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국민주권, 사라진 주권자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모두 다 이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 대의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은 실질적인 주권자가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국민주권 이념은 몇 년에 한번씩 치러지는 선거에서만 형식적으로 확인될 뿐, 모든 정책 결정과 판단은 입법부·행정부·사법부의 대리인들이 전담한다.
대의정치체제에서 국민주권 이념이 실종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근대적 대의정치의 실질적 창안자들은 국민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이들이 구상한 정치체제는 “인민의 열망을 막아내고 그 영향을 지연시키는 장치”가 되었다. 그들은 대다수 인민들의 정치적 압력을 회피하기 위하여 “대의의 원칙을 바람직한 정치의 황금률로 삼고 인민이 직접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모든 길을 막았다.”1)
이들은 군주가 주권을 구현한다는 군주정 측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오직 인민만이 통치할 자격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인민을 예찬하면서도 인민들이 엘리트집단인 자신들의 재산과 안전을 위협할 것을 두려워하여 인민들의 의사표현 수단을 박탈했다. 투표하거나 선거에 입후보 할 권리를 박탈했으며, 영국·프랑스·미국에서는 19세기 내내 보통선거의 유권자 수를 지속적으로 줄여나갔다.2)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국민주권 이념에 대한 대의민주주의의 딜레마를 명확하게 표현했다. “나는 한 국가를 통치하는 경우 국민의 다수가 모든 것을 할 권리를 갖는다는 준칙이 부도덕하며 가증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권력의 기원이 다수의 의지에 있다고 본다.”3) 그는 한편으로 권력의 원천이 국민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국민의 손에 권력이 쥐어지는 것을 거부했다.
그 이후로 대의민주주의 이론은 시민들의 직접 정치참여를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민의 정치참여를 경계한다.4) 따라서 전세계적으로 시민참여가 활성화되는 최근 흐름을 바라보면서, 대의민주주의 이론가들이 대중의 광범위한 정치참여에 내재하는 위험을 강조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오히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5) 이제 ‘국민주권’의 원리는 교과서에나 찾아볼 수 있는 역사적 유물이 되었고, 실제로는 정치인·언론인·선거전문가 등이 선거와 여론 조작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결정을 내리는 실정이다. 즉, 전문가주권이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관철되고 있다.
비민주적인 주권 대리인, 헌법재판소
대의민주주의체제에서는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사법부가 국가기구의 한 축이 되어 입법부·행정부를 견제한다.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되어 민주적 대표성을 지니는 입법부·행정부의 정치행위를, 국민들로부터 선출되지 않아 민주적 대표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법부가 심판하게 된 것이다. 서구에서도 낙태, 동성애, 차별철폐조치, 안락사, 시민불복종 등 많은 문제들의 정당성이 법원의 최종 판결로 결정되었으며, 그 결정과정에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될 제도적 통로가 봉쇄되었다.
이로써 시민들은 자신들의 삶에 중요한 도덕적 질문과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기회와 그에 따른 책임을 박탈당했으며, 자기통제를 훈련할 생생한 기회도 상실했다. 문제는 시민들이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려진 결정, 즉 시민들의 협상과 합의 구축 과정을 우회하여 내려진 도덕적 결정은 정치적 균형과 정당성을 상실한다는 것이다.6)
토의민주주의 이론에서 주장되는 국민주권 원리7)에 따르면, “모든 정치권력은 시민의 의사소통적 권력에서 나온다. 정치적 지배의 행사 방향은 시민들이 담론적으로 구조화된 의견과 의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부여한 법률에 따라 정해지며 또 그 법률에 의해 그 행사는 정당화된다.”8) 따라서 국민들의 의사소통 결과가 최종적이며 주권적인 권력 행사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의정치 이념, 즉 전문가들의 통치라는 이념에 따라 국민주권이 헌법재판소에 넘겨졌다. 대리인들이 만든 헌법은 국가기구 간 권력충돌을 조정하거나 정책을 최종적으로 판단할 권한을 국민들에게 부여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추천한 또다른 간접기구에 맡겼다. 국민주권은 국민들의 유동하는 의사소통 행위에서 창출되어야 하지만, 대의기구로부터 정당성을 위임받은 2차 위임기구인 헌법재판소가 주권을 배타적·무제한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민주주의 원칙을 근본적으로 침식한다. 첫째, 헌법재판소에는 민주성이 결여되었다. 국민들이 재판관 임명에 직접 개입할 수 없으며 전적으로 대리인들의 추천과 판단에 맡겨진다. 