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소화 - 침묵의 벽을 깨뜨리다

마크 디젠도프

 

   이 글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과학사회학자 브라이언 마틴(Brian Martin)이 편집한 책 <전문가들에게 도전한다, Confronting the Experts>(뉴욕주립대학출판부, 1996년)의 제3장 "Fluoridation: Breaking the Silence Barrier"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필자 마크 디젠도프(Mark Diesendorf)는 본문에 나와 있는 대로 다채로운 연구 및 과학운동에 종사해온 오스트레일리아의 과학자로서, 70여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고, 네권의 책을 편집하였으며, 대중매체를 위해 많은 글을 기고하고, 강연과 인터뷰를 해왔다. 1994년 이래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의 '인간생태학 프로그램(Human Ecology Program)'을 맡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전문가들에게 도전한다, Confronting the Experts>(뉴욕주립대학출판부,1996) 제3장 "Fluoridation: Breaking the Silence Barr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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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말 - 이른바 "과학적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슈

  호주의 뉴사우스 웨일즈 남쪽 해안에 위치한 작은 마을 모루야의 마을회관, 이 마을에 공급되는 물을 불소화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토론하는 공개집회가 열리고 있다. 나는 단상에 앉아 내 연설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연단에는 호주치과의사협회(Australian Dental Association)의 불소화 캠페인을 주도하는 사람 하나가 서있다. 그는 청중들에게 어떤 수돗물에는 천연적으로 불소가 함유되어 있으며(그건 사실이다), 따라서 불소화는 안전한 것임에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말은 논리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독립적인 과학자로서 치과 및 의학계의 기성체제에 반대하고 있는 내가 불소화가 건강에 해로우며 그 혜택 또한 과장되어 왔다는 증거를 제시하면 과연 청중들은 내 말을 이해하고 믿을까? 연단의 치과의사는 만약 불소화가 유해하다면 인류는 천연불소에 의해 이미 멸종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지와 속임수 앞에서 나의 결심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영어권 국가에서 수돗물불소화는 치과의사, 의사, 보건공무원들에 의해 공중치과보건의 초석으로 제시되며, 치과의사 및 의사협회와 보건기관들은 이를 지지해왔다. 불소화는 막대한 혜택을 주면서 위험은 없는 것, 심지어는 '과학적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묘사된다.

  불소화란 천연적으로 불소가 함유되어 있는 수돗물에 첨가를 하여 농도를 1ppm, 즉 물 1리터 당 불소 1mg으로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천연적으로 불소가 1ppm 혹은 그 이상 함유되어 있는 지역도 있지만, 대부분의 수돗물에서 천연불소의 농도는 1ppm의 1/10-1/5이다. 따라서 불소화는 사람들의 불소 섭취량을 전체적으로 크게 증가시키게 된다.

  수돗물불소화의 목적이라는 것이 치과, 의학, 공중보건 문헌에서 '치아우식증'이라 부르는 충치의 확산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박테리아를 죽여서 마실 물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염소화와는 달리, 불소화는 치료를 목적으로 고안되었으며 따라서 대중에게 일괄적으로 주입하는 투약으로 간주될 수 있다. 수돗물불소화를 윤리적으로 반대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일부 반대자들은 불소화를 강제적 의료행위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나 같으면 보다 정확하게, 피하면 오히려 비싼 값을 치르는 투약이라고 하겠다. 왜냐하면 불소를 원치 않는 사람은 생수를 사 마시거나 마실 물에서 불소를 제거하는 장치를 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윤리적 이슈 이외에도, 누가 불소화를 통제하고 재정지원을 하며 득을 보게 되는가라는 정치적 이슈가 있고, 치의학적 효과와 건강상 위험의 판단, 환경적 영향이라는 과학적 이슈가 있다. 연구전문 과학자로서 나는 주로 과학적 이슈에 집중하는 한편, 윤리적·정치적 맥락에도 관심을 쏟아 왔다.

  수돗물불소화는 1950년대에 미국에서 시작되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기타 몇몇 다른 나라들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서유럽과 대부분의 비영어권 국가에서 불소화는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1) 스웨덴, 네덜란드, 독일, 핀란드에서는 시행이 중단되었는데, 주된 이유는 이미 알려졌거나 혹은 잠재적인 건강상의 위험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인공적으로 불소화된 물은 전세계 인구의 불과 몇 퍼센트만이 마시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은 불소화율이 아주 높은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언론에서 환경, 보건, 정치적 이슈에 대해 일반적으로 주류의 '전문가들'이 '반정부적인 사람들'보다 더 호의적으로 보도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이 절대적 다수의 국민에게 반대자들은 괴짜들이거나, 극우파 혹은 건강편집광들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데 성공한 예는 불소화뿐이다. 이 놀라운 프로파갠더의 성공은 일차적으로 의학 전문가들의 권위를 팔거나 '반정부적인' 치과의사, 의사, 과학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함으로써 거둔 것이었다. 반대자들에 대한 상투적인 이미지의 조작은 과학전문지와 매체가 불소화에 비판적인 자료를 출판하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침묵의 벽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불소화 반대운동에 특별히 요구되는 실천사항이다.

  이 글에서 나는 내가 어떻게 이 문제에 관여하게 되었는지, 어떻게 친불소화론에 존재하는 내적 모순과 허위보도를 발견했는지, 어떻게 불소화에 대항하여 캠페인을 벌였는지, 주류의 '전문가들'이 어떻게 나를 탄압하려고 했는지를 설명하고, 결론으로 몇가지 교훈을 제시하겠다. 상자 속의 글들은 각각 (1)불소화의 권력구조, (2)불소가 치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다룬다. 또 불소화에 대한 나의 비판을 요약하는 부록을 뒤에 덧붙였다.
 

  불소화 논쟁에 참여하게 되다

  엔지니어와 시인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원칙적이면서 동시에 총체적인 접근으로 문제해결을 하도록 요구받았다. 따라서 내가 사회정의, 환경보호, 생활환경 속의 화학물질과 방사선전리의 건강상 위험 등 폭넓은 흥미와 관심을 가진 연구전문 과학자가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비록 박사학위 연구는 대부분 응용수학의 한 특정 주제에 관한 것이었지만, 나의 잇따른 연구는 수학 및 다른 자연과학의 광범위한 실용적 응용에 두루 걸쳐있다. 우선, 영국 런던의 임페리얼 칼리지 박사연구원으로서 우주과학에 속하는 지상정보와 위성정보의 분석을 수행했다. 그런 다음 호주국립대학의 연구원이자 교수로 있으면서 곤충의 후각 및 시각 메커니즘 분야에서 신경생물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했고, 스스로 형태를 변화하는 생물학적 촉매들의 협동효과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를 추진하기도 했다. 1975년에서 1985년까지는 '과학 및 산업연구회(The 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Organisation, CSIRO)'(2)의 수학 및 통계 분과에서 전기 그리드를 이용한 발전(發電)계획, 풍력발전의 경제적 가치 등에 관한 일을 하였다.

  이러한 폭넓은 경험은 불소화와 같이 여러 학문분야가 중첩되어 있는 공공이슈를 대하는 데 큰 값어치를 발휘했다. 나는 내 박사학위 논문이 수소폭탄제조 과학자들에 의해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는데, 이 충격이 내가 공공이슈에 발을 들여놓는 데 상당한 자극이 되었다. 과학적으로 단련되고, 학문분야가 중첩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해준 이 경험은 1969년이래 자연스럽게 과학과 사회라는 이슈로 나를 데리고 갔다.(3)

  1970년대의 대부분은 호주 캔버라에 있는 '과학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학회(The Society for Social Responsibility in Science, SSRS)'의 부회장 혹은 이사로 일했다. 그 기간 중 SSRS 회원은 약 200명으로 대부분 과학자와 지식인들이었다. 학회의 목표는 과학기술의 사회적 결과와 함의를 정책결정자, 과학자,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이사로서 나는 조직의 거의 모든 활동--대부분 환경 이슈들이었다--을 개괄적으로 알고 있었으며, 내가 특별히 관심이 있는 분야들--현대 의학 비판(4), 새로운 공공보건 및 공동체 보건운동의 지지(5), 대체에너지(6)--을 소개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수돗물불소화의 부작용으로 고통받아 왔다고 믿는 사람들이 가끔 SSRS로 편지를 보내왔을 때, 당연히 나는 이 문제를 더 깊게 조사할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과학문헌을 찾다

  1970년대 중반에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연구전문 과학자로서 자연히 사람들이 주장하는 불소화의 혜택과 건강상의 위험에 관한 과학적 문헌부터 꼼꼼히 살펴보았다. 또한 불소화에 과학적 근거가 있다고 치과와 의학분야의 찬성자들이 주장했기 때문에, 치과, 의학, 과학 학술지의 오리지널 논문들을 살펴봐야지 공식기관의 논평이나 조사보고서에 제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친불소화론의 기본적 입장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불소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되는 나라에는 불소화가 충치를 엄청나게 감소시킬 뿐 아니라 전적으로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관공서발행 전단, 소책자, 보고서들이 많이 있다. 호주에서는 이러한 문서들이 주로 호주치과의사협회(ADA), 국립보건 및 의학연구위원회(National Health and Medical Research Council, NH&MRC) 그리고 주(州) 보건국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1970년대에, 안전성 주장을 정당화할 목적으로 씌어진 의학 및 과학논문들을 참고문헌으로 제시한 공공기관의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치의학적 효과에 관련해서, 불소화 지지자들은 '불소화의 아버지' 딘(H. T. Dean) 등이 미국의 천연 불소화 지역의 충치발생을 조사한 초기연구를 인용했다. 이들은 또한 1940년대 중반에 북미의 여러 도시에서 시행된 초창기 수돗물불소화 실험을 자기들 입장의 토대로 삼고 있었다. 학술지의 논문들을 읽고 나는 이 연구들이 정보를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통계학적 분석을 결여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많은 '고전적' 연구들의 과학적 수준은 고등학교 수준이지 대학 수준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연적이든 인위적이든 불소화의 혜택을 보고하는 연구가 하도 많다보니 처음에는 연구결과들이 진짜 맞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새로운 증거로서 비불소화 지역에서의 충치감소와 치아에 대한 불소의 활동 메커니즘이 밝혀지면서 그런 생각을 재고하게 되었다.(7)(아래 참조)

