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불소화 - 단순한 건강문제가 아닌 원칙의 문제

브루스 바턴

 

   브루스 바턴 (Bruce Barton) - 변호사.  이 글은 The Salt Lake Tribune, 2000년 10월 29일자에 게재되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불소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불소정제를 주어왔고, 내 가족들이 담당 치과의사에게서 불소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공공수도체계에 불소를 넣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이것은 원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공수도체계의 목적은 단 한가지이다. 즉, 그것은 공중에게 깨끗한 마실 물을 공급하는 것이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수돗물 속으로의 염소 투입과 수돗물불소화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염소를 투입하는 것은 물을 정화하기 위해서이다. 염소는 물 속의 세균을 처치하는 화학물질이다. 한편, 불소는 그것이 우리 몸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서 물 속으로 투입된다. 불소는 물의 정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해 물을 전달매체로 이용한다. 인위적 불소 첨가는 우리의 공공상수도체계의 목적을 변화시키고, 공공수도체계를 이용하는 데서 새로운 법적 판례를 만들어낸다.

  우리가 불소화합물과 같은 약물을 신체 내부로 운반하기 위해서 수돗물을 이용하기 시작한다면, 어떤 해악이 발생할 것인가? 생각해보라. 만약 수돗물이 불소를 운반하는 전달매체로서 이용된다면 장래에는 정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무슨 다른 약물을 수송하게 될 것인가? 골다공증을 막는 약물은 어떤가? 어떤 사람들은 골밀도를 증가시키고 골다공증 진행을 막기 위해 약을 먹는다. 이것은 건강과 연계된 가치있는 목적이다. 물에 이런 약물들을 첨가하는 것은 어떤가? 수돗물에 무엇을 넣을지를 누가 미래에 결정할 것인가? 그때마다 투표를 할 것인가? 우리는 어디에 선을 긋고 있는가? 오늘은 불소화지만 내일은 무엇이 될 것인가? 수돗물에 불소를 첨가하는 것은 소금에 요오드, 우유에 비타민 D, 혹은 빵에 비타민을 첨가하는 것과 같은 게 아니다. 나는 요오드가 들어있지 않은 소금을 구할 수 있고, 내가 직접 빵을 만들 수도 있으며, 내 식단에서 우유를 제외시켜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 문제되고 있는 것은 물이다. 삶을 위해 매일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물이다.

  변호사로서, 나는 선의에서 만들어진 법률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혀 다른 것으로 바뀌는 것을 허다히 보아왔다.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을 보라. 그것들은 20년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던 일들이다. 우리는 대규모 불소화라는 이 영역에서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미래에 어떤 법의 향방과 적합성이 오늘의 결정을 위해 존재할는지를 아는 것은 어렵다. FDA가 공인하였으나 나중에 심각한 부작용을 가지는 것으로 드러난 탈리도마이드나 펜-펜과 같은 약물에 대한 소송을 보라. 불소화 문제가 사람들의 투표에 부쳐질 것이라는 사실이 미래에 나타날 문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정부기관을 보호해 줄 것인가?

  나는 불소섭취로 인한 건강문제에 근거하여 불소화를 반대하는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나의 논점은 그러한 건강문제와 별개의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불소화 반대자가 내세우는 모든 건강상의 이유가 거짓이라 해도, 나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문제를 지적할 것이다--수돗물불소화는 공공수도체계를 변화시키고, 공중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한다는 원칙을 위배하는 일이다.

  수돗물불소화는 새로운 법적 판례를 만들어낸다. 수돗물불소화가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은 아니다. 충치감소는 가치있는 목표이다. 그러나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다른 좀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데도 왜 수돗물불소화를 이용하여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려 하는가?

  수돗물불소화를 거부하는 것은 치아 건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는 이런 식의 불소 사용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일 뿐이다.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들이 갖는 주요 문제는 그 대안적 방법들이 개인적 책임과 노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불소정제를 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치아에 대한 불소 국소처치를 받기 위해 치과를  방문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다. 그렇다. 부모가 되는 데에는 책임이 따른다.

  수돗물불소화는 좋은 결과를 달성하려는 게으른 방법이다. 그것은 부모가 맡아야 할 비용과 책임을 정부가 대신 맡아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 방법은 세금의 형태로 우리 사회에 비용을 분담시킨다. 이것은 옳은 일인가? 그것은 분명 쉬운 길이기는 하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어린아이들에게 불소를 사용하는 것이, 그 대부분이 낭비될 공공수도체계에 불소를 집어넣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나는 치과의사인 한 친구에게, 심지어 치과전문가들도 다른 대안적인 방법들이 비용도 덜 들고 명백히 보다 효과적일 것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는 이 때에, 왜 굳이 수돗물불소화를 추진하려고 하는지를 물었다. 그가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사람들이 게으르니까"가 그의 대답이었다. 나는 응답했다. "이보게,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사람들은 그들이 해야 될 많은 일들을 하지 않고 지내고 있다네. 그럴 때마다 정부가 나서야 되는가?" 그는 진지한 사람이다. 내가 단지 건강문제만이 아니라 법적 선례와 원칙에 기초한 수돗물불소화에 대한 나의 반대 입장을 설명했을 때, 그는 말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불소화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네."

  나는 지금 우리가 그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볼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행동에 대해 더 많은 개인적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이것은 건강한 사회의 기반에 필수적이다. 우리는 불소섭취를 강제하는 수돗물불소화에 대해 "절대 안 돼"라고 말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원칙의 문제이다.

 

녹색평론사  (02)738-0663, 0666  fax (02)737-6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