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경북 경산에서 40대 쿠팡 택배노동자가 배송 중 폭우에 휩쓸려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180mm가 넘는 기록적인 폭우에도 사용자인 쿠팡은 배송을 그 즉시 중단시키지 않았고, 해당 택배노동자에겐 업무를 중단할 작업중지권이 없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후재난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7월 17일 열린 〈기후재난 당사자의 목소리〉 기자회견 참가자는 최근 벌어진 택배노동자의 죽음이 왜 일어났는지 이야기했다. 폭우로 위험한 상황에서 택배운송을 중단할 권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폭염이 오면 건설작업을 멈추고 안전하게 쉴 권리, 시간에 쫓겨 위험을 감수하면서 에어컨 설치를 하지 않아도 될 권리, 침수위험이 큰 반지하방을 벗어나 안전한 주거환경에서 살 권리도 요원하다. 기자회견이 열린 날은 제헌절이었고, 기자회견장 맨 앞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제34조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날 기자회견은 기후위기 앞에서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과 그 권리를 보호할 국가의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를 묻고 있었다.
경과
기후위기 시대,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력은 헌법소원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헌법소원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 기본권의 구제를 청구하기 위한 제도다. 현재 헌법재판소에는 2020년 청소년기후소송을 시작으로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등 총 4건의 기후헌법소원이 병합심리 중에 있다.
2018년부터 전 세계 곳곳에서 청소년들의 기후운동이 벌어졌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1.5°C 특별보고서가 발표되고, ‘2050년 탄소중립’의 필요성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한국에서도 2019년 9월,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이 참여한 기후행진이 열렸다.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강화된 기후정책을 발표하는 나라들이 속속 나타났다. 이런 국내외의 흐름 속에서 한국정부도 2020년 10월 ‘2050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국회는 탄소중립을 위한 기본법 제정 논의를 시작했다.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핵심 쟁점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였다. 2021년 말까지 세계 각국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2050년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유엔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국회 탄소중립기본법 제정 과정에서 의원들 사이에 2030년 감축목표를 법률에 포함할지 말지, 포함한다면 어느 정도로 담을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시민사회는 당연히 1.5°C에 부합하는 목표(최소 2018년 대비 50% 이상)를 법률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런 목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21년 제정 공표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는 한국이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한다고 규정했고, 다음 해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서 감축목표를 40%로 확정하고 유엔에 제출하게 된다.
기후운동 진영이 던진 질문은 “이 정도의 감축목표로 기후위기를 막고(1.5°C 상승을 막고), 시민의 안전한 삶과 지속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담보할 수 있는가”였다. 입법부와 행정부 모두 이 질문을 외면했다. 2021년 10월 12일, 기후위기비상행동, 녹색당 등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이 주관하여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규정한 탄소중립법 제8조 1항에 대해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 소송이 있기 전 2020년 청소년 19명이 이미 헌법소원을 청구하였고, 2022년에는 아기와 어린이 62명으로 구성된 아기기후소송이 비슷한 취지로 소송을 제기하였다. 2023년에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대한 헌법소원도 제기되었다. 그리고 올해 헌재의 결정에 따라 4월 23일과 5월 21일 두 차례의 공개변론이 진행되었다. 2회에 걸쳐 공개변론을 한 것은, 아시아의 첫 기후소송으로 국내외의 사회적 관심이 반영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취지와 쟁점
두 차례의 공개변론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변론 전 열린 청구인들의 기자회견에는 많은 내외신 기자들이 찾아 취재를 했다. 공개변론이 열린 대심판정은 104석의 좌석이 만석이 되었다. 공개변론은 청구인 대리인와 정부 대리인 각각의 입장 진술, 재판관들의 질문과 답변, 양측에서 추천한 전문가들의 진술, 3인의 대표청구인의 최종진술로 진행되었다. 청구인 측의 헌법소원 취지는, 기후위기로 인해 국민과 미래세대의 기본권, 곧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이 침해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기후과학이 요구하는 1.5°C 온도제한 목표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기본권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둘러싸고 공개변론에서 청구인과 정부 양측의 공방이 오갔다.