  불소화의 건강상 위험에 관한 오리지널한 의학 및 과학문헌을 찾기는 힘들었는데, 그것은 그런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불소화 지지자들의 주장 때문이었다. 그들의 팜플렛과 보고서들은 불소 때문에 고통을 당할 정도라면 불소화된 물을 욕조 한통 정도로 마셔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이 주장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이 주장은 단숨에 다량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급성효과와 소량을 수년 수십년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만성효과를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소화된 물을 마셨을 때 그중 약 절반의 불소가 (정상기능이라고 할 때) 신장에서 걸러지고 나머지는 뼈로 들어가 죽을 때까지 축적된다. 그런 뼈는 점점 무거워지지만 부서지기는 더 쉬운 상태가 된다는 것이 현재 널리 인정되고 있다. 정상적인 생애를 누린다면, 불소화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뼈에는 일생 동안 욕조 가득 들어있는 불소화된 물에 녹아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불소가 축적될 수 있다.

  불소화가 뼈와 인체의 다른 부분들에 끼치는 위험에 관한 문헌을 찾을 때 불소화 반대운동 관련 책과 미간행 보고서들이 도움이 되었는데, 거기에는 유용한 참고문헌들이 많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제공하는 정보 또한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했다. 왜냐하면 일부 풀뿌리 차원의 불소화 반대운동은 그들 나름의 전통에 묶여있기 때문이다.(8) 그러나, 나는 곧 뼈와 관절의 질환인 골격불소증이 세계의 여러 천연적으로 불소화된 지역에서 만연되어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몇몇 학술논문들을 발견했다.

  골격불소증은 관절염과 증상이 비슷하다. 관절염처럼 어떤 경우에는 불구가 될 수도 있다. 인도 등 여러나라의 천연적으로 불소화된 지역에서 골격불소증은 잘 알려진 공중보건 문제인데, 특히 고령층에서 그러하다. 인도에서는 심지어 불소농도가 0.7ppm밖에 안 되는 마을들에서도 골격불소증이 발견되기도 한다.(9) 그러나, 수돗물불소화 제창자들은 흔히 골격불소증은 불소농도가 8ppm 이상으로 매우 높은 곳에서만 발견되는 것처럼 거짓된 인상을 퍼뜨린다.(10) 0.7-2ppm에서도 골격불소증이 나타난다는 연구결과와 맞닥뜨리면 그들은 그것을 부정하거나 특이한 혹은 별난 지역이라는 꼬리표를 달려고 한다.

  그밖에 내가 발견한 여러 편의 논문은 인위적으로 불소화된 물과 불소정제에 대한 불내증(不耐症) 혹은 과민반응을 보고한 의사와 치과의사들의 연구성과였다. 과민반응에는 피부발진, 위통,  신경증상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반응들에 대한 임상보고서들은 '맹검법'을 통해 조사된 것이었다. 즉, 환자들이 자신이 언제 불소를 섭취하고, 언제 플라시보(僞藥)를 섭취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사된 것이었다. 이러한 반응들에 대하여 적절히 설계된 대규모의 역학(疫學)조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 행해진 한 실험적 연구는 인구의 약 1%정도가 이러한 민감성 체질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11)

  전문적인 치과문헌에서는 나이 어린 아동들이 불소를 섭취할 경우 치아에나멜을 형성하는 세포가 손상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치아불소증으로 알려진 특이한 치아반점들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음을 나는 발견하였다.(12) 그러나 치아불소증이 생리학적 손상을 가리키는 명백한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불소화 옹호자들은 이를 단지 '미용상'의 효과로 묘사한다. 이런 태도는 내게, 잘 알려진 질병에 대한 공개적인 인정이 아니라 영악한 상술처럼 보인다.

  나의 연구가 이 단계에 이르자, 공식적인 친불소화 보고서와 소책자들이 불소화의 안전성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중요한 과학 및 의학논문을 무시하거나, 말도 안 되는 근거로 폐기했거나, 아니면 내용을 왜곡해왔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이러한 사리에 어긋난 행위들 때문에 나는 불소화에 더욱 구미가 당겼고, 과학의 공익성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관련해서 수돗물불소화의 문제에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불소화에 관계하여 뭔가를 해야겠다는 내 결심은 '타스마니아 로열 커미션(Tasmanian Royal Commission, TRC)'(13)의 보고서를 읽고 더욱 강화되었다. TRC 보고서는 부분적으로 인종주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보고서에는 골격불소증에 관한 논의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병을 '원주민'에게만 발생하며 따라서 (백인) 호주인들에게는 관계가 없는 질병으로 분류함으로써 해외의 증거를 멸시하고 있었다. 나는 방사능의 건강상 위험과 핵에너지 문제의 경우처럼,(14) 제도권의 '전문가들'이 대중과 정책결정자들을 오도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동맹자를 찾다

  호주 내 불소화 반대운동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함으로써, 나는 불소화의 안전성과 효과에 대해 의심해왔던 호주와 해외의 과학자, 치과의사, 의사들과 접촉하게 되었다.

  1970년대와 80년대 초, 불소화에 대한 나의 전문적, 과학적 주요 조언자는 멜버른 대학교 치과대학의 치학 연구자이자 교수였던 필립 써튼 박사(15), 캔사스 대학교 화학교수 앨버트 버그스탤러, 금속표면처리와 전기화학에 전문지식을 가진 퇴임 사업가이며, 호주의 풀뿌리 반불소화운동 대표 글렌 워커 씨였다.(16)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뉴질랜드 불소화추진위원회(Fluoridation Promotion Committee of New Zealand)'의 전 의장이었고 지금은 세계적인 불소화 반대론자가 된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존 코훈 박사와의 정기적인 서신교환이 큰 도움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캘리포니아의 의사 존 리 박사와 서신교환을 하였다. 이들과 기타 비주류의 '전문가들'은 생산적으로 정보를 상호교환하고,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있다. 우리들의 지식과 경험은 치과, 의학, 과학의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

  나는 정기적으로 치과 및 의학 도서관을 뒤져 불소화에 관한 논문을 출판하는 주요 학술지들을 알아냈다. 의학 및 치과 조언자들이 조금씩 도와줘 오래지 않아 기초적인 전문용어도 알게 되었다. 나는 더 나아가서 전문가들이 대중들을 향해서는 꿈에도 그렇게 할 생각이 없지만, 그들만이 보는 학술지에서는 때로는 솔직한 말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후로 이러한 솔직한 시인의 말들은 불소화에 대한 나의 출판물과 드물게 벌어지는 공개토론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었다.
 

  불소화에 대한 나의 최초의 논문 발표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불소화에 대한 나의 우려를 뒷받침할 증거를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이 이슈를 제기한다면 그 즉시 괴짜, 광신자, 아니면 편집광으로 낙인찍힐 분위기 속에서 내 글을 내보낼 길이라곤 불소화에 관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역의 신문이나 라디오 외에는 거의 없었다.

  한편, SSRS를 위한 나의 자발적인 작업은 당시 호주에서는 낯선 《마술총알(The Magic Bullet)》이라는 현대의학 비평지의 기획 및 편집을 하는 것이었다.(17) 뛰어난 인간생태주의자 스티븐 보이든 박사와 함께 쓴 <환경과 건강>이라는 장(章)에서 우리는 불소화를, 괴혈병을 예방하기 위해 적당한 양의 비타민 C를 복용하는 것과 같은 필수적 예방의약이라기보다는 대응적 예방의약으로 보았다. 불소는 치아균열 봉합제(실란트)와 같은 대응적 처치이다. 왜냐하면 친불소화론자의 선전과는 반대로 일일 일정한 mg의 형식으로 투여되는 불소가 건강한 치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친불소화론자들이 권장하는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불소를 섭취하는데도 뛰어나게 양호한 치아를 유지하고 있다.

