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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1.

당사자로서 바라본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녹색평론 통권 제193호 신문영/김승언

거대도시의 언저리
우리는 ‘우주마인드프로젝트’라는 단체명으로 주로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버스킹 같은 공연은 아니고 음성언어에 기반한 거리극을 창작하고 있다. 공연의 소재나 주제는 다양하지만 거창하게 말하자면 주로 사회와 개인 사이의 문제로부터 시작된 고민이나 질문을 발견하려는 과정을 추구하고 있다. 좀 다르게 말하자면 거리나 공공 공간을 무대로 일상에서 느끼는 문제를 뒤집어 보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예술행위를 통해 새로운 질문을 찾고자 하는 셈이다.
서울에 살다가 4년 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으로 오게 되었다. ‘지역에서 예술하기’라는 원대한 포부 같은 것은 아니었고, 사실상 직업예술인이 지역으로 이사한 것일 뿐이다. 다만 겁 많은 도시 촌놈들이라 수도권을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 같다. 2022년 겨울, 무언가에 쫓기듯 혹은 홀린 듯 귀촌을 결심하고 서울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제는 용인에 살고 있다고 말할 때마다 좀더 부연설명을 해야만 한다. 수지나 기흥 같은 도심이 아니라 용인의 동쪽 끝자락에 붙어 있는 농촌 동네라고.
4년 전 집을 알아보기 위해 들렀던 모든 부동산에서 하나같이 강조했던 내용은 이곳이 엄청나게 개발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인근에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설 예정이라 큰 도로가 뚫릴 것이다.” “마을 앞 2차선 도로가 8차선 대로로 뚫리고, 가까이에 고속도로 IC가 들어설 것이다.” “건물도 많이 지어지고 사람들이 많이 들어올 것이다.” “땅값이 오를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실제로 감각한 것은 농촌 그 자체가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연결, 도시와 농촌이 관계맺고 있는 불평등하고 착취적인 구조였다. 대도시를 위한 거대한 물류창고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도시인들이 꺼리는 장애인 시설, 노숙자 수용시설, 쓰레기 처리시설 등 이른바 혐오시설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산재해 있었다.
특히 가장 많이 느끼고 좌절한 지점은 아무리 도시를 벗어나도 ‘도시적’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삶의 조건들이었다. 지역의 농산물을 사려고 해도 값싸고 질 좋은 농산물은 대형마트에 있고, 가까운 곳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은 대부분 택배를 이용하게 된다. 턱없이 부족한 대중교통, 인도가 없는 2차선 도로, 질주하는 덤프트럭과 물류차량, 그 도로의 가장자리로 40분 동안 쉬지 않고 걸어야 닿을 수 있는 학교까지의 거리 등은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자가용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삼면, 사라진 독성리
현재 용인에서 추진되고 있는 반도체 클러스터 산업단지는 두 곳이다. 한 곳은 원삼면에서 이미 공사가 시작된 SK하이닉스 일반산업단지이고 다른 한 곳은 이동읍, 남사읍에 건설 예정인 삼성전자 국가산업단지이다. 2019년 문재인 정부 때 SK하이닉스 일반산단 부지가 선정되었는데, 당시 구미, 청주 등의 도시에서도 유치에 나섰으나 “반도체 인재를 확보하려면 수도권에 들어서야 한다”는 반도체업계의 요청이 받아들여져서 용인으로 최종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원삼면에 있었던 독성리, 죽능리, 고당리 3개의 마을이 공사부지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2023년 윤석열 정부 때 삼성전자 국가산단 부지가 결정되었다.
이사 온 그해, 추위와 공허함으로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방황하듯 둘러보다 지나게 된 원삼면의 독성리에는 2차선 도로 양쪽으로 혈서 같은 검은색 플래카드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오폐수 경로 변경 결사반대!’
‘제척! 제척! 제척 없인 죽음뿐!’
‘평생 살아왔는데 나가라니 웬 말이냐! 죽어도 못 나간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한 해를 보내고 다시 몇 개월이 지난 2024년의 어느 봄날,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독성리의 검은색 플래카드들이 궁금해졌다. 다시 찾은 독성리에서는 예전의 흔적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고, 사막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흙더미들과 곳곳에 꽂혀 있는 공사장 안전펜스, 내비게이션에도 정확히 표시되지 않는 공사용 도로들과 그곳을 익숙하게 오가는 덤프트럭들만 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 두 해 동안, 이천시를 지나 원삼면 반도체 산단으로 향하는 공업용수관 매립 공사가 진행되면서 우리 마을 앞 도로는 파헤쳐지고 다시 메워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우리는 남사읍과 이동읍, 원삼면으로 연결되는 전철 노선에 대한 계획들과, 선거철 정치인들이 외쳐대는 각종 시설 유치 공약들, 반도체 마이스터 고등학교 유치 경쟁, 각종 환경영향평가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환영하는 플래카드, 뜬금없이 마을에 나타나는 집장사, 땅장사하는 사람들, 처인구가 땅값이 가장 많이 올랐다는 뉴스, 공업용수와 전력 수급과 관련된 지역 정치의 역학관계에 대한 기사들, 세계적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한 자부심, 반도체특별법, 반도체산업과 그와 관련된 증시의 변화, 우후죽순으로 모든 분야에서 등장하는 AI산업에 대한 기대감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함께 감각하는 공연
한동안 목적도 없이 자료를 수집했다. 백암면이나 원삼면 주변에 걸리는 현수막 사진을 찍고 온갖 기사를 스크랩했다. 그러다 2025년 2월 서울변방연극제 공모에 〈반도챗(Half Chats around the Semiconductor in Korean Peninsula)〉이라는 제목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반도체 산단 공사를 둘러싼 수많은 이해관계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온갖 사회현상들, 그리고 한반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닮은 꼴 사회문제들에 대해 함께 잡다한 수다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최종 발표는 조사연구 과정을 공유하는 형식으로 총 4시간 정도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었다. 2025년 9월 9~10일, 우리는 관객들과 함께 수인분당선 기흥역에 모여 25인승 버스를 타고, 42번 국도(신중부대로)와 45번 국도(남북대로)를 지나 이동읍을 거쳐 원삼면의 공사현장을 관통했다. 공사장이 보이는 원삼초등학교 근처에서 내려 30분 정도 머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백암면으로 이동해서 도착한 구백암 마을회관에서 전을 부쳐 먹으며 이야기(‘수다전’)를 나누고, 짧은 낭독공연(‘반도췌’)과 준비한 자료집과 글(‘반도책’, ‘반도췌’)을 나누고, 관객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현장에서 지은 시에 대하여 시상식(상품은 ‘반도칩’(뻥튀기))도 진행되었다.
도심에서 외곽으로 이동하며 바뀌는 풍경들, 도시 근교의 풍광 좋은 낚시터, 여성 노숙인 수용시설로 시작했던 서울시립영보자애원, 문수산터널을 나오면 바로 연결되는 남용인IC(2025년 12월 23일 개통), 거대하게 위용을 드러내는 SK하이닉스 일반산단 공사현장, 파헤쳐진 공사장의 벼랑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보호수 두 그루, 흙더미 사이로 흔적만 남은 물줄기, 그 주변에서 진행되고 있는 신축 빌라 공사와 늘어나는 함바집들, 공사장 바로 옆에서 친환경농법으로 벼농사를 짓고 생활하고 있는 원주민 동네, ‘돈 되는 땅 사실 분 파실 분’ 부동산업자들의 홍보 스티커, 그리고 이천역으로 향하는 길에 멀리 보이는 이천 SK하이닉스. 이러한 흐름 속에 드보르작의 〈신세계로부터〉 2악장이 떠올랐다.
첫 답사로부터 3~4개월 후, 한전(한국전력공사) 건물이 가장 먼저 완공을 앞둔 것으로 보였다. 멀리 팹(반도체 공장) 1동의 건설을 위해 수십 대의 타워크레인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주변으로 345kV 고전압 송전탑들이 줄지어 있고, 길은 금세 바뀌고, 여전히 주민이 살고 있는 집 바로 옆으로 굴착기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닌다. 원삼초등학교 학생들은 공사현장 바로 앞으로 난 정문을 피해서 후문으로 다녀야 한다. 공사장 펜스에는 주변 주민들의 호소와 요구가 담긴 현수막들이 붙었다 떼어졌다 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진행되는 공사로 인해 한밤중에도 현장은 대낮처럼 밝다.