첫째,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기후위기 대응에 충분한가다. 현재 한국은 2018년 대비 40%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1차 공개변론에서 김형두 재판관은 “(정부 쪽은) 파리협정이 각국의 자발적 목표 설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에 관한 법령이 위헌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죠?”라고 질문했다. 정부 측은 제조업 중심의 한국 산업구조상 현재의 목표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파리협정의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DR)’을 거론하며 감축목표는 각국이 알아서 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파리협정의 원칙을 왜곡하는 것이다. CBDR 원칙은 공동의 목표 달성을 전제로 각국의 감축책임에 차등이 있음을 표명한 것이지, 목표 달성은 무시한 채 각 나라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세계 경제규모 10위, 온실가스 배출량 13위, 1인당 배출량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1위 등을 감안할 때, 한국은 국제적 평균 이상의 감축책임을 져야 한다. 탄소무역장벽 등을 고려할 때 기후정책을 소홀히 하는 것이 현재 한국 경제에 유리하다고 보기도 힘들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배출 격차 보고서 2023〉에 따르면 세계 각국의 2030년 감축목표(NDC) 수준은 평균기온을 2.9°C까지 상승시킬 것으로 평가된다. 1.5°C 이내로 제한하려면, 탄소배출이 허용 총량(탄소예산)을 넘지 않아야 한다. 전 세계 탄소예산은 2020년 이후 약 5,000억t으로 추정된다. 인구 비례를 기준으로 각국이 나눈다면, 한국은 0.67%에 해당하는 33.4억t이 된다. 현재 한국의 정책대로라면 이 탄소예산은 2025년에 다 소진된다. 한국의 감축목표는 기후위기를 막기에 턱없이 부족하고, 탄소예산을 과도하게 소진함으로써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한다.
둘째, 2031년 이후 감축목표가 존재하지 않는 점이다. 탄소중립기본법은 2050년 탄소중립과 2030년 감축목표만을 규정하고 있고, 그 사이에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공개변론에서 이미선 재판관은 “2030~2050년 감축목표량을 설정하는 게 타당하지 않겠냐”라고 정부 쪽에 질문하였다. 정부 쪽은 현행법에 따라 5년마다 강화된 목표와 탄소중립기본계획을 새로 수립한다는 점을 들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온도 상승을 결정하는 것은 2030년 또는 2050년 당해 연도의 배출량이 아니라, 매년 누적된 배출량의 총합이다. 2030~2050년 20년의 기간 동안 시점과 종점의 목표만 있을 뿐 중간 지점의 목표치가 없으면, 2050년까지 누적되는 탄소배출을 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된다. 참고로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30년 이후 감축목표가 없으면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제약하게 되므로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셋째, 감축목표의 집행을 보장할 규정이 없는 점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절 2020년 감축목표를 5.43억t으로 수립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목표가 전혀 이행되지 않았음에도 아무런 책임조치 없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목표 시점을 2030년으로 10년 연장해버렸다. 현재의 탄소중립법에도 감축목표에 미달한 부분을 통제하거나 다음 해로 이월해서 지키도록 하는 조치는 없다. 목표를 이행하지 않아도 법률적, 정치적 책임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연도별 감축경로를 담은 탄소중립기본계획의 위헌성이다. 정부는 5년마다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세우게 된다. 2023년 만들어진 제1차 계획에 따르면, 2027년 현 정부 임기까지는 연평균 2%씩 온실가스를 줄이다가, 2028년부터 3년 동안 9.1%씩 큰 폭으로 줄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감축의 책임을 최대한 뒤로 미룬 볼록한 형태의 경로가 그려진다. 이것은 오목한 경로, 또는 직선 경로에 비해서 총 누적 배출량이 크게 늘어나고, 탄소예산의 소진은 그만큼 빨라진다.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둘러싼 구체적인 질문과 토론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감축목표의 수치와 기술적인 측면에 매몰되지 말고 이 쟁점이 지닌 의미를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기후위기가 헌법이 규정한 기본권의 사안인가, 현재 기후위기로 국민의 인권이 침해받고 있는가, 국가는 기본권보호의무를 다하고 있는가라는 점이다.
