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는, 말할 것도 없이, 히틀러 치하의 제3제국 독일과 독일 점령지역에서 600만의 무고한 유태인이 체계적으로 집단 학살을 당한 미증유의 참극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몽땅 불태워진 희생물’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구약성서 레위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의미의 말(Shoah)이 사용되었다. 구약의 세계에서는 짐승을 제물로 삼아 살 한 점 남김없이 몽땅 불태워 제단에 놓는 것은 신(神)에게 바치는 최상의 공물(供物)을 의미했다. 왜냐하면 ‘완전히 태운 제물[燔祭]’이라는 것은 인간이 먹을 몫을 전혀 남기지 않고, 제물 전체를 신의 몫으로 바치는 행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유태인 대학살만 홀로코스트인 것은 아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역시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대량 살상을 고의적으로 자행한 대참극이었다. 게다가 히로시마·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는 ‘제물의 전소(全燒)’라는 홀로코스트의 히브리적 의미에 보다 근접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히브리 민족에게 있어서 번제(燔祭)는 인간이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 앞에 다시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기 위한 자기희생의 의식이었다고 한다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것은 무엇을 위해서 누구에게 바쳐진 희생인가 하는 것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영구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이처럼 두 개의 홀로코스트에 의해서 종결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역사적 비극이고, 명백히 근대문명의 파산을 선고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볼 때,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전후(戰後)의 세계사회가, 좌우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이 홀로코스트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필연적인 결과가 무수한 대기 중 핵실험, 스리마일 아일랜드와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의한 가공할 핵재해라고 할 수 있다.
전후 냉전체제하에서 핵무기가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에서, 가장 근원적으로 핵(核)의 의미를 묻고, 치열하게 몸소 반핵운동에 뛰어든 철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귄터 안더스(Günther Anders)이다(이 탁발한 반핵 사상가·활동가는 20세기 후반, 세계의 지식계에서는 그저 하이데거의 제자 혹은 한나 아렌트의 첫 남편으로만 알려져왔다, 이것은 지식인 사회에서도 핵에 관한 몰이해 혹은 둔감성이 만연돼왔다는 것을 시사하는 징표이다). 그 안더스가 보기에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아우슈비츠의 경우는 학살의 집행자들이 유태인이라는 타자에 대해서 사디즘, 냉소주의, 증오감 혹은 죄책감을 품은 채 범죄를 저질렀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어쨌든 ‘인간적’인 범죄이자 악행이었다. 반면에 히로시마의 경우는 폭탄을 투하한 비행사들과 지상의 희생자들 사이에는 어떤 형태의 접촉도 없었다. 비행사들은 저 지상에 어린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조차 없이 단지 기계적으로 아무 감정의 동요 없이 단추를 눌렀을 뿐이다.
그러나 안더스는,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개의 홀로코스트에는 중요한 공통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특정 개인들의 책임을 따져 물을 수 있는 그런 범죄행위가 아니라는 공통점 말이다. 그것들은 어느 쪽이든 단계별 절차에 따라 차근차근 연속적으로 진행된 지극히 ‘정상적인’ 임무 수행들의 결과로서 빚어진 참상이었다. 그러므로 그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 개인은 있을 수 없었다. 거대한 악행이 저질러졌음에도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는 이 기막힌 사태 ― 이것은 결국 극단적인 분업과 전문화에 의거하여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문명사회의 회피할 수 없는 근원적 한계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한계 때문에 인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이 무지 혹은 정신적 맹목 상태를 전형적으로 표상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 해리 트루먼에 얽힌 일화이다. 그는 75회째 생일날 어떤 하객으로부터 “일생을 회고할 때 혹시 후회스러운 일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트루먼은 ‘결혼을 좀더 일찍 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대통령으로서 원폭 투하를 명령했던 일은 그의 기억 속에서는 ‘사소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물론 트루먼이라는 한 개인의 인간적 결함의 일단을 드러내는 일화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이것은 현대세계에서 소위 정치적 리더십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 진실을 부분적으로 알려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날에는 비록 국가수반이라고 해도, 그 직책이 요구하는 일처리 방식은 그저 평범한 사무원의 일처리와 본질적으로 다름없는 무반성적·기계적인 방식이기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가들의 시야와 정신도 매우 협소해지고 왜소한 수준을 벗어나 있지 못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지도자의 시야의 협소함과 정신의 저열함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극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공동체 전체에 언제든 가공할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전형을 우리는 2011년 3월 11일 이후 지금 진행 중에 있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처리과정에서 볼 수 있다.
