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에 발간된 《스턴보고서》는 영국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기후변화가 전 세계에 미칠 영향을 경제적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정리한 최초의 연구이다. 그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후변화가 시작되는 초기에 강력하게 조치를 취하는 쪽이 인류가 결국에는 치러야 할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기초적 요소―물, 농사, 건강, 환경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물 부족이나 기아,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 문제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될 인구가 적어도 수억 명에 이를 것이고, 기후변화가 초래할 경제적 손실은 20세기 초의 대공황과 두 차례 세계대전이 가져왔던 피해에 필적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추정했다.
온실가스 경감을 위한 강력한 대책이 전 세계에서 곧장 실행되지 못한다면, 지금부터 영원히, 그것도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5~20% 혹은 그 이상을 기후변화로 파괴된 것들을 복구하는 데 고스란히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제적으로 확실하게 대응할 수 있다면 매년 GDP의 1~2% 정도의 비용으로도 기후변화가 초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10~20년 동안(이 보고서가 발표된 건 2006년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인류사회가 무엇에 투자하고 자원을 어떤 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2050년 이후 문명의 진로가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하고 있다.
20년이 지난 현재, 《스턴보고서》의 예측은 현실이 되어 있다. 다만 기후변화의 직접적 결과인 이상기후나 자연재해, 그리고 간접적인 사회적·경제적 손실도 이른바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규모를 크게 능가하고 있고, 그런 사실을 올여름 전 세계는 혹독하게 배우고 있다. 특히 네팔 사람들에게 이번 여름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최근 네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서는 기후변화 문제를 둘러싼 주요 쟁점들이 거의 모두 나타나고 있는데, 우선 최신 과학기술이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난을 예상하거나 그것에 대처하는 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또한 기후변화의 파란을 정통으로 맞고 있는 건 저개발 국가들이지만 대기 중에 축적된 온실가스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는 주로 북반구의 산업선진국들이라는 역설도 두드러져 보인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양심적 연구자들의 숱한 경고가 있었지만, 경제성장이라는 주문(呪文) 아래에서 지속가능한 삶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언제나 나중의 일로, 후순위로 밀렸다. 그리고 기껏 ‘기후대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일도 대부분은 천지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면서 더욱 많은 기술을 배치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기후위기는 과학의 문제(天災)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人災)라고 지적했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네팔 사태에서도 그것이 다시 한번 확인되고 있다.
네팔의 비극은 이미 십수 년 전부터 전 세계에서 진행되어왔고 앞으로도 적어도 수십 년 동안 반복적으로 일어날 재앙의 단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거기에 더해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수천 명이 죽거나 다치고 또 수천 명의 생사를 알 길이 없는 상황에서 ‘관광을 와달라’고 호소하는 네팔정부의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녹아내리고 있는 히말라야 설산에 더 많은 관광객이 오르면 산사태의 위험이 더욱 커질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당장 국가적 재난사태를 헤쳐나가기 위해 관광수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외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경제는 긴박한 비상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이처럼 어떻게 해볼 도리 없이 최악의 길을 선택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것을 네팔은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것은 무역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80%, 곡물자급률 20%에 불과한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대단히 크다. 실제로 기후위기 시대에 반도체공장과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송전탑을 세우고, 원자력발전소를 더 맹렬하게 가동하겠다고 하는 우리 정부의 결정과 네팔정부의 재난 속 관광객 유치라는 선택 사이에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저성장’이라고 하는 한국사회의 곤경은, 따져보면 수출이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왜곡된 우리 경제구조와, 값싼 화석연료를 마구잡이로 이용할 수 없게 된 세계경제가 성장을 멈춘 데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현재 정부가 속도전으로 추진하고 있는 ‘메가프로젝트’는 그런 난국을 더 많은 산업개발로,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고 화석연료를 더 많이 사용해서 돌파하겠다는 것이므로, 도대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정부가 터무니없이 많은 공적 자금과 자원을 총동원하여 단 몇 개의 기업, 그리고 사실상 단 하나의 산업(인공지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일이 타당한가 하는 문제는 일단 논외로 두기로 하자. 고압 송전선, 데이터센터, 반도체공장, 수력발전소, 원전, 양수발전소 등 거대한 규모의 환경오염 시설들이 전국에 들어서게 되면 이 땅의 생태적 안정성이 크게 훼손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우선은 질문을 유보해두자. 인공지능(AI)이라는, 미래가 불확실한 기술에 한 나라의 경제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도박과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 대해서도 일단은 눈을 감기로 하자. 그러나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은 메가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도 급증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정부도, 이 기획의 중심에 있는 기업들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사업을 꼭 해야 하는 이유는, 물론, 경제성장을 위해서다. 대한민국 경제는 인공지능기술과 반도체에 달려 있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20년을 돌아볼 때 상당히 믿을 만하다고 판명이 난 《스턴보고서》의 분석에 따르면, 메가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되어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한국 경제가 성장하기는 어렵다. GDP의 20% 이상을 매년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을 메꾸는 데 온전히 바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메가프로젝트가 온실가스 배출을 상당하게 증가시키고, 또 그로 인해 우리의 기후대응 조치가 또다시 미뤄진다는 사실까지 감안한다면, 20%로도 턱없이 부족할 수 있다. 즉 메가프로젝트가 있든 없든 우리 경제는 성장하기보다 꾸준히 축소될 전망이다.
