이라면 덮어놓고 환영하고 열광하는 이상한 병리현상이 만연해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세계의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은 지구온난화 문제도 경제의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의 개발로 어떻든 해결될 것이라는 굉장히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의 과학자 가운데는 심지어 지구온난화 방지 대책으로 지구 궤도를 바꾸겠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더군요. 인간의 교만이 극에 달했어요.
김우창 농담 한마디 하지요. 노무현 정권이 수도 이전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식으로 하자면 겨울에는 한반도를 남쪽으로 끌어갔다가, 여름에는 북쪽으로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제안을 하면 대통령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김종철 결국 같은 아이디어죠. 막무가내로 수도 옮기겠다는 거나 지구 궤도를 바꾸겠다는 거나. 하여간 다들 용감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유전자 조작기술이나 나노테크놀로지 같은 첨단기술도 결국 마찬가집니다. 그 결과가 인류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생태계에 어떤 파국을 몰고 올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연구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확대하고 있단 말이에요.
김우창 그런 문제나 환경문제가 결국 권력의 문제인데, 자발적으로 안하면 강제적으로 통제를 해야 하지만, 그러면 독재라는 문제가 발생하지요. 환경친화적 기술을 법률적으로 강제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역시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편이 효과적일 것 같아요.〈사이언티픽아메리칸〉에 나온 어떤 기사를 보니까, 듀퐁사나 미국의 자동차 회사 등이 환경적 기술로 전환함으로써 오히려 경비절감 효과를 가져왔다고 합니다.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서 반드시 환경에 해를 끼치는 식으로만 가지는 않아요. 환경친화적 기술을 개발하는 데는 처음에는 돈이 좀 들겠지만, 그걸 하겠다는 의지가 중요해요. 그런 기술을 추구함으로써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경비가 절감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 말입니다.
김종철 아마 경제적으로 이익이 된다는 계산이 안 나왔으면 그런 기술 개발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요즘 재생에너지 산업이라는 것도 나름대로 꽤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실제로 독일 같은 경우에 그런 분야에서 일자리도 많이 생기고 있다는데, 물론 그런 쪽으로 합리적인 발전을 해나가는 노력은 확대되어야겠지요. 그런데 선생님은 사람의 마음을 바꾼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요. 지금 온통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쫓기면서 낙오는 말할 것도 없고, 앞서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는 시스템 속에서, 사람이 마음을 바꾼다는 게 가능할까요. 약육강식의 논리를 강요하는 세계경제 시스템 속에 묶여있는 상황에서 개인은 물론이고, 한 국가가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국제사회가 공존을 하려면 우선 최소한도로 준수해야 할 어떤 기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에 오래 전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을 표명해온 우치하시 가츠토(內橋克人)라는 경제사상가가 있는데, 이 분은 ‘FEC자급권’ 확보라는 것을 제창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식품(Food), 에너지(Energy), 돌봄(Care)에 관한 것은 자유무역에서 제외시켜서 각 나라, 각 지역사회의 자급능력이나 자주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는 제안이지요. 적어도 그런 권리를 국제사회가 상호 인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요즘 ‘식량안보’라는 말 대신에 ‘식량주권’이라는 개념도 쓰이고 있는데, 아마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개념이라고 생각됩니다. 식품, 에너지, 보건의료 문제는 인간의 기초적 생존과 생명에 관한 문제인데, 이런 분야가 더이상 다국적기업의 막대한 이윤추구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요구를 담고 있는 생각이지요.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시민단체가 농업을 살리고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학교급식에 관련된 여러가지 운동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국가에서는 방해만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시민운동의 성과로 전북도에서 학교급식에는 우리 농산물을 쓴다는 조례를 정했는데, 그것이 대법원에서 WTO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불법화되었단 말이에요. 학교에서라도 우리 농산물만 쓰도록 한다면 그래도 희망을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좌절되었어요.
김우창 다른 건 어렵더라도 우선 식품(F)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학부모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우리 농산물 먹여야 한다고 여론을 일으키고, 농민들은 우리 농산물이 믿을 만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노력을 꾸준히 해 간다면 말이지요.
김종철 소비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사회적 발언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올바른 방법이겠지요. 그런데, 국가라는 시스템은 본래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지금은 국가라는 게 자본가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예요.
김우창 선거라는 게 돈과 다 연결돼 있기 때문에 그렇죠.