  《마술총알》은 폭넓은 대중과 매체의 관심을 끌었고(18) 순식간에 팔려 나갔다. 곧이어 나는 <환경과 생활방식이 인간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전국 학술대회의 공동조직위원이 되었다.(19) 회의는 오늘날 근본적으로 환경과 생활방식에 대부분 관련되어 있는 건강문제들에 대한 의학전문가들의 영향력을 감소시키고, 대중과 공동체의 건강의 역할을 강조하는 데에 바쳐졌다.  그러한 회의를 위한 때가 무르익어 있었고, 그 결과 회의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 대회에서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예방에 대한 면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서 나는 불소화가 건강상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예방의약 형태의 대표적인 예라고 결론지었다.(20) 적절한 맥락을 제시하며 재미있게 설명하고 불소화를 정면공격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발표는 잘 먹혀들었다. 아마도 호주에서 불소화의 건강상 위험을 검토하는 논문이 환경과 생활방식에 관심이 있는 공중보건전문가와 의사, 기타 보건전문가와 학자들 앞에서 발표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제한적이나마 전문가들의 침묵의 벽을 깨뜨린 이러한 성공에 고무받아, 나는 이번에는 영국왕립의사대학(British Royal College of Physicians)이 1976년에 내놓은 친불소화 보고서에 대한 비판적 리뷰를 썼다.(21) 불소화를 직접적으로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건강연구(Community Health Studies)》라는 호주공중보건협회(Australian Public Health Association)에서 발간하는 저널은 나의 리뷰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것은 공공/공동체보건 분야에서 내가 새로이 획득한 신뢰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한 심사위원이 나에게 편견이 있다며 비난했으나, 그의 논평에 대한 나의 답변을 받아본 다음에 저널은 내가 쓴 리뷰를 게재하였다.(22)
 

  논쟁이 언론의 주목을 끌다

  1979년 불소화와 암의 상관관계를 주장한 논문의 주(主) 필자인 미국의 생화학자 존 야무야니스 박사(23)의 호주 방문은 이 논란거리 이슈가 보다 상세히 대중에게 전달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가 도착하자마자 주류 의학 및 치과계는 언론매체에서 야무야니스를 개인적으로 공격하였으나 그가 제시한 과학적 증거를 토론할 의지는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SSRS를 움직여서, 호주국립대학이 야무야니스와 NH&MRC의 대변인 사이의 과학적 논쟁을 벌이게 만들었다. NH&MRC는 처음에는 이 주제가 과학적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전통적인 친불소화론의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나 내가 《캔버라 타임스》로 하여금 이 이슈에 관심을 갖게 만들자 NH&MRC는 공개적으로 누군가룰 내세우든지 아니면 주장을 철회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그들은 마지못해서 퇴직한 약학교수 롤랜드 소프를 발표자로 내세웠다.

  논쟁은 벌어졌고, 소프가 불소화와 암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 금새 분명해졌다. 그는 그저 정형화된 불소화 찬성연설을 할 뿐이었다. 그는 불소화와 암에 대한 야무야니스의 구체적인 논점들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또 NH&MRC를 위해 누가 불소화와 암에 관한 과학문헌을 평가해왔는지 밝히지 못하거나 밝히길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야무야니스가 틀렸다고 선언했다. 이 논쟁은 《캔버라 타임스》에 공정하게 보도되었고, 뒤이어 몇몇 흥미로운 독자편지가 게재되었다.

  여기서 나는 SSRS나 내가 한번도 불소화가 암을 유발한다는 입장을 취한 적이 없었음을 강조하고 싶다. 내가 보기에는 이 문제에 관해서는 상충하는 증거가 있지만, 추가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할 만큼 우려할 만한 근거는 충분하고, 따라서 SSRS가 이 문제에 대한 공개적 토론을 열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로 보였다.(24)

  의학 및 치과계의 반응은 내가 풍력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 해외로 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25) 그들은 내가 없는 사이 나의 동료 SSRS위원들과 접촉하여 SSRS가 이 이슈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또한 불소화 지지자들은 '호주통계학회'와 함께 불소화에 관한 공동토론회를 열었는데, 오직 찬성론자들만 발표하는 자리였다. 친불소화론자들은 불소-암 사이에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통계학자들의 지지를 분명히 필요로 했다. 이 문제와 기타 다른 문제들에서 나에 대한 SSRS의 지지가 부족한데 실망하여, 나는 사무국장직을 사임하고 나의 에너지를 다른 공동체 그룹으로 돌렸다.

 


  상자글 1. 불소화의 권력구조 - 역사와 전술

  호주의 대표적인 불소화 지지 연구기관들로는 1952년에 최초로 불소화를 승인한 국립보건및의학연구회(NH&MRC), 호주치과의사협회(ADA), 호주의사협회(AMA) 그리고 주(州)보건국들이 있다. 몇년 전까지 연방보건부(Federal Department of Health)도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보건부내 치과보건과가 비용절감의 일환으로 폐쇄돼버렸다. 브라이언 마틴의 책(26)은 호주 불소화 논쟁의 몇몇 주요인물들을 열거하고 그들의 견해를 조사해 놓았다.

  위의 친불소화 단체 속에는 불소화에 대한 과학, 의학, 치과관련 오리지널 문헌을 읽은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하다. 또 공청회장이나 대학 강단에 서서 그 문헌들을 읽어본 불소화 반대자와 정직하게 이 이슈에 대해 토론할 만한 사람도 거의 없다. 불소화에 대한 그들의 지지 근거라는 것이 치과 및 의과 학부에서의 피상적인 학습, 의사 및 치과의사 협회 집행위원회의 불소화 보증, 그리고 소수의 핵심요원들이 정책결정자와 대중들에게 꾸며낸 친불소화 프로파갠더이다. 이는 불소화가 장려되고 추진되어 온 방식--로비를 통해 몇몇 핵심 공공기관 고위층의 지원을 획득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이 풀뿌리 운동이 되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대중들은 불소화에 대해 의사표시를 할 기회--주민투표, 공청회, 신문의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와 청원--가 주어질 때 대다수가 이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1943년에 불소는 공기 및 수질 오염물질로 공식적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미국 공중보건원(USPHS)은 1ppm을 초과하는 불소농도는 수돗물을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했다. 그런데, 제련과정에서 사용된 불소의 처분에 비용이 많이 드는 알루미늄 산업이 지원한 한 연구가 치아형성에 불소가 반드시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후 일단의 치과의사들과 위스콘신의 치과보건 공무원들이 끈질긴 로비활동을 벌인다. 결국 1950년에 USPHS가 기존의 조심스러운 입장을 뒤엎고 불소화를 승인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호주의 NH&MRC처럼 USPHS도 연구비지원을 통하여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USPHS와 NH&MRC의 집행위원회 그리고 의사협회 및 치과의사 협회의 불소화 지지를 시작으로 많은 다른 기관·단체들이 그 방향으로 흘러갔다.(27) 비록 많은 의사들과 적지 않은 치과의사들이 당시 불소화 반대를 부르짖었지만(28), 그들은 조직화되지 못했고, 그들의 반대 목소리는 공식적 지지의 파고(波高)에 잠기고 말았다.

  불소화가 미국에서 확산되면서, 저명한 알레르기 전문가 조지 월드보트 박사는 그의 환자들 중 일부가 불소화된 물을 마시고 알레르기, 부적응, 혹은 과민반응으로 고통받았다고 발표했다. 그의 책에는 불소화 추진자들이 그의 위신을 실추시키고, 의학 및 과학 저널들, 그리고 언론매체들이 그의 보고서를 다루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한 비열한 수단들이 폭로되어 있다.(29) 실제로, 미국에 근거를 둔 의학 저널들이 더이상 불소화의 건강상 위험에 대한 논문들을 게재하지 않게 되자, 월드보트는 자신의 논문 한편을《호주의학지 Medical Journal of Australia》에 싣는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다.(30) 뒤이어 침묵의 장막은 호주에도 드리워졌다. 이와 유사한 지적 억압이 1980년대에 나를 향해서 겨냥되었을 때, 월드보트의 1965년 책은 내가 이에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불소화 지지자들은 의학, 치과, 공중보건기관의 권위를 이용하여 불소화 반대의 과학적 증거를 거의 모든 영향력 있는 매체로부터 단절시켜 버렸다(31). 불소화 체제는 신문, 잡지, 서적의 편집자들과 출판업자들, 그리고 전파매체의 프로그램 개발자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1979년 뜻밖에도 호주 ABC방송이 〈4 코너〉라는 TV프로그램에서 불소화를 둘러싼 양편의 주장을 내보낸 후, 원로 치과 및 의사들은 ABC에 영향력을 행사해 그 후 여러 해 동안 이 주제를 다루지 못하게 만들었다.(32) 멜버른의 한 유력 일간지 《시대》의 한 저널리스트는 불소화 문제에서 손떼지 않으면 해고를 각오하라는 위협을 받았다고 나에게 말했다.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발간되는 교외 신문 《해변뉴스》의 편집자 크리스 휠러는 1988년 많은 독자들로부터 온 불소화 찬반 편지들을 게재한 호(號)가 나간 그 날로 해고되었다.

  미국에서는, 국교 반대자들에 의해 형성, 정착되어온 역사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전통 때문에  지역공동체들이 정책결정에서 더 큰 목소리를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불소화된 수돗물을 마시는 인구비율을 50퍼센트 가까이 낮추는 데 이바지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형수(流刑囚)들의 정착지를 근거로 한 식민정부로부터 계승된 권위주의적 형태의 주정부들을 가진 호주에서는 불소화를 위한 법제화가 현저하게 반민주적이다. 예를 들어,

  • 뉴사우스 웨일즈주(州)의 1989년 수돗물불소화(수정)법안은 지방정부들이 불소화를 중단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 1973년 빅토리아 보건(불소화)법령은, 자신들을 선출한 공동체 주민들의 의지에 따라 주정부의 불소화 요구를 거부할 경우, 주정부가 해당 상수도 관리당국에 무거운 벌금을 과하는 것을 허용한다.
  • 타스마니아주의 1968년 불소화법 제13조는 지방정부들이 불소화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33)


 
  ANZAAS 심포지움이 매체의 주목을 끌다

  1980년대 초에는 불소화의 건강상 위험에 관한 공개적 토론이 주류 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웠다. 그러나, 공적 모임에서의 연설, 지역 라디오방송 출연, 지역신문에 보내는 편지 등을 통해 나는 여러 지역공동체가 불소화를 강요하려는 뉴사우스 웨일즈 정부의 시도를 배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풍력연구와 내가 1980년에 공동설립자로 있었던 남양주풍력협회(Australasian Wind Energy Association)의 강화에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틈틈이 불소화에 관한 치과문헌을 개괄적으로 살펴보는 일도 멈추지 않았다.

