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가 보이지 않는 디플레 상황에서 기본소득이라는 말은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 말이 인구(人口)에 회자되고 있는 것은 그 실현이 용이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기본소득이 실현해야 할 과제라고 의식될 때야말로 그 실현을 둘러싼 여러가지 아포리아가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기본소득에 대한 흔한 반론, “게으른 자가 늘어날 것이다”라든가 “인플레가 될 것이다”라는 반론은 그 실현에 대한 큰 장애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기본소득 실현을 어렵게 하는 것은 그 구상에 내재되어 있는 여러가지 아포리아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거기에 어떤 아포리아가 있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기본소득은 복지국가론과 무관한 것
유럽에서는 90년대부터 기본소득이 널리 논의되어왔다. 그 배경에는 전후 복지국가가 흔들리거나 그 한계를 드러내는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현대의 복지체제가 내포하고 있는 사회적 배제나 구속, 선별과 감시는 어차피 문제가 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복지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온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복지국가의 흔들림은 금세기에 들어서 표면화될 위기의 전조에 불과한 것이었다. 뒤에서 말하겠지만, 이것은 현재의 세계공황 속에서 대부분의 국가가 천문학적인 거액의 부채로 파산할 가능성이 있는 근대 조세국가의 전반적인 위기로 발전하고 있다. 지금 그리스의 고민은 그 서막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들이 목격하고 있는 것은 근대 조세국가의 해체 위기이기 때문에 소득세나 소비세를 재원으로 하여 복지국가 개혁 차원에서 구상하는 기본소득론에는 설득력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득’이라는 문제에 대한 래디컬하고 거시적인 경제학적 시각이다.
그리고 실은 사상적으로는 기본소득은 복지국가론과는 논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역사상 처음으로 기본소득을 ‘국민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정식화한 것은 20세기 초에 ‘사회신용론(Social Credit)’을 창시했던 영국의 클리포드 더글러스(1879―1952)였기 때문이다. 더글러스의 경우, 기본소득은 전면적인 통화개혁의 일환이었고, 그 바탕 위에서 확실한 거시(巨視)경제학적 기초를 가진 정책으로 제창되었다. 그런데 더글러스는 오늘날에는 케인스의 〈일반이론〉의 말미에 이름이 나오는 정도로 거의 잊혀진 사상가이다. 그 때문에 그는 최초로 기본소득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제기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에는 당초 기인(奇人) 취급을 받았지만 나중에는 국제적인 각광을 받아 ‘경제사상의 아인슈타인’이라고까지 평가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사회신용론은 영연방국가들 외에 일본과 이태리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고 연구대상이 되었다. 그런 그가 전후에 잊혀진 것에는 뒤에서 말하듯이 일정한 이유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의 경제분석이 반증(反證)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여기서는 그의 경력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그가 사회신용론을 창시하는 데 계기가 된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해두고 싶다. 더글러스는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한 뒤에 우수한 엔지니어로서 여러 대형 프로젝트에 관여했는데,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공군소령으로 왕립 항공기 공장의 회계감사를 맡았다. 거기서 그는 근대산업경제에 있어서는 노동자가 받는 급여는 기업회계의 근소한 일부를 구성하는 데 불과하며, 따라서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 전체를 그 돈으로 매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이 경제에서는 기업은 생산과잉, 노동자는 소득부족에 허덕이게 된다. 사회신용론은 그가 이 단순한 발견이 갖는 의미를 묻는 것에서부터 태어났다. 그것은 자본주의에 의한 억압이나 착취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엔지니어답게 근대산업경제의 구조적 결함을 분석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신용론은 이 결함을 시정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 제언이며, 특정한 도그마나 당파적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더글러스가 현장에서 단련된 엔지니어였지 경제학이나 철학과 같은 쓸데없는 신학(神學)과는 인연이 없었다는 점도 사회신용론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음이 틀림없다.