둘째, 토의성이 결여되었다. 국민들이 재판 과정에 참여하거나 의견을 개진할 수 없다. 셋째, 공개성이 결여되었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소수의 재판관이 결정을 내린다. 넷째, 책임성이 결여되었다. 판결은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지만, 결과에 대해서 재판관들이 국민들에게 책임지지 않는다. 다섯째, 견제 방법이 없다. 헌법을 해석하면서 성문헌법 조항뿐만 아니라 사전에 짐작하기 어려운 ‘관습헌법’까지 창조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판결의 준거와 방향을 예측하거나 견제할 방법이 없다. 여섯째, 대안 탐색을 봉쇄한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최종적인 것이어서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렵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최종적이며 누구에게나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직접 행사해야 할 주권을 9인의 재판관이 대신 행사하는 셈이다. 헌법재판소는 현대사회에서 ‘정부의 실패’와 시장의 독주, 시민사회로부터의 도전으로 미약하게만 남아 있던 대의제의 정당성을 뿌리부터 붕괴시킨다. 입법부나 행정부가 결정하는 법률과 정책의 정당성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지는 국민의 직접적인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재판부의 판단에 좌우된다. 선거기간에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지지자를 결집한 공약의 정당성도 담보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국민들은 정치에서 소외되고, 국민들이 주권을 행사할 기회는 근원적으로 박탈된다. 이러한 제도는 즉각 폐지돼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정부기구들을 견제하는 제도를 사법적 민주주의 모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법적 민주주의 모델이 형식적으로는 합법적일지라도, “입법 과정을 파괴하고 시민의 활동을 약화하기 때문에, 또 대의제적 원칙들에 의존하고 정치적 영역에 독립적인 ― 이 경우에 자연권·상위법·헌법과 같은 것들의 허울하에 위장된 ― 근거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결함이 있다.”9) 헌법재판소가 신행정수도 특별조치법을 무효화한 논거인 관습헌법 개념이 ‘정치적 영역에 독립적인 근거’를 끌어들인 대표 사례다. 즉, 국민들이 합리적으로 토론하여 정치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안을, 정치과정 밖에 있어서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논거로 자의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 개념을 도입하는 순간, 정치로 풀어야 할 사안을 과거의 화석화된 관습, 그 정당성이 심히 의심스러운 관습 안에 매장했다. 그 판결은, 국민들의 정치적 결정을 성문화하는 헌법정신, 헌법 제정권력자인 국민의 뜻을 반영하고 시대정신에 비추어 해석해야 할 헌법정신을, 실체를 짐작할 수 없는 형이상학으로 만들었다. 소수의 재판관들이 과거의 장막을 넘겨 실어온 관습헌법의 강시(殭屍)가 장차 태어날 세대의 자유와 정치적 권리까지도 제한한다. 이와 같은 성문헌법 밖의 초월적 기준은 국민이 정당한지 여부를 판별하지 않은 과거의 잔영에 불과하며, 예측 불가능한 기준으로 현실을 재단하는 것을 금지하는 성문헌법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헌법재판소 제도에는 이처럼 많은 결함이 있는데,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유일한 근거는 재판관들의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성은 정치적 판단을 위한 필요조건, 즉 출발점에 불과하다. 각각의 전문성은 다른 필수요건과 결합되었을 때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른 분야를 예로 들자면, 건축에서는 생활의 경험, 의학에서는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 과학에서는 윤리 존중이 필수요건일 것이다. 헌법 해석에서도 전문성은 출발점에 불과하며 전문성을 토대로 한 국민들의 이성적 판단을 최종적으로 거쳐야 한다. 법적 전문성과 함께 법률을 대하는 민주적인 태도도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확실하게 민주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방법은 국민에게 판단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모든 과학적 진리와 마찬가지로 법도 잠정적인 타당성만을 주장할 수 있다. 법률의 규정은 언제나 과거의 결정이며, 법 제정 당시의 인식론과 세계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률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시대에 맞게 새롭게 해석되어야 한다. 그 해석의 기준은 다양할 수 있으므로, 해석의 최종 권한을 헌법재판관과 같은 특정인들이 독점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민주권 원리에 따라 국민이 최종적인 결정권을 보유해야 한다. 법철학적 관점에서도 국민이 입법과 해석의 최종 권한을 보유해야 한다. 헌법 제정권력자는 국민이며, 헌법 개정권력자도 국민이다. 따라서 최종적인 헌법 해석권력자도 마땅히 국민이어야 한다.