이 나라의 정부는 21세기의 세계경제를 좌우하고 있는 결정적 요소는 산업발전이 아니라 기후변화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파리기후협정이 제시한 1.5°C 목표는 정치적 이상(理想)을 실현하기 위한, 인류가 번영하기 위한 조건이 아니다. 산업시대 이전에 비해서 지구의 기온 상승을 1.5°C 이내로 묶어둘 수 있어야 전쟁과, 전쟁에 준하는 경제적·사회적 혼란을 간신히 피할 수 있으리라는 뜻이다. 즉 그건 우리가 잘 살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아무리 대범하고 틀림없는 결과를 가져올 기획이라고 해도 탄소배출을 늘리게 된다면 고려할 가치도 없는 것이다. 생물권을 축소시키고, 우리 삶의 기초적 토대를 망가뜨리면서 경제(GDP)가 성장할 수 있었던 시대는 지나갔다.
3대 메가프로젝트가 특히 문제인 것은 그 규모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판단이 맞고, 우리의 건전한 상식과 객관적인 과학연구가 모두 틀렸다고 치자. 그래도 이런 규모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옳지 않고 국가전략으로서도 타당하지 않다. 역사를 돌아보면 한때에는 틀림없는 과학적 진실로 여겨졌던 것이 불과 십여 년 만에 완전히 뒤집힌 사례가 허다하다. 역사의 최종장으로 여겨졌으나 나중에 보니 과도기였던 경우도 있었다. 기후변화도 과거 인류의 무지(無知)가 초래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다. 그러나 이런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우리 정부는 확신에 가득 차서, 그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부인한다. 아무리 훌륭한 계획이라고 해도 사람의 일인 만큼 미래세대에게 굴레가 되어버릴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신중한 검토 없이, 이런 광대한 규모로 토목사업을 추진해서는 안될 일이다. 쓸모없고 흉물스러운 거대한 유적들만 덩그러니 서 있는 황폐한 땅에서, 메가프로젝트 이전의 모습으로 국토를 되돌리는 일은 또다시 국가적 과업이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재명 대통령이 메가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모습은, 민주국가의 대통령이라기보다 전쟁을 이끄는 장군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한국이 처한 현실을 묘사하거나 미래에 대한 포부를 밝힐 때 사용하는 언어도 전투적이다. 아마도 전시(戰時)라고 판단하니까 국민들이 필요한 일이라고 합의해서 만들어놓은 규제도 쉽게 걷어치우고, 민주적 절차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훌륭한 장수에게는 언제나 복안(腹案)이 있다. 계획이 그르칠 경우도 대비하는 건 전술의 기본이다. 우리 정부는 어떤 복안을 갖고 있는가?
복안은 마련돼 있지 않은 것 같은데, 애초의 계획은 실현되기 어려우니 비극은 예고된 셈이다. 메가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조건들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값싼 석유가 계속해서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재생가능에너지로 필요한 전력을 충당한다고 말은 하고 있지만, ‘RE100’ 같은 수사(修辭)는 사실상 그런 진실을 감추고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발명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가 또다시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에 동참하라는 압박을 받으면서, 어느 쪽으로도 단호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것도 그 증거이다.
그런 한편에서,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그들의 하청업자로서 우리 재벌기업들의 경쟁력도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특정 산업이 언제까지 호경기일지 정확히 아는 일은 어렵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실질적 성과 없이 희망적 관측만으로 엄청난 규모의 투자를 받아왔고, 또 서로에게 투자하는 방식으로 AI 거품을 터무니없이 거대하게 부풀려 놓았다고 보는 경제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물, 땅, 전력이라는 물리적 자원의 한계 때문에도 AI산업은 계속해서 팽창할 수 없다.
물론 2차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구축되어온 (화석연료 기반의) 세계무역 구조도 변함없이 유지돼야 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그랬던 것처럼, 메가프로젝트 구상에서도 당연하게 상정돼 있는 이 나라의 생존전략은 석유화학제품을 수출하고 식량을 수입하여 살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에너지, 물의 수급 그리고 식량 수입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야말로 메가프로젝트가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지금과 같은 대지동란(大地動亂)의 시대에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꼭 짚어야 할 것이 있다. 어쩌면 메가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나 그것이 어떤 희생을 수반하는가 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전에 따져봐야 하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의 종착지에 관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재명 정부가 줄곧 이야기해온 ‘기본사회’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다. ‘기본사회’라는 정책의 목적은 국가가 최소한의 물질적 생활기반을 보장함으로써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자신을 마음껏 표현하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아니면, 우리 각자가 생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혹은 꽤 풍족한 생활이 가능한 정도로 복지혜택을 전 국민이 누릴 수 있다면 인간적 존엄이나 자율성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을 담고 있는 기획이었던 것일까?
지금으로선 후자로 판단된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메가프로젝트는 추진되고 있고, 또 그 결과는 민중의 자립적 기반을 망가뜨릴 것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이재명 정부가 구상하는 ‘기본사회’의 골자는 반도체든 인공지능이든 지금 현재 잘 팔리고 있는 산업이라면, 그것으로 인해서 다수 국민의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정부는 있는 힘껏 지원하여 더욱 발전시킬 것이고, 그렇게 해서 소수 대기업이 천문학적인 수익을 낼 때 세금을 왕창 거두어서 그것을 재원으로 삼아 전 국민에게 보편적인 복지혜택(‘보상’이라고 해야겠지만)을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고, 그 끝에는 헉슬리가 그려 보여주었던 ‘멋진 신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물질적 안락이라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지고, 온갖 전자장치들이 끊임없이 쏟아내는 시시한 정보들에 정신이 혼미해진 나머지, 이제 우리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김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