신용의 사회화, 국민배당, 정당가격
사회신용론은 3개의 지주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첫째, 은행에 의한 사적인 신용창조를 배제하고 정부가 통화를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발행하는 것을 통한 신용의 사회화, 둘째, 전 국민에게 시민권을 근거로 일률·무조건적으로 급부하는 국민배당, 셋째, 판매부문에서 수시로 필요에 따라 상품이 싸게 팔리게 하는 정당가격이다. 이들은 모두 경제의 구조적 결함으로부터 발생하는 생산과 소비의 항상적인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이며, 따라서 기본소득 내지 국민배당도 복지와는 논리적으로 무관계한 것이다. 그리고 생산과 소비,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생기는 원인에 대한 더글러스의 견해는 어떤 의미에서 단순명쾌한 것이다. 그 원인은 첫째, 오토메이션(자동화), 둘째, 기업회계, 셋째, 은행 돈이다. 우선, 더글러스 시대에 이미 진행되고 있던 생산의 자동화는 오늘날에는 극한에 달하고 있다. 자동화기술을 완전히 사용한다면 현재의 1/4의 노동력으로 전체 생산을 수행할 수 있다는 연구도 있을 정도이다. 그렇게 보면, 현대인은 전부 잠재적인 실업자이다. 더욱이, 문제는 직접적인 기계에 의한 실업만이 아니다. 오늘의 생산 현장에는 기계가 주역이며 인간은 하찮은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서비스산업에서 보듯이 하찮은 일에 어울리는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자동화가 방대한 상품을 생산하는 한편에서 노동자의 임금급여는 계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그러므로 생산과 소비를 균형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고용 이외의 형태로 사람들의 소득을 보조해줄 필요가 생긴다.
둘째의 기업회계 문제를 더글러스는 A+B이론이라는 형태로 정식화하였다. 기업의 생산비용을 노동자의 임금급여에 충당하는 데 드는 비용 A, 생산설비의 감가상각비, 은행에 대한 부채의 상환, 다른 기업에 대한 지불 등에 드는 비용 B로 나눈다. 상품의 최종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A+B이다. 그리고 A+B는 A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러므로 노동자는 그 임금급여로는 생산된 상품 전체를 매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기업이 얻는 이익의 대부분은 설비투자나 은행 돈 상환으로 돌려지기 때문에 기업회계 중에서 임금급여가 차지하는 상대적인 비율은 계속적으로 감소한다. 여기서 더글러스가 문제로 삼는 것은 노동력의 착취와 같은 게 아니라 시장경제의 요체인 가격형성 과정이다. 상품의 가격 자체가 공급과 수요의 균형은커녕 항상적으로 구조적 불균형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 은행 돈에 의한 경제의 교란과 그것이 초래하는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 문제. 19세기 말에 가내수공업 시대가 끝나고 이른바 기계제 대공업 시대가 시작되자 거대한 설비투자에 대한 필요성이 생겨났다. 그리하여 기업은 은행으로부터의 융자 없이는 존속할 수 없게 되고, 금융이 경제에 개입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예를 들어, 상품의 최종가격의 1/3 혹은 1/2이 직접·간접으로 은행에 지불하는 이자가 되는 현실이 된 것이다.
은행 돈의 문제는 법정통화, 부분준비제도, 이자 및 부채 경제라는 3개의 시점(視點)에서 생각할 수 있다. 일찍이 금본위제 시대에는 금융자본의 힘은 금 보유고(保有高)에 의해서 다소간 제약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1년에 닉슨 대통령이 달러와 금의 교환을 정지시킨 이래, 오늘날 세계 각국의 통화는 달러 기축제(基軸制)라는 형태를 취한 순전한 법정통화이며, 그리고 이 통화만큼 은행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도 없다. 왜냐하면 법정통화는 국민국가에 대한 신뢰를 구실로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종잇조각인데, 이것은 은행의 편의대로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분준비제도 하에서 은행은 손에 쥐고 있는 예금의 8~10배의 자금을 대출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은행은 예금을 대출하는 게 아니라 단지 장부상으로 무(無)에서 사적인 신용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준비’라는 말은 수상쩍은 것이다. 은행은 먼저 신용을 창조하고 있으며, 준비〓예금 쪽은 모자라면 중앙은행이나 다른 은행으로부터 빌려온다. 그러므로 부분준비제도란 것은 은행에 의한 사적인 신용의 창조를 은폐하기 위한 눈가리개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제도의 문제도 은행이 실체경제에서의 생산이나 소비와 관계없이 사기업의 편의대로 신용을 창조하고, 그것이 경제의 최대 교란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은행 돈은 이자가 붙는 부채이다. 그리고 현대경제의 90퍼센트 이상은 이 은행 돈으로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경제의 중심은 생산과 소비가 아니라 부채의 상환에 있다. 그리고 부채문제는 기업도 국가도 가계도 결국 그것을 갚지 못한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이 경제에 있어서는 모든 개인이나 조직이 부채를 상환한다면 그 순간에 경제활동이 완전히 정지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천문학적 부채에 기업, 국가, 가계만이 아니라 은행 자체도 짓눌려 있는, 부채 디플레에 의한 세계경제의 마비상태이다. 그리고 부채경제는 일종의 다단계판매 방식이어서 거기서는 자신의 부채를 면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부채를 덮어씌우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자동차회사는 소비자에게 자동차대출(car loan)을 덮어씌움으로써 스스로의 부채를 경감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부채를 새로운 부채로 상환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은행 돈에는 이자가 붙는다는 사실이 채무자에게 무거운 짐이 된다. 이자에 이자가 중첩되어 최종적으로는 이자 지불액은 원금을 훨씬 넘어서 부채 경제를 질식시킨다. 실체 경제에서는 아무 근거도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자는 현대경제에 있어서 최대 교란과 불안정화의 요인이다.