둘째, 푸코가 밝힌 것처럼 지식은 권력을 낳고 권력은 지식을 다시 강화하므로, 특정인들이 헌법 해석의 권한을 독점하는 체제에서는 소수 해석자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집중된 권력은 그 분야 전문가의 독점적 지위를 공고화한다. 헌법재판관들에게 주어진 독점적 해석 권력은 판결을 통해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력을 재강화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헌법 해석에 접근하고 판단할 수 있을 때만, 즉 헌법 해석에 관해 백가쟁명을 허용하고 그것에 기반하여 국민이 최종적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만 소수 법률 전문가들의 권력독점을 방지할 수 있다.
셋째, 헌법재판소의 폐쇄된 의사결정 구조는 자유로운 논쟁과 대화를 제한하기 때문에 특히 문제가 된다. 하나의 결정이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입장만을 반영해서는 안되며 보편성을 담보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특수한 입장들이 열린 공간에서 서로 논증하는 과정을 거쳐 타당한 논증이 선별되어야 한다. 이와 달리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폐쇄된 공간에서 이루어져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므로, 그 결정은 정당성이 결여된 합법화된 강압에 불과할 것이다. 특히 그 결정이 “전통, 선례, 상상된 자연법의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에 근거한다면 더욱 큰 문제다.”10) 결국 헌법재판소가 정당성이 의심스러운 전통을 끌어들여 ‘관습헌법’ 논리를 전개한 것은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대개 개인의 법률적·정치적 판단에는 개인적 성향이 깊이 개입되며, 개인적 성향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 각인되어 있다. 판사도 이러한 개인적 성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는 미 연방대법원 판사들의 이념적 성향에 따라 미국사회의 방향이 달라져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판사들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좌우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수의 성향에 국가의 주권이 귀착되는 제도는 불안정하며, 이들의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국민 다수가 공개된 장소에서 토의하고 판단하도록 제도를 재구성해야 한다.
불완전한 직접민주주의
국민주권 원리에서 가장 부합되는 정치제도는 직접민주주의다. 현실에서도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법률과 정책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 정치과정에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도입하여 활용한다. 국민투표, 국민발의, 국민소환 등이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기 위해 실시되는 미국의 예비선거제도, 한국의 국민참여경선 등도 직접민주주의 방식을 가미한 사례다. 그러나 국민투표와 예비선거 등은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정책 결정을 의미 있게 만드는 데 필수적인 토의 과정을 경시한다.
과거에 직접민주주의는 정치이론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를 경험한 후, 많은 사람들이 대중의 광범위한 정치참여가 갈등의 증대, 부적절한 분열, 환상주의를 초래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11) 그리고 대중이 정치에 점점 덜 개입하려는 경향을, 정치의 위기를 야기하는 정치적 무관심 때문이라고 분석하지 않고, 반대로 ‘대중이 통치자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거나,12) 대중이 정치에 ‘냉담하게 반응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건전함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13) 이러한 불신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주장은 근본적으로 직접민주주의를 불신하는 데서 시작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의 우려가 완전히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경험적으로 파악할 때 토의 없는 동원투표 방식은 시민들의 선입견을 강화하고 집단화하며, 생활세계의 권력관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할 뿐만 아니라, 엘리트들이 이를 쉽게 조작할 수 있어 의제를 통제하는 자가 의도한 대로 결과가 산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 그리고 최근의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선정에 대한 경쟁적 동원투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므로 직접민주주의 방식에서 투표 자체도 중요하지만, 타당성과 투표 과정에서의 공적 토론이 더 중요하다. “타당성과 공적 대화가 중심적 역할을 한다는 점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공동체적 정치는 세속적으로 변할 수 있고, 선한 의도를 지닌 민주주의자들을 집단주의의 위험스런 실험으로 이끌어갈 수 있다.”14) 국민발의와 국민소환도 마찬가지다. 토의가 없다면 단순한 동원투표와 동일한 오류를 범할 것이다. 따라서 단순한 투표 ― 직접민주주의는 대안이 아니며 토의민주주의를 제도화하여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야 한다.
