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매수되고 있는 과학

죠지 몬비어트

 

영국 <가디언> 2000년 7월 6일

  한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면 그를 하룻동안 먹여살린다. 그에게 낚시하는 법을 가르치면 그를 평생동안 먹여살리는 셈이다. 그 사람에게 최신설비가 된 낚싯배를 주면 그는 물고기 씨를 말릴 것이다. 현대과학은 이론상으로는 두번째 역할을 한다면서, 실제로는 세번째 일에 열중하고 있다.

  정부가 어제 약속한 1조파운드의 추가 지원금은 오래 연체된 것이다. 1983년에서 1999년 사이에, 영국의 공공 연구 자금은 20% 감축되었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박사과정 학생들은 현재 연봉 6,500파운드라는 풍성한 수입을 얻고 있다. 그런데, 이 추가 자금이 몇몇 연구원들의 활동에 이로울 것이라는 점이 확실한 반면에, 그 지원이 학문 자체의 탐구나 나머지 우리들 모두의 복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은 그리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연구 지원금  이외에도 과학자들은 필수적인 것으로서 갈망하지만, 정부는 제공하기를 꺼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문적 자유이다.

  과거에는 정부의 지원금이 기업체가 남긴 공백을 메꾸었다. 기업이 상업적 용도가 분명한 연구에 출자하는 반면, 정부는 '순수' 과학--즉각적 이익이 없는 연구--을 지원하곤 했다. 그러나 1993년의 과학기술에 대한 백서에서, 정부는 "산업의 요구에 더 잘 부합하는 연구분야"를 찾아 지원하도록 명 받았다. 대부분의 정부지원금 분배를 결정하는 학술연구 평의회는 기업쪽 사람들로 구성되고 있다. 또한, 대부분 기업인들로 구성된 '예측위원'들이 "상품가치가 있는 새로운 기회를 ... 판별"해 낸다. 그리고 과학이 부(富)의 창출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하여, 과학기술부는 상업/산업국의 하위에 놓이게 된다.

  노동당 정부는 더욱더 기업이 과학을 장악하게 만들었다. 현 정권은 고등교육 지원 협의회가 "고등교육이 기업과 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을 보장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지난주에, 과학부 장관인 세인즈배리 경(卿)은 과학자들과 함께, 대학의 연구가 상업적 필요에 종속되도록 할 방법을 찾기 위한 목적으로, "지식은 곧 상업가치이다" 라는 이름의 회의를 열었다. 그런데 세인즈배리 경은 순이론적인 연구란, "짐바브웨로부터 강낭콩을 들여오는 더 좋은 방법을 찾는 것"과 같은 일로 여기는 사람이다.

  이러한 모든 변화의 결과로, 상업성이 없는 학문에 대한 지원금은 완전히 사라졌다. 과학은 위축되었다. 영국 최고의 석학 중 일부는 이제 사람들의 소비를 증가시킬 방법을 찾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 일례로, 정부의 예측위원들은 "특정 상품의 소비에 영향을 끼치는 선택과 행동양태"에 대한 연구에 정부지원을 요구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과학의 위축은 경쟁력을 손상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영국의 대학들에서 석유·개스 연구에 투자되는 돈은 재생가능 에너지 연구비의 5배나 된다. 그런데, 석유·개스 산업은 이미 사양 산업인데 비하여, 재생가능 에너지는 이제 출발하는 산업인 것이다. 이것은 석유 산업체들이 연구지원 결정과정을 장악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가능한 최대한의 이익을 빼내는 동시에, 새로운 경쟁상대의 개발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지원금에 의한 속박으로 가장 손해를 입는 사람들은 과학자들이다. 과학은 그저 기존 지식의 새로운 적용 방법을 탐색하는 과정으로, 그리고 과학자들은 단순한 기술자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인간의 염색체 지도 제작은 괄목할 만한 업적이지만, 그 과정의 대부분은 복잡한 기계들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작업이었다. 지원금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과학자들은 생각한다. 과학은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왜곡에 대하여 시민들로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불가피하다. (수요가 전혀 없는) 유전자조작 곡물 연구에 사용된 정부의 지원금이 (공급이 오히려 부족한) 유기농법 연구 지원금의 30배나 되는 것을 보면, 우리가 속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 유전공학 쪽으로 자금이 쏠리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유전공학기술은 유기농법과는 다르게, 기업체들이 특허를 내고 조절이 가능한데, 이러한 기업들이 연구비 분배를 결정하는 평의회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적이게도, 많은 과학자들은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시민들 편에서 과학의 타락에 반대하지 않고, 그들의 후원자인 기업을 편들어 공중에 대항하였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과학자들은 학문의 자유를 얻고, 시민들은 자신들에게 해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를 보장받으려면, 우리들은 분명히 같은 편이 되어야 한다. 부패한, 학문의 새로운 지배자를 끌어내리기 위해서, 우리 대학들에는 혁명이 필요하다.

  원칙적으로는, 우리가 과학에 쓰는 돈이 많을수록, 우리 삶은 더 나아져야 한다. 그러나 공공의 연구가 순전히 사적인 목적에 이용될 때, 우리는 기부할 이유를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영국 <가디언> 2000년 7월 6일)

 

녹색평론사  (02)738-0663, 0666  fax (02)737-6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