교육문제와 지역공동체
김종철 학교급식 문제도 사실은 도시락 싸서 보내는 게 제일인데 요즘 맞벌이 부부가 많아져 그것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가 대구에 있을 때 종종 한살림 모임에 나오는 가정주부들과 얘기를 해보면, 하나같이 고민하는 게 아이들 교육문제입니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우리의 교육환경이라는 것이 극단적으로 뒤틀려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들 굉장히 고민이 많아요. 한살림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니까 나름대로 의식이 있는 사람들인데, 과외를 시키고 싶지 않아도 모두가 하니까 이러다가는 자기 아이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 때문에 번민이 많아요. 정권 바뀔 때마다 입시문제나 교육개혁 이야기가 나오는데, 선생님은 무슨 해결책이 있다고 보시는지요.
김우창 우리가 경제, 환경문제에서 다른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육에서도 평준화와 수월성 사이에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 것이 아니죠. 그건 환경문제와도 관계가 있어요. 섬세하게 접근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다 좋은 학교에 가고자 하는 상황에서는 시험을 잘 봐야지요. 근본적인 문제는 이른바 일류대학 나오지 않으면 생활보장이 안되는 현실이에요. 일류대학이라는 데를 나오지 않아도 생활보장이 되는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하는 게 중요해요. 사람들은 좀더 부유하게 살겠다는 것과 안정된 일자리 사이에 하나를 택하라면 다른 조건에 큰 차이가 없다면 대개 안정성을 선택하지요.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직업의 안정성이란 게 일류대학이란 데를 나오지 않으면 보장받을 수 없어요. 그런 지도가 만들어져 있지 않아요. 돈을 많이 벌겠다는 것보다도 직업의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달리 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조건 일류대학으로 가고 봐야 한다는 식으로 되어버린 거죠.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모두 나름대로 유기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도를 확실히 만들어야 하는데, 노무현 정부는 그런 점에서도 진보적이었다고 보기 어려워요. 국가나 사회의 입장에서는 일류대학에 가서 공부를 잘하는 사람도 필요해요.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무슨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와의 유기적인 관계에서 국가나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을 길러줘야 해요. 경쟁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봉사를 위한 경쟁이지 자기 출세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는 분위기를 국가적으로 만들어야 해요. 경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경쟁의 범위가 끝없이 확대되는 데서 생깁니다. 한 학급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 급우들은 그 아이를 인정하고, 아등바등 앞지르려고 하지는 않죠. 그러나 그 범위가 그 학교를 넘어서 전국으로 확대되고, 모든 가치가 학교성적에 맞춰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공부 좀 잘하는 애들이 남들보다 약간의 혜택을 더 받도록 되어 있다면 그게 그 자신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큰 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국가 전체적으로 모든 가치가 학교성적으로 집중되어버리면 문제가 생기는 거죠.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부동산이 막대한 돈을 버는 방편이 되고, 토건국가가 되면 동네나 이웃이 다 깨지고, 문화와 생활이 획일화되어 버립니다. 사람살이의 경쟁은 심화되고, 무엇 때문에 경쟁하는지 내용도 모르면서 아등바등 살게 되지요. 동네에서 존경받는 목수가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은 원님이 될 필요도 없고, 박사가 될 필요도 없어요. 목수로서 유능하기 때문에 그 동네에서 존경을 받고 사는 건데,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으면 그 동네에서 살 필요가 없지요. 사람마다 자기 나름의 재능이나 관심사를 가지고 서로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동안에 공동체가 유지되고 그 속에서 각자가 상호 존경을 받는 삶이 가능해지는 거지요. 공동체의 이러한 지속성이 중요한데, 이게 가능하려면 그 범위가 작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의 행복한 삶이란 거창한 무대가 아니라 이런 작은 공동체 속에서 실현되는 것인데, 이런 공동체의 확보에 대해 우리 정치계는 관심이 너무 없는 것 같아요.
김종철 다양한 개인들의 개성을 살리고, 그런 개성적인 삶들을 공존, 조화시키는 사회가 되어야지요. 그런 점에서도 풀뿌리 지역사회가 살아나야 하는데, 전부 중앙으로 집중하거나 하향식이에요.
김우창 우리 동네의 주거환경이 나쁘다, 고치고 싶다고 할 때 정부에서는 조금 부조하는 정도로 돕기만 하면 되는 건데, 싹 쓸어버리고 아파트단지로 만들어버리는 식으로 갑니다. 이렇게 되니 지역공동체가 살아남을 수 없지요.