생산 현장에 근거한 경제정책
그리고 더글러스의 사회신용론은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자동화, 기업회계, 은행 돈에 기인하는 항상적인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이다. 우선 첫째로 은행에 의한 사적인 신용창조를 중지시킴으로써 신용을 공익사업으로 사회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주권자로서 통화를 발행하여 그것을 기업이나 자치체 등에 무이자로 융자해야 한다. 이 더글러스의 구상은 국가주의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중앙은행을 공공사업의 주체로서의 국가신용국으로 대체할 것을 생각했고, 이 조직은 정기적으로 수집되는 국민경제 계산상의 데이터에 기초하여 마치 자치체의 수도국이 가정에 물을 공급하듯이 사회에 통화를 공급한다. 여기서는 국가재정은 수입과 지출을 둘러싼 회계가 아니라 신용의 관리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국가신용국은 동시에 전국민에게 국민배당으로 기본소득을 영속적으로 지급한다. 국민배당이 일률·무조건적으로 지급되는 것은 그것이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거시경제학적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균형의 실현을 위한 또하나의 보완적인 정책이 정당가격이다. 이것은, 예를 들어, 경제에 30퍼센트의 수급 갭이 존재하는 경우, 판매부문이 전체 상품을 일정기간 30퍼센트 할인 판매하도록 하는 정책이다. 할인분은 나중에 국가신용국에서 판매부문에 보상해주기 때문에, 이 정책은 ‘보상된 디스카운트’라고도 불린다.
소비자가 상품을 사고, 기업과 판매부문은 그 수익 중에서 상품의 생산과 관리를 위해서 융자된 자금을 신용국에 상환한다. 이것은 은행에 의한 대출금 상환과는 다른 것으로, 발행한 통화를 회수해서 인플레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이다. 따라서 기업의 사정에 따라 상환조건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교섭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신용의 사회적 관리이며, 생산과 소비의 순환에 부응하여 통화가 발행되고 회수되는 것이다. 그러한 통화를 더글러스는 티켓에 비유하고 있다. 사람들이 철도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티켓을 발행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승객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티켓은 회수되어 폐기된다. 이리하여 사회신용론에서는 통화는 생산된 상품의 원활한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순전한 교환수단이 되고, 그것에 수반하여 경제는 저축의 무서운 중압으로부터 해방된다. 이 시스템에서는 기업에게는 필요한 자금이 직접 무이자로 윤택하게 공급되고, 소비자의 유효수요도 보증되기 때문에 디플레는 발생할 수가 없다. 하지만 어떤 사정으로 인플레가 발생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경우에는 신용국이 인플레 억제를 위해서 역시 이자율이라는 방책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정부통화를 기업에 융자할 때 인플레에 대응하여 근소한 이자를 붙이는 것이다. 이 이자율에 의한 인플레 억제는 더글러스 자신의 제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플레 억제를 위한 일시적인 조치이다. 더욱이 이자수입은 국고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것은 경제의 교란 요인인 은행 돈에 의한 이자와는 동렬에 놓고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고 더글러스는 “어째서 전 국민이 일률적으로 국민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하고 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답변이다. 