예술, 당사자로서 연루되기
굳이 관객들과 공사현장을 관통하고자 했던 것은 이런 사실들이 텍스트와 이미지로 접하는 ‘정보’가 아니라 직접 보고 느끼는 ‘감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께 감각하며 목격자로서 연루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반도챗〉을 준비할 때에도 그랬지만, 소위 예술행위를 해나갈 때에 가장 어려운 지점은 ‘예술의 언어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다. 관련 전문가도 아니고 사회운동가나 환경운동가도 아니지만 문제를 통감하는 당사자 아닌 당사자가 공연이라는 형식으로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질문의 형태를 띤 정답은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지 않을까? 르포나 렉처(lecture) 형식의 공연도 있긴 하지만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고발이나 폭로는 아니었다.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문제는 너무나 명백한 것이므로 우리는 정해진 답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찾으려 했고,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다만 지금까지도 아쉬운 것은 백암면, 원삼면의 이웃들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곳곳에 틈이 있다. 원삼면 주민과 백암면 주민 사이에, 우리와 백암면 주민 사이에, 우리와 외부에서 온 관객들 사이에, 원삼면 주민들 사이에, SK하이닉스와 주민들 사이에, 용인시와 여주시, 안성시 사이에, 주민과 부동산업자들 사이에.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서로 다른 입장들 사이에 수많은 틈이 있다. 그리고 이런 틈 사이에서 쉽게 떨치지 못하는 딜레마에 끝없이 갇히게 된다. 예술이 이런 틈을 들여다보고, 메우고, 새로운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까.

