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재앙, 희망의 신호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이 글은 <오래된 미래>(Ancient Futures)의 개정판(2000년)에 붙여진 저자의 새로운 서문을 옮긴 것이다.

《녹색평론》 제56호 (2001년 1-2월)

  지역 중심의 미래 - 희망의 베를 다시 짜면서

  이 책 원래의 에필로그에서 나는 지금 세계 전역에 걸쳐 사상과 경향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한편으로, 정부와 거대 기업은 자본 및 에너지 집약적인 성장을 지구 전체를 통해 장려하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움직임으로, 단작(單作) 중심이며, 세계 각처의 문화적, 생물학적 다양성에 대하여 극히 무감각하다. 다른 한편으로, 부적절한 개발에 저항하고, 지역 차원에서 좀더 건전하고 건강한 관계들을 새로이 형성하기 위한 수많은 풀뿌리 운동과 개인들의 노력이 갈수록 점점 큰 힘과 동력을 얻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종류의 혁신적인 노력에 헌신하고 있는 수백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환경 및 인간본성과 조화를 이루는 인간적, 사회적, 경제적 피륙을 다시 짜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지금 부상하고 있는 이러한 긍정적인 미시경향들을 보여주는 신호들은 어디에서나--직접적인 정치적 행동뿐만 아니라 좀더 눈에 덜 뜨이는 온갖 삶의 국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갈수록 많은 의사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너무나 상업화되고, 또 이윤을 좇는 기업과 지나치게 한 통속이 되어 이제는 건강의 적이 되어버린 주류 의료체제에 대하여 저항하기 시작하고 있고, 신학자들은 교회가 생태적 위기극복을 위한 운동에 합류하고, 삶을 위협하며 빈부 간격을 넓히는 체제에 반대할 것을 요구하기 시작하였으며, 건축가들은 낭비적이며 하이테크 중심적인, 그래서 그 속에서 살고 일하는 사람들이 창문조차 열지 못할 만큼 비인간적으로 된 그런 종류의 건물들을 배격하기 시작하고 있다.

  또다른 곳에서, 정원사들은 값비싼 이국종(異國種)을 멀리하고 보다 야생상태의 토착식물들을 선호하기 시작하고 있다.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데 있어서도, 인공색소, 방부제 및 가공식품이 배격되고, 좀더 자연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 내 생산 식품이 존중받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세력들이 가족의 유대와 공동체를 보존하고, 인간의 삶을 의미있게 하는 자연과의 접촉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적 욕구에 뿌리를 둔 것인 반면에, 세계화 경제의 엔진을 움직이는 '위로부터의' 세력들은 어떠한 비용을 치르든지 이윤을 추구하려는 욕망에 뿌리를 박고 있다. 어디를 보든지, 우리는 세계화를 추진하는 세력들이 가하는 위협 때문에 사람들이 땅으로부터 뿌리뽑히고, 공동체가 붕괴되며, 도시화와 잦고 빠른 거주이전을 통하여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분리되어버리는 것을 본다.

  이른바 '지구촌'--'코스모폴리턴적'인 세계경제의 열매를 추구함에 있어서 모든 나라를 결합시키고 있다고 정부와 기업이 장려하고 있는--은 실제로 뿌리 없는 단일문화의 세계로서, 거기에서는 어느 누구도 삶터나 전통 또는 지구와의 사이에 여하한 친밀한 관계도 더이상 느끼지 못한다. 막강한 힘을 가진 기업들이 투기적 카지노 경제를 끊임없이 주도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가속적으로 개발되는 테크놀로지들로 삶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규모가 커지며, 그 과정에서 익명성과 경쟁은 더욱더 심화되고 있다.