김종철 제가 교육문제를 꺼낸 것은 교육문제도 지역공동체를 회복하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최근에 제주대학에서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다녀왔습니다만, 지금 제주도 전체 인구가 50만인데 종합대학이 아마 서너개나 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 제주대학도 많이 확장되었더군요. 그래서 그곳 교수들에게 여기 졸업생들이 모두 졸업하고 제주도 안에서 일자리를 구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어림없는 소리 말라고 하더군요. 당연하지요. 제가 있던 대구, 경산 지역에도 종합대학만 5개가 넘는데, 대구와 경북을 통틀어도 졸업생들을 소화시킬 수 없거든요. 결국 젊은이들이 수도권으로 집중하거나 실업 혹은 반실업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우리나라는 지나치게 대학이 많아요. 획일적 가치가 지배하고 있으니 다들 대학에 가야 산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지요. 제주도에 있는 교육기관은 제주도라는 지역 조건에 맞는 인재들을 기르고, 제주도는 그 졸업생들을 수용할 조건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지금 농업을 살리는 게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제일 효과적인 방법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어차피 지방에서 가장 지속성이 있는 안정적 일자리는 지역농업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는데, 그 농업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지원체계를 다양하게 살리면 보람있는 일자리가 많이 생길 거니까요. 서울 갖다놔도 상관없고, 경상도 갖다놔도 상관없는 공장들을 당장에 돈벌이가 된다고 시골로 유치해보았자 장기적으로 지속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거든요.
김우창 농업문제 해결에 전문가들이 깊은 인간적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유기농을 토대로 어떻게 농업을 발전시키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다방면의 연구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풍요롭게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인가
김종철 저도 결국 유기농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유기농을 확대하자면 기계와 화학약품으로 할 수는 없으니까 무엇보다 농촌인구가 많아져야 하고, 농촌공동체가 살아나야 합니다. 그러면 그동안 죽어가던 마을이 소생하고, 농민문화도 살아날 수 있겠지요.
김우창 폴 굿먼이 얘기했던 대로 신석기 시대를 돌이켜봐야 할 필요가 있어요. 민생안정이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생활의 기반을 안정되게 하는 것이지요. 정치나 경제 전문가들은 늘 돈 이야기만 하는데, 사람의 생활의 좀더 깊은 차원에 대해서 고민을 해야 합니다.
김종철 제가 서울로 옮긴 지 3년이 넘었습니다만, 서울에 사는 지식인들이 농사에 대한 관심이 있을 수가 없겠더군요. 그 사람들에게는 서울이 전부이지, 시골은 보이질 않으니까요.
김우창 농업은 현실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하지만, 미적 관점에서도 필요해요. 북경에서 묵은 호텔이 완전히 고층빌딩 숲 속에 있었어요. 중국에는 우리보다 고층빌딩 만들기가 쉬운 것 같아요. 거기 앉아서 보니, 이런 데서 사람이 살면 재미라는 것은 쇼핑몰에 가서 물건 사거나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 먹는 것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길거리에서 산도 보고, 공원이라도 있으면 위안이 되겠지만….
김종철 우리도 획일적인 문화 일색이잖아요. 지방의 특징적인 모습이나 분위기가 없어졌어요. 전부 작은 서울이 되어가고 있어요. 사람들도 텔레비전에서 보고 들은 얘기만 하고 있고요.
김우창 그런 점에서 박정희 이래의 모든 정부가 다 똑같았지요. 이제는 환경에 대한 관심을 정치의 공간에 자꾸 투입하는 일을 시작해야지요. 소비생활이란 게 그렇게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이 콘크리트벽 속에 갇혀 살면 심심하니까 호화 레스토랑, 쇼핑몰에 가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것이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김종철 덴마크에서는 이미 1980년대 중반에 의회에서 원자력발전을 중지하기로 결정했어요. 사실 의회의 그런 결정은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거지요. 그런 성숙한 의식이 어떻게 해서 가능했는지는 모르지만, 원자력문제뿐만 아니라 유전자조작 기술과 같은 첨단기술의 문제를 둘러싸고도 덴마크에서는 사회적으로 활발한 토론이 쭉 있어왔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시민합의회의’라는 토론모임이 시민들 자신의 발의로 생겨나서 거기서, 예를 들어, 풍요롭게 산다는 게 과연 무엇인가라는 상당히 철학적인 주제까지도 다루면서 토론을 진행해왔다고 합니다. 보통 풍요로운 삶이라고 하면 에너지를 풍족하게 소비하는 생활을 말하지만, 에너지를 많이 쓰지 않고도 얼마든지 인간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해요. 결국 그것은 소박한 생활인데, 그것이 오히려 더 좋은 삶이라는 생각에 시민들이 동의를 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성숙한 문화적 기반이 있으니까 원자력발전 중단이라는 획기적인 결정을 국가 차원에서 내릴 수 있었다고 봐야겠지요.