국민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이론, 토의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하는 동시에 국민주권 원리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체제는 토의민주주의로 마련될 수 있다. 논자들에 따라 토의민주주의의 성격은 다양하다.15) 하버마스는 담화윤리론과 토의정치론을 중심으로 공론 영역과 시민사회에서의 토의를 강조하고, 롤스는 공적 이성 개념을 토대로 헌법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두며, 구트만과 톰슨은 토의민주주의 이념을 가치 일반에 확대 적용하여 일상에서의 토론을 중시한다.16) 코헨은 주로 정치적 영역에서 토의의 원리 및 그 실현방안을 탐구한다. 이들의 관점은 다양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의민주주의의 부정적 측면들을 교정하고 시민들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한다.
이론가들의 이론적 지향점에 따라 토의민주주의의 목표가 토의 그 자체에 있는지 아니면 정치적 결정을 위한 것인지 사이에 논란이 있다. 전자는 주로 시민사회에서의 토의를 강조하고, 후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투표와 협상을 대신하는 토의적 방법을 강조한다. 이 글의 목적이 토의민주주의 이념이 현실정치 과정에서 작동되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므로, 이 글에서는 정치의 목표를 ‘투표와 개인적 선택으로부터 가능한 모든 사람들의 토론에 의한 결정’(from vote/choice to voice)으로 전환 설정할 것이다.
의사결정이 토의적 방법으로 정당화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토의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토의민주주의에서 법률과 정책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단순히 주어진 이익균형을 정확하게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에 의해 영향받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고 공개된 토의하에 그것을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지 여부”17)다. 그러므로 토의민주주의는 이념적 측면에서 개인의 선택을 최우선시하는 자유민주주의를 교정하고, 방법론 측면에서 엘리트들이 결정권을 독점하는 대의민주주의를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토의민주주의 이념은 대리인들의 정치독점을 지양하고, 국민이 직접 토의적인 정치행위를 함으로써 최종적인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하며, 정책을 ‘모든 사람들의 자유롭고 공개된 토의’로 결정함으로써 국민주권 원리를 실현할 것을 지향한다.
코헨은 이러한 토의민주주의적 정치체제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입법부나 행정부의 독재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스스로 공적 결정을 내리므로 전통적인 공적 개념을 넘어선다. 둘째, 참여한 시민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권력을 행사하며, 소유권에 기반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간의 토론으로 결정하므로 전통적인 사적 개념을 넘어선다. 셋째, 참여하는 시민들이 잘 조직되고 성공적인 결사체의 구성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결사체 중심의 사유를 넘어선다. 넷째, 전통적인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제해결을 위한 일상적 지혜가 제공됨으로써, 전통적인 대리인 체제를 넘어선다.18)
토의민주주의의 목표를 “공동체의 의사결정을 위한 토의 과정에 정보를 갖춘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으로 설정할 때, 토의민주주의 이념이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는 “대중적 참여의 폭이 광범위하고, 참여 과정에서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며, 참여 방식이 통의적이어야 한다.”19)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의 광범위한 참여가 필요하다. 공청회·자문회의·위원회·태스크포스 등 전통적인 시민참여 과정에는 소수의 시민들, 특히 해당 정책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주로 참여했다. 토의민주주의는 이와 달리 다수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요구한다. 또한 일반 대중을 대신할 수 있는 집단(성·인종·지역·계급·연령 등)이면서 대표성 있는 시민들의 참여를 요구한다. 참여의 폭이 광범위하지만 대표성 없는 시민들이 참여한다면, 공동체가 어떤 정책을 선호하는지 엄밀하게 반영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참여의 폭이 좁지만 대표성 있는 시민들이 참여한다면 이를 반영할 수는 있겠지만, 광범위한 시민이 참여할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희생된다.
둘째, 정보에 근거한 공적 판단이 필요하다. 여론은 정책을 판단할 신뢰할 만한 토대를 제공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여론은 빈약한 정보에 의존하고 피상적이며 지속적이지 못하다. 토의민주주의는 여론이 아닌 공적 판단을 요구하며 공적 판단은 정보에 근거하여 일관되고 안정적이어야 한다. 정보에 근거해 공적 판단을 할 때는 문제의 기본적 요소와 요소들 간의 상관관계를 이해하고 대안적 정책과 연관된 결과를 예측할 필요가 있다.