후쿠시마 사태의 원인은 동일본 대지진과 강력한 쓰나미라고 흔히 얘기되고 있다. 그러나 따져보면, 지진이 빈발하는 일본열도에 54기의 원전이 건설·가동되어왔다는 불가사의한 사실 자체가 무엇보다 문제였다. 더욱이 일본은 인류 역사상 원폭 투하를 직접 겪은 유일한 나라가 아닌가? 그런 나라에 원전을 이처럼 분별없이 건설·가동해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심각한 정신적 맹목 증상이 전후 일본사회의 지배층과 정치를 지배해왔다고 가정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사고가 발생한 지 2년 반이 넘은 지금도 후쿠시마 사태는 수습 전망이 여전히 안개 속이다. 지난 7월 말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그동안 매일 300~400톤의 방사능 오염수가 태평양으로 흘러들어갔음을 공식적으로 시인했다. 이것은 필시 현 상황이 속수무책의 상황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 문제는 앞으로 전개될 엄중한 상황이다. 어쩌면 수십 년, 수백 년이 가도 이 상황은 계속될지 모른다. 그러는 동안 태평양은 고농도 방사능으로 광범위하게 오염되고, 마침내 ‘죽음의 바다’로 변할지 모른다.
위급한 상황은 오염수 문제에 한정돼 있지 않다. 지진학자들은 벌써 여러 해 전부터 일본열도가 ‘대지동란(大地動亂)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경고해왔다. 즉, 일본열도 주변에서의 지진활동의 역사를 조사해보면, 대개 400년 정도의 주기로 평온기와 활성기가 번갈아 나타나는데 이제부터는 강도 높은 지진이 빈발하는 활성기라는 것이다. 만일 이 예측이 맞아떨어진다면, 우리 모두는 실로 두려운 사태가 닥칠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된다. 예를 들어, 후쿠시마 인근에서 또다시 강도 높은 지진이 발생하여 지축이 흔들리게 된다면, 지금 그나마 간신히 행해지고 있는 사고 수습 노력은 모조리 무위로 돌아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쿠시마 사고 현장은 문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어 완전히 제어불능 상태에 빠질 것이고, 상상을 초월한 대규모 방사능 방출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현재 세계적인 전문가와 반핵운동가들은 이와 같은 사태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 왜냐하면 그때는 북반구 전역의 생태권이 방사능 오염 지옥으로 변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긴박하고도 엄중한 상황에서 놀라운 것은, 일본정부와 소위 지도층이 보여주는 철저한 무능과 무책임의 자세이다. 그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세계를 향해서는 물론, 자국민을 향해서도 진지한 사죄의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이 미증유의 재앙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옛 제국일본의 ‘영광’을 되찾자면서 어리석은 국가주의·군국주의의 논리에 함몰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한때 일본의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였던 인근 국가·국민을 얕보고 무시하는 언동을 되풀이하면서 쓸데없는 갈등과 대립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 지배층의 행태는 부분적으로 후쿠시마 사태라는 전대미문의 가공할 재앙 앞에서 그들이 느끼는 좌절감, 무력감을 반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이 자신들의 무능력을 드러내놓고 고백하거나 세계인들을 향해서 겸허한 자세로 도움을 요청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깊은 무력감과 절망감을 느끼고 있음을 암시하는 적지 않은 증거들이 있다. 그 하나는 이 와중에 “후쿠시마는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라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일본정부가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권 획득을 위해서 돌진해왔다는 사실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라는 문제적 조직의 신중치 못한 결정으로 그들의 뜻이 실현되었다고는 하나, 실제로 7년 후 올림픽이 도쿄에서 열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후쿠시마의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 정부와 지배층이 이 사실을 설마 모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국제사회를 향해서 일본국민들도, 자기자신들도, 믿지 못하는 거짓말을 굳이 할 수밖에 없다고 그들이 생각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지배층이 느끼는 절망감 혹은 무기력감의 표출의 증거로 볼 수 있는 또하나의 예는 지금 ‘제염작업’이라는 이름으로 후쿠시마 인근의 도시와 마을, 들과 산의 토양을 긁어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사실이다.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 대한 수습 가망성은 여전히 불투명하고, 피난민들에 대한 아무런 합리적인 대책도 마련하지 못한 형편인데도, ‘제염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기이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이다. 왜냐하면 토양의 윗표면을 긁어낸다고 해서 방사능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긁어낸 오염된 흙은 어디로 가는가? 그것을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장소가 지금 일본에 마련돼 있다는 것인가? 온 세계가 핵폐기물 처리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일본정부가 무슨 묘수라도 부려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인가? 오염된 흙을 긁어 모아서 어딘가에 갖다 놓는다면 거기에서 또 새로운 방사능 오염문제가 불거져 나올 게 명확한 게 아닌가? 그리고 무엇보다 산과 들, 바위, 숲과 덤불에 쌓인 방사능을 무슨 수로 걷어낸단 말인가?