그에 의하면, 생산의 90퍼센트는 도구와 프로세스의 문제이며, 인간의 노동은 근소한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산은 인류가 과거에 축적해온 방대한 기술과 지식을 이용하여 행해지는 것이며, 따라서 현대인이 새삼스럽게 수레나 용수철을 발명한다거나 할 필요가 없다.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개개인의 노동이 아니라 인류의 문화적 유산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유산의 동등한 계승자로서 만인에게는 생산된 부를 배당받을 권리가 있다. 여기에서도 더글러스는 오랫동안 생산의 현장에 관여했던 엔지니어로서 그 체험과 지식에 기초하여 발언하고 있다. 농업이건 공업이건 생산의 현장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그의 견해에 깊이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기본소득을 생산과 관계없는 소득으로 옹호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생산이라는 현상의 실제에 대한 깊은 이해에 기초하여 기본소득의 근거를 밝히는 과정에서, 로크에서 헤겔을 거쳐 맑스에 이르는 ‘노동에 의한 소유’라는 형이상학을 간단히 정리해버린 것은 인상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사회신용론의 의의
일본에서도 최근에는 기본소득 논의가 열기를 띠게 되었다. 그러나 조세국가의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서 소득세나 소비세를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자는 논의는 실현성이 없다. 그것을 사회신용론으로 명명할 것인가 어쩔 것인가와는 별도로, 정부통화에 의한 보증이라는 형태로밖에 기본소득은 실시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현재 은행 돈이 최종적으로 또 글로벌하게 파탄한 세계공황 중에 있다. 일본은 리먼쇼크로부터 간접적인 타격을 입었을 뿐이라고 하지만, 선진 각국의 주요 은행들이 파산으로부터 재기하여 경제가 다시 성장의 궤도에 오르는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통화에 의한 기본소득 보증은 무엇보다도 공황의 타개책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이번의 공황이 발생한 구조적 요인은 1930년대 대공황의 그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더글러스의 시대에는 복잡기괴한 파생금융상품은 존재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요컨대 부채는 부채인 것이다. 그리고 공황의 근본원인에 대해서 더글러스의 명쾌한 분석을 넘어서는 것이 존재했던가? 경제학자들은 그를 묵살했을 뿐이지 그에게 반론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케인스는 더글러스를 표절했다고 나는 본다.) 그렇게 보면, 적어도 사회신용론에 유사한 정책에 의해서밖에 공황은 타개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신용론의 의의는 공황의 타개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생산과 소비를 균형있게 하는 경제적 안정화의 방책인 까닭에, 금세기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힌트도 될 수 있다.
글로벌화가 가져온 황폐한 세계
세계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위기는 이른바 피크오일에 의한 원유생산량의 감소, 달러 기축통화체제 아래에서의 세계경제의 글로벌화와 리먼쇼크 이후의 그 파탄, 국가부채의 중압 밑에서의 근대 조세국가의 위기이다.