  점점더 규모가 커져가는 조직 속에서 증가하는 전문화 현상은 이들 세계화 주창자들의 좁은 관점을 더욱 편협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기업 내지 정부 지도자들은 갈수록 매개되거나 전문화된 정보에 의지하게 되고, 이 때문에 그들이 그들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알아보는 것은 어렵게 된다. 흔히 그들이 내리는 결정의 결과는 멀리 떨어진 곳, 즉 그들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의 바깥에서만 느껴질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성공의 척도는 종이 위의 수치이며, 갈수록 증가하는 국내총생산(GDP)이야말로 충분하고도 만족스러운 목표가 된다고 하는 관념에 그들이 집착하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확고한 기본전제 위에서, 정치 및 기업의 지도자들은 당연히 모든 수단을 다하여, 무역증대, 보조금 지불, 수출입 활성화 시책을 통하여 이른바 '성장률'을 높이려고 한다. 그리하여 그 과정에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고, 궁극적으로, 앞에서 우리가 말했듯이, 그들 자신과 그들이 내리는 결정은 그 결정의 현실적 결과로부터 분리된다.

  그 결과, 한 세기 이상에 걸쳐, 경제 전략들은 대기업들에게 이익을 주는 무역을 장려해왔다. 이들 '중간상인들'은 인수합병을 통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거대한 다국적 기업들(TNC)이 되었다.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지금 그 규모와 권력에 있어서 정부를 능가하고 있다.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사의 판매액을 합친 것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 전체의 GDP를 합한 것보다 더 높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경제 가운데서 51개는 기업의 것이고, 49개는 국민국가의 것이다.

  기업의 권력과 그에 따라 각국 정부에 미치는 영향력은 가트(GATT),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다자간투자협정(MAI)--기업이 세금과 노동비용이 낮고, 환경규제가 약한 국가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허용하는--등의 협약들로 한결 더 커졌다. 그리하여, 흔히 굴종적인 정부들은 기업들을 유인하거나, 이미 자국 내에 있는 기업들이 계속 머물러 있도록 하기 위해서 토지의 무상공여, 세금감면, 자본대여, 기타 갖가지 형태의 지원책을 제안한다.

  기업들이 인수합병을 통해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되어 세계경제를 주도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동시에, 정부들은 또한 세계경제가 유지되는 데 필요한 하부구조를 위해서 엄청난 지원을 제공해왔다. 예를 들어, 위성통신망, 대규모 중앙집중 에너지 시설(대규모 댐과 원자력발전소), 석유산품과 개스의 운반을 위한 파이프라인의 설치, 화학집약적, 단작영농 및 생명공학에 대한 연구개발 지원을 통한 산업농의 확대, 그리고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인력을 훈련시키는 기반으로서 전문 교육을 위한 대대적인 지원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정부의 뒷받침으로 인한 한 결과는 대량 생산되어 지구의 반을 돌아서 운송되어온 상품의 가격이 지역산품(産品)에 비해 '저렴'하다는 것이다. 특히 식품 생산에서 두드러진 이러한 인위적인 가격 저렴화 현상은 파리의 시장에서 뉴질랜드로부터 실려온 사과가 프랑스산 사과를 밀어내고,  2500만마리의 젖소가 있는 나라 몽고의 상점 선반에 현지 낙농제품보다 유럽산이 더 많이 쌓여있는 까닭을 설명해준다.

  이러한 추세--늘 '합리적'이라거나 '재정적으로 건전하다'라느니 '실제적'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의 궁극적인 결과는 맹목적이고, 그 자신의 맹목성에 눈먼 시스템의 출현이다. 이 시스템은 생명 자체의 연결관계들을 파괴하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극히 불합리한 것이다. 이른바 '성장'이 사실상 생물학적 성장을, 그것도 놀라운 속도로, 끝장내려고 하고 있는 때에 '성장'이라는 용어가 현대적 경제활동에 결부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해양생물학자들은 지금 인도양에서 조사된 산호초의 70% 내지 90%가 이미 죽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들 산호초는 전세계 물고기 종(種)의 25%의 서식처이며, 또한 다른 곳에서 잡히는 많은 물고기 종의 산란장이다. 바다 온도가 1도 이상 올라갈 때, 산호초에서 살고 있는 해조류들은 소멸되어버리고, 그리하여 그들이 내놓는 당(糖)이 없어짐에 따라 폴립들이 굶주리게 된다. 이제 인도양, 홍해, 걸프만, 동남아시아 및 서태평양의 수천마일에 걸쳐 있는 산호초들은 굶주려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뜻하지 아니한 환경파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세계의 자연적인 생물학적 및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하고, 하이테크에 기초한 단작(單作)을 획일적으로 강요하는 시도이다. 생명의 지속은 궁극적으로 다양성에 의존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단작 또는 획일적인 문화를 향해 간다는 것이 얼마나 새롭고, 파멸적인 일인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적으로, 인간문화는 지역적 적응을 통해서 세대에서 세대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왔고, 이 과정에서 생태계에 변경을 가하더라도 그 안전성을 훼손하지 않았다. 많은 경우 인간문화는 지역적 생물다양성을 의식적으로 증대시킴으로써 식량공급의 안전성과 생태적 안전성을 실제로 강화하였다. 오늘날 존재하는 농업적 생물다양성은 이러한 적응방식으로 특정 장소에서 씨앗을 성공적으로 골라왔던 여러 세대에 걸친 농민들의 노력의 산물이다.