셋째, 충분한 토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토의를 조직하는 과정은 창조적 지성과 규범적 평가가 수반되는 구성적(structured) 활동들이어야 한다. 그것은 시민들에게 선택지를 제시하고, 문제의 특성과 결과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합리적 토론을 촉진하고, 성찰적 판단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런 요건들은 지방도시의 예산문제와 같은 작은 행정 분야에서 해외파병과 같은 중앙정부의 정치적 결정에 이르기까지, 토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안들에 공통적으로 요구된다. 토의로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다수결 투표가 이루어진다. 이때 투표 결과는 사적인 선호를 집합한 것이 아니라 토의의 결과가 이루어낸 집단적 판단이 된다. 나아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토의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건보다 더 근본적인 요인들, 즉 시민사회의 발전, 공론의 장(場) 활성화, 시민들 간의 합리적 연대 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요건들은 토의민주주의가 실천될 때 더 빠르고 확고하게 정착될 것이다.
국민주권 회복을 위한 제도, 시민의회
현대 민주주의국가에서 대의제는 피할 수 없는 정치제도다.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이 정책결정 과정과 입법 과정에 일상적으로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주권을 대의기구에 포괄적으로 위임하는 것이 아니라, 대의기구의 권력을 제한하고 헌법적 판단이 필요한 사항은 국민이 직접 심판하는 대표체계를 구성해야 한다. 국민이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그 결정을 대리인들이 집행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헌법재판소를 대체하여 국민들이 주권적 결정 사안을 직접적·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시민의회를 구성해야 한다. 시민의회는 대의제가 방기한 국민주권 원리를 실현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야 하며, 이익 집약 투표가 아닌 토의적 과정을 거쳐 결정이 내려지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시민의회에서는 쟁점 사안에 상반된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 즉 정당, 정부 당국자, 일반시민 등 각계의 전문적 의견을 토대로 토의를 시작한다. 이러한 방식은 마넹이 바람직한 정치제도가 갖추어야 할 원칙으로 제시한 ‘탁월성의 원칙’과 ‘유사성의 원칙’을 조화시킬 수 있다.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의견을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탁월성의 원칙’이, 그들의 의견에 대해 일반시민들이 토의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의 원칙’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이 시민의회처럼 입법·사법·행정과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제4부의 구성을 이론적으로 시도했다. 미국의 법학자 웅거도 일종의 제4부를 구성할 것을 주장했고,20) 번하임은 극단적으로 대의민주주의를 종식시키고 그 대신 소수의 무작위 표본을 구성하여 다양한 정치적 이슈를 토론케 하는 토의기구를 제도화하자고 제안했다.21) 헬드는 통계적 대표제에 의거해 선택된 대표자들, 즉 성(性)과 인종을 포함한 주요 사회 범주의 통계적 대표자들을 뽑아 상원을 구성할 것을 주장했다.22)
이와 관련하여 체계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한 레이브는 정부정책 결정과정에 토의민주주의 이념을 직접적·제도적으로 뿌리내리기 위한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핵심은 배심원제도와 비슷하게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의 의회’에서 공공정책을 판결하는, 입법·사법·행정부와는 별개의 제4부를 구성하는 것이다.23) 이런 논의들을 바탕으로 제4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종합하고, 앞에서 제시한 ‘광범위한 참여’, ‘정보에 근거한 공적 판단’, ‘충분한 토의 기회 제공’이라는 요건을 만족시키며,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바람직한 시민의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계할 수 있다.
첫째, 시민의회는 입법부·사법부·행정부와 더불어 국민들이 좀더 분명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기구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시민의회는 국민발의와 국민투표를 결합하여 이를 대체함으로써 두 방식에 내재된 직접민주주의의 단점들을 제거할 수 있다. 시민의회는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최고 기구로서 자리매김하여, 국가기구 대리인의 임면을 규정하고 국가기구 간 권력충돌을 조정하는 최고 권력기구, 인권 보호와 신장을 꾀하는 인권의 최고 보호기구, 헌법 해석에 관한 최고 평결기구, 주요 외교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결정기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민의회가 최고의 대표성을 지니는 헌법적 최고 결정기구가 되고, 기존 3부는 시민의회의 헌법적 판단을 제도적으로 조정하여 일상적 정책결정과 법률의 판단을 담당하게 되면, 국민주권 원리에 부합되는 대표체계가 될 것이다.