김우창《비평》지에 임헌영 씨가 스웨덴 기행문을 썼던데요. 여성들이 화장도 안하고 얼마나 소박하게 생활하는지 감명 깊었다고 썼더군요. 호화스럽게 사는 그런 것에 재미가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설득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 환경에 대한 의식이 꽤 생겨났다고 하지만, 큰 자동차들을 몰고 다니는 것을 보면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서울에서 외제 자동차가 매일매일 불어나요. 벤츠다 뭐다 하는 그런 것을 몰고 다니는 게 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지, 그런 것을 반성하려면 상당한 문화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김종철 대학이라도 좀 제 구실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지요.
김우창 그런 점에서 인문과학의 역할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이 제대로 사는 게 소비생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어야 해요. 소비생활이 중시되는 분위기는 진보진영에도 책임이 있어요. 진보주의에서는 사회성을 지나치게 강조합니다. 개인의 내면적 가치라는 것은 무시되고, 지난 백여년간 독립운동이니 민주화니 하는 시대적 요구 때문에 전부 외면화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사회성이 강조되고, 내면적 가치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될 수밖에 없었어요. 옛날에도 과거를 봐서 급제하면 사람들이 알아주고, 높은 사람이라고 존경했잖아요. 과거에 급제를 하지 않아도 과거를 봤다는 것 자체가 촌에서는 신분이 올라가는 계기가 되고 그랬지요. 외적인 것에 불과한 가치, 관(官)이 부여한 가치에 의해서 우리가 너무 눌려왔어요. 내가 KBS 이사회에 참석할 때에도, 허름한 차를 타고 들어온다고 출입 제지를 받곤 했는데, 우리사회가 내면에 충실한 생활, 동네사람들과의 친근한 교류를 중시하는 생활을 더 강조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김종철 우리가 외면적 겉치레를 중시하는 것은 사실이지요. 대학이 실속 없이 이렇게 많은 것도 그런 외면성을 강조하는 풍토하고 관계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과시적 소비일 수밖에는 없지만, 우리는 문화적 요인까지 가세해서 정도가 지나친 것은 확실해요.
김우창 사회학자들이 말하는 ‘인정을 위한 투쟁’이 우리처럼 심각한 사회가 없어요. 조선조부터의 관행이 그랬어요. 사회적으로 사람을 인정하는 데 제일 쉽게 판단하는 기준이 그 사람의 소비생활입니다. 마을 공동체 안에서는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이라고 미리 다 알고 있으니까 관계가 없지만, 대중사회가 되면서 길에서 잠깐 스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판단할 기준이 그것밖에 없어요. 자기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은 스스로의 내면적인 느낌에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나름대로 보람있게 살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행복은 자연과의 접촉이고요. 지금도 애인에게 선물하는 것은 꽃이잖아요.
김종철 나이가 든 것인지 저도 날씨가 좋을 때 제일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김우창 날씨가 행복지수를 결정합니다. 날씨나 자연현상은 사람이 자기 손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해버리기 일쑤인데,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있는 공동체 속에서 산다는 것은 미적, 심성적 관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이태리의 어떤 사회학자가 토리노라는 선진 산업도시 지역과 인근 농촌을 비교한 연구가 있어요. 농촌지역에서 어렵게 농사짓는 부모들이 토리노의 자식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거예요. 토리노 사람들은 술 먹고, 나이트클럽에 가지 않으면 못 살아요. 그러나 농촌 사람들은 오락이 필요하지가 않아요. 늘 자연과 접촉이 가능한 데서 마음의 평정을 얻는 거죠. 토리노에 가서 사는 사람들은 힘든 노동을 하고 술이나 오락 속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만 결코 행복하지 않아요. 이런 문화적인 문제는 정치지도자들이 사회정책, 개발정책을 계획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의 도시 발전도 이런 것을 감안하고 좀더 섬세하게 해나갔으면 해요. 농토에다가 마구잡이로 새로 건물을 짓고, 도시를 개발할 게 아니라 농촌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원금을 주어서 마을을 잘 가꾸게 하고, 전문가 자문기구도 만들어서 보다 인간적인 공동체가 되도록 해야 할 텐데….
김종철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문제들인데,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그게 가능하겠어요.