  반면에, 지금 세계화는 지역, 민족, 국가경제를 모조리 하나의 세계체제 속으로 통합시키려 하고 있다. 그리하여, 각 지역에서 오랜 세월 형성되어온 농업형태들이 균질화를 강요당하고, 산업적 시스템에 의해 대체되어 가고 있다. 중앙집중적으로 관리되고, 살충제를 과다하게 사용하며, 수출 위주의 단작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이러한 시스템은 세계시장을 위해서 매우 한정된 범위의 수송가능한 식품만을 장려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농민들은 에너지 및 자본집약적인 기계에 의해 밀려나고, 지역공동체를 위한 다양한 식품생산은 오로지 이윤을 노리는 수출용 단작생산에 의해 밀려난다. 그 결과, 수많은 지역적 특성을 가진 식물종들이 사라진다. 생명공학은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하여, 자연적인 유전적 다양성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클론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자연적, 문화적, 경제적 다양성의 이와 같은 파괴는 농촌지역으로부터 도시로의 엄청난 인구이동을 초래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인구의 대다수는 아직 농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2025년이면 60%가 넘는 인구가 도시에서 살게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개발도상국에 있어서의 도시화는 수많은 문제--북적대는 슬럼, 실업, 빈곤, 형편없는 위생시설, 오염--와 동의어이다. 선진국에서도, 대규모의 도시화는 공동체의 상실과 직접 관계되어, 소외로부터 범죄, 폭력, 마약에 이르는 장기적인 부작용을 낳는다.

  따져보면, 하나로 통합된, 균질화된 지구촌에 대한 꿈은 근원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생명권에서 다양성은 강점이 되듯이, 인간문화에서도 다양성과 차이의 수용(受容)은 평화롭고, 번창하며, 조화로운 발전의 진정한 기초가 된다. 만약 새로운 천년에 우리가 우리를 위협하는 환경재앙과 사회적 붕괴를 피하려면, 우리는 지구촌을 포기하고, 세계화 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중심의 경제를 껴안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짜는 삶의 결