둘째, 생활세계와 시민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을 직접 반영할 수 있도록 대표를 구성한다. 생활세계의 지역·성·계급·연령 등을 그대로 반영하도록, 즉 ‘유사성의 원칙’에 부합하도록 대표들을 계층별 무작위 선발한다. 임기는 1년으로 누구나 평생에 한 번만 재직 가능케 하여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며, 재직 동안 보수를 지급하여 빈곤한 사람도 부담 없이 임무를 담당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선발된 대표들은 국민들과 처지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국민과 같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할 것이다. 이때 대표들은 의회활동에서 완전하게 자유 위임된 상태에서 활동하지만, 대표들 스스로가 피지배자이기 때문에 강제 위임 방식이 의도했던 효과, 즉 대표자가 피지배자의 명령에 자연스럽게 귀속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셋째, 시민의회에서 결정할 사안은, 개략적으로 말하면 국가기구 간의 권력 분할과 갈등 해결에 관련된 사항(대통령 탄핵, 국가기관 간 중앙·지방정부 간 권한 분쟁 등), 기본권의 준수 및 확장에 관련된 사항, 위헌심판 청구와 헌법소원 등 헌법 이념의 구현에 관한 사항, 국군의 해외 파견과 전쟁 수행에 관한 사항, 국가기구를 통치하는 대리인들(대통령, 의원 등)의 선출 방식과 임면에 관한 사항 등이다.
시민의회가 독자적인 입법권을 행사하거나 시민의회의 결정에 행정부와 입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구상24)은, 기존 의회의 입법권과 상충될 수 있고, 시민의회가 국민주권을 행사하는 최고 권력기구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다만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라는 점에서 독자적인 헌법 개정안 제출 권한과 행정부·입법부에 대한 권고안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은 보유할 수 있다.
넷째, 의사결정에서 공개성·토의성·소통성을 원칙으로 한다. 공개성의 원칙은 토의가 공적 성격을 유지해야 하므로, 모든 토의 내용과 표결 결과는 완전히 공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토의성의 원칙은 모든 사안은 반드시 공개토론에 의해서만 그리고 그에 따른 표결에 의해서만 결정하는 것을 의미하며, 소통성의 원칙은 시민의회의 토론이 시민사회 및 생활세계와 긴밀히 상호작용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시민의회의 토론은 시민사회와 생활세계의 비판과 감시 및 의견 개진에 열려 있다. 구체적으로는 의원들을 무작위 소그룹으로 나누어 그룹별로 토론을 하고, 전체회의에서 다수결 비밀투표로 결정한다. 중요한 안건은 절대 다수의 가결을 요구한다.
다섯째, 시민의회 결정의 효력은 영원하지 않다. 판단의 무오류성을 가정하지 않고,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하여 5~10년 후에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고 시민의회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판단한 안건은 ‘다선택 포맷 방식의 국민투표’25)에 회부한다.
시민의회는 기존의 헌법재판소와 달리 엘리트가 아닌 일반시민으로 구성된다는 점, 토론이 공개되고 생활세계와 소통한다는 점, 결정 효력이 절대적이지 않고 재심할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으로 열려 있다. 또한 배심원제와 비교할 때 공개성과 소통성의 원칙을 따른다는 점에서 토론의 폭과 깊이를 더한다. 시민의회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외부와 소통하지 않은 채로 결정을 내리는 배심제와 달리 외부의 비판과 감시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민의회는 기존의 제도와 달리, 민주적 정당성과 소통성을 강화해준다. 1990년대부터 시행되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공론 조사(deliberative polling)는 이 글에서 구상하는 시민의회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시민의회가 토의를 활성화하고 토의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경험적 증거들을 보여준다.26)
결론
민주주의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것은 그 자체로서 인간 발전의 메커니즘이 되어야 한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의 삶의 길을 스스로 결정할 때,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민주권의 원리가 민주주의의 목적을 가장 충실하게 실현해주는 원리라 할 수 있으며, 직접민주주의는 여기에 가장 근접한 제도이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대략 200년 동안 존속했다. 아테네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벌어지는 전쟁, 주변국가들의 제국주의화 그리고 내부에서 등장한 선동정치 등 때문에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지속되는 기간에는 ‘힘없는 자’와 ‘힘 있는 자’ 간의 균형이 절묘하게 유지되었다. 민주주의가 쇠퇴하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었고, 권력의 중심이 대중집회소에서 소수의 부자에게 옮아가게 되었다. 부자들이 국가 중대사에 기부하는 돈이 많아지자, 공동선보다 부자들을 위해 국가 중대사가 결정되었다.27) 아테네 민주주의의 약점은 국가적 위기 시에 시민들이 정치적 사안들을 합리적으로 판단하지 못한 것, 안정되고 전문화된 관료기구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것은 직접민주주의가 가진 단점이라고 할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주권을 국가기구와 대리인들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기 때문에 시민은 정치적으로 수동화된다. 그리고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체계는 형식적으로만 국민주권 원리를 충족시킨다. 이 제도에서는 정치과정 내부에 사회통합을 견인할 수 있는 기제가 없기 때문에, 정치 외부의 시민사회에 의지하여 사회를 통합하고 정치적 갈등을 축소하고자 한다. 또한 정부와 정당이 관료화되어 소수 엘리트들이 위계적 의사결정 구조의 상부를 장악하기 때문에,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리인들의 활동영역도 위축된다.