방사능에 관한 한, ‘제염’이라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도 일본정부가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올림픽 개최 문제와 마찬가지로, 필시 후쿠시마라는 엄중한 사태를 직시하고 정당하게 대응하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결여한 자신들의 내면적 불안과 무력감을 은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파국적인 재앙 앞에서 깊은 무력감을 느끼며, 오히려 그 재앙의 흔적을 지우고 기억 속에서 말소하고자 하는 기도는 인간사회에서 별로 드문 일이 아니다. 1958년에 히로시마를 방문한 귄터 안더스의 눈에 포착된 광경도 그런 것이었다. 그는 그때 히로시마 원폭 투하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그들의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지만 그에게 ‘히로시마 재건 사업’이라는 것은 단지 폐허로부터의 복구작업만으로 인식되는 게 아니었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그 재건사업의 심층에는 가능한 한 철저히 원폭의 흔적을 제거하려는 반무의식적 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혹독한 재앙 앞에서 당혹과 무기력 혹은 좌절감을 느낄 때, 그것에 대하여 정면으로 고통스럽게 맞서기보다는 가능하다면 외면하고 잊어버리고자 하는 유혹에서 실제로 벗어나기 힘든 법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끔찍한 장면이나 그것에 관한 기억을 끊임없이 지우고자 하는 것이다. 귄터 안더스가 자신이 히로시마에서 목격한 ‘재건 사업’을 가리켜 그것은 히로시마에 대한 ‘제2의 파괴행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말해온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일본에만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재난에 직면하여, 그것을 똑바로 응시하며 그 의미를 음미하고 성찰하는 데에 무능을 드러내는 것은 현대세계의 공통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물질적으로 성장하고 사회가 ‘진보’할수록 재난 혹은 파국에 대응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감정적 힘이 약화되는 것은 어느 사회에서든 공통한 현상이다. 귄터 안더스는 이 힘을 상상력이라고 부르며, 현대사회의 근본 문제는 이 상상력의 결핍에 있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주의집중을 끊임없이 흐트러지게 하는 물건과 오락과 잡담이 갈수록 넘쳐나는 세상에서 상상력이 고갈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나 현대적 상황에서 홀로코스트 혹은 파국에 대한 둔감성을 조장하는 핵심적 요인은 아마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엄중한 사태를 끊임없이 왜곡하고, 비소(卑小)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기술용어의 남용(혹은 의도적 사용) 경향이다. 예를 들어, 나치스는 유태인 학살을 ‘최종적 해결’이라고 불렀고, 오늘날 미국정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침략전쟁, 그리고 세계 전역에서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 또 마약과의 전쟁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살상하면서 그것을 ‘부수적 손상’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용어들로 인해 지금 세계는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될 끔찍한 악행들을 쉽게 용납해버리는 극단적으로 불의한 상황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또하나 파국에의 감수성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빠트릴 수 없는, 그리고 용서하기 어려운 중요한 행위가 있다. 그것은 시와 예술의 이름으로 홀로코스트의 경험을 극적으로 승화(昇華)시키거나 혹은 ‘아름답게’ 작품화하려는 행위이다. 이것은 특히 예술이 상품이라는 형태 이외의 통로로 전달되는 것이 갈수록 지난한 자본주의 소비사회에 오래 길들여진 감수성으로는 저항하기 어려운 문학적·예술적 관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시도, 예술도 아니고, 묵시록적 사태를 왜곡이나 환상 없이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 혹은 정신적 성숙함이다. 묵시록적 사태를 시와 예술이라는 이름 밑에서 인간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 친숙한 것으로 만드는 행위는 예술행위가 아니라 외설적 행위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나치스에 의한 유태인 대학살은 실제로 인간성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속의 ‘시적 가능성’까지도 제거해버렸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아도르노의 비통한 선언은 물론 그 자신의 비범한 통찰력과 민감한 감수성의 소산이다. 그러나 그 통찰과 감수성에는 개인과 시대와 사회를 넘어서는 보편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실제로 홀로코스트적 상황에서 시를 쓰려고 한다는 것은 부도덕하다기보다 우둔한 짓일 수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아마도 가장 위엄 있는, 그리고 가장 진지한 행동은 근원적 의미에서의 ‘침묵’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