 <오래된 미래>가 처음 씌어진 이래, 세계화와 지역적인 가치의 소생 사이의 갈등은 점점더 치열하게 계속되어왔다. 이러한 엇갈리는 두 경향은 라다크에서도 볼 수 있다. 정부와 외부세력들은 계속하여 라다크 사람들로 하여금 전지구적인 소비주의 단작 문화를 받아들이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 텔레비젼이 갈수록 라다크 사회 내부로 깊이 침투해 들어오는 한편, 막대한 공공보조금의 혜택을 받은 가공식품들이 라다크의 자연적인 비가공 우기식품을 밀어내고 있다. 도시화가 장려됨에 따라, 농업체제가 붕괴되고, 농사일이 존경받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자기부정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다수의 라다크 십대들이 금발머리와 푸른 눈이라는 상투적인 서구인의 이미지를 본떠 '페어 앤 러블리'라고 불리는 유해한 피부 표백 크림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경향에도 불구하고, 가장 나쁜 상황은 지나갔다는 매우 실질적인 희망이 있다. 얼마 전까지, 이른바 경제개발의 압력 밑에서--지난 500년 동안 평화로운 힘의 균형을 유지해왔던--불교도들과 모슬렘들 사이에 권력과 일자리와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극적으로 심화되어 극단적인 폭력이 상호간 자행되었다. 두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서 상대방을 '절멸시켜야' 할 필요를 실제로 입에 담을 정도로까지 분열과 혼돈이 극에 달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 갈등은 가라앉았다. 상처는 아직 깊게 남아있지만, 그것은 치유중에 있고, 불교도들과 모슬렘들은 다시한번 상호의존적 관계 속에 평화롭게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나게 희망적인 신호이다. 이것은 경제적, 정치적 압력이 계속하여 불안과 실업을 조장하고, 또 그러한 압력 밑에서 강요된 서구식 교육체제는 젊은이들을 라다크 사회에 존재하지도 않는 일자리를 위해 훈련시키고 있지만, 인간정신은 결국 폭력이 아니라 평화로운 공존을 선택한다는 것, 그리고 적대관계나 전쟁이 아니라 상호존중의 상황에서 인간정신이 꽃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다른 희망의 신호들이 있다. 라다크의 많은 십대들이 엷은 피부의 외국인들의 이미지에 유혹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에 맞서서 라다크가 세계에 베풀어줄 수 있는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의식이 지금 커가고 있다. 이른바 '개발된 세계'(다시한번 생물세계를 파헤치고, 망가뜨리고 있는 사회 유형을 가리키는 아이러니칼한 용어지만)가 라다크 전통사회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가장 중요한 것들, 즉 자립, 검소, 사회적 조화, 환경적 지속성 및 내면적 풍요와 평화이다. 라다크 사람들의 자기부정이라는 큰 상처는 보기에 몹시 고통스러운 것이었지만, 이제 새로운 자존심으로 치유되기 시작하고 있다.

  '국제 에콜로지 및 문화센터(ISEC)'의 우리들이 시작한 일은 상당한 영향을 끼쳐왔다. 점점더 많은 비정부조직과 라다크 지도자들은 이러한 자존심의 상실을 가져온 힘들에 의식적으로 맞서려 노력하고 있다. 갈수록 많은 조직들--그중 다수는 ISEC의 도움으로 세워졌는데--이 외부로부터의 압력으로 자립성이 상실되었고, 수입된 기초식품에 대한 위험한 의존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라다크가 기본욕구의 충족에서 자립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깨닫고 있다. 이들 그룹의 많은 지도자들은 라다크의 식품이 지역에 기초하여 생산되어야 할 것을 주창하고, 지역중심 농업에 대한 존중을 장려하고 있다. 그 결과, 이제, 농민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심리적 압력에 대하여, 또 그러한 압력에 직면한 농민들을 지원해야 할 필요에 대하여 한층 인식이 높아졌다.

  우리의 조력으로 설립된 토착조직 '생태그룹'은 지역중심 유기농업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확고히 하면서, 자존심과 자립성을 장려함에 있어서 라다크 전역을 통해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생태그룹'은 또한 그동안 정부에 의해 크게 권장되어왔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비싸기도 한 유전자 변형 종자, 살충제, 살균제 등에 관계된 위험성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힘써 왔다. 이 '생태그룹'을 이끌어왔던 지도자들은 지금은 준자율적인 지방 정부의 지도자들이 되어있다.