대의민주주의의 대표체계를 헌법적으로 국민들이 직접 견제하지 못하게 되면, 그 체제는 하이에크적 악몽을 불러온다. 그 체제에서는 대리인들이 토의민주주의적 압력을 전혀 받지 않은 채 의사결정을 하게 되며, 개선된 해결책을 찾으라는 압력도 회피하게 되어, 극단적인 거래(bargain―ing)민주주의를 야기한다. 그 결과 정치적 힘의 우열이 현실에 그대로 나타나 전형적인 정실주의(logrolling)에 매몰된다.28)
이와 달리 토의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가 직면하는 약점들을 보완하는 동시에, 대의민주주의가 방기한 국민주권의 이념을 현실화한다. 토의민주주의는 직접민주주의에서 야기될 수 있는 정열의 과잉을 이성적 토의로 대체하고, 대의민주주의에서 흔히 발견되는 대리인들 간의 거래와 밀약을 시민의 합리적 토론으로 전환한다. 그럼으로써 토의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에서 결핍된 정치의 정당성을 복원한다.
국민주권 원리와 토의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치적 대표체계를 수정하여 국민주권을 담지하기에는 정당성이 결여된 헌법재판소를 폐지하고 시민의회를 신설해야 한다. 국민이 직접 그리고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토의적 정치과정이 권력의 정당성과 실효성을 담보할 유일한 원천이므로, 시민의회가 헌법재판소를 대체하고 주권적 결정사항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때 민주적인 정치적 대표체계가 완성될 것이다.
토의민주주의의 이념이 시민의회뿐만 아니라 기존의 입법부·사법부·행정부에서 제도화될수록, 정치가 배타적이고 집단적인 자기이익의 실현에 매몰되지 않고 전체 사회의 공공선을 향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토의민주주의는 장차 작업장 민주주의와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도 제도적으로 적용 가능하다. 작업장 민주주의는 특수한 제도 영역, 즉 작업장의 운영원리를 민주화하자는 것인데, 토의민주주의에서는 토의적 조건들의 충족을 우선적 과제로 상정할 뿐, 그 조건들을 충족하는 조직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29) 이 점에서 토의민주주의는 현재의 왜곡된 정치질서를 교정하는 이념이자 방법일 뿐만 아니라, 미래에 도래할 문제의 해결 방향도 제시하는 실천원리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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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 에르메, 임미경 옮김, 《민주주의로 가는 길》, 한울, 1998, 21쪽.
2) 같은 책, 40쪽.
3) 같은 책, 39쪽에서 재인용.
4) Fiorina, Morris P., “Extreme Voices: A Dark Side of Civic Engagement”, in Skocpol, T. and Morris P. Fiorina(eds.), Civic Engagememt in American Democracy, Brookings Institution Press, 1999.
5) Pateman, Carole, Participation and Democratic Theory, Cambridge: Cambridge Univ. Press, 1970, p. 1.
6) Macedo, Stephen(ed.), Deliberative Politics: Essays on Democracy and Disagreement, New York: Oxford Univ. Press, 1999.
7) 토의민주주의에 대한 개괄적 설명은 오현철, 〈토의민주주의 ― 이론 및 과제〉, 주성수·정상호 엮음, 《민주주의 대 민주주의》(아르케, 2006) 참조.