  불소화에 대한 나의 연구는, 1960-70년대에 '불소화를 하지 않은' 여러 선진국들에서 충치가 크게 감소했다는 사실을 보고하는 외국 논문들의 출판으로 다시 활력을 찾았다.(34) 호주에도 유사한 충치감소의 증거가 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는데, 이것은 불소화 이전의 시드니와 비불소화 지역인 브리스베인(35)에서 관찰된 것이다. 이 지역에서 충치감소는 불소치약에 의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일찍 시작되었고, 불소정제가 주된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도 있었다. 이에 대해 치의학 연구자들과 불소화 추진자들이 회피하는 당연한 질문 하나가 있다. 불소화 지역과 비불소화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정도로 충치가 크게 감소했다면 그것은 동일한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 공통된 요인이 불소화라고는 할 수 없었다.

  호주의 불소화 추진자들은 그들의 공식 보고서(36)에서 이 새로운 과학적 증거에 대해 한마디의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새로운 자료가 호주 과학자들에게, 그리고 어쩌면 언론매체에도 흥미로운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립 써튼 박사의 협조를 구하여, 우리는 함께 '호주/뉴질랜드 과학발전협회(ANZAAS)'가 후원한 '1985 과학축제'에서 불소화 심포지움을 주최하였다. 우리는 바로 그 즈음 불소화에 관해 통찰력있는 정치학 논문을 썼던 웬디 바니(37)를 발표자로 초빙하고, 심포지움을 더욱 활기있게, '균형'있게 만들기 위해서 친불소화 그룹인 호주치과의사협회( ADA)와 NH&MRC에도 각각 발표자를 보내도록 요청했다.

  ADA는 즉각 (우리가 아니라) ANZAAS 과학축제 조직자들에게 회답을 보내어 불참을 통보하고, 우리의 동기에 대해 의심을 표명했다. 몇몇 ANZAAS 조직자들은 이 편지를 심포지움을 중단시키기 위한 노골적인 시도라고 해석했다. NH&MRC는 심포지움 시작 2주 전에야 회답을 보내 그 때는 이미 수용 불가능한 조건을 제시하면서 그 조건하에서만 참여하겠다고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의 회답으로 심포지움이 중단되지는 않았다. 우리가 이 상황을 언론매체에 설명했을 때 그들은 이것이 '뉴스거리'라고 판단했고, 심포지움의 사전홍보를 아주 훌륭하게 해주었다. 그 결과 언론매체들과 전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많은 과학자들을 포함하여 거의 백명이 참석하였다. 호주에서는 처음으로, 불소화의 혜택이란 것이 매우 과장되어왔으며, 불소화된 물이 정말로 건강을 해칠 수 있고, 불소화 추진운동과 불소제품들이 알루미늄 산업과 설탕식품 산업 같은 기득권자들로부터 부분적으로 재정지원을 받아왔다는 사실이 언론매체를 통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뒤이은 언론보도 과정에서 불소화 제창자들은 공개적인 토론의 마당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른바 '과학적 논쟁의 여지가 없는' 이슈를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데 익숙치 않은 그들은 필립 써튼, 웬디 바니, 그리고 내가 제기한 질문의 대부분에 대해 의미있는 답변을 하지 못했다. 대신 우리를 개인적으로 비방하려고 하였다. 이 심포지움에 참여하고, 언론에 보도될 때 나는 CSIRO과학자라고 소개되었다. 물론 그것은 맞는 말이지만, 나는 나의 결론이 반드시 내가 관계하고 있는 단체의 결론과 동일한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불소화 제창자들의 진짜 반격은 무대 뒤에서 진행되었다. ADA는 CSIRO의 대표와 이를 관할하는 과학기술부장관에게 편지를 써서 나의 '활동'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그것을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속임수나 다름없는" 짓이라고 표현하였다. 또 내가 CSIRO과학자로 행세하였다고 공격했다.(38) 다행스럽게도, CSIRO의 의장과 장관 모두 이 고압적 전술에 동요하지 않았다. CSIRO의 한 행정관이 ADA의 이러한 항의내용을 내게 알려주었고, 나는 그 후 정보공개법에 따라 그 편지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과학기술부장관 배리 존스는 ADA로부터 받은 한 편지에 다음과 같은 주(註)를 달아 놓았다. "그들이 그의[디젠도프] 주장에 반대해야겠다는 마음이 집단적으로 일어났다는 게 가능할까?......아마도 과학적 논쟁이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못한 듯하다."

  치과의사들과 의사들은 이런 종류의 압력에 나보다 더 취약하다. 불소화에 대해 우려하는 치과의사, 과학자 그리고 의사들에 가해지는 탄압의 여러 사례들은 월드보트(39), 물렌버그(40), 마틴(41)에 의해 묘사되어 있다.

 


  상자글 2. 불소는 치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불소화 초기인 1950-60년대에 치학 연구자들은 불소가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는 직접 섭취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들의 이론은, 불소는 전신적으로(즉, 내복을 통해) 작용하며, 혈류로부터 치아에나멜로 이동, 치아를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측정결과 불소는 결코 혈류에서 타액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섭취된 불소의 약 절반은 일생 동안 뼈에 축적되며 나머지는 (정상기능이라면) 신장에 의해 오줌으로 배출된다. 게다가, 전신(全身) 작용 이론은 1970년대 후반에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불소치약이나 겔의 활동, 즉 치아표면에 작용하는 불소의 메커니즘을 설명하지 못했다. 그렇게 되자 치과의사들은 전신 작용과 치아표면 작용의 혼합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연구자들은, 전신작용 이론과는 반대로, 각 개인에게 발생하는 충치의 양은 치아에나멜 속의 불소의 양에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 그리고 불소화 지역과 비불소화 지역간에 치아에나멜 속에서 관찰되는 불소수준의 차이는 너무 미미해서 충치율의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더욱이, 여러 차례의 쥐 실험을 통해서 불소가 치아를 거치지 않고 혈류 안으로 서서히 들어갈 때는 충치감소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고농도의 불소가 구강내에서 방출될 때 충치감소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밝혀졌다.(42)

  현재 불소를 삼키는 것으로는 거의 혹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과학적 증거가 있다. 불소는 치아표면과의 접촉을 통해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43) 덴마크의 올레 페예르스코프 교수 같은 일부 주류측 전문가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여타 전문가들은 아마도 이 사실을 인정하면 수돗물불소화의 논리가 타격을 받을 것임을 내다보면서, 여전히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전신적 작용과 접촉 작용이 동일하게 중요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네이처》에 실린 논문

  ANZAAS 심포지움이 성공함에 따라, 나는 불소화가 막대한 혜택이 있다는 주장에 관해서 국제적인 과학 토론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그래서 비불소화 지역에서 충치가 감소해온 것을 보여주는 자료를 모두 수집해서, 치과의사가 아닌 과학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요약하고, 거기에 '호주학교치아보건국'에서 나온 새로운 데이타를 추가한 다음, 비불소화 지역의 충치감소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을 제기하여 몇 가지 타당한 답변을 제시하고, 마지막으로 눈에 띄는 제목을 붙여 세계적인 과학잡지라고 하는《네이처》지에 기고했다.

  몇달 후 《네이처》 편집자가 상투적인 친불소화 노선을 따르고 있는 논문 심사위원의 보고서를 내게 보내왔다. 나는 편집자에게 이미 원래의 원고에서 내가 그 심사위원이 제기하고 있는 논점의 대부분에 대해 답변하였음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몇가지 논점을 설명하기 위해 약간의 수정을 가하여 나는 다시 그 논문을 보냈다. 마침내 <충치감소의 신비(The Mystery of Declining Tooth Decay)>가 1986년 7월에 발표되었다.(44) <네이처>의 편집자가 나를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 신뢰한 것은 그에 앞서 16년 동안 내가 천체물리학, 우주물리학 및 풍력과 같은 '자연과학'적 주제에 관한 여러 편의 연구논문을 심사를 거쳐 그 잡지에 이미 발표한 바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은 세계 전역의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이것은 불소화 반대운동의 한 획기적인 돌파구가 되었다. 또한 이를 계기로 미국의 앨버트 버그스탤러, 뉴질랜드의 존 코훈을 포함하여 불소화에 의문을 제기해온 해외의 과학자, 치과의사, 의사들과의 유대도 강화되었다.

  불소화 체제측의 반격은 내 논문을 왜곡한 은밀한 비평을 돌리고, 내 논문이 심사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거짓말을 퍼뜨리고(45), 내가 다시는《네이처》지에 불소화에 관한 글을 발표하지 못하도록 편집자에게 압력을 넣었다.