  지금 4,000명의 회원을 가지고 있고, 마을마다 조직이 있는 '여성동맹'의 목소리는 라다크 문화의 문화적, 정신적 토대를 북돋우고, 보존하는 데 힘써 온 노력 때문에 점점 좋은 평판과 명성을 얻고 있다. 이 조직은 라다크에서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끄는 진정한 세력으로서 정부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우리의 '농장 프로젝트'도 서구인들에게 토착문화의 가치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위에서 묘사한 여러 부정적인 추세에도 불구하고, 아직 라다크 전통문화는 많이 보존되어 있으며, 최근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여전히 경제를 탈중심적으로 조직하는 방식에 대하여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농장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은 라다크에서의 경험을 통해 지식과 지혜와 생활방식이 지역 생태계에 절묘하게 조율되어 있는 문화에 대하여 보다 깊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농장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오늘날 지구상의 수많은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 사이의 긴장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세계 전역을 통한 세계화의 파괴적 영향에 대하여 그들이 읽어온 것과 일상생활에의 실제적인 참여를 결합함으로써 서구세계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이들 문제에 대하여 좀더 균형잡힌 시각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이른바 '개발도상'의 세계에 엄청난 심리적, 구조적 압력이 가해지고 있다는 것은 국제간의 정보교환 또는 이런 종류의 '반개발'이 긴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세계의 좀더 산업화된 지역에 속한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서구의 대중매체와 광고선전에 맞서는 일종의 '견제'로서 아직 산업화가 덜된 지역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도움을 줄 수 있다.     핵오염이든, 자동차로 인한 도로정체, 또는 산업적 화학물질 남용에 관한 우려이든, 오늘날 서구세계의 '있는 그대로의' 삶의 모습이 정직하게 조명되고, 이야기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오늘날 제3세계를 여행해보면, 사람들이 위험에 대한 아무런 인식도 없이 온갖 종류의 독성 화학물질을 다루고, 소금통으로 DDT 용기를 사 용하거나 심지어는 곡물과 야채에 살충제와 살균제를 직접 살포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흔히 포장지에 적혀있는 주의사항은 읽혀지지 않고, 설령 누군가 그것을 읽는다 하더라도 경험과 인식부족으로 사람들은 위험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이런 맥락에서, 서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정보는 실제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제3세계에서 환경운동 지도자들이 되었거나, 토착문화의 보호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서구세계에서 장기간의 머문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도 의의있는 일이다. 그들이 서구사회에 와서 집없는 사람들을 위한 보호시설이나 양노원 또는 정신병원을 실제로 방문하게 될 때, 또 그들이 사회적, 환경적 문제의 완화를 위해 부심하는 활동가들을 만나게 될 때, 그들은 대기업과 대중매체가 퍼뜨려온 유토피아적 개발에 대한 환상에 맞설 수 있는 강력한 통찰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서구식 개발 모델이 '해답'이 되기는커녕 문화적, 심리적, 환경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생생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다시 지역으로--저항과 갱생

  근래에 들어 라다크에서 이처럼 고무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긍정적 추세는 고립된 현상이 아니다. 오늘날 세계화는 갈수록 자항에 부딪히고 있으며, 세계 전역에서 반세계화 운동 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저명한 투자가들과 정치인들--'지구촌'의 주창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이 세계화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죠지 소로스는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핵심에서부터 붕괴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고 있고, 프랑스 수상 리오넬 죠스팽은 이 체제의 구조적 허약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대중들의 불안이 점점 커져가는 것을 보면서, 정부는 그들의 경제정책을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하고 있는데, 예컨대, 토니 블레어는 사회주의와 고삐풀린 시장 사이의 '제3의 길'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세계 전역에 걸쳐 사람들이 세계화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와 공동체와 환경에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인식함에 따라 그들은 단호히 '아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지난 5년 동안 저항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고, 그 결과 이제는 전지구적인 흐름이 역전될 수 있는 현실적인 기회가 생겨나고 있다.

  미국에서는 대중적 불안이 고조되어, '신속한 결정과정'이라는 무역협상 방식이 거부되었다. 마찬가지로, 위에서 말했듯이, '다자간 투자협정(MAI,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것은 '다국적 기업의 헌장'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은 다국적 기업들에게 실제로 국민국가들의 법률을 무시하고, 각 정부를 상대로 고소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도록 된 것이었지만, 풀뿌리 그룹들로부터의 압력으로 두차례나 보류되었다. 세계 전역에서 수많은 가두시위와 사무실 점거 및 그밖의 저항운동이 전개되었다.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족이 자신들의 문화전통에 가해지는 위협에 저항하여 거리를 행진하였고, 한국에서는 구조조정과 세계화에 항거하여 수천명이 서울 거리로 나섰다.

  세계화 경제에 저항하는 운동이 빠른 속도로 커져가고 있는 인도에서는 최근 농민, 학자, 시민단체, 노조 등으로 이루어진 그룹에 의하여 'WTO에 반대하는 인도민중의 선언'이 작성되었다. 이 선언의 공격목표는 'WTO-IMF-세계은행'으로 된 삼위일체의 체제인데, 이 체제는 "전세계 인구 3분의 2의 땀과 피를 빨아먹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연적 서식지와 문화적 다양성을 파괴하고 있다."

