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으로부터의 탈출은 있을 수 없다

죠지 몬비어트

 

영국 <가디언> 2000년 11월 2일

  홍수와 태풍이 우리들 집 앞을 쓸고 지나갈 무렵, 인류는 새로운 도전의 시작을 목격했다. 세명의 우주비행사가 우주공간에서의 영구적 거주 가능성을 탐사하기 위하여 지구궤도로 보내졌다. 인류는 이미 탈출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지상에 속박되어있는 삶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그것을 실지로 시도하는 행위야말로 작금의 위기의 진정한 원인이다. 지난 며칠간 재난에 가까웠던 날씨는 지구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는 증거 이외에 좀더 심오한 교훈을 준다. 즉, 자연으로부터 우리들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망상이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인식해왔다. 엥겔스는 일찍이 "우리가 자연에 대해 거둔 사소한 승리들을 가지고 들뜨지 말라. 우리가 승리할 때마다 자연은 우리에게 복수를 할 것이다. 우리의 살과 피와 두뇌는 모두 자연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우리는 자연의 깊숙한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라고 경고했다. 또, 오래된 인디언 격언에는 "자연을 빗자루로 쓸어서 문밖으로 치워버려도, 다시 창문으로 들어올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자연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과학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산업은 그 한계를 부정한다. 영국의 가장 저명한 정치, 경제이론가들은 우리가 '무게 없는 경제'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가벼운 공기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가상의 세계는 이번에 폭풍으로 씻겨 내려가버렸다. 이것은 마치 현실이 매우 잔혹하게 자신을 입증하는 듯했다.

  물질주의가 환경위기의 주요한 원인으로 자주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우리가 충분히 물질주의적이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주장해왔다. 우리들 대부분은 대체 물질이 어디서 나오고, 어떻게 생산되며, 다 쓴 후에는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관심이 없다. 우리들은 자연의 한계를 인식하기가, 우리를 먹여살릴 능력을 결정하는 열역학적이고 생물학적인 한계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인간의 행위와 거기 따른 환경적 결과 사이의 명백한 관계조차도 잘 모르고 있다. 월요일의 홍수 기사 바로 다음에는 트럭 운전사들이 유류가격의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경고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내가 읽은 바로는 그 어떤 지면에도 이 두가지 사건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나 언급이 없었다.

  생명을 속이려는 시도는 죽음조차 속이려는 시도로 발전했다. 금세기 말쯤에는 인간이 150이나 200세 정도까지 살 것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조차도 피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을 운명을 거부하는 와중에도 늙음에 대한 공포는 점점 더해지고 있다. 어떤 암의 발생률은 1950년이래 200% 증가했고, 거의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보고이지만, 60세 이상의 노인이 암에 걸려 죽을 확률은 50년 전보다 훨씬 더 증가했다. 이런 현상들의 원인은 증가일로에 있는 독성화학물질에 대한 노출임이 확인되고 있다.

  영원한 젊음의 시대에, 우리는 늙은 사람들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우리 모두가 결국에는 겪게 될 생물학적인 쇠퇴를 생각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자연의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의 결과로 우리는 추악하고 잔인하면서 짧은 생명 대신에 추악하고 잔인하면서 긴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세계가 우리를 지배한다는 진리를 거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연을 뒤로하는 데에는 미련이 남아있는 것이 분명하다. 경제신문들은 흔히 황소, 곰, 호랑이, 고릴라, 상어, 양가죽을 덮어 쓴 늑대 따위의 것들로 자본을 묘사하곤 한다. 우리는 여전히 농경시대의 비유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차를 말 앞에다 맨다든지, 황소 뿔을 잡는다든지, 알을 까기도 전에 암탉부터 센다 등의 말을 우리는 사용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는 경영자인 디즈니사의 마이클 아이즈너가 하는 핵심적인 사업은 동물들로 인간의 특징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는 인류가 생긴 이래 계속되어온 행위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전히 특정 형태의 육체노동에 대해 외경심을 갖고 있다. 그 실질적인 일은 별반 다를 것이 없음에도 우리가 구조요원은 공경하는 반면 경찰과 같은 직업에 대해서는 적의를 가지는 것이 그 한가지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육체노동에 대한 낭만적인 이미지는 우리가 그런 생활로부터 너무나 떨어져 살아가고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고 가정하는 것은 또다른 이야기이다. 홍수를 막기 위한 제방은 홍수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음이 판명되었다. 지구로부터 인류를 탈출시키려는 계획은,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화석연료를 사용함으로써, 탈출의 원인이 되는 문제들을 심화시키고 있다.

  우리가 자연을 거부하면 할수록 실은 우리는 자연 안에서의 우리 자신의 위치를 잃어가고 있을 뿐이다. (영국 <가디언>지 2000년 11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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