8) 위르겐 하버마스, 한상진·박영도 옮김, 《사실성과 타당성》, 나남, 2000, 216쪽.
9) 벤자민 바아버, 박재주 옮김, 《강한 민주주의》, 인간사랑, 1992, 220쪽.
10) Dryzek, John S., Deliberative Democracy and Beyond: Liberals, Critics, Contestations, New York: Cambridge Univ. Press, 2000, p. 71.
11) Berelson, Bernard, “Democratic theory and public opinion” , Public Opinion Quarterly, 16(autumn 1952); Parsons, Talcott, “Voting and the equilibrium of the American political system”, in E. Burdick and A. J. Brodbeck(eds.), American Voting Behaviour, Glencoe: The Free Press, 1960.
12) Almond, A. and Verba, S., The Civic Culture Revisited, Boston: Little, Brown & Co, 1963.
13) Lipset, Seymour M., Political Man, New York: Doubleday, 1963.
14) 바아버, 1992, 242쪽.
15) ‘deliberative democracy’에 대한 번역어에는 ‘토의’, ‘숙고’, ‘심의’, ‘협의’ 민주주의가 있다. 오늘날 널리 수용되고 있는 ‘deliberation’ 개념에는 다음과 같은 철학적 배경이 있다. 20세기의 철학은 전통적으로 인정되었던 경험이나 관념보다 언어를 인식의 매체로 더 주목하게 되었다. 이런 ‘언어학적 전회’ 이후, 현대의 사회철학도 인식과정에서 언어행위가 지닌 중요성을 수용했다. ‘deliberation’은 이러한 언어학적 전회를 내포한 개념이다. 하버마스는 이러한 배경하에 자신의 이론에서 일관되게 언어행위를 강조했다. ‘전회’ 이후 그의 이론에서는 ‘speech action, communication, discourse, deliberation’이 핵심 개념이 되었고, 하버마스와는 다른 관점에서 토의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이론가들의 핵심 개념이 ‘communication, dialogue, discuss, debate, rhetoric, story telling’ 등인 점을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 이론들과 개념들의 핵심에는 바로 언어행위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숙고, 심의 등 언어행위보다 사유를 강조하는 느낌의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협의에는 동의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행위라는 의미가 강하게 담겨 있어서, 합의 없는 극단적인 논쟁까지도 포함하는 후기 하버마스의 관점을 담아내지 못한다. 따라서 토의민주주의가 적절한 용어라고 할 수 있다.
16) 김명식, 〈롤스의 공적 이성과 심의민주주의〉, 《철학연구》 제65집(2004), 262쪽.
17) Greiff, Pablo De., “Deliberative democracy and group representation”, Social Theory and Practice, Fall, 2000, pp. 401~402.
18) Cohen, Joshua and Charles Sabel, “Directly―Deliberative Polyarchy”, COST A7 seminar, 1998, p. 4.
19) Weeks, Edward C., “The practice of deliberative democracy: Results from four large―scale trials”, Public Administration Review, Jul/Aug(2000), pp. 360~363.
20) Unger, Reberto Mangabeira, What Should legal Analysis Become?, London: Verso, 1996.
21) Burnheim, John, Is Democracy Possible?: The Alternative to Electoral Politics, Berkeley and Los Angeles: Univ. of California Press, 1985.
22) 데이비드 헬드, 이정식 옮김, 《민주주의의 모델》, 인간사랑, 1993, 323쪽.
23) Leib, Ethan J., Deliberative Democracy in America: A Proposal for a Popular Branch of Government, Pennsylvania State Univ. Press, 2004, pp. 12~25.
24) Ibid.
25) 바아버, 1992.
26) Fishkin, James S., “Deliberative Polling: Toward a Better―Informed Democracy”, http://cdd.stanford.edu/polls/docs/summary(검색일 2006. 4. 10.)
27) Grossman, L. K., The Electronic Republic: Reshaping Democracy in the Information Age, New York: A Twentieth Century Fund Book, 1995, pp. 34~39.
28) 28) Cohen and Sabel, 1998, p. 13.
29) Ibid. p. 15.
이 글의 출처는 《헌법 다시 보기》(함께하는시민행동 엮음, 창비, 2007)이다. 전재를 허락해주신 저자와 출판사 측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