  인도에서는 또한 천만명이 넘는 '카르나타 농민연맹'의 농민들에 의하여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분점들이 파괴되고, 거대 종자회사 '카길'의 사무실들이 점거되고, '몬산토' 회사의 유전자 변형 곡물들이 불탔는데, 이 모든 것은 세계화의 파장에 대한 항거라는 좀더 큰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카르나타 농민연맹'은 또한 세계를 돌며 세계화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하여 인도전역에서 농민들과 그밖의 사람들을 규합하여 '인터컨티넨탈 캐러밴'을 조직하였다.

  이러한 제3세계의 목소리들은 '개발'과 '원조'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세계의 가장 먼 오지에 이르기까지 소비주의 문화를 퍼뜨리기 위하여 대기업들에 의하여 어떻게 이용되어왔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세계화에 대한 이러한 저항과 병행하여 또한 지역적인 것의 부활을 지향하는 중요한 움직임이 방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단작(單作) 또는 단일문화의 압력은 말할 것도 없이 서구세계에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한때 번창하는 다양성을 특징으로 했던 지역문화와 경제는 대규모 생산방식에 의해 밀려나버렸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파리는 온갖 종류의 야채와 고기, 치즈와 포도주를 파는 시장들로 가득한 도시였다. 그 생산물의 대부분은 파리 인접지역에서 생산된 것이었고, 아니면 프랑스 각지로부터 온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파리에서 중국산 마을이 아닌 것을 찾아보기는 어렵게 되었다. 슈퍼마켓에는 칠레산 포도와 캘리포니아산 포도주가 갈수록 흔한 것이 되고 있다. 비슷한 이야기는 남부 안달루치아의 작은 마을들에서도 발견된다. 몇십년 전까지 이들 마을의 상점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식품은 마을 자체에서 생산된 것이거나 아니면 바로 이웃마을에서 생산된 것이었다. 염소치즈, 올리브와 올리브기름, 포도, 신선한 건무화과, 포도주, 그리고 많은 종류의 고기를 거기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지역에서 생산된 것은 무엇이든지 찾아보기가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이런 추세에 맞서서, 서구의 시민단체들은 지역경제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노력 가운데서 아마도 가장 성공적인 것은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을 사먹자는 운동일 것이다. 지역식품 생산의 논리는 반박할 수 없이 정당한 것이다. 지역에서 기른 식품은 장거리 수송되어온 식품보다 더 신선하고, 따라서 더 맛있고, 더 영양이 풍부하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식품에는 방부제와 기타 인공적 화학물질이 덜 들어있을 가능성이 높은데, 왜냐하면 생산자가 소비자를 얼굴없는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알고 있을 때는 소비자의 건강을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을 할 가능성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바스시(市)에서 생겨난 영국의 최초의 '농민시장'은 반경 30 내지 40마일 이내에 근거를 둔 생산자들에게만 참여가 허용되었다. 바스의 농민시장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특별한 것이었다. 첫 몇주 동안 400개 이상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 가운데 대부분은 그와 유사한 시장을 설립하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유기농산물 장려운동을 하는 '토양협회'도 그 비슷한 200개의 문의를 받았다. 엄청난 반응 때문에 '토양협회'는 지금 농민시장을 설립하는 방법을 교육하기 위해 1일간의 과정을 개설하고 있고, 이러한 시장은 캔터베리, 허더스필드, 글래스턴베리, 옥스퍼드, 샐리스베리 등에서 계획중이거나 운영중에 있다.