우선 피크오일이지만, 더글러스의 시대에는 선진국들도 미국을 제외하면 서민들이 자기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석유 대량소비 사회는 아니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선진국들의 기적적 번영의 주된 원인이 원유라는 마법의 자원이 물처럼 값싸게 공급된 것이었음은 틀림없다. 더글러스의 분석에 의하면, 자본주의 경제는 곧바로 붕괴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또 케인스는 전쟁에 의한 군수품 호황이 끝나면 선진국들은 다시 깊이 정체에 빠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후의 선진국들이 반세기에 걸쳐서 번영을 구가한 이유는 역시 원유라는 마법의 자원에서 구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의 석유쇼크와 함께 선진국들은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그 후에는 단속적으로 버블이 발생하는 일은 있어도 아직 이 시기의 혼미로부터 탈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담합이나 북해도 유전 개발 등에 의한 원유가격 저하 없이 레이건과 대처의 신자유주의가 있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리먼쇼크는 직접 원유가격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게 아니지만, 그 배경에는 금세기에 들어오면서 시작된 원유가격의 장기적 상승이 있었다. 피크오일에 관해서는 금년이 그 시점이라는 설이 유력한 것 같다. 어쨌든 이제부터는 원유의 산출량이 계속 감소하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서도 높은 경제성장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자가 붙는 부채라는 성격 때문에 성장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존속할 수 없는 은행 돈은 물리적으로도 파탄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원유를 대체할 자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부터의 세계에서는 경제는 서서히 수축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파탄한 은행 돈을 폐절하고 신용을 사회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사회신용론의 방식이라면 사회에 혼란, 불화, 고통을 가져다주는 일 없이 경제를 원유의 감소에 부응한 축소균형 체제로 완만하게 전환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1930년대의 대공황은 국민경제 차원에서 발생한 위기였다. 그러므로 나치 독일처럼 일개 국가차원에서 공황을 극복한 성공사례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공황은 글로벌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의 세계경제가 밀접한 상호 의존 상태에 있어서 어딘가에서 발생한 위기가 세계적인 연쇄반응을 야기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경제의 글로벌화가 그 귀결로서 세계경제 중에 커다란 불균형을 만들어낸 것이 문제인 것이다. 1930년대의 국민경제 내부의 불균형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글로벌한 불균형이 지금의 공황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그 초점이 되어있는 게 미국과 중국의 관계이며, 무역에서는 적자로 채무국인 미국과 흑자이면서 채권국인 중국 사이의 불균형이다. 중국의 개방체제와 미국 기업의 중국 진출은 바로 글로벌화를 요약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는 호혜적 상호의존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글로벌화의 본질은 무역의 확대가 아니라 권력엘리트들에 의한 체제 위기의 수출인 것이다. 말하자면, 중국은 천안문사건 이후의 일당독재체제의 위기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미국은 그 금융화된 경제체제의 위기를 중국으로 수출해왔다. 그 결과, 중국의 달러 매입으로 유입된 자금이 월스트리트의 머니게임을 지탱해왔다. 그리고 체제의 위기 수출이 근본에 있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의 불균형한 시장적〓경제적 해결 따위는 있을 수 없고, 그 때문에 공황이 발생한 것이다.
미국도 중국도 가까운 장래에 달러의 붕괴로 타격을 받아 위기의 수출은 결국 불가능한 기도였음이 판명될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화가 발생시킨 여러가지 불균형이 공황의 원인인 까닭에 그것에 대한 글로벌한 해결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글로벌화에 적응한 각국의 엘리트들은 지금 기분 나쁜 거대한 힘에 휘둘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과제는 국가가 그 주권을 행사하여 확실히 통제할 수 있는 경제라는 의미에서의 국민경제를 재건하는 일이다. 그리고 신용의 사회화와 기본소득은 글로벌화에 의해서 황폐화된 세계에서, 국민경제를 공공의 현실로 재생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아마도 유일한 방책이다.
근대국가와 은행은 운명공동체이다