당사자, 또다른 당사자
용인의 시골마을로 이사 와서 가장 많이 접한 것은 물류창고이다. 물류창고도 많고 물류트럭도 많은 덕분에 본의 아니게 편리하다.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그 혜택을 받게 되고 나는 그렇게 엮이게 된다. 현대사회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이렇게나 불편한 것일 줄이야. 가장 가까운 예로 스마트폰이 그렇다. 우리는 반도체 없이, 비상계엄을 막을 수 있었을까? 문제는 반도체가 아니라 반도체 산단일까? 대규모 산단이 문제일까, 아니면 속도가 문제일까? 만약 반도체를 근본적으로 반대한다면, 그것만이 정답이라면, 과연 나는 기꺼이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인터넷을 하지 않고, 컴퓨터를 쓰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왜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산업단지가 필요할까? 그들이 말하는 필요는 누구의 필요일까?
2025년 10월 30일, 엔비디아의 젠슨 황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치맥 회동’을 가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며칠 후 젠슨 황이 한국에 GPU(그래픽처리장치) 26만 장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쏟아져 나왔고, 곧이어 전력 수급 문제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SK하이닉스 일반산단 건설을 둘러싸고 눈에 띄는 문제는 크게 부동산, 물(공업용수 및 오폐수), 전기 등 세 가지였고 그중 부동산과 공업용수 조달에 관해서는 적당히 얼버무리고 넘어간 것으로 보이지만, 드디어 전기(전력량) 문제라는 거대한 산을 맞닥뜨린 상황으로 보인다(덕분에 오폐수 문제에는 관심을 갖기에도 벅찬 상황인 것 같다).
원삼면의 SK하이닉스 반도체 일반산단의 공사부지는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약 126만 평, 약 416만㎡라고 하는데 숫자로 말해선 가늠이 잘 되지 않는다. 그냥 어마어마하게 넓다. 현재 전면 재검토를 요구받고 있는 이동읍, 남사읍에 걸친 삼성전자 국가산단은 일반산단의 거의 2배 크기로 약 235만 평이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수십 기가와트의 전력과 수백만 톤의 물과 수천 킬로미터의 송전선로와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는 양의 오폐수는 그 자체로도 엄청난 일이지만, 그로 인해 파생될 수천수만 가지 문제의 진원지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반도체 산단 건설을 둘러싼 문제들은 누구에게도 그저 강 건너 불이 아닐뿐더러 우리는 모두가 당사자일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마주친 개발과 관련한 현상들은 우리의 실존적 조건과 긴밀히 얽혀 있기 때문에 더욱 복잡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대도시 중심의 식민구조 때문에 지역에서 발전에 대한 욕망이 학습되었을지도 모르고,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이 지역의 발전과 경제적 풍요로움을 향한 욕망을 떠받치게 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누가 어떤 ‘당사자’인가에 따라 당위의 초점은 매 순간 달라진다.
〈반도챗〉 공연 전후로 발견한 것은 다양한 당사자들의 입장 차이란 전혀 다른 당위들 사이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당사자들과 외부적 시선을 가진 당사자들과 그 안에서 첨예하게 부딪치는 질문과 반문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른 ‘당사자’로서 더 나은 질문을 만나기 위한 생활과 예술활동을 이곳 원삼면 옆 백암면에서 이어갈 것이다.

193호 공개글 목록

01 책을 내면서 | 상상력과 용기 | 김정현
02 지방자치, 통합이 아닌 네트워크로 | 곽현근
03 당사자로서 바라본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 신문영/김승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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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보
신문영/김승언
극단 우주마인드프로젝트 창작자,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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