  이 편집자에 대한 압력에 관해서는 몇해 뒤 미국에서 누군가가 내게 한통의 편지 사본과 거기에 첨부된, 나의《네이처》지 논문에 대한 미간행 비평을 보내주었을 때 알게 되었다. 이것들은  1980년대에 호주의 가장 열렬한 친불소화 운동가의 일원이었던 그레이엄 크레이그 박사가 <네이처> 편집자 앞으로 보낸 것이었다. 공개토론을 장려하는 정상적인 과학의 관행과는 반대로, 그 편지(1986년 8월 15일자)의 서두는 이러했다. "이 서한(書翰)과 동봉한 문건은 귀지의 '독자 논평'란(欄)을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닙니다." 비록 내가 그전에 이 자료들을 본 적은 없었지만, 내게까지 도달된 방식으로 보아 그것들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널리 돌려져왔음이 분명했다. 크레이그의 비평은 너무도 쉽게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이었고, 따라서 그것이 공개적인 발표를 위해 제출되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또 누군가는 당시 호주 연방보건부의 치과보건국장이었던 로이드 카 박사가 세계보건기구(WHO)의 구강보건책임자 데이비드 밤스 박사에게 보낸 1986년 9월 18일자 편지의 사본을 내게 보내주었다. 카의 편지는 "디젠도프의 《네이처》 논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호주의 데이타를 설명하고 반박해주기 바랍니다"라는 요청에 대한 응답임이 분명했다.(46) 나의 《네이처》 논문이 국제 불소화 체제를 당혹하게 만들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호주보건연구소의 반불소화 운동

  1988년에 나는 호주정부의 보건통계 연구소인 호주보건연구소(Australian Institute of Health)의  선임 연구원에 임명되었다. 이 직위는 내게 학계와 공중보건 분야에서 불소화에 대하여 추가적인  토론을 이끌어낼 기회를 주었다. AIH에서의 나의 주요 업무는 호주 의료서비스의 이용과 비용을 분석하는 일이었다. 채용인터뷰 도중 이 연구소가 내게 불소화에 대한 연구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호주국립대학 객원교수로서의 연구기간을 막 마친 상태였는데, 다행히도 그 기간 중 호주 및 해외에서 발표된 잘 알려진 연구논문 몇 편을 비판적으로 검토했었다. 이 연구들은 불소화의 엄청난 치과적 혜택을 증명할 목적으로 수행된 것이었다.(47) 나는 이 '고전적' 연구들이 너무나 빈약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거의 무가치한 것들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AIH에서 근무를 시작하면서, 내가 비공식적으로 해야 할 첫째 과제는 불소화에 관한 추가적인 연구를 수행하기보다 내가 발견한 이 조사결과를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두 차례의 불소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의학과 치과 기관을 제외하고는 모두 반응이 좋았다. 불소화 지지자들은 반불소화측 발표자들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갖은 애를 썼는데, 내가 이 세미나에 AIH의 선임연구원 자격으로 참가한 것을 보고 속이 쓰렸을 것이 틀림없다. 두번째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AIH의 소장은 내게 앞으로 불소화에 대해서 침묵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이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 1988년에 나는 브라질에서 열린 불소화에 대한 국제 심포지움 및 토론회에 초청 받아, 찬반 양측의 몇몇 과학자 또는 전문가들과 함께 참가했다. 청중은 상수도 및 환경기술자들, 치과의사, 의사, 그리고 공중보건 관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몇몇 세계의 주도적인 친불소화론자들에 맞서서 내 논리를 검증할 수 있었고, 존 코훈 박사나 존 리 박사와 같은 최고의 반불소화론자들과 같은 팀에서 활동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나에게 값진 경험이었다. 한편, 미국의 친불소화 치과의사 허쉘 호로위츠는 프로답게 준비한 슬라이드로 극적인 방식으로 발표를 하였다. 하지만 발표내용은 빈약한 것이었다. 우리는 비록 손으로 그린 슬라이드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논리와 확신은 청중에게 잘 전달되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심포지움의 결과 브라질에서는 불소화의 확대가 계획되었다가 취소되었기 때문이다.(48)

  1989년에는 AIH에서 잠시 휴가를 얻어 나는 영국 셰필드대학, 영국 캠브리지의 던(Dunn) 영양실험실, 런던의 성토마스 종합병원, 뉴욕주보건국 조사과, 워싱턴 DC에 있는 미환경청, 캘리포니아의 스탠포드대학 등에서 불소화에 관해 강연을 하면서 세계를 순회하였다. 이 순회강연은 몇몇 저명한 기관들에서 침묵의 벽을 깨뜨리는 데 기여하였고, 또한 이들 '어려운' 국가에서 불소화 반대입장이 제한적으로나마 언론매체에서 보도되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캔버라로 돌아와, 나는 한 지방정부의 불소화 관계 조사를 위해 증거를 제시하였다. 조사위원회의 입장은 양분되었고, 결국 또다른 증인인 '국립역학 및 보건센터'의 소장 봅 더글러스 교수가 제시한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위원회는 캔버라 수돗물의 불소농도를 절반으로 줄이도록 권장했고 결국 실행되었다. 하지만 호주치과의사협회와 의사협회는 지방정부와 야당에 로비를 벌였고, 그 결과 정권교체 후 1992년 초, 끝내 불소농도는 1ppm으로 되돌아갔다.

  나중에, 호주치과의사협회(ADA)가 사용했던 로비문건 중 일부가 《ADA 소식지》에 익명의 기사로 실렸다. 기사는 나와 코훈 박사의 연구를 왜곡하고 일련의 거짓말을 늘어놓았는데, 그 수준은 너무나 야비해서 법률자문에 따르면 명예훼손 감이었다.(49) 그걸 빌미로 코훈 박사와 나는 그 기사의 왜곡을 폭로하는 우리의 반론을 《ADA 소식지》에 싣게 할 수 있었다.(50) 하지만 그렇다고 캔버라 수돗물의 불소수준이 좀더 안전한 0.5ppm으로 되돌아간 건 아니었다.
 

  NH&MRC의 조사

  1989년 코훈, 써턴, 디젠도프가 공동명의로 보낸 편지에 대한 응답으로 NH&MRC는 불소화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일부 불소화 추진자들이 과학적 데이타를 왜곡, 오용해왔다는 우리의 주장에 대해서 조사하기 위해 새로운 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51) 1991년 최종 보고서(51)가 발표되었는데, 겉보기에 이것은 불소화와 주도적 불소화론자들을 옹호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보고서의 '요약'에는 아래와 같은 오도적인 문구가 들어있다.

조사위원회는 호주 내에서 골격불소증이 발생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불소화된 물(1ppm)과 불소가 함유된 기타 물질에 노출되어 있는 지역공동체에서 불소가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건강상 부작용의 증거는 없다. (강조 - 필자)

  밑줄 친 문구는 골격불소증에 관한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는 해외의 자료를 배제하고 있다. 그러면서 보고서의 본문에서는 골격불소증에 대한 우려를 조심스럽게 인정하고 있다. 보고서의 '요약본'밖에 읽을 수 없는 대다수 독자들은 이를 알지 못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혹은 천연적으로 불소가 들어있는 물이 원인이 되는 건강상 부작용의 증거는 없다고 그릇된 가정을 하게 된다. 보고서의 편향된 성격은, 코훈, 써턴, 그리고 나 자신이 발표한 불소화 관련 학술논문들을 그 폭넓은 참고문헌 목록에 하나도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53)

  하지만 조사위원회는 분명 우리가 제시한 증거가 신경이 쓰였고, 자신들을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그러다 보니 보고서 본문의 깨알글씨 속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조심스럽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 식수에서의 불소농도가 0.7ppm인 외국의 일부 지역에서 몇몇 '고립된' 골격불소증 사례가 관찰된다.
  • 호주에서 불소노출 수준과 치아불소증과의 관계를 측정해야 할 '긴급한 필요'가 있다.
  • 일부 영아들과 아이들은 불소를 과다섭취하고 있다.
  • 불소화의 혜택을 확인하기 위한 초기의 실험들은 '일반적으로 빈약한 것이었다......'

  우리가 제출한 글에서도, NH&MRC 보고서에서도 다루지 못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미국과 영국에서 중년 이상 여성들의 둔부골절(흔히 치명적인)이 비불소화 지역보다 불소화 지역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는 최근의 연구들이다. 그 증거의 대부분은 NH&MRC 조사 기간 중에 출판되었다.(55)

  비록 NH&MRC 보고서는 "조사위원회는 속임수나 데이터가 왜곡이용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우리들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그 증거들을 출판했다.(56) NH&MRC 조사 후 고참 불소화 제창자 그레이엄 크레이그 박사가 갑자기 시드니대학과 전장(戰場)을 떠났고, 이어서 1985년 NH&MRC의 왜곡된 보고서 작성에 책임이 있는 실무진 중 여러 위원이 현장에서 물러났다.

  새 조사위원회의 의장이 된 역학(疫學)자 토니 맥마이클 교수와 조사위원 중의 일원인 치과의사이자 통계학자인 A. J. 스펜서 교수가 이제 불소화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들이 옛 지도자들보다는 더 세련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몇몇 전술은 여전히 찬양할 만한 것이 못된다. 예를 들어, 《호주공중보건저널》에 논설 형식으로 NH&MRC(1991) 보고서에 대한 찬사의 논평을 썼던 맥마이클은 자신이 조사단의 대표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리뷰'는 코훈과 나의 연구 내용을 왜곡하고, 심지어는 자기자신이 쓴 보고서의 일부 결론까지 '왜곡'하여 보고서가 실제보다 더 불소화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호주공중보건저널》이 우리의 반론을 실어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57)

  1990년 초 NH&MRC 조사위원회에 제출한 나의 글들은 최신 자료로 보강, 개정되어, 불소화의 혜택과 건강상의 위험에 관한 두개의 주요 리뷰 논문으로 발표되었다.(58) 이들 논문의 주요 논점들은, 불소화의 윤리적· 정치적 문제와 함께 부록에 열거되어 있다.

  이 논문들이 출판된 직후 나는 AIH에서 사직하고 호주보존재단(Australian Conservation Foundation)의 지구변화프로그램 책임자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온실가스 방출을 줄이고 오존층을 복원하자는 전국적 캠페인이다. 내가 해온 일 중 가장 흥미롭고 벅찬 이 일은 내게 불소화 문제에 바칠 시간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휴가 중에 나는 이 글을 쓸 수 있었다.
 

  결론과 교훈

  공동체를 위해 일하려는 과학자로서 나는 다년간 여러 힘있는 산업체들과 기득권 세력에 도전해야 했다. 내가 보기에, 불소화 체제는 우라늄/핵에너지 산업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더 왜곡된 정보를 퍼뜨려왔다.