  미국의 뉴욕에서는 24개 이상의 농민시장이 있고, 이로 말미암아 인근 카운티의 농민들이 몇백만달러에 달하는 추가적 소득을 올리고 있다. 코넬대학의 '새로운 농민, 새로운 시장'이라는 프로그램은 이런 방식으로 도시에서 농산물을 판매하도록 새 세대의 농민들을 규합, 훈련시킴으로써 농민들의 소득 증가에 이바지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점점더 많은 사람들이 또한 다양한 '공동체가 지원하는 농업(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좀더 친밀한 접촉을 도모하는--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다. 이 운동은 25년 전에 스위스에서 처음 시도된 이래 세계 전역을 휩쓸어 지금 일본에서는 수만명이 이 운동에 관계하고 있다. 전체 인구 가운데 2%를 제외하고 모두 땅을 떠나버린 미국에서 '공동체 지원 농장'은 1986년에 2개였던 것이 오늘날에는 100개로 증가하였다. 일반적으로 소농들은--자신들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먼 곳에 위치한 시장의 변덕스러움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매년 놀라운 속도로 파산해 가고 있지만, 그러나 소비자와의 직거래라는 방식은 이러한 추세를 역전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영국에서 현재 '농산물 상자배달 체계'는 특히 성공적인 것이 되어 널리 퍼지고 있다. 그 아이디어는 식품거래에서 중간상, 특히 슈퍼마켓의 역할을 배제하자는 것이다. 슈퍼마켓 대신에 소비자들이 농민들과의 직접적 관계를 만들어내어, 농장에 직접 신선한 농산물을 주문하면 일주일에 한번 농민들은 그것들을 상자에 넣어 보내는 것이다. 일년 이상 이러한 직거래 방식을 운영해온 딘의 포레스트에서는 이미 325,000파운드어치의 지역농산물이 판매되었다. '포레스트 식품 안내서'에는 32명의 농민들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고, 그들이 취급하는 농산물은 유기농산물과 놓아기른 가축 고기로부터 치즈에 이르는 다양한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금년 초에 있었던 한 조사에 의하면, 이러한 직거래 방식으로 일부 지역 생산자들의 총매상고가 25% 증가하였고, 그 인기는 계속 높아져가고 있다.

  최근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우려가 고조됨으로써, 광우병과 살충제, 성장호르몬 등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졌고, 그 결과 유기농산물 판매는 극적으로 증가하였다. 1996년에 '몬산토'사의 유전자 변형 콩이 영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사실상 제로상태였다. 오늘날 유전자 변형 식품은 뜨거운 사회문제가 되었고, 여론조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999년 8월 현재 유전자 변형 농산물의 상업적 재배, 수입, 특허화를 5년간 동결시키기 위한 캠페인은 영국의 100개 이상의 단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들 단체에는 제3세계 개발기관, 소매상, 교회단체, 의료단체, 농업연구센터, 소비자 조직, 그리고 말할 나위도 없지만, 환경단체들이 포함되어 있다.

  점점더 많은 사람들이 식품의 안전성과 영양가를 확보하는 최선의 방법이자 환경훼손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 유기농산물, 그것도 지역에서 생산된 유기농산물을 사서 먹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다. 1987년에 영국의 유기농산물 시장은 4,000만파운드어치였다. 1997년에 이르러 그것은 2억6천7백만파운드로 성장했다. 소매상들은 2000년이 되면 그것이 10억파운드로 치솟을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우리 앞에 놓여있는 여러 세세한 문제와 기회들을 넘어서, 지난 몇십년 동안의 교훈은 명백하다. 즉, 자연이 우리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주위에서 가속화하고 있는 환경위기를 볼 때 명백하다. 만약 우리가 자연의 필요와 한계에 적응하는 데 실패한다면, 자연이 우리를 틀림없이 파멸시킬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의 본성, 우리 자신의 욕구가 지금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도 또한 분명하다. 궁극적으로, 대중매체를 통한 선전이 아무리 광범위하게, 아무리 끈질기게 끊임없는 경제성장을 우리들에게 밀어붙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와 우리 아이들이 온전한 정신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하여 진실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우리 자신의 본능적인 이해를 꺾어버릴 만큼 충분히 강력한 것이 되지는 못한다.

  지역적인 것, 작은 것, 친밀한 것, 자연적인 것, 인간적인 것을 지향하는 추세는 결국 자연이 승리할 것이라는 사실, 세계를 정말 돌아가게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이와 같은 보다 깊은 가슴속의 힘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지금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자연의 생명부양체계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모두를 위한 물음은 실로 단순한 것이다--우리들 중 충분한 수가 얼마나 빨리 우리 자신의 가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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