근대국가는 조세국가이다. 고쳐 말하면, 이것은 통화발행권을 갖지 않는 국가, 즉 통화발행권을 은행에 양도하고 스스로의 수입원은 조세와 국채밖에 없는 국가이다. 그리고 시민들에게서 강제적으로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경제발전의 논리로 정당화되고 있다. 즉 국가가 조세로써 경제발전을 위한 환경을 정비한다면 납세자는 경제발전에 의해서 원래 납부한 세금을 웃도는 이익을 향수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그러므로 이 국가는 계속적인 경제성장을 조건으로 존립하고 있는 국가이다. 그리고 이 국가가 세수(稅收) 부족으로 국채발행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논리는 변함이 없다. 국채는 경제발전이나 경제위기 회피를 위해서이며, 경제가 다시 성장하면 세수증대로 부채는 상환된다는 논리말고는 국채발생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 국가가 경제성장을 고집하는 것은 특정한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은행 돈의 이익논리에 따라 구축되어 있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국가는 공황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을 불황이라고 계속 부를 것이다. 그러나 공황에 직면한 이 국가는 어떻게 될 것인가. 버블붕괴 직후의 일본에서도 리먼쇼크 직후의 미국에서도, 국가는 사실상 파산한 주요 금융기관을 국민의 부담을 돌아보지 않고 막대한 국채를 발행하여 그 공금으로 구제하였다. 위기를 불러일으킨 장본인이 위기의 희생자에 의해서 구제된다는 기괴한 사태는 근대 조세국가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미 각국에서는 주요 은행의 파산상태를 호도할 뿐이어서, 이 조치에 의해서 은행 돈의 파산은 국가부채로 인한 국가의 파산위기로 발전하고 말았다. 증세도 긴축재정도 국채발행 증가도 경제를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이러한 국가의 궁상(窮狀)이라는 형태로 은행의 부채경제와 그 파탄은 정치화(政治化)한 것이다. 지금 은행 돈의 파탄과 조세국가의 위기는 완전히 겹쳐져서 하나가 되어있다. 내가 소득세나 소비세를 재원으로 기본소득을 실시하자는 논의에 회의적인 것도 이 조세국가의 해체가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세와 국채라는 제도가 기능을 멈추기 전에 별도의 방책으로 국고수입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나는 인플레 억제책으로 정부통화에 수시로 근소한 이자를 붙이는 것에 대해 언급했지만, 이 연장선상에서 정부통화를 기업에 융자할 때에는 항상 몇퍼센트의 이자를 붙여 그것을 국가의 수입으로 한다면 어떨까. 이 방식이라면 탈세나 부정이 발생할 두려움은 일절 없고, 경제의 활력이 직접 국고의 풍요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환경오염 산업에 대해서는 이자율을 높여서 그 활동을 간접적으로 규제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신용론에 대응하는 정치체제란
더글러스가 보여준 것처럼 근대산업경제에는 구조적 결함이 있고, 기본소득은 통화개혁의 일환으로 그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더글러스가 제안하는 정책은 적확한 분석에 기초한 현실주의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실현은 실제로 쉽지 않다. 마지막으로, 나는 기본소득을 둘러싼 정말로 어려운 점에 대해서 말해야겠다.
재야의 거의 무명의 사상가였던 더글러스는 대공황의 도래와 함께 일약 국제적인 명사가 되어 그의 강연회는 언제나 대성황이었다. 하지만 그의 명성과 정반대로 사회신용론은 어떤 나라에서도 부분적으로나마 실행에 옮겨지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세계대전의 군수(軍需) 호황에 의한 완전고용으로 미국의 공황이 해결된 전후(戰後)에는 그는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 되고 말았다. 세속 인심이란 경박한 것이다. 그러나 명성에서 망각으로 세속의 평가가 변환된 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저술을 아무리 읽어도 사회신용론에 대응하는 정치체제란 어떠한 것인지, 분명히 해득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글러스에게는 국가론이 없다. 그 공백 때문에 사회신용론은 그 설득력 있는 정책에도 불구하고 탁상공론이 되고 만 것이다. 하기는 당시에도 그의 이론을 실행으로 옮기려고 하는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이론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영연방 국가들에서는 각지에 사회신용당이 결성되었고, 더글러스는 이 가운데 가장 유력했던 캐나다의 사회신용당의 조언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 당에 대한 지지를 곧바로 철회하고, 그 뒤에 의회주의에 관해서 ― ‘의회의 전능함’을 비판하는 ― 소론을 썼다. 이 쓰라린 경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자신의 사상에 국가론이 결여돼 있는 것을 명확히 자각할 수 없었다.
더글러스가 사회신용론을 당파의 강령으로 삼은 정치에 관련해서 위화감을 느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회신용론은 의회주의나 정당정치와는 본질적으로 친화적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회주의와 정당정치는 근대 조세국가와 일체가 되어, 이 국가에 정치적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의회제 국가는 회계로서의 국가재정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예산심의 및 세금징수와 배분을 둘러싼 정쟁이 정당의 존재이유가 된다. 만일 회계로서의 국가재정이 신용의 사회적 관리로 대체된다면 정당은 하는 일이 없어지고 말 것이다.
일본에서도 현재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건 소정당이 2개 존재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정부통화에 의한 기본소득 보증을 공약으로 내거는 정당은 앞으로도 출현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당정치의 틀 안에서 기본소득을 실현하는 예산을 편성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포즈로 끝날 수밖에 없다. 다른 한편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의회제 국가의 틀 안에서 정부통화가 실현된다고 상정해보자. 그 경우, 정부통화는 선거에서 이긴 정당에 무제한의 경제적 권력을 부여하게 되며, 그것은 극히 위험한 것이 될 것이다.