  불소화와 기타 이슈에 관련하여 주류의 '전문가들'에 도전하면서, 나는 풀뿌리 차원에서의 반대와 반주류 '전문가들'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자가 없이는 불소화 중지를 위한 공동체적 기반도 없고, 정치적 압력도 존재할 수 없다. 후자가 없이는 반대운동이 언론매체, 다른 전문가 혹은 과학자, 정책결정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할 것이다.

  친불소화 전문가들은 반불소화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권력과 영향력에 위협을 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나 자신과 다른 불소화 반대 과학자, 의사, 치과의사들의 경험으로 볼 때, 불소화에 대한 과학적 및 대중적 물음을 억압하기 위해, 그리고 반불소화 전문가들의 신뢰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체제측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전술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왜곡된 정보를 만들어 정책결정자 및 대중들에게 배포한다.(예, 표 3.1)  
  • 불소화에 관해 곤란한 물음을 던지는 원고를 친불소화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치도록 편집자들에게 압력을 가함으로써 과학, 의학, 치과계 학술지들에 대해 사실상의 검열을 실시한다.
  • 불소화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는 치과의사, 의사, 과학자들을
       --언론매체나 전문잡지를 통해 인신공격하고, 비판적 연구를 왜곡하며,
       --전문가협회와 고용주들을 통해 비판자들의 경력에 흠집을 내는 등의 방법으로 입을 다물도록 협박한다.
  • 저널리스트와 편집자들에게 아래와 같은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언론매체가 불소화 반대자들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갖지 못하게 한다.
       --반대자들은 괴짜들이거나 극우파 혹은 대체의학 추종자들이다.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이미 20년 전에 검토된 것이며,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이 문제에 관해 무엇이든 출판하거나 방송을 한다면, 그것은 공중보건에 해를 끼칠 것이다.
       --불소화는 세계보건기구, 미환경청, NH&MRC, 치과의사협회, 의사협회, 기타 기관들이 보증하고 있다.
    (마지막 주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거짓말이다. 마지막 항목에 관해 보더라도, 실제로 불소화를 보증한 것은 위에 열거된 조직 내의 소수 엘리트이다.)
  • 불소화 비판자가 어쩌다 언론매체의 주목을 받는 경우, 친불소화 '전문가'가 그때그때 대답하고, 가능하면 최종 결론을 내릴 권한을 확보하도록 한다. 그런 다음 비판자들의 의도와 자질에 대해 공공연히 공격한다.
  • 반대자들에 대한 개인적인 중상모략을 닫고 있거나 그들의 불소화에 관한 연구를 왜곡하는 문건과 보고서들을 정책결정자와 언론에 은밀히 배포한다.

  최근까지, 친불소화 체제의 이러한 전술은 불소화 반대자들에 대한 상투적인 이미지를 굳히는 데 성공하고, 몇몇 반대자들에 위협을 주었으며, 그럼으로써 치과와 의학계, 그리고 대중적 영향력이 있는 언론에서 침묵의 벽을 만들어내었다. 그 결과, 현재 호주 인구의 2/3, 뉴질랜드, 미국, 아일랜드 인구의 절반이 불소화된 수돗물을 마시고 있다. 이들 인간 실험동물들은 골격불소증, 둔부골절, 과민반응 혹은 불내증(不耐症), 치아불소증에 걸릴 위험에 처해 있다. 또한 아직 명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면역체계의 손상과 유전적 손상 그리고 골암에 걸릴 가능성도 있다.

  1970년대 말 이후 물결의 흐름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첫째, 몇몇 비주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반대운동의 결과로 수돗물불소화의 새로운 시행이 거의 정지 상태에 이르렀다. 많은 지역에서, 특히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침묵의 커튼이 찢어지고 있다. 이는 주로 세계 전역에 산재해 있는 치과의사, 의사, 과학자, 기타 학자들의 단호한 결심과 노력의 결과였다. 불소화 논쟁을 일으키는 데 내가 끼친 기여가 있다면 그것은 세계적인 과학잡지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하고, 그로 인해 불소화 문제가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불소화 중단을 위한 노력이 더욱 성과를 거두려면, 소비자, 환경 및 공동체보건 운동과 동맹을 형성하고, 현재 이 문제에 상관하지 않고 있는 과학자와 보건전문가들에게 꾸준히 불소화의 위험성의 증거를 제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친불소화 체제의 권력구조, 그들의 불소화 보증 위계구조는 또한 그들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지역에서 침묵의 벽이 무너져감에 따라, 더욱 많은 보건전문가와 치과의사들이 이 문제에 관해 보다 바른 정보를 갖게 될 것이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불소화에 대한 자신들의 의구심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것이다.

  나는 불소화 체제와 그들의 전술에 대한 이 폭로의 글이 그러한 과정에 이바지하기를 희망한다. 아무리 달가운 일이 아니라 해도, 지적억압에 대해 맞서는 최선의 길은 그것을 폭로하는 것이다.(59) 이 억압이 조명되고 파괴될 때, 사람들은 수돗물불소화가 상식을 벗어난 유해한 시책이라는 것을 알아볼 것이다.

 

  [부록] 불소화에 대한 비평-개요

  내가 보기에 불소화 반대는 3가지 차원--과학적(위험과 이른바 혜택), 정치적(불소화 체제 내 권력구조와 지원금의 출처를 포함), 그리고 윤리적 차원--을 가지고 있다.

  수돗물불소화의 혜택과 건강상 위험에 대한 나의 과학적 입장은 1990년 초 발표한 두개의 대표적 리뷰 논문에 자세하게 나와있다.(60) 그 전에 중요한 리뷰가 《케미칼 앤드 엔지니어링 뉴스》에(61) 발표되었고, 그보다 더 전에는 월드보트, 버그스탤러, 매키니가 공동으로 집필한 고전적 저서에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62) 1990년대 이후, 고령(高齡)층에서의 둔부골절 증가와 쥐의 골암에 있어서의 불소의 역할에 대하여 새로운 중요한 과학적 증거들이 발표되었다. 불소화의 정치학과 사회학에 대해서는 바니(63)와 마틴(64)의 책을 각각 권한다. 필자와 바니의 공동논문에도 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다. 불소화의 윤리적 측면에 대하여는 필자의 1989년 논문이 있는데 지금도 '존경할 만한' 잡지에 게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입증된 건강상의 위험]

  치아불소증, 골격불소증, 둔부골절, 과민/불내증 반응(본문 참조)

  참조(1): 호주 대도시의 대부분은 1960-70년대가 되어서야 불소화되었다. 따라서 1992년까지 나이든 호주인들은 통상 15-28년간 불소화된 물을 섭취해왔다. 골격불소증과 둔부골절은 사람들이 태어나서 노년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불소화된 수돗물에 노출되어왔을 미래에는 훨씬더 만연될  것이다.(66)

  참조(2): 관찰조사가 이루어져온 불소화 국가(미국, 뉴질랜드)에서 치아불소증의 확산과 심각성은 증가하고 있다.

  [가능한 건강상의 위험]

  앞서 언급한 입증된 건강상의 위험은 의학, 과학문헌에 나오는 여러 독립적 연구에 의해 재확인되는데, 그 밖에 다음과 같은 것들도 건강상의 위험일 수 있다는 증거가 있다. 그러나 아직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확증되지는 않았다.

  암:
  1990년 미국립독성학프로그램(U.S. National Toxicology Program)의 한 연구에 따르면 불소를 섭취한 소수의 실험쥐에서 골암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적은 양의 불소를 섭취한 실험집단에서는 전혀 암이 발생하지 않았다.(68) 이 연구의 결과는 공식적으로 (비록 독립적 과학자들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모호한' 것으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다른 관련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연령, 성별, 인종간의 차이가 올바로 고려되었을 때, 인간에 대한 대부분의 역학조사는 불소와 암 사이의 관계를 입증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릭슨에 의한 한 중요한 연구는 예외적이다.(69)

  면역체계손상(70)
  분유섭취 아기에 대한 위험: 어머니가 섭취한 거의 모든 불소가 모유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연적인 생리적 메커니즘이 있다. 결과적으로, 불소화된 물에 탄 우유를 먹는 아기들은 모유를 먹는 아기들보다 100배나 넘는 불소를 섭취하게 된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불소화된 물을 마신 사람들은 위에서 언급한 질병에 걸릴 위험이 더욱 높을 것이다.(71)

  [과장된 혜택]

  아주 최근까지 불소화 제창자들은 불소화가 비불소화 지역에 비해서 어린이들의 충치를 50-70%까지 감소시킨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이 현저한 충치감소 주장을 뒷받침하는 연구들은 열성적인 불소화론자들에 의해 수행된 것이었으며, 그러한 연구의 과학적 질은 매우 낮은 것이었다. 단 한편의 연구도 무작위 실험과 대조그룹과 '맹검법'을 통해서 수행된 것이 아니었다.(72) 불소화의 혜택이 크다고 주장하는 몇몇 연구보고서들은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너무도 부실한 것이어서 속임수의 가능성이 제기되어왔다.(73)

