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농 - 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  쓰노 유킨도 (津野幸人)/성삼경 옮김  녹색평론사 2003

자급적인 집약농업을 하는 농사꾼이 지구를 살린다

최성일

 

  농촌과 지방도시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지방의 많은 교사들이 근무지를 대도시로 옮기려 하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육 문제에 나름대로 정통한 분에게는 학교 내적인 이유를, 지방에 거주하면서 주중 사흘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분에게는 학교 외적인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시골 학교에는 교사의 숫자가 적어 수업 이외의 잡무가 집중된다는 것이 학교 내적인 이유이고, 지방의 중소도시에조차 변변한 문화시설이 전무하다는 것이 학교 외적인 이유다.

 일본의 농학자 쓰노 유킨도의《소농(小農)-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녹색평론사)에서도 사람들이 농촌을 외면하는 까닭을 찾을 수 있다. 쓰노는 농촌의 인구가 감소하는 원인을 형식적인 경제문제에서만 찾지 말고 좀더 철저하게 파고 든다면 "반드시 산촌의 가난한 마음과 만나게 된다"고 지적한다.

 "솔직히 말하면 긴 기간에 걸쳐 이웃집이 잘못되는 것을 기다리고 바라는 습성이, 약자를 돌보는 마음을 누르고 있다. 도시에서는 노인을 잘 돌보는, 마음이 우아하고 기특한 사람을 우연히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산촌에서는 고독한 노인은 인간의 존엄을 벗어 팽개치고 행정의 시혜를 바라든가, 수치심을 견디며 이웃사람의 동정에 매달릴 뿐이다."

 농사일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가장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강조하는 쓰노이건만, 경제대국 일본의 변경지대에서는 정신의 궁핍함이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탄식한다. 허나, 이것이 엄연한 현실인 것을 어찌 하랴! 또, 이러한 사정은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강 건너 불 같은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쓰노는《소농》을 통해 농사일과 농촌, 그리고 지구를 살리기 위한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은 소농의 관점에서 근대 농업에 맞서는 일이다. 여기서 소농은 "자급적 집약농업을 하는 농민"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오랜 세월에 걸쳐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농지를 만들고, 그 토지에서 열심히 작물을 재배해서 얻어내는 적은 잉여생산이 자손의 번영을 이루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그 농사법을 자손 대대로 이어온 사람들"이다.

 쓰노는 "지금이야말로 정보화사회에서 소농의 바른 자리찾기를 모색해야 할 시기"로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농들이 토착 정주할 수 있게끔 하는 데 농업정책의 최우선 목표를 두고, 이를 중심으로 지역산업을 적절하게 배치해야 한다. 아울러 대형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만을 중요시 여기는 '구조개선책'은 하루빨리 폐기해야 한다. 하지만 쓰노는 낭만적인 농업 공동체 같은 것은 결코 꿈꾸지 않는다. 그의 생각은 땅에 굳건한 뿌리를 두고 있다. 쓰노는 소농들이 산업사회에 적응하는 형태로 '겸업농가'를 제안한다.

 "한 나라의 식량을 스스로 자급하자고 결의했을 때 취해야 할 정책은 분명하다. 대도시로의 인구집중을 피하고, 인구를 적절하게 지방으로 분산시켜 지방, 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 공장, 학교, 병원의 배치를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겸업농가를 더욱 늘려야 한다. 자신이 먹을 식량을 스스로 재배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해야 한다. 겸업은 나쁜 것이 아니라, 이른바 정보화사회에서 인간의 이상적인 삶의 방식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농촌을 떠나려는 교사들을 겸업농가로 유도해 붙잡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필자의 순진한 발상일까? 농민조차 자식에게 농사일을 물려 주지 않겠다고 하는 농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팽배한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농사일을 떨떠름하게 여기는 첫째 이유는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한 농촌의 상대적 빈곤이다. 여기에다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인 사람들은 농업을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한다. 마르크스는〈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에서의 18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들(농민들-재인용자)은 의회를 통해서건 집회를 통해서건 자기네 명의로 자기네 계급의 이익을 강력하게 추진시킬 능력이 없다. 이들은 자기네 스스로 대표자를 내세우지 못한다. 누군가가 이들의 대표자 노릇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된다"(에릭 울프의《농민》(청년사, 1978)에서 재인용)

 또,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농경사회를 '아시아적 정체(停滯) 사회'로 규정하고 낮춰 보았다.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진보'로 간주했다. 하지만 쓰노는 "정체를 뒤집어서 말하면 안정"이라는 논리를 편다. 그는 농업을 공업의 하위에 놓는 낡은 근대화 이념에서 탈피해 "농업이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적합한 생업형태라는 인식"이 긴요하다고 말한다. 더구나 "소농에 의한 조직구축은 근대국가의 조직과 가치관에 대한 도전이다."

 잘 다듬어진 밭이랑, 가지런한 작물의 생육상태, 도랑치기를 깨끗이 한 수로 같은 인위적인 농업경관에서 어째서 아름다움을 느끼는가에 대한 쓰노의 설명이 인상적이다. "농업경관의 근본은 도시의 경관과 궤를 같이 하는 '인공'이며, 인공질서의 확인과 전망이 아름다움으로 의식되고, 질서의 혼란이 추함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농업경관을 아름답게 만드는 인위적인 힘은 농약과 비료의 과다한 사용이나 유전자조작 같은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 자연에 순응하는 농사꾼의 굵은 땀방울이 농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문득 소농의 중요성은 우리 역사를 통해서도 입증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이 5백년 동안 나라를 지탱한 것은, 명목상이나마, 농사일을 이 세상의 으뜸되는 근본(農者天下之大本)으로 여겼기 때문이리라.


  최성일

  출판평론가.

《우리 아이들》 2004년 1-2월호 '교사의 책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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