정부통화라고 하면, 대공황 당시, 일본과 독일이 사실상의 정부통화를 발행하여 영미국가 등을 힐끗 보면서 일찌감치 공황을 극복한 선례가 있다. 일본에서는 다카하시(高橋是淸) 재무장관이 국채를 일본은행이 인수하는 형태로 사실상의 정부통화를 발행하여 디플레를 빠르게 종식시켰다. 독일에서는 국립은행 총재였던 햘마르 샤흐트가 ‘노동재무증서’라는 형태로 정부통화를 발행하였고, 그것으로 바이마르 시대의 초(超)인플레로 피폐해진 독일을 3년 만에 유럽 최강의 경제로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샤흐트는 독재자 히틀러에게서 금융개혁에 관한 전권을 부여받았고, 다카하시는 카리스마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예외적으로 당파와는 무관한 입장에서 금융 실무가로서의 임무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신용론이 의회제 국가와 친화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근대 조세국가는 은행 돈과 일체가 되어있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회제나 정당정치의 틀 안에서 통화개혁이나 기본소득이 실현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보아도 좋다. 그리고 문제는 이 조세〓의회제 국회를 대체하여 사회신용론 프로그램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공동체란 어떠한 것인지,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하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사회신용론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은 의회제와는 정반대의 체제, 즉 독재체제 혹은 철저한 민주주의체제일 것이다.
명민한 독재자가 나타나서 그의 한마디로 사회신용론이 실현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상정 가능하지만, 결국 독재는 사람들을 부패하게 만든다. 아니면 철저한 민주주의이지만, 그 경우도 그 정치공동체의 설계도를 미리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신용국은 어떤 기준으로 기업을 심사하고 융자할 것인가. 이 기관이 인민 전체를 위한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일한다는 것을 누가 보증할 것인가. 또 교육, 의료, 복지, 인프라 투자와 같은 영역에 대한 정부통화의 배분은 누가 결정할 것인가. 예를 들어, 국가를 자치체 연합으로 재조직하여 자치체가 시민참여 하에서 예산을 편성하는 것으로 될 것인가.
새로운 통화질서와 새로운 사회
그러나 우리가 당장 신용이 사회화된 사회의 구도를 그리지 못하더라도 아마도 역사가 그것을 시행착오를 거쳐서 실현할 것을 우리에게 강요할 것이다. 현재, 은행의 부채경제는 그 최종적, 역사적인 파국 가운데에 있다. 리먼쇼크 이래 선진국들에서 정계나 금융계의 엘리트들이 하고 있는 것은 은행 돈이 완전히 파산했다는 사실을 은폐하고, 법정통화가 한갓 종잇조각이 될 운명의 날을 조금이라도 연기하려는 볼썽사납게 무익한 책동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과 현재의 위기가 다른 것은 상환 불가능한 거대한 국가부채라는 형태로 은행 돈의 파산이 정치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유민주주의국가를 볼모로 잡은 것은 은행으로서도 치명적인 과오였다. 그 결과, 은행 돈의 파산은 조세국가를 길동무로 하여 그 해체를 촉진하고 있다. 연일 보도되고 있는 그리스의 소란은 단순히 가난한 작은 나라의 비극이 아니라 은행위기의 정치화이며, 앞으로 전세계로 확산될 사태의 예고편이다.
이러한 은행과 국가의 위기는 문명의 종말로 귀착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법정통화의 죽음에 이르러, 물물교환이 일상적인 것으로 되는 세계의 도래를 조용히 수용할 것인가. 그 전에 위기 가운데서 살아남으려는 여러가지 시행착오가 시작될 것임이 틀림없다. 그것은 질서를 타도하는 혁명이 아니라 가능한 질서를 실험하고 검증하는 모색이다. 은행과 국가의 이중 위기에 직면한 사람들은 새로운 통화질서를 태어나게 하는 사회계약을 모색할 것이다. 그리고 은행 돈을 대체할 이 질서는 신용의 사회화와 기본소득이라는 사회신용론의 요소를 필연적으로 포함할 것이다. 사람들이 사회신용론에 대응하는 정치체제에 대한 모색과 실험을 통해서 그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발현이다. 따라서 우리는 위기 가운데서도 똑똑히 눈을 떠서 끈질기게 학습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된다.(김종철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