  혜택을 과대평가는 또 하나의 수단은 불소화된 대도시와 비불소화된 작은 시골 마을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부적절한 비교이다. 왜냐하면 시골 지역은 흔히 영양상태가 도시보다 나쁘고 따라서 충치가 더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요 도시들끼리 비교하면 영양상태의 차이를 줄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호주의 유일한 비불소화 도시인 브리스베인의 충치율이 불소화된 아들레이드나 퍼스와 거의 같고, 역시 불소화 지역인 멜버른보다 오히려 낮다는 것을 발견한다.(74) 뉴질랜드에서는 비불소화 지역인 크라이스트처치의 충치율이 모든 다른 주요도시와 거의 같은데 이 도시들은 모두 불소화되어 있다. 비슷한 결과가 미국, 캐나다, 기타 다른 나라에서도 보고되었다.(76) 오늘날 '정당하게 비교될 수 있는' 많은 불소화 지역과 비불소화 지역을 비교해보면 영구치 충치율에서 유의미한 차이는 거의 또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더욱이 비불소화 지역 브리스베인과 크라이스트처치의 낮은 충치율을 불소화 지역에서 가공된 수입 음료수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설명하려는 불소화 지지자들의 시도는 설득력이 없다. 왜냐하면 브리스베인과 크라이스트처치는 아주 크고 서로 멀리 떨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음료수의 대부분을 자체에서 제조하고 있으며, 설사 수입한다고 해도 농축액만 수입하지 물을 수입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최근에 몇몇 불소화 지지자들은 불소화에 의한 충치감소율이 50-70%라는 기존의 주장을 훨씬 밑도는, 예컨대 불과 20%밖에 안 된다고 인정했다. 오늘날 평균 10세의 호주 아이들에게 20%의 차이란 단지 충치 한 개의 1/5에 불과하며, 이는 무시해도 좋은 수치다.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불소치약이 충치감소에 효과적임을 보여주는 믿을 만한 실험들이 있다.(77) 그러나 불소치약의 불소농도는 불소화된 수돗물의 약 1000배이다. 따라서 불소화된 물 역시 효과적일 것이라고 추론할 수는 없다. 불소가 고농도에서 치아표면에 작용하여 충치를 감소시킨다는 증거는 많다. 반면 섭취효과는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상자글 2 참조)

  대부분의 서구 국가에서 충치는 지난 20-30년 사이 '불소화되지 않은' 지역에서도 현저하게 감소했다. 여러 사례, 예컨대 호주 시드니, 뉴질랜드, 영국 글로스터셔, 캐나다의 일부에서 충치감소는 수돗물불소화가 도입되기 적어도 몇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흔히 그 공(功)을 불소화에 돌리는 것은 잘못이다.(78) 비불소화 지역 충치감소의 다른 요인으로는 식생활변화, 개선된 치아보건교육, 양치습관, 불소치약(1970년대 이후, 그러나 이전에는 없었다), 면역성변화 등이다.

  치즈를 씹는 것이 충치를 감소시킨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는데, 이는 식생활변화가 충치감소의 중요한 요인임을 뒷받침한다. 호주에서의 치즈 소비는 1950-80년대에 현저하게 증가했는데, 이 기간에 충치도 감소하였다.

  [정치적 측면]

  불소화는 알루미늄과 설탕제품산업의 막대한 재정지원을 받아왔다. 이 산업들은 불소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충치감소 인자라는 이미지에 기득권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알루미늄 제련업자들은 불소화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혜택을 누렸다. 그들은 불화물 폐기물을 수도당국에 판매하였다(79). 불소의 이미지가 오염물질에서 건강에 좋은 치과/공중보건용 화학물질로 바뀌자 그들은 오염물질 통제로부터 해방되었으며, 이것은 산업에 큰 이득이 되었다.

  설탕제품산업은 수돗물 속에는 충치를 감소시키는 마술같은 물질이 들어있다는 통념 때문에 이득을 본다. 아이들이 어떤 제품을 사먹든 상관이 없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설탕연구재단(Sugar Research Foundation)이 식생활, 영양섭취, 충치에 대한 연구에 재정지원을 해왔으며, 그럼으로써 연구의 방향과 연구결과를 통제할 수 있었다. 호주에서는 뉴사우스 웨일즈의 주요 불소화 지지단체 중의 하나인 치아보건교육및연구재단(Dental Health Education and Research Foundation)이 코카콜라, 콜로니얼제당, 캐드버리 슈웹스, 호주청량음료제조자협회, 켈로그(설탕함유 씨리얼), 스칸렌스(사탕) 등 많은 기업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다.(80)

  공중보건 시책으로서 불소화를 추진함으로써 치의학자들과 치아공중보건 관리들은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승진의 기회를 누린다. ADA나 NH&MRC와 같은 기구들은 1950년대 초 이래로 줄곧 "불소화는 안전하고 효과적"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제 그들은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적 데이타를 공정하게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듯 하다.

  [윤리적 측면]

  불소화는 제거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화학물질을 개인별로 통제할 수 없는 용량으로 투여하는 대량 투약행위이다.(본문 참조)

  [표 3.1] 불소화 옹호자들의 상투적인 주장들에 대한 답변

상투적 주장

답 변

불소는 자연물질이므로 당연히 안전하다.

설사 마실 물에 천연적으로 들어있는 것이라 해도 어떤 자연물질(예, 라듐)은 유해하다. 평균농도 이상의 라듐과 1ppm천연불소는 둘다 유해하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다.

불소는 자연물질이므로 약물이 아니다.

많은 약물이 본래 자연물질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예를 들어 페니실린, 디기탈리스, 살리실레이트(아스피린에 포함된), 불소가 그렇다. 불소는 물을 정화하기보다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에 약물이며, 따라서 용량이 조절되지 않은 채 복용되어서는 안 된다.

불소는 필수영양소이며 충치는 '불소결핍'으로 생겨난다.

하루 1mg의 불소 투여가 생명유지에도, 건강한 치아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보다 훨씬 낮은 투여량에서도 지금까지 불소결핍 증상을 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조금이라도 충치감소의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불소의 치아표면에서의 작용에 기인한다.

불소는 뼈를 강하게 하며 따라서 골다공증에 치료 효과가 높다.

불소는 뼈의 밀도를 질병상태로까지 증가시키며 부서지기 쉽게 만든다. 현재 미국과 영국의 여러 주요 역학연구는 불소화 지역에 사는 고령인구의 둔부골절 발생률이 비불소화 지역에서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불소의 대량투여로 골다공증을 치료하는 일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중단되었다.

수돗물의 불소농도는 20퍼센트 내외 범위로 조절된다.

건강상 위험을 결정하는 것은 불소 투여량(가령, mg/日)이지 리터당 농도가 아니다. 투여량은 마시는 물의 양에 의존하므로 조절될 수가 없다.

뼈/관절 질병인 골격불소증은 수돗물 불소 함유량이 8ppm 이상인 지역에서만 발견된다.

인도에서는 음용수에서 (천연적)불소농도가 2ppm이하인 지역에서도 골격불소증이 아주 흔하다. 심지어는 0.7ppm밖에 안되는 일부 지역에서도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다.

불소의 부작용으로 고통받으려면 불소화된 물을 욕조 한통을 가득 마셔야 할 것이다.

이것은 일시적 과다투여로 인한 급성 중독과 적은 용량을 여러 번 투여했을 때의 만성적 중독을 혼동한 것이다. 불소화 지역에서 일생을 보내면 욕조 가득한 물에 포함된 것보다 더 많은 불소를 섭취하고 뼈에 축적시키게 된다.

 

  주

1. B. Martin, Scientific Knowledge in Controversy: The Social Dynamics of the Fluoridation Debate, Alba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1991), Appendix

2. CSIRO 즉 공공복지를 위한 과학과 산업연구원(The Commonwealth Scientific and Industrial Research Organisation)은 호주정부의 국립 연구기관이다. 1980년대 몇년 동안, 나는 이 조직의 대표연구과학자이자 응용수학그룹의 리더로 있었다.

3. M. Diesendorf, "On Being a dissident scientist," Ockham's Razor 2, 시드니: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1998a): 9-14

4. M. Diesendorf, ed., The Magic Bullet: Social Implications and Limitations of Modern Medicine, an Environmental Approach, Canberra: Society for Social Responsibility in Science(1976).

5. M. Diesendorf and B. Furnass, eds., The Impact of Environment and Lifestyle on Human Health, Canberra: Society for Social Responsibility in Science(1977)

6. M. Diesendorf, ed., Energy and People: Social Implications of Different Energy Futures, Canberra: Society for Social Responsibility in Science(1979).

7.M. Diesendorf, "Have the benefits of water fluoridation been overestimated?" International Clinical Nutrition Review, vol. 10, no. 2(1990a): 292-303

8 .예를 들어, 종종 대안적 건강운동가들은 인위적으로 불소화된 물은 해로운 반면, 천연불소가 함유된 물은 안전하다고 주장하는데, 그렇지 않다.

9. For a recent review, see M. Diesendorf, "The health hazards of fluoridation: a re-examination," International Clinical Nutrition Review, vol. 10, n0. 2(1990b):304-321

10. For example, see M. Diesendorf, "International symposium on fluoridation," Social Science and Medicine, vol. 27, no. 9(1988b): 1003-1005.

11. For references, see Diesendorf(1990b), op. cit.

12. O. Fejerskov et al., Dental Fluorosis: A Handbook for Health Workers, Copenhagen: Munksgaard(1988)

13. M. P. Crisp, Report of the Royal Commissioner into fluoridation of Public Water Supplies, Hobart: Government Printer(1968)

14. 이것이 1970년대에 내가 특별히 가졌던 "과학과 사회"를 주제로 한 두개의 관심사였다.

15. P. R. N. Sutton, Fluoridation: Errors and Omissions in Experimental Trials, Melbourne: Melbourne University Press(1960, second edition).

16. See G. Walker, Fluoridation: Poison on Tap, Melbourne: Glen Walker(1982)

17. Diesendorf(1976), op. cit.

18. 불소에 대한 간단한 언급 때문이 아니다.

19. 토론과정은 Diesendorf and Furnass, op. cit.로 출판되었다.