김우창 이제 발전하려면 내적인 발전에 진력했으면 좋겠어요. 도시환경도 불만족스러운 부분은 조금씩 고쳐서 잘 이용하면 되잖아요. 음식문제는 자기 나라에서, 가까운 데서 생산된 농산물을 소비하는 것이 우리 농촌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또 환경적으로도 좋은 것이지요. 칠레산 농산물을 여기까지 운반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가 소비되잖아요.
김종철 지금 세계무역이 비교우위에 입각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무역을 위한 무역, 중개업자들과 상인들을 위한 무역입니다. 캐나다 사람이 왜 중국산 마늘을 먹고, 일본 사람이 왜 한국산 오이를 먹어야 합니까. 지금 산업국가의 식탁에 오르는 식품들의 생산지로부터의 수송거리가 보통 1,000마일 이상입니다. 정말 넌센스입니다. 우리가 청량음료 한 병 사먹어도 그 원료는 대만이나 필리핀산인데다가 가공은 독일에서 하여 돌고 돌아서 서울시내 슈퍼에 나오는 거예요. 근대 경제학의 관점에서는 그게 합리적인지 모르지만, 엄청난 낭비라고 할 수밖에 없지요. 이런 식의 상품 원거리 수송에 드는 막대한 에너지도 문제지만 그로 인한 이산화탄소 방출량도 엄청납니다. 멀리서 운반되어 오는 식품이 건강에 좋을 리도 없고요. 이게 모두 자유무역과 자본주의 논리 때문인데, 자본주의를 극복한다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아무리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하더라도, 자본주의는 자기를 반대하는 급진적 운동도 결국은 전부 흡수해버리잖아요. 누군가의 말처럼, 자본주의의 종언보다 세상의 종말이 더 빨리 올지도 모르겠어요.
김우창 하지만 계속적으로 노력해야지요. 지역적인 방어체계를 마련하고, 유기농을 확대해서 널리 소비하도록 하고,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여 공정무역 같은 것을 체계적으로 진행해야지요. 유기농을 당장 소비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보완체계를 마련하고요. 그러나 그런 것을 국가권력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소련에서 보았듯이 잘 되지 않아요. 국가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시민들 자신의 자발성을 강조하는 게 중요해요. 자유주의 정치사상에서는 본래 국가는 야경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국가권력을 축소하고, 국가권력이 개발에 앞장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 개발행위는 돈을 벌고 싶은 기업이 하도록 하고, 국가는 그게 공적인 기준에 맞도록 통제하는 역할을 해야지요. 국가는 어디까지나 공익을 지키는 기구가 되어야 해요.
김종철 국가는 지금은 제일 큰 회사가 되었어요. CEO 출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다들 그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어요. 국가가 무엇이든 다 맡고, 무엇이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국가의 역할이 다시 재정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국가는 사회의 다양한 주장이나 이익집단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절하는 조정자, 사회자가 되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권력이 돈을 만들어내야 된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결국 국가가 기업조직과 같은 것이 되고, 공공성(公共性)이 후퇴해버리는 결과가 되고 마는 것 같아요. 정부가 농촌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한다는 것이 실은 농촌지역에 도로 만들고, 시설물 설치하고, 그런 건설관계에 집중되고 마는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 괜히 농촌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건설업자 배불리는 일 하지 말고, 농업을 돕겠다고 나서지도 말고, 제발 방해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김우창 정부나 정치가들이 정말 공공심을 회복해야 하는데, 어려운 문제예요. 우리나라가 너무 물욕이 앞선 세속적인 사회가 돼서….
김종철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공론의 장을 넓혀가는 수밖에 방법이 없겠지요.
김우창 아까 덴마크 얘기가 참 시사적이군요.
김종철 우리는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게 좋은 삶인지, 그런 철학적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회적 토론의 장이 너무 없어요. 교회와 성당과 절은 많지만 그것도 장사수단이 되고, 기업이 되어 버렸어요.
김우창 아무리 생각해도 노무현 정부의 잘못이 커요. 그동안 부동산 값이 너무 올랐어요. 부동산 가격이 안정되어 있을 때는 평온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주변에서 부동산으로 떼돈을 버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몹시 편치 않게 되었어요. 나도 돈을 좀 벌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안할 수 없거든요. 유럽 사람들은 이미 성취를 해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돈에 환장하지 않아요. 중국사회도 돈에 환장했다고는 하지만, 우리처럼 전부 이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김종철 아무튼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있어야 하겠지요. 오늘은 이만 여기서 끝내야겠습니다. 장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