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불소화, 십자군 전쟁

이종찬

 

이종찬(아주대 의과대학 교수) 엮음《한국의료 대논쟁》(소나무, 2000년) 35-39면.

  지금 우리가 당연시하고 있는 면역 접종도 서구 사회에서 처음부터 아무런 저항없이 실시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들 사이에서 대단한 논쟁을 거쳐서 지금과 같이 실시되고 있는 것이다. 수돗물불소화 찬성론자들은 반대론자들에 대해 과학적 진리를 무시한다고 몰아세우지만, 서양과학사와 의학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과학적 진리의 의미가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멀리 가지 않더라도 치과의학사를 보더라도 아말감 논쟁1)과 교정 진료에서 발치 논쟁2)은 어느 한쪽이 과학적으로 완전한 진리를 확립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은가?

  그런데, 논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양쪽에서 쏟아져나온 수많은 자료들을 읽어가면서, 논쟁의 인문학적 의미는 부각되지 못하고 오로지 찬반을 위한 논리에 파묻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의미에 천착하지 않는다면, 의료보험 논쟁처럼 수돗물불소화 논쟁도 국민의 건강증진이라는 원래의 목적과는 상관없이 힘과 힘의 맞대결로 끝날 공산이 크다. 수돗물불소화 논쟁과 같이 사회적으로 첨예한 문제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인문학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 수돗물은 분명히 공공의 재화에 속한다. 사적인 이해관계가 공익성을 해쳐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치의학적 지식에 근거한 판단이 사적인 이해관계일 수 있느냐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서양의학사와 치의학사는 그럴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수돗물불소화는 아직 완전히 검증되지 않은 특정한 전문적 지식에 근거하여 특정 요소를 공공의 재화에 투입할 수 있다는 가정을 한다. 이 논쟁이 '아말감 논쟁'에 비해 중요한 이유는 공공의 재화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수돗물불소화와 같이 공공의 재화에 특정 요소를 투입할 경우에, 안전성에 관계없이, 주입으로 인한 대중의 혜택 못지않게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수돗물불소화를 원하지 않는 시민들에 대한 배려이다.3) 논쟁에서 약자는 사업을 원하지 않는 시민들이다.4)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일수록 정의롭다. 이 점과 관련하여 의료윤리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수돗물불소화 사업이 강제적인 공중보건 사업인지 아닌지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해주기를 바란다.

  둘째, 논쟁의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안전성은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인 개념이다. 설탕의 사례는 수돗물불소화의 안전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오늘날 설탕의 섭취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유럽에서 설탕은 13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만병통치약'으로 불리울 정도로 의료행위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설탕의 안전성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졌던 의학자들이 등장하면서, 17세기와 18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논쟁을 벌여왔다. 물론 지금의 과학적 수준이 당시보다 크게 발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불소가 투입된 수돗물을 장기적으로 음용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인체의 안전성에 대한 위험은 아직 역학적으로 검증되지 않고 있다.

  셋째, 의학 지식의 '사회구성주의'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인다면, 수돗물불소화의 타당성에 관한 치의학적 판단은 전문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게 된다. 의학적 발전은 객관적인 실험의 결과라기보다는 의료시장을 계속 창출하려는 전문적인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만일 18세기 스코틀랜드 의학사상이 '신경계'라는 개념을 강조한 것이 당시 스코틀랜드의 신흥 지주계급의 사회적 이해와 자아의식에 기인했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미국치과의사협회가 수돗물불소화 사업을 추진했던 속사정이 '의-산복합체'의 이해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넷째, 충치처럼 치아에서 발생된 질환이 인체의 다른 질환과 가장 다른 점은 질환이 발생하는 국소적 부위가 질환의 원인이 되는 인과적 부위와 정확히 일치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이는 치아의 질환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눈, 코, 귀, 피부와 같은 부위의 질환에서도 대체로 해당한다. 질환의 국소적 부위와 인과적 부위가 일치할 확률이 높은 경우에, 예방과 치료도 국소적으로 이루어져야 된다. 그런데도 굳이 전신적인 예방방법을 통하여 충치를 예방하려고 한다면,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과학적' 논리의 개발이 더욱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건강과 질병에 관한 생태적인 사유가 더욱 요구되는 21세기에 수돗물불소화를 통한 충치예방 방법이 계속 유효할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미국과는 달리 몇몇 유럽의 나라들에서 이 사업을 처음부터 실시하지 않았거나 처음에는 실시했지만 중도에 그만둔 이유를 생태학적 관점에서 천착하여 탐구할 필요가 있다. 일찌감치 보건의료의 공공성을 제도화하는 데 성공했던 이 나라들이 선진국 중에서 아직도 국민의료보험 제도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인 미국보다도 국민들을 위한 구강보건 증진에 더욱 무심할 리가 없다. 또한 인간을 포함한 생물, 기후, 지각들이 공진화(共進化)하고 있다는 '가이아 이론'에 비추어볼 때, 수돗물에 함유된 불소가 충치예방에만 작용한다는 단일 인과론적 사고는 설자리를 잃고 만다. 이런 점에서 수돗물불소화가 인체에 전신적으로 미치는 효과에 대한 더욱 정교화된 역학적 연구가 필요하다.

  수돗물 논쟁이 다른 논쟁들과 비교하여 더욱 흑백논리의 대결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른 논쟁과 달리 양쪽 주장의 스펙트럼 상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찬성론자 입장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1) 이 논쟁은 충치 치료를 위한 충전 재료로 널리 쓰이는 아말감에 포함된 수은이 인체에 무해한지 유해한지에 관한 것이다.
2) 이것은 치과 교정 진료에서 첫번째 작은 어금니(소구치)를 발치할 것인지 아닌지를 둘러싼 논쟁이다.
3) 시내버스 안에서 날씨가 더워 냉방장치를 가동하려고 할 경우에 냉방장치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냉방장치의 가동을 요구하는 사람보다도 이들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4) 찬성론자들은 수돗물불소화의 혜택을 받지 않아 충치가 발생하는 사람을 약자라고 보지만, 수돗물불소화가 되지 않는다고 모든 사람이 충치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약자는 수돗물불소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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