20. Published in Diesendorf and Furnass, op. cit.:265-280.

21. Royal College of Physicians, Fluoride, Teeth and Health, Tunbridge Wells, Kent: Pitman Medical(1976).

22. M. Diesendorf, "Is there a scientific basis for fluoridation?" Community Health Studies, vol. 4(1980):224-230.

23. J. A. Yiamouyiannis and D. Burk, "Fluoridation and cancer: age dependence of cancer mortality related to artificial fluoridation," fluoride, vol. 10, no. 3(1977): 102-123

24. See Appendix.

25. 내가 출발하기 전에, 나는 불소화 반대자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나와 야무야니스의 활동에 대해 뭔가를 캐내려고 하는 낯선 사람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들 중 한명에게 내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의 남편이 받았는데 그는 은연중에 아내가 가명을 사용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말았다.

26. See Martin, op. cit., chapter 3

27. G. L. Waldbott, A. W. Burgstahler, and H. L. McKinney, Fluoridation: The Great Dilemma, Lawrence, Kansas: Coronado Press(1987).

28. As witness the debate in the letters columns of the Medical Journal of Australia.

29. G. L. Waldbott, A Struggle with Titans, New York: Carlton Press(1965); Waldbott et al., op.cit.

30. Waldbott, op. cit.

31. 침묵의 장막은 미국과 영국에서는 여전히 두껍다.

32. 호주 ABC방송 저널리스트와의 개별 서신교환.

33. 최근 이 제도가 녹색운동가들의 노력으로 폐지되었다.

34. D. H. Leverett, "Fluorides and the changing prevalence of dental caries," Science, vol. 217(2 July 1982): 26-30; First International Conference on Declining Prevalence of Dental Caries, Journal of Dental Research, vol. 61(1982) (Special Issue).

35. Reviewed in Diesendorf(1990a), op. cit.

36. For example, National Health and Medical Research Council, Report of the Working Party on Fluorides in the Control of Dental Caries, Canberra: Australian Government Publishing Service (1985).

37. Published subsequently as W. Varney, Fluoride in Australia: A Case to Answer, Sydney: Hale & Iremonger (1986).

38. For example, letter from N. L. Henry, Federal President, Australian Dental Association, to Barry O. Jones, Minister for Science and Technology, dated 28 August 1985, with Minister's annotations.

39. Waldbott, op. cit.

40. H. Moolenburg, Fluoride: The Freedom Fight, Edinburgh: Mainstream Publishing (1987).

41. Martin, op. cit., chapter 5.

42. For details and references see Diesendorf(1990a), op. cit.

43. 수돗물 내 1ppm 농도의 불소는 이것이 치아로 넘어갈 때 기껏해야 아주 미미한 효과만을 나타낼 뿐이며, 1000ppm농도의 불소치약을 사용할 때 더욱 효과적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44. M Diesendorf, "The mystery of declining tooth decay," Nature, vol. 322 (10 July 1986a): 125-129.

45. See Martin, op. cit.:76.

46. 불소화에 관한 WHO의 위원회에는 반대자가 한명도 없다.- Waldbott et al., op. cit., chapter 16 and Varney, op. cit.

47. Published as M. Diesendorf, "A Reexamination of Australian fluoridation trials," Search, vol. 17(1986b): 256-262.

48. 토론회에서 이루어진 이 논쟁에 대하여는 Diesendorf(1988b), op. cit.에 자세하게 써놓았다.

49. 예를 들어, 그 기사는 "코훈 박사의 자료가 뉴질랜드 의학연구회에 의해 재분석된다면, 코훈의 발언은 무의미해질 것이다"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코훈 박사가 이 글을 뉴질랜드 의학연구위원회 의장에게 언급했을 때, 그는 "이 위원회가 당신의 연구자료를 재분석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으며 다른 이들에게 이를 부탁한 일도 없다는 당신의 견해는 옳습니다"라고 대답했다.

50. Anon, "Fluoridation disaster in the A. C. T.," ADA News Bulletin, no. 162 (November 1989): 7-8. Replies by M. Diesendorf, ADA News Bulletin, no. 166 (March 1990):6, 8, and J. Colquhoun, ADA News Bulletin, no. 167 (April 1990): 17-18.

51. J. Colquhoun and R. Mann, "The Hastings fluoridation experiment: science or swindle?" The Ecologist, vol. 16 (1986): 243-248; J. Colquhoun and R. Mann, "The Hastings fluoridation experiment: postscript," The Ecologist, vol. 17 (1987): 125-126; M. Diesendorf, "misleading publicity for a fluoridation trial," New Zealand medical Journal, vol. 101 (13 December 1988c): 832-833.

52. National Health and medical Research Council, The Effectiveness of Water Fluoridation, Canberra: Australian Government Publishing Service (1991).

53. 이 보고서는 불소화에 대한 우리의 십수편 이상의 저서와 논문 중에서 단 하나만을 인용하였을 뿐이며, 그것도 대중적 잡지 《에콜로지스트》에 발표된 것이었다. 따라서 과학적으로 지위가 낮은 논문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54. 그러나 보고서는 불소치약이나 정제보다 흔히 수돗물불소화가 과다섭취의 대표적 원인이라는, 우리가 제출한 증거를 무시하였다.

55. C. Cooper and S. J. Jacobsen, "Water fluoridation and hip fractur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vol. 266, no. 4 (1991): 513-514; S. J. Jacobsen et al., "Regional variation in the incidence of hip fracture: U.S. white women aged 65 year and older," Journal of the Americal Medical Association, vol. 264 (1990): 500-502; M. F. R. Sowers et al., "A prospective study of bone mineral content and fracture in communities with differential fluoride exposure," American Journal of Epidemiology, vol. 133 (1991): 649-660; C. Danielson et al., "Hip fractures and fluoridation in Utah's elderly population,"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vol. 26 (1992): 746-748; H. Jacqmin-Gadda et al., "Fluoridation concentration in drinking water and fractures in the elderly,"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vol. 273 (1995): 775.

56. Colquhoun and Mann (1986), op. cit.; Diesendorf (1988c), op. cit.

57. A. J. McMichael and G. D. Slade, "An element of dental health? Fluoride and dental disease in contemporary Australia" (editorial), Australian Journal of Public Health, vol. 15, no. 2 (1991): 80-83. Replies by M. Diesendorf and by J. Colquhoun, Australian Journal of Public Health, vol. 15, no. 4 (1991): 308-310.

58. See Diesendorf (1990a), op. cit. and Diesendorf (1990b), op. cit.

59. B. Martin, C. M. A. Baker, C. Manwell, and C. Pugh, eds., Intellectual Suppression: Australian Case Histories, Analysis and Responses, Sydney: Angus & Robertson (1986).

60. See Diesendorf (1990a & b), op. cit.

61. B. Hileman, "Fluoridation of Water," Chemical and Engineering News, vol. 66, no. 31 (1988): 26-42.

62. See Waldbott et al., op. cit.

63. Varney, op. cit.

64. Martin, op. cit.

65. M. Diesendorf and W. Varney, "Fluoridation: politics and strategies," Social Alternatives, vol. 5, no. 2 (1986): 48-53.

66. See diesendorf (1990b), op. cit.

67. J. Colquhoun, "Disfiguring dental fluorosis in Auckland," Fluoride, vol. 17 (1984): 234-242; Diesendorf (1990a), op. cit.

68. National Toxicology Program, Toxicology and Carcinogenesis Studies of Sodium Fluoride in F344/N Rats and B6C3F1 Mice, Bethesda, MD: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August 1990).

69. 내가 CSIRO의 수학 및 통계학 분과에 소속되어 있을 때, 나는 통계학을 하는 동료들과 함께 불소화에 대한 증거들을 검토하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야무야니스와 버크에 의해서 수행된 논란많은 연구, 즉 불소화와 인간의 암 발생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주장을 편 연구가 불소화 도시들과 비불소화 도시들에 있어서의 연령, 성별, 인종적 분포의 차이를 적절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에릭슨이라는 한 친불소화론자에 의해 수행된 역학적 연구는 연령, 인종,성별이 적절히 고려된 다음에 불소화와 암 사이에 명백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J. D. Erickson, "Mortality in selected cities with fluoridated and non-fluoridated water supplies,"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 vol. 298 (1978): 1112-1116). 더 나아가 에릭슨은 그의 논문에서, 인구밀도와 학력(median education)이라는 요소를 추가하여 통계학적 조정을 하였고, 이러한 비표준적 통계 처리의 결과 불소화와 암 사이에 발견된 원래의 연관성이 제거되었다. 이상스럽게도, 그는 논문의 결론에서 "암을 포함하여 불소화로 인한 유해한 효과를 보여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70. J. Yiamouyiannis, Fluoride: The Aging Factor, Delaware, Ohio: Health Action Press (1986); S. L. Gibson, "Effects of fluoride on immune system function," Complementary Medical Research, vol. 6, n0. 3 (1992): 11-113.

71. Diesendorf (1990b), op. cit.

72. Diesndorf (1986b), op. cit.; Diesendorf (1989), op. cit.

73. See Colquhoun and Martin (1986) and Diesendorf (1988c), op. cit.

74. Diesendorf (1990a), op. cit.

75. J. Colquhoun, "Child dental health differences in New Zealand," Community Health Studies, vol. 11 (1987): 85-90; J. Colquhoun, "Is there a dental benefit from water fluoride?" fluoride, vol. 27 (1994): 13-22.

76. Reviewed in Diesendorf (1990a), op. cit.

77. 즉, 대조군을 설정한 무작위의 맹검법을 통한 실험.

78. Diesendorf (1986) and Diesendorf (1990a), op. cit., and J. Colquhoun, "Decline in primary tooth decay in New Zealand," Community Health Studies, vol. 12 (19880: 187-191.

79. 오늘날 수돗물에 첨가되는 불화물은 대부분 비료산업의 폐기물로 얻어진 것이다.

80. Diesendorf and Varney, op. cit., and Varnet, op. cit.

81. Diesendorf and Varney, op. cit., and Varney, op. c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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