국가의 기후대응은 기본권 보호 의무이다
헌법소원 제기 전 2020년 12월, 녹색연합과 인권단체 등은 41명의 시민들과 함께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바 있다. 진정인들은 기후위기로 인해 지금 현재 자신들이 겪는 인권침해의 현실을 증언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 인권위는 “정부가 기후위기 상황에서 인권을 보호 증진할 의무가 있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다. 아울러 2023년, 인권위는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한다. 인권위의 의견은 정부를 강제할 힘이 없다는 측면에서 한계가 명확하지만, 인권에 관한 국가 최고기관이 기후위기에 대한 적극적 의견 표명을 한 것은 매우 의미가 크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유엔환경계획의 〈글로벌 기후소송 보고서―2023년 현황〉에 따르면, 전 세계 기후소송은 2017년 884건에서 2022년 2,180건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후헌법소원과 유사하게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사례들도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네덜란드의 우르헨다재단이 900여 명의 시민과 함께 제기한 기후소송으로,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은 우르헨다의 승소를 확정하였다. 최고법원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기본권을 침해하므로 강화하라는 판결을 내린 세계 첫 사례로서, 본격적인 기후소송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다.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독일의 기후보호법의 감축목표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독일 기후보호법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55%를 감축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는데, 이것이 2030년 이후 세대에게 과도한 부담을 전가한다고 보았다. 또한 2030년 이후의 감축 경로와 목표를 두지 않은 것이 헌법을 위반한다고 판결하였다. 독일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독일정부는 탄소중립 목표를 2045년으로 앞당기고, 2030까지 65%, 2040년까지 88%를 줄이기로 목표를 상향하였다. 이 소송은 한국과 유사한 헌법재판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탄소예산의 소진을 핵심 기준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판결로 평가받는다.
올해 4월에는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여성 노인 2,400명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20년 ‘기후보호를 위한 스위스 여성노인단체’는 스위스정부가 1.5°C 목표에 부합하는 감축을 하지 않는 것이 유럽인권협약상 생명권과 자율권의 침해라고 주장했다. 유럽연합의 헌법재판소라 할 수 있는 유럽인권재판소가 이 청구를 받아들여, 기후위기가 기본권의 문제라는 점과 각국 정부가 기본권 침해를 방지하는 수준으로 기후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천명한 셈이다.
기후헌법소원이 갖는 의미
이번 헌법소원은 아시아의 첫 기후소송으로서, 만약 헌법재판소가 위헌(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게 되면 각국에 기후소송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한국의 기후정책에도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위헌 판결이 난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해야 하고, 내년 유엔에 제출할 2035년 감축목표에도 영향을 미친다. 만약 감축목표가 강화되면, 이를 어떤 수단과 경로로 달성할지도 풀어야 할 과제로 남을 것이다. 잘못된 감축수단과 정의롭지 못한 전환경로로 헌법소원을 통해 지키고자 했던 기본권을 훼손하는 역설이 벌어져서는 안된다.
헌법소원의 의미는 온실가스 감축정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번 판결은 기후위기 대응이 바로 인권의 사안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경제적 비용효과를 따지는 정책 선택의 문제가 아닌 원칙과 규범의 사안이라는 의미다. 비교하자면, 과거 노예제는 당대의 경제를 지탱하는 기반이었다. 하지만 노예제 폐지를 경제적 유불리를 고려해서 평가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 그것은 불가침한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탄소 감축, 기후위기 대응도 경제성장과 기업의 이익에 미치는 영향과 동일선상에 놓고 저울질해서는 안된다. 기후헌법소원은 헌법이 명령하는 국가의 우선순위와 존재이유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헌법 제10조)를 지키는 것이다.
공개변론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정부를 대리해서 나온 법무공단의 변호사는 이 사건이 헌법소원의 적법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하면서, “기후변화로 인한 청구인들의 기본권 침해가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지 않다. 장차 언젠가 침해 우려가 있고 단순히 장래 잠재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권침해는 현재 벌어지는 일인가, 아니면 먼 훗날 벌어질 것에 대한 우려에 불과한가.
필자가 기후운동을 하며 만났던 이들이 있다. 이상기온으로 사과농사를 망쳐버린 농부, 폭염에 열사병으로 병원에 실려간 건설노동자, 바닷속 미역이 사라져 한숨짓는 해녀, 장마가 지고 태풍이 오면 밤잠을 못 이루는 반지하방의 주민. 이 모두가 공통되게 증언하는 점은, 기후위기가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기후헌법소원의 청구인들도 바로 그 증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공동체의 주권자로서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 헌법적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기후헌법소원은, 기후재난을 방치한 채 경제성장과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며 생명과 안전을 경시해온 국가를 향한 주권자의 질타의 목소리다. 기후위기 앞에 가만히 있지 않고, 헌법이 보장하는 스스로의 권리를 지키겠다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기후위기는 많은 것을 앗아갑니다. 소중하지 않은 것은 잃어도 아프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지키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이 기후소송을 지켜보는 이유는, 이 땅을 살아가는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토록 소중하고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공동체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5월 24일 2차 공개변론, 필자의 최종진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